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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과 예수님의 마지막 나날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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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6-06-13 11:08 조회2,6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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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과 예수님의 마지막 나날

 

기억절: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마 26:31)

 

첫째 날(일) 아름다운 일

 

*도입질문: 마리아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앞두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부은 행위는 왜 예수님께 좋은 일이 되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마리아가 깨뜨린 옥합은 매우 귀하고 비싼 향유였습니다. 값으로 생각하면 발에 붓는데 사용하는 것은 낭비처럼 보일 법 합니다. 마리아의 행위에 대하여 가룟 유다는 매우 아까워하면서 그 값으로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채웠다면 하는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의 평상시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면 예수님도 가룟 유다와 거의 동일한 반응을 할 것 같은데, 예수님의 말씀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위를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내면에 있었던 예수님에 대한 감사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주목하셨습니다. 그것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매우 값비싼 사랑의 마음이 표현된 것이었으므로 예수님은 값이 아닌 그 마음의 따뜻함에 대하여 매우 만족하셨고 십자가를 앞두고 한편으로 허전했던 마음이 사랑의 반응으로 인해 채움을 받는 귀한 시간이었기에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은 반응하는 사람과 반응을 바라보는 하나님 양편에게 생명력 충만함을 주는 선하고 좋은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머리로 하는 지식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함으로 나오는 가슴의 신앙의 모습이 보여 졌으면 좋겠습니다. 지식이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지식이 말하는 사랑에 반응이 될 때 진리가 됩니다. 지식이 생명이 되기 위해서는 지식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에 깊은 감동과 감사가 나올 때 그것이 바로 생명력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될 때 생명력 충만하게 되며 생명력 충만한 감동이 드러날 때 하나님은 좋은 일이라고 기쁨으로 말씀하십니다. 이성보다 감성으로 신앙하는 우리의 신앙이 되길 바랍니다.

 

 

둘째 날(월) 새 언약

 

*도입질문: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을 통해 보여주시고자 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유월절이 가까운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은 함께 하셨습니다. 그동안 수 천 년 동안 유월절의 절기 때마다 유월절 어린 양이 잡혀졌습니다. 이제 오래동안 상징으로 행해졌던 유월절 예식의 어린 양의 실체 되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와 살을 제자들에게 나누시는 일을 통해 사망 속에 있는 모든 인류를 자신의 피로 구원하시는 실제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십자가에서 내어주시는 행위는 창조주로서 창조 전에 자신의 생명으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계13:8) 창조주의 사랑을 실제로 보여주는 행위였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유월절 어린 양처럼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의 의미를 제자들이 먼저 깨닫고, 십자가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과 온 우주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품성을 온 인류에게 잘 드러내길 소망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사단의 거짓말을 드러내어 사단을 심판하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바르게 깨닫게 할 것이고, 오해했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게 할 것입니다.(요12:31-33)

 

 

셋째 날(화) 겟세마네

 

*도입질문: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마음에 짐으로 눌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은 십자가에 죄인의 모습으로 서게 됩니다.(롬8:3) 자신의 죄가 아니라 아담이 선택하여 모든 인류에게 적용된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아담으로서 첫 번째 아담의 모습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은 사망으로 달리는 것이므로 생명이신 하나님들과의 분리를 경험해야만 합니다. 하나님들 간의 연합은 처음부터 끊어진 적이 없었는데 십자가에서 죄인으로 모습으로 달리실 때, 그것은 하나님과의 분리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분리가 예수님에게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고, 분리에 대한 고통은 심장이 파열될 만큼 심각하고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세 번을 이어서 기도하신 내용은 하나님과의 분리로 인한 고통으로 인하여 할 수만 있다면 피하길 원하셨지만, 결국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감당하셨고 아버지와의 의논 속에서 이루어진 평화의 의논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로 인한 분리의 고통보다 더한 사랑으로 그 모든 고통을 감당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러났습니다.

사랑이 죽음보다 강했습니다.

 

 

넷째 날(수) 유다가 자신의 영혼을 팔다

 

*도입질문: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적인 야심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였을 때 자신이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마8:19-20)

유다가 꿈꾸는 세상은 구약 성경에 약속한 메시아가 오게 되면 다윗과 같은 강력한 왕권을 회복하여 이스라엘을 세상에서 최고의 나라로 세우는 세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약속한 메시아이고 자신이 도와서 예수님께서 강력한 나라를 세우게 된다면 자신의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은 원수를 무찌르는 왕이 아니라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가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돌려대라고 말하는 허약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5천명을 먹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자들을 고치시는 모습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지만, 흥분한 군중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마다 예수님께서 도망치듯 사라지는 모습에 유다는 또 다시 실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삼년 반 동안 유다의 마음에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품성과 인류를 위하는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마음을 예수님께 진정으로 드리고자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는 성령의 음성을 거절하고 사단이 주는 영향력을 선택하였습니다. 그가 최후에 예수님을 팔 때의 생각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시기 위해서라도 로마 군대와 싸우실 것이고, 그런 상황을 기점으로 로마와 전쟁을 통해 새로운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마지막 희망으로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을 아무런 저항 없이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 갔습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게 되었고, 무죄한 분을 판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이미 유월절 만찬 때 자신이 행할 미래의 일들에 대하여도 용서하신 예수님의 사랑(마26:27-28)을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죄책감에 빠져 자살로 그의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거의 유다와 같은 배반을 한 베드로는 예수님의 용서하신 사랑을 받아들이고 회복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유다가 가진 인간적인 뛰어남이 예수님을 구약 성경에 약속하신 참된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메시아로서 행하실 구원의 경륜에 담긴 사랑에 감동이 되었다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유다를 통해 전개가 되고 세상이 새롭게 바뀔 수도 있었는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한 개인이 하나님이 사랑에 매료될 때의 미래의 유용성은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섯째 날(목) 베드로의 부인

 

*도입질문: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이유는 무엇이며 예수님은 그를 어떻게 회복하셨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신의 마음을 호언장담하였습니다. 죽는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예수님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청구하는 사단의 경고를 말씀하셨고(눅22:31) 사단이 시험에 베드로가 넘어질 것이며, 넘어진다 할지라도 성령으로 이미 용서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후에는 함께 넘어졌던 형제들을 굳게 하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눅22:32)

 

로마 군인이 예수님을 잡으러 올 때 베드로는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집 안에 있을 때 자신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듯 행동하다가 여종의 질문을 받고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의 두려움으로 인해 예수님의 사랑을 놓쳤고(요일4:18) 그때 예수님은 예수님의 용서의 약속을 일깨워주는 닭의 울음을 들려주셨습니다. 닭의 울음을 듣게 될 때 성령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도록 역사하였고 자신의 연약함을 여전한 사랑으로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사랑으로 자신을 지지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확신으로 새롭게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행위 전에 이미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베드로가 돌이키게 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서만 일깨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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