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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과 "그들의 열매로 알리라"(새해교과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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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ulcho 작성일09-12-24 15:29 조회4,7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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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과 "그들의 열매로 알리라"
1월 2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25분)

도입)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꽃을 피우라 하지 않으시고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다. 꽃은 아무리 화려해도 곧 시들지만 열매는 끝까지 남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가 맺는 열매를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통해 우리를 판단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 믿음의 근본이 잘못된 사람은 겉으로만 믿음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삶과 나타나는 행위를 보면 그 실상을 알게 된다.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열매가 신앙과 인격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좋아 보이나 세월이 갈수록 좋지 않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 이유는 근본이 못된 나무이기에 나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고 교훈한다. 좋은 나무라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어있다. 가을에 농부는 탐스런 열매를 기대하며 나무를 심고 거름을 주고 정성을 다해 돌본다. 수확기에 농부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바로 벌레 먹은 열매들이다. 병을 이기지 못하고 기형이 되어가고, 아예 벌레의 집이 되어 온통 썩은 열매들을 보면 농부의 가슴은 아픈 멍이 들게 된다. 우리 영혼의 과수원에도 열매를 갉아먹고 기형이 되게 하는 해충들이 있다. 해충을 대충 처리했다가는 반드시 농사를 망치게 된다. 철저하게 없애야 한다. 우리 영혼의 해충은 심령을 썩게 만드는 죄이다. 정직과 진리가 주장해야하는 심령에 죄가 들어오면 성령이 떠나고 사단이 주장하면서 열매는 온갖 형태의 기형으로 변해간다.

기억절: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연구 범위: 눅 13:7~9, 요 11:4, 12:28, 15:1~10, 딤후 3:5.

안식일 오후
주님께서 주신 가장 감격스런 약속 중 하나는, 만일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번 기에 우리는 성령의 열매의 다양한 면들을 공부할 것이다. 놀라운 구원의 계획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한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들은 언제나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약속이 정말 나에게도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갖는가? 성경은 ‘예’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이것을 확신할 수 있다. 즉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것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빌 1:6). 그분의 이 말씀을 기억하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그리고 가장 좋은 소식은 성령께서 우리의 삶 속에 행하시는 선한 일이 단지 현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 교과에 인용된 예언의 신의 증언들과 재림교 성경주석의 엘렌 G. 화잇 언급 부분은 영문 페이지로 표기됨.

일요일(12월 27일)
“나무는 그 열매로 아나니”(눅 6:44)

도입)
클린 클라인스(Pauline Rose Clance)의 가면현상(Impostor Phenomenon, 假面現象)이란 책이 있다. Imposter '사기꾼‘, ’타인을 사칭하는 자‘ 를 뜻하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위와 신분에 이르렀으면서도 끊임없이 이것은 나의 참 모습이 아니다. 언제 가면이 벗겨질지 모른다는 망상에 시달리는 현상을 말한다.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 대기업의 중역 가운데 70%가 이 병에 걸려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못하면서 하는 척, 아는 것이 없으면서 다 아는 것처럼, 알고 보면 이렇다 할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부끄럽기 짝이 없으면서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남의 것 남의 돈 남의 지식을 가지고 내 것인 양 착각을 하고 있다. 아닌 것을 긴 것처럼 살고 있다. 가면인 것이다. 외식이다. 거짓된 내가 있는 한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거짓된 나, 이것을 외식이라고 부른다. 현대는 속마음과는 달리 거짓으로 꾸민 외식이 판을 친다. 하나님 앞에서만은 가식과 외식을 벗어나야만 한다. 꽃게가 다 성장하기 위해서 10번의 허물을 벗어야 한다고 한다. 어느 정도 크면 더 크기 위해서 허물을 벗는다. 우리도 허물을 벗어야 한다. 내가 아닌 내가 자꾸 나를 감싸는 외식을 벗어야 한다. 계속 벗어야 진실한 자기가 드러난다. 하나님 앞에 보이는 외식을 벗어야 결국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성령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대개 이런 질문은 ‘방언’을 말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그들은 방언 말하는 것을 성령의 내재를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어떤 외형적 표적이나 이적을 어떤 것의 증거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셨다. 마태복음 7:21~23에 기록된 그분의 분명한 경고를 들어보라(참조 계 16:14).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부정할 수 없는 이적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행해지겠지만, 그러한 이적을 행한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그분의 신실한 제자라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을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자들이 경건의 모양은 가졌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딤후 3;5)

