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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빗나간 제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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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8-03-05 15:51 조회4,6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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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3월08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33분)

제10과 빗나간 弟子道

◉ 모든 일의 결과(結果)만을 보고 비판(批判)하기는 쉽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문제(問題)가 많았다느니, 무식(無識)하다느니, 또는 가룟 유다를 일말(一抹)의 생각도 없이 패륜아(悖倫兒)정도로 매도(罵倒)해버리는 경우(境遇)가 참으로 많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나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만 왜 그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를 깊이 교훈하여 나에게 적용하여야만 된다고 생각한다.

◉ 쇠를 달구어 온갖 연장을 만드는 대장간의 경우를 보자.
온도가 높은 풀무불에 사용하지 못하는 쇠붙이를 집어넣어서 달구어 대장장이는 수도 없이 망치로 빨갓케 달구어진 쇳덩이를 수도 없이 사정없이 내리치기를 반복한다. 그 일을 여러 번 반복하면 우리의 일상에 편리하고 유용하게 사용하는 농기구나 생활의 긴요한 도구(道具)로 변신(變身)하게 되며,
천길 낭떠러지기 바위 절벽에서 온갖 풍한서습(風寒暑濕)의 온갖 고난(苦難)을 극복(克復)하기에 버거운 형체(形體)의 나무같이 잘 생기지도 못한 뒤틀리고 구부러지고 못난 볼품없는 나무이지만 악기의 최고 재목(材木)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외모(外貌)로 못난 그 나무는 갖은 어려운 환경에서의 고난을 통해서 악기의 재료(材料)로 사용할 때 공명(共鳴)이 아주 좋기 때문이다.
온실(溫室)안에서 자란 나무는 좋은 건축 재료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 옛날 어느 마을에 효자(孝子)로 소문난 청년이 있다고 해서 한 젊은이가 그 효자(孝子)를 만나러 갔다 자초지종(自初至終) 자기의 내력을 이야기 하고 나도 우리 부모님에게 효자노릇을 하려고 배우러 왔다고 하니 그 효자(孝子)가 대답하기를 효자(孝子)가 뭐 별것입니까?
아버지가 저녁에 침소(寢所)에 드시기 전에 먼저 이불속에 내가 들어가서 이불속을 따뜻하게 해드리고, 식사(食事)의 직전(直前)에 밥이나 국이 뜨겁거나 차갑지 않는지를 먼저 먹어서 살피고.
등등을 알려주었다.
이 청년이 집에 돌아와서 배운 대로 하기위해서 저녁에 아버지의 이불속을 따뜻하게 하려고 들어가서 한기(寒氣)를 녹이고 있는데 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서 이 싸가지 없는 놈아 이제는 아비이불속에 버릇없이 들어와 누워 있느냐고 야단을 치고,
식사(食事)의 밥상이 와서 효자에게서 배운 대로 밥과 국이 차갑지 않는지 먼저 맛을 보니까 이 고얀 놈이 버릇없이 아비의 식사 그릇을 먼저 넘보냐고 호통을 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모가 아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효자도 될 수 있고 버릇없는 놈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 세상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의 제자(弟子)들은 정말로 한심한 형편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눈으로 이들을 보시지 아니 하시고 끝까지 사랑의 눈으로 불쌍한 눈으로 이들을 보셨고 강제적(强制的)으로 하시지 아니하시고 멍청한 이들 스스로가 깨달을 때까지 참으시고 용서(容恕)하시고 기다리셨다.
우리가 배워야할 공과(工課)는 이러한 모습들을 주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스스로 실천하여 적용하는데 있다.

◉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자비를 깨닫게 하고, 심판하는 일은 그분께 맡기는 것이다.

日요일(3월 2일)
<權力을 追求하는 弟子들>

◉ 세상에는 두 답답이가 산다. 더러는 우리집안에도 두 답답이가 살고 있는지 모른다?
"예수님"을 신실히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세상적(世上的)으로 즐기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답답하다.
그런 반면(反面)에 세상적(世上的)으로 허랑 방탕(虛浪放蕩)하게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참으로 답답하다고 한다. 가정(家庭)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참으로 답답하다.

