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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 선택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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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4-05 14:14 조회4,1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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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4월10일(일몰 : 오후 7시 3분)

제 2 과 선택(選擇)의 능력(能力)

핵심본문 : 신 30:19~20
연구범위 : 창 2:16~17, 3:1~13, 신 30:10~19, 시 119:11, 골 3:2, 히 11:8~10.

<기억절(記憶節)>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단 1:8).

<중심사상(中心思想)>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선택의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모든 선택에는 그 결과가 따른다.

<교과개요(敎科槪要)>
깨닫기 :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던 성경의 인물들을 배운다.>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감당하신 희생을 인식함
느끼기 : <자유의지의 높은 가치와 그것을 위한 대가(代價)>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부여하신 자유 의지를 소중히 여김
행하기 : <생명을 선택함>
그리스도와의 동행을 매일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방법을 모색함

<서언(序言)>
▣ <내가 잘한 선택>
1>. 부모(父母)와 성별(性別), 가문(家門)은 나의 의사(意思)와 선택에 상관없이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것이지만 그 다음의 대부분은 나(자신)의 선택에 의한 결정이다.
많은 선택 가운데는 중요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또 올바른 선택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올바른 선택과 올바르지 못한 선택으로 그의 인생에 참으로 중요한 결과를 가져 온다.
그러므로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의식주(衣食住), 친구, 학교, 결혼, 취미, 직장, 물품의 구입, 행동 등등의 선택은 본인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즉 예수님을 자신의 생명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선택보다 더 중요한 선택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주인(主人)이시기 때문에 모든 선택을 그 분을 통해서 여쭙고 종으로서 감수한다는 마음의 중심이야 말로 모든 선택이 잘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선택하신 분은 참으로 잘하고 가장 중요한 옳은 선택을 잘한 것입니다.

<요점(要點)>
하나님께서 선택의 자유, 자유의지에 부여하신 높은 가치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계획 속에 나타났다. 그리스도의 희생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났으며,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구주(救主)로 선택함으로 감사의 마음을 드리게 된다.

일요일(4월 4일)
<진정(眞正)한 자유(自由)>

▣ [진정한 자유]
자유로움이란 ?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집착이나 현실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현실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 자유로움의 출발이라 생각이 됩니다.
즉 죄의 사슬로 묶여있는 죄인들이 자유로움을 갖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죄인들은 세상(世上)안에 가쳐 있기 때문에 자유 함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죄악(罪惡)된 세상에서는 무엇이든 비교를 해야 되고, 살아남을 여면 생존 경쟁에서 싸워서 이겨야만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이 죄인들을 묶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1등만 해야 살아남는다는 다는 세뇌(洗腦)를 받은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진정한 자유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自由)”케 하리라 말씀하신 분안에 거할 때 에야만 가능함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 거(居)하는 법을 배운 참된 제자가 되어야만 비로소 진리를 알게 되고 글 진리가 우리를 자유(自由)케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居)한다”는 말은 들어왔다 나갔다 하지 않고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뜻합니다. 말씀 안에 거(居)하는 삶은 바로 주님의 멍에 안에 머무는 삶입니다.

주님은 또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그 분 안에 거(居)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는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오직 그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한 곳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 수 있는 것은 그곳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주님이 가르쳐 준 진리(眞理)를 알면 그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안다"고 하는 단어는 함께 살 떼에만 알게 되는 깊이 있는 앎을 뜻합니다.
<예(例)>
우리는 미국(美國)에 살고 있는 현재 “오바마”대통령에 대해서 얼마든지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무엇이고, 그의 가족은 누구이며, 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한 번도 개인적으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아는” 관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면서 그분과 동행(同行)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어떻게 “아는”의미가 있겠습니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습니다.
예전과 비교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리(眞理)를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안다고 할 때는 진리와 함께 하는 삶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진정한 자유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진정한 자유는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사명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사명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안 먹고는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었으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연속된 선택의 결과였다. 각 단계에서 그들은 점점 하나님과 멀어졌다. 그들의 선택 과정에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제외되어 있었다.

