XXII. 예수님의 교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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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08-02-11 22:39 조회4,164회 댓글0건본문
XXII. 예수님의 교수법
가) 크신 교사이신 예수님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을 ‘랍비’ 또는 ‘선생’으로 호칭한 곳이 60군데 이상 나온다. 랍비란 ‘나의 선생’이라는 뜻으로(참조, 요 1:38),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란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그렇게 부르기를 좋아했다. 예수님의 교수방식을 연구한 오늘날의 학자들도 그분의 교수법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교육 심리학자인 칼 로저스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알려진 가장 위대한 교사로서, 교수법에 있어서도 탁월한 분이셨다"(칼 로저스, 교육심리학, 256)고 하였다. 그분은 진실로 가장 위대한 교사이시다.
나) 온유하고 겸손하신 교사
안식일학교 교사들은 먼저 크신 교사이신 예수님께 배우는 학생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말씀하신다. 안식일학교 교사들은 먼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한다. 그분은 하늘 왕좌를 버리시고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셨다. 우리 교사들은 성급하게 남을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먼저 그분의 발아래 앉아서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다) 영혼을 애타게 사랑하신 교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신 것은 인류에게 사랑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사람의 눈높이로 내려오신 까닭은 잃어버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인간을 구원하려는 애타는 사랑이 그분을 삼켜버렸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에게 맡겨진 학생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애타는 사랑을 가진다면, 우리의 접근방식은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학생들 앞에서 지식을 자랑하는 대신에 그 지식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전달하려 할 것이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수법을 따를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원동력은 영혼에 대한 불타는 사랑이었다. 그분은 한 영혼의 가치가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아셨다. 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구절 중 하나인 요한복음 3장 16절도 단 한 명의 청중을 앞에 놓고 하신 말씀이었다. 그분은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를 향해 다음과 같이 위대한 진리를 선포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 예수님의 가르침의 특징
1. 학습자 중심의 교수법
예수님의 교수법은 학습자 중심이었다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학습자 중심의 교수법이란 학생들 편에서 그들이 이해하고 기억하고 적용하기 쉽도록 가르치는 방법을 말한다. 사람을 창조하신 분보다 사람의 심리를 더 잘 아시는 분은 없을 것이다. 그분은 사람의 마음을 열고 그들의 심령에 접근하는 통로를 알고 계셨다. 그리고 죄로 인해 인간의 이해력이 얼마나 둔해졌는지도 그분은 아셨다. 그분은 구속의 고차원적인 지식을 죄인들의 어두운 마음이 깨달을 수 있도록 쉽게 진리를 설명해 주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 1:14)라는 구절은 예수께서 얼마나 철저히 학습자 중심의 교사가 되셨는지를 잘 표현해 준다. 그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눈높이에서가 아닌, 이 땅에 육신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구원의 귀한 진리를 가르치셨다.
2. 창의적인 교수법
예수께서 무리를 가르치셨을 때에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진리의 보화가 빛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전에 깨닫지 못했던 진리가 선명하게 와 닿는 것을 느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막 1:22, 27).
예수께서는 참신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가르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이 사용하신 비유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끌어낸 것이었으나 하늘의 영적인 사물을 깨닫게 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분이 던지신 질문은 단순하였으나 청중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자아내게 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놀랐으며, 감격했으며, 더 많은 진리를 얻기 위해 갈급하게 되었다.
엘렌 화잇은 예수님의 창의적인 교수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들을 제거하려고 노력하셨다. … 그분의 말씀은 성경의 가르침과 천연계의 교훈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했고 그 교훈들이 새로운 계시가 되게 하였다”(실물교훈, 18). 평범한 것일지라도 그분은 새로운 관점에서 보셨으며, 거기서 놀라운 통찰을 이끌어 내셨다. 우리 교사들에게도 이러한 안목이 필요하다.
