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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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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4-27 13:33 조회3,7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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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5월 1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22분

제 5 과 환경(環境)

▣ Ⅰ. <하나님과 자연(自然)>

어느 분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엇을 보든 자연과 마주칠 때 우리는 하나님과 간접적으로 마주치고 있다'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고귀함을 표현하는 말이라 하겠다. 사도 바울도 자연은 만물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에 대해 말한다고 했다. 이런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드러낸다.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창조된 자연을 통해 얻게 되는 교훈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봅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 세계는 보시기에 좋았고 심히 만족스러운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창 1:31) 이러한 성경의 진술은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의 수고를 엿볼 수 있도록 하며, 하나님께서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서 자연을 만드셨음을 짐작케 한다. 하나님의 질서와 조화의 체계 속에서 탄생한 자연은 하나님의 솜씨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한편 하나님의 창조는 만물의 구원이라는 궁극적 목적 때문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救援)의 사역이시다. 모든 피조물은 어느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구원(救援)의 대상이다. 이러한 논점에 의거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존재 가치와 그 중심에 계시는 하나님의 최종적 관점이 무엇인가 살펴보도록 하자.

▶.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창조된 자연은 창조의 질서와 조화를 간직하고 있다.
자연 속의 모든 피조물들은 서로 돕는 사귐의 관계를 갖는다. 대지는 살아 있는 것들의 생존의 터전이며 생명의 싹을 보존하고 나타내는 근거지요 거점이며, 그 위의 숨 쉬는 생명들은 대지의 혜택을 받으면서 공생하는 관계를 유지한다. 즉 하나님의 질서 속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자연이 하나님의 생명의 법의 법칙과 체계에 순응하고 있음과 다름없다는 말이다. 생태계의 질서에서 먹고 먹이는 먹이사슬의 관계 또한 창조 질서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이기에 자연이 규모 있게 보존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모든 현상들은 하나님의 법칙의 규율 내에서 조절되고 통제됨으로 결국 생명체로 하여금 자연의 큰 테두리 속으로 귀의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은 생육과 번성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이렇듯 자연 속에는 하나님의 숨결이 스며들어 있으며 생명의 법칙과 삶의 원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은 자연을 통하여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시며, 계시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질서와 조화를 간직하는 자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자연과 일치하는 삶, 도움을 주고받는 공생의 관계,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예증하고 있다. 이렇게 살림의 원리가 보존되고 생명의 법칙이 유지되는 대자연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며 자신의 뜻을 드러내시고 궁극의 목적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자연을 창조하시고 자연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인간의 죄와 욕심으로 인하여 파괴되고 오염되는 자연을 늘 은총과 사랑 가운데 회복시키시며 새롭게 하신다. 성도는 이렇듯 아름답고 복되게 지어진 자연의 질서와 법칙에 조화되고 순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자연을 창조하시고 허락해 주심을 늘 감사드리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라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 : 20)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시 8:1)

하나님의 창조 섭리 가운데 아름답게 지음을 받은 자연 만물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복된 것이었다. 이러한 자연은 인류의 생육과 번성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을 맡겨 주셨고 관리하고 다스리게 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죄 가운데서 자연이 저주받아 황폐케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은 인류에게 허락된 자연의 중요성을 되새겨 보면서
인류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자연이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는 것인지 함께 생각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연은 인간의 다스림과 관리 속에 종속 되어 있다는 것이 창조 질서요 원리이다. (창세기 1장26-28).
그러므로 인류의 타락과 더불어 자연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창 3:17).
자연은 사람으로 인해 함께 고통당하면서도 (롬 8:22)
인류에게 재해(災害)와 고통(苦痛)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창 3:18).
인류의 역사나 성경과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자연은 인간과 함께 (삼하 7:14)
자주 심판의 도구가 되었다. (창 6:17; 신 28장23-24).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다스릴 그 온전한 나라에서 자연의 중요성이 조금도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
예수님이 다스리는 그 온전한 나라의 모습은 타락한 인간에 의해 받은바
저주의 모습이 완전히 없어진 온전히 회복된 자연의 모습이다. (시 35:6-10).
자연과 우주가 온전한 하나님나라의 도래와 함께 녹아지고 풀어지고 떠나가 버릴 존재로 경고되지만. (벧후 3:7).
이것은 단순한 대자연에 대한 파괴와 멸망이나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받은바 심판과 저주가 온전히 가셔진 새 하늘과 새 땅의 건설을 강조하기 위한 완전한 거듭남의 의미를 나타내는 종말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연 만물이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강력히 원하며 탄식 가운데 기다린다고 증언한다. (롬 8:21).
사도 요한도 분명히 이러한 온전히 새로워진 대자연 속에 성도들이 장래에 거하게 될 것을 강력히 예언하고 있다. (계 21:1-2,; 22:1-2). 그러면서 그는 다시는 저주가 없음을 첨언하여 강조한다. (계 22:3).

자연의 소중함은 우리의 육체적 생명의 터전이라는 점에서나 일반계시의 심오한 면에서나 조금도 경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육체의 생명의 강건함을 위해서나 하나님의 심오한 계시의 발견과 영원한 그 나라를 위해 준비하는 성도로서 더욱 열심히 가꾸고 복원하고 보전하는 일을 게을리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가 구원을 체험할 때 자연 만물 또한 애초에 피조물 되었던 그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아름다운 세상으로 회복될 것이다.
성경은 이러한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가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된다고 말씀합니다. (계 21:1.5).

인류의 구원이 이루어져서 새로워지는 자연이 될 수 있도록 성도는 복음 전파에 힘쓰며 또한 자연의 회복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아름다운 자연을 누릴 수 있는 복된 재림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親手)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사 45:12)

<요점(要點)>
하나님이 만드신 환경 속에는 우리가 사용하고, 보존해야 할 건강과 행복의 자연 적인 촉진 요소들이 있다.

