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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 성령의 열매인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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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2-02 12:28 조회4,5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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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6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1분)

제6과 성령(聖靈)의 열매인 자비(慈悲)

<핵심본문> : 엡 4:32
<연구범위> : 삼하 9:1~13, 잠 15:1~5, 25:11~15, 마 5:43~48, 눅 6:35, 38, 엡 4:32, 골 3:12~14.

<기억절>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골 3:12)

◉ 바울은 사랑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말할 때, 맨 먼저 ‘오래 참음’을 떠올렸다.
“사랑은 오래 참고…”(고전 13:4). 그는 오래 참음 즉 인내에 대해 말한 다음, 이어서 “사랑은 친절합니다.”(고전 13:4, 현대어 성경)라고 말함으로써 사랑과 자비 혹은 친절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했다. 친절이 빠진 행동은 참으로 사랑의 행동이라 할 수 없다.
앞에서 보았듯이 인내는 참는 사랑이다. 그러나 친절은 활동적인 사랑을 나타낸다. 종종 인내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친절은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행동하느냐, 더 나아가서 그것을 어떻게 말하고 행하느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로서 그것을 왜 말하고 행하느냐로 나타난다.
누구나 친절을 나타낼 수 있겠지만, 시간과 정력을 기울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친절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동사(動詞)이다. 그리고 친절은 사랑과 가까운 ‘사촌’으로서 실로 엄청난 힘을 내포하고 있다. 자비 혹은 친절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준다.

<학습목표, 및 교과개요 >
I. 깨닫기 : <회심한 사람의 증표인 친절>
친절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라는 사실을 숙고한다.
II. 느끼기 : <다른 이들에 대한 불친절의 영향>
다른 이들의 감정과 행동을 존중하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해 본다.
III. 행하기 : <친절을 나타냄>
모든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친절을 나타내기로 결심한다.
<要點>
친절은 그리스도인 문화의 핵심이다. 무례하고 거친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들 뿐 아니라 나 자신도 해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우리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게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친절 모델이시다.

일요일(1월 31일)
<자비(慈悲)의 표준(標準)(마 5:43~48)>

◈ 자비(慈悲)라는 말은 = “크게 사랑하고 가엽게 여김을 말하며”
영어로는 Kindness로 (친절, 상냥함, 인정이 많음, 다정함, 또는 친절한 행위, 호의, 애정, 우정 등을 말 한다.
즉 친절은 동사(動詞)로써 행동을 수반 한다.

예수님께서 그 유명한 산상수훈(受勳)이라고도 하며 산상보훈(報勳)이라고 하는 8복을 말씀하시는 복(福)의 신앙적 이해를 온전히 이해 하야할 필요가 있다
여기 산상수훈 중 8복(八福)에 대한기록으로
⑴ 복(福) 있는 자의 조건과,
⑵ 참 복의 내용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팔복(八福)이 모두 지상(地上)의 일시적 물질과 명예와 쾌락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 영원한 행복과 관련된 사실임을 깊이 묵상(黙想)해 보아야 할 것이다.
행복의 일부가 아니라 행복 자체를 다루고 있는 이 팔복(八福)은 그 조건으로 하나님을 향한 성실한 성도의 신앙 자세를, 그 결과로서 영원한 천국의 기쁨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천국이 비록 종말론적 이기는 하나 영적으로 지금 이 땅에서도 그 천국에 동참하고 있듯이 이 8복도 이 땅에서 오늘날 영적으로 향유(享有)할 수 있는,또 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 산상수훈의 배경은
성경전체, 나아가 이 세상의 문화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어야할 가장 완벽한 수준의 윤리체계를 보여주는 산상수훈이다.

☞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무제한적 실천을 산상수훈의 앞부분에서 말씀 하시면서 무저항의 교훈을 가르쳐주신 다음에 이번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원수(怨讐)까지 적극적으로 사랑하라고 명(命)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은 이 명령을 명(命)하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실천 하셨다.
(히 9:28; 벧전 2:24)는 시실을 기억하고,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이 명령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요 15:9-10; 벧전 4:8).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운동을 명령하시되 사랑의 질(質)과 량(量)의 문제 뿐 아니라 그 사랑의 대상 문제 까지도 규명해 놓으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 즉 자비의 표준인 것이다.

