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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 그리스도인 품성의 진수인 성령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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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3-23 14:04 조회4,6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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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3월 27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50분)

제13과 <그리스도인 품성의 진수인 성령의 열매>

핵심본문: 롬 14:17 / 연구범위: 마 6:33, 요 15:8, 롬 3:20~26, 14:17, 딤전 6:11, 요일 2:15.

<기억절(記憶節)>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

I. 깨닫기 : 구원(救援)의 은혜 →
구원의 은혜를 깊이 숙고한다.
II. 느끼기 : 화평(和平)과 기쁨 →
기쁨과 화평을 경험한다.
III. 행하기 : 교제(交際)의 깊이를 더해감 →
성령의 내재하심을 통해 의(義) 안에서 자라난다.

<요점(要點)>
성령 안에서 구원의 열매를 누리자. 그것은 우리를 부정적인 삶에서 자유케 한다.
이는 성령의 인도와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를 통해 계발된다.

일요일(3월 21일)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求)하라. (마 16:26)>

▣ “먼저”라는 말은 우선순위를 전제로 한다.
가로×세로×높이가 각 1m 되는 철(鐵)상자 안에 다 들어 갈 수 있는 부피의 “철망”과 “조약돌”과 “모래”를 담는다고 할 때 순서가 참으로 중요하다. 즉 ① 모래 ② 조약돌 ③ 철망 순으로 담는다고 하면 그 철 상자 안에 다 담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순서가 ① 철망, ② 조약돌, ③ 모래 의 순서로 철통(鐵桶)안에 담아야 그 한정된 곳에 다 들어 갈수가 있다. 이와 같이 인생의 삶에서 순서를 무시하거나 순서가 바뀌므로 인생의 결과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나게 된다.
성경 (사무엘 상 25:3-38절)에 나오는 “나발” 같은 사람을 비롯해서 “가룟 유다” “빌라도” “헤롯” “사울 왕” “부자 법관 청년”등등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먼저 구할 것과 우선순위를 두는 일들에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종말은 참으로 비참하게 끝이 난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현명한 인생은 선택을 잘하는 데에서 부터 시작된다.

◈ 예수님만이 참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일시적인 생명을 버릴 줄 아는 신앙의 용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막 8:35)

○ 성도(聖徒)는 지금당장은 세상에 매여 있지만 이미 중생으로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소유한 자들이다.
따라서 자연히 성도들에게는 미래시점의 하늘나라와 현재시점의 세상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 가 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하늘나라는 아직 완전히 임한 것이 아니며(막 1:15), 또한 성도는 법적으로 중생을 통한 칭의(稱義)로서 매일매일 삶속에서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이세상의 현실 속에서 자신의 전인격을 점점 더 거룩하게 점진시켜 나가는 성화(聖化)의 과정에 있다는 성경진리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과 또한 성화를 요구하시는 명령에 따라 세상에 살아가면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회상의 구현을 통하여 선교적 소명을 다함으로써 예수님의 재림을 촉진시켜야 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나라와 의(義)를 구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祈禱)가 무엇을 구(求)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求)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義)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는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의 핵심 메시지였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육신(肉身)으로 오셨지만, 죄 없이 사시다가 인간의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눈을 들어 그분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 보게 하십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이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사람은 이제 달라집니다.
이 땅에 있으나 천국을 바라보는 자며, 이 세상에 영원히 있을 것처럼, 자신의 부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사단의 권세 아래서 하나님에게로 불신앙에서 믿음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제목은 이 세상의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나를 점령하지 못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온전히 나를 지배해서 나의 생명 되시고 머리되신 주님이 나를 주관하시고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명이며 동시에 사명인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최고의 대적(對敵)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입니다. 하늘에서 하나님같이 되려고 비긴 자가 있으니 타락한 루르벨 입니다.
이것이 죄의 시작이며 반역이며 불순종입니다. 그 죄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며 그분께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챈 악이 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자아를 완전히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거듭남의 역사입니다. 이제 우리에게서 가장 귀한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이의로 인간이 살 수 없기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살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에 하나님 나라의 최고의 대적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자기에 무지와 게으름과 나태(懶怠)함이 연합되며 패망의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님께서 날마다 우리의 눈을 밝히사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고 그분의 의로 살게 될 때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이루어지고 주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게 우리의 생애에 최고 목표입니다. 이것이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따라 살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뜻대로 구(求)하는 기도(祈禱)>
사람들은 기도할 때 대개 무조건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풍성하고 충만한 분이시기에 그에게 무엇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을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膽大)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求)하면 들으심이라 (요일5:14). 하나님의 뜻대로 구(求)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이 세상에서 미신(迷信)하는 자들은 그저 아무렇게나 자기의 소원을 구합니다.
이를 기복신앙(祈福信仰), 다른 말로 미신(迷信)이라고 합니다.
미신과 우리의 신앙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求)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求)하라고 특별히 당부하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구하지 말라 했습니다.
왜? 공중의 새들도 기도하지 않고도 잘 먹고 삽니다.
들의 꽃도 기도(祈禱)하지 않고도 잘 입고 있습니다.
악인(惡人)이건 의인(義人)이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와 비를 주셨기 때문에 의인이나 악인이나 노력하면 먹고 마시고 살 수 있습니다.
반드시 기도(祈禱)가 아니더라도 노력하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입을 수 있습니다.
노력하는 사람이 잘 살게 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도(祈禱)만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신(迷信)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의(義)를 구(求)하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나라와 의(義)를 구(求)하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그의 나라를 구(求)하라는 것은 성령의 충만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하셨습니다(행1:4). 우리는 먼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의(義)를 구(求)하라고 하셨습니다.>
의(義)가 없으면 결단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노력을 의(義)로 여기고, 자기의 봉사(奉仕)를 의(義)로 여깁니다.
인간은 의(義)가 없습니다. 이미 타락(墮落)한 인간에게는 의(義)가 없습니다.
인간은 의(義)가 없기에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救援)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인이라고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義)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
의인(義人)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생명의 구세주로 영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의(義)란? (로마서 1: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했습니다.