일요일(4월 25일)
<환경(環境) 살리기>

▣ 살린다는 말은 원래 있던 대로 회복시키는 것을 말한다.
환경을 실린다는 말은 환경을 원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천지만물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알고 믿지만,
반면에 많은 사람들은 우주만물의 창조주가 어느 분이신지 알지 못하고 있으며,
모든 인간들은 아는 만큼 믿음을 행위로 나타내면서 신앙들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해서 확실하고 분명히 모르는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제외한 온갖 형상의 피조물들을 숭배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창조주 하나님을 시인(是認)하고 믿든지 혹은 부인(否認)하고 믿지 않든 지간에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신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친히 섭리주관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 계시를 성경을 통하여 인간이 경배하고 섬겨야할 대상은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뿐임을 가르쳐주며 무(無)에서 유(有)로 생명을 이끌어 내신 그 하나님께서 타락으로 인해 죄악의 어둠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인간들을 여인의 후손(창 3:1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救援)의 광명 속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이라는 복음의 태동(胎動)을 계시한 책이 창세기이다.

특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빛과 어둠, 물과 채소, 해와 달과 별, 물과 공기와 동물들,
그리고 창조의 절정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 죄와 구속(救贖), 축복과 저주, 사회와 문명, 결혼과 가정, 예술과 기술과 산업 등에 대한 기원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다.
특히 하나님과 자연의 관계,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선명하게 성경에서 드러나 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자기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약속하셨고
그들에게도 그의 약속에 대해 신실하게 지킬 것을 약속하게 함으로써 언약을 성립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한 생명을 살리시기 위하여 다른 생명을 대속물(代贖物)로 바치는
희생 제사제도를 확립시키시고 (창 22장)
악(惡)의 세력으로부터 그의 택한 백성들을 救援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암시하셨다. (창 3:15; 롬 16:20)

이처럼 온 우주와 지구의 환경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다른 생명들이 함께 공존하며 살 수 있는 참으로 좋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보여주는 최적의 상태로 조성해 주셨다. 이에 그분을 기억하여 그분의 뜻에 부합한 삶을 사는 것이 환경을 살리는 삶이 되는 것이다.

▣ 우리 인간의 유한(有限)한 지력(知力)은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는 “태초(太初)”를 생각할 수 없다.
왜냐 하면 그분이 “근본(根本)(골 1:18; 참조 요 1:1-3)이기 때문이다.
지혜와 그 밖의 모든 좋은 것들은 그와 더불어 시작한다. (시 111:10 약 1:17)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우리의 조물주를 닮고자 한다면 우리의 삶과 계획이 그 안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창 1:26-27; 참조 요 3:5; 요일 3:1-3)

▣ 참 교육의 목적은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고상한 특성을 부여하셨다. 인간의 마음은 균형이 잘 잡혀 있었고 온 몸의 능력은 모두 다 잘 조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타락과 그 결과는 이 선물들을 그르쳤다. 죄는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하고 거의 말살시켰다. 인류를 위한 구원의 계획이 세워지고 유예의 생명이 허락된 것은 이것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인간의 목적은 인간이 처음 창조 받을 그 때의 완전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청년들의 교육에 있어서 하나님의 목적과 협력하는 것이 부모와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며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동역 자들이”(고전 3:9) 된다.” (부조, 595)

◉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
“사람은 외모나 품성에 있어서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게 될 것이었다. 그리스도만이 아버지의 “본체의 형상”(히 1:3)이시나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의 본성은 하나님의 뜻 과 조화되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애정은 순결하였고 그의 식욕과 감정은 이성(理性)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그분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가운데 거룩하고 행복하였다.” (부조와 선지자, 45)

월요일(4월 26일)
<안식일(安息日)과 환경(環境)>

◉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와 환경의 가치(價値)를 돌아보며 쉴 수 있는 좋은 날이다. 그러므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 중에도 두부류로 안식일을 맞이하여 환영하고 즐기며 축복의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와 찬송을 드리며 안식일을 맞이하고 또한 일몰시에는 환송하며 다음의 안식일을 맞을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안식일을 당해서 사무적으로 능동적으로 습관적으로 순서와 시간을 때우는 사람들이 있다. 안식일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금번의 교과를 통하여 다시 발견합시다.

▣ “자애로우신 창조주께서는 엿새 동안의 창조 후 쉬셨으며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창조의 기념일로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율법의 넷째 계명은 이 제칠일 안식일을 쉼과 예배와 안식일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교훈과 실천에 조화되게 봉사하는 날로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즐겁게 교제하며 인간 상호간에 교제하는 날이다. 안식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구속의 상징이며 우리의 성화의 표징이요 우리의 충성의 증거이며 하나님의 왕국에서 누리게 될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미리 맛보는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당신과 당신의 백성 사이에 맺은 영원한 언약에 대한 영구한 표징이다. 이 거룩한 시간을 저녁부터 저녁까지, 즉 해질 때부터 해질 때까지 즐겁게 준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행위를 경축하는 것이다. -(기본 신조, 19.)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더불어 그들의 낙원의 가정을 답사하였다. 풍경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창조의 여섯째 날인 그 금요일에 해가 천천히 기울자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창 2:1)의 창조 사업을 마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 방금 완성하신 세상이 한없이 아름다웠지만,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된 부부에게 주실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그분과 개인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안식일, 곧 특별한 축복과 교제의 날이요 그들의 창조주와 교통하는 한 날을 제정해 주셨다.

◎ <성경 전편에 나타난 안식일>
안식일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예배의 중심이다. 창조의 기념인 그 날은 왜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셔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혀준다. 그분은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들이다. "그런고로 안식일은 바로 거룩한 예배의 기저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위대한 진리를 가장 감동적인 방법으로 가르쳐주며 다른 제도로서는 이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지 제칠일에 드려지는 예배만이 아니라 모든 예배에 있어서, 거룩한 예배의 참된 근거는 창조주와 그분의 피조물들 사이의 구별에서 발견된다. 이 위대한 진리는 결코 폐물이 될 수 없으며 결코 잊혀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것은 이 같은 진리를 인류 앞에서 영원토록 간직하기 위함이었다.

◎ <창조시의 안식일>
안식일은 죄 없는 세계로부터 우리에게로 왔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땅에서 하늘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세 특수한 행위로 안식일을 제정하였다.

