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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 도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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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12-18 21:45 조회4,9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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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12월 26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20분)

제13과 도피성(逃避城)
<硏究範圍: 민 33~36장, 수 20:1~7, 엡 2장. / 核心本文: 히 6:18~19>

<記憶節>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히 6:18~19)

<序論>
◉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신실히 지키셨으나 이스라엘 백성의 1세대는 신실하지 못하였고, 그들에게 주어진 땅을 유업(遺業)으로 얻는 대신에 거친 광야에서 죽었다. 그 일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복을 주셨건만 그들은 신뢰(信賴)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우리 대부분이 결코 목격하지 못했고 또한 목격하지 못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기적을 목격하였다.
그러나 믿음으로 행하기를 거부(拒否)하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멸(滅)하지 않으셨다. 결코 그러지 않으셨다. 성경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주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성취하시리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구속받은 백성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이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스라엘의 1세대처럼 그들을 위해 행해진 그 모든 기적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있는가?

<學習目標>
I. 깨닫기 : → (도피성(逃避城))
도피성(逃避城)의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여기서 우리는 구원에 관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지 확인한다.

II. 느끼기 : → (우리의 도피성(逃避城)이신 그리스도)
우리의 피난처인 그리스도께 숨을 필요성을 느낀다.

III. 행하기 : → (안전한 피난처 안에 거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공하신 도피성(逃避城)을 활용한다.

<要點 >
하나님께서는 레위인 들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살게 하심으로 선물이 되게 하셨다.
도피성(逃避城)은 하나님의 공의와 중보에 대한 더 심오한 의미를 준다.

일요일(12월 20일)
<역사(歷史)의 교훈(敎訓) (민 33장)>

◈ <출애굽 전(全) 여정(旅程)>
이스라엘 역사는 인간의 실패와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하나님 나라 건설과 인간 구원(救援))이 성취 되어온 구속사(救贖史)의 정수(精髓)라 할 수 있다.
특히 출애굽의 여정은 인간이 부패하여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인생들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끝없이 베푸심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가신 일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구속사의 전형(典型)으로 취급된다.
한편 민수기 33장에는 출애굽의 40년 동안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자취가 숙영(宿營)했던 곳을 중심하여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그들의 최초 출발지인 애굽에서, 최종적으로 진 쳤던 모압 평지까지는 일반 여행자가 1주일 만에 주파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으나 이스라엘은 약 40년이라는 시간이 경과된 후에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었다.
이런 엄청난 시간의 소요는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반역과 불순종 때문에 빚어진 결과 였으며 여타의 이유들은 극히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무리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에 그대로 입국시킬 수 없으셨다. 그들에게는 스스로의 죄를 자성(自省)할 시간이 필요했으며 하나님과 자신들의 관계가 어떠해야함을 인식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여기 제시된 41개의 장소는 단순한 지명(地名)의 열거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범죄와 고난과 갈등, 눈물 및 은혜의 체험 등이 뒤섞인 생생한 역사의 기록이며 그 역사의 가장 함축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명들의 대부분은 물과 음식을 얻을 수 없는 죽음의 땅들이었다는 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이스라엘은 이 같은 죽음의 땅을 40년 동안 행진했음에도 그들 중에는 한사람의 아사자(餓死者)도 없었는데 (범죄와 불순종으로 인한 사망자는 많았다, 민수기 11:33-34 등) 이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님의 은혜, 이것은 스스로 범죄 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일 뿐 아니라 광야의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불확실한 존재인 우리들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된다. (엡 1:7; 엡 2:7-8).

▶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 역사이다. 수백 년 동안 다른 민족의 노예로 살아왔던 민족이 그 억압의 사슬을 끊고 탈출하여 40년 동안이나 시내 광야라는 황량한 사막에서 살아남았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기적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주목할 것은, 민수기 33:2에 그들이 “여호와의 명대로”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는 사실이다. 여호와께서는 광야를 옮겨 다닌 히브리 민족의 모든 이야기 배후에 당신께서 계셨음을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잊지 않기를 바라셨다. 그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죄 많은 인류를 구원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보여 준다.
☞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까지 매 걸음마다 인도하셨음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모세는 그 모든 여정을 기록하였다.