<믿음에만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납니다.>
복음(福音)을 믿는 믿음에만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공로가 나타납니다. 그것이 의(義)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복음을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가 나타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야 합니다.
내 믿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믿음은 복음을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신념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공로가 나타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구하고,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주여, 내게 성령 충만을 주옵소서! 주여, 내게 믿음을 주옵소서!

◉ <우리가 먼저 구(求)해야 할 것 >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눅 12:30).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나는 너희에게 사랑과 의와 평화의 나라를 알려 주기 위해 왔노라. 마음을 열고 이 나라를 받아들이며, 이 나라를 위한 봉사에 최대의 관심을 쏟으라. 비록 이 나라가 영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현실 생애를 위한 너희의 필요가 돌봄을 받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열중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께서 너희의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니라.”(산상보훈, 99)

◉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곧 의(義)와 평강(平康)과 기쁨을 먼저 얻지 못한다면 비록 물질적인 필요가 충족(充足)된다 하더라도 무의미(無意味)하다. 우리는 바른 우선순위(優先順位)를 가져야겠다.

월요일(3월 22일)
<성령(聖靈)의 다른 열매들 (갈 5:22~23)>

▣ 금년들 어서 2010년 제1기에 교과 공부로 성령의 열매를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의 아홉 가지<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의(義)”와 “진리(眞理)”까지 공부하였다.
아울러 성령의 열매 9가지+2 외에 경건(敬虔), 덕(德), 지식(知識) 등이 추가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추가적으로 제시된 “경건”과 “덕(德)”과 “지식(知識)”에 대하여 숙고(熟考)하여 봅시다.

○ 경건(敬虔)은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인의 경외심이 그의 모든 언행을 꼴 짓고 조화시켜야한다.
그리스도교의 높은 표준에 충실하다고 공언 하면서도 거듭나지 못한 자들보다
나을 것이 없게 사는 것은 부정직과 위선(僞善)중에서도 가장 멸시받을 만한 행위이다. <본교 성경주석(한)14권 250p>

◈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의 품성에서 반사(反射)되는 하늘의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죄는 더욱더 분명히 드러나며, 그들의 평안을 깨뜨리는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고자 더욱더 단호하게 노력할 것이다.”(부조, 74)

○ 덕(德)
덕(德)으로 번역된 단어는 “선함”(goodness). “탁월함”(excellence)으로 읽을 수도 있다.
또한 덕은 “부르신 자”라는 말이 그리스도에게 적용됨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모든 분투(奮鬪)하는 그리스도인이 얻기를 열망하는 덕이 근본적으로 그리스도 자신의 영광과 미덕이기 때문이다.
죄를 버리고 구주께서 그처럼 설득력 있게 나타내 보이신 영광스러운 특질들을 추구하도록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것은 바로 “들려진” 그리스도를 바라봄에 의해서이다. <본교 성경주석(한)14권 250p>

