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우리의 목표 - 전교인 선교활동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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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2-05 14:33 조회4,553회 댓글0건본문
II. 우리의 목표 - 전교인 선교활동 참여
■ 가장 기본적인 원칙 : 구성원 모두가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 즐거이 동참해야 한다. 지상에서의 사업을 마치기 위하여 총체적 참여가 요청되며,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해 준비되기 위하여 모든 구성원들은 그리스도인 생활 스타일에 있어서 세 가지 특성을 갖는 것이 요청된다. 즉 말씀을 연구함, 기도, 복음을 나눔이 그것이다. 성화 성장을 위한 이 세 요소들은 성소의 떡과 향, 그리고 촛대의 빛에 비교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이르게 되는 이 세 가지의 경험 중 가장 소중한 것은 빛을 발하는 것인 바, 촛대는 순전한 금으로 만들어진 반면, 나머지 둘은 금위에 얹힌 것들이었다(출 37 :10,11, 17,25,26)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증거를 위한 훈련의 중요성을 절실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소위 잘 교육받고 자격을 갖추었다고 인정받는 많은 설교가들이, 방문은 거의 하지 않는 채, 기가 막히게 환상적으로 준비한 설교만으로 목양하려 하며, 더구나 양떼들로 하여금 배운 바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도록 훈련시키거나 도와주지 않고 있다. “우리는 타인에게 나누어 줄 때만이 받을 수 있게 된다”(영문, 시대의 소망 370). (이하 모든 인용문은 영문 서적임을 밝힘-역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떡덩이와 물고기를 주실 때 제자들은 저들이 받은 바를 나누어 주었으며, 그렇게 할 때 더 받을 수 있었다. 설교 말씀이란, 만일 우리가 신자들로 하여금 그 기별을 나누도록 훈련시키고 돕지 않는다면, 한 귀로 들어가서 다른 귀로 나가 버리고, 그것으로 나누지 않는 생애를 사는 자는 곧 모든 축복을 상실하게 된다. 만일 진리가 그에게서 타인에게 넘쳐흐르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역량까지 상실하게 된다 (원고 139. 1898년 10월 21일자).
교우들의 전체적인 참여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평형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라. 삼발 의자와 같은 경우이다. 만일 한 다리가 없다면 그것은 주저 앉아버릴 것인 바, 이것은 많은 구성원들의 손실을 의미한다. 저들은 어떻게 증거해야 되는지 가르침을 받지도 모본을 보지도 못했다. 세 발의 온전한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둘만으로 감당하려면 고통스러운 일이다.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복음을 나누는 일에 하나도 동참하지 않는 구성원들은 고통을 경험하게 되며. 결국은 교회를 떠나는 것이 다반사다. 그들의 경험은 받기만 하고 나누어 주지 않는 사해의 물과 같아서 변질된 것이 되고 만다.
안교활동반은 목사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저들의 교우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생애 속에 근본적인 삼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특히 교회의 외방활동을 위해 연합된 기본 조직의 일원으로 참여함으로 주님과 함께 희열이 넘치는 경험올 갖도록 돕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성령의 지도 하에서의 연합된 행동의 결과들은 무한한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한 능력의 지도 하에서 하나로 행동하며 하나로 앞으로 움직인다면 저들은 세계를 움직이게 될 것이다”(교회중언 9권 221) “교회의 교인 대부분이 …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꾼들”(리뷰 앤드 헤랄드1896년 7월 21일자,이 지 화잇)이 되기까지는 늦은 비가 임할 수 없음으로, 우리는 활동함에 있어서 총체적 참여를 촉구해야 한다.