◉ "예수님"당시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참으로 답답하다.
로마의 속국(屬國)으로 갖은 핍박과 멸시와 냉대를 받고 있는 그 사람들의 마음에는 정치적(政治的)으로 뒤집어지는 정치권력(政治權力)을 추구(追求)하고 "예수님"을 추종(追從)하였고 지난 세월의 억울함을 보상(報償내지 보복(報復)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추종(追從)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전혀 하나님의 나라를 이 추종(追從)자들과의 정반대(正反對)였음을 생각할 때 참으로 답답하다.

◉ 야고보와 요한의 야심(野心)
이들의 야심에 대해서 (마 20:20-28절과 막 10:35-45절)참조
시의 적절치 못한 이 사건은 앞의 성경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 20:17-19절)
"예수님"께선 당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그 토록 생생하게 밝히고 난 즉시 야고보와 요한이 그 나라에서 으뜸이 되게 해달라는 이기적인 요청을 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여기에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기심(利己心)과 "하나님"의 무아적인 사랑이 현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보좌 옆자리를 요구하도록 자극한 것은 (마 19:28)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열두제자가 열두 보좌위에 앉게 될 것이라는 발표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마 20:21)절에 야고보와 요한은 가장 큰 명예와 특권이 있는 두 자리를 요구했다. (본교성경주석 9권416)

◉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임금이 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며, 정치적 세력을 규합하는 것은 그분의 제자들이 할 일이 아니다.

◉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세상의 정치적 권력과 결탁하고 그 세력을 힘입어 복음을 전파하라고 제시한 곳을 찾아볼 수 없다.

月요일(3월 3일)
<貪慾的인 弟子들>

◉ 우리 속담(俗談)에 말(馬)타면 종(下人)을 두고 싶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탐심(貪心)은 한(限)이 없으며 이로 인하여 결국(結局) 비참한 멸망(滅亡)을 받는다.

☞ 성경 (열왕기 상 21:1-25)의 기록(記錄)을 보면
“아합”이라는 왕(王)이 일개의 가난(家難)한 백성(나봇)의 작은 포도원 밭떼기 하나가 탐(貪)이 나서 이를 빼앗지 못하니 식음(食飮)을 전폐하기까지 이르자 악처(惡妻:이세벨)의 술수(術數)의 개략으로 선량한 백성 “나봇”의 생명을 빼앗고, 결국은 이로 인하여 자신의 생명까지 개(犬)들이 그의 죽음으로 육신의 피를 핥아 먹는 죽음을 당하는 꼴이 되었다.

◉ ☞ 아간은 탐욕으로 그의 생애(生涯)가 비극(悲劇)으로 끝났다. (수 7:19-26)
☞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夫婦)도 탐욕(貪慾)으로
자신(自身)들의 재산(財産)을 헌납(獻納)하고도 비극(悲劇)으로 끝났다. (행 5:1-10)
☞ 가룟 유다도 탐욕(貪慾)으로 말미암아 비극으로 끝났다.
(마 26:14 ,마 26:25, 마 26:47, 마 27:3 마 27:5)
(막 3:19, 막 14:11, 눅 6:16, 눅 22:48 요 6:71, 요 13:2 요 13:29)

(눅 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貪心)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肢體)를 죽이라
곧 음란(淫亂)과 부정과 사욕(邪慾)과 악한 정욕(情慾)과 탐심(貪心)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시 78:18)
저희가 저희 탐욕(貪慾)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心中)에 하나님을 시험(試驗)하였으며

(잠 28:16)
무지(無知)한 치리 자(治理者)는 포학(暴虐)을 크게 행(行)하거니와
탐욕(貪慾)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長壽)하리라

◉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분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헌신(獻身)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린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순전한 마음이 동기가 되었으나,
유다는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가장하면서 자신의 탐심을 채우고자 하였다.
(요12:1-6)

◉ 그 잔치에 동석한 부활한 나사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다는 탐심(貪心)에 이끌려 그분의 발에 붓는 향유를 크나큰 낭비로 생각하였다.
그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버릴 수 있는 분으로 평가하였던 것이다.