▶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고, 그 땅을 취하여 거기 거하라”(민 33:51-53)고 하셨으나 그들은 그 명령을 온전히 따르지 않음으로 우상숭배에 물들고 말았다.
세상과 타협하는 것은 계속해서 여호와의 백성에게 “눈에 가시와 옆구리에 찌르는 것”(55절)이 될 것이었다.
우리가 세상의 악한 감화와 주변 문화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믿음을 잃고 타락할 위험 가운데 놓이게 된다.

◉ <하나님의 명령(命令)을 어긴 이스라엘>
“이스라엘 각 지파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하여 정력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 하나님께서 도우시리라는 보증을 신뢰하고 그 땅의 거민을 완전히 몰아내는 일만이 그들에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일에 실패했다. 그들은 가나안인 들과 동맹을 체결함으로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 그리하여 그들은 당신께서 그들로 가나안을 점령하도록 허락하신 조건을 성취시키는 일에 실패했다.” (부조와 선지자, 543)

◉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출애굽의 여정을 자세히 기록하게 하신 까닭은,
그분의 섭리와 보호가 아니었다면 그 여정이 불가능했음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월요일(12월 21일)
<레위인 들의 성읍(城邑)들 (민 35:1~8)>

◈ 레위인 들에게 주어진 성읍은 엄격히 말해서 모두 레위인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레위인 들이 타지파(他支派) 사람들과 함께 거(居)한 곳이었다. 이처럼 레위인 들이 전국에 분산되어 거주하게 된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여호수아 21:1-42 참조)

1. <레위인의 역할>
▶ 출애굽 당시 아론의 자손들은 제사와 성막보전의 임무 및 이스라엘 장자의 속전(贖錢)역할을 담당하였다. (민 3-4장; 출 29:9; 레 8장). 그들의 역할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증대되어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결과 건강관리도 책임지게 되었다. (레 13-15장). 또한 백성들을 판결하는 재판관의 임무와 (신 17: 8-9; 21:5; 대하 19:8-11)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일 (대하 17:7, 9; 느 8:7, 9) 및 예언자적 사명도 감당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의 거룩을 보존하고 이스라엘의 종교적 생활을 개도하는 일이었다.

▶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업들 중에서 48성읍을 레위인 들에게 주도록 하여 레위인 들이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살게 하였다. 이들은 12지파 중에 흩어져 살면서 그들의 신앙과 생활을 지도할 것이었다. 아울러 12지파는 레위인 들의 생활을 책임져야 할 것이었다. 그래서 서로 의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였다.

2. <레위인 분산(分散)의 종교(宗敎). 사회적(社會的) 의미>
▶ 레위지파의 전국 분산은 종교제도의 기능적 분산이라 볼 수 있다.
가나안 정착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중앙 성소에서 모든 제사와 절기를 지키기에는 지리적, 환경적 상황으로 볼 때 불가능했기 때문에 레위인 들이 각 지파의 성읍들에 분산되어 그 일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1년에 세 번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이 성소에 올라가 절기를 지켜야 했으며 (출 23:17; 신 16:16)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은 그들이 선민이며 단일 민족이라는 점에서 공동체 의식을 지닐 수 있었다.
한 편 중앙 성소에 종교적 행사나 기능이 집중됨으로써 나타나는 종교적 소외를 막기 위해 부득불 종교적 기능의 지방 분산이 필요했다. 문화 발전적 측면에서 볼 때도 종교는 사회. 문화적 환경에 종속되기보다는 그것을 고도로 발전시키고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에 레위인의 지방 분산은 절실했다. 그리고 레위인의 지방 분산은 국가 안보적 기능을 발휘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중앙 정부의 군사력이 잘 미치지 못하는 변방의 백성들이 그들 주위에 레위 성읍이 있음으로 해서 여호와가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확신을 지닐 수 있었다. 더욱이 중앙정부가 외적의 침입으로 함락되었을 때 레위지파의 성읍을 중심으로 백성들의 힘을 재 결집시킬 수도 있었다.
결국 레위인의 지방 분산은 이스라엘이 공동 운명체로서의 집합 지향성(collectivity orientation)을 추구하는데 중차대한 종교적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 모든 지파들이 어떻게 레위인 들에게 땅이 주어졌는지 주목해 보라. 적은 땅을 분배 받은 지파는 적은 땅을, 많이 분배 받은 지파는 많은 땅을 내어놓아야 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형평성의 원칙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지파는 “그들의 얻은 기업에서”(민 35:2) 레위인 들에게 성읍들을 주어야 했다. 모든 지파의 사람들이 레위인 들을 돌보는 일을 분담하여야 했다. 여호와께서는 이 일을 통해 각 지파가 레위인 들을 돌볼 책임이 있음을 알기 원하셨다. 어떤 의미에서 많이 가진 자는 적게 가진 자보다 더 많은 십일조를 드린다는 동일한 원칙이 여기서도 적용되었다.

