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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완전하게 하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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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4-10-03 19:33 조회5,9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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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1분

기억절 :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개역).

연구 범위 : 약 1:2~3, 벧전 1:6~7, 빌 3:12~15, 약 1:19~21, 눅 17:5~6, 눅 12:16~21.

한 치과의사가 자신의 치관(齒冠 : 입 안에 노출되어 있는 치아의 윗부분)이 흠이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다른 치과의사와 달리, 나는 치과기공소에서 제작해 온 치관 때문에 애를 먹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문이 완벽하면 그들이 완벽한 치관을 보내오기 때문입니다.” 이 치과의사는 최종 결과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그 과정의 초기 단계에서 자신의 역할에 집중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품성이 마지막 때에 충분히 선하게 변화될지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우리의 역할은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딤전 6:12). 그리스도에 대한 그 같은 믿음은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빌 2:13)며 그분이 시작하신 착한 일을 마치게 한다(빌 1:6).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그분 대신 우리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시작 전부터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요 6:29)이라고 하신다. 곧 보겠지만 야고보는 우리로 하여금 이 같이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예수님이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해 주시는 분임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믿음와 지혜 그리고 영적 성장에서 오는 기쁨과 만족을 경험한다.
➌ 행하기 :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에 집중하기로 결심한다.

A.
❷ 시련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킵니까?
※ 인내를 낳아서 강인한 믿음으로 시험을 맞서게 하는 능력을 생산한다.
❸ 그리스도인이 ‘완전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는 상태이다.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다.
❹ ‘온전(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 진리의 말씀을 따라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다.

B.
❶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을 일컬어 ‘헛똑똑이’라고 부릅니까?
※ 지식은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을 생활에 올바르게 활용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그렇게 표현한다.
❷ 약 1:5에 약속되어 있는 지혜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고 올바르게 생활하는 지혜이다.
❸ 의심이 우리 신앙생활에 치명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우리의 신앙생활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❹ 주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어떤 일을 이루기 원하는지 각자의 결심을 이야기해 봅시다.
※ 말씀의 진리를 올바르게 깨달아서 말씀의 사람이 되어서 세상에 생명의 빛을 발하는 것이다.

결론 : 야고보는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분인지 보여주며,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고 정화시키기 위해 어떻게 시련을 활용하시는지 설명합니다.


첫째 날(일) 믿음이 인내함
10월 5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2~3).

1. 약 1:2~3, 벧전 1:6~7, 4:12~13을 읽어 보라. 시련에 관하여 야고보와 베드로는 어떤 동일한 태도를 취하는가? 우리는 이 같이 믿기 힘든 성경의 명령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약1:2,3]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벧전1:6,7]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답: 인내하라고 권하였다. 이 세상은 사단이 왕 노릇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고 신앙을 포기하도록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기 때문에 인내하지 않으면 사단에게 넘어갈 위험이 있다.

고난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가능하면 항상 그것을 피하려 한다. 약 1:3에서 믿음을 시험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그리스어는 ‘도키미온’이다. 그것은 어떤 것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믿음에 대한 이러한 시험을 금을 제련하는 방법에 비유한다. 그러한 시험이 유쾌할 리 없지만 하나님은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하신다. 시련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믿음에 머문다면 우리가 “순금 같이” 나아올 것이기 때문이다(욥 23:10, 잠 17:3 비교).
그래서 시련이 올 때, 특별히 믿음의 시련이 올 때 우리는 기뻐해야 한다. 예수님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2)고 말씀하셨다.
또한 시련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견디신 고통에 대한 우리의 깨달음을 심화시킨다. 벧전 4:13이 지적하는 것처럼 시련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한다.
요컨대 우리는 각각의 시련을 통해 그리고 그 너머의 진실을 응시하며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결과를 그릴 필요가 있다. 믿음이란 그런 데서 나아온다. 우리는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를 신뢰하고, 그분의 지혜에 의지하며, 그의 말씀에 기초하여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안심하고 그분께 우리의 미래를 맡겨야 한다(롬 8:28). 사실 오직 믿음을 통해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음으로 그리고 그러한 사랑의 빛 가운데서 믿음으로 살 때라야 우리는 시련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
약 1:3에서 우리의 믿음에 대한 시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내”이다. 그리스어 ‘휘포모네’는 ‘견딤’이나 ‘끈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종적인 구원의 확신에 의지하므로 다른 것들보다 오래 버티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눅 21:19 참고).