◉ 가룟 유다는 탐욕의 늪에 빠져 그 영혼이 잃어버린바 되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약 1:15).

火요일(3월 4일)
<우레 같은 弟子들>

◉ 조련사(調鍊師)들이 하는 일들은 개, 돌고래, 코끼리 따위의 동물에게 재주를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사람을 말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도 조련사들의 훈련을 받고 나면 얼마나 기특하게 말을 잘 듣는지 모른다.
흔히 사회에 크게 무리(無理)를 빚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의 지난날의 가정환경이나 주위에서의 친구관계가 나쁜 사람들과의 반복된 악습(惡習)에 길들여져 그 모양으로 나쁜 사람으로 전락(轉落)된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렇지만 어느 사람들의 경우는 무지무지 어려운 환경과 열악(劣惡)한 여건 하에서도 좋은 지도자(指導者)나 사람을 만나서 그의 진로(進路)와 삶에 조언(助言)과 지도편달(指導鞭撻)로 훌륭한 사람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한 분들의 간증(干證)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感動)을 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분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좋은 사람도 될 수 있고, 나쁜 사람도 될 수 있다.
배우자가 어느 부류에 속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생애가 180도 달라질 수가 있다.
1.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의 이야기도
2. “아합”왕과 “이세벨”의 경우도 그러하고
3. "예수님"을 만난 사람과 "예수님"을 모르고 세속으로 사는 사람들의 가정의 행복도 엄청난 차이(差異)가 있다.
◉ 도구가 누구의 손에 들려있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 칼이 강도의 손에 있으면 사람을 해(害)하지만 ,
칼이 의사의 손에 있으면 사람의 질병(수술(手術))을 해서 생명을 살리는데 쓰여 진다.

◉ 사람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자는 행복한 삶에 스승이요,
우리는 훌륭한 제자가 될 수 있다.

◉ 야고보와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거친 대우에 몹시 화가 나서,
엘리야처럼 단호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대응하기를 바랐다.

◉ 야고보와 요한처럼 격렬한 기질과 불같은 성미를 가진 사람도 예수님에게서 배우면 그 열정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게 되고 훌륭한 제자가 될 수 있다.

水요일(3월 5일)
<베드로 類型의 弟子들>

◉ 전도하는 사람들의 유형(類型)을 보면 참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예수님"께로 인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사람은 한때는 주먹 세계에서 보수 활동을 하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전혀 다름 사람으로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을 주님께로 인도 하는 사람도 있고, 또한 어느 사람은 술고래 소리를 듣던 분이 어떤 계기(契機)가 되어서 그와 같은 사람들을 잘 인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같이 세속적(世俗的)으로 생각하면 성격과 사람의 인품(人品)과 됨됨이가 도저히 불가능(不可能)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전능자(全能者)의 능력과 힘이라면 베드로도 그의 못지않은 다른 제자들과 같을 문제의 사람들이였지만 "예수님"의 손에 들려 지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온전하여 진다는 확실한 예증(例證)이 우레와 같은 베드로의 경험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 “베드로에게 사도직이 회복되었으나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명예와 권위가 그에게 형제들 위에 군림할 대권을 주지는 않았다.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란 베드로의 질문에 그가 “네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대답하신 말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분명히 하셨다. 베드로는 교회의 머리로서 높임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배신을 용서하시고 양떼를 먹이도록 그에게 부탁하셨을 때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타내신 은총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있어서 베드로 자신이 보여 준 충성스러움이 그로 하여금 형제들의 신임을 얻도록 해주었다. 그는 교회 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그에게 가르쳐 주신 교훈을 그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지니고 다녔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 보낼 때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소망, 816)

◉ “베드로가 부목자로서 활동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은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 후의 일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가 당신을 부인하기 이전에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이 사도가 신앙으로 들어오게 될 사람들을 위하여 장차 광범위하고 효과적인 사업을 할 것을 의미하였다. 베드로 자신의 범죄와 고통과 회개의 경험이 이 사업을 위하여 그를 준비시켰다. 그가 자기의 연약함을 배우기 전까지는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할 필요성을 알 수 없었다. 시험의 폭풍 중에서 베드로는 인간이 완전히 자신을 불신하고 구주께 의지할 때에만 안전하게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행적, 514)

◉ 다혈질의 성격을 가진 베드로는 검을 빼어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온 무리 가운데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를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 버렸다. 우리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다.

