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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 휴식과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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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5-11 10:17 조회4,2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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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안식일) 일몰: 오후 7시 34분

제 7 과 휴식(休息)과 회복(回復)

▣ 휴식(休息)
휴식이란?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쉼을 휴식(休息)이라 하며,
1). 정서적인 이완상태, 불안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 육체적인 고요함을 느낌과,
2). 인간을 상쾌하고, 젊음을 느끼게 하며, 일일생활을 재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신적, 육체적인 활동이 감소된 상태를 회복시키는 것을 말하며,
3). 육체적 비활동(非活動)이 항상 휴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4). 에너지를 회복(恢復)하고, 신체적 자극의 근원을 제거하고,
고통의 근원을 관리하며 적절한 환경과 체위를 유지시켜 주며,
5). 정서적인 걱정근심거리에서 벗어남을 말한다.
6). 휴식을 빼앗겼을 때 불안하고, 우울하며, 피곤을 느끼고,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어진다.

▣ 왜 쉬어야 하나? 그 의학적(醫學的)이유
우리들의 몸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몸이 건강하려면 세포가 정상적인 기능을 해야 한다.
세포들이 어떤 이유로 변질 되어버려서 원래 세포 속에 입력되어 있는 프로그램대로의 정상적인 성질과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성질과 기능을 발휘하는 상태가 병든 상태이다. 그런데 이 세포들의 성질과 기능을 결정해주는 프로그램이 세포속의 유전자들이다. 이 유전자들은 4 가지 종류의 염기라고 부르는 화학물질들의 서열, 즉 염기서열에 따라 뜻이 다르게 나타나는 과학자들이 앍을 수 있는 글자라는 사실이 확실히 밝혀졌다. 글자는 창조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전자가 글자라는 것을 알면 모든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들은 창조된 존재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리고 글자는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창조되어 기록 된 것이기 때문에, 염기서열로 이루어진 유전자 글자는 창조주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우리의 세포들을 어떻게 작동시키셔서 어떠한 기능을 발휘하게 하셔서 어떻게 건강하게 살게 하시겠다는 창조주의 생명의 법칙, 즉 하나님의 생명체를 향한 생명의 약속을 기록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하나님께서는 도덕적인 법칙은 물론이요 육체의 법칙도 세우신 분이시다. 그분의 법칙은 사람에게 주신 모든 신경과 모든 근육과 모든 기관(器管)에 그분의 손으로 친히 기록되었다.”(실물교훈, 359)

◉ <휴양(休養)은 가장 진실 된 의미에서 재창조(再創造)이다.>
그것은 정신과 육체에 힘을 주고 튼튼하게 하며 새롭게 한다. 그리하여 신자들로 새로운 활력을 가지고 그들의 일터로 되돌아가도록 준비시킨다. 최선의 생애를 살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유대를 강화시켜 주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그런 형태의 휴양과 오락만을 추구해야 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유익한 휴양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될 다음의 원칙을 제시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5, 16).

◉ <선한 청지기 직분은 희생적인 생활을 요구한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영양 부족 상태에 빠져 있는 반면에,
물질주의(物質主義)는 그리스도인들 앞에 값비싼 의복(衣服)과 자동차(自動車)와 보석(寶石)에서부터 호화(豪華)스러운 집에 이르기까지 유혹(誘惑)의 올무를 놓는다.
생활방식(生活方式)과 외모(外貌)의 단순성(單純性)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인간에 대해서보다는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20세기의 사회에서 이방인들의 탐욕과 물질주의와 화려함과는 현저한 대조를 이루게 한다.
앞서 열거한 이 같은 성경의 교훈과 원칙들에 비추어,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보석으로 단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것이 반지, 귀걸이, 목걸이, 팔찌, 화려한 넥타이 핀, 커플링 및 장식 핀과 그리고 그 주요 기능이 과시하는 데 있는 어떤 유형의 보석이든지 그런 것들은 불필요하며 성경이 요구하는 단장(丹粧)의 단순성과도 조화되지 않는다고 이해한다.
성경은 화려(華麗)한 화장(化粧)도 이교주의(異敎主義) 및 배교(背敎)와 관련짓는다(왕하 9:30; 렘 4:30).

그러므로 우리는 화장(化粧)에 관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상태(自然狀態)의 건강한 모습을 지녀야 한다고 믿는다. 만일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고 옷 입는 방법에 있어서 구주(救主)를 높일 것 같으면, 우리는 사람들을 그분께로 이끄는 자석(磁石)처럼 될 것이다.” (교리, 264-268)

◉ 하나님은 우리 신체가 노동과 휴식의 균형 속에서 잘 기능하도록 설계하셨다.
우리가 건강한 균형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체의 요구에 협조할 필요가 있다.

일요일(5월 9일)
<시간이 없다 >

▣ 얼마 전에 서울 삼육병원(구(舊):위생병원)에 문병(問病)차 방문을 하였는바, 그 병원에 누워있을 사람이 못되는데 그곳 병실(病室)의 병상(病床)에 누워있는 성도님을 보았다. 그분은 평상시에는 너무나 바쁜 삶을 사시는 분으로 아플 시간이 없을 정도로 늘 바쁜 분이였다. 그런데 병원의 환자유니폼을 입고 링거 줄을 달고 누워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바빠서 교회의 출석하는 것조차 쉽지 않는 분인데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일들로 바쁘게 분주하게 살고들 있다.
젊은 사람들도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심지어 양로원이나 경로당에 출석하시는 노인 분들도 갖가지 노인대학이다 뭐다 해서 배우러 다니기에 한가로운 시간이 없고, 유치원이상의 어린이들도 몇 개의 학원을 다녀야 하며 한가로운 시간이 없고 그 누구도 한가로운 시간이 없는 세태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사단의 전략(戰略) 전술(戰術)은 사람들을 바쁘게 무척 바쁘게 만드는 것이다.
부부지간에 서로 바쁘게 만들고, 부모와 자식지간에도 바빠서 대화를 못하게 만들고, 가족지간에도 서로서로 바빠서 대화를 못 나누게 하고, 성경말씀을 못 보게 하고 기도할 시간이 없어지게 하고,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바쁘게 만든다. 즉 세속적인 볼거리 들을 거리 즐길 거리로 인하여 천연계나, 영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함으로 하나님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사단의 올무에 걸려들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한 주간에 있었던 바쁜 경험들을 생각해 봅시다. 시간이 없이 바빴던 삶이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시간이 없으십니까? 바쁘십니까? 하나님과 만날 시간이 없으십니까?
기도할시간보다 TV나 컴퓨터 앞에 눈을 고정시킨 시간이 오늘 하루에 몇 시간이나 되십니까?

