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과 교회와 율법(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6/21/14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4-06-13 22:56 조회8,481회 댓글0건본문
6월 21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57분
기억절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개역, 계 14:12).
연구 범위 : 창 2:16~3:7, 창 6, 12장, 신 7:6~12, 갈 3:6~16, 계 12:17, 계 14:6~12.
릴레이 경기에서 한 팀은 보통 네 명의 선수로 구성된다. 이전에는 서로 경쟁할 수 있지만 이제는 같은 팀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마치 한 사람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경기에서 주자들 사이의 거리는 균등하게 배분된다. 각 주자는 자기 차례에만 바통을 쥐고 뛸 수 있다. 경기가 마칠 때까지 바통은 한 선수에서 다른 선수에게 기술적으로 전달된다. 어떤 의미에서 바통은 릴레이 팀 주자간의 연속성을 상징하다.
하나님의 교회도 하나의 릴레이 팀과 같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으로부터 시작한 그 바통은 구속사의 여러 국면을 지나면서 전달되었다. 노아에서 아브라함으로 그리고 시내산에서 신약교회와 개혁시대의 교회 그리고 이제는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자들에게 전해졌다.
하나님의 교회의 영속성을 뜻하는 상징은 다름 아닌 율법이다. 타락 이후로 율법은 언제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짝을 이루었다. 이 둘은 모두 복음의 근간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여러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교회에 이어져 온 율법의 연속성을 추적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에 복음을 전하도록 그분께 부름을 받은 백성들이 있었음을 인식한다.
➋ 느끼기 :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된 특권을 감사하게 여긴다.
➌ 행하기 : 세상에 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는 일에 참여한다.
A.
❷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백성이 언제나 율법에 순종하는 도덕적 삶을 선택했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 계속적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상태로 이어왔다.
❸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마지막 교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❹ 남은 교회의 객관적 증거뿐 아니라 본질적인 의미를 성취하려면 우리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 에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법이 생활로 증거되도록 해야 한다.
B.
❷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은 교회는 율법에 관해 어떤 신앙의 바통을 이어왔습니까?
※ 하나님의 율법에 충성해야 하는 사상의 바통을 이어왔다.
❸ 믿음의 경주에서 결승점을 통과하신 예수님은 믿음과 율법에 관하여 신약 교회 이후의 백
성들에게 어떤 모본을 제시하셨습니까?
※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시는 모본을 보이셨다.
❹ 도덕적으로 점점 타락하는 세상에서 남은 백성으로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삶으로 모본을 보여야 한다.
결론: 하나님은 모든 세대마다 충성과 믿음, 사랑과 순종의 생애를 살므로 그분의 뜻을 반사하는 백성을 불러내셨습니다.
첫째날(일) 아담에서 노아까지
6월 15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을 처음으로 증언했던 신약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더욱 넓은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어로 ‘에클레시아’이다. 세속 사회에서 차용된 이 말은 ‘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모든 세대마다 하나님은 충성과 믿음, 사랑과 순종의 생애를 통하여 그분의 뜻을 반사하는 백성을 불러내셨다.
1. 창 2:16~3:7을 읽어 보라. 아담과 하와는 어떤 시험을 받았는가?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왜 그와 같은 시험이 필요한가?
[창2:16~3: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답: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라고 하는 시험을 받았다. 사람이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하여 그와 같은 시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시험을 받지 않아도 이미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같이 완전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려면 아담과 하와는 도덕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어야 했다. 그들은 꼭 잘못을 행할 합당한 원인이 없더라도 잘못을 행할 가능성과 자유가 있어야 했다. 나무 곁에서 받은 시험은 도덕적인 시험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도덕적인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했을까?
우리는 답을 안다. 도덕성의 중심에는 선과 악을 정의하는 하나님의 율법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나무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부른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아담과 하와가 처음부터 잘못을 행할 가능성이 없었다면 거짓말, 도둑질, 살인을 금지하는 율법의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오직 선만을 행할 수 있는 로봇 같은 존재만 있는 세상에서 율법은 무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선택하신 방법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를 원하셨다면 그분은 그렇게 하실 수 없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 후에 바통을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있었을지라도 인류의 도덕적 추락은 순식간이었다.