3. <레위인 분산(分散)의 선교적(宣敎的) 의미>
레위인의 전국분산(全國分散)은 하나님의 선교방법을 대변해준다. 하나님께서는 경배(敬拜)받으시는 장소를 제한하지 않으신다. 중앙 성소에서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하는 어느 곳에서도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며 그들 각자에게 동일한 관심과 사랑을 베푸신다. 레위인 분산제도는 신약시대에 예수님께서 열두제자와 70제자를 여러 지역으로 분산시켜 복음을 확산케 하신 것과도 비교될 수 있다. 현대사회의 대다수 제도가 인간 생활의 외적 풍요와 복지에 관심을 두고 있는 반면, 종교는 인간의 내면과 영혼 구원(救援)문제에 주된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가 그 사회 내에서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그 사회는 정신적 빈곤과 도덕적 타락 등으로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다. 종교는 우리 사회속의 피안적(彼岸的) 상징으로서만 존재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서 인간에게 구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레위인의 전국 분산은 현대교회가 추종해야 할 선교의 방향과 형태를 보여 주는 모범이라 할 수 있다.

▶ 레위인 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 가운데 흩어져 살아야만 했다.
즉 그들은 어떤 특정한 지역에 모여 살지 않았다.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배교가 있을 동안에 이들의 조상이 신실하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이들은 백성들 가운데 살아야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들은 신실함과 거룩함이 무엇인지를 백성에게 끊임없이 증거할 수 있었다. 레위인 들은 그들 가운데 살면서 공동체의 일부가 되고 그들의 괴로움과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동족에게 축복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삶으로써 배타적이거나 거만한 엘리트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섬김을 받는 대신 섬겨야 했다. 참된 섬김에 대한 얼마나 귀한 모본인가!

◉ <레위 지파에 배정된 성읍들>
“레위 지파는 성소 봉사를 전담하고 있었으므로 이 분배에 들지 못하였으나 가나안의 각 곳에 있는 48 성읍을 기업으로 배정받았다.”(부조와 선지자, 511)

◉ “레위인 들은 땅이나 포도원, 감람원 등을 유업으로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거할 적당한 집이 있어야 했으므로 그들의 거처를 위하여 성읍들이 마련되었다” (재림교 성경주석, 민 35:2)

◉ 레위인 들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 가운데 흩어져 살면서 그들을 섬겼는데,
그들의 존재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좋은 감화와 모본이 되었다.

화요일(12월 22일)
<도피성(逃避城) -1 (민 35:6, 9~12)>

◈ <도피성(逃避城)>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고의가 아닌 우발적인 사고로 사람을 죽이면 '피의 복수 법'(이른 바 '탈리오의 법')에서 피(避)할 수 있도록 모세의 율법은 한 곳의 피난처(避難處)를 허용하고 있다. (출 21:13-14)
이곳에는 성읍에 있는 제단(祭壇)이 있었다. 구약(舊約)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이 권리를 사용한 사건을 두 번 기록 하고 있다.