3. 단순하면서도 흥미로운 교수법
예수님은 어린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고 배우지 못한 자들도 깨달을 수 있도록 단순하게 가르치셨다. 그러나 그분의 가르침은 심오하여 아무리 많은 학식을 가진 자들도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예수님은 세상에 지금껏 알려진 가장 위대한 교육자이셨다. 그분의 지식과 비교해 보면 가장 높은 인간의 지식도 어리석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분의 교훈은 너무도 단순했기 때문에 배운 자나 배우지 않은 자를 막론하고 모두가 그분을 이해했다”(교회증언, 5권, 588).
한편 그분의 가르침은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고 그분의 교훈에 귀를 기울였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 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막 6:34-36). 그분의 가르침이 그토록 흥미로웠던 이유는, 청중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의 육적인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만족시키셨다. “그분은 항상 인간의 영적, 육체적 및 정서적인 필요에 민감하셨다. 그분은 사람을 동정하시고, 그들의 비애를 들어주시며, 그들의 질병을 고치시고, 그들을 먹이셨다. 청중들이 넋을 잃은 채 예수님의 말씀에 열중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찰스 베츠, 장년 안식일학교를 위한 토의식 교과교수법, 26).
4. 일상의 삶과 연결시키는 교수법
예수님은 청중이 익히 아는 사실에서 출발하셨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일이나, 목자가 양을 치는 일이나, 어부가 그물을 깁는 일은 청중들이 익숙히 아는 삶의 일부였다. 들의 백합화나, 공중의 새나, 작은 씨앗을 가진 겨자나무는 청중들이 친숙하게 아는 그들의 생활 환경이었다. 반죽을 부풀게 하는 누룩이나, 부대에 담긴 술이나, 가이사의 화상이 새겨진 동전은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매일 접하던 사물들이었다. 곡식 틈에 자라는 무성한 가라지나,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나,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평소에 안타깝게 생각하던 삶의 정황이었다.
예수님은 청중이 잘 아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영원한 진리의 세계로 여행을 이끄셨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던 청중들은 천연계의 사물들과 자신들의 생활 경험을 성경에 기록된 진리와 연결시켰다”(실물교훈, 17).
마) 예수님의 대표적인 2가지 교수 방법
예수님은 다양한 교수방법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가르치셨으나, 그분이 사용하신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교수 방법은 비유와 질문이었다.
1. 비유를 통해 가르치심
예수님은 비유를 즐겨 사용하셨다. 복음서의 기자는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다(마 13:34)고 표현할 정도였다. 비유란 하나의 표상이나 상징 혹은 예화를 말한다. 문자적으로 말하면, 비교를 위해 옆에 나란히 놓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비유로 가르치는 일은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 사람들 사이에도 널리 유행되었고 호평을 받고 관심을 끌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교수 방법을 사용하실 수는 없으셨다”(실물교훈, 21). 비유는 예수님의 대표적인 교수방법 중 하나였다.
2. 질문을 통해 가르치심
예수께서는 비유 뿐 아니라 또 하나의 강력한 교수방법을 사용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질문이다. 예수님은 수많은 질문의 화살을 받으셨지만 또 한편으로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셨다. 사복음서에서 우리는 종종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마 16:13)와 같은 표현을 종종 접하게 된다. 사복음서에는 그분께서 던지신 질문이 무려 200여개나 나오는데, 그분은 질문을 통한 교수법의 위력을 알고 계셨다.
한번은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 제자들이 대답했다.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 16:14). 예수께서 다시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 그러자 베드로가 위대한 고백을 하였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베드로의 위대한 고백을 이끌어 낸 예수님의 질문을 유심히 살펴보면 객관적인 사실에서 주관적인 사실로 옮겨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여는 질문의 단계를 차근차근히 밟으신 것이다. 그분은 대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지 않으시고, 먼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심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보다 개인적인 질문을 받을 준비를 갖추게 하셨다.
