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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과 "일어나 걸으라" 믿음과 치유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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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6-04-18 11:11 조회2,6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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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과 “일어나 걸어라” 믿음과 치유

 

 

기억절: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마 9:5)

 

 

첫째 날(일) 만질 수 없는 자를 만지심

 

*도입질문: 나병 환자를 손으로 만져서 치유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깨닫는 것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 당시에 나병(문둥병)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으로 온 병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나병은 살이 썩어나가는 무서운 병이었고, 치유는 잘 되지 않아서 격리하였고 하나님이 저주한 병이므로 낫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병 걸린 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은 곳을 혹 지나갈 상황이 되면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사람들과 접촉되지 않게 한 이후에 황급히 지나갔습니다. 나병환자가 지나갈 때 많은 사람들은 신속히 그 자리를 피하면서 나병환자를 또 한 번 저주하였습니다.

 

이런 취급을 받는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다가 왔습니다. 그리고는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대하는 일반적이고 율법처럼 여겨왔던 것과는 정 반대로 나병환자를 손으로 만져서 고쳐주셨습니다. 위생법과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생각의 틀을 깨어버리는 파격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이것은 동시에 하나님이 하신 일에 반기를 드는 참람한 죄처럼 보이는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병을 고칠 때처럼 말씀만으로도 나병을 고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굳이 손을 만지심으로 나병을 고치신 이유는 나병이 상징하는 죄와 죄인을 어떻게 대하시는 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나병을 가진 그 사람을 예수님은 여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분리로 인해 발생한 나병으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으로 생긴 병이라는 오해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의 소망도 끊어진 그 사람에게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은 오해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몸소 손을 접촉하심으로 모든 편견과 오해를 깨뜨리고 싶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으로 생긴 병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생명의 관계가 끊어진 인류에게는 사실 몸으로 나병이 드러나지 않았어도, 모두가 영적으로 나병 환자와 같은 상태이고, 그런 상태 속에 있는 모든 인류를 하나님은 여전히 접촉하셔서 회복하시고 싶으신 창조주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창조주의 사랑에 대한 감동만이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여 떠남으로 죄(사망)가 된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예수님은 사람들의 관습과 편견에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비난과 정죄를 받는다 할지라도 기꺼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감동이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사망의 죄에서 벗어나길 원하시는 성령의 생각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둘째 날(월) 로마 백부장과 메시아

 

*도입질문: 예수님께서 로마 백부장의 믿음을 주목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백부장은 100명의 군사를 관리하는 장교를 말합니다. 당시 최고의 군대인 로마의 군대를 지휘하는 백부장은 어느 날 예수님께 자기의 종이 중풍병이 걸렸는데 고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그의 집에 가고자 하였으나 백부장은 말씀만으로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표현하였고,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이스라엘 중에서도 볼 수 없는 믿음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칭찬하셨던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로마의 군인이 가진 믿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민족적 우월감과 힘의 편견을 깬 믿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로마의 속국인 유대나라 사람인 예수님에게 자신의 필요를 요청했습니다.)

셋째, 자신이 가진 힘을 사용해 본 사람으로서 예수님이 말씀으로도 자신의 종의 병이 나을 만큼 큰 힘을 가지신 분이라는 믿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씀만으로도 자신의 종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은 백부장이 예수님을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백부장의 믿음은 유대인들과 비교할 때, 이스라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믿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백성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듣고 성장한 백성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과거의 이야기로부터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전능함을 이미 듣고 알고 있었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들은 과거에 자신의 조상들에게 있었던 일이지, 현재 자신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함으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가 없었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유대인들이 과거에 함께 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화합하지 못하는 모습이 예수님께는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믿음의 크기와 내용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셋째 날(화) 마귀와 돼지

 

*도입질문: 귀신 들린 두 사람에 대한 말씀에서 깨달아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귀신 들린 두 사람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그 힘의 정체는 그를 지배하고 있었던 악한 영이었습니다. 악한 영의 지배를 받을 때에 사람은 악한 영이 주는 전파대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요13:2, 롬8:7)

 

사람은 영의 지배를 받고 삽니다. 나면서부터 사단이 주는 영의 전파에 지배를 받고 태어났고 살아갑니다.(요8:44) 사단이 주는 생각의 결국은 사망입니다.(롬6:23)

하나님과 분리되어 태어났고, 사단의 지배 속에서 살아감으로 사망을 끝날 우리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생명의 길을 우리들에게 속삭이셨습니다.(사30:21, 롬8:11)

 

귀신 들린 두 사람은 나면서부터 하나님과 분리되고 사단의 지배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사단이 지배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오직 예수님께서 개입하심으로만 새로운 길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를 더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죄 속에 있는 우리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 대신 돌아가시고 새로운 생명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동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생각(전파)을 선택하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생명의 일들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사랑은 사랑으로서만 일깨워지고, 사랑의 감동만이 생명을 선택하게 만들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감사할 때, 사단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넷째 날(수) 일어나 걸어라!

 

*도입질문: 죄와 질병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친구들에 의해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병자에게 예수님은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죄와 질병이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밝히신 것입니다. 이 말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벌로서 질병을 주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면 그것이 사망(죄)이고 사망의 과정 속에 있는 것이 질병입니다. 하나님이 벌을 주셔서 질병이 생기고 죽은 것이 아니라 생명이신 분과의 분리를 선택한 결과가 사망이고 질병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생명이 연결되는 것이고, 생명력은 질병을 치유하고 회복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주셔서 병을 낫게 해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조건적으로 이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병자는 오랜 병으로 인해 심한 상처를 받았었고, 어떤 의원이나 어떤 치료도 효과가 없자 자신의 병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주신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는 생각은 그로 하여금 희망이 전혀 없게 만드는 절망이었습니다. 급기야 그는 병의 치료보다 더 듣고 싶었던 것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았다는 확신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인식들도 병은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생각하였기에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이 갈망하는 내적인 갈급함을 아셨기에, 참람죄라는 정죄를 받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풍병자의 간절한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예수님 자신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일조차도 개의치 않고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갖고 있는 불행의 어떠한 것들도 다 해결해 주고 싶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일로 인해 예수님 자신의 안위에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개의치 않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고 싶어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때, 그런 사랑을 하시는 그 분을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로 선택하게 합니다.

 

 

다섯째 날(목)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도입질문: 죽은 자는 죽은 자들이 장사하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마8:21에는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의 집에 큰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제자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제자는 아버지의 장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씀드리자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자(단수)는 제자의 아버지이고, 죽은 자들(복수)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채 살고 있는 제자의 마을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아담이 사단의 말에 속아 하나님을 떠나는 선택을 할 때, 아담 안에서 태어날 모든 인류는 그때 함께 다 죽었습니다.(고전15:22)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유예된 생명을 살고 있을 뿐,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죽은 존재들입니다.

 

죽은 자가 장사지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죽은 자를 위해 살게 하는 복음전도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망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들보다 생명을 위한 일이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방향입니다.

사망 속에서 사망에 속한 일들을 하기 보다는 사망 속에 있지만 생명을 위한 일들을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속한 교회가 하고 있는 일의 방향이 어디에 있는 지를 알아보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고, 가장 빠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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