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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과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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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ulcho 작성일10-04-23 13:50 조회4,1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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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 5 과 환경
5월 1일
일몰: 오후 7시 22분

도입)
인간의 죄로 인한 타락은 곧바로 생태환경의 파괴로 직결되었고, 인간의 생태환경의 파괴는 곧 인간의 생명의 단축으로 직결되었다. 왜냐하면 “땅은 너(= 인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너는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창 3:17b-18)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태환경과 인간 생명의 상호종속 관계는 구원사역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피조물이 고대 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 … 피조물이 …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8:19-21)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면 다른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본연의 책임, 곧 다스리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여, 즉 다른 피조물들을 잘 보전하고 다스림으로써, 피조물이 더 이상 인간의 죄악으로 인하여 착취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기 억 절: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1).

안식일 오후
| 연구 범위 | 창 1:2~7, 2:18~24, 3:7, 17~19, 시 24:1, 마 25:34~46, 막 2:27~28, 3:4.
| 중심 사상 | 환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 그 자체이다. 따라서 우리는 환경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창조주께서는 인간이 살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닷새를 보내셨다. 그분은 아 담과 하와를 동산에 두셨다(창 2:8, 15). 그리고 그들에게 지구의 모든 창조물들을 감독하도록 하셨다. 이런 권한은 창조 세계를 연구하며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 자, 지구에 주재하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안식일은 이런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관계의 인(印)이었다.
하지만 죄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계획을 변경시켰다. 환경은 적대적으로 변질 되었다. 즐거운 일은 고된 노동으로 대체되었다. 세상은 이기심이 지배하게 되었다. 지구의 자원들을 채굴하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자원 개발은 계속되고 있다. 숲 이 사라지고 있다. 물의 흐름이 인위적으로 변경되고 있다. 대기오염이 심각한 수준 이다. 무분별한 사용으로 토양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태양 빛은 건강의 필수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과도하게 노출될 경우 건강의 적이 되었다. 이 모든 것 을 보건대, 지구는 우리가 존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지만, 우리는 지구를 거의 무한 대로 남용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일요일
4월 25일
환경 살리기

도입)
환경오염, 지구 온난화, 엘리뇨 현상 등의 단어들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점점 높아지는 대기온도 때문에 빙하가 녹고 그로부터 생긴 각종 재해들을 보면 지구가 너무도 힘들어 하고 있다.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 지구라 말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내 삶의 터전인 지구를 병들어 가게하고 있는 주범이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밤하늘에 보이는 수많은 별들로 감상에 빠져보기도 하고, 밤새 들리는 귀뚜라미 반딧불이등 다양한 곤충을 만져보고 신기해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볼 수 없고 만져 볼 수가 없는 귀한 존재들이 되어 버렸다. 오염된 공기 때문에 도시의 하늘에서는 별을 구경하기가 정말 힘이 든다. 그 주범이 바로 우리이다. 자동차 배기가스,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와 폐수 각종 오염물질로 우리의 피와 살이 병들어 가는 것이다. 언젠가는 살기 좋은 지구도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 되어 인간의 존폐위기에 놓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 정말 끔찍하다. 삶이 윤택해지고 점점 편리해지면서 지구는 서서히 병들어 가기 시작했다. 자연을 훼손하고, 아스팔트로 둘러싼 지구가 숨을 쉴 수가 없는 것이다. 도로를 만든다. 산을 깎고, 땅이 비좁아 바다를 매우고 점점 화가 난 지구는 각종 커다란 재해로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있다. 과연 누가 지구의 주인인가. 인간이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인간은 그저 자연과 동물 모두 같은 하나의 피조물인 존재일 뿐인 것이다.

오늘날 지구의 창조를 도덕적 존재와는 관계없는 우연한 창조로 묘사하는 이론들 이 있다. 그 이론들은 오랜 시간 동안 그 누구의 의도도 없이 지구상에 모든 생명체 들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반면 성경은 우리의 기원에 대하여 완전히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우리의 기원에 관하여 진화론이 설명하고자 하는 무신론적 우연 성 모델과 창세기의 창조 기사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은 너무도 극명하다. 두 견해 는 속성상 양립할 수 없다.