그들의 첫 두 아들 가운데 아벨만 하나님의 교회에 참여하기로 선택하였고, 가인은 탐심, 거짓, 살인, 불효의 정신에 사로잡혔다. 악이 선을 뒤덮기까지 상황은 악화 일로였다. 홍수 때에 이르러서는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진실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원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영생하는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다. 시조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만 않으면 그 생명은 영원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을 때 있을 결과를 잘 가르쳐주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것을 먹을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부가설명을 쓰는 나의 생각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시조가 완전해지기 위한 시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완전한 상태로 창조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주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사람을 덜 완전하게 창조했다는 암시조차 없다. 선악을 행위론으로 보면 이런 논리가 발생할 수 있다. 성경은 선악을 생명과 사망의 의미로 계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으면 생명을 잃는 것이지, 도덕적 악인이 된다고 하지 않았다. 사망이 되면 부패하게 된다. 그것이 도덕적 악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셨고 사단은 사망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곧 그리스도를 떠나도록 한 것이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11:3) 하와가 뱀에게 미혹을 당하여 그리스도를 떠났다. 그리스도를 떠나면 생명이 없어진다. 사망이 된 것이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곧 죄인이다. 죄인이라는 말은 도덕적으로 악을 행했다는 것보다 먼저 생명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완전하게 창조했기 때문에 그들은 선악과도 먹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먹을 때의 결과를 경고하신 것이다. 그 시험에 통과해야 비로소 완전하게 된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창조를 폄하하는 발상이 아닌가 두렵다. 선악과를 먹기 전의 아담의 상태를 지금 우리의 상태에 준해서 생각하는 것은 오해를 만드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교훈 : 인류는 선악을 선택할 자유를 가졌지만 아담의 타락 이후 소수만이 선을 선택하였고 급기야 홍수 때에는 노아의 가족만 그리스도의 교회를 선택했다.
둘째날(월)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창 6:5~9)
6월 16일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6, 8).
노아가 태어났던 당시의 세상은 그동안 존재했던 어떤 사회보다 심각했다. 즉 그 사회는 정말 악했다. 대부분 사람이 천 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악이 어떻게 사회에 깊숙이 배어드는지 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던 사실을 한탄하실 정도였다.
창세기 6장을 읽고 아래의 질문에 답하라.
각 반생들이 성경을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1.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셨던 사실을 한탄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하나님이 모르셨다는 뜻이 아니라고 할 근거는 무엇인가?(신 31:15~17 참고)
답: 인간이 너무나 사망으로 급히 달려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말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2. 엘렌 G. 화잇은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들”이란 표현이 신실하지 않은 여인과 결혼한 신실한 남자들에 대한 언급이라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창세기 6장으로부터 교회와 세상의 교류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답: 성도들은 전도를 위하여 교류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교류이지만 결혼이나 상업이나 등등으로 교류할 때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첫째로 하는 굳은 각오로 교류해야 한다.
3. 이 백성들이 저지른 어떤 일 때문에 하나님이 불쾌하셨는가? 그런 일은 그분의 율법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답: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했고 그것이 강포와 패괴로 드러났다. 이것은 탐심의 역사이고 폭력은 상해와 살인 등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4. 창세기 6장에서 노아에 대한 묘사를 살펴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그와 같이 타락한 세상에서 노아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노아는 왜 여호와의 눈에 “은혜”를 받을 필요가 있었는가? 이것이 오랜 과거의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런 사실을 통해 믿음과 하나님의 율법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무엇을 알게 되는가?
답: 노아는 당세에 의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눈에 은혜를 본 사람이었다. 은혜를 봤다는 것은 사죄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보았다는 뜻이다. 율법적 관점에서는 노아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유하시는 은혜를 체험했다는 뜻이다.
<부가설명> 노아 시대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항상 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아는 여호와 말씀을 다 준행했다고 했는데,(창6:22) 방주에 대한 명령이 중심이라고 생각되지만 일반적인 하나님의 원칙에도 준행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된다. 결국 노아는 일상생활에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말로 설명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노아는 믿음으로 당세에 의롭다고 인정받은 성도가 된 것이다. 노아는 말세 심판을 앞 둔 세상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표상적 인물이 된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충성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그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진리 교회의 선조가 된 것이다.
교훈 : 노아가 살았던 세상은 심각하게 부패하여 하나님의 뜻을 크게 거역했지만 노아는 은혜를 얻어 믿음으로 의인이라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셋째날(화) 아브라함에서 모세까지
6월 17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홍수 이후에 노아와 그의 아들들은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할 책임이 있었다. 노아의 가족들은 지구 전역에 닥친 재앙이 인류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지 않고 거부하였던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그들은 더욱 신실한 세대를 만들기 위해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홍수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의 거주자들은 다시 하나님께 반역하였다(창 11:1~9).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홍수를 자연적 원인의 결과로 돌렸다. 다른 사람들은 지존자가 계심을 믿고, 홍수 전 세상을 멸망시키신 분이 바로 그분임을 믿었으나 가인처럼 그들의 마음은 그분께 대한 반역으로 일어섰다”(부조와 선지자, 119).
1. 창세기 12장과 창 15:1~6은 율법과 은혜가 어떻게 함께 일하는지 보여주는가?