인간의 도덕적 자유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가 자유를 남용한 결과 그분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보라. 이 선물은 너무도 중대한 것이어서 우리가 이 선물을 남용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 권리를 철회하거나 우리를 절망 중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대신 십자가로 달려가셨다.

◉ <선택의 자유는 하나님의 계획(計劃)임>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면, 그의 순종은 자원하는 순종이 아닌, 강요된 굴종이 되었을 것이다. 품성의 계발은 전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방침은 다른 세계의 주민들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가지신 계획과 배치될 것이었다. 이것은 지성적 존재로서의 사람에게는 합당하지 않은 것이 되었을 것이며 하나님은 독단적 군주라는 사단의 비난을 뒷받침해 주었을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49)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덕적 자유를 주셨다는 것은 우리를 그만큼 완전한 존재로 만드셨다는 뜻이다.

월요일(4월 5일)
<잘못된 선택(選擇)의 결과 : 죄책감(罪責感)과 두려움>

▣ 죄책감(罪責感)과 두려움은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오는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그 선택의 자유를 주신 것이다.

◈ 아담과 하와가 경험한 것은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두려워 숨었다.
그 이유는 오늘날도 그들과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말씀을 불신(不信)하면 불순종(不順從)하게 된다.
죄는 두려운 감정을 느끼게 한다.
죄는 양심(良心)을 거스르고, 죄인은 하나님을 피(避)하게 된다.
지금 사람들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만나기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한다.

◉ 물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그분께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머리카락도 헤아리시는 분을 우리가 어떻게 속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우리는 정말 쉽게 다른 이들에게 비난과 책임을 돌린다.
“만약 내 상사가 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배우자가 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시험을 거두셨더라면, 나도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랬다면, 만약 저랬다면.” 물론 존재의 기본 바탕을 흔들어 놓는 강력한 유혹이 우리에게도 종종 찾아온다. 상황은 불리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부패하고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혹이나 시험이 찾아오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굴복한다. 죄의 결과는 죄 자체만큼이나 참혹해서, 우리가 그 책임을 인정하기를 거부할 때,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니 우리가 죄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어떻게 죄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 가룟 유다는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는 참으로 멋진 사람이었고 그의 인격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유다)는 인간의 눈과 판단(判斷)으로 모든 면에서 선택(選擇)을 잘 할 사람으로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작은 선택일지라도 전능자의 도움을 간구하지 않고 하는,
모든 선택은 유다의 경우처럼 실수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교훈하여야 하겠습니다.

“제자들은 유다가 그들의 동료가 되기를 심히 원하였다.
그는 당당한 풍채의 소유자로서 예리한 식별력과 행정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으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업에서 크게 조력(助力)할 자로서 유다를 예수님에게 추천(推薦)하였다.”(소망, 294)

▣ 유다의 선택들을 살펴봅시다.
1. 유다는 예수님12 제자 중에서 유독(惟獨) 스스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예수님을 선택하였고.
2. 유다는 예수님을 은(銀)30에 팔기로 선택하였고,
3. 유다는 예수님의 많은 기회로 회개(悔改)와 거듭날 수 있는 기회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기로 선택하였고,
4. 유다는 예수님을 팔고서도(범죄후)도 죄책감에 후회(後悔)는 했지만 회개(悔改)를 선택하지 않았고,
5. 유다는 예수님을 판 후에 자살(自殺)하기로 선택한 자이다.(마태복음 27:3-8)

◉ <자기 합리화(合理化)는 죄의 결과(結果)임>
“자기 합리화의 정신은 거짓의 아비에게서 비롯되었다. 우리의 최초의 조상은 사단의 감화에 굴복되자마자 이 정신에 빠졌으며, 아담의 모든 자녀들이 이 정신을 나타내 오고 있다. 사람들은 겸손하게 그들의 죄를 자복하는 대신에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환경에, 또는 하나님께 씌움으로 자신들을 방어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심지어 그분의 축복까지도 그분께 불평할 이유로 삼는다.”(부조와 선지자, 58)

