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 성령의 열매인 희락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3과 - 성령의 열매인 희락

페이지 정보

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1-09 15:00 조회4,686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2010년01월16일(안) (日沒: 오후 5시 38분)

제3과 성령(聖靈)의 열매인 희락(喜樂)
<核心本文> : 요 16:13
<硏究範圍> : 시 139편, 눅 15:4~24, 요 15:10~11, 히 11:16.

<記憶節>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學習目標 및 敎科槪要>
(깨닫기) :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데서 오는 기쁨
기쁨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숙고한다.

(느끼기) : 찬양의 자세를 실천함
모든 상황에서 감사와 기쁨을 표현한다.

(행하기) : 기쁨의 삶을 살아감
개인적 또는 사회적 관계에서 더 많이 긍정적인 감화를 끼친다.

◈ <등(燈)불>
기쁨(희락)과 행복은 꼭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행복은 상황(狀況)이 좋을 때 그 결과로 오지만,
기쁨은 상황과 관계없이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연결된 상태에서 이르러 온다.

<要點>
기쁨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서 온다. 순종(純宗)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법과 조화를 이루게 한다.
구원(救援)의 즐거움과 감사를 표현할 때 기쁨이 솟아난다.
개인적 혹은 사회적인 관계에서 기쁨을 나타낼 때 우리의 믿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고,
그들을 격려(激勵)하게 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일요일(1월 10일)
<기뻐하라는 명령(命令) (빌 4:4)>

◈ 희락(喜樂)이라는 말은?
기쁨, 행복(幸福), 즐거움, 환희(歡喜), 유쾌(愉快), 만족(滿足), 쾌감(快感), 황홀경(怳惚境), 광희(狂喜), 무아경(無我境), 큰 기쁨, 열광(熱狂), 기뻐 날뜀, 등등으로 표현하며, 경우에 따라서 적당한 단어를 사용한다.

◈ 영어로 joy는 ?
① delight, ② pleasure, ③ gladness, ④ ecstasy, ⑤ rapture, ⑥ exultation, ⑦ glee, ⑧ rejoicing,.…….
등등으로 경우에 따라서 그 단어들을 사용한다.

☞ 명령이란 = 윗사람이나 상위 조직(組織)이 아랫사람이나 하위 조직에 무엇을 하게 하는 것을 명령이라 한다.
명령을 받은 사람은 타의(他意)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러기 때문에 올바른 분이 명령을 내리는 것은 생명과 직결이 되기 때문에,
명령이란 참으로 귀중하고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의(義)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올바른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명령을 순종한다는 것은 곧 영생의 보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에게 일어난 나쁜 일로 인해 쓴 감정을 느끼고 화(禍)를 낸다.
그 결과로 그들은 영적 생애에 기복(起伏)을 경험한다.
그들에게는 기뻐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성경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빌 4:4)고 명령하는 것이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로 인해서는 항상 기뻐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부정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 안에서는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그분은 선(善)하시고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적인 안정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헌신과 직접 관계가 있다.
그분을 아는 것은 환경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안정감을 제공해 준다.
그래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은 시(詩)의 형식과 운율을 가진 노래의 형태로 기록된 시편들을 암송하고 노래함으로써 하나님에 관한 더 심오(深奧)한 지식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분을 알게 되면 다른 모든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보인다.