1.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쉬셨다.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 "쉬어 평안하"(출 31:17)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휴식이 필요해서 쉬신 것이 아니었다(사 40:28). "쉬셨다"고 하는 동사 사바트(shabath)는 실제적으로 노동이나 활동으로부터 쉬는 것을 의미한다(창 8:22 비교). "하나님의 쉼은 피로나 노고의 결과가 아니라 전에 하시던 일을 그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따라 쉬도록 하기 위해 쉬셨다. 즉 그분께서는 인간이 본받도록 모본을 보이셨다(출 20:11).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창조 사업을 다 이루었다(창 2:1)고 하셨는데, 그분께서 일곱째 날에 "당신의 일을 마쳤다"(창 2:2)고 하는 성경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그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의 창조 사업을 마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아직 안식일을 제정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그것을 제정하시는 일은 안식일에 쉬심으로써였다. 안식일은 당신의 사업을 마치시는 그분의 끝손질이었다.

2.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축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제정하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축복하셨다. "일곱째 날을 축복하셨다는 의미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은총의 특별한 대상으로 선언되었다는 의미와,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축복을 가져다주는 날이 되었음을 의미하였다."

3.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셨다. 어떤 것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것을 신성하고 거룩하게 만들거나, 또는 그것을 거룩하게 혹은 거룩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따로 구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것을 성별 하는 것이다. 사람, 장소(성소, 성전, 또는 교회와 같은) 및 시간(거룩한 날들)은 거룩하게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하는 사실은, 이 날이 거룩하며 그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부요하게 하는 고상한 목적을 위하여 그 날을 구별하심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제칠일 안식일을 축복하셨으며 거룩하게 하셨는데, 이는 당신께서 이 날에 당신의 모든 일로부터 떠나 쉬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 안식일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개인적인 임재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과 거룩하게 하심을 가져오신다.”
(교리, 233-234)

◎ <하나님의 휴식은 창조된 세계와 인간에게 자신을 내어주신 행위였다. >
그러므로 안식일은 피조물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과 환경에 대한 인간의 책임감을 상기 시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안식일에는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는 날로 이해하고 계신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셨던 목적대로 안식일의 의미를 회복하셨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구하며, 가난한 자들을 돕는 선한 일을 행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그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친히 보여주셨다.

※ 안식일(安息日)(Sabbath) <(출 20:8-11), (신 5:11-21)>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바 하늘 정부의 헌법인 십계명중의 4번째 계명이다.
십계명은 영원불변한 하늘정부의 헌법으로써 그 불변의 상징이며 권위의 표현이 되는 한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가 되며 (요일 5:3) 의무가 되며(전 12:13) 선악의 표준이 된다.(약 2:12)
안식일이 이러한 십계명중의 한 부분인 것을 생각 할 때 그 중요성과 불변성은 확실해 진다.

[Ⅰ] 안식일의 목적
1. 창조의 기념 (창 2:1-3, 출 20:11)
2. 인류의 행복 (막 2:27-28, 창 2:3)
3. 성별(聖別)의 표 (겔 31:13, 16), (출 31:12-14, 16)
4. 구속(救贖)의 표 (신 5:15, 겔20:20)
5. 만물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심을 상기 시켜 주기 위하여 (출 20:11, 시 111:4)
6.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 하도록 하기위하여 (출 20:8, 사 66:23, 출31:17)
7. 우상숭배에서 보호하기위하여 (레 26:1-2)

※ 가). 언약관계의 표징 (출 31:16-17)
나). 충성의 시금석(試金石) (출 16:23-30) (계 14:12)
다). 시간의 성소(聖所) (사 58:12-14)
라). 하늘 안식을 맛보는 것입니다. (히 4:1- 히 4:9-11)

[Ⅱ] 안식일은 어느 날인가?
(1) 안식일은 주일 중 일곱째 날이다. (창 2:2-3, 출 20:8-11)
(2) 안식일은 어느 날인가? (막 16:1-2, 늑 23:53-55, 눅 24:1)

6일 / 7일 / 1일
예비일 / 안식일 / 첫째 날
금요일 / 토요일 / 일요일

1) 웹스터사전 (1968년 년도 판)= (토용일은 주일중 일곱째 날이다)라고 답변해 주고 있다.
2) 공동번역 성경(1971년도 판)이 증거해 준다.
마르코 16장2절에 “안식일 다음날인 일요일 이른 아침에” 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식일 다음날이 일요일 이른 아침이면 안식일은 분명히 토요일이다”
3) 달력의 순서가

(3) 안식일 시간은 해질 때부터 해질 때까지다. (레 23:32, 눅 23:54)
1) 성경상의 하루의 시간은 저녁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창 1:5)=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2) 예수의 시체를 무덤에 장사지낸 시간이 증거 해준다.
(눅 23:54)=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로 기록되어 있다.
 ☆ 그러므로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이다.

[Ⅲ] 안식일 준수의 모본자(模本者)들
(창 2:1-3) ① 하나님께서 친히 안식일을 지키셨다
(눅 4:16) ② 그리스도께서 친히 안식일을 지키셨다.
(행 18:4) ③ 바울이
(눅 23:55-56) ④ 예수님의 제자들도 (행 13:14, 44. 16:13, 17:2, 18:4)
(마 24:20) 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계 1:10) ⑥ 사도 요한이
(주의 날) (주님의 날= Lord's day) 주인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에(막 2:28)
(사 66:22-23)
⑦ 신천신지에서도 구원받은 자들이 안식일을 지킬 것이다.

◎ 구약(舊約)의 안식일 준수
① 창조 때 (창 2:1-3)
② 아브라함도 계명을 지킴 (창 26:5)
③ 시내산 이전에 (출 16:23-30)
④ 십계명 반포 당시 (출 20:8-11)
⑤ 시내산 이후 (겔 20:13-15), (암 8:4-10) (사 56:1-7) (렘 17:19-27) (느 13:15-22)

※ <일요일 준수의 유래(由來)>
① 주후 321년 콘스탄틴 황제의 칙령이다.
원래 로마 콘스탄틴 황제는 태양신을 섬기던 이교도였는데
태양신의 축제일인 일요일 제도를 교회 안으로 수입하게 되었다.
② 주후 336년 라오디게아 총회의 결정
(천주교 교리문답 50쪽)
질 문 :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대 답 :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질 문 : 왜 우리는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 지키는가?
대 답 : 천주교회가 라오디게아 총회(336년)에서 그 신성성을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에 우리는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킨다.