◉ 그리스도께서 온몸을 통하여 나누어 주시는 사랑은 하나의 생명력(生命力)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뇌(腦), 심장(心臟), 신경(神經)등과 같은 모든 중요한 부분에 치료하는 영향을 미친다.
예수님의 사랑에 의하여 사람은 최고의 능력들이 활동하게 된다.
예수님의 사랑은 생명력을 파멸시키는 죄책감과 슬픔, 근심과 걱정에서 심령을 해방시켜 준다.
예수님의 사랑과 더불어 평온(平穩)과 안정(安靜)이 온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세속적(世俗的)인 것이 파괴(破壞)할 수 없는 기쁨은,
곧 성령 안에 있는 기쁨은 건강을 주고 생명을 주는 기쁨을 심령(心靈)속에 심어 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니 죄인(罪人)을 초청하십니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 우리 구주(救主)의 말씀은
육체적(肉體的), 정신적(精神的), 영적(靈的)질병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비록 사람들이 그들의 잘못으로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초래하였을지라도
그분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다. 그들은 그분 안에서 도움을 찾을 수 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실 것이다. <치료봉사, 115(영문)>.

◉ 죄의 책임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것도 타락의 결과이다.
그러나 죄의 극복은 잘못을 시인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화요일(4월 6일)
<선택(選擇) : 선(善)과 악(惡)>

▣ 어떤 사람은 한자(漢字)로 선(善)과 악(惡)을 이렇게 풀이를 해본답니다.
善과惡에서 한자를 생각하면서
선(善)은 양(羊)과 입구(口)자입니다.
그러므로 양(羊)을 예수님(희생 양)으로, 입구(口)자를 예수님의 말씀(말씀을 뜻하는 입)으로 간주해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선(善)이고,
악(惡)이란 버금 아(亞)로 십자가(十字架)의 모양이고,
그리고 마음심(心)이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자들의 마음이 바로 악(惡)아라고 풀이도 한답니다.

▣ 예수님의 족보에도 나올 만큼 훌륭한 다윗의 악(惡)과 선(善)의 선택을 살펴보자.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 아버지의 양(羊)무리 가운데서 택하셔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셔서 성령의 감화에 예민(銳敏)한 충실한 사람이 되도록 훈련시키셔서 그를 사용하셨다.
그는 믿음의 사람으로 크고 힘센 블레셋 장군 인 골리앗을 그가 모욕(侮辱)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를 물매 돌로 쓰러뜨린 믿음의 거장 이였고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 왕(王)을 해(害)치기를 원치 않는 올은 일을 선택한 다윗 이였다. 그런 그가 악(惡)을 선택한 것을 살펴보자.

(사무엘 下 11장2-27절)의 기록을 보면,
목욕(沐浴)하는 여인을 보고 그를 자기의 욕망으로 악(惡)한 일을 도모하여 살인까지 하게 되는 악(惡)을 선택한 사실을 성경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삼하11장27절)에 “다윗의 소위(所爲)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惡)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다.
(삼하 12장)에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그에 죄를 여실히 지적 하였을 때 다윗은 회개(悔改)함의 옳은 선택을 하였음을 통하여 인간은 누구나 실족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銘心)하여야 할 것이다.