☞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위를 취하려다가 이곳으로 피해 솔로몬의 용서를 받았다. (왕상 1:50-53). 그러나 다윗의 군장이었던 요압이 '아도니야'를 좇다가 '아도니야'죽자 두려움 가운데서 제단(祭壇)뿔을 잡고 피했지만 솔로몬의 군장 '브나야'에 의해 주살(誅殺)당했다. (왕상 2:28-34)

▶ 도피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앙 성소(中央聖所)(성막이나 성전)로만 도망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도착하면 곧 레위인의 도시(都市)들 가운데 여섯(요단강을 중심으로 동편에 셋, 서편에 셋)을 택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도피성을 만들도록 명령하셨다. (민 35:9-15).
요단 동편의 도피성은 모세때 선정이 되었으며 (신 4:41-43), 요단 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정복한 후에 세 성읍을 선정 하도록 규정 하고 있다. (신 19:1-3).
이리 하여 도피성은 이미 전국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제단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해 나갔다. 모세의 후계자 였던 여호수아 당시에 이 여석 개의 성읍들이 구별 되었다.
트랜스 요르단(요단강 동편)지역에 있는 세 성읍은, 르우벤 지파를위한 '베셀'과 갓 지파를 위한 '길르앗 라못', 므낫세 지파를 위한 '바산 골란'이었으며 (수 20:8 참조; 신 4:41-43), 시스요르단(Cisjordan) 지역내의 세 성읍은 , 갈리리에 있는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이었다. (수 20:7)

▶ 어떤 자가 도피성으로 피하여 올 때에는 먼저 그 도피성에 살던 이스라엘 회중이 그 살인자와 희생자 사이에 어떤 적의가 있었는지에 대한 결정을 하였다. (민 35:12; 신 4:42; 신 19:4-6; 수 20:5).

여호수아 20:4에 따르면, 그 성읍들 가운데 하나로 도피하는 자는 성문 어귀에서 성읍의 권위자들에게 자기의 사고를 고하였다. 그 후에 회중들 앞에 설수가 있다. (수 20:6). 만약 고의성이 없는 과실에 의한 살인이면, 그는 그 도피성에서 보호를 받으며 그들 가운데 거하였는데,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으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 갈수 있었다. (수 20:6절, 참조. 민 35:28). 여기서 대제사장이 죽는 사건이 일반적으로 속죄의 효력을 발생한듯하다.
또한 도피성의 레위인 들과 그 살인자가 연합되어 드려진 것을 의미하는듯하다. 레위인은 대제사장이 대표한다.

◈ 도피성은 일종의 성소(聖所)로서, 믿음으로 그분께 피하는 자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그리스도의 표상이었다. (참조 출 21:13; 신 19:2-9; 시 46:1; 142:5; 사 4:6; 롬 8:1; 롬 8:33-34절; 빌 3:9; 히 6:18-19) (본교 성경주석(한) 2권 484p)

◈ “고대(古代)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지정된 도피성은 그리스도 안에 준비된 피난처의 상징이었다. 이런 임시적인 도피성을 마련하신 은혜 스러운 구세주(救世主)께서는 보혈을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을 위하여 저희가 둘째 사망에서 피하여 안전함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피난처를 또한 준비하셨다. 어떠한 권세라도 용서를 얻고자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영혼을 그리스도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그러므로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롬 8:1,34; 히 6:18).”(화잇주석, 수 20:1-9)

◈ <도피성 제도>
1. 도피성제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연 질서를 유지하기위해 피의 보응에 대한 법칙이 수립되었으며 (창 9:5-6), 모세시대에는 이것이 신정(神政)국가의 기본원리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나안 입국 전에 보응의 원리에 대한 예외규정인 도피성제도가 마련됨으로서 이스라엘 법은 더 성숙한 면모를 보이게 되었다. (출 21:13; 신 19:1-13; 수 20장).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율법의 모든 법칙보다 우선함을 나타내며, 율법의 완성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수될 구속(救贖)의 은총을 암시하고 있다. (여호수아 20:1-9 참조)