1. 창 1장과 창 2:1~7을 읽으십시오. 창조 주간 동안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를 창조의 절정 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준비하셨습니까? 인간의 창조는 다른 피조물들의 창조와 어떤 차이가 있었습니까?
창조주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는 장면을 잠시 생각해 보자. 먼저, 그분은 흙으로 아담을 지으신다. 하나님은 여기서 조각가와 같다. 모든 것이 준비된 다음, 그 분은 허리를 숙여 아담의 코에 자신의 숨을 불어넣으신다. 생명의 시여자가 아담에 게 생명을 주신다.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정말 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하나님은 외과의사가 되신다. 그분은 아담의 갈비뼈 하 나를 꺼내서 하와를 지으시고 인류의 어미가 되게 하신다. 그녀가 아담 곁에 섬으로 써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진다(창 2:18~24). 그 다음 하나님께서 막 창조된 새로운 이들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놓은 멋있고 아름다운 장소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건강에 좋은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셨다. 쉴 만한 초 장, 화려한 빛깔의 꽃과 열매들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그들에게 이상적인 집을 만 들어 주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첫 조상이 게으르게 살도록 계획하지 않으셨다. 그 들은 동산을 관리하며 그 안에서 일해야 했다. 일은 그들에게 만족과 기쁨을 주 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두 번째 성경인 자연에서 하나님에 관하여 더욱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교훈: 지구의 환경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다른 생명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최적의 상태로 조성되었다.

부가적용)
오늘날의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적 재앙을 막기 위해서 연구 자료를 발표했는데 결론은 이 상태로 2015년이 넘어가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듯이 사람의 힘으로는 소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무분별하고 무절제한 인간들의 생활 방식으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먼저 우리의 신분을 정확히 깨닫고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신 자연환경을 잘 관리하고 보존해야할 거룩한 의무가 있다. 이것은 삶의 질이나 건강에 관련된 문제이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의 고백인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은총을 세상에 나타낼 수 있는 첫걸음인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선전하는 사명을 가진 성도(벧전 2:9)이며, 정복하고 다스리는 명령(창 1:28)을 받은 청지기이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구원하신 하나님, 지금도 모든 것을 놀라운 계획과 섭리로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하며 드러내기 위해서 성도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환경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내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어서 자연 환경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인해 우리가 할 바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다스리시며 보존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통치와 보전의 사역은 모든 자연을 질서 있게 하시고, 풍성함으로 채워 주시사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되게 한다. 하나님의 보전의 역사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짐승들과 작은 풀까지도 세심하게 돌보시는 분이시다.

월요일
4월 26일
안식일과 환경

도입)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과정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선 생명체의 생존을 위한 ‘생명여건’을 조성하시고, 곧 ‘빛’(해와 달), ‘물’(위의 궁창과 아래의 궁창), ‘땅’을 만드시고, 그 다음 생명체를 창조하시고, 그 다음 생명체의 생존을 위한 ‘양식’(먹거리)을 주셨다. 그래서 생명체의 ‘생명여건’으로서의 ‘빛’, ‘물’, ‘땅’에 대한 창조는 그 다음 구체적인 ‘생명창조’로 이어진다.(창 1:21)45) 끝으로 하나님은 이 모든 생명체를 다스리고, 보호할 ‘인간’을 만드신다.(창 1:26)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체의 ‘생태여건’을 먼저 만들어 놓으신 것은, 인간은 ‘생명 여건’, 곧 ‘생태여건’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 즉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생명여건’, 곧 ‘생태환경’에 서로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땅’, ‘물’ 그리고 ‘공기’가 없으면,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생존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땅과 땅에 거하는 모든 생명체’ 뿐만 아니라, ‘생명여건’도 잘 보존해야 할 청지기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는 ‘생명여건’과 ‘생태학적 상호 종속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자연환경을 잘 보존해야하고, 자연은 인간에게 상당한 열매를 ‘먹거리’로 제공하는 ‘생존의 상호관계’가 있다. 인간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야 할)”(창 1:28, 또한 1:26) 책임이 있고,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창 1:29)는 인간에게 ‘먹거리’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시기 전까지는 창조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 말 흥미롭다. 세상을 만드시고, 바다와 풀과 동물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을 만드시는 모든 창조 사역을 마친 후에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쉬셨다.