☞ 마태복음 5:48절에서 “온전”하라는 말은 “완전”하라는 단어와 같은 말로 누가복음 6:36의 “자비(慈悲)하라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 ”온전하라“는 말씀은 직설법적 표현이 아니라 온전하여야 한다는 명령법으로 표현이 되었음에 유의 하라. 이는 존재론적으로 볼 때 온전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심이시니 그를 믿는 우리는 모든 것을 바쳐 당위론적으로 그분을 닮아가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살전 5:16-18)

◉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신 예수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사랑과 자비와 인자와 긍휼이 충만하신 분으로 세상에 나타내고자 오셨다. 사단이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어 버리고자 노력한 짙은 흑암은 세상의 구속주(救贖主)에 의하여 제거되어 버렸고,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으로 다시금 드러나셨다.”(증언보감, 2권, 335)

◉ 자비와 친절에 대한 높은 표준이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 귀한 특성은 원수(怨讐)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祈禱)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월요일(2월 1일)
<“죽은 개”에게 나타낸 친절(親切) (삼하 9:1~13)>

◈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온다.
죄를 심으면 멸망과 사망이 나오며, 선(善)을 심으면 즉 예수님을 심으면 사랑이 나온다.

◈ 사무엘하 9:1~13에서 다윗이 베푼 선의(善意)의 원인(原因)은 다윗의 1, 2차 정복(征服)사업 (삼하 8장, 10장)사이에 하나의 삽화적(揷畵的) 사건으로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선대(善待)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이것은 다윗의 외부적인 정복사업을 추진하였을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 선정(善政)에도 힘을 썼던 사실을 보여준다. 이 사건에는 다윗의 고매(高邁)한 인품이 반영되어있다.
⑴ 관용(寬容) : 보통 새로운 왕조를 연 자들은 모반(謀叛)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전(前) 왕조의 씨를 진멸하는 것이 상례(常例)이나(삿 9:5; 왕하 11:1)다윗은 놀라운 관용을 나타냈다.
⑵ 의리(義理): 그는 오래전에 요나단과 함께 맺었던 약속(삼상 20:15, 42)을 왕이된 후까지 잊지 않고 있다가 적절한 때가 되자 마침내 그것을 이행하였다.

◈ 사무엘하 9:8의 “죽은 개 같은 나” 극도(極度)의 자기 비하(卑下)를 표시하는 유대인의 관용적 표현이다.
(삼하 16:9; 삼상 24:14)

◈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言約)에서>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言約)에서 그가 원수들에게 쉼을 얻게 될 때에 사울의 집에 친절을 베풀 것을 약속하였었다. “왕은 그가 번영할 때에 이 언약을 기억하고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삼하 9장 참조)고 물었다. 왕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있는데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절뚝발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울이 이스르엘에서 블레셋 사람에게 패배했을 때에 이 아이의 유모가 그를 안고 도망하다가 그만 떨어뜨려 평생 동안 절뚝발이가 되었다. 다윗은 이제 이 젊은이를 궁정으로 불러들여 큰 친절로 그를 영접하였다. 사울의 사유 재산을 그에게 돌려 주어 가족을 부양하게 하고 므비보셋 자신은 항상 왕의 객이 되어 날마다 왕의 식탁에 앉게 하였다. 므비보셋은 다윗의 원수들의 보고를 통하여 다윗이 왕위의 찬탈자란 강력한 편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왕이 그를 관대하고 정중하게 영접해주고 끊임없이 친절을 베풀어 주자 이 젊은이의 마음은 감동을 받아 그는 다윗을 아버지 요나단처럼 열렬히 사랑하게 되어 자기의 이해관계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왕의 이해관계와 하나임을 느꼈다”(부조와 선지자,(영) 713) (부조와 선지자 하 437쪽)

◉ 다윗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베푼 친절은 하나님의 자비(慈悲)하심의 단면을 보여준다.
두 발을 다 저는 장애(障碍)를 가졌고, 므비보셋 자신의 표현처럼 “죽은 개 같은”(삼하 9:8) 그를 다윗은 극진히 보살폈다. 이는 다윗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과분한 자비와 은총을 다른 이에게 나타내고자 함이었다.