▶ <다윗의 범죄의 동기>?
“다윗은 겸손(謙遜)히 여호와의 능력을 의지하는 대신에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意志)하기 시작한 때부터 사단이 영혼을 유일한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에게서 분리(分離)시킬 수 있게 되자마자 그는(다윗)은 인간의 육체적 충동의 거룩하지 않는 욕망(慾望)을 일으켰다. <부조와 선지자 717-718p>

❶ <히 11:8~10>의 말씀은 아브라함과 그의 선택들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 순종(順從)하기로 선택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약속(約束)을 받고도 “하갈”을 후처(後妻)로 들인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 “일부다처(一夫多妻)는 아주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어 버렸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는 일이었으며 가족관계의 신성성과 평화에 치명적이었다.
아브라함과 하갈과의 결혼은 그의 가정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나쁜 결과를 빚어내었다.”(부조와 선지자, 145)

◉ <다니엘 1:8~16>의 선택을 보자.>
다니엘이 마음먹고 했던 말은 그의 선택이 확고하며 흔들림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의도적(意圖的)이고 신중한 결정은 다니엘의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쳤으며, 주님의 특별한 축복과 돌보심의 근거가 되었다. 다니엘은 매일(每日) 경건(敬虔)의 시간 때마다 주님을 향한 그의 충성심을 새롭게 다졌다.

❷ 우리가 옳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그것을 행하기로 마음에 확정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좀 더 쉽게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생각을 훈련시키는 방법 명심하자.
<시 119:11, 빌 4:8, 골 3:2. 참조 >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위엣 것을 생각하며 무엇에든지 참되고 옳고 정결하고 덕스럽게 살도록 주님께 기도하며 성령의 주장을 간구해야 한다.

○ 우리는 옳은 것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어야 하는데 옳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들이다.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실패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편에서 죄책감과 좌절감 때문에 스스로 포기해 버릴 위험이 있다.
그런 경우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십자가 밑에 무릎 꿇고 예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 <그리스도를 선택(選擇)하라>
“주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히 저희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인류 앞에 선과 악을 두시고 그 중의 한편을 따르는 데서 초래될 확실한 결과를 명백히 알려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따르라”고 초청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강요받지는 않는다. 만일 우리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면 그것은 바로 심사숙고한 후에 행한 선택의 결과일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애와 품성을 보게 될 때 그분과 같이 되려는 강한 욕망이 일깨워진다.”(청지기에게 보내는 권면, 137)

◉ 타락 이후 우리의 본성은 변했지만,
여전히 선택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마음먹어야 한다.

수요일(4월 7일)
<선택(選擇)과 다음 세대(世代)>

▣ 우리가 인도에서 태어났다면 거의가 “힌두교 인”이 되었을 것이고, 태국이나 미얀마(미안마)나 티ㅤㅂㅔㅌ에서 태어났다면 거의가 “불교”인이 되었을 것이고, 사우디아라비아나 중동에서 태어났다면 거의가 회교(이슬람)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아버지와 그 윗대의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계속하여 전통적인 종교를 세대로 세대에 대물림하여 내려왔고 대물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아합 왕”과 그의 아내 “이세벨”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역사에 아주 악한 사람으로 왕으로 기록된 아합 왕은 그의 아내인 이세벨로 부터의 모든 영향을 받았는바
그의 아내인 이세벨은 그의 어린 시절과 그의 가정에서 잘 못 받은 교육의 결과로 그 토록 역사에 나쁜 영향을 끼쳤음을 교훈해야겠습니다. “이세벨의 가정교육을 살펴봅시다.
“시돈 사람의 왕이”요 바알의 대 제사장인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 이세벨과 그의 불경한 사제들의 감화를 통하여 백성들은 세워진 우상(偶像)들이 그들의 신비스러운 능력으로 땅과 불과 물과 같은 자연을 지배하고 있는 신들이라고 가르침을 받았다. (선지자와 왕 104-105 참조)