[창12:1~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창15:1~6]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답: 아브람을 불러서 만민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실 것을 언약하셨으나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거짓말을 함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겼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브람의 믿음으로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
하나님은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불러 그와 복의 언약을 맺으셨다(창 12:1~3). 성경은 어떤 기준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는 노아와 같은 의로운 특성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그는 부름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법을 범함으로써 자신이 비열하고 기만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창 12:11~13).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믿음은 그에게 의로 간주되었다. 그는 완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믿음이 사람의 입장에서는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그는 기꺼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다.
아브라함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려던 것은 아니다. 바로, 두 명의 다른 아비멜렉 그리고 요셉도 하나님이 간음과 거짓을 승인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두 번째 아비멜렉은 자신의 백성을 유혹에 노출시켰다는 이유로 이삭을 꾸짖었다(창 26:10). 비록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특별한 사명을 위해 선택하셨지만, 다른 여러 나라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백성들이 있었다. 실제 아브라함의 연합군이 그돌라오멜의 동맹군을 무찌른 후에 아브라함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 왕에게 축복을 받았다(창 14:18). 이는 모세의 사역이 있기 전에 세상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불러서 그와 그의 후손들이 온 세상에 복을 받게 하는 통로로 삼으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택하신 이유는 느헤미야에 기록되어 있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느9:7,8)셨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었다. 자기의 안전을 위하여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유하시는 은혜로 위기를 면하고 여호와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하나님께 의로 여김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믿음인데, 그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실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아브람은 그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으로 확신하였다. 즉 창조와 생명의 하나님이심을 믿었고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이다.(롬4:17)
교훈 : 아브라함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였다. 당시에는 그 외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명령을 따르려는 백성들이 있었다.
넷째날(수) 모세에서 예수님까지
6월 18일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고대 법전들은 하나님의 법에 있는 원칙이나 교훈이 보편화된 지식이라는 증거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것들 가운데 완전한 것은 없다. 사실 여러 법전은 하나님이 정죄하신 우상숭배나 여러 관습까지 권장하는 법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분의 참율법을 맡길 청지기로 삼기 위해 선택한 백성이 히브리 민족이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수백 년 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후사였다. 그리고 그 언약은 궁극적으로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되었다.
1. 신 7:6~1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율법과 은혜의 밀접한 관계를 어떻게 밝히고 있는가?
[신7:6~12]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10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11 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12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답: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고 했으나 사람이 능히 준행할 수 없기 때문에 정죄아래 놓이게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으로 즉시 사유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
하나님이 율법의 보관자로 삼기 위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을 때, 그분은 그들이 불완전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그분은 다른 불완전한 백성들에게 그분의 뜻을 전하라는 임무를 그들에게 맡기셨다.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출 19:6)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온 세상을 위해 중재하는 하나님의 제사장 직분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혼란에 빠진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전하도록 선택받은 자들이었다. 이스라엘의 과오, 실패 그리고 여러 차례의 노골적인 반역에도 불구하고 메시아께서 마침내 그 백성을 통해 와서 생애하고 봉사하시다가 수백 년 전에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죽으셨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명사 단수 형태인 “씨”를 한 몸으로 연합한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지만, 바울은 여기서 예수님이 언약의 참되고 완전한 성취였다고 제시한다. 그래서 복음이 율법과 은혜를 모두 분명하게 강조해야 언약의 의미가 가장 완전하게 드러난다.
2. 갈 3:6~16을 읽어 보라. 언약의 진정한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서 바울은 어떤 사실을 기록하였는가?
[갈3:6~1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15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답: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그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 안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언약이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가르쳐주었다.
<부가설명> 구약에 기록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성취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이다. 죄로 완악해진 그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이 그 언약을 성취시키는 것으로 착각 오해하였다. 요한계시록을 읽으면 출19:5,6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것을 분명히 계시하고 있다.(계1:5,6, 5:10)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준행하라고 주신 것은 그들이 그것을 스스로 준행할 수 없고 오직 구주 안에서 준행되고 성취되는 것을 깨닫고 그들 자신들도 구주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다른 나라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 자신이 그 언약을 이루려고 아주 폐쇄적인 상태로 이방을 백안시하고 그들도 언약을 이루지 못하는 이중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구주 예수가 오셔서 그 언약을 성취하지 않았으면 인류는 소망이 없고, 구약의 모든 기록은 헛것이 되었을 것이다.
교훈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법과 뜻을 온 세상에 전할 언약의 후사로서 선택을 받았으며 마침내 약속을 성취할 메시아께서 그들을 통해 나오셨다.