선교활동을 혼자 도맡아 하거나, 선교활동을 위해 몇몇 특수 요원들만을 훈련시키고자 하는 지도자들은, 지금 제시하는 개념들이 지나친 발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무리한 일이다. 그러나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은 주님의 오심이 임박한 시점이다. 만일 우리가 그분에게 허락해 드리기만 한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 들을 우리를 통해 이루실 수 있고, 또 이루실 수 있는 우리의 능력 있으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있어 담대함이 요구되는 때이다. 우리는 아래의 성경절들을 세심히 연구하고, 적용시키며, 약속의 성취를 주장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요 15:16;역대하 25:9 ; 역대상 12:32 ; 출 14:15;벧후 1:12;수 1:1~8;민 13:30;수 14:9;렘 32:17;미 28:19,20;막 11:24;엡 3:20,5:18) 기드온 이야기 속에서 처음에 우리는 신실한 300명 군사들만을 보게 되지만, 엄청난 승리를 위하여 그 나머지 온 군대가 곧 합세하여 연합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바야흐로 엄청난 승리의 경계에 서 있는 바, "진리는 곧 영광스러운 승리를 취할 것이며, 지금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기를 선택한 모든 자들은 진리와 함께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교회중언 9권 135).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그 승리에 동참하기를 갈망하신다. 그리고 모두를 참여시키고자 하는 이 무리한 변혁적 시도에 대한 하나님의 인준하심이 우리 모두를 크게 고무시킨다.
■하나님께서 변혁을 원하심
〈부분적인 참여에서 총체적 참여로의 변화를 일컫는 저자의 개념임〉
주께서는 사업의 발전을 위한 변화를 끊임없이 소개하셨다. “그대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1969년에 탄자니아는 목사 중심적 사업에서 평신도 중심적으로의 변화가 절실히 요청되었다. 정부에 의하여 일반적 공중집회는 제한을 받게 되었고, 주님의 개입하심이 필요되었다. 그분께서는 교인들이 일하고 있는 한 “그 사업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복음사역자 352)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리고 필수적인 늦은 비는, “교회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리뷰 앤드 헤랄드 1896년 7월 21일자, 이 지 화잇)가 되기까지는 임하시지 않을 것임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음과 같은 그분의 지시에 관심을 모을 때 눈에 뜨이는 증거들을 허락하셨다. 우리는 평신도들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성경연구 강목을 마련하고 평신도인 마라모코 형제를 파송하였다. 그와 두 동료가 한 집을 방문하여 문간에 섰을 때, 한 남자가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아내를 데리고 나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람들이 조금 전에 내가 꿈속에서 본 그 사람들이며, 이 책들도 바로 그 책들이오.” 그 소문은 온 나라로 번졌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평신도들이 변화를 수용하게 되었고, 엄청난 결과들이 뒤를 이었으며, 우리는 이로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훈련은 전 교우를 대상으로 하지는 못하였고, 일부 요원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수년 후에 사라와크도 목사 중심에서 평신도를 주축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변화가 요청되었다. 쿠침으로부터 17마일 떨어진 멘자우 근교의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12월의 훈련을 위하여 우리는 10월에 먼저 목사들을 훈련시켰다. 11월 27일 벤자우 교회의 장로인 타요가 성경을 공부한 후 기도하고 있을 때, 한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가까이 이르러, “타요. 예수께서 매우 속히 오신다. 나가서 이 사실을 이웃에게 전하라”고 말했다. 다음 날인 11월 28일 밤에 마을 사람들이 트럼펫 연주와 찬양을 듣기 위해 교회로 몰려들었다. "나팔을 들어서 크게 불라. 주 예수 다시 오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집회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우리가 사라와크에서 그분의 지시대로 따랐을 때,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나타나는 그의 증거들을 주셨으며, 우리는 그로 인하여 그분을 찬양하였다. 이 곳에서도 훈련은 일부 평신도 지도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온타리오 합회에서 저자가 평신도 지도자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1년 8개월만에 275명의 침례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미쉬간에서 동일한 시도를 했을 때는 결과가 미미했다. 그러나 미쉬간에서 총체적 참여를 시도했을 때는 획기적인 결과들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성공들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역자 주-여기서의 평신도 지도자 교육이란 한국에서의 구역장 및 임원 교육과 같은 것을 의미함) 이러한 변화에 대한 당신의 인준하심을 보여주셨다. 우리는 그대들의 안교에서도 활동반들을 조직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몇몇 성공 사례들을 제시할 것이다.