◉ 다윗은 시편 139편에서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심과 그분의 무한(無限)하신 능력에 대한 경험적 신앙고백으로 기록한 시편(詩篇)으로서 개인적인 감사와 기쁨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의 시(詩)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것은 다윗의 전 생애를 통하여 입증(立證)되어진 보배롭고도 엄청난 사실이었다. (겔 6:7 절에서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라는 말씀의 뜻은 ‘유다’백성들이 징계를 받고 나서야 하나님의 속성 곧 죄악을 심판(審判)하시는 공의(公義)로운 성품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에스겔6:7절에 쓰인 ‘알게 하려함’ (즉 ‘안다’)의 히브리 원어는 ‘야다’인데 이 말의 의미는 단순한 지식적 개념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율법의 규정에 따라서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관하여 철저히 공부하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자는 거의 없다.
그러면 이 ‘안다’는 말의 개념이 무엇인지 용례(用例)를 통해서 살펴보자.
<첫째> = <하나님이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경우>
① 선택하신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내가 땅의 모든 족속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암 3:2)란 말의 뜻은 모든 열방 중에서 이스라엘만을 특별히 선택했다는 것이다.
② 형통(亨通)하게하신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무릇 의인(義人)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아시나 (인정하시나 ; 개역성경)
악인(惡人)들의 길은 망(亡)하리로다’ (시 1:6)라는 구절은 히브리 시(詩) 특징(特徵)중 반의대구(反意對句)로서 전반부의 ‘안다’는 말은 후반부의 ‘망(亡)한다’는 말과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는 경우>
이때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그와 영적인 교제(交際)를 나눈다는 의미로 쓰인다.
예컨대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삼상 2:12)는 구절에서 보듯이 어려서부터 제사장 교육을 받은 제사장의 아들들이 지식적으로는 여호와를 모른다고 문자(文字)그대로 해석(解釋)할 수는 없다.
<셋째>= <사람과 사람사이에 ‘안다’는 단어가 사용된 경우>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를 아니(동침(同寢)하매; 개역성경)하와가 임신(姙娠)하여.(창 4:1)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성(性)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히브리어 ‘야다’의 개념은 단순히 지식적인 앎이 아니고 전인격적인 교통과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舊約)의 선지자들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백성들에게 촉구(促求)하였던 것이다.

◉ 베드로전서 1:8~9에는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는 우리는 주님의 기이한 창조 섭리와 보호의 손길로 인해 기뻐할 수 있으며,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약속과 현세에서의 축복,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뻐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 <환경(環境)에 의해 지배(支配)되지 않는 기쁨>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밤중에 하나님께 찬미하고 기도할 때,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이 기쁨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 곁에 계셨으며, 그분의 임재의 빛은 하늘 궁정의 영광으로 어둠을 밝혔다. 로마에서, 바울은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을 보고는 자기가 차꼬를 차고 있다는 것도 잊고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 그리스도께서 산상에서 하신 바로 그 말씀이, 핍박을 받고 있는 빌립보 교회에 보낸 바울의 기별 가운데서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는 말로 울려 퍼지고 있다.”(산상보훈, 35)

◉ 기쁨은 환경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우리가 진정 기뻐해야 할 많은 이유를 마음속에 간직하자.

월요일(1월 11일)
<그리스도의 기쁨(히 12:2~3)>
◈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사이를 화목(和睦)하게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엡 1:7, 16절)
외모(外貌)에 상관치 않고 한 영혼의 사적(私的)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는 참 목자장이신 예수님.
오로지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로 멸망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위하여 높은 보좌와 생명까지도 버리고 나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속죄제물이 되심을 생각할 때 잃었던 한영혼의 찾고 찾으심에는 그 기쁨이 한량없도다.

◉ <믿음의 주(主)요. 예수를 바라보자>
그리스도인들은 앞서 가시는 예수그리스도(히 6:20)를 바라봄으로서 영적 승리자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는 극심한 고난을 받으셨으나 승리하셨고 이로써 하나님 우편에 앉는 영광을 얻으셨다.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이것은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이 너무도 가혹하여 믿음의 경주에서 전의(戰意)를 상실하게 될 때 고난과 승리의 대명사인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함으로 끝까지 인내할 것을 권면한 것이다.
아무리 혹독한 고난일지라도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생각 할 때 성도들은 충분히 견딜 수 있다.
성도가 신앙 경주의 결승점까지 힘차게 달려갈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 가능하게 된다.

◉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譬喩)에는 죄인을 찾고 찾으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열망이 그려져 있다.
그 죄인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 잘 묘사되어 있다.
잃었던 죄인 하나가 회개(悔改)하면 하늘은 말할 수 없는 큰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充滿)해진다.
① 잃은 양(羊)의 비유(譬喩)(눅 15:4~7)
잃은바 되었으나 돌아올 길을 모르는 죄인들을 찾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② 잃은 은전(銀錢)의 비유(눅 15:8~10)
잃은바 되었으나 잃은바 된 것도 모르는 죄인들을 찾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③ 탕자의 비유(눅 15:11~24)
잃은바 된 것도 알고 돌아올 줄도 아는 죄인들에 대한 비유이다.
이 세 비유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는다.
기쁘게 잔치를 벌인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잃은 자를 찾아 나서는 것은 하나님의 순수한 기쁨이다.
예수께서는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기쁨으로 충만하셨는데,
이는 그분이 많은 사람을 구원하실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이 지구는 하나님이 주관 하시는 광대한 우주에 비해 지극히 작은 한 개의 원자(原子)에 불과하다.
… 하늘 조정에서 사랑받는 사령관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의 잃어버린 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가 아버지와 함께 가지고 계시던 그 영광을 버리시고 그 높은 자리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오셨다. …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잃어버린 양을 도로 찾는 기쁨을 얻으려 하심이었다.”(실물교훈, 190)

◉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사시는 동안 수많은 고난과 핍박을 당하셨으나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일을 통해 지극히 순결한 기쁨을 누리셨다.