예수님의 질문 교수법에 대해서는 다음 기에 자세히 살펴보자.
가) 크신 교사이신 예수님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을 ‘랍비’ 또는 ‘선생’으로 호칭한 곳이 60군데 이상 나온다. 랍비란 ‘나의 선생’이라는 뜻으로(참조, 요 1:38),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란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그렇게 부르기를 좋아했다. 예수님의 교수방식을 연구한 오늘날의 학자들도 그분의 교수법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교육 심리학자인 칼 로저스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알려진 가장 위대한 교사로서, 교수법에 있어서도 탁월한 분이셨다"(칼 로저스, 교육심리학, 256)고 하였다. 그분은 진실로 가장 위대한 교사이시다.
나) 온유하고 겸손하신 교사
안식일학교 교사들은 먼저 크신 교사이신 예수님께 배우는 학생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말씀하신다. 안식일학교 교사들은 먼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한다. 그분은 하늘 왕좌를 버리시고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셨다. 우리 교사들은 성급하게 남을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먼저 그분의 발아래 앉아서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다) 영혼을 애타게 사랑하신 교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신 것은 인류에게 사랑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사람의 눈높이로 내려오신 까닭은 잃어버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인간을 구원하려는 애타는 사랑이 그분을 삼켜버렸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에게 맡겨진 학생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애타는 사랑을 가진다면, 우리의 접근방식은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학생들 앞에서 지식을 자랑하는 대신에 그 지식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전달하려 할 것이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수법을 따를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원동력은 영혼에 대한 불타는 사랑이었다. 그분은 한 영혼의 가치가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아셨다. 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구절 중 하나인 요한복음 3장 16절도 단 한 명의 청중을 앞에 놓고 하신 말씀이었다. 그분은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를 향해 다음과 같이 위대한 진리를 선포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 예수님의 가르침의 특징
1. 학습자 중심의 교수법
예수님의 교수법은 학습자 중심이었다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학습자 중심의 교수법이란 학생들 편에서 그들이 이해하고 기억하고 적용하기 쉽도록 가르치는 방법을 말한다. 사람을 창조하신 분보다 사람의 심리를 더 잘 아시는 분은 없을 것이다. 그분은 사람의 마음을 열고 그들의 심령에 접근하는 통로를 알고 계셨다. 그리고 죄로 인해 인간의 이해력이 얼마나 둔해졌는지도 그분은 아셨다. 그분은 구속의 고차원적인 지식을 죄인들의 어두운 마음이 깨달을 수 있도록 쉽게 진리를 설명해 주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 1:14)라는 구절은 예수께서 얼마나 철저히 학습자 중심의 교사가 되셨는지를 잘 표현해 준다. 그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눈높이에서가 아닌, 이 땅에 육신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구원의 귀한 진리를 가르치셨다.
2. 창의적인 교수법
예수께서 무리를 가르치셨을 때에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진리의 보화가 빛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전에 깨닫지 못했던 진리가 선명하게 와 닿는 것을 느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막 1:22, 27).
예수께서는 참신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가르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이 사용하신 비유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끌어낸 것이었으나 하늘의 영적인 사물을 깨닫게 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분이 던지신 질문은 단순하였으나 청중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자아내게 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놀랐으며, 감격했으며, 더 많은 진리를 얻기 위해 갈급하게 되었다.
엘렌 화잇은 예수님의 창의적인 교수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들을 제거하려고 노력하셨다. … 그분의 말씀은 성경의 가르침과 천연계의 교훈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했고 그 교훈들이 새로운 계시가 되게 하였다”(실물교훈, 18). 평범한 것일지라도 그분은 새로운 관점에서 보셨으며, 거기서 놀라운 통찰을 이끌어 내셨다. 우리 교사들에게도 이러한 안목이 필요하다.