2. 도피성 제도의 의의는 살인자들의 보호처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살인한자들의 피신처이다.
피 흘린 자는 반드시 피 흘림을 당해야 한다는 원칙은 시대를 초월한 절대 법으로서 (창 9:6) 만약 고의로 살인한자가 도피성으로 피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공의의 판결에 의해 죽음을 면치 못했다.
한편 살인자의 판결 기준은 ‘고의냐’ ‘고의가 아니냐’로 가려졌는데 이는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 (부주의, 실수 등으로 인한 살인)를 깊이 이해하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배려였다. 하나님은 행위의 결과 이전에 그 원인과 동기를 먼저 물으신다. (마 5:21-28; 15:19)

◈ “도피성으로 도망하는 자는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다. 가족과 직업을 모두 버려야 하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할 시간도 없었다. 생명이 위태로우므로 안전한 땅으로 피하는 이 한 가지 목적을 위하여 다른 모든 이해관계를 포기해야 하였다. 피로도 잊고 어려움도 돌아보지 않았다. 도피자는 그 성벽 안에 도달하기까지는 감히 한 순간도 발걸음을 늦출 수 없었다.” (화잇 주석, 수 20:1-9)

◉ 도피성(逃避城)을 지정한 이유는 그릇 살인한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공정한 재판을 받기까지 복수(復讐)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보호하였다.
이때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사법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부지중에 혹은 고의로 사람을 죽였다면 희생자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공의를 행사함으로 그 “피의 보수자”(신 19:12)가 되었다. 공의를 그릇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레위인 들의 여섯 성읍이 특별히 지정되었는데 살인자는 그곳으로 도피할 수 있었다.(수 20:1~7)

민수기 35:12에는 중요한 핵심이 기록되어 있다. 그 성읍으로 도망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영구적인 도피처를 제공해주지는 못했다. 어떤 경우에 그것은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일시적인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즉 그 사건의 진상이 확인될 때까지 만이었다. 이 성읍들은 오늘날 외교관이 면책 특권을 갖는 그와 같은 영구적인 치외법권(治外法權) 지역 같은 기능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이 성읍들은 공의를 그릇 행사할 수 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0 예수님의 은혜의 복음은 고의적인 살인과 같은 사회적인 범죄가 처벌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회개의 복음이 무법의 기별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 <도피성(逃避城)이 상징(象徵)하는 것>
“고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지정된 도피성(逃避城)은 그리스도 안에 준비된 피난처의 상징이었다.
이런 임시적인 도피성(逃避城)을 마련하신 은혜로운 구세주께서는 보혈을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을 위하여 저희가 둘째 사망에서 피하여 안전함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피난처를 또한 준비하셨다.” (재림교 성경주석, 수 20:1-9)

◉ 부지중에 살인한 자는 도피성(逃避城)에 피함으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그러한 자를 보호하기 위한 일시적 피난처를 주기 위함이었다.

수요일(12월 23일)
<도피성(逃避城) -2 (민 35:22~34)>

◈ 법은 항상 자비와 공의가 곁들여있어야 한다.
법이 너무 가혹하면 그것의 목적을 좌절 시킬 수 있다.
이는 그 가혹성 때문에 법의 목적이 구현될 가망이 없는 것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도덕의식은 그런 법에 대해 반기를 들게 된다. (본교성경 주석(한)1권 712 p)

◈ <피난처(避難處)이신 하나님.>
“다윗은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로 무죄(無罪)한 도피자들에게 피난처가 되었던 이스라엘의 6대 도피성과 전적으로 같은 분으로 보았다. 시편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피난처"란 주제는 그리스도와 성부를 모두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피난처이셨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 리로다. "(시 27:5).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시 125:2).”(교리, 34)