화요일(1월 12일)
<순종(順從)의 기쁨(요 15:11)>

◈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계명(誡命)을 좇아 사랑을 행하는 자들은 충만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
사랑은 항상 기쁨을 동반(同伴)시킨다. (갈 5:22; 빌레몬서 1:7)
요한복음 15:10~11에서 예수께서는 우리가 계명에 순종할 때 기쁨이 충만할 것을 아셨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하였다.(느8:10)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힘이다.
순종하는 것이 힘 드는 것이 아니라 힘을 곱하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정직하게 순종하는 삶은 안정된 삶이며 기쁨의 삶이다.
그 기쁨은 주변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다. (참조: 시편 19:8, 예레미야 15:16, 마태복음 7:21~27)

☀ <계명에 순종할 때 기쁨이 주어짐>
“우리는 십계명을 사랑의 측면에서 보고 금지 조항이라는 측면에서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십계명에서 ‘하지 말라’하는 것은 그것을 순종하는 자에게 행복을 보장하는 확실한 보증인 것이다. 우리가 십계명을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일 때 그것이 우리 속에 역사하사 품성을 순결케 하고 그러한 품성은 무궁토록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십계명은 보호벽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본다.”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85)

◉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죄책감과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우리 인간은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참된 기쁨을 회복하는 길이다.

수요일(1월 13일)
<힘든 때에 누리는 기쁨 (요 16:33)>

◈ <환난(患難)중의 기쁨>
행복은 기쁨을, 고통은 번민(煩悶)을 가져오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환난(患難)중에도 기뻐할 줄 아는 비밀(秘密)을 가진 자이다.
그것은 환난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 환난이 곧 끝날 것과 그 환난이 환난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큰 소망에의 확신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환난의 진정한 가치는 그 결과로 성도가 인내의 연단(鍊鍛)을 통하여 더욱더 큰 소망을 갖게 되는데 있다. (약 1:12-15)

◈ '예수님'께서는 (요 16:33) 환난(患難)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膽大)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6:33에 주시는 뜻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깊은 사랑이 담겨져 있다.
① 제자들의 신앙(信仰)을 위해서 (요 13:19; 요 14:29)
② 기쁨을 충만(充滿)하게 하려고 (요 15:11)
③ 환난에 대비(對備)하게 하려고 (요 16:4)
④ 그리고 평안(平安)을 주시기 위해서 이토록 환난중의 기쁨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 “담대(膽大)하라”는
KJV는 (be of good cheer : ‘유쾌(愉快)하여라’로,
LB는 (cheer up : ‘기운을 내라’로 번역(飜譯)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주는 환난(患難)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다. (롬 5:3-4) 그것은
①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이며
② 그들의 상(賞)이 천국에서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 5:12)
☞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께서는 세상임금 곧 사단을 이기셨고 (히 2:14)
모든 인류 위에 왕 노릇하던 사망(롬 5:12-14)의 권세도 폐(廢)하셨다. (딤후 1:10). 그러므로
그를 따르는 성도들 역시 '예수님'처럼 승리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롬 8:37; 고전 15:55)

☞ < 갈라디아서 6:9, 야고보서 1:2~4, 베드로전서 1:6 >
시련(試鍊)은 인내(忍耐)를 만들어낸다. 인내(忍耐)는 소망(所望)중에 즐거워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약속(約束)의 확실성(確實性)을 믿으면,
이 세상에서 만나는 시련들이 우리를 단련하여 주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할 것을 믿을 수 있다.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야고보서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벧전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기쁨을 갖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중심적이라는데 그 원인이 있음을 생각해 보라. 물론 현실적으로 문제에 봉착한다 할지라도 오직 그 문제에만 집착한다면 우리는 거기에 생각이 사로잡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우리는 기쁨의 근거를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

☀ <시련(試鍊)을 통과(通過)함으로 기쁨을 누림>
“주께서는 우리가 세속적인 것과 이기심과 조급함과 비 그리스도적 품성에서 깨끗함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신다. 그 깊은 환난의 물결이 우리를 덮치도록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과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더러운 죄악에서 깨끗이 씻음을 받고자 하는 깊은 갈망을 갖도록 하시며 그 시험을 통하여 더욱 순결하고 더욱 거룩하고 더욱 기쁨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다.”(실물교훈, 174)

◉ 시련(試鍊)의 때에 기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 자신이 겪고 있는 시련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그리스도께 집중(集中)할 때 기쁨을 되찾게 된다.

