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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과 - 제2세대를 위한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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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12-12 21:06 조회4,3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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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12월 19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16분) <李 奉 周>

제12과 제2세대를 위한 충고(忠告)
연구범위: 민 26~32장, 롬 5장. 핵심본문: 신 6:4~5

<記憶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學習目標>
(깨닫기) : <과거의 세대로부터 배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2세대는 어떤 교훈을 새겨야 했는가?
(느끼기) : <지도자의 자질>
민주주의적 형태의 지도력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행하기) :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일사분란하게 행동함>
교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要點>
비록 모세는 그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도록 최종 준비를 갖추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일요일(12월 13일)
<땅의 분배(分配) (민 27:1~11)>

◈ 토지(土地)의 사유재산(私有財産)과 세습제도(世襲制度)
'슬로브핫'의 딸들이 과거 이스라엘의 사회적인 전통과는 달리 딸들에게도 유산을 상속해야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들의 요구가 그 당시 상황으로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의사를 존중하시고 여성 상속을 위한 새 법을 마련하셨다.
이처럼 토지 상속제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밀법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소홀히 취급될 수 없었으며 특히 아들 상속자가 없는 가정에서 큼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 다음은 토지의 ‘사유재산’과 ‘세습제도’에 대한 간략한 고찰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움으로써만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고 (시 44:3),
따라서 그 토지는 언제까지나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유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레 25:23)
하나님은 하나님의 소유인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셨지만 (창 13:15),
이스라엘은 그분과의 언약을 성실히 준행함으로써만 그 땅을 계속 지닐 수 있었다.
(레 26:32; 신 4:26; 11:19). 그리고 그 땅의 처분도 임의대로 할 수 없었다.

Ⅰ. <토지의 사유재산(私有財産)>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땅을 점령하여 하나님께서 제비뽑기를 통해 주신 땅을 자기 자신의 재산으로 관리할 수 없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 그 땅에 사는 동안 경제적 자립 체로써 존속할 수 있었으며, 가진바 역량대로 그리고 성실한 만큼 수확을 거둠으로서 노동의 신성함을 체험 할 수 있었다.
한편 그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서 만약 그 땅을 상실하는 날이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조차도 파기되는 것으로 인식할 정도였다. 그러므로 각 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영토를 귀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시 16:6)
⑴ 토지분배의 기준
이스라엘 백성들이 토지를 사유 재산으로 받은 것은 그들의 공로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였다. 그들은 제비를 통해 가족의 수 즉, 20세 이상 된 자로서 인구조사에서 계수된 수의 비례대로 토지의 양을 분배받았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여호수아, 제사장 엘르아살 및 12지파의 지휘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세우시고 그들에게 전권을 위임하셨다. (민 34:16-29; 수 14:1).

⑵ 토지 분배의 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토지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백성들에게 전수하신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토지는 여전히 하나님의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토지를 영원히 다른 사람에게 팔수 없고 단지 자기 자손들에게 세습적으로 분배해주어 그 가족의 생활 수단으로 사용하도록 되어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토지의 경계표를 옮기는 것이나 토지를 뺏는 것. (또는 빼앗기는 것)을 죄악시 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제거하는 것. (또는 상실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 19:14; 왕상 21:1-24) 그러므로 원토지 소유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환원제도(레 25:10, 13)와 친족에 의한 환원 의무 규정을 마련하였다. 레 25:23-24)