다섯째날(목) 예수님에서 남은 자손까지
6월 19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에덴 이후로 하나님의 교회는 언제나 실수가 많은 백성으로 가득했다. 하나님의 의를 증언해야 할 나라에 그 의가 부족하였다. ‘바통’이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졌지만 결승점을 통과할 만한 주자는 없었다. 율법을 받은 자들 가운데 율법이 요구하는 의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길을 찾으며 허무의 바퀴를 맴도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바통’을 이어받게 하셨다. 예수님은 둘째 아담이 되셔서 죄 없는 상태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아버지께 드리는 변함없는 헌신을 통하여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온전하게 순종하는 생애를 유지하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사슬을 끊고 결승점을 통과하셨다. 그리고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의 의를 모든 믿는 자에게 나눠주신다. 언제나 언약의 핵심이었던 이 기별은 예수님이 지상 사역을 마치신 다음, 신약 교회가 출범한 이후에 가장 분명하게 인식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리스도교가 이 모든 빛을 소유했음에도 종종 고대 이스라엘보다 언약에 불충실한 모습을 보이자 바로 깊은 배도가 거의 모든 곳을 접수(接收)했다. 16세기에 시작한 종교개혁은 이런 흐름을 바꾸었지만 이마저 주춤하면서 수많은 거짓 교리와 가르침이 여전히 기독교 세계에 남아 있고 그 가운데는 기독교의 새로운 언약 속에서 율법의 역할과 목적에 대한 잘못된 견해도 포함된다.
1. 계 12:17과 14:6~1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세상에 보내는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의 기별 속에서 율법과 은혜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14:6~12]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그 여자의 씨의 남은 자손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다. 그들이 성도들이다. 예수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생명을 얻게 된 것이라고 가르친다.
<부가설명> 태초부터 주신 하나님의 계명은 영생의 생명을 잘 관리 유지하라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의 생명을 잘 관리하라는 명령이었다. 선악과를 먹으면 죄인이 된다고 하시지 않았다. 죽는다고 하셨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다만 썩을 뿐이다. 시조가 선악과를 먹은 후에 그에게는 생명의 씨가 없어졌다. 그에게 있는 씨는 썩어질 씨가 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다 이 썩어질 씨로 태어난다.(벧전1:23)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들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만 행하는 자들일 뿐이다.(엡4:22) 아브라함은 물론 그의 후손이 이스라엘도 썩어질 씨로 태어난 썩어져가는 구습을 행하는 자들일 뿐이다. 그들의 희망은 구주를 전적으로 의뢰하고 자신을 구주께 맡기는데 있었다. 그들은 이 일을 깨닫지 못하고 썩어질 씨로 태어난 자신들이 노력으로 썩지 않을 씨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줄로 알았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썩지 않을 씨로 오신 분은 아담의 씨가 아니고 여자의 씨로 오신 구주 예수님뿐이다. 그분이 오셔서 모든 언약을 이루셨다. 이제 우리는 구주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께 전적으로 굴복해야 한다. 그분이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아멘.
교훈 : 예수님은 순종의 생애와 죽음으로 믿음의 경주를 마치셨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큰 배도에 휩싸였지만 계명과 믿음을 지키는 성도가 나타났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6월 20일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는 하나님의 기별의 빛을 받아서 세상의 방방곡곡에 경고의 음성을 높이는 그분의 대리자로 나가는 백성을 대표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선언하신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갈보리의 십자가는 말한다. ‘영혼들의 가치를 바라보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어떤 것도 이 사업을 방해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 시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그것은 영원처럼 멀리까지 미쳐야 할 사업이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구속을 위하여 겪으신 희생을 통하여 사람들의 영혼에 대하여 나타내신 사랑은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행동하게 할 것이다”(교회증언 5권, 455~456).
“가장 중대한 주제는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을 포함한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 모든 사람이 이 기별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들을 이해해야 하며, 이 진리는 구원에 있어서 절대 불가결한 것이므로 일상생활에서 그 진리를 실천해야 한다. 이 중요한 진리를 깨닫기 위하여 우리는 열렬한 정신과 경건한 신앙심을 가지고 연구해야 하며, 우리의 학구력과 이해력은 최고도로 발휘되어야 한다”(복음전도, 19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계 12:17은 남은 백성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로 묘사합니다. 지구상에 안식일을 지키는 개신교단이 수백 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존재해야 할 특별한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교회가 전하지 않는, 심지어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들도 전하지 않는 어떤 진리를 선포하며 가르칩니까?
※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예언의 신의 증언을 가지고 있는 교회로서 성경이 계시한 바로 그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들이다. 이들만이 마지막 자비의 기별인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올바른 무리들이다.
➋ 첫째 천사의 기별이 “영원한 복음”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며,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을 선포한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즉 세 천사의 기별은 복음과 율법 그리고 심판이 모두 등장합니다. 우리는 심판의 때에 율법과 은혜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어떻게 그 모든 것이 함께 조화될 수 있을까요?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모든 것이 조화되어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올바르게 알면 그분 안에서 생명과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것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심판에 대한 것을 가장 바르게 깨닫고 실천하고 증거하게 된다.