◈ <레위인에게 배당(配當)한 성읍 중 여섯 성읍의 도피성>
“이 자비스러운 제도는 사적복수(私的復讐)의 관습이 있던 옛날에는 필요했다. 그 때에는 살인자에 대한 형벌이 피해자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나 상속인에게 부과되어 있었다. 죄의 증거가 분명한 경우에는 법관의 취조 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복수 자는 어디든지 죄인을 추적하여 발견하는 대로 그를 죽일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그 때에 이 습관을 폐지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보셨다.
그러나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의 안전을 보장할 길을 마련하셨다.” (부조와 선지자, 515)

◈ “도피성은 가나안 땅 어느 곳에서든지 한나절 안에 갈 수 있는 곳에 분산 배치되었다. 도피성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평탄하도록 잘 손질하였다. 그 모든 길을 따라 표주(標柱)들을 세워 도망하는 자가 일순간도 지체하지 않도록 분명하고도 큰 글씨로 “도피(逃避)”란 말을 기록하여 두었다. 히브리인이나 이방인이나 우거하는 자들이나 누구든지 이 도피성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죄한 자를 성급히 죽이지 말아야 하는 반면에 실제로 죄가 있는 자는 결코 형벌을 피하지 못하게 하였다. 올바른 집권자가 도피자의 사건을 공정히 심판하여 고의적으로 살해하지 않은 일이 분명한 자만을 도피성에서 보호하였다. 그러나 범죄자는 복수자의 손에 넘겨주었다. 보호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자는 지정된 보호소 안에 체류한다는 조건으로만 받아들여졌다. 만일 한계선 밖에서 방황하다가 복수자(復讐者)에게 발견되면 그는 여호와의 보호를 무시한 대가로 자기의 생명을 지불해야 하였다. 그러나 대제사장이 죽으면, 피난하고 있던 자들은 자유를 얻어 그들의 소유지로 돌아갈 수 있었다.” (부조와 선지자, 515)

◈ “고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지정된 도피성은 그리스도 안에 준비된 피난처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이 땅의 도피성을 마련하셨던 동일한 자비로우신 구주께서는 그의 보혈을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을 위하여 저희가 둘째 사망에서 피하여 안전함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피난처를 준비하셨다. 어떠한 권세도 용서를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영혼을 그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1, 34; 히 6:18).” (부조와 선지자, 516p)

◈ “언제고 도피성 밖으로 나아가는 죄인은 복수자의 손에 빠졌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그들의 안전을 위하여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을 따라야 함을 배웠다. 그와 마찬가지로 죄인이 죄 사(赦)함을 얻기 위해서도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죄인은 믿음과 순종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 한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 10:26, 27).”(부조와 선지자, 517p)

◈ “이 세상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표지판을 세우셨다. 이 표지판의 한편에는 창조주를 즐겨 순종하는 것이 행복과 생명의 길이라고 지적하고 다른 편에는 불순종이 불행과 죽음의 길이라고 지적한다. 유대인의 시대에 도피성으로 가는 길처럼 행복의 길은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선(善)에 대한 대 원수(怨讐)는 표시판(表示版)을 돌려놓았고 그로 인해 많은 무리들이 길을 잃게 되었다.” (선지자와 왕, 179p)

◈ 교회는 반역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보유하고 계시는 당신의 요새요, 도피성이다.
“교회에 대한 어떠한 배신이든지 그것은 당신의 독생자의 피로 인류를 사신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
태초부터 충성스러운 백성들이 지상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매 시대마다 주께서는 그의 파수꾼들을 가지고 계셨는데, 그들은 저희가 살았던 세대에 충성스럽게 증언을 전하였다. 이 파수꾼들은 경고의 기별을 전하였으며, 그들이 갑옷을 벗고 물러날 때는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대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증인들과 언약 관계를 맺으셨고 지상의 교회를 하늘의 교회와 연합시키셨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당신의 교회를 섬기게 하셨으므로 악마의 권세가 당신의 백성을 이기지 못하였다.”(사도행적, 11p)

◉ <고의적(故意的) 살인자(殺人者)와 부지중(不知中)에 살인한 자를 구분하심>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신중하게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시는가! 그분은 고의적인 살인에 형벌을 부과하셨다. … 그러나 부지중에 한 사람이 생명을 취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달아날 수 있는 도피처를 마련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설교와 강연, 2권, 186-187)

◉ 고의적으로 살인한 자와 부지중에 살인한 자를 구분한 까닭은 실수(失手)로 사람을 죽인 자를 계획적(計劃的)인 살인자와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기 위(爲)함이었다.