Ⅱ <토지의 세습제도(世襲制度)>
이스라엘백성들은 자기 자신들의 토지를 이웃에게 영원히 팔지 않고 자기 자손들에게 세습적으로 물려주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을 계속 후손들에게 물려주며 그 후손들 또한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왕상 21:3).
이 같은 사실을 확고히 해두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 중 후손에게 유산을 물려줄 자손이 없이 남자가 죽었을 경우 대신 형제가 그 죽은 형제의 아내와 동침(同寢)하여 거기서 난 아들로 하여금 그 죽은 형제의 유업을 물려받도록 할 책임이 있었다. (창 38:8-11; 신 25:7-10; 繼代結婚法). 그렇지 않고 일반적인 경우에는 민수기 27:8-11절에 나와 있는 규례대로 수행해야만 했다.
한편 토지의 소유자나 그 상속인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 형편상 토지를 전매하거나 몰 수 당한 경우라 하더라도 토지를 통한 하나님과 그 개인 간의 언약과 축복 관계를 계속 유지 할 수 있도록 희년(禧年)(jubilee year, 민 36:4)이라는 제도를 두어 원소유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돌려주도록 했다. (민 34:13; 레 25:10-31).
결국 토지 세습제도는 한 개인의 재산을 보존 하고 그의 산업을 번창하게하기위한 조처이기 이전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사이의 언약 관계를 뚜렷이 하고 토지를 소유한 자들로 하여금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종교적 배려라는 인상이 더욱 강하다.

Ⅲ. <토지제도의 현대적 의의(意義)>
구약시대 이스라엘에서 실시되었던 각종 토지제도는 오늘날 우리주위에서 보여지고 있는 사유재산으로서의 토지개념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소유한 땅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겨진 것으로서 자신은 단순히 그 땅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땅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했다. 사실 인간이 소유라고 주장할 만한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까지 만드셨다. 그러나 끝없는 인간의 욕심과 교만함은 인간 스스로가 마치 만물의주권자인양 행세하게 만들었다. 특별히 토지에 대한 절대적 소유권을 주장하며 그 토지의 근본적인 소유주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은 참으로 교만한 처사이다. 더 나아가 대토지 독점으로 인해 가난한 자들을 고통당하게 하는 일은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원 목적을 크게 위반하는 일이다. (느 5:1-13).
땅의 원주인이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에게 주어진 땅을 이용할 때 비로소 참 기쁨과 풍성한 소득을 얻게 될 것이다.


☞ <토지 세습제(世襲制)에 내포된 의미>
하나님은 각 지파에게 분배된 땅이 계속해서 그 혈통의 사람들에게 상속되기를 원하셨다. 그러한 하나님의 의지의 강력한 표현이 바로 그 당시 인습(因習)을 뛰어 넘어 신설된 여성 상속법과 희년제도(禧年制度)이다. (레 25:10-54; 27:17-18; 겔 46:17). 한편 지파 안에서의 토지 물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인격을 사랑하시며 그들 각자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시는 뜻을 반영한 조처이다.

▶ 민수기 26장에 기록된 2차 인구조사의 목적은 기업의 분배 즉 땅을 나누는 일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지파와 가족별로 인구수에 따라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었다.
제2세대가 땅을 정복하자 그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분쟁과 혼란의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다행히도 모세가 여전히 살아 있었고, 이 중요한 문제를 지시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본문에 언급된 대로 인구가 많은 지파들은 더 많은 땅을 받게 되고,
인구가 적은 지파는 적게 받게 될 것이었다. 이보다 더 공평한 방법이 있겠는가?
여기에 나타난 핵심 요소는 가족의 신성한 권리, 특히 재산과 유업에 있어서의 신성한 권리이다.
분명히 이 개념은 가능한 한 가족 내에서 재산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땅은 '유업'이었으므로 가족에게 속하였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것은 또한 한시적인 분배가 아니었다.
이 여인들이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기본적인 형평성의 문제를 가지고 모세에게 나아갔을 때,
여호와께서는 “판결의 율례”(민 27:11)를 세우사 후세에까지 미치게 하심으로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여인들을 보호하게 하셨다.