일몰:오후 7시 57분
기억절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개역, 계 14:12).
연구 범위 : 창 2:16~3:7, 창 6, 12장, 신 7:6~12, 갈 3:6~16, 계 12:17, 계 14:6~12.
릴레이 경기에서 한 팀은 보통 네 명의 선수로 구성된다. 이전에는 서로 경쟁할 수 있지만 이제는 같은 팀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마치 한 사람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경기에서 주자들 사이의 거리는 균등하게 배분된다. 각 주자는 자기 차례에만 바통을 쥐고 뛸 수 있다. 경기가 마칠 때까지 바통은 한 선수에서 다른 선수에게 기술적으로 전달된다. 어떤 의미에서 바통은 릴레이 팀 주자간의 연속성을 상징하다.
하나님의 교회도 하나의 릴레이 팀과 같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으로부터 시작한 그 바통은 구속사의 여러 국면을 지나면서 전달되었다. 노아에서 아브라함으로 그리고 시내산에서 신약교회와 개혁시대의 교회 그리고 이제는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자들에게 전해졌다.
하나님의 교회의 영속성을 뜻하는 상징은 다름 아닌 율법이다. 타락 이후로 율법은 언제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짝을 이루었다. 이 둘은 모두 복음의 근간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여러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교회에 이어져 온 율법의 연속성을 추적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에 복음을 전하도록 그분께 부름을 받은 백성들이 있었음을 인식한다.
➋ 느끼기 :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된 특권을 감사하게 여긴다.
➌ 행하기 : 세상에 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는 일에 참여한다.
A.
❷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백성이 언제나 율법에 순종하는 도덕적 삶을 선택했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 계속적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상태로 이어왔다.
❸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마지막 교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❹ 남은 교회의 객관적 증거뿐 아니라 본질적인 의미를 성취하려면 우리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 에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법이 생활로 증거되도록 해야 한다.
B.
❷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은 교회는 율법에 관해 어떤 신앙의 바통을 이어왔습니까?
※ 하나님의 율법에 충성해야 하는 사상의 바통을 이어왔다.
❸ 믿음의 경주에서 결승점을 통과하신 예수님은 믿음과 율법에 관하여 신약 교회 이후의 백
성들에게 어떤 모본을 제시하셨습니까?
※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시는 모본을 보이셨다.
❹ 도덕적으로 점점 타락하는 세상에서 남은 백성으로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삶으로 모본을 보여야 한다.
결론: 하나님은 모든 세대마다 충성과 믿음, 사랑과 순종의 생애를 살므로 그분의 뜻을 반사하는 백성을 불러내셨습니다.
첫째날(일) 아담에서 노아까지
6월 15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을 처음으로 증언했던 신약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더욱 넓은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어로 ‘에클레시아’이다. 세속 사회에서 차용된 이 말은 ‘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모든 세대마다 하나님은 충성과 믿음, 사랑과 순종의 생애를 통하여 그분의 뜻을 반사하는 백성을 불러내셨다.
1. 창 2:16~3:7을 읽어 보라. 아담과 하와는 어떤 시험을 받았는가?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왜 그와 같은 시험이 필요한가?
[창2:16~3: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답: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라고 하는 시험을 받았다. 사람이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하여 그와 같은 시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시험을 받지 않아도 이미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같이 완전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려면 아담과 하와는 도덕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어야 했다. 그들은 꼭 잘못을 행할 합당한 원인이 없더라도 잘못을 행할 가능성과 자유가 있어야 했다. 나무 곁에서 받은 시험은 도덕적인 시험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도덕적인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했을까?
우리는 답을 안다. 도덕성의 중심에는 선과 악을 정의하는 하나님의 율법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나무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부른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아담과 하와가 처음부터 잘못을 행할 가능성이 없었다면 거짓말, 도둑질, 살인을 금지하는 율법의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오직 선만을 행할 수 있는 로봇 같은 존재만 있는 세상에서 율법은 무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선택하신 방법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를 원하셨다면 그분은 그렇게 하실 수 없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 후에 바통을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있었을지라도 인류의 도덕적 추락은 순식간이었다.