◉ 예수께서는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회개한 베드로를 회복하시기 위해 동료 제자들 앞에서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셨다.

◉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과 용서 가운데 신실한 제자로 변화되었으며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참된 제자가 되었다.

木요일(3월 6일)
<逃亡하는 弟子들>

◉ 3년 반 동안이나 "예수님"곁에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그 많은 "예수님"의 이적과 기적을 눈으로 보고 확인했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잡히시고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十字架)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는 단 한사람도 그에 편에 당당히 나타났던 기록 이 없음을 우리는 보고 그렇게 알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친구들이요 제자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復活)후에 주님을 만나고 부터는 그들의 태도가 어떻게 변했는가를 사도행전에 잘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경우와 금번의 교과 공부를 통하여 이러한 일이 반복되거나 남의 일로 여기는 일이 없도록 나에게 적용하자.

◉ 제자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들을 목격하였으나 결정적인 순간이 이르자 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하고 말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말씀을 주의 깊이 듣고 마음의 준비를 했어야 했다.

◉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 자리와 감람산 담화 등 여러 경우에 당신의 수난에 관해 예고하셨으나 제자들은 듣지 않았고 결국은 다 도망하고 말았다.

<焦點>
1. 충동적(衝動的)이거나 탐욕적(貪慾的)인 인간은 누구라도 빗나갈 수가 있다.

2.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분에게 자신의 모두를 맡기고 의지하고 그분의 이타적(利他的)인 사랑의 본질을 배우고 실천하는 자(者)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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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末尾附錄)>

탐심(貪心)

“어느 곳에서든지 탐욕 투성이의 더러운 자국들이 보인다. 탐욕은 가정에서 불만과 알력을 조장하고 가난한 자로 하여금 부자에 대하여 질투와 증오를 일으키게 하고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포학한 압박을 가하도록 한다. 이 탐욕이란 악은 세상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존재한다.
(부조, 497)

“육욕적 마음을 지닌 자들은 마음의 교만, 세상에 대한 사랑, 안일에 대한 사랑, 이기심, 탐욕, 시기, 질투, 방탕, 증오 등 모든 악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구원이 달린 중요한 진리와 거룩한 능력을 깨닫지 못한다. 만일, 그들이 이것들을 극복한다면, 그들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우리의 생애를 지배하는데 비례하여 탐욕, 이기심, 안일을 사랑하는 정신은 극복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종임을 주장하는 우리는 그분의 뜻을 행하는데서 즐거움을 찾게 될 것이다. (1보감, 360)

“그대는 자아에 대하여는 죽음을 경험해야 하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야 한다.
교만, 자아 사랑, 이기심, 탐욕, 탐심, 세상에 대한 애착, 증오, 의심, 질투, 악한 추측, 이 모든 것은 굴복되고 영원히 포기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이런 악들을 교정하여 그분의 오심을 위한 도덕적 적합성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런 준비는 그분이 오시기 전에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은 생각하고 연구할 주제이며, 열렬한 마음으로 물어야 할 과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보이려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1증언, 705)

“육욕적(肉慾的) 마음을 지닌 자들은 마음의 교만, 세상에 대한 사랑, 안일에 대한 사랑, 이기심, 탐욕, 시기, 질투, 방탕, 증오 등 모든 악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구원이 달린 중요한 진리의 거룩한 능력을 깨닫지 못한다. 만일 그들이 이것들을 극복한다면 그들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될 것이다.”(2증언, 694)

“그대의 그리스도인적 품성은 탐욕 때문에 오점이 생겼다. 이 오점은 제거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 그대는 영생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3증언, 246)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우리의 생애를 지배하는데 비례하여 탐욕, 이기심, 안일을 사랑하는 정신은 극복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종임을 주장하는 우리는 그분의 뜻을 행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우리의 행복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하여 고무된 비이기적인 일에 정비례할 것이다.”(3증언, 382)