◉ <2차 인구조사의 목적>
“민수기 1:2와 4:1~2에 비슷한 명령이 모세와 아론에게 주어졌었다. 아론은 이제 죽었고 대신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모세와 함께 졌다. 첫 인구조사 때에는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임명되어 그들이 자기 아비집의 두령으로서 백성을 계수하는 일에 모세와 아론을 돕게 하였다. 그러한 배치에 대한 언급이 이곳에는 없지만 같은 방법으로 일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 인구 조사는 약속된 땅을 분배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 될 것이었다(26:53).”(성경주석, 민 26:2)

◉ 기나긴 40년의 광야 생활이 마쳐갈 무렵에 실시된 2차 인구 조사는 땅의 분배가 목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여인들의 권익이 보호된 점이 주목된다.

◈ <여자의 상속권(相續權)>
민수기 27장에는 가나안 영토의 분할에 있어서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민 26:55)는 분배원칙으로 인해 생겨난 상속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출애굽당시 이스라엘 사회전반에는 남성 위주의 법 질서가 통용되었으며 그에 따라 여자들은 다른 재산과 마찬가지로 남편이나 아버지의 소유물로 규정되었다. (출 20:17; 신 5:21) 특히 부인들은 자기남편을 ‘바알’(‘주인’, ‘지배자’) ‘아돈’(‘주님’)등의 칭호로 부름으로써 스스로 그 지위를 낮추었다. (창 18:12; 삿 19:26; 암 4:1)이런 이유로 해서 여자들에게는 상속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민 27장을 통하여 그 가정에 남자상속자가 없을 경우 여자도 상속받을 수 있다는 특례법을 신설함으로써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셨다. 이 신설법은 한 가문의 영구적 존속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민수기 27장에는 상속법과 더불어 모세의 죽음예고와 새로운 지도자의 공적인 피택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생활에서 필요한 모든 규례와 법도를 세우심으로써 그 땅에 대한 당신의 주권을 나타내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통치자이시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통치자이시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그분과 연관될 때만 그 존재가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활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월요일(12월 14일)
후계자(後繼者) (민 27:12~23)

◈ 이스라엘의 신정(神政)약사에 있어서 모든 소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
그러므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도 회중들에 의해 선출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사명을 부여 받았다.
이처럼 지도자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으로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에 배치(背馳)되지 않는 한 그 권위(權威)를 인정할 수 있어야한다.
한편 모세와 여호수아의 사역은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모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救出)한 것에 주력 했다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안식하게 하는 데 힘 섰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두 사역은 인류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중적 사역을 예표(豫表) 하는 것이다. (히 3:7-4:11)

◈ 모세의 죽음은 38년 전 신 광야의 ‘므리바’ 물 사건 (민20:13)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懲罰)로 주어진 것이었으나 그의 죽음은 다른 이방 악인들의 죽음과는 판이하며, 여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에서의 죽음과도 다르다, 즉 그는 비록 혈기를 부린 실수로 인해 가나안 입성의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여태껏 이스라엘의 출애굽역사를 주도해 온 하나님의 사자(使者)라는 점에서 찬란한 영광이 약속된 죽음을 맞았다.
후에 모세는 엘리야와 함께 변화산상에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나눔으로써 그의 공로를 따라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럽게 상급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마 17:1-3; 고전 11:29-32)
이것은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공로(功勞)와 허물을 따로 취급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고후 5:10)

▶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막 9:2-4; 눅 9:28-31)>
“아버지께서 모세와 엘리야를 택하사 그의 사자(使者)들로 삼으시고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보내셨다.
그리고 하늘의 빛으로 그분을 두르사 광채가 빛나게 하시고 그분께 닥쳐오는 고난에 관하여 담론하게 하셨다.
그렇게 하신 까닭은 그들이 인간으로서 이 땅에 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요, 인간의 슬픔과 고난을 경험한 바가 있었으므로 지상 생애를 하시는 예수님의 시련을 동정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선지자이신 예수님을 표상하였고 그의 사업은 그리스도의 사업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그리스도의 자리에 처한 바 있었고, 그분과 교통하고 그의 지도를 따랐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 모여 선 모든 천군들 중에 이 두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을 섬기는데 가장 적격이었다(2 예언 329).”