목요일(1월 14일)
<지속적(持續的)인 기쁨 (히 11:24~25)>

◈ 모세는 왕궁(王宮)의 호화(豪華)로움과 사막의 고생, 죄악의 낙(樂)과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는 고난(苦難), 애굽의 보화(寶貨)와 그리스도를 위한 능욕(凌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岐路)에 서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이 땅의 잠깐 뿐인 것보다 비록 고통이 따르지만 영원한 것을 믿음으로 ‘선택(選擇)’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의(義)를 위해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인에게 자랑스러운 것이며 (마 5:11-12),
고난(苦難)은 영광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必須)단계인 동시에 준비 과정이며 (행 14:2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에는 고난(苦難)이 뒤따름을 배우게 된다. (욥 2:7, 참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4~25)

◈ <욥이 당한 환난(患難)의 이야기>
☞ 욥의 온몸을 뒤덮은 종기를 나병 또는 상피병(象皮病)(filariasis)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 상처(傷處)가 심(深)하여 사람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된다. (욥 2:12),
욥은 병(病)이 진전됨에 따라 심한 가려움증이 생기며 (욥 2:7-8), 차차 궤양이 되어 고름이 나온다.
요컨대 욥은 재난(災難)위에 재난(災難)을 당하여 아내와 친구들의 비난거리로 전락(轉落)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 받은 듯하다 처절한 단절감을 맛보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마 27:46).
이처럼 더할 나위 없는 질고(疾苦)를 당한 욥이었기에 역설적(逆說的)으로 욥기 19:25-27절에 나타난바와 같은 강열한 부활(復活)의 소망을 가질 수 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편 본 말씀에서는 고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고난의 원인(原因)과 목적(目的)과 성격(性格) 그리고 극복방법(克復方法)등에 관해 간략히 고찰(考察)해 봅시다.

☞ [ⅰ] <고난(苦難)의 원인(목적)>
⑴ (죄에 대한 형벌(刑罰))
→ 바로의 억압, 출애굽, 광야에서의 방랑생활, 가나안땅에서 겪게 되는 이방족속들과의 계속된 전투, 가나안땅의 정복, 그리고 바벨론 포수(捕手)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는 축복과 고난이 점철되어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며 순종할 때에는 축복으로,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징벌(懲罰)로 응답하셨다.
⑵ (연단과 성숙을 위한 도구).
→ 욥의 경우에서처럼, 하나님께서는 특정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자에게도 고난을 허용(許容)하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정금(正金)같이 연단(鍊鍛)하시기 위함이다. (벧전 1:7).

[ⅱ] <고난의 성격(불가피성(不可避性))>
→ 고난은 인류의 죄 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재림 하시는 그날가지 이 땅에 존재할 것이다. 설령 우리 자신이 별다른 고난을 경험하지 않고 비교적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 참담한 경우와 눈물이 끊어질 날이 없다. 그 뿐 아니라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늘 고난이 있기 마련인데, (딤후 3:12).
성도는 이를 통해 더욱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히 5:8-11)

[ⅲ] <고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姿勢)>
⑴ 고난당하는 성도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 그릇된 행실을 회개(悔改)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고후 7:9)
⑵ 특정한 범과(犯過)도 없이 감당하기 힘든 고난에 봉착하게 되면 흔히 깊은 회의에 빠져들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당하는 순간에는 혼돈과 답답함을 많이 경험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믿고 순종하면 더 심오한 각성과 풍요한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⑶ '예수님'께서는 전적으로 무죄한 분이셨으나 인류의 모든 죄악과 그로 말미암은 저주들을 가슴아파하시며 친히 희생제물이 되셨다. (요 1:35; 히 4:15). 우리는 이를 통해 가장 숭고한 고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성도들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원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다른 성도들의 고난에도 기꺼이 동참하는 데에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롬 12:15)

◈ 욥의 아내는 남편이 하나님의 불공평(不公平)과 불의(不義)하심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위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남편에게 하나님을 저주(詛呪)하고 죽으라고 박대(薄待)한다.
그러나 아내의 결론은 하나님의 공의(公義)로우신 본질(本質)과 고난에 대한 잘못된 인식(認識)에서 나온 것이다.

