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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과-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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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쉬운성경 작성일10-05-23 10:02 조회3,1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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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2기 9과 교과 연구>

절제 (Temperance)

■ 교과의 개요 ■■■■■■■
이번 주 교과는 "절제"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말 사전에 따르면 [알맞게 조절함, 방종하지 않도록 자기의 욕망을 제어함]이라는 뜻입니다. 고전 9:25에서 절제로 번역된 '엥크라튜오마이'도 'to exercise self-control'라는 의미로서 '자기를 지배하여 삼가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는 이 절제라는 단어가 흔히 '자기의 욕망을 제어하여 나쁜 것을 삼가는 것 (금욕)' 혹은 '좋은 것이라도 너무 과하지 않게 조절하는 것 (자제와 적절한 균형)'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성경에 따르자면 절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열매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가 성령의 열매라는 것에는 아무런 이의도 없이 동의를 하지만, '절제'가 성령의 열매라는 대목에서는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지는 않는지요?
우리는 지금 "사랑, 희락, 화평...."에서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느낌]을 자연스럽게 연상하지만, 성령의 9가지 열매중 "절제"에서만은 그런 긍정적인 느낌보다는 ["극기"나 "엄격" 등과 같은 다소 긍정적이지 못한 느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똑 같은 성령의 열매인데 유독 '절제'만은 '사랑, 희락, 화평,,,,,' 등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이 우리를 이처럼 뜻밖의 난감함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성령의 열매로서의 절제에 대하여 [단지 '나쁜 것을 삼가'하고 '좋은 것이라도 너무 과하지 않게 조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열매를 주신 것일까?] 하는 다소 혼란스런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다시 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열매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절제'가 [정말로 '금욕' 혹은 '자제와 균형'을 의미하는 그런 수준만의 절제]일까요?
이번 주에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 교과의 흐름 ■■■■■■■

1. '나쁜 것을 삼가다'는 의미로서의 절제 (금욕).
▪ 일 (성경에 나타난 첫 번째 음주)
▪ 월 (오늘날의 술)
▪ 화 (하지만 술이 심장 건장에 좋지 않습니까?)

2. '좋은 것이라도 너무 과하지 않게 조절하다'는 의미로서의 절제 (자제와 적절한 균형).
▪ 수 (모든 것에 절제함)

3. 절제가 필요한 이유
▪ 목 (값을 주고 삼)


■ 교과의 해설 ■■■■■■■

1. 절제의 의미

(1) 절제는 원어의 의미 그대로 '자기를 지배하여 삼가는 것 (to exercise self-control)'입니다. '자기를 지배하여 [하고 싶은 마음]을 삼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술 먹고 싶은 마음을 삼가고, 맛있는 음식을 과식하고 싶은 마음을 삼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금욕'이요 '자제와 적절한 균형'의 의미로서의 절제입니다.

(2) 이러한 의미의 절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도 익숙하게 사용하는 것이고, 성경에 사용된 것은 고전 7:5절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전 9:27의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이 이러한 절제의 의미를 잘 이야기해 줍니다. 이 절제는 성도들의 생활의 표면에서 드러나는 "믿음의 선한 싸움"(딤후 4:7)으로서 이 과정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는 성도들의 "결단과 선택"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화잇선지자가 이야기하는 절제도 대부분 이런 의미의 절제입니다.

[고전7: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3) 이 절제는 우리의 신체의 건강을 위하여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 필요한 신앙 덕목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값으로 사신 것]이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놓치기 쉬운 절제의 또 다른 의미.

(1)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자기를 지배하여 삼가는 것'이라는 원어적 의미를 가진 '절제'는 말그대로 '자기를 지배하여, [하고 싶은 마음]을 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지배하여 삼가는 것'이라는 원어적 의미로 볼 때, 절제란 위의 경우와 꼭 마찬가지로 '자기를 지배하여, [하기 싫은 마음]을 삼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나에게 아무런 이유없이 나쁜 일을 하는 원수를 '사랑하기 싫은 마음'을 삼가는 것입니다. 나를 까닭없이 미워하는 원수를 '도와주기 싫은 마음'을 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기 싫은 그것 (원수를 사랑하고 도와줌)]을 [하는 것]이지요....

(2) 이런 의미의 절제는 레 19:18과 출 23:5에 잘 나와 있습니다.

[레 19:18, 쉬운성경] 사람들이 너에게 나쁜 일을 했다 해도, 복수를 하거나 앙심을 품지 말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나는 여호와이다.

[출 23:5]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 두지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

(3) 이 말씀은 사실은 예수님께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 5:43-47). 예수님은 지금 [원수를 사랑하고 싶지 않은 마음 대신에 오히려 원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나를 핍박하는 자를 미워하고 저주하고 싶은 마음 대신에 오히려 그를 위하여 축복하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마 5:43-47]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3. 절제가 왜 성령의 열매인가?

