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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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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3-28 18:59 조회4,4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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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3일(안) 일몰6시56분

제1과 “축복의 근원(根源)이신 하나님을 찬양(讚揚)하라”

<서론(序論)>
2010년 제2기에는 “건강과 치유(治癒)” 라는 제목으로 교과 공부를 통하여 은혜 받을 수 있는 축복기회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의 육체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최고의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셨음으로 우리에게 건강 원칙(健康原則)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膳物)인 것입니다. 자연 법칙에 기초한 건강. 영적(靈的)웰빙, 신체적 웰빙을 염려하시는 하나님께서 건강기별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개혁하도록 주신 기별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기별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최고의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우리에게 건강 원칙(健康原則)이 주어진 것입니다,

(일) 3월28일
<사랑의 우리 하나님>

▣ 왜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까?
◉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천연계와 계시(啓示)(성경을 의미함)는 둘 다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證據)한다. (정로, 9)
하나님은 생명과 지혜와 기쁨의 근원이시다.
천연계의 기이(奇異)하고 미묘한 것들과 모든 생물의 날마다 필요한 것을 조금의 착오와 변함이 없이 공급하여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라.(시편 146:15-16)
특히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매우 거룩하고 행복스럽게 창조하셨다.
“그렇던 것이 비애(悲哀)와 사망(死亡)이 이 세상에 이르게 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사랑의 율법)을 범한 까닭이다.
그러나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십자가(十字架)를 통하여 구속(救贖)의 경륜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救援)하기위하여 인간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기위하여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고 직접 인간이 되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 <죄가 용납된 이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 그분의 본성과 그분의 율법은 사랑이다. 이것은 과거(過去)에도 그러하였고 미래(未來)에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며,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시는 분은 변치 않으신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합 3:6; 사 57:15; 약 1:17).”(부조, 33)
“선악(善惡)의 대쟁투(大爭鬪)가 하늘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때부터 반역이 영원히 정복되고 죄악이 전멸될 때까지의 역사도 또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증거이다”(부조, 33)
◉ “예수님은 인성을 취하시기 전에도 이미 잃어버린 자를 구원(救援)하기 위하여 걸어가셔야 할 전 여정을 보셨던 것이다. 그의 마음을 찌르는 심한 고통(苦痛), 그의 머리에 씌워진 모욕(侮辱), 그가 견디어야 하였던 궁핍(窮乏), 이 모든 것들이 그가 왕관(王冠)과 왕의(王衣)를 벗어 던지시고 신성(神性)을 인성(人性)으로 옷 입으시기 위하여 보좌(寶座)에서 내려오시기 전에 이미 그의 시야(視野)에 공개되었었다. 말구유에서 시작하여 갈 바리에 이르는 길이 모두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임할 고통을 아셨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7, 8)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사명의 결과를 항상 미리 보셨다. 수고와 자기희생으로 충만한 그의 지상생애(地上生涯)는 이 모든 수고가 무익(無益)하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으로 격려(激勵)를 받았다. 그는 인류의 생명을 위(爲)하여 자기의 생명을 바침으로써 세상으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께 충성(忠誠)을 바치게 할 것이었다.”(소망, 410)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타락(墮落)하기도 전에 구원(救援)의 계획을 세우셨고, 직접 인간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대속(代贖)의 제물(祭物)로 죽을 만큼 우리 인간을 사랑 하시는 분이시다.