◉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에서 수십 년을 보냈으나 이제 곧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러나 믿음의 부족으로 그들은 그것을 속히 취하지 못했다.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으며, 수 세기 전 아브라함 때에 처음 약속된 땅(창 17:8)을 얻게 될 것이었다.
이 백성의 실패와 반역과 불평과 믿음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성취하실 예정이었다. 그분께서는 그 약속을 제2세대를 통해 이루실 것이었다.
또한 본문에 의하면 모세와 같이 여호수아도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백성을 이끌 것이었다. 즉 그는 기록된 율법과 계명 외에 “우림의 판결법”(21절)으로 여호와께 물어야만 하였다.

◉ <여호수아에게 안수(按手)하여 위탁(委託)함>
여호수아를 택한 것은 모세나 회중(會衆)이 아닌 하나님이셨다.
“모세는 여호수아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가장 감동적인 유시를 함으로써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엄숙히 구별하였다. 이스라엘의 행정권도 역시 여호수아에게 위임되었다.”(부조와 선지자, 463)
◉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여 하늘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사실의 표상적 인물이 되었다.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수아를 헬라어로 표기하고 발음한 것이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께 적용될 때는 “구원하시는 여호와”라고 이해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우시고 온 회중 앞에서 위임(委任)하게 하심으로 백성으로 하여금 그의 지도(指導)를 따르도록 권위를 부여하셨다.

화요일(12월 15일)
<희생제도(犧牲制度)가 재확인(再確認)됨(민 28:1~8)>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지킬 제사규례(祭祀規例)를 여러 절기와 더불어 하나의 통일되고 조직적인 법전(法典)으로 완성해서 정리해주셨다.
이러한 제사규례는 민수기 15장과 출 23:14-17; 29:38-42; 31:12-17 및 레위기 23장 등에 제시된바 있으나 그것들은 산만(散漫)하고 단편적인 규례들이었기에 통일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계속적인 교제가 구약시대에는 제사행위를 통해 이뤄지며 대부분의 경우 제사(祭祀)는 절기(節期)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특별히 절기와 더불어 그 제물(祭物)이 소개되고 있다.
한편 동일한 율법조항 이면서도 계속 보완과 종합을 거듭해야 하는 이유는 제사율법이 지닌 불완전성, 즉 진리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적 제도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제사율법(祭祀律法)은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표현한 것으로서 그 자체는 신성(神性)하고 거룩하나 어디까지나 그림자로서 그리스도를 나타내주고 예시(例示)해 주는 역할을 하며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주는 몽학선생(蒙學先生)의 역할을 해준다. 따라서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그 기능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소화되고 성취되어 사라졌다. 따라서 신약(新約)의 성도(聖徒)들은 더 이상 율법적 굴레에 속박(束縛)되지 않는다.
(롬 7:12, 14절; 갈 2:19; 3:19; 23-25절; 히 10:1).
다만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그분과의 교제(交際)를 이루게 된다. (마 5:17-18절)

◈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온 후에 희생 제물은 언약 관계의 한 부분으로 성막에서 드려졌다.
하늘의 식양에 따라 모세가 만든 성소와 그 제사제도는 구속의 경륜을 예시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
◈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형은 원형과 만났으며,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속주(救贖主)에 관한 구약성경의 예언들을 성취하셨다는 것을 그는 또한 깨달았다.”(행적, 120)(출 25:8, 9, 40; 히 8:1-5).”(교리, 42)

◉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백성의 귀에 들리도록 십계명을 말씀하시고(출 20장),
성막을 짓도록 명령하셨을 때(출 25장), 제2세대는 아직 어린나이였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성인이 된 그들에게 간략하게나마 희생제도(犧牲制度)를 다시 설명해 주고자 하셨다.