1. 창 2:2, 3을 읽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쉬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창조자 하나님께서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셨단 말인가? 이는 안식일의 오래된 기원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안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대 나라와 백성들이 존재하기 전에 제칠일 안식일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이다.
안식일은 피조물을 돌보시는 창조주의 사랑과 관심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기회이다. 안식일이 없다면 그런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안식일은 노동의 한계를 정해 준다. 일이 힘들지 않아도 안식일에 쉬어야 하며, 생산적인 때라도 안식일에 노동은 중지되어야 한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 노동의 강도와 피로감이 더해졌기 때문에 안식일에 노동을 중지시키고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명령은 더욱 중요해졌다(창 3:17~19). 또한 창조의 기념으로서 안식일은 창조 세계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부각시켜 준다.
수세기가 지나는 동안, 안식일에 관한 갖가지 규율과 규칙들이 생겨나면서 안식 일 휴식의 참의미는 퇴색되었고, 사람들의 생각도 그것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에서 멀어졌다.

2. 막 2:27~28과 막 3:4을 읽으십시오. 주님은 안식일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 까?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셨던 목적대로 안식일의 의미를 회복하셨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구하며, 가난한 자들을 돕는 선한 일을 행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그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친히 보여주셨다.

교훈: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와 환경의 가치를 돌아보며 쉴 수 있는 좋은 날이다.

부가적용)
물을 떠나서 고기가 살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생태환경’을 벗어나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생태환경’의 파괴는 곧바로 인간 생명의 종식을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생태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해야할 뿐만 아니라, 환경문제를 야기(惹起)시키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피조물의 생태환경을 다시 회복하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청지기 직분을 잘 수행하려면, 인간의 생명은 ‘생태환경과 상호존속’되어 있다는 사상이 가슴 속 깊이 뿌리내려야 할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 집에서 내 뿜은 악한 공기를 내가 다시 들어 마신다는 생태학적 순환의 원리를 가슴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의존적 생명이라는 것은 우리는 더 큰 하나님께 의존된 생명임을 깨우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안식일을 주셨다. 안식일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창조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예증인 것이다. 인간의 완전한 생태환경 조성과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만족한 삶은 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부터 라는 사실을 나타내주는 것이 바로 안식일이다.

화요일
4월 27일
죄 이후로 변화된 환경

도입)
인간의 타락은 지구 전체에 영향을 가져 왔다. 인간 자신의 생활 전반에 변화가 오고 음식 생활에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인간의 범죄 이후 지구 전체 환경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을 가르쳐 준다. 노아 홍수 이후 대륙의 대변혁 화신 폭발 같은 엄청난 규모의 융기 침강이 있었다. 그래서 다지층 나무 화석은 많은 경우 소위 여러 시대의 지층에 걸쳐 거꾸로 또는 엇비스듬히 잘린 기둥처럼 된 것들이 화석화하여 곳곳에 남아 있다. 에베레스트나 다른 고산 지대에 바다 생물의 유해들이 많이 발견된다. 극지방에서 온대성 푸른 풀을 위장에 그대로 담고 있는 채 발견되는 맘모스와 같은 것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또 바벨 성 사건 이후 대륙 분리 이동 등도 계속된 타락의 영향이다. 세계 지도를 보면 각 대륙의 모양이 한 덩어리에서 분리되었다는 것을 익히 알 수 있도록 대륙들의 모양이 한 곳에 결합될 수 있는 퍼즐 조각처럼 현재의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땅의 왕된 인간이 죄에 타락함은 모든 동식물과 자연계와의 관계 언약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현재의 세상은 창조 원형에서 크게 왜곡된 모습과 성징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1. 창 3:7, 17~19을 읽으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열매를 범한 결과로 나타난 첫 번 째 징후는 무엇이었습니까?

삶 속으로 죄가 침투하자 아담과 하와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첫째로 엘렌 G. 화잇이 언급한 것처럼 그들을 덮었던 영광의 옷이 사라졌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환경이 변한 것이다. 식물들의 환경도 변했다.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기 시 작했다. 토양도 거칠고 사나워졌다. 가장 심각한 변화는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죽음의 그림자였다.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훌륭한 환경이 순식간에 낯을 바꿨다. 새로운 환경은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고,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환경의 도전은 더 험 난해져갔다. 인간들은 자신의 이익과 영화를 위해 땅의 자원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2. 왕상 10:14~22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에서 인간들은 창조를 어떻게 보게 되었습니까?