[결론]
우리는 왜 제칠일 토요일(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명 하셨고 우리 구주(救主) 예수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날을 지키셨으며 사도들도 계속 지키어 우리에게 모본을 보여 주셨으니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로써 이날을 지키는 것이 마땅 하지 않겠는가!
(사58:13) (요일 2:3-4)

(계 14:6-7)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은 창조자를 경배하라는 부르심이다.
(계 14:11) 경배의 기준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엡 3:9) 예수님은 창조사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계 14:11은)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부르심이다.
(출 20:8-11) 안식일을 지킴으로 그분을 창조자로 경배한다.
(창 2:1-3) 안식일 창조시에 따로 구별하여 만들어 놓았다.
(막 2:27-28) 유대인이 있기 2,300년 전에 온 인류의 기념일로 안식일이 주어졌다.
(겔 20:12, 20)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표징이며 인류를 위하여 설정되었다.
(눅 4:16) 예수님께서 충성스럽게 안식일을 지키셨다.
(마 24:20)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지 35년 지나서 예루살렘의 멸망시 AD70년 에도
안식일을 지킬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행 13:42-44) 바울은 안식일을 지켰고 유대인과 이방인과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여 그 날에 모였다.
(행 16:13) 빌립보에는 교회건물이 없기 때문에 안식일에 문밖 강가에서 신자들을 만나 예배를 드렸다.
(계 1:10, 마 12:8, 눅 23:54-56, 24:1, 히 13:8, 사 66:22-23)

<안식일의 변경(變更)과 일요일 준수의 유래>
<1> 성경에는 하나님의 안식일이 폐지될 수 있다고 말 한곳이 있는가?
① 성경에는 안식일을 폐지될 수 있는 사실에 대하여 언급한곳이 하나도 없다.
ⓐ (마 5:17-18)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려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눅 4:16)
ⓑ (행 17:2-3) 사도들과 안식일과의 관계
“바울이 자기 규례대로……. 새 안식일에 성경(聖經)을 가지고 강론 하며” (행 13:14, 42, 16:13)

② 하나님의 안식일은 왜 변경되었으며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하여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가?
(단 7:25, 벧후 1:19-21, 살후 2:3-4, 살후 2:7-8)
ⓐ 성경에는 하나님의 안식일을 변경시킬 배도의 세력이 나타날 것을 에언 하고 있다.
배도의 세력이 하는 일 은 (그가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 하며.)
ⓑ 배도(背道)한 세력의 정체
먼저 배도 한 세력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명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눅 5:20-21)
ⓒ (단 7:25, 겔 4:6) 때(時))와 법을 변경시킬 것임.
그가 또 때(時)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③ 성경에 기록된 예언대로 하나님의 안식일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경되어 왔는가?
ⓐ 천주교회는 스스로가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시켰다고 주장한다.
(사 8: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행 20:29-30) 안식일 변경에 대한 역사적 증언.
“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나니…….”

④ 성경에는 교회 안에서의 태양신 숭배정신과 안식일 회복 운동을 어떻게 표현 하고 있는가?
㉮ 교회 내에 태양신 숭배의 정신이 편만할 것을 성경은 예언 하고 있다
(겔 8:16) “동방 태양에게 경배함” 약 25인이.
㉯ 안식일 회복 운동이 일어날 것을 성경은 예언 하고 있다.
㉠ (사 58:12) 안식일 회복 운동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 하는지라 할 것이며” (사 58:13-14)
㉡ (막 7:6-9) 참된 선택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 하는 도다” (요 14:6)
㉢ (계 2:10) 믿는 자의 태도
“죽도록 충성하라 ”
안식일(安息日)
(요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아멘>

◎ <안식일에 대한 만연된 무관심>
나는 이 시대를 위한 엄숙한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매우 많은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하나님을 위하여 훈련시키지 아니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자제하지 아니하며 그들을 제지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든지 역정을 냈다. 그들은 산 믿음으로써 날마다 자녀들을 주님의 제단에 묶어 바치지 않았다. 이럼으로써 많은 청소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날에 자신의 쾌락을 추구함으로 넷째 계명을 범하도록 허용 받아 왔다. 그들은 안식일에 자신의 오락을 위하여 거리를 배회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아니하였다. 많은 청소년들이 그들이 가고 싶은 대로 가게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러나 부모들은 그들을 불쾌하게 할까 두려워하는 나머지 엘리의 전례를 따름으로써 그들에게 아무런 지배력도 행사하지 아니한다.
이러한 청소년들은 마침내 안식일에 대한 경의를 상실하고 교회의 집회나 신성하고 영원한 사물에 대한 취미를 가지지 않게 된다. ― (교회증언5권, 36-37)

◎ <넷째 계명의 첫말에 유의하라 >
“기억하라”는 말이 넷째 계명의 맨 처음에 놓여 있다(영문 성경 참조). 부모들이여 그대는 스스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한다. 만일 그대가 그와 같이 행하면 그대는 자녀들에게 합당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성일을 존중히 여길 것이다. … 그리스도인 교육이 그대의 가정에서 요구된다. 온 주일(週日)을 통하여 주님의 거룩한 안식일을 기억하라. 이는 그 날이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로 바쳐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날은 세속적인 일로부터 안식하는 날이요 영혼의 필요가 특별한 관심을 받아야 할 날이다.
(원고 57, 1897)

◎ 이와 같이 안식일을 기억할 때 세속적인 것이 영적인 것을 침범하도록 허용되지 아니할 것이다. 엿새 동안의 일하는 날에 이행하여야 할 의무가 안식일에 행하여지도록 방임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 피곤하여 주님께서 안식하시고 회복하신 날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할 정도로 일주일 동안 우리의 정력을 지나치게 소모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증언 6권, 354.)