■ 가장 기본적인 원칙 : 구성원 모두가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 즐거이 동참해야 한다. 지상에서의 사업을 마치기 위하여 총체적 참여가 요청되며,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해 준비되기 위하여 모든 구성원들은 그리스도인 생활 스타일에 있어서 세 가지 특성을 갖는 것이 요청된다. 즉 말씀을 연구함, 기도, 복음을 나눔이 그것이다. 성화 성장을 위한 이 세 요소들은 성소의 떡과 향, 그리고 촛대의 빛에 비교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이르게 되는 이 세 가지의 경험 중 가장 소중한 것은 빛을 발하는 것인 바, 촛대는 순전한 금으로 만들어진 반면, 나머지 둘은 금위에 얹힌 것들이었다(출 37 :10,11, 17,25,26)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증거를 위한 훈련의 중요성을 절실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소위 잘 교육받고 자격을 갖추었다고 인정받는 많은 설교가들이, 방문은 거의 하지 않는 채, 기가 막히게 환상적으로 준비한 설교만으로 목양하려 하며, 더구나 양떼들로 하여금 배운 바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도록 훈련시키거나 도와주지 않고 있다. “우리는 타인에게 나누어 줄 때만이 받을 수 있게 된다”(영문, 시대의 소망 370). (이하 모든 인용문은 영문 서적임을 밝힘-역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떡덩이와 물고기를 주실 때 제자들은 저들이 받은 바를 나누어 주었으며, 그렇게 할 때 더 받을 수 있었다. 설교 말씀이란, 만일 우리가 신자들로 하여금 그 기별을 나누도록 훈련시키고 돕지 않는다면, 한 귀로 들어가서 다른 귀로 나가 버리고, 그것으로 나누지 않는 생애를 사는 자는 곧 모든 축복을 상실하게 된다. 만일 진리가 그에게서 타인에게 넘쳐흐르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역량까지 상실하게 된다 (원고 139. 1898년 10월 21일자).
교우들의 전체적인 참여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평형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라. 삼발 의자와 같은 경우이다. 만일 한 다리가 없다면 그것은 주저 앉아버릴 것인 바, 이것은 많은 구성원들의 손실을 의미한다. 저들은 어떻게 증거해야 되는지 가르침을 받지도 모본을 보지도 못했다. 세 발의 온전한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둘만으로 감당하려면 고통스러운 일이다.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복음을 나누는 일에 하나도 동참하지 않는 구성원들은 고통을 경험하게 되며. 결국은 교회를 떠나는 것이 다반사다. 그들의 경험은 받기만 하고 나누어 주지 않는 사해의 물과 같아서 변질된 것이 되고 만다.
안교활동반은 목사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저들의 교우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생애 속에 근본적인 삼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특히 교회의 외방활동을 위해 연합된 기본 조직의 일원으로 참여함으로 주님과 함께 희열이 넘치는 경험올 갖도록 돕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성령의 지도 하에서의 연합된 행동의 결과들은 무한한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한 능력의 지도 하에서 하나로 행동하며 하나로 앞으로 움직인다면 저들은 세계를 움직이게 될 것이다”(교회중언 9권 221) “교회의 교인 대부분이 …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꾼들”(리뷰 앤드 헤랄드1896년 7월 21일자,이 지 화잇)이 되기까지는 늦은 비가 임할 수 없음으로, 우리는 활동함에 있어서 총체적 참여를 촉구해야 한다.