◈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진심(眞心)에서 우러난 자비(慈悲)를 베풀려면 먼저 우리자신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경험(經驗)해야 한다. “그리스도께 가장 많이 용서(容恕)를 받은 사람들이 그분을 가장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날에 그분의 보좌에 가장 가까이 설 사람들이다.”(치료, 182)

◉ <망(亡)해버린 적(敵)의 집안에 친절(親切)을 베푼 다윗>
“요나단은 그의 아버지 사울과 함께 길보아 산 전투에서 죽었다(삼하 1:4, 17). 그 때 그의 아들은 겨우 다섯 살이었다(삼하 4:4). 이제 므비보셋에게 어린 아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 관련된 이야기는 다윗이 보좌에 오른 지 여러 해 후에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다윗은 요나단과의 깊은 우정을 잊지 않고, 친구에 대한 추억에서, 망해버린 적(敵)의 집안에 친절을 베풀고 싶어 하였다.”(재림교 성경주석, 삼하 9:1)

◉ 하나님의 선(善)하심과 자비하심은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謙遜)한 마음으로 그분을 앙망(仰望)하는 죄인들에게 주어진다.

화요일(2월 2일)
<친절(親切)한 말 (엡 4:32)>

◈ 왜 하필이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눈도, 귀도 두 개씩 주셨는데 하필이면 입은 하나만 만드셨을까?
이는 필시 보거나 듣는 것은 두 배로 하고 말하는 것은 한번만 하라는 하나님의 깊은 뜻의 배려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분쟁이 싸움이 3치도 안 되는 혀의 잘못 놀림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그래서 성경에는 출애굽기 4장10절로 시작해서 계시록 16장10절까지에 99회나 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모든 은사들 중에서 성령에 의해 성화되기만 한다면, 언어의 은사보다 더 고상하고 위대한 축복은 없다. 우리가 확신을 주고 설득을 시키는 것은 혀를 통해서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드리게 된다. 이것으로 우리는 구속주의 사랑에 대한 풍부한 사상을 전달한다. 이 사업을 통하여 문서 전도인은 진리의 씨앗을 뿌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비추어 준다.”(목사, 316)
◈ “반대하는 자를 대할 때에 혀를 지키라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므로 계속적으로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누그러지고 “주여 나의 본이 되어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반대 세력을 만날 때에 그대는 날카롭게 논쟁하는 태도로 보복하는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계속적으로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주님의 정신을 본받을 때에 그대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그 진리를 증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전도, 303)

(에베소서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32는 “서로 인자하게 하며”(엡 4:32)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 구절은 어제 우리가 살펴본 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대하라는 말씀과 완전히 조화를 이룬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인자한 태도를 나타내야 한다.
그러나 특히 우리가 친절히 대해야 할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첫째, 우리는 영적인 갓난아기들에게 친절을 나타내야 한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살전 2:7)
둘째, 우리는 연약한 자들에게 친절과 격려를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셋째, 우리는 영적으로 병든 자들을 섬기고 보살펴야 한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시리라.(딤후 2:24~25)
어떤 사업가가 말하기를, “나는 온 종일 친절을 베푸느라 지쳤기 때문에 집에 와서는 더 이상 친절을 베풀 기력이 없다!”라고 했다. 얼마나 서글픈 인생의 태도인가?
친절, 특히 가정에서의 친절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가정에서 친절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서로 대화하는 것이다. 가정의 분위기는 우리가 하는 말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우리가 무엇을 말하느냐 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조심한다면 우리는 수많은 문제와 상처와 긴장과 다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말을 할 때에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화나게 말할 수도 있고, 같은 말을 할지라도 정반대의 기분이 들게 말할 수도 있다. 열쇠는 우리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간의 언어는 단어의 의미 그 이상의 것을 통해 전달되는데 어조, 얼굴 표정, 몸짓, 억양 등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편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친절한 태도로 말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상하지 않게 해야겠다.