◈ 우리가 잘 아는 격언(格言)으로
돈(재물(財物))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健康)(영적(靈的), 육체적(肉體的))을 잃으면 모두 잃는 것이다.

▣ <사람마다 자기 의무의 자리가 있음>
“우리가 착수하는 일과 관계가 있는 문제들을 조심스럽게 헤아려 보라. 이 일이 영혼들에게 축복이 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단지 우리를 바쁘게만 하기 위해서 일을 주신 것은 아니다.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일을 주신 것이다. 많은 분들이 나무와 돌과 그루터기를 바쁘게 주워 모으고 있지만 이것은 모두 다 불탈 것이며, 모든 일이 불로 시험을 받아야 할 큰 날을 위해서 영혼들을 준비시키는데 쓰일 뿐이고 그 일들 자체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관심을 사로잡았던 일들이 그 모든 용도와 함께 사라져 버릴 것이고, 그들 자신마저도 겨우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구원을 얻은 것같이 될 것이다.” (화잇주석, 고전 3:9-15)

◈ “너무나 많은 가정에서 기도가 등한시된다. 부모들은 조석으로 예배드릴 시간이 없다고 느낀다. 그들은 그분의 풍성한 자비, 곧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도록 하는 복된 햇빛과 소나기 그리고 거룩한 천사들의 보호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적은 시간도 할애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위하여, 그리고 가정에 예수께서 임재하시도록 기도할 시간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이나 하늘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없이 소나 말이 일하러 나가듯이 일터로 나아간다. 그들은 소망 없이 멸망을 당하도록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도 귀한 영혼들이다. 곧 그들을 속량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께서 당신의 생명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의 크신 선하심에 대하여 멸망할 짐승만큼도 감사할 줄을 모른다.”(부조, 143)

“에덴의 거주자들에게 동산을 관리하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는 일이 위탁되었다.
그들의 일은 피곤하지 않고 유쾌하며 활력을 주는 일이었다.”(부조와 선지자, 50)

예수님과 제자들은 시간을 내서 휴식을 취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에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셨다. 우리도 매일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수면시간을 뺏는 것은 결국 육체적 정서적 건강의 손실을 낳는다. 아무리 젊고 건강하고, 패기가 넘친다 할지라도 우리의 인체는 휴식이 필요하며, 무절제한 생활 습관은 결국 생명을 앗아간다.

◉ <예수님과 휴식>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완전히 헌신하는 생애를 사시는 가운데 구주께서는 끊임없는 활동과 인간의 필요에 부딪히는 일을 떠나서 휴식을 찾고 하나님 아버지와 완전한 교제를 나누어야 할 필요를 깨달으셨다. 당신을 따르는 군중들이 떠나가자 그분께서는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곳에서 그분께서는 오직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고난당하고, 죄 많고, 궁핍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심으로 당신의 심령을 쏟아놓으셨다.” (가정과 건강, 226)

◈ “세상이 그들에게 매력이 있고, 세상의 보화가 그들에게 가치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마음을 빼앗기기에 충분한 것들을 발견하므로 하늘을 위하여 준비할 시간이 없다. 사단은 그들을 어려움 가운데 점점 더 깊이 빠뜨릴 준비를 언제나 갖추고 있다. 한 가지의 어려움과 고통이 마음에서 떠나가면, 그는 즉시 그들의 마음속에서 세상에 속한 더 많은 것들을 바라는 거룩하지 못한 욕망이 일어나게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너무 늦게, 사실상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실체가 없는 것들을 붙잡았으나 영생을 상실하였다. 그와 같은 자들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1증언, 132)

◉ 일과 성취에는 절제가 필요하며, 심지어 영적인 일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월요일(5월 10일)
<휴식(休息)의 필요>

▣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돈을 벌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삶으로 휴식이 없이 뛰고 달리며 산다면 종국에는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우리말의 고전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참으로 잘못된 말이다.
정승같이 돈을 벌어서 정승같이 돈을 써야 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버는 목적 분명하게 서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웃에게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을 기억할 때 엿새 동안은 열심히 일을 할 것이며 이렛날은 그분에게 감사와 찬송의 예배와 쉼을 영위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출애굽기 16장21-30절의) 만나를 통한 말씀을 살펴보자.
(22절) “제육일 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26절) “육일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제칠 일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27절) “제칠 일에 백성중 더러가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 우리는 모두 휴식의 필요를 느끼고 있다. 음식도 필요하고, 물도 필요하지만, 휴식도 있어야 한다.
인체는 종종 휴식할 시간이라고 스스로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분주한 삶에 쫓기고,
돈을 벌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몸이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몸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면 건강했을 텐데,
병으로 쓰러진 뒤에야 병상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것도 가능한 최고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사용한 부분을 회복시키기 위해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회복”이 란 단어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 말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을 의미한다.
“restoration”(회복)의 형용사 형태 “restorative”가 의미하는 바는 강장제, 또는 원기를 돋궈 주는 것이다.