▣ 성경에서 선택과 다음세대에 영향을 끼친 실제의 실례(實例)를 주목하여 봅시다.
◎ “유명(有名)한 아버지의 문제의 아들”
우리말 속담에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뜻에서 사용 하지만
오늘의 말씀은 그와 정반대(正反對)되는 이야기로써 중요한 교훈을 갖고자 합니다.
여기 여덟 사람의 두 명씩 두 명씩 네 짝의 남자들이 있습니다.
① 나답과 ② 아비후
③ 흡니와 ④ 비느하스
⑤ 요엘과 ⑥ 아비야
⑦ 암논과 ⑧ 압살롬
즉 훌륭한 아버지들의 문제아들입니다.
아 론(제사장)의 아들인 = ① 나답과 ② 아비후
엘 리(제사장)의 아들인 = ③ 흡니와 ④ 비느하스
사무엘(제사장)의 아들인 = ⑤ 요엘과 ⑥ 아비야
다 윗(제사장 겸 왕(王))의 아들인 = ⑦ 암논과 ⑧ 압살롬 등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각자가 여러 말로 표현 할 수 있겠지만 저들은 한마디로 “유명한 아버지의 문제아들”이라고 표현 합니다. 그들의 아버지는 모두 유명한 지도자들입니다.
1.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 에 대한 기록은 (레위기 10:1 / 민수기 3:2-4 / 민 26:61)
에 기록되어 있으며
2. 제사장 엘리의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 에 대한 기록은 (사무엘 상 1:3 / 2:12-17)에 기록되어 있으며
3. 제사장 사무엘의 아들 “요엘”과 “아비야” 에 대한 기록은 (사무엘 상 8:1-3) 에 기록되어 있으며
4. 다윗 왕의 아들 “암논”과 “압살롬” 에 대한 기록은 (사무엘 하 13:1-39) 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성경은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중요한 사업에 관하여 분명하게 지시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신 6:4-6).
부모들은 하나님과 스스로를 연결시켜야 한다.
그들은 그분을 두려워해야 하고 그분의 뜻을 아는 지식을 소유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사업을 하게 된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記錄)할지니라”(신 6:7-9).

여기에 우리의 시대까지 미치는 적극적인 지시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분은 이해되고 순종 받으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시 19:7).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시 119:130).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 이니이다.”(시 119:105).

여기에 부모들의 의무가 분명히 밝혀져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매일의 권고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교육에 관하여 실수할 필요가 없는 그런 교훈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냉담이나 나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율법은 자녀들의 마음 앞에 위대한 도덕적 표준으로 계속 제시되어야 한다.
그들이 일어날 때, 그들이 앉을 때, 그들이 나갈 때, 그들이 들어올 때, 이 율법은 생애의 위대한 법칙으로써 그들에게 가르쳐져야 한다. 그리고 그 원칙은 그들의 모든 경험과 함께 짜여져야 한다. 그들은 정직하고, 신임 있고. 존절하고, 심약하고, 부지런하고,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그들을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키우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발을 의무와 안전의 길에 세워 준다.
젊은이들은 무지하고 경험이 없다. 성경과 그 거룩한 진리들에 대한 사랑은 저절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사단의 간계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그들 주위에 울타리를 치지 않으면, 그들은 그의 유혹에 굴복당하고, 그의 뜻대로 그에게 사로잡히게 된다.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와 죄의 오점에서 정결케 되기 위하여 예수님을 우리의 구속주로 믿는 믿음을 교훈 받아야 한다. 이 믿음은 교훈과 믿음을 통하여 날마다 가르쳐야 한다. 엄숙한 책임이 부모들에게 지워져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의무를 분명히 등한히 할 때 주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축복하시겠는가? 자녀들은 어릴 때에 꼴 지워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부드럽고 진리의 감화에 민감한 동안에 여러 해가 지나가고, 그들의 도덕적 계발에는 별반 시간이 바쳐지지 않는다. 진리와 의무에 대한 귀중한 교훈들은 매일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얻어야 한다. 이것은 다른 어떤 책들에서 얻는 지식보다 그들에게 더 큰 가치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는 것은 우리 구주의 말씀이다. 교리에 관한 오류들은 증가되고 있으며, 뱀같은 간교로써 사람들의 애정을 두르고 있다. 부인당하지 않은 성경의 교리는 없다. 세계의 역사에서 우리의 위치를 알려 주는 위대한 예언의 진리들은, 이 중요한 진리들을 어둡고 이해할 수 없게 만들고자 애쓰고 있는 성직자들에 의하여 그 아름다움과 능력을 빼앗겼다. 많은 경우에 어린이들은 옛 지계표에서 흘러 떠내려가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다.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 하거든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 온 집에 베푸시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신 6:20-25).