◉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 뒤에는 큰 기쁨이 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 아닐 수 없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

◉ 기쁨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을 알 때에 이르러 오지만, 즉각적인 결과는 종종 곤란하고 고통스런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큰 실망을 겪을 수 있다. 우리가 헌신한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해서 재물(財物)과 명예(名譽)와 영향력(影響力)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핍박(逼迫)을 당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믿음을 따라 심지어 순교(殉敎)를 당하기도 한다.

◉ <영원(永遠)한 기쁨과 일시적(一時的) 복락(福樂)>
“그리스도께서는 각 사람이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보기를 요구하신다. 정직하게 계산해 보라. 저울 한쪽에는 영원한 보배가 되시고, 생명과, 진리와, 천국을 의미하는 예수님과 그리스도의 기쁨이 되시는 구속 받은 영혼들을 놓고 다른 편에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복락을 놓아라. 또 한편 저울에는 잃어버린바 된 그대 자신의 영혼과 그대의 조력으로 구원함을 받을 수 있었던 자들의 영혼들을 놓고, 다른 편 저울에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측정될 수 있는 그대와 그들을 위한 영원한 생명을 올려놓았다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을 대비하여 달아 보아라.”(실물교훈, 374)
◉ 이 세상이 주는 행복은 피상적(皮相的)이고 일시적(一時的)
이지만, 우리가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영원히 지속(持續)될 뿐 아니라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다.

◈ <기름으로 비취는 초점(焦點)>
성령의 열매인 희락(喜樂)(Joy)은?
기뻐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며,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수많은 고난과 핍박을 당한다 해도,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안에 있을 때 기쁨이 되며 주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순종 할 때 기쁨이 이르게 되고, 역경과 시련의 힘들 때에도 내 자신에 시련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예수님'께 집중할 때 기쁨을 되찾게 되며 지속적인 기쁨은 '예수님'안에서 누리는 기쁨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며 날마다 새로워 질수가 있다. †


+++++++++++++++++++++++++++++++++++++++++++++++++++++++++
<말미부록(末尾附錄)>
☀ 그리스도인들보다 기쁨의 노래를 부를 이유를 더 가진 자들이 누구이겠는가?
그들은 왕족의 일원 곧 하늘 왕의 자녀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복음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아닌가?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꺼이 그리고 충만히 받아들일 때 하늘의 광명이 우리 삶에 깃들게 된다.”
(의료 전도자와 건강 교육자로의 부르심, 26)

☀ 상록수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
“상록수가 되기를 구하여라. 온유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단장하라.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값진 것이다. 사랑과 희락(喜樂)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은혜를 마음에 품으라.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나무에 열리는 열매니라.
그것은 시냇가에 심기어졌기 때문에 시절을 좇아 언제나 그 열매를 내느니라. (원고 39, 1896).”

☀ 사단의 모든 기교와 계책은 우리 인류의 멸망을 성취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그대들이 안락을 추구하는 자들과 함께 편안히 앉아서 “나는 구원 받았다”는 말을 그대의 입술에 가볍게 담으면서 하나님의 계명들을 무시한다면 그대들은 영원히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안락을 추구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을 주는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위로하는 기쁨으로 충만한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다. 이 기쁨은 성령의 희락(喜樂)이다.
그처럼 진리에 설득되어 마음과 정신을 활짝 연다면 그대들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비취는 모든 빛의 광선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1기별, 318)

☀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회개할 때에 그에게 새로운 도덕적인 감각이 생기게 되고 새로운 동기의 힘이 주어지며 그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물들을 사랑하게 되는데 그의 생애는 예수님의 생명에 이르는 불변의 약속들의 금사슬로 묶이게 될 것이다.
사랑과 희락(喜樂)과 화평과 형언할 수 없는 감사함이 그의 영혼 안에 충만하게 될 것이며 축복을 받은 자의 언어는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시 18:35)라고 찬양할 것이다.”(1기별, 336)