◉ “자연의 훌륭한 회복제인 수면(睡眠)은 피곤한 몸에 활력을 주어서,
이튿날의 책임을 감당할 준비를 갖추어 준다.”(새 자녀 지도법, 342)

◉ “숨을 돌리다”라는 동사는 구약성경에 몇 번 등장하지 않지만,
때로 “영혼”이라고 번역되는 그 명사형은 “생명”내지 “숨을 쉬는 행위”의 의미로 흔히 사용된다.(창 2:7).
그 말이 동사형태가 되면, 휴식을 통해 더 많은 생명과 더 많은 숨을 쉰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휴식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기초적이면서 근본적이다.
그래서 휴식의 필요를 부인하는 것은 기본적인 인간의 속성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 1. 세포의 성능이 변질되어 질병을 앓게 된 상태는 바로 세포 속의 유전자의 글자인 염기서열이 변질 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질병이 치유 된다는 것은 세포 속의 변질 된 유전자의 글자들이 본래의 정상적인 염기서열로 다시 회복 된다는 뜻이다.

2. 그런데 스트레스나 과로, 과식 등에 의하여 세포 안에서 과잉생산 되는 활성산소나 여러 종류의 발암물질들에 의하여 손상 된 유전자들이 정상상태로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서는 세포가 휴식상태에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 손상된 유전자들이 회복 되어야만 정상적인 세포분열이 가능해지고, 이 세포분열이 일어나야만 세포의 수가 증가하여 생명체의 성장과 번식(생육번성)이 가능하며, 그 결과 질병으로 인하여 죽거나 파괴되어버린 세포들이 다시 채워져서 질병의 완전한 치유가 가능합니다. 결론적으로 세포들의 주기적인 휴식은 생육번성과 치유를 시작하고 이루게 하여 생명현상을 유지시키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3. 이렇게 주기적인 휴식이 생명체에게 필수적인 것이라면 창조주께서는 세포를 휴식시키는 성능을 발휘하는 휴식주기 프로그램인 유전자들을 만드셔서 세포 속에 입력해 두셔야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과연 유전자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그러한 휴식주기 유전자들을 발견했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유전자가 P53 유전자이다. 이 유전자는 흔히 항암인자로 불리며 종양억제 단백질이라는 특수 단백질을 생산하여 각 세포들이 암세포로 변질 되지 않도록 억제시켜 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 암을 예방하는 일을 한다. 만약 이 유전자가 손상되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그 세포는 암세포가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이 P53 유전자는 창조주께서 세포들을 주기적으로 휴식시키시어 암세포로 변질되지 않도록 약속하시는 뜻을 염기서열이라는 글자로 우리들의 세포에 친히 기록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그런데 이 P53 유전자가 생산해내는 종양억제 단백질의 기능을 조사해 보니 세포들을 휴식하게 하고 세포가 휴식하는 동안 손상된 유전자들을 회복시키는 물질을 생산하는 유전자들을 작동시키는 기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필자는 이 물질을 개인적으로는 “휴식물질”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5. 이 휴식물질이 P53 유전자에 기록하신 “세포를 휴식시켜주시겠다”는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복으로 유전자를 작동시키셔서 그 휴식물질을 생산하시면 세포는 휴지기에 들어가서 휴식하게 되고, 세포가 휴식하는 동안 손상 된 유전자들을 회복시키는 또 다른 3가지 종류의, 손상된 유전자들의 염기서열을 회복시키는 ‘회복물질’들을 생산해내는 유전자들을 하나님께서 입력해두셨는데 하나님께서 이 세 가지 유전자들을 당신의 생명력으로 작동시키시면 이 정확한 순서를 따라 시간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 회복물질들이 생산되어, 손상되어 변질 직전에 있는 유전자들을 완전히 복구시켜 암세포로 변하지 않도록 미리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예비해 두신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과연 암 세포들을 조사해보니 이 중요한 P53 유전자들이 심각하게 손상 되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아예 완전히 그 유전자가 없어져버린 세포들이었으며 그 때문에 휴식물질이 생산되지 못하여 결국 유전자 회복물질이 생산될 수 없어서 결과적으로 그 손상된 유전자들이 완전히 비정상적으로 변질되어버려서 원래 정상세포이었던 건강한 세포들이 암세포로 변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역시 이 회복물질을 생산해내는 유전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너희들 내가 암에 걸리지 않게 해 줄게” 또는 “너희가 암에 걸려도 낫게 해 줄게”라는 사랑의 약속이 염기서열로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몫은 이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을 믿어드리는 것이며 우리가 이 유전자에 기록된 창조주의 약속들을 믿을 때에 그분께서는 안식일에 주신 복으로 우리를 치유하시어 구속하시는 약속을 이행하시게 되시는 것이다.

6. 그리고 또 놀라운 창조주의 약속은 이 암세포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과 균형이 잘 잡힌 영양소들을 공급해주는 실험실 환경에서는 이 암세포와 이웃하여 함께 같은 시험관 속에 있는 정상세포들의 도움을 받아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 된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정상세포가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없는 건강에 나쁜 환경을 제공해 주는 나쁜 생활습관에 젖어 있는 환자의 몸으로부터 분리 되어 실험실의 이상적인 환경으로 옮겨져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마침내 P53 유전자들이 잘 작동하게 되어 충분한 양의 종양억제 단백질을 생산하여 바로 곁에 직접 접촉하고 있는 암세포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되니까 암세포도 마침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암세포가 휴식하는 동안에 암세포들 속의 비정상적으로 변질된 유전자들이 회복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암세포가 휴식할 때, 창조주께서는 암세포 속의 작동하지 못하고 있던 P53 유전자와 ‘유전자 회복물질’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마침내 약속대로 작동시키시어 암세포 속의 변질된 유전자들을 마침내 정상으로 회복시키시어 당신의 약속을 죄인들에게 이행하실 수 있게 된다는 놀라운 진리인 것입니다. 참으로 휴식은 치유를 위하여 생명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놀라운 세포의 회복과정과 세포분열의 과정에는 여러 복잡한 기능들을 가진 많은 유전자들이 동시에, 혹은 순간순간 순서를 지키어 시간에 맞추어 작동되어야 한다. 그러한 정교한 유전자들의 작동은 인간의 기술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초인간적인 창조주의 지혜와 막대한 생명에너지의 섬세한 작용이 우리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차원에서 작용되어야 합니다.