◉ 우리 입술에 있는 친절이라는 율법
“친절이라는 율법이 우리의 입술에 있게 하고 우리의 가슴 속에는 은혜의 기름이 있게 하자. 이것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부드럽고 동정적이며, 예모가 바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은혜가 필요하다. 틀림없이 우리는 성령을 받을 것이며 그 성령께서 분명히 우리의 품성 속에 역사하실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품성은 거룩한 불같이 될 것이며 향기를 발하며 그 향기는 하나님께 상달될 것이다. 그 향기는 정죄하는 입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을 치료하는 치료자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 보일 것이다. 날카롭고 비판적이며 거칠고 퉁명스러운 말은 한 마디도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다른 불로서 우리가 회의할 때나 우리의 형제들과 교제할 때에 반드시 내어버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이 거룩한 불의 핀 숯불에서 그들의 향로에 불을 붙이라고 하신다. 우리의 입술에서 그토록 쉽게 흘러나오는 천박하고 사납고 거친 말은 마땅히 제거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영이 인간이라는 대리자를 통해 말씀하시게 해야 한다.”(재림교 성경주석, 3권, 1164)

◉ 친절한 말 한 마디는 상대방의 마음에 기쁨을 선사하고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상(傷)하지 않게 하는 친절한 말을 익히자.

수요일(2월 3일)
<친절(親切)은 되돌아온다. (눅 6:38)>

◈ 우리말 속담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좋은 이이든 나쁜 일이든 적(작)게 하지만 그 대가(代價)는 크게 돌아온다는 말이다.
깊은 산(山)에서 큰소리로 욕설(辱說)을 하면 욕설한 그 말이 그대로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아무도 모르게 봉사와 헌신을 하신 분들의 미담(美談)은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주위에서 듣고 보는 것만도 참으로 아름답고 엔돌핀이 팍팍 나오는 이들입니다.

◈ <친절의 대가(代價)>
<이야기 Ⅰ>
미국 피츠버그에서 가구점으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가구점이 모여 있는 거리에서 여기 저기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할머니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한 가게의 주인만은 그 할머니를 안으로 모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나는 가구를 사러온 것이 아니라 차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건을 안 사셔도 좋습니다. 편히 앉으셔서 구경하세요."라고 친절하게 말한 다음 차번호를 적어 몇 번이나 밖에 나가 차가 왔는가를 확인했습니다. 이런 그의 행동을 지켜 본 주위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차가 올 때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그 할머니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그는 미국의 대재벌 강철왕 카네기로부터 깜짝 놀랄 편지를 받았습니다. "비오는 날 저의 어머니께 베푼 당신의 친절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부터 우리 회사에 필요한 가구 일체를 당신에게 의뢰하며 또한 고향 스코틀랜드에 큰집을 짓는데 그곳에 필요한 가구도 모두 모두 당신에게 의뢰합니다." 그의 작은 친절이 어마어마한 소득을 얻게 한 것입니다.
이 일이 과연 행운이었을까요? 아니면 따뜻한 마음씨에 대한 하늘의 축복이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이유로 이웃에게 소홀히 대합니다.
우리 속담에 "내가 다시 마시지 않겠다고 침 뱉고 돌아선 우물을 나중에 다시 찾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맑고, 밝고, 환한 태도와 말로 이웃을 대하면 우리에게 언젠가 큰 축복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13:2)