◈ “예수님이 좋아하셨던 주제는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충만한 사랑의 하나님이었다.”(교리, 37)

◈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니라."(요일 4:8)고 선언한다.>
“그분은 "무궁한 사랑"(렘 31:3)으로 인류에게 접근하신다. 구원(救援)으로 사람들을 초청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구원(救援)은(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므로 각인(各人)이 그 초청에 반응하는 데 있어서 선택의 자유를 갖도록 허용하셨다(계 3:20, 21). 강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품성에 배치되는 방법이며 하나님은 전혀 구원한 전략을 사용하지 않으신다.”(교리, 108)

◈ <그리스도의 죽음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의(公義)와 의(義)를 유지하시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贖罪)의 죽음이 "도덕적 그리고 법적으로 불가피"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가 심판으로 옮겨질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와 죄인에 대하여 심판을 선고하셔야 한다. 이 선고(宣告)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죄인인 우리의 자리를 취하셨다. 이 속죄(贖罪)는 사람이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 아래 섰기 때문에 필요했다. 여기에 죄에 대한용서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오묘와 핵심이 깔려 있다.
즉,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하나님의 공의를 합당하게 만족시켰고, 또 하나님은 인간이 죽는 것 대신에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을 기꺼이 받아주신다."*”(교리, 110)

◈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사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정부가 공의롭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이 공표되었다. 사단의 비난은 논박을 당하고 그의 성격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반역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다. 죄가 다시는 우주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영원한 세대를 통하여 온 우주는 배도의 위험이 없게 된다. 자아를 버리는 그 사랑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땅과 하늘의 주민들은 끊을 수 없는 연합의 줄로 그들의 창조주께 묶여진다.”(소망, 26)

(월) 3월29일
<은혜(恩惠)의 하나님>

▣ 우리가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救主)알고 믿고 있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나 같은 사람이 도저히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교회의 성도(聖徒)요 집사(執事)요 장로(長老)요 목사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오늘까지 생명을 연장 받을 수 있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오늘 안식일학교 교과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새삼 깨닫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오늘 우리에 가정을 주신고 보호하시고 오늘까지 지탱한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오늘 건강한 모습으로 오늘을 맞이한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불편한 몸으로 건강함의 중요성과 건강할 때의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것에 대하여,
회개(悔改)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재주도 없고 학벌도 없고 인물도 없고 재산도 없지만 생존경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주시는 예수님을 알고 의지하고 믿고 산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세상 사람들이 보면 불쌍히 여기거나 형편없는 사람 같아 볼일지라도,
마음의 평안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음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특히 복음(福音)을 몰랐으면 세상적인 쾌락(快樂)에 빠져,
아마도 지금쯤 양지바른 산(山)모퉁이에 한 평(坪)남직한 곳에 잔디를 덮고 누어있을 불쌍한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예수님 때문에 직장과 배우자(配偶者)와 아름다운 가정과 오늘날의 평안을 맞이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그 감사함을 어떻게 반응을 하고 있을까?

▣ 뭐니 뭐니 해도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속량(贖良)하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인 우리를 구원(救援)하신 은혜를 깨닫는 것이 최고의 은혜의 선물(膳物)일 것이다.

◈ “그대가 하늘을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대가 하늘을 얻는다면 모든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탄원하노니 이점에서 실수하지 말라. 영원한 이익이 여기 달려 있다. 철저 하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그대에게 지혜를 주사 그대가 영원한 것을 분별하기를 바란다. 진리의 빛으로 그대의 많은 잘못을 분별하되 있는 그대로 발견하여 그것들을 제거하는 데 꼭 필요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되기를, 이 악(惡)하고 쓴 열매 대신에 영생의 귀한 열매를 맺게 되기를 바란다.”(2증언, 88)

◈ 우리는 예수님 그리스도께 과분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반응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화) 3월30일
<사랑의 관계(關係)>

▣ 사랑이란 관계가 성립될 때 사용하는 단어(單語)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 것이 천연계(天然界)를 비롯하여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생각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표현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십계명(十誡命)이다. 이 십계명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로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십계명이 보호벽(保護壁)이 되기 때문이다. 십계명(十誡命)속에는 하나님의 선(善)하심을 볼 수 있다.
십계명에는 하나님의 움직일 수 없는 의(義)의 원칙을 사람들에게 계시함으로서 그들을 보호(保護)하시고 범죄로 인하여 야기(惹起)되는 악(惡)을 방지하려 하신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로 구분되어있다.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기록하고 있으며, 제5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는 인간과 인간의 사랑의 관계를 요약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사랑과 인간과의 사랑에서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단어를 빼면 사랑이라는 단어만 남게 된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사랑의 계명이라 한다.
사랑의 관계를 온전한 관계로 꼴 지을 수 있는 방법은 먼저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수직(垂直)적인 관계이고 인간과의 관계는 수평적인 관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수평적인 관계가 올바로 되어야만 인간관계인 수평(水平)적인 관계가 올바로 되며 온전해지는 것이다.