그들의 첫 두 아들 가운데 아벨만 하나님의 교회에 참여하기로 선택하였고, 가인은 탐심, 거짓, 살인, 불효의 정신에 사로잡혔다. 악이 선을 뒤덮기까지 상황은 악화 일로였다. 홍수 때에 이르러서는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진실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원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영생하는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다. 시조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만 않으면 그 생명은 영원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을 때 있을 결과를 잘 가르쳐주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것을 먹을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부가설명을 쓰는 나의 생각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시조가 완전해지기 위한 시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완전한 상태로 창조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주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사람을 덜 완전하게 창조했다는 암시조차 없다. 선악을 행위론으로 보면 이런 논리가 발생할 수 있다. 성경은 선악을 생명과 사망의 의미로 계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으면 생명을 잃는 것이지, 도덕적 악인이 된다고 하지 않았다. 사망이 되면 부패하게 된다. 그것이 도덕적 악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셨고 사단은 사망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곧 그리스도를 떠나도록 한 것이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11:3) 하와가 뱀에게 미혹을 당하여 그리스도를 떠났다. 그리스도를 떠나면 생명이 없어진다. 사망이 된 것이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곧 죄인이다. 죄인이라는 말은 도덕적으로 악을 행했다는 것보다 먼저 생명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완전하게 창조했기 때문에 그들은 선악과도 먹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먹을 때의 결과를 경고하신 것이다. 그 시험에 통과해야 비로소 완전하게 된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창조를 폄하하는 발상이 아닌가 두렵다. 선악과를 먹기 전의 아담의 상태를 지금 우리의 상태에 준해서 생각하는 것은 오해를 만드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교훈 : 인류는 선악을 선택할 자유를 가졌지만 아담의 타락 이후 소수만이 선을 선택하였고 급기야 홍수 때에는 노아의 가족만 그리스도의 교회를 선택했다.
둘째날(월)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창 6:5~9)
6월 16일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6, 8).
노아가 태어났던 당시의 세상은 그동안 존재했던 어떤 사회보다 심각했다. 즉 그 사회는 정말 악했다. 대부분 사람이 천 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악이 어떻게 사회에 깊숙이 배어드는지 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던 사실을 한탄하실 정도였다.
창세기 6장을 읽고 아래의 질문에 답하라.
각 반생들이 성경을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1.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셨던 사실을 한탄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하나님이 모르셨다는 뜻이 아니라고 할 근거는 무엇인가?(신 31:15~17 참고)
답: 인간이 너무나 사망으로 급히 달려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말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2. 엘렌 G. 화잇은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들”이란 표현이 신실하지 않은 여인과 결혼한 신실한 남자들에 대한 언급이라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창세기 6장으로부터 교회와 세상의 교류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답: 성도들은 전도를 위하여 교류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교류이지만 결혼이나 상업이나 등등으로 교류할 때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첫째로 하는 굳은 각오로 교류해야 한다.
3. 이 백성들이 저지른 어떤 일 때문에 하나님이 불쾌하셨는가? 그런 일은 그분의 율법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답: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했고 그것이 강포와 패괴로 드러났다. 이것은 탐심의 역사이고 폭력은 상해와 살인 등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4. 창세기 6장에서 노아에 대한 묘사를 살펴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그와 같이 타락한 세상에서 노아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노아는 왜 여호와의 눈에 “은혜”를 받을 필요가 있었는가? 이것이 오랜 과거의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런 사실을 통해 믿음과 하나님의 율법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무엇을 알게 되는가?
답: 노아는 당세에 의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눈에 은혜를 본 사람이었다. 은혜를 봤다는 것은 사죄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보았다는 뜻이다. 율법적 관점에서는 노아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유하시는 은혜를 체험했다는 뜻이다.
<부가설명> 노아 시대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항상 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아는 여호와 말씀을 다 준행했다고 했는데,(창6:22) 방주에 대한 명령이 중심이라고 생각되지만 일반적인 하나님의 원칙에도 준행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된다. 결국 노아는 일상생활에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말로 설명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노아는 믿음으로 당세에 의롭다고 인정받은 성도가 된 것이다. 노아는 말세 심판을 앞 둔 세상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표상적 인물이 된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충성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그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진리 교회의 선조가 된 것이다.
교훈 : 노아가 살았던 세상은 심각하게 부패하여 하나님의 뜻을 크게 거역했지만 노아는 은혜를 얻어 믿음으로 의인이라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셋째날(화) 아브라함에서 모세까지
6월 17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홍수 이후에 노아와 그의 아들들은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할 책임이 있었다. 노아의 가족들은 지구 전역에 닥친 재앙이 인류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지 않고 거부하였던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그들은 더욱 신실한 세대를 만들기 위해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홍수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의 거주자들은 다시 하나님께 반역하였다(창 11:1~9).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홍수를 자연적 원인의 결과로 돌렸다. 다른 사람들은 지존자가 계심을 믿고, 홍수 전 세상을 멸망시키신 분이 바로 그분임을 믿었으나 가인처럼 그들의 마음은 그분께 대한 반역으로 일어섰다”(부조와 선지자, 119).
1. 창세기 12장과 창 15:1~6은 율법과 은혜가 어떻게 함께 일하는지 보여주는가?