<이야기 Ⅱ>
옛날, 고기를 파는 백정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푸줏간에 두 명의 손님이 들어섰습니다. 먼저 들어선 손님이 거칠고 사나운 말투로 말했습니다.
"야, 백정! 여기 고기 한 근 대령해!"
푸줏간 주인은 말없이 정확한 한 근을 달아 내어놓았습니다.
두 번째 손님은 부드러운 말씨로 주문했습니다.
"박 서방, 나도 고기 한 근 주시우" 그런데 두 번째 손님에게 내어놓은 고기는 얼른 보기에도 두 근은 넉넉히 되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먼젓번 손님이 얼굴을 붉히고 화를 냈습니다.
"아아니, 똑같이 한 근 값을 냈는데 이럴 수가 있어?"
"어르신, 어르신께 드린 한 근은 백정이 드린 한 근이고,
저 어르신께 드린 한 근은 박 서방이 드린 한 근입니다."

<이야기 Ⅲ>
어느 비바람 치던 날 밤, 필라델피아에 있는 여관에서 한 노부부는 머물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웬만한 여관이나 호텔은 다 사람들이 꽉 차 있군요. 우리가 들어갈 방이 있습니까?"
노인이 물었습니다. 안내인은 마침 이 도시에 세 개의 큰 총회가 모이는 관계로 빈방이라곤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알려 주며, "객실은 모두다 사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밤 한 시에 이렇게 비 쏟아지는 거리로 당신들같이 나이 든 부부를 쫓아내고 싶지는 않군요. 누추한 제 방에서라도 쉬었다 가시면 어떨까요? 제 걱정은 안하셔도 좋습니다."
다음날 아침 노신사는 방 값을 지불하면서 그 안내인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호텔 주인이 될 만한 사람입니다.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그런 호텔 하나를 지어 드리겠습니다." 안내인은 웃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뉴욕행 왕복 기차료와 비바람 치던 날 만났던 그 때 그 손님을 찾아와 달라는 초청장이 동봉된 편지를 받아들었던 때도 그는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노신사는 거대한 도시 뉴욕에서 그 젊은 안내인을 데리고 5번가 34거리로 가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새로운 빌딩을 가리켰습니다.
"저것이 바로 내가 자네에게 운영해 보라고 지어 주는 호텔일세." 벼락에 맞은 듯이 그 젊은 안내인은 땅에 꼿꼿이 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은 바로 윌리엄 왈도르후아스톨 이었습니다. 사랑을 베푸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사랑가운데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야기 Ⅳ>
뉴욕에 있는 한 암 센터에서는 최근에 무일푼으로 보이는 어떤 환자로부터 3만5천 달러의 희사금을 받았다.
돈을 기탁한 환자는 마거릿 피어스라는 여자였는데 그녀는 돈을 보낸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나는 지금껏 그런 친절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피어스는 죽기 바로 얼마 전까지 그 병원에서 수술이 불가능한 암 치료를 받았던 환자였다.
그녀는 자신을 죽게 한 암 연구에 써 달라고 병원연구소에 자기 재산의 대부분을 희사한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 모두는 친절을 베풀 수 있다.
그 고통 받던 여인과 접촉했던 병원 관계자들은 그녀의 희사금으로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친절에 대한 보답을 받은 셈이다. 친절한 한 마디 말이나 사소한 행동이
얼마나 큰 효과를 낼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친절로 우리는 누군가의 하루를 밝게 해주거나 인생을 바꿔 주거나
심지어 그의 영혼을 구원(救援)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 <성경은 말씀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 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눅6:31-33)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잠3:27-28)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엡4:3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골로새서 3:12>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 남에게 베푼 친절은 축복의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친절뿐 아니라 불친절도 되돌아온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체적으로 가르치신 말씀이다.
우리가 배은망덕 하는 자에게도 자비롭고 악(惡)한 자에게도 사랑을 베풀 수 있다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친절히 대하는 것은 언제나 쉽다. 누구나 그렇게 한다.
그러나 특히 나에게 되갚을 수 없는 사람을 위해 희생을 치르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이 진정한 친절의 시금석이다.