목요일(12월 24일)
<우리의 도피성(逃避城)이신 그리스도 (삼하 22:3)>

◈ “피할 이것이 시편 7편과 11편에 다윗이 불어넣은 용기의 정신이다. 다윗은 그의 믿음과 신뢰를 하나님께 두기를 배웠다. 그는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를 포기하지 않으심을 알았다. 하나님은 영원한 언덕들의 바위들처럼 그렇게 확실하셨다. 인간은 그의 온전한 신뢰를 하나님께 둘 수 있었다.
나의 방패―누구든지 방패가 상징하는 것의 가치와 의미를 모르는 군인은 없을 것이다. 다윗에게 방패는 자주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하였다. 그는 그의 생생한 개인적 경험을 통하여, 생애의 어떤 위험한 순간에는 그것이 최고로 중요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의 충실한 방패가 때때로 그를 쓰러뜨리려는 적의 침입을 막아주듯이, 하나님께서 거듭거듭 그를 적으로부터 구원해 주셨다. 이런 비유적 표현은 다윗의 특색이다. 그의 노래들은 싸움에 익숙한 군인으로서의 그의 생애와 같은 우리의 전투와 같은 삶을 풍기고 재현한다.

<구원의 뿔 (눅 1:69 참조)>
뿔은 힘과 능력의 상징이다. 이비유는 짐승들이 적을 쫓아버리거나 공격하는 데 사용하는 뿔을 뜻한다(삼상 2:1,10; 시 75:10; 89:17; 92:10; 112:9).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호하시고 방어하셨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적들과 싸우는 전쟁에서 힘과 도움을 주셨다는 점에서 다윗에게 구원의 뿔이 되셨다.

<나의 높은 망대>
산의 요새. 언덕들로 이루어진 거친 들에서 그런 장소는 높고 접근하기 어려우며,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다. 그 높은 위치 때문에 주변 지역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곳은 다가오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며, 공격을 물리치기에 매우 유리한 장소가 된다.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이 말들은 시 18:2에는 없다. 이 말은 다윗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였는지를 잘 보여 주며, 조금 전에 하나님에 대해 선포한 말들을 설명해 준다. 도움이 필요한 때에 다윗은 하나님께 피신할 수 있었고, 하나님을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적들로부터 구해주시는 구원자로 바라볼 수가 있었다.” (화잇주석, 삼하 22:3-36)

◉ 사무엘하 22:3은 도피성(逃避城)이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 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제공하는 사실을 나타낸다.

◉ 도피성(逃避城)으로 피신한 자들과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救贖) 곧 죄 사(赦)함을 얻었다. (엡 1:7, 골 1:14). 도피성(逃避城)의 문이 언제나 열려 있었듯이 그분께서도 통회하고 회개하며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거절하지 않으신다. (참조 요 8:10~11, 엡 1:7, 골 1:14, 히 6:18)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
“옛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지정된 도피성(逃避城)은 그리스도 안에 준비된 피난처의 상징이었다.
이 땅에 도피성(逃避城)을 마련하셨던 동일한 자비의 구주께서는 당신의 보혈을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로 하여금 둘째 사망에서 피하여 안전함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피난처를 준비하셨다. 어떠한 권세도 용서를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영혼을 그분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1, 34; 히 6:18)

◈ 다윗은 자신의 파란 만장한 생애 가운데서 경험했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구원(救援)을 조금도 거침없는 상상력과 영감에 찬 내용으로 사무엘 하 22장에서 노래하고 있다. 그의 벅찬 감격과 희열은 그 노랫말을 초(超) 시간적이며 우주적인 표현으로 가득 메우게 했으며, 그의 넘치는 신앙 열을 통해 뿜어낸 찬미는 시대를 초월한 모든 신앙인들의 영혼의 노래가 되게 한다. 구원의 기쁨이 넘치는 이 찬미는 시편 편지에 의해 가장 힘이 넘치는 시로 선정 되었다. (시편 18편)