[창12:1~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창15:1~6]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답: 아브람을 불러서 만민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실 것을 언약하셨으나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거짓말을 함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겼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브람의 믿음으로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
하나님은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불러 그와 복의 언약을 맺으셨다(창 12:1~3). 성경은 어떤 기준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는 노아와 같은 의로운 특성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그는 부름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법을 범함으로써 자신이 비열하고 기만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창 12:11~13).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믿음은 그에게 의로 간주되었다. 그는 완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믿음이 사람의 입장에서는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그는 기꺼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다.
아브라함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려던 것은 아니다. 바로, 두 명의 다른 아비멜렉 그리고 요셉도 하나님이 간음과 거짓을 승인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두 번째 아비멜렉은 자신의 백성을 유혹에 노출시켰다는 이유로 이삭을 꾸짖었다(창 26:10). 비록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특별한 사명을 위해 선택하셨지만, 다른 여러 나라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백성들이 있었다. 실제 아브라함의 연합군이 그돌라오멜의 동맹군을 무찌른 후에 아브라함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 왕에게 축복을 받았다(창 14:18). 이는 모세의 사역이 있기 전에 세상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불러서 그와 그의 후손들이 온 세상에 복을 받게 하는 통로로 삼으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택하신 이유는 느헤미야에 기록되어 있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느9:7,8)셨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었다. 자기의 안전을 위하여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유하시는 은혜로 위기를 면하고 여호와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하나님께 의로 여김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믿음인데, 그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실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아브람은 그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으로 확신하였다. 즉 창조와 생명의 하나님이심을 믿었고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이다.(롬4:17)
교훈 : 아브라함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였다. 당시에는 그 외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명령을 따르려는 백성들이 있었다.
넷째날(수) 모세에서 예수님까지
6월 18일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고대 법전들은 하나님의 법에 있는 원칙이나 교훈이 보편화된 지식이라는 증거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것들 가운데 완전한 것은 없다. 사실 여러 법전은 하나님이 정죄하신 우상숭배나 여러 관습까지 권장하는 법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분의 참율법을 맡길 청지기로 삼기 위해 선택한 백성이 히브리 민족이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수백 년 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후사였다. 그리고 그 언약은 궁극적으로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되었다.
1. 신 7:6~1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율법과 은혜의 밀접한 관계를 어떻게 밝히고 있는가?
[신7:6~12]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10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11 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12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답: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고 했으나 사람이 능히 준행할 수 없기 때문에 정죄아래 놓이게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으로 즉시 사유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
하나님이 율법의 보관자로 삼기 위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을 때, 그분은 그들이 불완전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그분은 다른 불완전한 백성들에게 그분의 뜻을 전하라는 임무를 그들에게 맡기셨다.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출 19:6)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온 세상을 위해 중재하는 하나님의 제사장 직분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혼란에 빠진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전하도록 선택받은 자들이었다. 이스라엘의 과오, 실패 그리고 여러 차례의 노골적인 반역에도 불구하고 메시아께서 마침내 그 백성을 통해 와서 생애하고 봉사하시다가 수백 년 전에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죽으셨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명사 단수 형태인 “씨”를 한 몸으로 연합한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지만, 바울은 여기서 예수님이 언약의 참되고 완전한 성취였다고 제시한다. 그래서 복음이 율법과 은혜를 모두 분명하게 강조해야 언약의 의미가 가장 완전하게 드러난다.
2. 갈 3:6~16을 읽어 보라. 언약의 진정한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서 바울은 어떤 사실을 기록하였는가?
[갈3:6~1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15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답: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그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 안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언약이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가르쳐주었다.
<부가설명> 구약에 기록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성취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이다. 죄로 완악해진 그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이 그 언약을 성취시키는 것으로 착각 오해하였다. 요한계시록을 읽으면 출19:5,6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것을 분명히 계시하고 있다.(계1:5,6, 5:10)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준행하라고 주신 것은 그들이 그것을 스스로 준행할 수 없고 오직 구주 안에서 준행되고 성취되는 것을 깨닫고 그들 자신들도 구주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다른 나라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 자신이 그 언약을 이루려고 아주 폐쇄적인 상태로 이방을 백안시하고 그들도 언약을 이루지 못하는 이중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구주 예수가 오셔서 그 언약을 성취하지 않았으면 인류는 소망이 없고, 구약의 모든 기록은 헛것이 되었을 것이다.
교훈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법과 뜻을 온 세상에 전할 언약의 후사로서 선택을 받았으며 마침내 약속을 성취할 메시아께서 그들을 통해 나오셨다.