여기에 우리가 무관심하게 취급해서는 안 될 원칙들이 있다.
진리를 깨닫고 그 중요성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물을 경험한 자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건전한 교리를 가르쳐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믿음의 큰 기능들을 잘 알아야 하고, 왜 우리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이 되었으며, 왜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으로 불리워지고, 지상의 다른 모든 백성들과 다르고 구별된 특별한 백성,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이런 것들은 쉬운 말로 이해하기 쉽게 자녀들에게 설명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세월을 따라 성장할 때, 전달된 교훈들은 증가되어 가는 그들의 이해력에 상응하게 되되 마침내 진리의 기초가 넓고 깊게 놓여질 때까지 그렇게 되어야 한다.
부모들이여, 그대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한다. 그대들은 순종하는 자녀들인가?
그대들은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그분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대 자신들이 불붙인 불빛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가?
그대들은 원수를 이기고 자녀들을 그의 간계에서 구출해 내기 위하여 날마다 활동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귀중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그들에게 펼쳐 주고, 그들의 어린 발이 진리의 기초 위에 놓여지도록 우리의 믿음의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는가?

귀중한 진리의 보석을 가진 성경은 학자만을 위하여 기록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되었다.
성령의 도움을 받은 평범한 사람들이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하는 해석이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와 가장 잘 조화를 이루게 된다. 구원을 위한 위대한 진리들은 대낮과 같이 분명하므로 분명히 계시된
하나님의 뜻 대신에 자기 자신의 판단을 따르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실수하거나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5증언, 328-331)

❶ 신 30:10~19를 읽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의 핵심은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순종하는 자녀들이 늘어갈 때, 복의 통로는 더욱 넓어진다.

◉ <부모의 의무(義務)>
“부모들이여 사랑의 햇빛과 기쁨과 행복한 만족이 그대들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하고, 그 아름답고 즐거운 감화력이 그대들의 가정에 충만하게 하라. 친절하고 오래 참는 정신을 나타내라. 그리하여 꼭 같은 그 정신을 그대의 자녀들이 갖도록 권면하고, 가정생활을 밝게 해 주는 모든 미덕을 계발시키라. 이와 같이 조성된 분위기는 그대의 자녀들에게 마치 공기와 햇빛이 식물계에 작용하는 것처럼 작용하여 심신의 건강과 활력을 증진시켜 줄 것이다.”(가정과 건강, 47)

◉ 우리의 선택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목요일(4월 8일)
<선택(選擇)과 기회(機會)>

▣ 태어나고 자라나는 환경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문제이다.
즉 환경과 배경을 잘 아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목표를 붙잡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명예(名譽), 재물(財物), 인물(人物), 쾌락(快樂) 등은 움직이는 목표물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부하고 고생하고 온갖 힘든 일에 고진감래(苦盡甘來)한다고 하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앙을 붙잡고 신앙을 하다 보니까 힘이 쇠진할 때에는 그가 붙잡은 믿음의 손이 놓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낙망하고 좌절하고 실패하게 됩니다.
즉 어린 손자와 할아버지가 비포장 길을 걸어갈 때 어린 손자가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는 경우와, 할아버지가 손자의 손을 붙잡는 경우로 예를 들 수가 있습니다.
손자가 비포장 길에서 돌 뿌리에 손자의 발이 쎄게 부딪치면 연약한 손자의 손이 할아버지를 붙잡는 경우에는 힘이 모자라 손을 놓칠 것이고 넘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이 강한 할아버지가 손자의 손목을 꼭 붙들고 있다면 손자가 돌부리에 부딪쳐 넘어 지려해도 힘이 강한 할아버지에 의해 절대로 넘어 지질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예수님을 붙잡고 신앙을 하다 보면 세상의 염려로 환경의 지배로 넘어질 때 그만 힘이 없어 넘어지고 신앙을 떠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내가 전능자 되시는 하나님의 손에 꼭 붙들릴 경우에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가 성경에 나와 있는 믿음의 용사들인 경우가 모두가 전능자에게 붙잡힌 신앙을 하신 분들이라는 점을 나에게 적용합시다.