○ “덕(德)”= 헬라어 “아레테”(arete΄).
베드로는 “너희 믿음과 관련해서, 도덕적 탁월함을 드러내라”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이 같은 권고에 유의함으로 그리스도인은 균형 있는 생애를 이룩할 수 있다. <본교 성경주석(한)14권 251p>

▶ 디모데전서 6:11에는 ‘경건’의 열매가 언급되어 있는데,
원어(原語)상으로 ‘경건’이라는 단어는 존경, 경의,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 등을 의미한다.
로마서 5:4~5에는 ‘소망’이라는 속성이 나온다.
소망이 그리스도인 품성 형성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보라.

▶ 베드로후서 1:5~7에 ‘덕’이라는 열매가 나오는데, 이는 갈라디아서 5:22~23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덕은 도덕적인 선량함, 정숙, 순결 등과 연관되어 있다.
왜 이 속성이 그리스도인 삶에 필수적인가? 이 특성은 일곱째 계명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같은 구절에는 ‘지식’이라는 특성이 추가되어 있다.
지식을 나타내는 단어인 그노시스(gnosis)는
성령 충만한 생애에 맺히는 열매인 총체적인 지식과 깨달음을 가리키는데, 지식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를테면, 지식은 분별의 은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베드로는 여기에 열거한 목록을 성령의 열매로 부르지는 않았으나 본질적으로 그것들은 성령의 열매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서 나타나야 할 특성이기 때문이다. (교과 180p)

○ 지식(知識)
◉ “오늘날 주께서 큰 빛을 주신 사람들은 주의 길에 행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그의 뜻을 수행하실 수 있는 곳에 자신을 두는 것이 유일한 안전책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잘못이 없으신 하나님에게서 배우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큰일을 행하실 것이다. 우리의 안전과 지혜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감사히 여기고 거기에 유의하는 데 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기 때문에 그 앞에서 겸손히 행하는 자들은 복을 받아서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만 한 하늘의 지식을 받을 것이다. 지혜는 모든 더러운 것에서 순결하게 보존되어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지혜를 받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그것으로 동료 인간들을 축복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할 의무를 받는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매 발걸음마다 “이것이 주님의 길인가?” 하고 물어 보아야 한다.”(화잇주석, 왕상 11:4-6)

◉ <사단의 선전에는 변함이 없음>
“사단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그에게 주목하면 우리로 아주 높은 수준의 지식에 이르게 해 주겠다고 한다. 그는 하와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께서 금(禁)하신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는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고 50, 1893).”(화잇주석, 창 3:5)

◉ <시대(時代)마다 사람들은 호기심(好奇心)에 이끌려서 지식의 나무를 찾는다.>
“그리고 흔히들 가장 핵심적인 지식의 열매를 따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솔로몬이 깨달은 바와 같이 그 모든 것이 하늘 문을 열어주는 참된 경건의 과학과 비교해 볼 때 다 헛되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야망은 자신들에게 영광과 존귀와 최고의 영예를 가져다 줄 그러한 종류의 지식을 찾아 왔다. 이리하여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영향 아래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고 그분께서 금하신 지식, 즉 그들의 죄의 결과를 알기 위하여 거짓말쟁이 교사 밑에서 교육받게 되었다(원고 67, 1898).”

◉ <발전하고 있다는 망상(妄想)>
“한 세대가 지나고 또 한 세대가 뒤를 연이을 때마다 참 지식은 점차 줄어들었다. 하나님의 지식은 한이 없으시고 땅 위에 살았던 첫 번째 사람들은 세상을 창조하신 그 무한하신 하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 무한하신 지혜의 근원에서 직접적으로 지식을 전수받은 사람들의 지식에는 아무런 결함이 없었다.”(화잇주석, 창 6:4)

◉ “진리의 지식을 가진 남녀들이 그들의 크신 지도자로부터 그처럼 멀리 떨어져 나가, 배도의 큰 지도자 마귀를 따르고,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 부르게 되는 것은 그들이 진리의 광산 깊숙이 빠져 보지 못한 연고이다. 그들은 귀중한 금속과 하찮은 광석을 구별할 수가 없다.… 주께서는 이런 문제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경을 상고하는 대신에 사람의 말에 의존할 때 얼마나 쉽게 그릇 인도되는가를 보여 주시기 위함이다. …”(화잇주석, 민 16:1-50)