◉ 되돌아오는 축복과 저주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은 선한 것이거나 악한 것이거나 간에 축복 혹은 저주의 형태로 우리에게 분명히 되돌아온다. 우리가 주는 것은 무엇이나 다시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세상의 축복은 같은 방법으로 종종 그렇게 되돌아온다. 우리가 주는 것은 필요한 때에 종종 네 배의 가치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 그리고 우리가 끼친 악 또한 다시 돌아온다. 정죄하고 낙심 시키는 일을 거리낌 없이 해온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들을 통과하게 한 그 땅을 자신도 지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동정과 친절의 부족 때문에 그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산상보훈, 136)

◉ 우리가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때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무아적인 희생을 나타낸다면
그것은 참으로 예수님의 모본(模本)을 따르는 일이 된다.

목요일(2월 4일)
<자비(慈悲)를 옷 입으라. (골 3:12~14)>

◈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는 새사람으로 생활해야할 의무가 있다.
새 생활은 용서와 사랑과 감사와 찬양으로 이루어진다.

◈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 그리고 용서>는 믿는 자들의 삶의 특질(特質)이며,
이 모든 것은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사랑이 없다면 이 모든 덕목들은 지속성이 없고 불완전하며, 결국에 가서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만다.

◉. 골로새서 3:12~14는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인내를 입고 그 위에 사랑을 더하면 이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매어 놓는다. 이런 것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잘 묶어두는 것이다. 옷을 입었으니 벗어지지 않도록 띠를 매는 것은 당연한데, 그 띠가 바로 사랑이다.

◈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가 사람들에게 나타났지만 그 자비가 공의를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율법을 변경하지 않으셨으나 인류의 구속(救贖)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고후 5:19)섰다.”(소망, 762)2

◉ 재림교인들은 우리의 신학적 입장과 신조에 대해 매우 강력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바른 교리를 갖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가?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낮추고 친절하고 예모 있고 부드럽고 동정적일 것 같으면 오늘날 단 한 사람 밖에 없는 곳에 백 명의 사람이 진리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9권, 189)

◉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친절한 행동
“어떤 사람이 세속적 칭찬과 보수를 전혀 바라지 않고 집에 찾아와 병자를 간호해 주고,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며, 헐벗은 자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분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자신은 다만 그분의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면, 사람들은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감사한 마음이 솟아나고, 믿음이 타오르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봐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펼쳐질 때 그 말씀을 들을 마음의 준비를 갖추게 된다.”(치료봉사, 145)

◉ 우리가 가진 진리는 참으로 소중하다.
그러나 진리이신 예수님을 닮아 친절과 자비를 나타내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진 진리는 빛을 발할 수 없다.

◉ “각 그리스도인 가정으로부터 거룩한 빛이 비쳐 나와야 한다. 사랑은 행동에 나타나야 한다. 그것은 모든 가족들 상호간의 교제에서 흘러 나가야 하며, 또 사랑 그 자체가 사려 깊은 친절과 상냥함으로 이기심이 없는 예모로 나타나야 한다. 이런 원칙이 실행되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시는 가정이요 가장 참된 사랑이 지배하는 가정이다. 이런 가정들로부터는 아침과 저녁에 기도가 아름다운 향기처럼 하나님께로 올라가고 하나님의 자비와 축복이 아침 이슬처럼 그 간원하는 자들 위에 내린다.”(재림신도의 가정, 37)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유약(柔弱)함으로 생각하여 다른 이들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딱딱한 태도를 취한다. 이 정신이 동정심의 발로를 방해한다. 사교적이고 관대한 생각들이 억제될 때 그들은 메말라서 차갑고 쌀쌀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잘못에 빠질까 주의해야 한다.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대와 관련된 사람들의 마음이 친절과 동정의 결핍으로 굶주리지 않게 하라.”(재림신도의 가정, 107)

<초점(焦點)>
자비(慈悲)의 표준은 예수님이시며, 자비는 친절(親切)로 나타나며
자비와 친절은 되돌아오며 친절과 자비로 진리이신 예수님을 나타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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