◎ <금요일을 예비일로 삼으라.
안식일 준비를 금요일에 다하여 놓으라. 모든 의복은 준비가 되었는지, 모든 음식은 다 요리하여 놓았는지 살펴보아라. 구두를 닦고 목욕을 하라. 이것은 능히 할 수 있다. 만일 그대가 그것을 규칙으로 삼는다면 그대는 그것을 능히 할 수가 있다. 안식일은 옷을 기워 매는 일이나, 요리를 만드는 일에나, 쾌락을 추구하거나, 다른 어떠한 세속적인 일에 바쳐져서는 안 된다. 해지기 전에 모든 세속적인 일을 제쳐 두고 모든 세속적인 잡지를 보이지 않게 하라. 부모들이여, 자녀들에게 그대가 하는 일과 그 목적을 설명하고 계명을 따라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로 그대와 함께 준비하게 하라. ― (교회증언6권, 355-356.)

많은 가족들이 안식일에 구두에 약칠을 하고 닦으며, 바느질을 하는데 그 까닭은 모두 작은 부스러기 일들이 금요일에 행하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지”(출 20:8) 아니하였다.
어린이들의 옷은 금요일에 보살펴주어야 한다. 그들은 일주일 동안 어머니의 지도를 받아서 모든 의복을 손수 준비하여 어떤 혼란이나 서두르며 성급한 말을 발하는 일이 없이 조용히 입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
(원고 57, 1897)

◎ <예비일 에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 일이 있다. >
이 날에는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형제들 간의 모든 불화를 씻어버려야 한다. ―(교회증언 6권, 356.)

◎ <안식일은 가족의 예배와 더불어 시작된다. >
해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찬미하며 기도하기 위하여 가족들이 모일 것이다. 이 가운데서 개혁할 필요가 있는 바, 대개 많은 사람들이 이에 부주의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와 피차에게 자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가족의 모든 식구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성결하게 하신 그 날을 영화롭게 할 준비를 할 수 있기 위하여 특별한 준비를 새로이 하기를 시작하여야 한다. ― (교회증언6권, 356-357)

◎ <안식일 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6일 전부를 주셔서 일하게 하시고 하루만을 당신을 위하여 남겨두셨다. 이 날은 우리에게 복된 날, 곧 우리가 우리의 모든 속된 일을 젖혀놓고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과 하늘에 집중시키는 날이 되어야 한다. ― (원고 3, 1879)

안식일이 시작될 때에 우리는 엄밀하게 주님께 속하는 시간을 자신의 소용을 위하여 횡령함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아니하도록 우리 자신, 곧 우리의 언행에 파수꾼을 세워야 할 것이다. 생계를 위하여 어떤 형태의 일이나 혹은 엿새 동안의 일하는 날에 능히 할 수 있었던 것을 스스로 하거나, 아이들이 행하도록 하지 말 것이다. 금요일은 예비하는 날이다. 이 날에는 안식일을 위하여 필요한 준비를 하는 일과, 안식일에 대하여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일에 바쳐질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안식일을 범하는 것으로 여기시는 것을 말하지 않거나, 혹은 행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가 안식일에 말하거나 행하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안식일에 육체노동을 하는 것을 금할 뿐만 아니라 정신도 신성한 주제를 사색하도록 훈련받기를 요구하신다. 세속적인 사물에 대하여 말하거나 혹은 경박하고 쓸데없는 대화를 함으로써 사실상 넷째 계명이 범하여지는 것이다.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아무 것이든지 또는 모든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사사로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한 것으로부터 떠난 모든 탈선은 우리를 속박하여 정죄하게 한다. ― (교회증언 2권 702-703)

◎ <안식일 시간은 매우 귀중하므로 자면서 보내지 말라 >
아무라도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힘이나 정력이 없을 정도로 일주일 동안 세속적인 사업에 지나치게 골몰하거나, 세속적인 이익을 위하여 지나치게 노력을 소모하도록 자신들을 용납하지 말 것이다. 우리가 성일에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에 불합당하게 할 때, 우리는 주님의 것을 도둑질하고 있는 것이니 이는 우리가 그 날에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지혜와 경험에서 힘과 아울러 사교의 온정과 만족감을 얻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리브 & 헤럴드 1882. 6. 13.”(자녀, 527-530)

“귀중한 안식일 시간을 침상에서 낭비하지 말라. 안식일 아침에는 가족이 일찍 일어나야 한다. 늦게 일어나면 아침 식사와 안식일 학교를 위하여 준비하는 일에 혼란과 소동이 생긴다. 서두르고 혼잡하고 조급하여진다. 이리하여 거룩하지 못한 감정이 가정에 들어온다. 이와 같이 모독을 당한 안식일은 지리하게 되고 이 날이 오는 것을 좋아하기는커녕 오히려 꺼려하게 된다. ― (교회증언 6권, 357)

◎ <공중 예배에 자녀들과 함께 나가라 >
부모들은 자녀들이 안식일에 공중 예배에 참석하도록 하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그 규칙을 수범함으로써 시행할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던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과 권속을 통솔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교훈과 아울러 모본으로써 우리는 신앙적인 교훈의 중요성을 그들의 마음속에 새겨주어야 한다. 침례 서약을 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을 엄숙히 바친 것이니 가능한 한 그리스도인으로 생애 할 수 있도록 모든 자극과 격려를 얻을 수 있는 곳에 자신과 자녀들을 두어야 할 계약상 의무가 그들에게 있다.(리브 & 헤럴드 1882. 6. 13)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우리는 이 행사를 고역으로 생각하여서는 안 된다. 주님의 안식일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축복이 되어야 한다. 자녀들은 안식일을 즐거운 날이요, 하나님께서 성결하게 하신 날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바르게 교훈을 받는다면 그 날을 그렇게 여길 것이다. (원고 3, 1879)

◎ <교회당에 알맞는 옷을 입어라>
많은 사람들이 교회당에 나올 때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일주일 동안 입은 평복을 하고 하나님 앞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특별한 안식일 의복을 마련하여 하나님의 집에 예배드리러 나갈 때 입을 것이다. 우리는 세속적인 유행을 따르지 말아야 하는 반면에 우리의 외모에 대하여 무관심하여도 안 된다. 치장을 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우리는 우아하고 산뜻하게 차려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안팎이 깨끗해야 할 것이다. ― (교회증언 6권, 355.)