◈ 사랑은 관계에 대한 것인데 인간이 특별한 것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사랑의 관계 때문이다.

(수) 3월31일
<주님을 찬양(讚揚)함>

◈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찬양(讚揚)이라는 단어가 102회 나오며, 찬송(讚頌)이라는 단어는 220회가 기록되어있다, 도합 찬양(讚揚)과 찬송(讚頌)이라는 단어가 322회 나온다는 것은 찬양의 중요성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 찬양(찬송)
“찬송 讚頌 크게 나누어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해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는 것(창 24:27).
(둘째),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 노래나 가락을 연주하는 것(출 15장).
구약시대(舊約時代)에는 하나님의 창조(創造)사역, 능력(能力), 성전(聖殿)에 대한 사모, 이스라엘의 번영(繁榮), 선민(選民)의 최후 구원(救援) 등을 찬송했으며,
신약시대(新約時代)에는 십자가(十字架)의 구원(救援), 부활(復活)의 능력(能力) 등을 찬송했다(엡 5:14; 딤전 3:16).

◈ 찬양을 아는 이유와, 찬양의 방법과, 찬양으로의 결과는 너무나 크고 많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생략하고, 찬양이 영적(靈的) 정서적, 정신적인 차원뿐 아니라 육체적(肉體的)차원까지 포함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가 지금 찬양에 대하여 얼마만큼 찬양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여야 하겠습니다.

◈ <여호와를 찬양하라>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 150:6).
우리들 중에 얼마만큼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인지 합당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주님의 자비가 아침마다 새롭다는 것과 그분의 성실이 다함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그분에게 의존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의 모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가?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는 너무도 흔히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 로서 내려오는”(약 1:17) 사실을 잊어버린다.” (5증언 315).

▣ 찬양(讚揚)하면 성경에서 다윗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시편에 찬양의 진수로 쓰여진 간증 있는 찬송들은 다윗의 생애에서 경험하고 체험하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동행하신 하나님을 곡조가 있는 기도로 쓰여진 것들이다. 다윗의 배경을 여기에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 예루살렘에서 수마일 떨어진 곳 “베들레헴” 이곳에서 아기 예수가 구유에 누우셔서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으시기 천여 년 전에 이새의 아들 다윗이 태어났으며 예수님의 초림하시가 여러 세기 전에 다윗은 베들레헴 주위의 산에서 풀을 뜯는 양떼를 지키며 서 소년시절을 보냈으며 이 순박한 목동은 자기가 작곡한 노래를 수금의 아름다운 선율에 자기가 작곡한 노래를 수금에 맞추어 불렀으며 그 수금의 아름다운 선율은 이 활기찬 젊은이의 음성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반주를 만들어 냈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택하시고 양떼와 함께 지내는 고독한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장래에 그에게 위임하시고자 계획하신 사업을 위하여 사무엘에게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 다윗의인 아버지 이새의 장자(長子) “엘리압”은 아름다운 용모와 잘 발달된 체격과 외모가 빼어나서 사무엘 선지자는 그를 왕으로 기름 부으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압의 외모를 보시지 않으셔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피택하지 않으셨고, 겸비하고 겸손한 양치기 소년 다윗에게 기름부음을 허락하셨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고도 겸손한 마음으로 들로 되돌아가 친절하게 양떼를 지키고 보호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영감으로 가곡(歌曲)들을 작곡하여 하나님을 볼 수는 없었지만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삼라만상(森羅萬象)들은 다윗의 마음은 빛의 아버지 곧 모든 행복과 완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을 바라보게 하였다. 날마다 계시(啓示)되는 그의 창조주의 품성과 위엄은 젊은 시인의 마음을 흠모와 기쁨으로 충만케 하였다. 하나님과 그분의 사업을 명상함으로 다윗의 지력(智力)과 마음의 능력은 장래의 그의 사업을 위하여 계발되고 강화되었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과 더불어 더욱 가까이 교통하였다. 그의 마음은 끊임없이 그의 노래에 영감을 주는 새로운 주제들을 깊이 파고들어가 그의 거문고의 선율을 깨우곤 했다. 그의 풍부한 성량의 멜로디는 대기 중에 쏟아져 나와 마치 하늘 천사들의 즐거운 노래에 화답하는 것처럼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메아리쳤다. 쓸쓸한 들판에서 수고하고 배회하던 이런 세월의 결과를 누가 측량할 수 있었겠는가? 그의 비천한 처지에서 자연과 하나님으로 더불어 가진 교제와 양떼를 돌보는 일과 그가 겪은 위험과 구원과 슬픔과 기쁨은 다윗의 품성을 형성해서 그의 장래의 생애에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시인의 애정 깊은 노래를 통하여 그 후 세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사랑과 믿음을 불붙게 해주었고, 그들로 하여금 언제나 변함없으신 사랑의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였다.”(부조, 641-642)