◉ 로마서 5장의 말씀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의 완전함에 대해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8~19)
◉ 모든 죽어가는 희생 제물은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었고 가장 엄숙하고 거룩한 의식으로서 정신과 마음에 감동을 주는 교훈이 되었으며 제사장들은 이런 의미들을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다. 희생 제물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이 죄의 용서가 이루어진다는 이 위대하고 중대한 진리를 가르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명백하게 계획하신 것이었다.”(가려 뽑은 기별, 1권, 107)
◉ <상번제(常燔祭)로 바쳐진 흠 없는 어린양>
“조석(朝夕)마다 일 년 된 어린양을 적당한 소제물(素祭物)과 함께 제단(祭壇)위에서 불살랐다. 이것은 그 민족이 매일 여호와께 헌신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에 끊임없이 의지한다는 것을 상징하였다. 성소의 봉사를 위하여 드려지는 제물은 모두 '흠이 없'어 야 한다(출 12:5).고 하나님께서 명백하게 명령하셨다. 제사장들은 희생제물(犧牲祭物)로 가져온 모든 짐승들을 검사하여 흠이 발견되는 것은 모두 거절해야 했다. '흠 없'는 제물(祭物)만이 자신을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벧전 1:19)으로 바치시기로 되어 있는 그분의 완전한 순결(純潔)을 상징(象徵)할 수 있었다.”(부조와 선지자, 352)

◉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종류의 희생제도(犧牲制度)를 재확인시키셨다. 이 모든 의식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용서를 예표(豫表)하였다.

수요일(12월 16일)
<서원(誓願)한 것을 이행함 (민 30장)>

◈ <서원(誓願) 맹세>
구약 히브리 사회에서는 자신의 약속과 주장이 진실하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서원과 맹세가 행해졌다. (출 22:7, 10-11절)
특별히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라는 측면에서 자신들의 약속 또는 약속된 행위가,
하나님의 권위(權威)와 심판아래 있음을 의식하고 그 모든 일을 결행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발설(發說)한 서원과 맹세에는 고도의 성실성과 진지함이 요구되어졌다.

1. <서원(誓願)의 의미(意味)>
서원(誓願)(히, 네데르)은 ‘맹세하다’ ‘서원하다’ ‘다짐하다’ 등의 뜻을 지닌 ‘나다르’에서 유래하였는데 그 성격상 종교적인 성향이 짙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자발적의지에다 기반을 둔 것이지 강제적 의무규정과는 거리가 멀다. 한편 ‘맹세’는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체결되는 약속으로서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이름과 그 분의 인격 앞에서 이뤄진다는 측면에서 종교적이다. 히브리인들의 맹세는 자신들의 신앙과 진실성을 표현하는 거룩한 다짐이라 할 수 있다.

2. <서원의 목적>
서원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추구되었지만 자신의 신앙 인격의 성숙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自身)과 가축(家畜), 가옥(家屋), 토지(土地),등을 바칠 것을 맹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목표를 달성키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경우도 있었다. (레 27:1-25).
반면에 맹세(盟誓)는 상대방과의 신뢰를 증진시키고 소속된 공동체 전체의 결속과 안정을 위해 말이나 행위로 실행되었다. 특별히 자신의 결벽과 절대순결을 주장할 목적으로 맹세하기도 했다.

3. <서원의 실행여부>
서원과 맹세는 모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행한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실행해야할 당위성을 갖는다.
따라서 일단 서원과 맹세를 했을 경우 무심코 행했거나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또한 자기에게 해롭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리고 성실하게 지켜야 했다. (신 23:22-23; 잠 20:25).
만약 이것을 불이행하는 경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것으로서 (레 19:12) 하나님의 징벌을 면치 못한다. (겔 17:13절 16절 18-19절). 단지 서원의 경우 속죄제를 드리고 그 잘못을 용서 받을 수 있었다.(레 5:4)


