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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산상보훈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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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6-04-10 10:29 조회2,5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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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산상보훈

 

기억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첫째 날(일) 원칙과 표준

 

*도입질문: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에서 구약 성경의 말씀을 새롭게 다시 말씀하신 이유는 원칙과 표준이 달라져서 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구약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님은 자신이 기록하게 하신 구약의 말씀을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마5:22, 28, 32, 34, 39, 44)라고 말씀하심으로 마치 구약 성경을 새롭게 다시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여 집니다.

 

원칙과 표준이 달라진 것일까요? 구약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이 신약에 와서는 생각이 바뀐 것일까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히13:8)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품성대로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본래 그렇지 아니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완악함으로 인해 방해를 받기도 했습니다.(마19:8)

 

예를 들어, 마5:38-39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의 말씀을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본래 가진 생각은 눈을 상하게 한 악한 자에 대하여 죄가 많은 곳에 은혜를 더해주시는 하나님의 품성으로는 그 악한 자를 용서해 주라고 하고 싶지만, 사람의 완악함으로는 내 눈을 상한 그 악한 자에게 보복하여 악한 자의 눈 두 개를 상하게 하고 싶어함으로, 사람의 완악함을 충분히 고려하여 용서가 힘들다면 두 개의 눈을 상하게 하지 말고 너가 당한대로 한 개의 눈만 상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당한대로 복수하라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복수를 하고자 하는 우리의 완악한 본성 때문에 눈은 눈으로라고 한계를 지정하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말씀대로 순종한다고 생각하고 한다면 하나님의 품성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원칙과 표준도 오해하는 것이 됩니다.

글자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품성으로 안에서 글자를 생각해야 합니다. 글자 이면에 숨어있는 본래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때 성령께서 생명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둘째 날(월) 설교 대 율법

 

*도입질문: 은혜와 율법은 분리되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많은 사람들은 산상보훈을 옛 법을 대체하는 새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혜와 율법을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함으로 인한 결과들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율법은 명령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입니다. 율법(성경)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요5:39)

그래서 율법은 예수님처럼 거룩하고 의롭고 선합니다.(롬7:12)

 

율법을 명령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품성을 조건적 사랑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이 조건적이므로 율법에 순종하면 복을 주고, 순종하지 않으면 벌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은혜와 율법은 분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사랑은 선택의 자유가 그 바탕을 이루므로, 무조건적인 사랑에서는 명령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명령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은혜와 율법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인 것입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율법을 명령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약속에는 믿는냐, 안 믿느냐가 존재하지, 순종이냐 불순종이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이루시고, 그것들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함으로 솟아나는 순종이 열매로서 나타납니다.(약2:26)

 

 

셋째 날(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

 

*도입질문: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바리새인의 의는 자신들의 행위로 말미암는 의였습니다. 행위로 말미암는 의는 마음에 감동이 없습니다. 신앙에 대한 부담감만 늘어남으로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보실 때는 율법도 지키는 자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요7:19) 하나님의 사랑이 곧 생명입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상황이고, 그것은 어떤 행위를 한다 할지라도 사망의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롬14:23)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이미 죽은 자(엡2:1)이기 때문에 스스로 뭔가 할 수가 없습니다. 죽은 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죽은 행실 밖에는 없습니다.(히6:1) 그러므로 죽은 자에게는 산 자와의 접붙임이 필요합니다. 산 자와의 접붙임만이 죽은 자를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산 자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요14:6) 예수님과의 접붙임에도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 속에 두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택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감동될 때입니다. 사랑은 사랑으로서만 일깨워집니다.

 

십자가에서 보여 진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감동이 예수님에 대하여 신뢰하게 만들고(갈5:6), 신뢰할 때 예수님을 선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 아담으로서 첫 번째 아담이 선택한 영원한 죽음을 십자가에서 영원한 죽음으로 해결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완전한 생명의 의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선택할 때 예수님의 의가 나의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의이기 때문에(내 행위가 전혀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행위에 대한 감동만이 있을 뿐입니다. 감동할 때 사람의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뀝니다.

 

 

넷째 날(수) 천국의 법칙

 

*도입질문: 천국(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사랑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감동으로 행하여지는 곳입니다.(고후5:4) 사랑이 사람을 바꿉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처럼 보이는 말씀도 사실은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셔서 이루겠다는 약속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강제하지 않고 제한 없이 줍니다. 죄가 많은 곳에 더 많은 은혜를 줍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의 법칙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처럼 너희도 온전하라”(마5:48)도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이루시겠다는 약속임이 분명합니다. 온전함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정을 중시합니다. 아기는 배고플 때 울고, 누워서 주는 젖을 먹는 것이 아기의 온전함입니다. 아기가 뛰어 다니는 것이 온전함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기가 자라서 걸을 때에 걷고, 뛸 때에 뛰는 것이 그 때의 온전함입니다. 걷고 뛸 때에 여전히 누워있으면 그것이 온전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다르게 바라보십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온전함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과정 속에서 온전함으로 이끄셔서 더 큰 온전함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의 상태에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온전함의 길이요, 더 큰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현재의 불완전함도 완전하게 될 것을 바라고 믿어주는 사랑입니다.(고전13:7) 믿어주고 바라는 사랑으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온전하게 자라갈 것입니다.

 

 

다섯째 날(목) 천국 말씀을 받아들임

 

*도입질문: 예수님의 천국에 대한 비유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의 비유에 나타난 핵심은 보화의 가치가 얼마나 큰 지와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팔았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살만큼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의 가치는 장소적인 의미보다 천국 즉 하나님 나라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존재의 시작점이고, 생명의 근원이며 살아갈 이유와 소망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선택하는 것은 인생 최고의 의미이며 가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면 죽어도 살고, 살아도 영원히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것이 다 나의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행복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선택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 그 사랑에 끌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힘써 여호와를 알아가는 신앙이 되길 바랍니다.(호6:3)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감동받는 신앙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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