(1) 이러한 측면의 절제는 우리가 자칫 놓치기 쉬운 부분인데, 사실은 이런 의미의 절제야말로 참으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의미의 절제는 [성령께서 나를 지배하셔야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 다시 설명하자면, 앞에서 이야기한 '자기를 지배하여, 하고 싶은 마음을 삼가는 것'이라는 의미의 절제, 즉 '금욕'과 '자제와 적절한 균형'의 의미로서의 절제는 [내가 나를 지배]하더라도 가능한 절제입니다. 굳이 성령께서 나를 지배하지 않으셔도, [나의 의지와 나의 이성]이 나를 지배하게 되면 가능한 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마 5:46-47의 '세리'나 '이방인'도 도를 닦으면 혹은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삼갈 뿐만 아니라 나아가 원수를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사랑'하는 의미의 절제는 우리가 아무리 도를 닦는다고 해도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런 의미의 절제는 고도의 극기로 자기를 이겨낸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결코 아닙니다. 잘해야 그저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는 척' 할 수 있을 뿐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모두는 경험적으로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절제는 [오직 성령께서 전적으로 나를 지배]하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 절제는 [성령께 온전히 자신을 내어드려 성령께서 온전히 그를 지배하는 사람]에게서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절제는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3) 이런 뜻에서 볼 때 절제는 "누가 나를 지배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실 절제라는 말의 원어에도 이러한 "지배"의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갈 5:23에서 절제로 번역된 명사 "엥크라테이아"와 고전 9:25에서 절제로 번역된 동사 "엥크라튜오마이"는 [엥크라테라스]에서 유래하였는데, 이는 [강한, 지배하는, 억누르는, 자제하는]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가지는 어감은 [확고성]과 [자제]인데, '자신이나 어떤 것에 대한 [지배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지배권]의 측면에서 절제를 다시 정의하자면, 절제란 '[자기를 지배]하여 하고 싶은 마음 혹은 하기 싫은 마음을 삼가는 것'입니다.

(4)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나를 지배하는 것이 과연 [누구]냐?"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삼가하고 대신에 오히려 원수를 즐거운 마음으로 사랑'하는 뜻의 절제를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시는데, 우리의 삶 속에 그러한 절제의 열매가 맺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께서 나를 지배]하셔야만 합니다. 이러한 절제는 "나의 이성과 나의 의지"가 완벽하게 나를 지배 (self-control)한다고 하여 열릴 수 있는 열매가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지배]하는 주체가 [나 자신]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되실 때 비로소 열리는 열매입니다. 나 자신을 온전히 성령께 내어드려 성령께서 온전히 나를 지배하셔야만 비로소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제는 "누가 나를 지배하느냐?"의 문제이며, 그래서 참으로 절제가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5) 그런데, 위에서 첫 번째로 살펴본 절제 (즉, '금욕'과 '적절한 균형'의 의미로서의 절제)는 성령 대신에 내가 나를 지배하더라도 가능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이 의미의 절제도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절제는 성도들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고전 9:27)하게 하는 "결단과 선택"의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로 이끄는 성도들의 "결단과 선택"에 성령께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성도들이 바른 결단과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성도들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온전하게 내어드리는 성도에게는 절제가 "극기"의 열매가 아니요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6) 화잇선지자는 "누가 나를 지배하는냐?"라는 관점에서 [성령 하나님의 지배와 절제]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문서전도봉사 286-287] 의의 태양으로부터 오는 밝은 빛을 어두운 마음 속에 비치게 하시며, 사람들로 영원한 진리를 깨닫고 마음을 기쁘게 하며, 또 그의 마음에 위대한 의의 표준을 보여 죄를 깨닫게 하여,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여 내실 수 있는 유일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생기게 하시며, 또 잠깐 있다가 없어지고 말 이 세상의 사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돌이켜 영원한 유업을 사모하도록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은 다 성령께서 하시는 사업이다. 성령은 사람을 재창조하며 순화하며 성결케 하여, 하늘의 왕자가 되고 그 가족 중의 하나가 되게 하신다.
스스로 온전히 자기를 비워 모든 거짓 우상을 마음 가운데서 제하여 버리면,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들어와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이런 사람은 부패한 데서 마음을 깨끗게 하는 믿음을 가진 자이며, 그는 성령에 순응하며 성령에 관한 것을 항상 생각함으로 자기 자신을 조금도 믿지 않는다. 대신, 그리스도께서 만유이시며 만유 안에 계심을 믿는다. 그는 계속하여 나타나는 진리를 겸손히 받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0, 12)고 말한다. 이와 같이, 은밀한 진리를 나타내 보이시는 성령은 또한 그에게서 의의 열매를 맺도록 역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어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4:14)이 되신다. 또 이러한 사람은 참 포도나무의 가지로서 많은 포도송이를 맺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그 맺은 열매는 어떤 것인가? 성령의 열매는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며, 불만과 슬픔이 아니라 “희락”이며, 분냄과 근심과 스스로 지어내는 시험이 아니라 “화평”이다 그것은 또,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 23)이다.

(7) 이러한 의미로서의 절제는 성령의 열매중 가장 마지막에 언급이 되었지만 사실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 보다 절대로 가볍지 않으며 오히려 더 중요한 열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이 절제를 이야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 5:43-48). 또한, 원수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영생의 비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눅 10: 25-28)

[마 5:43-48]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눅 10:25-28]
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8)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고전 9:25에서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할 때의 그 절제도 사실은 이런 의미의 절제를 포함하여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고전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9)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하게 내어드리면, 우리는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삼가고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나를 지배하고 있었더라면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그 원수를 성령께서 나를 지배하시자 이제 정말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삼가하고 꾹꾹 참으심으로 우리를 마지못해 사랑하시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요 3:16). 성령께서 우리를 전적으로 지배하시면, "하늘 아버지께서 원수된 우리를 오히려 진심으로 사랑"하시듯이 우리도 그렇게 우리의 원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참으로 축복기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다시 오심이 심히 가까운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절제입니다.

3. 결론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우주의 모든 것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실은 [절제]를 명령하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의 절제란 단순히 [하고 싶은 마음을 삼가하여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지배함으로써 '하기 싫은 마음'을 삼가하여 '하기 싫은 그것'을 참으로 '즐거움으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절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성령께 온전하게 내어드릴 때만 그래서 성령께서 온전하게 나를 지배하셔야만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주의 다시 오심이 심히 가까운 오늘,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절제입니다. 주께서 다시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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