▣ “다윗은 아름다움과 활력이 넘치던 청년 시대에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자들과 함께 높은 지위를 차지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하나님의 귀중한 선물인 그의 재능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의 명상과 묵상의 기회는 그를 지혜와 경건으로 부요하게 하여 하나님과 천사들의 사랑을 받게 하였다. 창조주의 완전하심을 그가 명상할 때에 하나님께 대한 더 분명한 개념이 마음에 전개되었다. 모호한 주제들이 명백하여지고 난제들이 풀리고 난처한 일들은 잘 조화되어, 새로운 빛의 모든 광선은 새로운 환희와 보다 아름다운 헌신의 찬송을 불러일으켜서 하나님과 구세주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다. 그를 감동시킨 사랑, 그를 둘러싼 슬픔, 그에게 수반된 승리는 모두 그의 적극적인 생각의 주제였다. 그리고 그가 자기의 생애에 대한 모든 섭리 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볼 때에, 그의 마음은 보다 더 뜨거운 경모와 감사로 고동쳤고 그의 입술에서는 더 아름다운 곡조가 흘러나왔다. 그는 수금을 기쁨으로 뜯었다. 그리하여 양치기 소년은 힘에 힘을 더하고 지식에 지식을 더하게 되었는데 이는 여호와의 성령이 그와 함께 하심이었다.”(부조, 642)

◈ 우리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들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과 예수님의 구원의 속죄(贖罪)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심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세워주심과 영생(永生)의 소망을 주심과 사랑하는 가족과 교회와 현실을 주심에 감사함이 느낀다면 찬양으로 반응하여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시다.

◈ <여호와를 찬양할 이유(시135:1-21)>
참된 축복, 모든 생명이 하나님이 손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운명과 모든 것이 하나님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1)시135:4-14 복음을 주었는데 복음을 알지 못하고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가 되었고, 복음 깨닫는 날 노예에서 나오게 되었다.
2)시135:15-18 우상(偶像)은 사단의 역사임을 깨닫자.