자원개발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원을 당연히 주어지는 생태순환의 일부로 여기는 바람에 부패와 손실, 죽음의 문제가 모든 사람들에게 발생하였다. 하지만 처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다. 지구에 대한 인류의 청지기 직분은 결과에 상관하지 않고 지구의 자원을 마음대로 사용하려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자원개발이란 이름으로 변질되었다.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질오염, 신종 질병의 출현 등은 지구의 때가 거의 다했고, 종말론적인 갱신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각 나라들이 개발을 원하고, 개발도상 국가나 선진국들이 수준 높은 삶을 유지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런 욕망들이 환경 을 파괴하기 때문에 인류가 직면하게 될 건강문제는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교훈: 죄는 지구의 환경을 변질시켰는데 그 가운데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자원개발이 포함된다.

부가적용)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 아래 있어서 각종 비참함과 죽음이 이 세상에 임하고 있다. 기근과 지진, 태풍과 해일 등의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세상을 폐허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이것을 단순한 자연 현상이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성경은 이런 것을 자연현상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원래의 자연은 아름답게 창조 되었다. 이 자연은 생명력으로 차 있었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로 인류가 더럽힘으로 인하여 그 아름다움을 잃어가며, 원래의 원칙을 벗어나서 인간 세상에 해를 끼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다. 질병들도 마찬가지다. 이름 모를 병, 이름을 알아도 약이 없어서 고치지 못하는 병, 약이 있어도 병이 약을 이기기 때문에 듣지 않는 질병 등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인간이 앓고 있는 모든 질병은 다 저주와 진노의 표적이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결국 다 죽음을 맞게 된다. 죽음이란 노쇠와 퇴화요 몸에 이상이 발생하여 생명이 더 이상 유지 될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에덴에서도 자연적으로 죽는 죽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만약 인간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노쇠와 퇴화를 극복하고 마침내 주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었을 것이다. 에덴에서는 몸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죽음이란 결국 인간의 타락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죽음이란 비참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더욱 비참한 것은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이 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가진 인간의 마음이 선을 행하지 않고 그 자유를 가지고 악을 행한다.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죽이고, 전쟁하는 것이 인간의 악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인하여 인간은 더욱 비참함에 빠져 있다. 어쩌면 모든 비참함은 인간의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모든 비참함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수요일
4월 28일
환경에 대한 우리의 책임

도입)
환경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본격적인 논의는 1972년 로마클럽의 보고서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클럽은 세계의 여러 이슈들을 논의하고 보고서 형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통해 경제성장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알림으로써 환경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 책은 “연못에 수련이 자라고 있다. 수련이 하루에 갑절로 늘어나는데 29일째 되는 날 연못의 반이 수련으로 덮였다. 아직 반이 남았다고 태연 할 것인가. 연못이 완전히 수련으로 뒤덮이는 날은 바로 다음날이다”. 라는 비유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환경이 파괴 되고 나면 경제성장은 무의미함을 설명하였다. 지금과 같이 화석연료에 의존한 인간 활동이 계속 된다면 금세기말 지구의 온도는 온실가스 배출량 정도에 따라 최대6.4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이렇게 되면 북극 빙하는 21세기 말에 완전히 녹아 없어질 것이고 폭염과 집중호우 등 기상이변이 빈발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측했다. 사실 지구의 기후는 항상 변해왔고 인류는 이에 적응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몇 천년에 거쳐서 서서히 일어났던 기후변화가 최근 수십 년 사이에 급격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지구 자전축의 변화 같은 자연적 요인에 의해서도 발생하지만 최근의 격한 기후변화는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 산림의 벌채 등 인간의 행위에 의한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결론지었다. 즉 지구는 인간에 의해 더워지고 있다.

1. 시 24:1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세계와 관련을 맺습니까? 세계의 상황을 둘러볼 때 환경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 엇을 할 수 있습니까?