7. 인간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생명현상의 영역은 의식 차원에서만 가능하지만, 이 무의식의 영역은 초인간적인 영의 영역이다.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뇌의 작동에서 의식이 차지하는 부분은 고작 5% 밖에 되지 않지만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는 부분이 거의 전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95% 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교한 초인간적인 유전자 차원의 생명현상들은 거의 100% 에 가깝게 무의식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임을 알 수 있다. 만약 인간이 의식차원에서 악한 사망의 영의 역사로 하나님의 생명의 성령의 능력을 불신함에서 초래 되는 걱정, 분노, 증오, 공포심 등으로 압도 되어 무의식 영역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께 등을 돌려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없게 된다. 그 휴식이 없이는 하나님의 치유를 이루시려는 노력은 시작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인간이 의식 차원에서는 할 수 없는 더 많은 것, 더 중요한 것들을 95% 의 무의식의 차원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온전히 매끼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죄인이 자기의 일을 쉰다는 진정한 의미이다. 과연 피조물이 휴식하는 동안 재창조 (recreation) 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휴식과 건강>
“어떤 사람들은 과로 때문에 병에 걸린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휴식, 걱정에서의 해방, 식생활의 절제 등이 건강 회복에 필수적이다. 끊임없는 수고와 유폐된 상태에서 정신적으로 피로하고 신경과민이 된 사람들은 단순하게, 또한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시골을 찾아가서 천연계의 사물과 밀접히 교제함으로 큰 도움을 얻을 것이다. 들판과 숲속을 배회하면서 꽃들을 꺾고,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듣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그들의 회복에 더 큰 역할을 해 줄 것이다.”(가정과 건강, 156)

◉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인간생활의 영적(靈的)인 면과 육체적(肉體的)인 면에 다 관심을 가진다.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께서는 "모든 병(病)과 모든 약(弱)한 것을 고치"(마 4:23)셨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의 단위(單位)로 본다(7장).
"영적(靈的)인 것과 물질적(物質的)인 것 사이의 분리(分離)는 성경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육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영적인 건강에의 부르심도 포함한다.
감리교회 창설자의 어머니인 스잔나 웨슬리는 이 같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요약하였다.
"그대의 이성을 약화시키고 부드러운 양심을 손상시키며 하나님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육체를 지배하는 정신의 힘과 권위를 감소시킨다.
그러한 일은, 그것이 그 자체로서는 아무리 무구한 것일지라도 나쁜 것이다."
건강의 법칙들을 포함하고 있는 하나님의 율법은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로 인생을 최선껏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의 창조주에 의해 계획된 것이다.
원수 사단은 우리의 건강과 즐거움과 마음의 평화를 빼앗고 마침내 우리를 멸망시키고자 한다.
(요 10:10 참조).” (교리, 262)

◉ <완전한 건강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들>
“이러한 건강을 획득하는 일은 오히려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하나님께서 주신 몇몇 원칙들을 실천하는 데 달려 있다. 이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명백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감한다. 올바른 식사와 같은 원칙들은 우리의 생활양식에 매우 기본적인 적응과 습관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보다 어렵다. 이 같은 이유로, 우리는 오해되고 있거나 논쟁의 대상이 되거나 또는 거절되고 있는 그러한 원칙들에 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할 것이다.”(교리, 262)

▣ <휴식(休息)의 축복(祝福)>
적당한 휴식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지친 제자들에게 하셨던 동정적인 명령을 우리에게도 하신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마 6:31). 휴식기간은 하나님과의 교통을 위해 필요 되는 많은 고요함을 제공한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 하나님께서는 주일중 제칠일을 쉬는 날고 떼어놓으심으로써(출 20:10) 우리에게 휴식이 필 요됨을 강조하셨다. 휴식은 잠을 자거나 정규적인 일을 그만두는 것 이상이다. 그것에는 우리가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포함된다. 피로는 반드시 긴장이나 과로 때문에만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정신이 환경이나 질병, 또는 다양한 개인적인 문제들로 인해 지나치게 자극을 받음으로 피곤해질 수 있다.

◈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신을 위하여 일할 엿새를 주셨으나, 하루는 특별히 당신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떼어놓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셔야 하며, 그분의 권위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창조주께서 당신을 위하여 떼어놓으신 시간을 약간 도적질함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유익을 위한 휴식 기간으로서 안식일을 떼어 놓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연약하므로 수고와 걱정에서 벗어나서 하루를 쉴 필요가 있음을 보셨다. 엿새 동안의 걱정과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피로를 푸는 시간이 없다면, 인간의 건강과 생명은 위험 가운데 처하게 될 것이다.”(1보감, 175)

화요일(5월 11일)
<하나님의 임재(臨在) 안에서 쉼>

▣ 어린 아이가 엄마의 품안에 있을 때 단잠을 이룰 수 있으며, 철부지일 때 부모님께서 함께 집안에 있을 때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처럼, 전능(全能)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내 마음 안에 임재하심으로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눈과 마음에서 사라질 때 죄를 범하게 되며 두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경험을 봅시다. (마태복음 14:28-29에) 예수님이 베드로의 마음속에 게실 때 물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걸어갔으나,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마음에 두지 않고)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 지라(마 14:30-31)
하나님의 임재는 즉 예수님의 내 마음에 임재는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다는 실제의 예(例)입니다.
믿음에 있어서도 매사를 내가 결정하고 내가 저지른 일에서 불안이 오는 것이고, 괴롭고 힘든 것입니다. 이는 내가 결정하는 모든 일은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인도하심으로 매사를 임 할 때에는 그분이 책임을 져주시기 때문에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18)

◉ 예수께서 함께 하신 길에서 우리는 마음의 쉼을 얻고, 인생의 의무를 쉽게 감당하게 된다.
그분을 믿음으로 얻는 구원(救援)은 스스로 선(善)해지려는 투쟁(鬪爭)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 <참된 휴식>
“걱정과 시련이 어느 정도이든지 간에 그대의 사정을 주님 앞에 내어 놓으라. 그대의 마음에 참을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며 곤경과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자신이 약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그대는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더욱 강하여질 것이다. 그대의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그것을 짐 지시는 그리스도에게 맡김으로써 더욱 편안한 안식의 축복을 얻을 것이다.”(시대의 소망, 329)

◉ 구원의 확신과 개인의 경건생활은 우리에게 참된 영적 쉼을 준다.