1. 디모데후서 3:5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은 오늘날의 형편을 어떻게 나타내 주고 있습니까?
답: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눅 6:43~44)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그 자신이 고백하는 바를 통해서보다는 그의 됨됨이를 통해서 나타난다. 봉사를 위해 성령의 선물들이 교회에 주어졌다. 성령의 열매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질 때 삶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과 좋은 열매를 맺는다 것은 그 됨됨이를 강조한 말이다. 훌륭한 배우가 마하트마 간디 역을 맡아 멋진 연기를 펼칠 수 있겠지만 결코 실제의 마하트마 간디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선하게 보일 수 있고 선한 말을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선한 행동을 나타내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선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교훈: 나무는 그 열매로 알듯이 사람도 그 행실의 열매로 알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속일 수는 있으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부가적용)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오해 가운데 가장 큰 문제 하나는 ‘열매’를 맺는 것이다. ‘열매’란 우리의 모습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생활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열매’는 맨 처음에 뿌려진 ‘씨’를 말한다. 콩의 열매는 콩이고 팥의 열매는 팥으로 계속 ‘열매’로 존재하는 것뿐이다. 콩의 열매가 팥의 열매로 뒤바뀌는 것처럼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육적인 상태에서 영적인 상태로 바뀌는 개념으로 생각하다보니 그렇게 착각을 하는 것이다. 변형되었던 씨가 본래의 씨앗으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열매를 맺는 것”이라면 신앙인의 ‘열매’는 본래 창세전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의 존재인 사람으로 가는 것이다. 짐승의 속성인 야수에서 진정한 인간의 본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죄를 기억해서 눈물, 콧물을 흘리며 참회하는 차원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쏟고 눈물을 흐렸지만 우리 자신이 완전히 달라지던가? 그렇지가 않다.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 본연의 존재로 되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온전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직접 나무에 올라가 나와 함께 죽어주셨다는 것을 믿는 순간, 비로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것이다.

월요일(12월 28일)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 15:5)

도입)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려보았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인생의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 없는 인생은 결국 헛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서는 절대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나무를 떠난 가지는 존재 의미를 가질 수 없듯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는 예수님을 통해서이다. 가지는 가지자체에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생명은 나무에 있는 것이다. 가지는 나무로부터 생명을 공급 받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없으면 영생할 수 없다. 내가 온 것은 너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생명 자체인 것이다. 예수 안에 있어야 우리도 생명이 있다. 나무와 가지와의 관계가 잘 이루어 질 때 무엇이든지 원하는 데로 구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가지가 나무에 잘 붙어 있으면 모든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는다. 모든 영양분을 공급받고 생명과 수분을 공급 받아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이다. 갈5:22-23 사랑과 희락과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 절제, 그 위에 인격의 열매도 맺을 수 있고 영혼의 열매도 맺을 수 있다. 여왕벌을 중심으로 일벌들은 열심히 일하고 목표가 있고 생산이 있다. 여왕벌이 죽으면 그 중심축을 잃어버리고 목표가 없고 일할 의욕도 없고 생산도 없다. 결국 방황하다가 죽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을 사는 사람들 중에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삶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이 안 계신 삶은 결국 방황하다 죽는 꿀벌과 같은 것이다.


어린 두 소년이 부모님의 허락을 받지 않고 수영장에 가기 위해 2층 창문으로 뻗어 있는 과일나무를 타고 내려가곤 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그 죽은 나무를 베어버려야겠다고 하는 소리를 소년들이 듣게 되었다. 이들은 비상 탈출로가 없어질 것을 걱정한 나머지 가게로 달려가서 인조 사과를 사다가 죽은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놀라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배나무에 사과가 열렸지?”