◎ <안식일의 설교를 자녀들에게 설명하여 주라>
목사들은 신성하고 엄숙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듣는 자들에게도 똑같은 신성한 책임이 놓여 있다. 그들은 영생을 얻는 모든 사람이 실행하여야 하는 교훈을 따를 각오를 가지고 들어야 한다. 듣는 사람마다 성경의 진리에 대한 모든 소개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보내는 기별로 알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일상 생애에 실천하려고 힘쓸 것이다. 부모들은 설교 단상에서 말하여지는 말을 자녀들에게 설명하고 그들도 깨닫게 하여, 이를 실천에 옮기면 풍성한 은혜와 화평을 가져다줄 지식을 가지도록 할 것이다. ― (원고 41, 1903)

◎ <식사 시간에는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라 >
우리는 다른 날보다 안식일에 더욱 많은 가지 수의 식물을 준비하지 말 것이다. 그대는 영적 사물을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정신이 맑고 활력적이기 위하여 식물을 더욱 단순하고 적게 먹어야 할 것이다. 과식은 뇌를 흐리게 한다. 부적당한 식사로 말미암아 정신이 혼란하여지므로 가장 귀중한 말을 들을지라도 유의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안식일에 과식함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더 욕되게 하였다.
안식일에 요리하는 것은 피하여야 하지만 찬 식물을 먹을 필요는 없다. 추운 날씨에는 전날 준비한 음식은 데우도록 하라. 그리고 식사는 단순할 지라도 맛있고 먹음직하게 하라. 별식으로 여겨질 만한 것, 가족이 매일 먹지 아니하는 무엇을 준비하라. ― (교회증언 6권, 355)

◎ <오후의 시간이 중요하다>
안식일학교와 설교 예배는 안식일의 일부를 차지할 뿐이다. 가족에게 남겨진 시간은 안식일 중에 가장 신성하고 귀중한 시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부모들은 이 시간의 대부분을 자녀들과 함께 보내야 한다. ― (교회증언 6권 358)

◎ <적당한 독서와 대화를 계획하라>
안식일, 아! 안식일을 온 주일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복 받는 날로 삼으라.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성경 역사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읽어주고, 그들이 안식일을 공경하도록 교육하며, 계명을 따라 이 날을 지키게 하므로 그들에게 관심을 나타내주어야 한다. 만일 부모들이 자녀들을 흥미 있게 하여 줄 책임을 느끼지 아니한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합당한 방법을 취한다면 안식일을 즐겁게 할 수가 있다. 자녀들은 그들의 구원에 관한 좋은 독서와 대화에 흥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다. 본성적인 마음은 하나님과 하늘의 사물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아니한다. 세속적인 조류와 악에 대한 경향을 항상 물리치고 하늘의 빛을 들어오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리브 & 헤럴드 1885. 4. 14)

◎ <에덴의 생활을 영위하는 날 >
“교육적인 측면에서 안식일의 가치는 측량할 수 없이 큰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으로 풍성하게 하시고 모양을 변화시키셔서 우리에게 다시 주시는 것이다. …
안식일과 가정은 에덴에서 함께 제정되고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있어서 피차에 분리될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날에는 다른 어떤 날보다도 특별히 에덴의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날이다. 가족들이 아버지를 가정의 제사장으로 하고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자녀들의 교사와 동무가 되어 일하고 연구하고 휴양하는 일로 서로 교제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였다. 그러나 죄악의 결과로 생활 상태는 변천되고 이 교제는 대부분 방해를 받았다. 흔히 아버지는 일주일 내내 그 자녀들의 얼굴을 볼 수 없이 되었다. 그는 자녀들과 동무가 되거나 자녀들을 가르칠 기회를 거의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노동의 필요를 제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당신의 자비하신 손길을 두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날에 가족들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제하고 만물로 더불어 교제하며 또한 서로 교제할 기회를 가지도록 하셨다. ― (교육, 230-231)

◎ <안식일이 즐거운 날이 되게 하라 >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안식일을 즐겁고 거룩하고 영화스럽게 하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바를 행하여야 한다. 그들은 죄악스럽고 금지된 오락에서 자신의 쾌락을 추구함으로 이를 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 안에서 안식일을 높이고 큰 역할을 할 수가 있으며 그 날을 주일 중에서 가장 흥미 있는 날로 삼을 수 있다. 우리는 자녀들이 즐겁도록 시간을 보내야 한다. 여러 가지 변화 있는 일은 그들에게 즐거운 감화를 끼칠 것이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노천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다. 우리는 숲 속에서 광명한 햇빛 아래 그들과 나란히 앉아서 하나님의 업적에 대하여 이야기함으로 불안한 마음에 만족한 무엇을 줄 수 있으며 천연계의 아름다운 사물에 주의를 환기시킴으로 그들에게 사랑과 존경심을 고취시킬 수 있다.
안식일을 가족들에게 흥미롭게 하여 주어서 매 주일마다 돌아오는 안식일이 기쁨에 넘치고 환영을 받는 날이 되게 할 것이다. 부모들이 가족들에게 합당한 교훈을 나누어줄 방법을 강구하고 그들로 영적 사물에 흥미를 가지게 하여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서와,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완성하게 하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그들에게 주라. 이보다 더 훌륭하게 안식일을 높이고 존귀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부모들이여, 안식일을 즐거운 날이 되게 하여 자녀들이 그 날을 고대하며 진심으로 그 날을 환영할 수 있도록 힘쓰라. ―(교회증언 2권, 584-585)

◎ <기도와 찬미하기에 알맞는 정점(頂點) >
해가 넘어가면 기도와 찬미의 목소리로 거룩한 시간이 마쳐짐을 알리고 일주일 동안의 노동의 수고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구하라. 안식일은 주일 중에 가장 기쁜 날이 되어야 하는바 이와 같이 함으로써 부모들은 안식일을 그렇게 만들 수 있다. 그들은 자녀들이 안식일을 즐거운 날, 주일 중 특별한 날, 여호와의 성일로 존귀한 날로 여기도록 지도할 수 있다. ― (교회증언 6권, 359)”(자녀, 535-537)

