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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과 하나님의 법과 그리스도의 법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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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4-05-16 11:56 조회3,9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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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과 하나님의 법과 그리스도의 법



기억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15:10)



첫째 날(일) 율법과 선지자

*도입질문: 십계명에 내포되어 있는 생명적인 뜻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십계명이라고 명명된 것은 출20:3-17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출20:3-17에는 십계명이라는 말조차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열 가지의 말씀을 사람들이 편의에 의해 십계명이라고 명명했을 뿐입니다. 십계명이란 열 가지의 지켜야 할 명령이란 의미를 갖지만 이 말은 전적으로 사람들이 사람의 품성으로 표현한 말일 뿐, 하나님께서 표현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실 명령이라는 단어와 하나님의 품성인 무조건적인 사랑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사람에게 주신 의지의 자유 즉 선택의 자유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사람의 의지의 자유가 침해되고 강제성이 느껴지는 명령과는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엘렌 화잇은 “하나님의 모든 명령은 약속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명령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로 우리를 통해 이루실 약속이라고 정의하심으로 강제적인 명령과는 의미가 다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십계명 혹은 말씀이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므로 강제적인 의미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본성이 조건적인 사랑을 하는 품성이므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하시는 말씀도 조건적으로 받아들이므로 명령처럼 생각함으로 인한 오해에서 빚어진 결과입니다.

레8:35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부탁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부탁을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강제나 부담이나 명령 속에서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인한 감동이 만들어질 수가 없고, 사랑으로 인한 감동이 느껴지지 않으면 참된 생명적 자유가 없이 무서움 속에서 생명 없는 행위만 있게 됨으로 사람들이 볼 때는 매우 훌륭한 종교적인 모습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죽은 자의 행위인 악일뿐이므로 차마 보시기가 힘드십니다. (사1:11-14)

십계명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므로, 십계명에서 명령이 아닌 생명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발견하셔야만 십계명을 통해 주시고자 하시는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처음 네 개의 계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생명 속에 있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느끼게 하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사람만 사람 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느끼게 하는 사랑을 하게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고, 사람 간의 수평적인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질 때 사람들이 더욱 행복해지게 만듭니다.




둘째 날(월) 사랑의 규범들 (요15:10)

*도입질문: “서로 사랑하라” 라는 계명이 본래부터 있던 계명(요이1:5)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새 계명이라고 명명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서로 사랑하라”라는 계명이 제자들에게 새 계명처럼 인식되어진 이유는 제자들이 생각했던 사랑과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처럼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함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사람들의 품성인 조건적인 사랑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 편에 있어서 가장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므로 사람들이 볼 때는 도덕적이고 율법적이고 종교적이어서 누구라도 표준처럼의 모습이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볼 때이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먼 조건적사랑 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래는 그렇지 않았던 사랑의 개념이 사람들의 품성으로 인해 오해되어 왔었으므로,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셨던 생명력 충만함을 경험하게 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제시할 때에 제자들은 그것이 매우 새로운 계명처럼 느껴졌기에 새 계명이라고 명명되어 진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의 조건적 사랑에 익숙했고, 조건적 사랑을 행하는 것이 맞는 삶이라고 알고 살았음으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람들의 선택에 대하여 예수님 자신의 생명을 바침으로 해결하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그들이 알고 있던 사랑과는 전혀 다른 것처럼 느껴졌기에 새 계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의 품성대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시는 분이십니다.(히13:8)




셋째 날(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됨

*도입질문: 율법과 어울리는 단어는 융통성일까요? 철저함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율법과 어울리는 단어는 철저함입니다.
율법이 엄격하게 느껴짐으로 율법에 기록된 대로 철저하게 순종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조건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의 생각에서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율법이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라는 말의 의미는 율법에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품성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은 조건에 따라 다른 사랑을 하시는 것이 아닌, 조건과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절대적 사랑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율법에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를 더 주시고자 하시는(롬5:20) 사랑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신(눅6:35)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하나님은 엄격함으로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다함없는 은혜와 그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버리시는 절대적 사랑을 하시는 그들의 창조주이심을 드러내길 원하십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은 융통성을 발휘하십니다.
그들의 상태와 입장에서 시작하십니다.(단2장- 느부갓네살왕의 상황과 입장에 맞추어 우상으로 만나신 하나님)
그러나 그 사람의 상태와 입장에서 시작하실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사랑으로 시작하셨지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감동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에 두게 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단4:34, 37)

융통적인 사랑을 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감동은 그 사랑 안에 철저히 거하고 싶어지게 만듭니다.




넷째 날(수)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함(갈6:2)

*도입질문: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지 못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사람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날 때부터 죄로 끌려가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지만, 죄로 끌려지는 본성은 없어지지 않고 드러나지만 않을 뿐 여전히 잠재되어 있습니다.
죄의 본성의 힘이 드러나지 않고 눌려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명의 성령의 지배 속에 내 자신을 두기로 끊임없이 선택하는 것입니다.(롬8:2)

성령의 감화와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타고난 죄로 끌려가는 본성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혹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지 못한 사람들을 보게 될 때 이상한 일인 것처럼 바라보지 말고, 당연한 모습이라고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이상한 일처럼 생각하면 서로의 관계가 더욱 서먹해질 뿐입니다.
나도 그렇고 상대방도 그렇고 모두가 죄의 본성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정죄하거나 판단하는 대신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는 성령님의 임재를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 성령님의 감화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에 대한 감동이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 죄로 끌려가는 본성이 아닌 생명을 사랑하는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보고 느끼고 감동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우셔서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하나님 안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다섯째 날(목) 율법과 심판(요5:30)

*도입질문: 하나님의 율법이 심판의 표준이 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의 율법이 심판의 표준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율법의 조목대로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를 살펴본 후 잘 지켰으면 구원을, 못 지켰으면 멸망을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고,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므로 절대로 사람의 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주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사람들이 글자대로 지키는가, 안 지키는가를 판가름 짓는 조건적인 이해가 아닌, 율법을 통해 생명 속에 있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감동으로 하나님을 개인의 창조주와 구원자로 선택하게 함으로 하나님과 절대적 생명의 관계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율법이므로 율법은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됩니다.

심판을 주로 집행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심판이란 “판단하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새롭게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지게 될 때, 그동안 살아왔던 그대로를 판단하고 선언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구원과 멸망으로 나뉘어지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율법의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태도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생명이므로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감동으로 하나님 안에 있길 선택할 때 그것이 생명과의 연결(요일5:12)이고,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함으로 두려워서 율법대로의 행위로 구원을 받고자 할 때 그것이 바로 생명과의 분리입니다.(렘2:13)

율법 속에 담긴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에 대한 감동은 그 사람을 바꾸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고(고후5:17), 새로운 사랑의 행위를 하게 만듭니다.(고후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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