요한복음 15:1~5을 읽고, 다음 질문들에 답하십시오.

1.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참 포도나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참' 포도나무라고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참조 마 24:24)
답:

2. 요한복음 15:5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우리를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실제적인 차원에서 무슨 의미입니까? 즉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답:
4절에서 예수께서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과실을 맺을 수 없다고 설명하셨다. 우리는 이 중요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과나무에서 잘려나간 가지를 생각해 보라. 그 가지에 거의 익어가는 사과가 몇 개 달려 있었다고 가정해 보라. 가지는 곧 어떻게 되겠는가? 그 사과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사과에 빨간 색을 칠한다고 달라지겠는가? 그 잘려진 가지를 땅에 꽂고 물을 주고 거름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가지를 땅에 꽂아둔다고 해서 계속 더 많은 사과가 맺히겠는가? 그러니 가지가 나무줄기에 붙어 있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교훈: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한 다른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도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우리는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만 열매 맺는 생애를 살 수 있다.

부가적용)
그리스도를 떠나면 인생은 빈껍데기다. 이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다. 바울은 한걸음 더 나아가 “내가 사는 것도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바울의 신앙고백이다. 예수가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고 인생이 결국 무효라는 것이다. 포도나무 비유에서 말하려는 진리의 핵심이 이것이다. 문제는 내가 예수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이다. 문제는 항상 구경꾼이 문제다. 구경꾼에게는 나뿐 것이 더 많이 눈에 띤다. 가정이 없는 사람이 가정을 바라보면 결혼 못한다. 오줌, 똥 속에서 자라는 것이 가정이 아닌가? 교회도 만찬가지다. 밖에서 바라보면 얼마나 모순이 많은가?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때 먼저 예수님을 사랑해 보라,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다.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된다. 내가 어떻게 항상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듯이 이렇게 바싹 달라붙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예수라는 나무에서 한없는 에너지가 솟구쳐 나오는 것이다.
화요일(12월 29일)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요 15:8)

도입)
55세 된 중국의 한 여인이 예배 모임에서 자신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유는 우상 숭배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예수 이야기, 교회 이야기,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어머니의 마음이 상할까봐 어머니 앞에서 한마디도 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많은 세월 동안 벽장 속에 갇힌 그리스도인이 되고 말았다. 그녀에게는 어머니를 불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예수께 대한 믿음보다 더 중요했다. 그 결과 사단의 지배로 그녀의 어머니는 75년이 넘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 사단은 이 딸의 침묵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어머니에게 가는 것을 막는데 성공을 했다. 결국 그녀의 어머니는 하나님과 분리되는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 사단은 거짓 가치관에 초점을 두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고 우리의 귀를 막는다. 행복이라는 미명하에, 성공이라는 미명하에 하나님의 뜻과 멀어지게 하고 세상 것들을 추구하도록 만들어 인생을 낭비하도록 하게 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여 주여’ 하는 신앙고백이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믿었기 때문에 자동으로 구원 받을 거라며 신앙생활이 방만해지는 것을 예수께서는 경고하신다. 주님은 말이 아니라 우리의 행함을 보시기 원하신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답:
“잘못된 동기로 옳은 일을 행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릇된 이유로 예수님 안에 거하기를 시도할 수도 있는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다. 그분 안에 거한 결과는 열매를 맺는 것이며,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열매는 우리를 선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1. 이적과 선행으로 가득한 그리스도의 봉사에는 어마어마한 추진력이 있었습니다. 그 힘은 어디서 온 것이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무엇이 선행의 동기가 되어야 함을 깨닫게 됩니까?(요 11:4, 12:28)
답:
만약 교회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지역사회에 뭔가 봉사할 방법을 찾고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동기와 목적이 무엇인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가? 우리는 이 둘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여러 면에서 우리는 이 둘을 혼동하기 쉬우며,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미명 아래 자신을 드러내기가 쉽다.