◈ <완전한 순종(順從)안에 완전한 쉼이 있음>
“소에 멍에를 메우는 것은 짐을 끌 때 소를 도와서 부담을 덜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멍에도 그러하다.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 안에 흡수되고 또 남을 돕기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을 사용할 때에 생애의 짐이 가벼워짐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법도 안에서 행하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행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의 사랑 안에서 그 마음은 평안을 얻는다. 모세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소서 하고 기도하였을 때에 주께서는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善)한 길이 어디인지를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는 기별이 전하여졌다(출 33:13, 14; 렘 6:16). 다시 말씀하시기를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다면 네 평강(平康)이 강(江)과 같았겠고 네 의(義)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라고 하였다(사 48:18).”(화잇주석, 렘 6:16)

수요일(5월 12일)
<매일(每日)의 쉼>

▣ 무릎 꿇는 낙타
날이 저물면 낙타는 모래벌판에 무릎을 꿇는다.
종일 지고 다닌 무거운 짐을 내리게 하여 휴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영혼아 해가 지고 날이 저물 때 너도 무릎을 꿇으려무나.
그래야 네 주인께서 네 짐을 들어 내리시고 네게 휴식(休息)을 준다.
만약 그대가 짐을 진 채로 온 밤을 지새운다면 어떻게 태산 같은 내일을 새날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날이 새면 낙타는 다시 무릎을 꿇어 그 주인으로 하여금 짐을 지우게 한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사막 길을 힘차게 간다.
나의 영혼아 먼동이 트거든 너도 무릎을 꿇어 네 하나님께서 네게 일과를 주게 하라
그 분이 네게 너무 큰 짐을 결코 지우지 아니하실 줄을 확신하노라

▶ ,<낙타가 무릎을 꿇는 이유>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 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 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ㄲㅌ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 날이 시작 되면 또 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당신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편이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당신에게 짐을 얹어주십니다.
이때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짐을 받으십니까?
낙타와 같은 겸손한 모습입니까?
새에게 날개는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날수 있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짐이 되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늘나라를 향하게 만듭니다.

◉ 더 나은 수면을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한다면 다음과 같다.
* 매일 규칙적인 운동을 하라.
* 실내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하라.
* 잠자기 2~3 시간 전에 식사를 피하라.
* 잠자기 전에 긴장하고 흥분되는 일을 피하라.
* 술, 수면제, 카페인을 피하라.

◉ <휴식은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문제임>
“수면 시간과 노동 시간의 규칙에 관하여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휴식과 휴양과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절제의 원칙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넓은 범위까지 미치고 있다.” (재림신도의 가정, 494)

◉ 하나님은 우리가 일하고 쉴 수 있도록 자연과 몸속에 리듬을 두셨다.

목요일(5월 13일)
<주말(週末)의 휴식(休息)>

▣ <창조주만이 휴식의 날을 결정하실 수 있는 의학적, 영적 이유>
창조주께서는 세상에 죄가 들어와서 당신의 여러 가지 뜻들, 즉 생명을 주시어 생명현상을 유지시켜 주시겠다는 뜻, 질병들을 치유하시어 회복시키시겠다는 뜻, 세포들을 분열시켜 생육번성을 이루시겠다는 뜻 등등의 여러 가지 뜻들을 나타내시는 글자인 유전자를 변질시킬 것을 미리 아시었다. 유전자에 기록된 이러한 창조주의 뜻들은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하여 창조주의 뜻이 아닌 우리 자신들의 뜻대로 변질되어버린 유전자들을 본래의 뜻대로 회복시켜 치유시킬 수 있는 당신의 사랑에서 나오는 창조력, 곧 생명력인 ‘복’을 안식일에 가득히 부어 담아주시었다. 그리고 그 복으로 치유를 이루시기 위하여 그 날에 휴식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그래서 그 복을 주신 안식일에 우리가 우리의 일을 쉬고 복을 받아드리면 P53 유전자를 비롯한 필요한 모든 유전자들을 그 복으로 작동시키시어 세포를 실제로 휴식시키신다. 이렇게 세포들이 진정한 휴식을 가지게 되면 이 휴식 속에서 여러 가지 다른 회복이 이루어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복은 창조주만이 주실 수 있는 창조력이며 생명력이다. 이 창조력은 바로 사랑이다.
* 이 생명력인 복만이 유전자들을 작동시켜 생명현상이 나타나게 하실 수 있다.
* 복(생명력)만이 유전자를 작동시켜 치유를 가능하게 하는 재창조를 이루게 하실 수 있다.
* 이러한 재창조는 창조주만이 하실 수 있다.
* 유전자는 창조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글자이다.
* 그러므로 안식의 계명은 창조주만이 주실 수 있는 약속이다.

그야말로 유전자 글자인 염기서열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치유와 구원의 약속을 친히 기록하신 사랑의 창조주가 아니시면 주실 수 없는 약속으로서의 계명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손상되고 병든 당신의 사랑하시는 피조물들을 원래의 당신의 형상대로 회복시켜 재창조하시는 행위로서의 치유가 필요한 우리 죄인들에게는 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쉬라고 부탁하시는 것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필요 불가결한 창조주의 약속이신 것이며, 죄인들의 회복은 창조주에게도 너무나 당연하고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휴식의 계명은 사랑의 창조주로서는 당연한 일이며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귀한 생명의 약속인 것입니다. 과연 이 안식일 계명에만이 창조주의 계명, 즉 약속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넷째 계명에만 창조주의 인이 찍혀 있다는 예언의 신의 말씀이 정확히 옳습니다.

