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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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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6-10-10 13:01 조회2,6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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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기억절: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욥 2:10)

 

 

첫째 날(일) 하나님의 종, 욥

 

*도입질문: 욥기 1장에서 사단이 공격하는 대상은 누구인가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사단은 하나님께 욥의 내면에 있는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고 말하면서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느냐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기쁨으로의 경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욥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런 주장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경외함을 받기 위해 욥에게 복을 주셨다는 주장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창조주의 사랑을 알지 못함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상대적, 조건적 의미의 사랑을 하나님께도 적용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면서 동시에 공격하는 것입니다.

 

 

둘째 날(월) 계속되는 쟁투

 

*도입질문: 사단에 대해서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욥에 대하여 사단은 욥의 자녀와 욥의 물질적인 모든 것에 대하여 공격하였습니다.(욥1장) 그런데 하나님은 사단이 행한 모든 공격에 대하여 그것을 자신이 한 것처럼 표현하셨습니다.(욥2:3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사단이 나(하나님)를 격동하여 (하나님이) 까닭 없이 그(욥)를 치게 하였어도”입니다.

 

분명히 욥기 1장에서 욥을 공격한 존재는 사단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단이 하나님을 격동하여 하나님께서 욥을 치셨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글자대로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실적인 표현을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품성적 사랑의 표현법을 사용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지도 않으신 일을 하나님 자신이 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단이 행한 모든 일도 사단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책임지시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 자신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삼하24:1과 대상21:1 참조)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시는 하나님은 죄가 많은 곳에 더 많은 은혜를 주시는 분(롬5:20)입니다.

 

 

셋째 날(화)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리라

 

*도입질문: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라는 욥의 말속에서 볼 수 있는 욥의 하나님관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욥은 하나님을 조건에 따라 주시기도 하지만 조건에 맞지 않으면 취하여 가실 수 도 있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피조물들이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 아니라 피조물들의 행위에 따라 주시기도 하시지만 주신 것도 빼앗는 분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욥의 태도는 성경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창조하신 모든 존재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행17:25)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창조하신 모든 존재들을 섬기시는 분이십니다.(마20:28) 조건에 따라 달리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조건과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마6:30-32)

죄가 많은 곳에 은혜를 더 많이 주시는 분(롬5:20)이십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고 있어도 여전히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대속을 담보로 욥을 의롭다고 말씀하시고(욥1:8), 믿어주시고(고전13:7), 또한 언젠가 하나님의 품성을 깨달을 것을 바라신다(고전13:7)는 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고 있는 욥을 만나셔서 자신이 창조주 되심을 깨닫게 하셔서(욥37:-41) 욥의 오해를 교정해주십니다.(욥42:5-6)

 

 

넷째 날(수) 욥의 아내

 

*도입질문: 욥의 아내가 욥에게 제안한 말은 믿음 없는 말이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언듯 보면 욥의 아내의 말을 믿음이 없는 말처럼 보입니다. (욥2:9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의 아내는 자신의 울분을 여과 없이 표현하였습니다.

반면에 욥은 아내와 달리 하나님께 대한 불평을 일주일 동안은 입 밖에 전혀 내지 않았습니다.(욥3장에서는 일주일 후 드디어 입을 열어 자신의 억울함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더 지난 후에는 하나님께 대하여 공개적으로 비난합니다.-욥6:4, 9 욥7:18-20 등등,)

 

그렇다면 왜 욥은 자신이 당하는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확신(욥1:21, 욥2:10)하나님을 비난하지 않고 일주일을 참았던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자신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비난할 때 하나님께서 더 큰 벌을 주실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욥의 아내는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말했습니다. 일면 믿음 없는 듯하고 불경한 말처럼 보이지만, 욥의 아내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였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자세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시련과 고난에 대하여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이야기 한다 할지라도 그가 아는 하나님은 절대 그것 때문에 벌을 주실 분이 아니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확신한 다윗이 자신의 잘 못에 대하여 오히려 당당히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해 달라고 말하는 모습과 비슷한 모습입니다.(시25:11)

 

다윗의 이런 표현은 하나님의 품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매우 뻔뻔한 요구이지만, 하나님의 품성을 염두에 두었다면 담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의미가 언제나 용서해 주실 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 놓고 죄를 짓겠다는 의미가 아니고, 육신이 약하여 잘 못을 하지만 하나님의 품성은 반드시 용서해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주장한 것이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마침내 다윗으로 하여금 잘 못에서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확신할 때 자신의 감정도 다 얘기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 얘기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절대로 벌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말씀하길 원하십니다.(사1:18)

 

서로의 마음을 열어 대화할 때 진정한 사귐이 있게 되고, 그 사귐으로 사랑의 감정이 교류하게 됩니다.

 

 

다섯째 날(목) 죽을 때까지 순종함

 

*도입질문: 욥이 일주일 간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하지 않고 잠잠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욥은 고난을 당할 때 딱 일주일 동안 잠잠히 있었습니다.(욥2:13) 그런데 일주일이 지난 후에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일주일 후 욥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였습니다.(욥3:1) 생일을 저주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저주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 대한 그동안 마음으로만 품고 있었던 불만과 비난을 폭발시킵니다.

 

그렇다면 왜 욥은 일주일 동안 잠잠하고 참았던 것일까요?

욥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욥3:25) 그 이유는 욥은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조건적 사랑을 하시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조건적 사랑을 하시는 분이라면 하나님이 원하는 조건에 맞을 때만 복을 주시고, 조건에 맞지 않으면 벌을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복 받는 조건에 맞게 착할 수밖에 없었고, 악한 행동을 하면 안됐습니다. 이런 생활의 모습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제 하나님의 벌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불안한 삶이었습니다.

 

온전한 사랑이 없기에 두려움만 가득하였습니다.(요일4:18) 두려움 속에서 신앙하던 욥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식들이 다 죽고, 재산은 다 날아가고, 자신도 욕창이 걸려서 매우 큰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욥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하여 이유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불평하거나 하나님을 비난한다면 더 큰 벌을 내릴 것을 두려워하여서 일주일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주일을 지나는 동안 아무런 불평과 비난을 하지 않고 잠잠히 기다리면서 하나님을 기다렸는데도 하나님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복을 주시지 않자,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비난을 쏟아낸 것입니다.

 

자녀가 아버지가 무서우면 어떠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자신의 감정에 대하여 솔직해지고, 불평과 비난조차도 서슴없이 합니다. 어떤 것을 선택한다 할지라도 성내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알 때 우리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감정에 충실할 때 마음의 교류가 생깁니다. 마음의 교류가 있을 때 사랑의 관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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