3. 단순하면서도 흥미로운 교수법
예수님은 어린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고 배우지 못한 자들도 깨달을 수 있도록 단순하게 가르치셨다. 그러나 그분의 가르침은 심오하여 아무리 많은 학식을 가진 자들도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예수님은 세상에 지금껏 알려진 가장 위대한 교육자이셨다. 그분의 지식과 비교해 보면 가장 높은 인간의 지식도 어리석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분의 교훈은 너무도 단순했기 때문에 배운 자나 배우지 않은 자를 막론하고 모두가 그분을 이해했다”(교회증언, 5권, 588).
한편 그분의 가르침은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고 그분의 교훈에 귀를 기울였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 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막 6:34-36). 그분의 가르침이 그토록 흥미로웠던 이유는, 청중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의 육적인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만족시키셨다. “그분은 항상 인간의 영적, 육체적 및 정서적인 필요에 민감하셨다. 그분은 사람을 동정하시고, 그들의 비애를 들어주시며, 그들의 질병을 고치시고, 그들을 먹이셨다. 청중들이 넋을 잃은 채 예수님의 말씀에 열중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찰스 베츠, 장년 안식일학교를 위한 토의식 교과교수법, 26).
4. 일상의 삶과 연결시키는 교수법
예수님은 청중이 익히 아는 사실에서 출발하셨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일이나, 목자가 양을 치는 일이나, 어부가 그물을 깁는 일은 청중들이 익숙히 아는 삶의 일부였다. 들의 백합화나, 공중의 새나, 작은 씨앗을 가진 겨자나무는 청중들이 친숙하게 아는 그들의 생활 환경이었다. 반죽을 부풀게 하는 누룩이나, 부대에 담긴 술이나, 가이사의 화상이 새겨진 동전은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매일 접하던 사물들이었다. 곡식 틈에 자라는 무성한 가라지나,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나,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평소에 안타깝게 생각하던 삶의 정황이었다.
예수님은 청중이 잘 아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영원한 진리의 세계로 여행을 이끄셨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던 청중들은 천연계의 사물들과 자신들의 생활 경험을 성경에 기록된 진리와 연결시켰다”(실물교훈, 17).
마) 예수님의 대표적인 2가지 교수 방법
예수님은 다양한 교수방법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가르치셨으나, 그분이 사용하신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교수 방법은 비유와 질문이었다.
1. 비유를 통해 가르치심
예수님은 비유를 즐겨 사용하셨다. 복음서의 기자는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다(마 13:34)고 표현할 정도였다. 비유란 하나의 표상이나 상징 혹은 예화를 말한다. 문자적으로 말하면, 비교를 위해 옆에 나란히 놓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비유로 가르치는 일은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 사람들 사이에도 널리 유행되었고 호평을 받고 관심을 끌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교수 방법을 사용하실 수는 없으셨다”(실물교훈, 21). 비유는 예수님의 대표적인 교수방법 중 하나였다.
2. 질문을 통해 가르치심
예수께서는 비유 뿐 아니라 또 하나의 강력한 교수방법을 사용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질문이다. 예수님은 수많은 질문의 화살을 받으셨지만 또 한편으로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셨다. 사복음서에서 우리는 종종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마 16:13)와 같은 표현을 종종 접하게 된다. 사복음서에는 그분께서 던지신 질문이 무려 200여개나 나오는데, 그분은 질문을 통한 교수법의 위력을 알고 계셨다.
한번은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 제자들이 대답했다.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 16:14). 예수께서 다시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 그러자 베드로가 위대한 고백을 하였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베드로의 위대한 고백을 이끌어 낸 예수님의 질문을 유심히 살펴보면 객관적인 사실에서 주관적인 사실로 옮겨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여는 질문의 단계를 차근차근히 밟으신 것이다. 그분은 대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지 않으시고, 먼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심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보다 개인적인 질문을 받을 준비를 갖추게 하셨다.
예수님의 질문 교수법에 대해서는 다음 기에 자세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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