◉ <함께 자라나야 할 덕목(德目)들>
“우리는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해 가야 한다. 그대는 한 덕목을 완성시키고 나서야 다른 덕목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들은 사랑의 샘으로부터 계속해서 영양 공급을 받아서 함께 자라나야 한다. 그대가 살아가는 매일의 삶에서 그대는 그리스도의 품성 속에 온전히 계시된 그 복된 속성들을 이루어 낼 수가 있다. 그대가 이것을 이룰 때에 빛과 사랑, 평화와 즐거움을 그대의 가정으로 가져올 것이다”(재림교 성경주석, 7권, 943)

○ 소망(所望)
○ “역사적 사건들은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한 "표상" 혹은 "실례"이다(고전 10:11), 바울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고 말한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본(本)" 혹은 경고의 역할을 한다(벧후 2:6; 유 7). 아브라함의 칭의 체험은 모든 믿는 자에게 본이 된다(롬 4:1-25, 약 2:14-22). 깊은 영적 의미가 가득 찬 구약의 민법까지라도 오늘날 우리의 유익을 위해 기록되었다(고전 9:8, 9).”(교리, 17)

○ “몸을 굽혀 당신을 배반한 자의 발을 씻기심으로써(요 13:5, 10-14) 예수님은 아버지의 사랑의 본성을 계시하셨다. 굶주린 자를 먹이시고(막 6:39-44, 8:1-9), 귀머거리를 고치시고(막 9:17-29), 벙어리가 말하게 하시고(막 7:32-37), 중풍병자를 일으키시고(눅 5:18-26), 문둥병자를 고치시고(눅 5:12, 13), 죽은 자를 일으키시고(막 5:35-43; 요 11:1-45), 죄인들을 용서하시고(요 8:3-11), 마귀를 내쫓으시는 모습 속에서(마 15:22-28, 17:14-21)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섞이셔서 그들에게 당신의 생명을 전해 주시며, 그들을 자유케 하고, 그들에게 소망을 주시며, 장차 임할 새 땅을 그들에게 가리켜 보이시는 아버지를 보게 된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아버지의 고귀한 사랑을 계시하는 것이 백성들을 회개로 인도하는 열쇠가 됨을 아셨다(롬 2:4).”(교리, 37)

○ “온전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권고를 떠나 방황하는 인간들을 구출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요 3:16; 요일 4:9)은 그분의 사랑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경륜 속에서 당신의 아들은 죄를 위한 희생물로서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벧전 1:19, 20)로 인류의 소망이 되셨다. 그분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며 마귀의 일을 멸하심으로 죄로부터 구출하실 것이었다(벧전 3:18; 마 1:21; 요일 3:8).”(교리, 41)

○ “우리가 특별히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날은 안식일이다. 안식일이 없다면, 모든 사람들은 끝없이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할 것이다. 매일이 똑같으며 세속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데 바쳐질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의 도래는 소망과 기쁨과 의미와 용기를 가져다준다. 그것은 예배와 기도와 찬미와 말씀에 대한 연구와 명상을 통하여, 그리고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줌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교리, 239)

○ “시내 산으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까지, 십계명을 범한 자들은 의문의 율법이 정하는 성소봉사를 통해 묘사된 복음 안에서 소망과 용서와 믿음으로 정결케 됨을 경험하였다.”(교리, 227)

○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주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요일 3:3)기 때문이다.”(교리, 166)

○ “많은 사람은 마음은 깨끗이 씻지 아니하고 지적신앙(知的信仰) 곧 형식적 경건만을 받아들인다. 추상적 소망은 결국 그대를 멸망에 이르게 할 것이다.”(정로, 35)

◉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들 외에 경건(敬虔), 지식(知識), 덕(德), 소망(所望) 등 여러 속성들이 다른 곳에 나온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열매는 무엇인가?