☀ 그분은 우리와 같이 연약하신 형제이시다. 그러나 같은 성정을 갖지는 않으셨다.
“흠없는 분으로서 그분의 본성은 악과 상관이 없었다. 그분은 죄악 세상에서 영혼의 투쟁과 고통을 견뎌 내셨다. 그가 인간이셨으므로 기도가 필요하였고, 그 기도는 특권이 되었다.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하늘의 희락(喜樂)을 버리고 냉랭하고 배은망덕한 세상에서 살 것을 택하신 그분께, 아버지께서 나누어 주시려고 예비하신 그 강하고 거룩한 모든 뒷받침과 위안을 그분은 기도로 요구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와 교통하는 가운데 위안과 기쁨을 발견하셨다. 여기서 그분은 그의 마음을 쪼개는 슬픔을 덜어 놓으실 수 있었다. 그분은 슬픔의 사람이셨고, 비애를 맛보셨다.”(2증언, 201)

☀ “정말 필요하지도 않고 책임과 정죄만을 증가시킬 세상의 것들을 얻기 위해 많은 이들은 꽉 짜여진 계획으로 일하며, 건강과 영적희락(喜樂)과 평안과 편안함과 가족들의 행복을 위협한다.
그들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그들의 아주 적은 시간과 돈이 들기 때문에 영혼들이 주위에서 멸망하도록 방치한다. 돈은 그들의 신이다. 그들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된 돈은 찾을 보장이 없다고 생각한다.”(2증언, 656)

☀ “빛은 이기적 목적을 따름으로써가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고, 인간의 제안이 아닌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따름으로써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喜樂)이다.”(목사, 497)

☀ “하나님의 은혜로 땅에서 하늘에 이르는 더욱 빛나는 계단을 올라갈 수 있는 자는 누구든지 마침내 “영원한 희락(喜樂)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사 35:10)을 가지고 그 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가게 된다.”
(성화, 94)

☀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喜樂)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사 35:10).”(교육, 167)

☀ 사랑, 희락(喜樂), 화평, 오래 참음, 온유, 믿음, 사랑은 그리스도인 품성의 요소이다.
“이 귀중한 특성들은 성령의 열매이다. 이 특성들이 그리스도인의 면류관이요 방패이다.
― Pacific Health Journal, 1890. 9.”(자녀, 173)

☀ “아! 하나님을 봉사하는데 본분을 다하고, 주의 승인을 얻기 위하여 예수를 바라보며, 그리고 날마다 그들의 회계 장부에 그들의 실수와 그들의 허물과 그들의 슬픔과 그들이 시험을 이긴 승리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들의 희락(喜樂)과 화평을 기록하는 자들의 형편이 얼마나 더 나을 것인가! 이러한 청년들은 그들의 일생의 기록을 볼 때에 수치와 실망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 청년 지도자, 1899년 6월 22일”(청년, 44)

☀ 우리는 도달하여야 할 믿음의 산봉우리들이 있다.
“그 곳에는 모든 것이 성령 안에서 평강과 희락(喜樂)뿐이다.”(청년, 103)

☀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땅에서부터 하늘에 닿은, 빛나는 계단을 올라가서 마침내 “노래하며 … 영영한 희락(喜樂)을 띠고”(사 35:10) 문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리뷰 앤드 헤랄드, 1887년 11월 15일”(청년, 116)

☀ 탕자의 비유는 청년들을 교훈하기 위하여 주어졌다.
“많은 청년들은 이 탕자가 행한 것처럼 부주의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생수의 근원, 곧 진정한 희락(喜樂)의 원천을 버리고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파고 있다.”(청년, 408)

☀ 가정을 희락(喜樂)과 예절과 사랑이 거하는 곳으로 만들라.
“만일 가정생활이 이상적으로 되면 가정에서 형성한 습관은 후에 젊은이가 가정의 안식처를 떠나 세상으로 나가게 될 때에 엄습해 오는 유혹들에 대항할 수 있는 튼튼한 방벽이 될 것이다. ─ CH, 100.”(절제, 210)

☀ 그리스도께로 접(椄)붙임을 받음.
“그리스도 안으로의 이러한 접붙임은 우리를 세상과 분리시킨다. 더 이상 우리는 더럽고 오염되고 오염시키는 자들과의 교제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풍성한 과일들이 주렁주렁 맺힌다.
성령의 덕성들은 사랑과 희락(喜樂)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양선의 열매를 맺는다. 우리는 새로운 애정, 새로운 식욕, 새로운 취미를 갖는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것이 되었도다.”(행실, 135)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