“탐욕 밑에 거짓, 도둑질, 강도, 사기, 금전욕 등이 있었고, 야망 밑에는 교만, 방종이 있었으며, 시기는 악의, 질투, 증오의 선두에 있었고, 부절제는 음란함, 간음, 동물적인 정욕의 방종 등과 같은 긴 항목의 두려운 범죄의 앞머리에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형언할 수 없는 비통함으로 가득 차서 소리쳤다.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누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설 것인가? 누구의 옷이 흠이 없는가? 누가 순결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눈앞에서 무죄한가?”(4증언, 385)

“ 그들의 탐욕 때문에, 번영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그들의 사업을 축복하실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진리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한다. ― 교회증언 1권, 249.”(청지기, 93)

“사람은 아무도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것만큼 그렇게 강력한 유혹을 결코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그에게 접근하는 데에 더 쉽게 성공한다. 이 모든 돈, 이득, 땅, 권세, 명예와 부를 내가 줄 테니 무엇을 주겠느냐? 그 조건을 그리스도께 말했던 것-“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처럼 그렇게 명백하게 제시하는 때는 거의 없다. 그는 정직을 희생하고 양심을 손상시키는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세상의 관심사에 헌신하는 것을 통해서 그는 모든 존경을 다 받는다. 아직도 그의 성급함, 자기 사랑, 교만, 탐욕, 부정직 등의 악한 열차를 타고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들어가도록 문은 열려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여기에 매혹되어 위험하게도 멸망의 길로 유인당하고 있다.”(청지기, 210)

“부절제로 타락한 사람들을 위하여 해야 할 사업이 어느 곳에나 있다. 교회 안에서, 종교 기관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이라고 공언하는 곳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멸망으로 가는 길을 택하고 있다. 부절제의 습관으로 그들은 스스로 질병을 초래하고 죄악적 방종에 쓸 돈을 벌기 위한 탐욕 때문에 부정직한 생활로 전락한다. 건강과 품성은 파괴된다.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회에서 버림받은 그 가련한 영혼들은 이생과 내생에서 한가지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가건, 135)

“사랑은 키워야 할 나무이다 ―
사단이 우리 마음에 심어 놓은 시기, 질투, 억측, 나쁜 말, 조급함, 선입관, 이기주의, 탐욕 그리고 허영심과 같은 것들은 뿌리째 뽑아 버려야 한다. 만일 이런 나쁜 것들이 심령에 남아 있도록 용납된다면 그것이 장차 많은 사람을 더럽히게 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값진 열매들을 절멸시키고 심령들을 더럽히는 해로운 나무들을 가꾸고 있는가! ― ST, 1911. 6. 20.”(가정, 195)

“너무도 흔히 역사는 군왕들의 흥망, 궁전의 음모, 군대의 승패 같은 일들에 대한 기록들, 즉 야망과 탐욕, 사기와 잔인, 그리고 피 흘림에 대한 이야기로만 가르쳐지고 있다. 그렇게 가르치면, 그 결과는 해로울 수밖에 없다. 역사에 묘사된 마음 아픈 범죄, 악한 일들의 반복, 무법과 잔학 등의 일들은 많은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악을 수확하도록 하는 씨를 뿌리는 것이다.”(교육, 238)

“ 부절제의 습관으로 그들은 스스로 질병을 초래하고 죄악적 방종에 쓸 돈을 벌기 위한 탐욕 때문에 부정직한 생활로 전락한다. 건강과 품성은 파괴된다.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회에서 버림받은 그 가련한 영혼들은 이생과 내생에서 한 가지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절제, 126)

“ 이기적 야망, 허영에 대한 사랑, 이득에 대한 탐욕 등이 사람들의 생각을 빼앗았다.
하나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떠나가자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도 사라졌다.
이기심이 지배적 원칙이 되고, 사단이 인간의 불행과 타락에 그의 뜻을 행사했다.”(치료,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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