“열 계명 중에서 오직 넷째 계명만이 위대하신 율법 제정자, 하늘과 땅의 창조주의 인을 포함하고 있다. 이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그분의 이름을 입으며, 그에 따르는 모든 축복들이 그들의 소유가 될 것이다.”(6증언, 350)

인간이 휴식의 날을 결정할 수 없는 이유
복을 주지 못함, 유전자 글자를 창조한 창조주가 아님

▣ <휴식주기와 생체리듬>

창조에도, 땅(토지)에도 휴식 주기가 있는 것과 같이 모든 피조물들인 생명체들에게도 휴식주기가 있고 생체리듬이 있다. 인간이나 동물의 세포들이 유전자를 통하여 생산하는 중요한 호르몬이나 다른 물질들도 하나님께서 유전자에 입력해 두신 일정한 주기를 지키고 있다. 가장 보편적인 예를 들면 부신 피질에서 생산되는 코티손 호르몬 오전에 생산이 올라갔다가 오후에는 떨어지기 시작한다든가, 여성들의 매 28일 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생체리듬을 결정하는 주기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유전자에 입력하여두신 것이다. 여러 종류의 생체리듬들 중에 가장 중요한 주기가 휴식주기입니다.

▶ 휴식주기는 크게 나누어서 두 가지의 주기가 있다.
(첫째), 24시간 주기는 해가 지면서 세포들은 천천히 작동하면서 휴식상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해가 뜨면 세포들의 작동이 다시 활발해지도록 하는 주기다. 이 주기를 지키지 않고 낮에 잠자고 밤에 일하는 간호사들에게 유방암의 발생 율이 확실히 높다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밝혀졌는데 그 이유는 정해진 휴식주기를 지키지 않기 때문에 휴식하는 동안에 이루어져야 할 스트레스나 과로, 과식에 의하여 과잉생산 된 활성산소로 손상을 당한 유전자들의 회복이 원활하게 일어나지 않았고 그 결과 변질된 비정상적인 세포들이 정상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결국 암세포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면역체계도 휴식주기를 따라 활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면역체계의 중추가 되는 T 임파구들도 충분한 수면을 통하여 휴식을 취한 후인 새벽 1시경에 가장 활발하게 되며, 성장호르몬의 생산으로 세포분열이 가장 왕성하여져서 생육번성이 이루어지는 시간도 새벽 2시 경이라고 발표되었다.

(둘째), 제 7일 휴식주기 인데,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는 휴식하게 하는 주기이다. 실험동물들을 6일 동안 스트레스를 주어 유전자들을 손상시켜도 7일째 날에 휴식시키면 회복된다. 그러나 휴식주기를 지키지 않고 계속 12일 동안만 스트레스를 쉬지 않고 주게 되면 이 실험동물들은 위장출혈을 위시하여 식욕감퇴를 위시하여 마침내 기억력 감퇴까지로 연결됨을 발견했다. 과연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6일 동안 계속 일하며 과로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라도 매 7일째 날마다 휴식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져 있다.

▣ <인간이 휴식의 날을 변경할 수 없는 의학적(醫學的), 영적(靈的)이유>

복은 창조주만이 주실 수 있고 그 복만이 손상된 유전자를 본래대로 치유할 수 있는 재창조를 이룰 수 있다. 휴식 속에서만 유전자의 치유가 이루어진다는 과학적인 진리는 과학자들도 최근에 와서야 마침내 발견해내었다. 오직 전지전능하신 창조주만이 치유를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한 것을 창세전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주만이 특정한 날에 복을 주실 것을 결정하실 수 있고, 따라서 그 복 주신 날에 쉬라고 부탁하시며 치유를 약속하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죄인들 스스로가 어떤 이유로든지 이 날을 다른 날로 대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날을 대체한다는 것은 창조주께서 죄인을 치유하시고 거룩하게 하심을 죄인들이 스스로 거부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인 것이다.
인간이 어느 날에 복을 줄 수 없는 거처럼 인간이 이 하나님이 복 주신 날을 다른 날로 변경할 수도 없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 <진리(眞理)를 알아야 휴식(休息)이 있을 수 있다. 이치를 알면 안심이 된다.>

놀랍게도 창세기와 모세 오경에서는 복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는 하나님의 창조력(생명력)이며 피조물에게 주시는 선물로 나타나있다. [창1:22] “하나님이 이들(새와 물고기)에게 복주시며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라.”이렇게 동물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에게 주신 이 복은 유전자에 작용하여 세포들의 생육과 번성을 촉진하는 하나님의 생명에너지로서 나타나 있다.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었던 기존 관념인 장사 잘되는 것, 출세하는 것 등의 복이 아니다. 또한 성경에 나타난 이 복은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주시는 어떤 세속적이며 추상적인 ‘좋은 것’ 정도가 아닌, 실제적인 매순간 생명현상의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하나님의 에너지임이 성경에 분명히 밝혀져 있다.