◎ <자녀들의 활동에 무관심하지 말 것 >
“안식일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어디에 있는지 혹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 (교회증언 6권, 359)

부모들이여, 무엇보다도 안식일에 그대의 자녀들을 돌보라. 집단에서나 호외에서 그들이 장난함으로써 하나님의 성일을 범하는 일을 허락하지 말라. 그대의 자녀들로 그렇게 행하도록 허락하면 자신도 안식일을 범한 것과 같을 것이며 자녀들로 안식일에 돌아다니면서 장난하도록 허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안식일을 범하는 자로 여기시는 것이다. ― (리브 & 헤럴드 1854. 9. 19)

◎ <야외(野外)에서 아이들과 함께 >
부모들은 자녀들을 야외로 데리고 나가서 천연계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관찰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만발한 꽃들과 이제 막 피려는 꽃봉오리들, 우뚝 솟은 나무들과 아름다운 풀잎들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엿새 동안에 만드시고 제7일에 쉬셨으며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부모들은 이와 같이 그들의 교훈의 교과를 자녀들에게 가르쳐주므로 아이들이 천연계의 사물을 바라볼 때에 그 모든 것에서 위대하신 창조주를 상기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천연계의 하나님에게로 이끌려 갈 것이니, 우리 세계를 창조하시던 일 곧 안식일의 기초가 놓이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하여 소리하던 때를 상기하게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자녀들의 마음속에 새겨 주어야 할 교훈이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그들이 안식일에 기뻐하여서는 안 된다든가 밖에서 걸어 다니는 것은 잘못이라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에 제자들을 호수가로 인도해 내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에 항상 에워싸인 담벼락 속에서 설교하지 아니하셨다. ― (원고 3. 1879)

◎ <천연계로부터 배울 다른 교훈들, 곧 실물 교훈>
어린이들이 천연계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보도록 가르치라. 그들을 노천과, 웅장한 나무 밑과, 정원으로 데리고 나가라. 그리하여 그들이 모든 놀라운 피조물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을 보도록 가르치라.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들을 주관하는 법칙을 만드시고 우리를 위한 법칙을 만드시사 이 법칙들이 우리의 행복과 기쁨을 위하여 존재하게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라. 긴 기도와 지루한 권면으로써 자녀들을 싫증나게 하지 말고 천연계의 실물 교훈을 통하여 하나님의 법칙에 순종하기를 그들에게 가르치라. ― (시대의 소망 2권, 324)

◎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참된 개념을 가르치라 >
어린이들이 놀기 위해서가 아니요, 부모들과 함께 동무가 되어 호외에서 시간의 일부를 보내는 것보다 하나님에 대한 더욱 정확한 지식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그들의 마음에 이보다 더 깊은 감명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그들의 어린 마음을 아름다운 천연계의 경치 속에서 하나님과 사귀게 하며, 피조물 가운데 인류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에 그들의 주의를 돌리게 한다면 그들은 흥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품성을 거칠고 가혹한 모든 것과 연관시킬 위험에 빠지지 아니할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창조하신 아름다운 것들을 보므로 하나님을 온유하고 사랑이 있는 아버지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과 교훈들은 단순히 당신의 능력과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행복을 계획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랑과 자비와 아름다움과 매력적인 능력의 일면을 가지고 계시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이끌린다. 그대는 행복한 노래로 공중을 음악으로 채우는 사랑스러운 새들과, 풀잎들과 및 찬란한 색깔로 옷 입은 만발한 꽃들이 공중에 향기를 내뿜는 것에 그들의 마음을 돌릴 수가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하늘에 계신 예술가의 사랑과 기술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부모들이여, 하나님께서 천연의 책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당신의 성품에 대한 바른 관념을 가르치도록 하신 귀중한 교훈을 활용하지 아니하겠는가? 순수성을 유행의 제물로 바쳐버리고 천연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시키는 자들은 영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으므로 그들의 마음은 새로운 사랑과 흥미로 하여 활기를 띠거나 감동을 느끼지 아니하며, 천연계 속에 계신 하나님을 보더라도 외경과 존경심으로 충만하여지지 아니한다. ― (교회증언 2권, 583-584)”(자녀, 533-535)

◉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것임>
“하나님께서는 낙원에서라도 사람에게 안식일이 불가결하다는 것을 아셨다. 그는 하나님의 작품들을 더욱 충분히 숙고하고 그분의 능력과 선하심을 명상할 수 있도록 칠일 중 하루 동안은 자신의 이익과 일을 제쳐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는 그에게 하나님을 더 명확하게 상기시켜 주고 그가 누리고 소유한 모든 것이 창조주의 자선심 많은 손에서 나온 것임을 그에게 상기시킴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안식일을 필요로 하였다.”
(부조와 선지자, 48)

화요일(4월 27일)
<죄(罪) 이후로 변화(變化)된 환경(環境)>

▣ “비록 완전하게,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완전한 환경 가운데 살았지만 아담과 하와는 범죄자가 되었다. 어떻게 그토록 급진적이고 두려운 변화가 초래되었을까?

※ <죄(罪)의 기원(基源)>
하나님이 완전한 세상을 만드셨다면 어떻게 죄가 발생될 수 있었을까?
1. <하나님과 죄의 기원>
창조주 하나님이 죄의 장본인이신가?
성경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은 거룩하시며(사 6:3), 그분에게는 불의가 전혀 없으 시다고 지적한다.(신 32:4)
. 성경은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욥 34:10)라고 진술한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 1:13).
그분은 죄를 미워하신다(시 5:4, 11:5). 하나님의 원래 창조는 "심히 좋았"(창 1:31)다.
그분은 결코 죄의 장본인이 아니라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히 5:9)이시다.