화요일(3월 23일)
<믿음 안에서 견딤 (롬 3:20~26)>

◈ <하프만 부인(婦人)>의 간증입니다.
☞ 어느 날 작은 구멍으로 누에고치가 힘들게 나오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나머지 가위로 누에고치 껍질을 잘라서 쉽게 나오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고통 없이 나온 애벌레인 누에고치는 날개 짓을 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힘들게 나오는 누에고치를 보면서 관찰하여 보니 누에고치에서 나온 애벌레는 잠시 후에 날개 짓을 한 후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동정심으로 누에고치를 도와주어 고통 없이 나온 누에는 쉽게 죽었고, 고통 있이 나온 누에는 건강하게 살아서 날아갔습니다.

세상에서 고통 없이 빠져 나올려는 일을 "하나님"은 할 수 없으셨을까요?
욥기 42장5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이 말하기를 바늘귀 같은 고통의 구멍에서 내가 나오고 보니 내가 듣기만 했던 "하나님"을 이제는 내가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이러한 간증을 한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욥기 42:11-17의 축복을 기록 하고 있습니다.
욥에게 시험 받기 전(욥기 1장1절-3절)의 축복보다 갑절로 받았습니다.

◈ 온유, 부드러움, 인내, 오래 참음, 쉬이 화를 내지 아니함, 모든 것을 참음, 모든 것을 바람, 모든 것을 견딤, 이와 같은 것들은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고귀한 사랑의 나무에서 성장하는 열매들이다. 이 나무는, 만일 영양을 공급받는다면, 상록수로 판명될 것이다. 그 가지들은 썩지 않을 것이며, 그 잎들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불멸하며 영원하고, 끊임없이 하늘의 이슬에 의하여 공급받을 것이다.”(1보감, 209)

◉ 로마서 3:20~26의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의 열매 맺는 것을 구원(救援)의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열매 맺는 일은 구원(救援) 얻은 자의 자연스런 결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함에 대해 실망(失望)하기가 쉽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면서 믿음 안에서 견디어야 한다.
즉 성령의 열매는 구원(救援)을 받기 위하여 맺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 곧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고, 생명의 성령께서 주장하는 사람에게 맺히는 열매이다. 그래서 열매를 말하기 전에 나무를 말해야 한다는 이치(理致)를 유념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義)의 나무가 되어야 한다. 포도나무인 예수님의 가지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라고 예수께서 약속(約束)하셨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義)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훌륭한 항해사(航海士)는 거친 바다에서 만들어 집니다.
용감하고 탁월한 군인(軍人)은 전쟁터에서 만들어 지듯,
새 역사를 창조하는 영적인 지도자나 신실한 성도(聖徒)는 광야에서 고난의 풀무에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영적(靈的) 지도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서서히 광야를 통과 하면서 고난(苦難)을 통과 하면서 서서히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광야(廣野)에서 만들어 졌습니다.

◉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은 가능한 최고의 의의 표준을 제시한다. 전적인 순종을 요구한다. 희생은 죄의 흉악성을 증거한다. 그럼에도 율법은 양심을 자유롭게 하거나 의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인간의 타락 이래로 율법의 목적은 죄를 지적하고 정죄할 것이지(롬 7:7), 인간을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울 자신이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진실한 생애를 살게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될 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합 2:4, 롬 1:17, 갈 3:11).”(재림교 성경주석, 행 13:39)

◉ <기생(寄生) 식물인 오류(誤謬)>
“사단은 기만적인 힘을 가지고 일해 왔고 진리를 어둡게 하는 많은 오류들을 들여왔다. 오류는 홀로 설 수가 없고 진리라는 나무에 기생하는 기생 식물과 같이 자신을 진리에다 꼭 매어 두지 않으면 곧 사멸해 버린다. 오류는 하나님의 진리에서 그 생명소를 끌어온다. 부유하는 세균들같이 인간의 유전은 하나님의 진리에 부속되어서 사람들이 유전을 진리의 일부라고 생각케 한다. 사단은 거짓 교리를 통해서 발판을 얻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진리에 그 기반을 갖고 있지 않은 이론을 굳게 붙잡게 한다. 사람들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담대히 가르친다. 유전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져 내려옴에 따라 인간의 마음을 억압하는 힘을 갖게 되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그 시간이 오류를 진리로 만들지는 못하는 것이요, 오류의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진리의 나무를 기생 식물이 되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진리의 나무는 진리 자체의 순수한 열매를 맺어서, 그 참된 기원과 성질을 보여준다. 오류라고 부르는 기생 식물도 그 열매를 맺어서 하늘에 뿌리를 둔 진리의 나무에서 빗나간 성질을 가진 것임을 드러낸다(편지 43, 1895).”

