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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과 그리스도와 산상수훈에 나타난 율법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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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4-04-18 13:00 조회4,0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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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과 그리스도와 산상수훈에 나타난 율법



기억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개역, 마5:17-18)




첫째 날(일) 일점일획


*도입질문: 예수님께서는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하려 오셨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구약에서 율법을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율법을 말씀하신 분이 율법을 폐하신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율법을 주신 예수님의 의도는 율법의 글자에 얽매이는 행위를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글에 담긴, 율법을 주신 예수님 자신의 품성을 느끼고 그 사랑에 감동하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출34:27)
그래서 율법 혹은 성경은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요5:39)

그러나 율법 혹은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절대적 사랑을 느끼고 감동함으로 예수님과의 절대적 관계를 이루고자 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율법 혹은 성경을 글자로만 이해하고 그 글자대로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오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율법대로 살지만 율법을 통해 느껴지지 원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오직 율법대로 살고 있다는 행위적 우월감에 빠져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의에 만족하는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모습은 매우 종교적인 모습이지만 실상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이어서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생명 없는 죽은 자의 모습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의도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모습을 볼 때에 예수님의 마음을 슬픔이 가득하셨고, 그래서 율법 혹은 성경의 초점이 순종을 위한 도구나, 행위의 도구가 아닌 예수님 자신을 나타내고 있음을 밝히셨고, 오해되는 부분에 대하여 본래의 실상을 말씀해주심으로 성경과 율법이 가리키는 예수님의 품성을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의도를 알게 된 사람들은 말씀에 계신 예수님의 품성을 확신하여 감동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마15:21- 가나안 여인)
글자에 얽매여 글자대로의 신앙으로 행위가 관건이 되는 것이 바로 불법입니다. (마7:23)

일점일획을 보는 관점에서 일점일획에 담긴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의 품성을 보는 관점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관점의 전환에 중대한 일을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고전2:10-11)





둘째 날(월) 살인(마5:21-26)


*도입질문: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바리새인이 추구했던 의는 행위였습니다.
율법에 기록된 글자대로 얼마큼 순종하는가가 바리새인의 관심사항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살인하지 않으면 율법대로 사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가 아닌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으로 설명하셨습니다. 형제에게 노하고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는 것까지도 살인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글자대로의 해석이 아니라 글자에 담긴 하나님의 의도대로의 해석이었습니다.

형제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낙심케 하는 것은 마치 그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형제에 마음에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어서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함으로 행복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 보다 나은 의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한 사람들이 자신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요일4:7-8)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셋째 날(화) 간음(마5:27-32)


*도입질문: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이 이미 간음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강조점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마음이 강조점입니다.
마음으로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율법을 글자대로 철저히 지킨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요7:19)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데 행위로 율법을 지킨다 할지라도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의 초점은 행위에 있지 않고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의 행위를 하게 합니다.






넷째 날(수) 맹세, 맹세...(마5:33-37)

*도입질문: 맹세나 서원의 문제점이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맹세나 서원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함으로 인한 것입니다.
서원의 첫 사례는 야곱의 서원입니다. (창28:20-22)
야곱의 서원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이러이러한 일을 하시면 나도 이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기대하던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해주시면 이란 조건은 놀랍게도 이미 하나님께서 먼저 야곱에게 말씀하신 것들입니다.(창28:13-15)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갖고 도망가는 야곱의 사정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고 야곱이 불안해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미리 보증의 말씀을 주셨을 때, 야곱이 만약 하나님의 품성을 알았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될 문제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품성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소원대로 하나님께서 행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 서원한 것입니다.
맹세나 서원의 문제점은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함으로 자신이 조건을 제시하는데 있습니다.

입다의 경우도 같은 경우입니다.
서원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섯째 날(목) 탈리오 법칙 (마5:38-48)


*도입질문: 구약에서 예수님께서 원수에 대하여 보복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품성을 가지고 계십니다.(히13:8)
언제나 사랑으로 행하십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원수에 대하여 보복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언제나 같은 사랑을 하시는 하나님의 품성과는 다르게 보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으로는 나의 원수 된 사람에게도 원수를 갚지 말고 사랑해주길 원하시지만 나의 완악함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나의 완악함은 나의 눈 한 개를 뺀 사람에 대하여 두 개의 눈을 빼어야 공평하다고 생각함으로, 본래는 그렇지 않지만 나의 완악함 때문에 혹 용서하지 못하고 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두 개 빼지 말고 한 개만 빼라는 의미입니다. (마19:8)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본래 생각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완악함을 이해하시는 하나님은 사람의 한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본래 가지신 생각을 다 표현하지 못하시고, 하나님의 품성을 알게 됨으로 하나님께서 본래 가지신 생각을 깨달을 때까지 하나님은 고통 속에 참으시면서 기다리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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