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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과 부록> 에스더서 사건의 역사적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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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15-08-04 23:27 조회3,5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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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서에 기록된 유다민족의 위기가 그들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다.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며 유다민족은 이방의 땅으로 포로로 끌려갔다. 겉으론 사단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의 세월이 흐른 BC 537년, 페르시아 고레스 대왕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포로귀환령(1차 조서-예루살렘 성전중건령)을 내린다. 유다인들은 감격하여 고국에 돌아갔으나 대적들의 방해로 성전중건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BC 520년, 다리오왕에 의해 다시 조서(2차 조서-고레스의 조서를 실행하라는 확인조서)가 내렸다. 그로부터 5년여 만에 우여곡절 끝에 스룹바벨 성전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을 중건해야 하는 등 유다인에게는 과제가 아직 남아있었다.

바로 그 즈음 BC 474년, 하만에 의한 유다민족 말살의 위기가 온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며 신앙을 회복하던 중에 이를 시기한 사단이 그들을 멸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민족적인 회개로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 도리어 그들의 대적을 제압하고 이방인들이 유다인들로 귀화하는 선교적 대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10여년 후인 BC 457년(구속사의 가장 긴 예언인 2300주야의 기산점), 아닥사스다왕에 의한 예루살렘 중건령이 내려 예루살렘의 회복이 더욱 확실하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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