◉ “포도나무의 생명은 가지들에 달린 향기로운 열매 가운데 명백히 나타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 때에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생애 가운데 나타나 보일 것이며 한 사람도 잃어버린바 되지 않을 것이다.”(소망, 676)

◉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길을 지키는 이들에게 마치 살아 있는 포도나무에서 자라는 탐스러운 포도송이처럼 맺혀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요새(要塞)이시다.”(목사, 282)

◉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태도와 습관과 정신과 노력을 항상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외부에 나타난 피상적인 업적을 주목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을 주목하여 바라봄으로 마음과 정신과 성품에서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온유와 겸손함으로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하늘 천사들이 거하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된다.”(복음, 283)

◉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면, 극기하고 절약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순례자요 나그네들이다. 그러므로 각자가 희생으로써 하나님과 언약을 맺지 않으면 안 된다.”(복음, 454)

◉ <끊임없이 발전함>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 태도와 습관과 정신과 노력을 항상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외부에 나타난 피상적인 업적을 주목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주목하여 바라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변화란 마음과 정신과 품성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온유와 겸손으로써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하늘 천사들이 거하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된다.
<복음교역자, 284(1915)”(문전, 59)>

◉ “신앙적 원칙이 그의 생애와 행동의 동기가 되며 그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은 무화가 나무가 무화과를 맺으며 장미덤불이 장미꽃을 피게 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그의 성품이 하나님과 동료들에게 대한 사랑으로 아주 철저하게 물들어 있기 때문에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자원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수행한다.”(성화, 13)

◉ “재물과 높은 지위, 값비싼 장비, 건물과 설비 등은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는데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허영심을 조장시켜 주는 것은 성공이 아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보일지라도 세속적인 과시는 하나님의 안목에 무가치한 것이다. 그분께서는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것을 가치 있게 여기신다. 전자는 후자를 나타내 줄 때에만 가치가 있다. 가장 잘 정선된 예술품도 심령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열매인 품성의 아름다움과 비교될 수 있는 미를 간직하고 있지는 않다.”(가건, 211)

◉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이 자라지 않고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보며 낙심하기 쉽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믿음 안에서 견뎌야 한다.

수요일(3월 24일)
<세상의 도전(挑戰) (요일 2:15)>

▣ 죽은 물고기는 강물에서 흘러 떠내려간다.
살아 있는 물고기만이 강물을 거슬러 위로 올라갈 수가 있다.
댐이나 수중보에서 그토록 힘든 수로를 역행할 수 있는 물고기는 힘이 넘치고 건강한 물고기들뿐이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의 유행을 따라 살지 않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의식주(衣食住)를 따라 먹고 입고 집안 치장에만 큰 비중을 둔다면
이는 필시 영적(靈的)으로 죽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제는 우리 주위에 볼거리도 많아졌고 (TV 찬넬도 수십 개가 되고)
시청각 기기(機器)들도 참으로 좋은 것들이 많아졌다.
먹을거리도 입맛을 사로잡는 인스턴트식품들이 얼마나 많이 유혹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 얼마 전까지는 아래의 영감(靈感)의 글들을 아무런 눈치를 살피지 않고 인용 및 권면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말씀을(간식 문제만이라도) 권면한다면 많은 이유와 반론을 받게 되며,
우리 현재의 교회에서의 실상을 참고해 봅시다.

▣ <여기 도전적인 영감의 글을 옮겨봅니다.>
○ “규칙적으로 식사하는 일을 주의 깊이 지킬 것이다. 과자류나 견과나 과실이나 그 밖의 어떤 종류의 식물이라도 간식은 전혀 하지 말아야 한다. 불규칙한 식사는 소화 기관의 건전한 활동을 파괴하고 건강한 활력을 없애 버린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식탁에 앉을 때에 그들은 건강에 좋은 식물을 맛있게 먹지 못한다. 그들의 식욕은 그들에게 해로운 것을 갈망하게 된다. ― 치료봉사, 384(영문).”(교권, 223) (가건, 45)

○ 결코 간식을 하지 말라
“위에 대하여 신중한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위가 항상 활동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 혹사되고 남용된 기관에 좀 평안과 안정과 휴식을 주라. …”(자녀, 388)