◈ <이사야 25장1절을 묵상하며, 내가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
하나님이여 !
주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내게 늘 신실하십니다.
나의 쓸 것을 모자라지 않게 늘 공급하시고
언제나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나의 환난 날에 힘이 되십니다.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나를 창조한 분이십니다.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연약함을 잘 아시어 나를 세밀하게 다루십니다.
나의 치료자이십니다.
나의 부족과 필요를 아십니다.
그것이 교훈이 되게 하십니다.
내 눈물을 씻기시는 분이십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빛나는 아침에는 웃게 하십니다.
내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나를 모태에서 조성하시고
내 삶의 끝 날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내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목) 4월01일
<합당한 제사(祭祀)>

▣ <제사(祭祀)>란 사전적인 의미로
“제사(祭祀) 하나님을 예배(禮拜)하기 위한 종교의식을 말한다,
제사를 드리는 목적은 하나님께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기 위함과,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그리고 속죄를 위해서였다.
종류로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등이 있다.”

▣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예배(禮拜)>
요한복음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도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고 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떤 예배자(禮拜者)를 찾고 계시는 것일까?
베드로전서 2장 5절에 베드로는 "너희도 산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고 말했다.
이 말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예배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처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인가?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을 꼽을 수 있다.
히브리서 11장 4절 상반 절에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라고 했다.
아벨이 준비하고 드린 예배는 분명히 가인보다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
나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점은 목적이 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예배의 시작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 <헌물(獻物)이면 마땅히 피를 뿌려야 함>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헌물에서 우리는 한 크신 선물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의 봉사를 그분이 받으실만한 봉사가 되게 한다.
아벨이 그의 양떼의 첫 새끼를 드릴 때 하나님을 그의 현세적 축복을 주시는 분으로만 아니라 구주를 주신 분으로 인정하였다. 아벨의 헌물은 그의 최선의 것을 선별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인은 땅의 소산만을 가져 왔었고, 주께서는 그것을 받지 않으셨다. 그 헌물에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표현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의 모든 헌물들에는 마땅히 속죄의 피가 뿌려져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값을 주고 사신 그의 소유물로서 우리 자신을 그분께 드려야 한다. (리뷰 1896. 11. 24).”

☞ “두 형제는 그들의 제단을 같은 모양으로 쌓고 각기 제물을 가져왔다. 아벨은 주께서 지시하신 대로 양떼 중에서 취한 희생 제물을 드렸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창 4:4)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 제물을 살랐다. 그러나 가인은 주의 직접적이요 분명한 명령을 무시하고 과실만을 제물로 드렸다. 그것이 가납되었음을 보여 주는 아무런 표적도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방법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그의 형에게 간청하였다. 그러나 그의 간청은 가인을 더 단호하게 자신의 뜻을 고집하도록 만들 뿐이었다. 장자로서 그는 동생의 권고를 받을 처지가 아니라고 느끼고 그의 충고를 무시하였다.”(부조와 선지자, 71)

▶ (이사야서 1장 11-12절) 말씀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 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2) 고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를 거부하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처럼 목적이 다른 제사와 제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거부하심을 볼 수 있다. 오늘 우리도 매 안식일 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가정이나 직장이나 소그룹에서, 그리고 필요에 따라 각종 행사에서도 또한 결혼식과 장례식을 비롯해서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예배가 정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광을 돌리기 위한 예배인가?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오늘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드리는 예배를 금번의 교과 공부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배를 드리려는 시작과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노력해 봅시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 우리를 구원(救援)하여주신 하나님을 위하여서는 우리는 온전한 삶을 바쳐야 하며, 절재로 육체적 건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것이 합당한 제사가 되는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희생제물이 되셨음을 깨달을 때 신령과 진정으로 산제사를 합당하게 하나님께 드릴 것이다.

◈ 열왕기 3장3-13에 기록된 솔로몬의 일천번제의 교훈도 합당한 제사의 한 예(例)이다,
(요 4:24) 하나님은 영(靈)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禮拜)할지니라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祭祀)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

<초점(焦點)>
1. 하나님의 선(善)하심과 예수님을 통해 주어진 크신 은혜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와 감사와 은혜를 고백하는 표시가 찬양과 영적 산 예배로 반응하는 삶으로 나타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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