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입은 헌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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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0-12 10:16 조회936회 댓글0건본문
이발 전도를 할 생각으로 부산으로 근무지를 옮겨서 살 때였습니다.
어느 날, 집 가까이에 있는 초량지하철역을 지나는데 역 사무실 옆에 자원봉사센터 간판이 보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거기에 들어갔고 그때부터 송도맹아학교에 차를 몰고 가서 학생들을 여기저기 태워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원봉사센터 옆에는 헌옷을 파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자매 두 분이 그 일을 하는데, 학교나 기관에서 커다란 헌옷 보따리가 지하철역 입구에 도착하면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두 분이 불편한 몸으로 계단으로 그 헌옷 보따리를 어렵게 옮겼습니다. 몇 번 도와드리고 나서 오늘은 옷을 얼마나 팔았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두 자매님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겨우 두 장 팔았어요.” 하는 것입니다. 제가 산 두 장의 옷으로 그분들이 너무 기뻐했습니다. 집에 가지고 갔더니 제 아내가 잘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아내도 그곳에 찾아가 자신의 옷과 두 아이의 옷, 헌책 등을 구입했습니다. 그렇게 부산에 있는 2년 동안 새 옷을 안 사 입고 헌옷을 구입해서 입었지요. 그 후로 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
오랫동안 많이 아프던 딸아이가 어렵사리 건강을 회복하더니, 독립하겠다며 작은 집을 따로 마련해 나갔습니다. 학비가 적게 드는 서울시립대 국문과를 나온 딸아이는 좋은 회사에 메인작가로 취업하였고, 회사의 관계자분들이 능력을 인정해준다며 매일매일 즐거워했습니다. 어떤 회사인가 궁금해서 딸아이와 점심 약속을 하고 압구정역 부근에 있는 회사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활짝 웃으며 나타난 딸아이의 옷차림이 너무 검소하여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중고 제품을 파는 ‘아름다운 가게’ 같은 데를 잘 간다고 하더니 그런 데서 구입했을 법한 보푸라기가 잔뜩 올라온 머플러와 뜨개실로 만든 좀 초라한 장갑을 낀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식사를 하고 헤어지기 전에 딸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지금도 밥 한 끼를 금식하여 아낀 돈으로 감사헌금을 하거나 월드비전 같은 데에 보내는데….”
“알아요 아빠,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직은 여유가 없지만 형편이 나아지면 나도 엄마처럼 기부도 하고 그럴 생각이에요! 단, 금식은 좀 힘들 것 같아요! 하하!”
그런 말을 남기고, 헌옷을 입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회사 안으로 들어가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딸바보 아빠인가 봅니다.
서중합합회 월곡동교회 장로 홍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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