○ “음식물의 특성과 음식물을 먹는 방법 여하에 따라 건강은 큰 영향을 받는다. 많은 학생들은 식욕을 억제하며 먹는 습관에 따르는 올바른 법칙을 지키는데 있어 전혀 결정적인 노력들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식사 시간에 지나치게 먹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유혹이 따를 때마다 식간에 간식을 한다.”(부모, 297)

○ “어머니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간식을 하도록 허용함으로써 큰 과오를 범하고 있다. 위는 이 습관으로 말미암아 혼란하게 되고 미래의 고통을 낳는 기초가 놓여진다. 그들의 성마름은 아직 소화되지 아니한 비위생적인 식물에 그 원인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문제를 추론하고 그의 해로운 취급을 시정하기 위하여 시간을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또한 그들의 성급한 고집을 달래기 위해 멈출 수가 없다. 그는 이 어린 수난자들에게 과자 조각이나 어떤 다른 진미를 주어서 그들을 달래고자 하나 이것은 단지 악을 증가하게 할 뿐이다. …”(자녀, 389)

◈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은 이타적(利他的)인 거룩한 사랑이 아니라, 악한 정욕과 이기적 욕구를 좇고 그것을 즐기는 세상적인 것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이유로.
1). 세상을 사랑함과 아버지를 사랑함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며,
2).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은 영원하지만 세상의 것은 잠간 잇다 지나가 버리는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요일2:15의 말씀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 말씀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마음이 나뉘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마침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식어버리고 만다. 는 말씀이다.

◈ 야고보서 기자는 4장4절에서 간음한 여인들로 은유적(隱喩的)인 표현으로 영적 불충성과 배교(背敎)에 대한 상징적인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 (렘 31:32; 호 2:2-5; 호 3:1-5; 호 9:1; 마 12:39 참조)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성도(聖徒)에게는 세상과 하나님이라는 두 가지 관심의 대상이 있으며 참된 믿음의 가치는 세상(世上)안에서 하나님의 표준에 다라 천상적인 것을 선택하는 삶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때때로 많은 사람들이 심령을 성결케 하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사모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를 떠나 장엄하고 위엄 있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시간이 없다. 영원한 사물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세속적인 사물이 으뜸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심령의 활력이 세속의 가시떨기를 자라게 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실물교훈, 51)
우리는 율법주의의 위험을 인식해야 하는 한편,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주변 나라들과 타협하려 할 때는 언제나 타락에 빠지고 말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일서 2:15는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경고한다. 한 교회로서 우리가 세상을 향해 선교를 하려 할 때 분명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세상에 미혹되거나 세상 속으로 휩쓸리지 말고 모든 것을 주님의 이름 안에서 행해야 한다!

◉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는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식어지고, 세상에 속한 염려로 생각이 채워지며, 말씀과 기도를 위한 경건의 시간이 없어지고, 현세적인 욕심으로 바빠진다.

◉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
“큰 잔치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 구주께서는 많은 이들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택할 것이며 그 결과로 천국을 잃을 것을 보여 주셨다. 우리 주님의 은혜로운 초청은 경시되었다. 그분은 큰 희생을 치러가며 잔치 준비를 위해 비용을 내고 수고하셨다. 그러고 나서 초청의 말을 전하였다. 그러나 ‘다 일치하여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고 대답하였다.”(교회증언, 2권, 39)

◉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
성경은 우리가 세상과 벗 삼으려 할 때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경고한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목요일(3월 25일)
<성령의 열매를 자라게 하는 비결(秘結) (요 15:8)>

▣ 열매를 잘 맺는 비결은 먼저 품종보다도 밭(토양(土壤))과 기후와 가꿈에서 많이 죄우. 된다.
그러나 주인의 가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하며(토양에 거름이 부족하면 거름을 주고, 가물어 매마를 때는 적절히 물을 주며, 벌레가 갉아먹지 않도록 해충(害蟲)을 퇴치 시켜주며, 온도가 잘 맞도록 조절해줄 때 좋은 결실과 많은 수확을 맺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품종이 나쁠 때에는 접(接)붙임을 통하여 훌륭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로마서 11:17-24 참조)
죄의 성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우리 죄인들은 예수님에게 접붙임을 통하여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 우리는 비록 씨앗이 자라게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열매를 맺기까지 자라도록 도울 수는 있다.
그것은 바로 성령 충만한 삶을 살 때 가능해진다. 신자(信者)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그 자체가 위대한 생명의 신비(神秘)이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그 자라남을 도울 수 있는지 분명히 지시하고 있다. 이같이 하여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요 15:8)는 예수님의 소망을 이루어드릴 수 있게 된다.