▣ 하나님을 “의지(意志)”한다는 말은.
“의지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다바크”로 “굳게 연합하다”, “착 달라붙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가까이 하여(신명기 10:20), 그의 말씀을 굳게 붙드는 것,
그것이 바로 축복과 생명을 올바로 누리는 비결임을 모세는 마지막 고별 설교에의 핵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 모두에게 선택할 힘이 있을지라도,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선택들은 미래에 대한 제한된 가능성과 기회만을 제공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과 무관한 불이익으로 고통당한다. 어떤 이들의 삶에 불이익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지 생각해 보라. 마약이 있는 가정에서, 가정폭력이 난무하는 가정에서 그리고 극도로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생각해 보라. 절망과 타락이 지배하는 현장을 생각해 보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는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문제이다.
배경과 환경에 따른 우리의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다.

▣ 여호수아는 자신과 다음세대에게 선택과 교육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호수아는 여호수아 24장15절에서 자신의 선택과 자기 가족의 선택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 24:15)”>

◉ 시편 87편을 통하여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온 우주에 나타날 것을 예언하고 계십니다. 그 은혜(恩惠)란
1>.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들에게 베풀어진다.(시87:4)
2>. 차별이 없이 온 우주적으로 베풀어진다. (시 87:5)
3>. 완전한 축복에 이르도록 베풀어진다. (시 87:6)
이러한 예언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들에게 성취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고
예수님의 은혜 때문임을 깨닫고 더욱 감사해야 한다. (엡 2:8)

◉ <선택에 달려있는 삶>
“우리는 모든 고통을 참고 전능하신 야곱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나는 우리의 모든 시련을 견디는데 주님의 은혜가 넉넉함을 보았다. 비록 그 시련이 전에 없이 크다 할지라도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그 모든 시련을 능히 극복할 수 있고 그분의 은혜로써 승리할 수 있다.”(초기문집, 46)

◉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는 결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럴지라도 우리에게 예수님을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남아 있다.

“모든 영혼에게 싸워서 얻어야 할 천국이 있으며 멀리 피해야 할 지옥이 있다. 그리고 하늘 천사들은 시련을 당하고 시험을 받는 영혼에게 도움을 주려고 항상 준비하고 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하여 시험과 시련을 견디셨다. 갈바리의 십자가는 모든 영혼들 앞에 생생하게 서 있다. 모든 인간의 문제들이 재판을 받게 될 때에 저들(잃어버린 자)이 하나님께 욕을 돌린 것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명예를 멸시한 죄로 고통을 받게 될 때에 아무도 핑계하지 못할 것이나 단 한 사람도 멸망 받을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와 사단 중 누가 저들의 임금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저들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가려 뽑은 기별 1권, 96)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저희 불신을 버리도록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들 앞에는 빛과 어둠 그리고 진리와 오류가 있다. 어느 쪽을 받아들일지는 그들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다. 인간의 마음은 선악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일시적 충동에 의하여 결정하지 않고 성경 절들을 조심성 있게 대조해 보고 그 증거의 무게를 따라 결정하도록 계획하셨다.”(시대의 소망, 458)

<초점(焦點)>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택의 도덕적인 자유를 주셨다는 것은 우리 인간을 완전한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뜻이지만 인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타락의 결과가 죄책감과 두려움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선택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선과 악의 선택을 잘한 성경의 인물들로 우리의 삶의 목표로 삼아 삶에 적용하여 영생의 축복을 누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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