지금이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지구의 통치자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 는 그분이 창조하신 작품에 대하여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지구뿐 아니라, 모 든 사람들이 그분의 소유이며 그분이 창조하신 작품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과 다른 지구의 창조물에 대하여 책임을 부여받았다. 따라서 우리는 환경을 보존해야한다.
물이 한 가지 예이다. 우리는 물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깨끗한 물을 얻기 힘 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제공하기 위한 여러 단체들의 노력을 지원할 수 있다. 세계의 어떤 지역에서는 심각한 물 부족 현상이 수많은 인명의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식사 원칙을 따를 수 있다. 세상에 채식주의자들이 많을수록 식량 수급은 훨씬 수월해진다. 왜냐하면 육식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 난 식량자원이 가축 사료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과 나무를 돌보는 것도 우리의 책임이다. 그렇게 하면 깨끗한 공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탄소배출량을 감소시켜야 한다. 탄소배출은 잠재적으로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점차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는 지구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환경을 지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천연자원을 독점하지 말아야 하며, 풍요를 다른 이들과 기꺼이 나눠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다.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므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여겨야 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은 자연과 인간을 포함하여 자신의 작품들을 주인의식을 가지고 돌볼 청지기를 찾으신다.

부가적용)
옛날에는 우리 조상들이 자연 속에 신성(神性)과 마력(魔力)이 있다고 여겼다. 큰 산이나 나무나 물속에 신이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런 신앙을 정령론(精靈論, Animism)이라 한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자연을 두려워하고 섬기기도 하였다. 그런 연고로 자연을 개발하거나 훼손함을 금기시 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의 창조신앙은 자연을 비신격화(非神格化)하였다. 자연은 하나님의 피조세계이고 인간의 생존과 발전을 위하여 주신 선물이다. 이런 창조 신앙이 자연과학의 발전을 촉발시켰다. 이리하여 자연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이 서구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자연과학의 발전에 따라 환경이 파괴되고 오염되었다. 결과로 오늘날과 같은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독교가 환경파괴의 주범이란 비판이 일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창조신앙이 생태계 위기의 주범이란 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로마서 8장에는 성령께서 고통당하는 피조물과 함께 아파하며 탄식한다고 이르셨다. 하나님은 인간들에 의하여 착취당하고 파괴당한 피조물들과 함께 신음한다. 하나님은 인간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 전체를 사랑하신다. 마태복음 10장에서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은 사랑하신다고 하였다. 진정한 창조정신은 창조세계를 선하게 보전하는 것이며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연을 보존(保存)하는 일에 선한 청지기로 앞장 서야 한다.

목요일
4월 29일
태양 숭배자들

도입)
인간은 햇빛을 받아가며 살아간다. 모스크바의 하늘은 겨울 중 하늘 의 80%이상이 구름에 뒤덮여 햇볕을 접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정서 적 불안감을 느끼고 '극지방 히스테리'에 빠진다. 2차 대전 당시 러시아에 주둔하고 있던 타국의 병사들은 소심함, 공포감, 병적인 우울증 , 불면증, 자살충동과 밀실 공포증 등 다양한 증상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햇빛 아래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른해지는 것을 느낀다. 햇빛의 부족은 비타민 D의 결핍을 초래하는데 비타민 D는 자궁에서 아이의 뇌를 발달시키는데 작용한다고 여겨지고 있다. 호주 Queensland의 정신 분열 연구 센터에 있는 John McGrath는 발달 초기에 비타민 D가 부족할 경우 정신분열증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고 보고하였으며 후속으로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그의 이론을 한층 더 뒷받침해주었다. McGrath는 임신중 비타민 D가 부족한 성인 쥐에서 인간과 같은 정신 분열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소음에 의한 것보다 더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연구가 임신중 비타민 D의 부족이 정신 분열증을 이끈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 그러나 쥐 실험는 비타민D의 턱없는 부족이 뇌를 망가뜨릴 수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New Scientist, 2001; 2002).

오직 영원의 관점에서만이 죄가 환경에 미친 부정적 영향력을 완전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창조 직후의 환경이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이 살기에 얼마나 최적의 상태였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물론 죄는 땅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죄가 인간에게 미친 부정적인 영향중에는 우상숭배가 있다. 우상숭배는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과는 반대로 창조물들을 경배하고 섬기는 형태로 나타난다.