선교활동을 혼자 도맡아 하거나, 선교활동을 위해 몇몇 특수 요원들만을 훈련시키고자 하는 지도자들은, 지금 제시하는 개념들이 지나친 발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무리한 일이다. 그러나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은 주님의 오심이 임박한 시점이다. 만일 우리가 그분에게 허락해 드리기만 한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 들을 우리를 통해 이루실 수 있고, 또 이루실 수 있는 우리의 능력 있으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있어 담대함이 요구되는 때이다. 우리는 아래의 성경절들을 세심히 연구하고, 적용시키며, 약속의 성취를 주장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요 15:16;역대하 25:9 ; 역대상 12:32 ; 출 14:15;벧후 1:12;수 1:1~8;민 13:30;수 14:9;렘 32:17;미 28:19,20;막 11:24;엡 3:20,5:18) 기드온 이야기 속에서 처음에 우리는 신실한 300명 군사들만을 보게 되지만, 엄청난 승리를 위하여 그 나머지 온 군대가 곧 합세하여 연합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바야흐로 엄청난 승리의 경계에 서 있는 바, "진리는 곧 영광스러운 승리를 취할 것이며, 지금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기를 선택한 모든 자들은 진리와 함께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교회중언 9권 135).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그 승리에 동참하기를 갈망하신다. 그리고 모두를 참여시키고자 하는 이 무리한 변혁적 시도에 대한 하나님의 인준하심이 우리 모두를 크게 고무시킨다.
■하나님께서 변혁을 원하심
〈부분적인 참여에서 총체적 참여로의 변화를 일컫는 저자의 개념임〉
주께서는 사업의 발전을 위한 변화를 끊임없이 소개하셨다. “그대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1969년에 탄자니아는 목사 중심적 사업에서 평신도 중심적으로의 변화가 절실히 요청되었다. 정부에 의하여 일반적 공중집회는 제한을 받게 되었고, 주님의 개입하심이 필요되었다. 그분께서는 교인들이 일하고 있는 한 “그 사업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복음사역자 352)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리고 필수적인 늦은 비는, “교회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리뷰 앤드 헤랄드 1896년 7월 21일자, 이 지 화잇)가 되기까지는 임하시지 않을 것임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음과 같은 그분의 지시에 관심을 모을 때 눈에 뜨이는 증거들을 허락하셨다. 우리는 평신도들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성경연구 강목을 마련하고 평신도인 마라모코 형제를 파송하였다. 그와 두 동료가 한 집을 방문하여 문간에 섰을 때, 한 남자가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아내를 데리고 나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람들이 조금 전에 내가 꿈속에서 본 그 사람들이며, 이 책들도 바로 그 책들이오.” 그 소문은 온 나라로 번졌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평신도들이 변화를 수용하게 되었고, 엄청난 결과들이 뒤를 이었으며, 우리는 이로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훈련은 전 교우를 대상으로 하지는 못하였고, 일부 요원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수년 후에 사라와크도 목사 중심에서 평신도를 주축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변화가 요청되었다. 쿠침으로부터 17마일 떨어진 멘자우 근교의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12월의 훈련을 위하여 우리는 10월에 먼저 목사들을 훈련시켰다. 11월 27일 벤자우 교회의 장로인 타요가 성경을 공부한 후 기도하고 있을 때, 한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가까이 이르러, “타요. 예수께서 매우 속히 오신다. 나가서 이 사실을 이웃에게 전하라”고 말했다. 다음 날인 11월 28일 밤에 마을 사람들이 트럼펫 연주와 찬양을 듣기 위해 교회로 몰려들었다. "나팔을 들어서 크게 불라. 주 예수 다시 오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집회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우리가 사라와크에서 그분의 지시대로 따랐을 때,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나타나는 그의 증거들을 주셨으며, 우리는 그로 인하여 그분을 찬양하였다. 이 곳에서도 훈련은 일부 평신도 지도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온타리오 합회에서 저자가 평신도 지도자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1년 8개월만에 275명의 침례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미쉬간에서 동일한 시도를 했을 때는 결과가 미미했다. 그러나 미쉬간에서 총체적 참여를 시도했을 때는 획기적인 결과들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성공들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역자 주-여기서의 평신도 지도자 교육이란 한국에서의 구역장 및 임원 교육과 같은 것을 의미함) 이러한 변화에 대한 당신의 인준하심을 보여주셨다. 우리는 그대들의 안교에서도 활동반들을 조직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몇몇 성공 사례들을 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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