4. <서원의 종류>
서원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⑴ 쌍무적(雙務的)(조건적)인 서원.
하나님께 축복과 구원(救援)을 요구하며 그 대가로 헌신과 경배를 하겠다는 조건부(條件附)적인 서원이다.
(창 28:20-22; 삿 11:30-31; 삼상 1:11; 삼하 15:7-12)
⑵ 일반적인 서원.
이것은 서원자(誓願者)가 무조건 하나님께 자신의 정성과 사랑을 바치겠다는 것이다. (시 132:2-5)
⑶ 각성과 절제를 위한 서원.
자신과 공동체 전체의 신앙과 경건을 육성시킬 목적으로 실행되는 것이다. (민 21:1-3; 삼상 14:24)
⑷ 감사를 위한 서원
주로 시편에 언급된 서원들이다. (시 56:12-13; 66:13-15).

▶ 한편 맹세는 대략 다섯 종류로 구분 된다.
⑴ 계약상 맹세
희생제물이 동반되는 맹세로서 계약의 파기자(破棄者)는 두 조각난 그 제물의 형편과 같이 될 것이라는
엄중함을 내포하고 있다. (창 15:10절 17절; 렘 34:1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이다.
⑵ 순결을 증명하는 맹세.
⑶ 법률상의 맹세
주변정황의 증거들에 의해 판결 받고자 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인해
자신의 결백을 직접 주장해야 했을 경우에 시행되었다. (출 22:10-11; 레 5:1: 6:3)
⑷ 의무이행이나 사업상의 맹세. (왕상 2:43)
⑸ 충성을 다짐하는 맹세. (전 8:2)

5. <결론>
구약시대에는 서원과 맹세의 이행이 강조되었으며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경건과 신실함을 가늠하는 척도 역할을 했다. (시 50:14; 사 19:21; 렘 44:25).
그러나 이러한 정신이 시대를 거듭하면서 변질되어 신약의 히브리인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신앙과 경건을 만인 앞에 드러내는 도구로 이것을 사용하였다. 즉 그들은 이행 여부와는 무관하게 서원과 맹세를 남발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외식적 경건을 질타하셨으며 (마 15:3-9; 막 7:9-13) 차라리 맹세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셨다. (마 5:33-37). 사실 우리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신앙생활의 주체가 되시기에 우리는 필요 이상의 서원과 맹세를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분과의 관계를 더 풍성히 유지하면서 헌신과 감사와 봉사의 생활을 이뤄나가야 할 것이다. (마 16:24; 롬 12:1-2; 고전 6:20: 벧전 1:15-19).

◉ 서원(誓願)과 서약(誓約)에 관한 내용이 민수기 30장에 나옵니다.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약(誓約)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그분의 이름을 망령(妄靈)되의 일컫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 입으로 낸 말은 곧 하나님께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 말은 엄중한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말을 함부로 할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관계하여 하는 말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 비록 서약이 기만으로 이루어졌을지라도 그것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말로 서약(誓約)한 의무는 그가 그릇된 행동을 하도록 속박하지 않은 한 신성하게 지켜져야 한다.”
(부조와 선지자, 506)
◉ 이스라엘의 문화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태만(怠慢)의 죄'에 해당하였다.
진정한 의미에서 서원을 이루지 못한 것은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른 것과 같다.
모든 일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 <신성한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라>
“하나님께 한 신성한 약속을 수행하지 않는 것은 배은망덕한 짓이요, 태만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신 23:21, 전 5:4, 마 5:33). 약속하고 실행치 않는 것보다 서원하지 않는 편이 낫다(전 5:2~5).”
(재림교 성경주석, 민 30:2)

◉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리스도께 욕(辱) 돌리는 것이 된다. 우리는 약속을 잘 지키는 성도가 되자.