교훈: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우리는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옳은 일을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부가적용)
바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바울사도가 위대하다고 바울 사도를 칭송하지 않았다. 바울 사도를 그릇으로 쓰셔서 역사하신 하나님,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신 역사를 인하여. 크게 기뻐하면서(행15:3)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하이든의 위대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공연되는 날이었다. 그날 하이든은 몸이 몹시 아파 객석에 앉아 있었다. 공연은 대 성공이었다. 수많은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치며 지휘자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러자 지휘자는 청중들의 박수를 중단시키며 객석에 앉아있는 하이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입니다. 저 분이 이 놀랍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하이든을 바라보며 다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때 하이든이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분이 모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소금과 빛으로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의무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은 그래야 구원을 받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우리의 몸을 사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사는 삶이라고 강조하였다.

수요일(12월 30일)
“더 많은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요 15:2)

도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게 하시기 위해 쓸모없는 가지는 자르신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여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바로 '죄'이다. 때론 우리의 삶에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고난'이라는 영적 수술을 하실 때가 있다. 자른다는 단어의 중요한 의미는 ‘집어 든다’ 라는 뜻도 포함한다. 혹여...너무 빨리 자라 가지가 땅(죄악된 세상에 얽매인 삶)에 붙으면 썩게 되는데, 그것을 집어든다라고 말씀하신다 .때론 아픔을 주시더라도 우리를 열매 맺도록 일으켜 세우신다. 포도농사를 하다보면 반드시 새순에서만 열매 맺는 진리를 발견한다. 우리의 삶을 연단하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무수히 많은 가지치기를 하셔서 깨끗게 하신다. 우리 인생의 매일 가지치기를 경험하는 삶은 날마다 감사가 넘치는 삶이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열매 맺도록 하시기 위해 무슨 일을 하시는가? 말씀을 주심으로 우리를 깨끗게 하신다. 가지치기의 칼은 바로 말씀이시다.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말씀을 통해 가장 인격적인 방법으로 깨끗하게 하신다.
제일 먼저 말씀으로 깨달음을 주실 때가 가장 좋은 연단의 도구로, 쉽고 빠르게 우리를 고치신다.

1.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요 15:2). 우리 삶에서 이와 같은 전정(剪定)의 과정은 어떤 것입니까? 그러한 전정의 경험을 당신은 가져보았습니까? 그 과정이 끝났을 때,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답:
추수의 계절이 끝나면 농부는 포도밭에서 대부분의 포도나무를 전정한다. 다음 해의 수확은 어떤 가지를 남겨 두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농부는 신중하여야 한다. 전정의 비결은, 수확과 포도나무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가지를 너무 많이 남겨 두거나 너무 적게 남겨 두어도 안 된다. 전정을 충분히 하지 않으므로 열매가 너무 많이 맺히게 되면, 그 이듬해 포도나무의 성장은 약해지고 수확량도 떨어지게 된다.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기술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시험의 자리에 두심으로 그들이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신뢰하는지를 보고자 하신다. 그분께서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않으신다. 그분은 자주 인간적인 연결을 끊으시고 사람들이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계획을 변경시키신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그의 영적 혹은 세속적 관심사로 인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가져야 할 경험과 모순이 될 수도 있다. 그가 가치 있게 여기는 정로에서 멀리 벗어나 있을 수도 있다.
시험은 이 땅에서 천국에 이르는 날까지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천국에 이르는 길을 좁은 길이라 부른다. 성품은 시험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의 외형을 붙잡고 있는 많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성향 즉 자신의 길과 교만과 야망을 고집하는 성향에 의해 방해받게 될 것이다. 주님의 허락에 의해 매서운 시험이 그들에게 닥칠 때 그들은 참된 신앙의 결핍과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겸손함의 부족을 느끼고 성령의 필요를 절감하게 될 것이다.”(엘렌 G. 화잇, 하늘 처소에서, 266)

교훈: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시련의 전정을 허락하시는데, 이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한 것이다.