성경에 나타나는 가장 첫 번째 복은 과연 누구에게 주어졌는지 아십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창세기 1장 21,22절에. 새와 물고기들에게 복 주시며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라.’ 즉, ‘세포분열 하라’는 말씀이다. 세포분열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창조주로부터 주어지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세포분열이 없이는 성장(생육)이 불가능하고 더구나 번식도 불가능 한 것입니다. 이러한 세포분열을 위해서는 왕성한 성장호르몬 생산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인 사랑(생명, 창조) 에너지로서의 복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은 물고기와 새들에게도 주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안식일에 쉬는 것은 종교적 교리로서의 계명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의 생명을 지켜주시기 위한 창조주 하나님만의 생명법칙이며 당신의 복으로 생명을 주시며 생육번성 시켜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창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 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은 약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이미 쥐 실험에서나 조산아 회복 실험에서 밝혀낸 대로 어미 쥐가 새끼 쥐들을 핥아주는 사랑이나 간호사들이 사랑으로 조산아들을 만져주는 사랑은 에너지로서 작용하여 결정적으로 성장호르몬 생산 유전자나 다른 유전자들도 활성화시켜 세포들의 작동을 왕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유전자들의 복제도 촉진시켜 세포분열도 활발하게 촉진시켜서 세포들이 생육번성 되게 하는 것임을 증명했다. 세포 속의 유전자들이 복제되고 분열해야 세포분열이 일어나는데 세포나 유전자들이 스스로는 할 수 없고, 오직 외부로부터 세포 내부로 들어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창조력인 복이 에너지로 유전자에 작용하여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단순한 핵산이라는 화학물질로 구성 된 유전자는 반드시 외부로부터 공급되는 에너지가 있어야만 가동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분명히 세포분열을 위한 유전자 활성화를 시키는 힘입니다. 따라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이 아닌 약속인데 그 약속의 뜻은 하나님이 “내가 나의 창조력으로 생명력을 주어 생육하고 번성시켜 주시겠다.”라는 강력한 명령형 약속인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각 세포들 안에 유전자 복제를 수행할 수 있는 유전자를 이미 예비해두시고 그 유전자들에 생명에너지(복)를 주셔서 실제로 세포를 분열시켜 번성하게 하여 성장도 하며 치유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 생육하고 번성이 촉진됨을 증거 하는 성경 말씀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창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창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아이를 낳지 못하던, 즉 생육 번성이 불가능했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하나님이 복 주시니 아들을 낳는 생육번성이 일어났습니다.
[창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창17:20]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 할지라 그가 열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창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창26:3]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창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아들도 낳고 더욱 더 번성케 되고 등등 계속해서 이 복의 목적과 결과는‘유전자 활성화에 의한 세포분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더 많은 성경 절들이 있지만 특히 신명기 7장을 보시면 더 다양한 생명체들의 생육번성의 결과를 볼 수 있어 생물학적인 복의 개념이 확실해집니다.

[신7:13-14]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로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라.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우승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이 말씀에서는, 동물들뿐만 아니라 식물의 유전자에게도 복이 세포분열을 왕성하게 일으키어 열매를 많이 맺도록 영향을 미치는 생명력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왜 쉬는 날이 안식일(安息日)(토요일) 이어야하는가?>

죄로 변질 되고 손상당한 유전자들을 창조주께서 원래의 형상대로 재창조하시어서 회복시키는 치유를 이루시어 죄인을 구속하시고 죄인을 거룩하게 하시는 창조력의 존재를 보여주시기 위하여 한 날을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시고 그 택하신 날에 당신의 창조력이며 구속의 능력이시며 치유의 능력이신 ‘복’을 주신 날이 안식일이다. 이 날은 다른 날과 다르게 구별하셔서 거룩하게 하신 날이며 당신의 복으로 채워주셨기 때문에 유전자들은 다른 날보다 훨씬 회복이 잘 될 것이다. 창조주께서 죄인을 치유하시어 이루시는 재창조의 행위가 바로 죄인을 거룩하게 하시는 행위이다. 이 유전자 회복을 이루는 치유는 휴식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그리고 진정한 휴식은 사랑(복)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다른 날보다 사랑의 복으로 채워주신 안식일에 쉬는 것이 더욱 더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효과적인 유전자 치유의 재창조를 체험하기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날임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여러 과학자들까지도 하나님의 순간순간의 생명력의 간섭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과학자들은 세포 속의 유전자들이 회복되고 세포분열이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기를, 각 개체의 생명체들의 유전자들에 입력된 일정한 메커니즘을 따라서 각 개체들이 독립적으로, 자의적으로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여 ‘저절로’ 혹은 ‘자동적’으로 환경에 반응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생명현상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순간순간의 의도적인 돌보심으로 일어난다는 생각은 비과학적인 사고이며 종교적인 허구라고 말하며, 과학과 종교 사이에 존재하는 사고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단의 세상에서는 일이 먼저이고 휴식은 일한 후에 가지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체리듬의 휴식주기는 휴식부터 시작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창조 된 후 가장 먼저 마지한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우선 휴식을 취하고 다른 피조물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고, 창세기 1 장의 하루의 시작도 휴식의 시간인 저녁이 먼저 오고 일하는 날의 해가 떠오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피조물들은 우선 먼저 하나님의 사랑의 창조력인 복을 받아서 휴식하는 동안 유전자들이 회복되고 난 후에 일하게 되어 있는 것이지만, 사단은 하나님 없이 인간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과 휴식은 전혀 필요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이러한 복과 휴식의 관계를 말살시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즉 생명을 주시는 자이신 창조주와 받아야만 살 수 있는 피조물의 절대적이며 생명적인 관계를 혼란시켜 마침내 이원론과 영혼불멸설을 주장하여 일원론의 창조를 혼란시켜 무의미하게 만들어서 바벨론을 형성한 것입니다.

휴식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많이 하는 것이다. - 왜냐하면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하는 것이 휴식이다. 휴식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인이 자기의 일을 쉰다는 진정한 의미이다. 인간이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휴식하고 있을 때에 과연 재창조(Recreation)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휴식 중에 95% 의 무의식이 가장 잘 작동한다. 진리를 알아야 휴식이 있을 수 있다. 이치를 알면 안심이 된다.
휴식의 뜻이 죄가 들어오면서 변질 되었다. 죄가 들어온 후에야 피곤이 있게 되었고 죄인의 휴식은 이 피곤 때문에 휴식하는 것이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이 휴식하신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휴식이 아니다.
그 때에는 죄가 없었기 때문에 피곤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휴식도 그저 피곤을 풀기위한 죄인 차원의 휴식이 아닌 재창조를 위한 휴식이다. 이 재창조의 회복을 완성한 후에 하나님은 인간을 일하게 하시는 것이다.
휴식과 일의 순서(싸이클)가 하늘과 세상 사이에서 완전히 정반대이다.