<부가설명>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그들이 처하여 사는 환경이 어떤 곳인지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성경은 이 세상을 사단이 주관하는 세상, 죄가 왕 노릇하는 세상,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계시한다. 어두움의 세상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빛이시며 예수님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 어두움이 빛을 싫어하여 빛을 꺼버리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이런 세상에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세상이 이 빛을 끄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할 때 유혹과 핍박과 시험이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하며 이런 것이 닥치는 것은 그들이 빛이라는 증거가 된다. 기쁜 일이다. 자신이 빛이라는 것을 세상이 인정하였고 또 하나님께서 인정한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하늘에 상급이 확정된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일 수밖에 없다. 야고보나 베드로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예수께서 하신 교훈의 뜻을 깊이 깨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어두움의 세상에서 빛이 되고 있는지, 아니면 어두움을 빛으로 착각하고 타협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잘 점검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교훈 : 믿음의 시련은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키며 믿음을 강화시킨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시험을 기뻐하며 그것을 통해 인내력을 길러야 한다.


둘째 날(월) 완전
10월 6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약 1:2~4을 읽어 보라. 믿음, 시험, 인내, 완전의 과정에 주목하라. 야고보는 믿음으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모든 진정한 그리스도인 경험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다음 그는 믿음의 진정성을 시험할 시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시련은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치므로 우리는 마침내 그것들 때문에 놀라거나 억눌리지 않을 것이라고 진술한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약 1:4)는 것이다. 여기에 최상의 언어가 사용되었다. ‘온전(텔레이오스)’은 영적 성숙을 의미하며 ‘구비(홀로클레로스)’는 모든 면에서 완전함을 의미한다. 진실로 우리가 자아에 대해 죽고 주님이 우리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빌 2:13)시도록 맡긴다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훨씬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

1. 엡 4:13과 빌 3:12~15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완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도록 권유하는가?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빌3:12~15]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답: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것이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며 다만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상태라고 가르친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자들은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의 주를 닮아가려는 그들의 삶에 전혀 부족한 면이 없어야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그러한 완전에 도달한 것처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의 강조점이 미래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바울은 하나님이 예수에 대한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가리킨다.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품성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술작품과 같아서 계속 개선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일 그분께 순종하기를 구하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한 그렇게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신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들, 특히 재림성도들은 성화와 완전에 대하여 관심이 지대하다. 교과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절대로 그러한 완전에 도달한 것처럼 느끼지 못한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이 완전이 미래에 약속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잡기 위하여 뒤엣것을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이 바로 성화요 완전이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은 예정된 일이다. 누구든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예수님의 형상과 같이 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달려가는 삶을 산 사람들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홀연히 변하여 예수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며 아울러 우리의 상태로 예수님과 같은 온전한 상태에 이르게 하신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2,3) 우리는 실망할 필요가 없다. 이미 예정되고 약속된 그것을 잡으려고 부지런히 달려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 한 안심하고 기뻐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교훈 : 믿음을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시험과 인내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


셋째 날(화) 믿음으로 구함
10월 7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1. 약 1:5~6을 읽어 보라. 지혜는 지식과 어떻게 다른가? 야고보는 지혜와 믿음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두었는가?
[약1:5,6]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답: 지혜는 생활에 적응하는 능력이고, 지식은 사실과 학문을 알고 있는 정도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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