다섯째날(목) 예수님에서 남은 자손까지
6월 19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에덴 이후로 하나님의 교회는 언제나 실수가 많은 백성으로 가득했다. 하나님의 의를 증언해야 할 나라에 그 의가 부족하였다. ‘바통’이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졌지만 결승점을 통과할 만한 주자는 없었다. 율법을 받은 자들 가운데 율법이 요구하는 의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길을 찾으며 허무의 바퀴를 맴도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바통’을 이어받게 하셨다. 예수님은 둘째 아담이 되셔서 죄 없는 상태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아버지께 드리는 변함없는 헌신을 통하여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온전하게 순종하는 생애를 유지하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사슬을 끊고 결승점을 통과하셨다. 그리고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의 의를 모든 믿는 자에게 나눠주신다. 언제나 언약의 핵심이었던 이 기별은 예수님이 지상 사역을 마치신 다음, 신약 교회가 출범한 이후에 가장 분명하게 인식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리스도교가 이 모든 빛을 소유했음에도 종종 고대 이스라엘보다 언약에 불충실한 모습을 보이자 바로 깊은 배도가 거의 모든 곳을 접수(接收)했다. 16세기에 시작한 종교개혁은 이런 흐름을 바꾸었지만 이마저 주춤하면서 수많은 거짓 교리와 가르침이 여전히 기독교 세계에 남아 있고 그 가운데는 기독교의 새로운 언약 속에서 율법의 역할과 목적에 대한 잘못된 견해도 포함된다.
1. 계 12:17과 14:6~1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세상에 보내는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의 기별 속에서 율법과 은혜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14:6~12]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그 여자의 씨의 남은 자손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다. 그들이 성도들이다. 예수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생명을 얻게 된 것이라고 가르친다.
<부가설명> 태초부터 주신 하나님의 계명은 영생의 생명을 잘 관리 유지하라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의 생명을 잘 관리하라는 명령이었다. 선악과를 먹으면 죄인이 된다고 하시지 않았다. 죽는다고 하셨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다만 썩을 뿐이다. 시조가 선악과를 먹은 후에 그에게는 생명의 씨가 없어졌다. 그에게 있는 씨는 썩어질 씨가 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다 이 썩어질 씨로 태어난다.(벧전1:23)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들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만 행하는 자들일 뿐이다.(엡4:22) 아브라함은 물론 그의 후손이 이스라엘도 썩어질 씨로 태어난 썩어져가는 구습을 행하는 자들일 뿐이다. 그들의 희망은 구주를 전적으로 의뢰하고 자신을 구주께 맡기는데 있었다. 그들은 이 일을 깨닫지 못하고 썩어질 씨로 태어난 자신들이 노력으로 썩지 않을 씨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줄로 알았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썩지 않을 씨로 오신 분은 아담의 씨가 아니고 여자의 씨로 오신 구주 예수님뿐이다. 그분이 오셔서 모든 언약을 이루셨다. 이제 우리는 구주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께 전적으로 굴복해야 한다. 그분이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아멘.
교훈 : 예수님은 순종의 생애와 죽음으로 믿음의 경주를 마치셨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큰 배도에 휩싸였지만 계명과 믿음을 지키는 성도가 나타났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6월 20일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는 하나님의 기별의 빛을 받아서 세상의 방방곡곡에 경고의 음성을 높이는 그분의 대리자로 나가는 백성을 대표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선언하신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갈보리의 십자가는 말한다. ‘영혼들의 가치를 바라보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어떤 것도 이 사업을 방해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 시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그것은 영원처럼 멀리까지 미쳐야 할 사업이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구속을 위하여 겪으신 희생을 통하여 사람들의 영혼에 대하여 나타내신 사랑은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행동하게 할 것이다”(교회증언 5권, 455~456).
“가장 중대한 주제는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을 포함한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 모든 사람이 이 기별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들을 이해해야 하며, 이 진리는 구원에 있어서 절대 불가결한 것이므로 일상생활에서 그 진리를 실천해야 한다. 이 중요한 진리를 깨닫기 위하여 우리는 열렬한 정신과 경건한 신앙심을 가지고 연구해야 하며, 우리의 학구력과 이해력은 최고도로 발휘되어야 한다”(복음전도, 19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계 12:17은 남은 백성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로 묘사합니다. 지구상에 안식일을 지키는 개신교단이 수백 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존재해야 할 특별한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교회가 전하지 않는, 심지어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들도 전하지 않는 어떤 진리를 선포하며 가르칩니까?
※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예언의 신의 증언을 가지고 있는 교회로서 성경이 계시한 바로 그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들이다. 이들만이 마지막 자비의 기별인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올바른 무리들이다.
➋ 첫째 천사의 기별이 “영원한 복음”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며,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을 선포한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즉 세 천사의 기별은 복음과 율법 그리고 심판이 모두 등장합니다. 우리는 심판의 때에 율법과 은혜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어떻게 그 모든 것이 함께 조화될 수 있을까요?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모든 것이 조화되어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올바르게 알면 그분 안에서 생명과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것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심판에 대한 것을 가장 바르게 깨닫고 실천하고 증거하게 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