부가적용)
언젠가 한 여성이 많은 괴로움을 품고 하나님이 참으로 자기를 사랑해 주시는 것일까, 자신을 잊어버리신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산책을 하면서 포도원 옆을 지나갔다. 포도밭은 가을 햇볕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포도나무마다 많은 잎이 있었지만, 잎만 있고 열매는 하나도 없었다. 그때 하늘의 정원사가 그녀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너는 너 자신이 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 괴로움과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느냐? 기억하여라! 내 딸아, 정원사가 가지치기와 손질을 그만두고, 써레질과 경작을 멈추는 것은 그가 그 포도나무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었을 때뿐이란다. 너는 내가 너의 인생에서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를 원하느냐? 만일 그렇다면, 나는 가지치기를 그만두고, 경작을 그만두고, 써레질도 그만두고, 너에게서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로 할 것이다.” 그녀는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닦으면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하늘 정원사이신 하나님, 알겠습니다. 이젠 알겠습니다. 주님이 내 인생에 허락한 시련들로 인해 나는 더욱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 간구하옵나니, 이러한 슬픔과 고통을 통하여 나의 삶에서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된다면 부디 나의 삶을 경작하여 주옵소서!” 여러분의 모든 소원과 꿈과 희망이 좌절될지라도 기뻐하라. 그리고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포도나무의 가지를 쳐 주시는 것은 바로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라는 것이다.

목요일(12월 31일)
“실과가 열면 좋으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눅 13:9)

도입)
세계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포도주가 프랑스에서 생산된단다. 프랑스의 한 마을에서는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기 위해서 포도나무를 심을 때 일부러 좋지 않은 땅에 심는다고 한다. 포도나무를 토질이 좋은 땅에 심으면 쉽게 자라서 탐스런 포도가 열리긴 해도,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아서 땅거죽의 오염된 물을 흡수하기 때문에 포도의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단다. 그러나 포도나무를 척박한 땅에 심으면 빨리 자라진 못해도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품질이 뛰어난 포도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쉽게 이루는 일보다 힘들게 이루는 일이 더 가치가 있다. 또 쉽게 할 때보다 힘들게 한 뒤에 더 큰 힘이 길러진다. [창 49: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우리는 꽃보다 열매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여기서 무성한 가지란 열매가 가득한 가지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꽃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다(헛된 인생, 짧은 인생을 비교할 때 꽃으로 비교됨).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다. 샘(하나님) 곁에 있는 가지는 열매를 많이 맺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영역을 벗어나(담을 넘어) 남을 돕는 인생이 된다. 요셉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파와 나라에게도 축복의 통로가 되어 복을 전해준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지경을 넘어 복을 전할 수 있는 귀한 가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1730년부터 1745년 사이에 미국에는 ‘대각성’으로 불리는 영적 부흥이 북부의 메인 주부터 남부의 조지아 주까지 동시에 일어났다. 이 영적 회복 운동의 지도자였던 조너선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1741년 7월에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적이 있는데, 그 설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잔혹하고 무서운 지옥의 모습을 연상시켜 주었다. 물론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이 설교는 죄의 무서운 무게를 잘 표현해 주었고 죄에 대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태도를 나타냈으며, 심판의 확실성을 드러내 주었다.

1.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5:1~10에서 열매 맺는 일에 관하여 어떤 균형 잡힌 개념을 제시하셨습니까?
답:
예수께서는 만일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 안에 거하기만 한다면 우리에게 전가된 그분의 의로 말미암아 구원의 확증을 얻게 된다. 한편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그런 자들은 말라지고 마침내 불에 던지우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참조 벧후 3:9)

2. 누가복음 13:7~9의 비유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습니까?
답:
이 비유의 핵심은 열매를 맺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아닌데, 그것은 행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한 형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맺는 열매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그분 안에서 소유한 구원의 실체를 드러내 준다. 열매를 맺는 것은 받은 구원에 대한 외적 표현이다. 그것은 구원 얻는 수단이 아니다. 우리가 이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조만간 놀라운 열매를 거두었다는 생각 때문에 교만해지거나 우리의 수확이 보잘 것 없다는 생각 때문에 실망하고 포기하게 될 것이다.