2. 죄의 창시자.
하나님이 오직 프로그램대로 만 행동할 수 있는 로봇으로 우주를 창조하셨다면 죄를 막으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당신의 사랑에 자유로이 반응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드셔야 했다. 이러한 반응은 오로지 선택력을 가진 존재에게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창조물에게 이런 유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것은 피조된 어떤 존재들이 그분께로부터 돌아설지도 모르는 위험을 하나님이 부담하셔야만 한다는 의미였다. 불행스럽게도 천사들의 세계에서 최고의 지위를 가진 루스 벨이 교만하게 되었다(겔 28:17; 딤전 3:6 참고). 하나님 정부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위에 불만족하여(유 6 참고) 그는 하나님의 위치를 탐내기 시작하였다(사 14:12-14). 우주를 장악하려는 시도로서 이 타락한 천사는 동료 천사들 사이에 불만족의 씨앗을 뿌렸고 많은 천사들의 동조를 얻게 되었다. 그 결과로 빚어진 하늘의 싸움은 현재 대적 사단으로 불리는 루스 벨과 그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추방됨으로 끝이 났다(계 12:4, 7-9; 본서 8장을 보라).

3. 인간 세계에서의 죄의 기원.
사단은 하늘에서 쫓겨났음에도 반역을 단념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정부를 대항하여 다른 이들을 유혹하여 자기의 반란에 가담시키기로 결심하였다. 그의 관심은 새로 창조된 인류에게 쏠렸다. 그가 어떻게 아담과 하와를 반란 가운데로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그들은 완전한 세상에 살았으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그들의 창조주께서 공급해 주셨다.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행복의 근원이신 분께 불만족을 느끼고 불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 첫 번째 죄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첫 인간을 공격할 때 사단은 그들의 경계심을 풀어버리기로 결정했다.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곁에 가까이 오자 뱀을 가장하여 그녀에게 접근한 사단은, 하나님께서 나무 실과를 먹는 것을 금지하신 것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하와가, 나무 실과를 먹게 되면 죽으리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을 시인하자 사단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사항에 대하여 도전하며 말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 그는 하나님이 놀라운 새로운 체험, 곧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막으신다고 암시함으로써 호기심을 일으켰다(창 3:4, 5). 즉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이 뿌리를 내렸다. 하와는 그 과실이 제공할 것이라는 위대한 가능성에 매혹되었다. 유혹은 그녀의 성결한 마음을 여지없이 때려 부수었다. 갑자기 그녀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라고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자기 위치에 불만족하게 된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라는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자신의 판단력을 신뢰함으로써 하와는 하나님께 대한 의뢰심을 끊어버리고 그녀의 높은 위치에서 떨어져 죄 가운데 빠져버렸다. 그러므로 인류의 타락은 그 가장 주요한 특징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붕괴였다. 이러한 불신은 불순종으로 이끌었고, 그 결과로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으며, 결국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분리가 생겼다.

◎ <죄의 영향>
죄의 즉각적이고 장기적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
또한 죄를 제거하고 인간 본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1. 즉각적인 결과들.
죄의 첫 번째 결과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도 영향을 끼친 인간 본성의 변화였다.
새로운 흥겨운 경험, 눈을 번쩍뜨게하는 경험은 아담과 하와에게 수치감만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다(창 3:7)
사단이 약속한 것처럼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기는커녕 그들은 두려워하게 되었고 숨고자 시도하게 되었다
(창 3:8-10).
하나님이 그들의 죄에 대하여 아담과 하와에게 질문하셨을 때 자신의 과오를 시인하는 대신에 그들은 잘못을 전가하려고 노력하였다.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7)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하와,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하나님이 자기의 죄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죄 때문에 자기 아내와 자기 창조주에 대해 그가 유지하고 있던 관계가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하와도 뱀을 비난하였다(창 3:13).
그 결과로 이르러온 치명적인 결과들은 그들의 범죄의 심각성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사단의 매개물인 뱀을 저주하여 배로 기어 다닐 것을 명하셨고, 이것은 타락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이 될 것이었다(창 3:14). 하나님은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 또한 아담은 하나님 대신에 자기 아내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아 그는 고생하며 힘겹게 일해야 했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7-19).
당신의 율법의 불변성과 어떠한 범죄도 기필코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임을 재확인하시면서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그분은 범죄자들을 에덴의 본향으로부터 추방하시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단절하심으로써 당신의 판정을 실행하셨다(창 3:23, 24).
또한 그들에게 영생의 관원이 되는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것을 금지하셨다. 이렇게 해서 아담과 하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창 3:22)

2. <죄의 성질>
특별히 최초의 타락에 관한 설명을 포함해서, 수많은 성경 절들은 죄란 도덕적 악이라는 것, 곧 자유로운 도덕적 행위자가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범한 결과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창 3:1-6, 롬 1:18-22).

1) 죄의 정의.
죄에 관한 성경적 정의는 "불법"(요일 3:4),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리하"는 것(약 4:17), "믿음으로 좇아하지 아니"(롬 14:23)하는 모든 것 등을 포함한다. 죄에 대한 포괄적인 정의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명령하신 것을 행하는 데 등한히 한 것이나 혹은 그분께서 특별히 감지하신 것을 행하는 것 등,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말한다.
죄는 결코 중립을 모른다. 그리스도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마 12:30)라고 판결하신다. 그분을 믿지 않는 것이 죄이다(요 16:9). 죄는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대한 반역이기 때문에 그 성질상 절대적인 것이다. 크나 작으나 어떤 죄든지 "유죄" 판결을 받는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약 2:10)고 만다.

2) <죄는 행위뿐 아니라 생각까지도 포함한다.>
자주 죄는 구체적이고도 가시적인 범법 행위에 국한해서만 거론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어떤 이를 향하여 분내는 사람은 십계명의 여섯째 계명, 즉 "살인하지 말지니라."(출 20:13)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음욕적인 욕구는 "간음하지 말지니라."(출 20:14)는 명령을 범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죄는 분명한 불순종 행위뿐 아니라 생각과 욕구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3) <죄와 죄책 >
죄는 죄책을 가져온다. 성경적 관점에서 죄책은 죄를 지은 사람이 형벌을 면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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