목요일(12월 17일)
<가나안 접경(接境)에서 (민 32:1~5)>

◈요단강 동편지역을 정복함으로써 (민 21:10-35; 31:1-12). 가나안 입국의 발판을 구축한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을 망각(妄覺)하고 정복된 땅에서만 거주(居住)하기를 원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즉 용감하기로 이름난 ‘르우벤’과 ‘갓 지파’ 사람들이 더 이상의 정복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현실에 만족하려 했던 것이다. 이에 모세는 개인주의적인 사고를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에 동참할 것을 종용함으로써 그들로부터 가나안 정복 전쟁에 계속 참여할 것을 약속 받았다. 이를 통하여
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모인 공동체내에서 개인주의는 단결을 파괴하고 비신앙적인 사고를 조장하는 적(敵)이며
⑵ 육신적(肉身的)인 욕구만을 추구하는 것은 영적인 일을 망(亡)치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 <‘르우벤’과 ‘갓 지파’의 이기적(利己的)인 태도>
‘르우벤’과 ‘갓 지파’가 요구했던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은 요단강과 그 지류인 야므르 강, 얍복 강, 아르논 강, 사이에 위치한 비옥(肥沃)한 목초지였다. 그러므로 가축이 많았던 그들이 이곳을 요구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는 가나안 정복과정에서 맞게 될 형제들의 희생과 하나님의 뜻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극히 소아적이고 이기주의적인 발상이었다. 형제사랑과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포기하고 자신의 안일만을 요구하는 자는 하나님나라에 합당치 못하다. (마 10:37)
◈ 풍부한 목초지를 바라본 두지파의 눈은 욕심의 올무에 사로잡혔으며 민족적 대명사를 망각해가고 있었다.
물론 다른 지파들도 가축을 갖고 있었으며, (민 31:32-36) 똑 같이 그들이 정복한 요단 동편 땅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지파들의 눈은 그곳에만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전체를 목도하였기에 불순한 욕심을 갖지 않았다. 탐욕과 안일은 언제나 자기위주의 사고를 갖게 하고 끝내 죄를 범하여 멸망에 이르게 한다. (약 1:15)
◉ 이 모든 일이 있은 후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는데, 이들은 광야를 떠나 마침내 가나안을 정복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지금의 장소에 정착하기를 원했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의 떼가 있었더라.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즉 그 곳은 가축에 적당한 곳인지라.”(민 32:1)
◉ <요단강 동편에 정착한 지파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지파의 절반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저희 기업을 받았다. 유목민들에게 광활한 고원 지대와 길르앗과 바산의 풍부한 삼림은 그들의 양 떼와 소 떼를 위하여 광대한 방목지를 제공함으로 가나안 본토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했다. 이곳에 정착하기를 갈망한 두 지파와 반 지파는 저의 몫에 해당한 군사를 보내어 다른 지파와 함께 요단강을 건너 그들도 역시 기업을 얻을 때까지 그들과 함께 싸울 것을 서약하였다. 그리고 그 의무를 충실히 감당하였다.”(재림교 성경주석, 민 32:1~5)
◉ 가나안 접경에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는 요단강 이편에 정착하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지파들도 땅을 차지할 때까지 함께 싸우기로 자원하였다.

◉ 모세가 이스라엘의 제2세대에게 상기시켜 주고자 했던 구체적인 교훈들을 연구해 보라.
그의 말은 다음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인도해 오신 길과 우리의 과거 역사를 통하여 주신
그분의 교훈을 잊어버리는 것 외에는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
(엘렌 G. 화잇의 자서전, 196)

* 2만 4천 명이 죽은 싯딤의 염병(민 25:9, 26:1)
*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민 26:9~11)
* 유다의 아들들인 엘과 오난(19절)
*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들인 나답과 아비후(61절)
*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세대들이 광야에서 죽음(63~65절)
모세에 의해 열거된 이 사건들의 대부분은 제2세대가 경험한 사건들이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들은 왜 히브리 역사에 자주 언급되는가?
사도 바울은,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11)고 설명한다.

<要約>
모세가 살아 있을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제2세대에게 줄 마지막 지시를 주시고, 믿음을 재확인하시며, 또한 여호수아를 세워 당신의 지시를 받는 새로운 지도자로 임명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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