◈ <구원(救援)을 베푸시는 도피성(逃避城)되시는 하나님을 찬양(讚揚)하는 다윗>

(차례) (비유) (히브리어) ( 의 미) ( 참조 성경절)
1 (반석) (셀라) 험한 암벽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시편 31:2-3
어떤 세력에도 함락되지 않는다. 마태 7:24-27

2 (요세) ( 메추다) 높은 언덕으로서 안전한 피난처 삼상 22:4-5
삼상 23:14

3 (건지시는 자)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구원하시는 분 시편 7:1
시편 51:14
시편 70:5

4 (하나님) (엘로힘) 능력의 근원이시며 생명의 주관자. 창세기 1:1

5 (피할 바위) (추르) 암벽으로 된 산꼭대기로써 외세의 침입을 시편 71:3
불용(不容)한다. 시편 89:26
이사야 32:2

6 (방패) (마겐) 악인의 화살에서 철저히 보호하는 무기(武器) 신명기 33:29
시편 3:3

7 (구원의 뿔) (케렌) 보호와 방어용으로 쓰이는 동물의 뼈로서 누가 1:69
승리의 능력을 상징

8 (높은 망대) (미스갑) 하나님께서 주무시지 않고 스바냐 1:16
깨어 보호하심을 뜻함

9 (피난처) (마노스) 폭풍으로부터 보호하는 안식처 시편 59:16
예레미아 16:19

10 (구원자) (야 솨) 원수들의 모든 도전을 꺾으시며 시편 106:21
성도의 안전을 보장 하는 자 이사야 43:11
예레미아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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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피성(逃避城)으로 도망하는 자는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다. 가족과 직업을 모두 버려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할 시간도 없었다. 생명이 위태롭기 때문에 안전한 땅으로 피하는 이 한 가지 목적을 위하여 다른 모든 이해관계를 포기해야 하였다. 피로도 잊고 어려움도 돌아보지 않았다. 도피자는 그 성벽 안에 도달하기까지는 감히 한 순간도 발걸음을 늦출 수 없었다.” (부조와 선지자, 516~517)

▶ 하지만 도피성(逃避城)도 십자가에 대한 완전한 상징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고의적인 죄, 심지어 살인죄라 할지라도 주님에 의하여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도피성(逃避城)은 우리의 피난처이신 그리스도를 상징(象徵)한다.
그러나 고살자(故殺者)를 보호할 수 없었던 도피성(逃避城)과는 달리,
그리스도께서는 회개(悔改)하는 모든 죄인을 용서(容恕)하신다.

◈ “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신처를 찾을 때까지는 영원한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
도피자가 불필요한 배회나 부주의로 인하여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빼앗기는 것처럼 지체함과 무관심이 영혼의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 대적 사단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하는 모든 사람들을 추적하고 있다. 사단의 위험에 민감하지 못하고 영원한 피난처에서 보호를 받으려고 열렬히 노력하지 않는 자들은 파괴자 사단의 제물이 될 것이다.” (부조와 선지자, 517)

요약(要約)

이스라엘 자손들은 약속의 땅 변경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인도하셨는지 요약적인 설명을 들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들어가기 전에 도피성(逃避城)을 지정해 주셨는데, 이는 우리 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호를 독특한 방법으로 보여 주신 것이었다. †

♡ 2009년 한 해 동안 미흡하고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로, 전화로, 만날 때마다 직, 간접적으로, 또한 기도로 함께하여 주신 주님의 귀하신 하늘 백성님들에게 예수님의 귀하신 이름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꾸 - 우 벅 ^^

주님의 재림의 소망으로 불타오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행복과 평안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한량없는 축복을 발견하시여 나와 나의 가족들이 함께 누리시기를 복(福)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보혈의 공로에 의지하여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살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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