성령의 열매가 자라도록 장려하는 몇 가지 방법을 주목해 보자.
1.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으로.
성경의 유익성에 대해 디모데후서 3:16은 무엇이라고 선언하는가?
성경 연구는 우리 삶에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가?(참조, 딤후 3:17, 시 119:105)

2. 기도(祈禱)를 통하여.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영적 힘을 얻는 비결이다.
이 외에 어떠한 은사라도 기도를 대신하지 못하며 영혼의 건강을 유지하게 하지 못한다.
기도는 사람의 마음을 생명의 샘이신 그리스도와 접촉하게 하며 영적 경험을 더욱 굳건하게 만든다. 기도를 게을리 하거나 또 형편에 따라 기도를 가끔 중단하였다 계속하였다 하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게 된다. 그리고 영적 기능이 마비되며, 영적 경험은 원기를 잃고 허약해진다.”(복음 교역자, 254)

3. 바른 생각을 함으로써.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고상한 생각을 간직하게 할 수 있는가?

4. 그리스도인의 증거(證據)를 통하여.
귀신들렸다 고침 받은 사람이 예수님께 함께 가기를 청하였을 때, 그분께서는 그 요청을 거절하시면서 그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 주께서 그에게 행하신 일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막 5:18~20).

믿음을 나누는 것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의 증거의 삶이다.
믿음을 나누는 것이 성령의 역사를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 <영적성숙(靈的成熟)에 이르기까지>
“신자로서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내재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영적 성숙에 이르기까지 성장한다. 그의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사들을 통하여 우리는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 발전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 어린아이 시절의 경험을 뛰어넘어(엡 4:14), 그리스도인 경험의 초보적인 진리들 이상으로 성장할 필요가 있으며, 성숙한 신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단단한 식물’(히 5:14)을 섭취해야 한다.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히 6:1~2)고 말했다.”(기본교리, 2007년, 175)

▶ ☞ 과실을 많이 맺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예수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말씀을 연구하고 명상하고 기도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분의 세미한 음성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새 생명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거듭난 사람은 생각이 영(靈)의 생각이 되는 사람이다.(롬8:5) 그런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證據)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런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성령의 열매를 생활로 드러낼 것이다. 예수님이 그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 우리의 삶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는 말씀 연구와 기도, 바른 생각과 전도를 통해 그 열매가 자라도록 도울 수 있다.

◉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타락한 인류는 그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얻게 되고 모든 불의에서 영혼이 정결케 됨을 맛보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이 나타나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영광에서 영광으로, 품성에서 품성으로 저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된다. 선한 열매가 맺힌다. 품성은 점점 더 하나님을 닮은 품성으로 계발되며, 고결하고 정직하며 진실하고 자비로운 품성을 나타내게 된다.”(오늘의 나의 생애, 54)

◉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웅대한 사상과 순결한 생각으로 가득 채우라고 명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묵상하고, 구원의 대 경륜에 나타난 그분의 기이한 역사를 연구하기를 바라신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진리를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마음의 순결과 사상의 명료함을 바라는 우리의 욕구는 더욱 고상하고 거룩하게 될 것이다. 거룩하고 순결한 분위기에 젖어 있는 심령은 성경 연구와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해 변화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은 순종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마음속에 받아들인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선행(善行) 속에 나타날 것이다. 그 결과로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과 생애가 그들의 품성과 생애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에 대하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한다(요 5:30)고 말씀하셨다. 또 성경은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고 말한다.”(실물교훈, 60)

<초점(焦點)>

그리스도인으로써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求)하는 삶을 살며,
갈라디아서 5장22-23절의 성령의 열매인 9가지와 “의(義)”와 “진리(眞理)”와 “경건(敬虔)”과 “덕(德)”과 “지식(知識)”과 “소망(所望)”의 덕목들을 실현키 위한 삶을 살고자 할 때, 세상의 도전을 견디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원줄기에 접(接)붙임을 통한 삶을 통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


한기동안 부족한 글을 찾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예수님의 평강과 행복이 임하시옵기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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