교훈: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우리가 맺는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얻은 구원의 결과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뿐이다.

부가적용)
좋은 씨를 심으면 좋은 알곡을 거둔다. 좋은 나무를 심으면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된다. 이 진리는 가장 쉬운 진리이면서 가장 단순한 진리이다. 이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 진리를 잘 깨닫고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예수님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따겠느냐?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리라고 하셨다. 좋은 나무의 인생으로 살자는 교훈을 가을을 마감하고 겨울을 맞이하는 계절의 가르침을 얻게 된다. 미국의 유명한 사업가인 존 워나메이커가 있다. 그는 기독교의 신앙인의 실업가로 크게 성공한 세계적인 사업가의 모델이다. 22살에 사업을 시작하여 83세까지 61년간을 사업경영을 선두 지휘한 경영인 사업가이다. 그는 청교도 후손으로 모든 일의 표어와 같은 두 가지의 기둥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자”이었고 또 하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한다”이었다. 그와 만나서 인사할 때 어떻게 지나십니까? 하고 인사하면 그는 서슴지 않고 “나는 주안에서 즐겁고, 바쁘고, 감사하게 삽니다.”라고 했다. 어떻게 언제나 즐겁게 일하며 바쁘게 일하며 감사하게 일하며 살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마지못하여 일하고 누가 시키니까 하고 먹고 살기 위하여 억지로 일하지만 나는 주안에서 스스로 원하여서 일하기에 즐겁고 감사하게 일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던 간에 신앙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고 바쁘게 일하면서도 감사하게 일한다면 그는 행복한 인생이다. 사람은 모든 일을 선택하는 존재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슨 옷을 입을까? 오늘 누구를 만날까? 를 선택하게 된다. 좋은 선택은 좋은 기회를 만들어서 좋은 일을 창조하게 된다. 인생의 여정을 깊고 길게 보면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 내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언제인가 고난의 씨를 심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좋은 것을 얻은 것은 내가 전에 좋은 씨를 심었기 때문이다. 오늘 심은 대로 언제인가 다음날에 거두게 된다. 그러기에 오늘은 내일을 위하여 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좋은 씨를 심고 잘 가꾸는 일로 살아야 좋은 열매의 가을과 좋은 안식의 겨울이 될 것이다. 나무는 거짓말을 못한다. 왜냐하면 열매로서 좋고 나쁨이 정확하게 증거가 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말로는 포장하고 감추고 속일수가 있어도 많은 시간이 흘러 한 가지 일을 처리했던 결과를 보게 되면 정확하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금요일(1월 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고 구주께서는 말씀하셨다 모든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열매를 맺는다 저들의 생애는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선한 일이 이뤄진 것과 성결에 이르는 열매를 맺은 사실을 증거할 것이다 저들의 생애는 향상될 것이며 순결하게 변화될 것이다 바른 행실은 참된 경건의 틀림없는 열매이며 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저들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다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5)고 말씀하셨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329)
“교회와 연합했으나 주님과 결합하지 않은 모든 자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품성을 드러낼 때가 있을 것이다 ‘그 열매로 그들을 알’ 것이다(마 7:16) 그들은 경건의 소중한 열매인 절제, 인내, 친절, 사랑, 자선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가시와 엉겅퀴만을 맺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공언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받으신다”(엘렌 G 화잇,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삶, 9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일요일 교과에서 살펴본 대로, 실제로 선하게 되는 것과 선하게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2 교회에 등록했으나 주님과 결합하지 않은 자들은 조만간 그들의 실상을 드러낼 것이라는 엘렌 화잇의 진술을 주의깊이 읽으십시오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 자신이 참으로 어느 부류에 속해 있는지 진지하게 자문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깨달은 내용이나 한 주일 동안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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