▣ <안식일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표징이다.>

‘복’이란 것이 이렇게 돈 주고 살 수도 없고 인위적으로 절대로 받을 수 없는, 하나님께만 있고, 창조주께서만 피조물에게 주실 수 있는 생명력이라면 이 복 주신 날, 안식일이 얼마나 우리들의 유전자들의 회복에 중요한 날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복이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들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정하신 일곱째 ‘날’에 주어졌다는 뜻도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이 날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며 값없이 주어지며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돌아오기 때문에, 거부하지만 않고 믿음으로 받아드린다면 받을 수 있는 날입니다. 이 복 주신 날을 받기 위하여 죄인들은 믿음이외는 어떠한 노력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시간, 이 날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피조물들에게 주실 수 있고, 창조주가 아니면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날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출31:13,17, 겔20:12, 20). 과연 이 안식일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표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표징의 날을 기억해달라고 부탁하십니다. 당신의 독생자 예수의 피를 기억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이 “기억하라”라는 부탁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잊지 마세요”와 같은 사랑이 담뿍 시린 애틋한 부탁인 것입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약속하시며 표징을 주시는 것이지, 표징을 받아드리면 사랑해주시겠다는 의미의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표징과 조건은 서로 엄청나게 상반되는 개념입니다. 표징에는 사랑이 들어 있지만 조건은 사랑과는 전혀 상관없이 법적인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신앙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서로의 사랑을 표징을 나누는 관계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조건을 제시하는 관계는 절대로 같은 관계일 수가 없습니다. 표징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나타내지만 조건은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를 나타냅니다. 표징은 약속이지 조건은 아닙니다.

여러분 이 중요한 하나님의 생명을 바치신 사랑의 약속을 받아드리십시다. 그 약속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믿느냐고요?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리하시면 그리스도께서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그 주신 믿음을 받으셔서 그 믿음으로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선입견을 버리시고 세상 적, 사회적 인간관계 보다 더 중요한 진리와의 관계를 추구하셔서 사람이 사람의 의견대로 변개시킨 계명이 아닌 하나님의 계명을 회복하고 그 안식을 주시며 재창조의 약속을 받으셔서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지 않도록 꼭 간직하여 지키십시오. 그래서 사람의 유전이며 조건을 제시하는 것으로서의 ‘사람의 계명’보다는 약속의 표징으로서의 ‘하나님의 계명’을 수호하고 간직하여 지키는 자’들이 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표징 약속이 영원한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은 영원하며 불변입니다. (마태복음 5장17-18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 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一點一劃)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말씀하시고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은혜로 구원 받은 것을 믿었다고 해서, 그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지 않고 오히려 더 굳게 우리들의 마음속에 확고히 세워 수호하며 간직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사랑을 주시기 위하여 인간과 동물들을 창조하시고‘복’이 가득한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왜, 인간과 동물에게 안식일을 주시고 특별히 기억하여 쉬라고 하셨겠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복’은 사랑이며, 지혜(찌지직) 그들 인간과 동물들만이 그 지혜와 사랑을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일 겁니다. 또 그들만이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쉬어야만 사랑을 받아드릴 수가 있고 회복될 수가 있지요. 그러므로 안식일은 주시는 창조주와 받아야 되는 피조물, 섬기시는 창조주와 섬김을 받는 피조물과의 관계를 올바로 이루는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 <너희로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을 알게 하려 하노라(겔20:20)>

피조물들이 안식일의 복을 받아서 그 창조력(치유력)을 체험하게 되므로 과연 창조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임을 알게 하십니다. 창조주로서는 피조물에게 창조주만이 주실 수 있는‘복’(사랑, 생명)과 날(시간)을 주시는 분이시고, 피조물들로서는 창조주께서만 주실 수 있는 복을‘안식’속에서 생명이 가득한 시간을 받아 누려야만, 죄로 인하여 생산 된 활성산소로 인하여 손상 된 유전자들이 회복 되어 생명과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하며 살아가게 되는 존재임을‘기억’해야 합니다. 안식일은 창조주께서 피조물들이 당신과 생명적인 그러한 관계를 맺은 존재임을 안식일에 부어주신 복(창조력, 생명력)을 피조물들이 직접 받아서 유전자의 회복을 체험하게 하심으로 재창조를 체험하게 하시어 피조물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과연 창조주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존재임을 기억하게 하는 날인 것입니다. 그리고 피조물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생명력(창조력)인 복이 가득한 거룩한 날인 토요일 안식일에 부어주신 안식일의 복인‘찌지직(생명력)’을 죄인이 된 피조물들이 담뿍 받으며 우리의 몸의 유전자들이 생명적 반응과 변화와 회복을 일으켜 실질적인 생물학적 차원에서도 창조력(생명력)을 체험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의 거룩한 모습으로 조금 더 가까워지는 거룩하게 됨(성화)을 체험적으로 알게 하시어, 과연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심을 실질적으로 마음만이 아니고, 몸으로 깨달아 알게 하시는 날이 안식일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시면 12년 동안 혈루 증을 앓고 있던 여인이 창조주의 능력을 ‘몸’(유전자)으로 느끼므로 회복되어 재창조와 성화의 시작을 체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막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력(생명력)이신 복을 안식일에 부어주셨기 때문에 과연 안식일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영원한 표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에도 이렇게 병 고치시는 사역을 주로 안식일에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진정으로 이 하나님이 주신 ‘표징’인 안식일과 함께 하나님의 창조력(생명)을 받아서 “하나님의 계명”을 잃지 않도록 지키는 ‘남은 자’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분께서는 식물이 번식할 수 있기 위하여 당신의 대리자들을 채용하신다. 그분께서는 이슬과 비와 햇빛을 보내시며 푸른 초목이 새싹을 내게 하고 온 지면에 덮여 푸른 융단이 깔리게 하며 관목(관목)들과 열매 맺는 직무들이 새싹을 돋게 하며 꽃봉오리가 피게 한다. 그러나 씨앗 자체가 활동을 하며 잎이 저절로 나타나도록 작용하게끔 법칙이 제정되어있는 것이라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제정하신 법칙들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 법칙들은 다만 당신께서 결과를 미치도록 영향을 주는 종들에 불과하다. 모든 작은 씨들이 움터 땅을 뚫고 나와 생명의 싹이 트는 것은 하나님의 즉각적인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든 잎사귀가 자라고 꽃이 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이다.
인간의 신체적인 기관은 하나님의 감독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이며 괘종시계처럼 태엽을 감아 놓으면 저 혼자 가는 그런 식의 것이 아니다. 물론 심장이 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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