1. 왕하 23:5, 렘 8:2, 겔 8:16을 읽으십시오.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사람들은 어떤 이 유에서 태양을 숭배하게 됐을까요?

오늘날 지구의 환경에 관하여 태양 숭배자들에게는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 그것은 햇빛이 건강에 아주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노출됐을 때 매우 유해하다는 것이다.
햇빛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다양한 종류의 피부암이 발생할 위험이 증가한다. 반 면 햇빛은 비타민 D 형성에 도움이 된다. 비타민 D는 우리 몸의 신진대사와 건강한 뼈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또한 적당한 햇빛은 몇 가지 암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햇빛을 어느 정도 쬐는 것이 적당할까? 적도 부근에 사는 밝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비타민 D 형성을 위해 적어도 하루 5분의 일광욕을 해야 한다. 반면 같은 조건에서 사는 어두운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적어도 하루에 30분의 일광욕을 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일조량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비타민 D를 약으로 보충해야 한다.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어서 방안에 햇빛이 들어오도록 하면 살균에 도움이 된 다. 연구 결과 적당한 햇빛을 쬐지 못하는 사람은 계절적인 우울증(또는 계절적인 정서 장애)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런 문제는 특별히 겨울에 낮 시간이 짧은 지역에서 발생한다. 치료법은 매우 간단한다.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겨울에 빛을 쬐는 것이다.

교훈: 적당한 햇빛은 건강에 필수적이지만, 과도하면 해가 된다.

부가적용)
성경은 하나님을 빛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본성과 성품 안에도 빛이 있었다. 물론 빛도 하나님의 피조물에 속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 인류에게 빛을 자신을 설명하는 도구로 삼으셨다. 사도 요한은 예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했다. 예수는 참 빛이었던 것이다. 요한복음 3장은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고 했다. 예수님은 스스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다(요 8:12). 물론 예수님이 자신을 빛이라 한 것은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그런 차원의 단순한 빛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자연의 하나님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하나님인 것이다. 보이지 않은 세계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직접 인간의 제한 속으로 들어오셨다. 자연과학적 영역도 당연히 중요하다.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도 피조세계요. 지금의 피조세계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손으로 하신 일(시 19편)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피조세계에 토하신 첫 말씀도 빛이 있으라(창 1:3)였다. 이 빛은 하나님께서 태양과 달빛(창 1:16)을 만들기 전에 이미 만드신 빛이었다. 하나님은 빛이신 동시에 빛들(포톤, photon)의 아버지였다(약 1:17). 빛은 하나님의 창조와 거룩과 위엄을 보여주는 광채인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아담과 하와도 사실 빛을 입고 있었다. 한자의 빛 광(光)자는 첫 두 사람인 아담과 하와에게서 무언가 빛이 나오고 있음을 상징하는 글자로 보인다. 물론 지금도 사람의 몸에는 미량의 빛이 존재한다. 그러니 그 빛으로 인해 사람이 서로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빛으로 오신 것이다. 예수님의 치유는 영적인 것뿐이 아니었다. 육적인 것을 늘 포함한다. 태양은 시공 속에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의 생명과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것을 만드신 대태양(大太陽) 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잊지 말아야 한다. 태양은 단지 그 태양을 만드신 더 크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볼록렌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금요일
4월 3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부조와 선지자, 44~51 “창조”, 각 시대의 대쟁투, 675~678 “대쟁투의 종결”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지금 우리가 보는 자연은 에덴의 영광을 단지 희미하게만 전해주고 있을 뿐 이다. 모든 것들이 죄의 흔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자연은 무한한 능력과 자비와 사랑의 구주께서 지구 를 창조하시고, 생명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비록 훼손 되었을지라도, 만물이 위대한 예술가의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우 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그분의 선한 품성의 증거를 볼 수 있다.”(The Ministry of Health and Healing, 23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환경문제, 특히 지구 온난화 문제가 최근 들어 뉴스의 머리말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2. 안식일이 환경의 문제에 대하여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안식일 준수 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환경 보호자가 될 수 있을까요?
3. 예수께서 빨리 재림하신다면, 우리가 정말 환경 문제를 심각하게 다룰 필요가 있습니 까? 그대의 답은 어떻습니까?
4. 작더라도 환경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삶의 방식은 무엇일까요?
5.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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