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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그리스도와 종교 전통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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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4-04-11 10:49 조회3,9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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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그리스도와 종교 전통



기억절:“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마15:8-9)




첫째 날(일) 모세의 자리


*도입질문: 모세의 자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마23: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의 자리란 모세 시대에 모세가 자신의 의자에 앉아서 모세 오경을 말하는 것처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를 대신하여 모세 오경을 해석하는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 오경(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은 중요한 일이지만, 문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 오경(율법)을 글자로만 이해하고 가르치고 해석했다는데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과 늘 대척점에 섰던 이유였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에게 모세 오경(율법)을 주셨지만 글자에 얽매이기 보다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 자신의 품성 속에서 글을 이해하기 바라셨습니다.(출34:27)
글자대로의 해석은 율법주의가 되게 하고 결국은 율법을 주신 분을 조건적 사랑을 하시는 분으로 오해하게 만들므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게 되고)요5:42), 그것은 결국 율법을 글자대로 지켰다 할지라도 율법을 주신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이므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닌 것(요7:19)이었습니다.

모세의 자리에 앉을 것이 아니라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품성을 보고 듣는 자리에 앉을 때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으로 율법이 생명과 연결되게 만듭니다.




둘째 날(월) 사람의 계명


*도입질문: 사람의 계명과 하나님의 계명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사람의 계명이 만들어진 배경은 하나님의 계명을 확대 및 보완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었습니다.
포괄적인 하나님의 계명을 현실적인 삶에서 어떻게 더 잘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계명을 구원을 위한 조건처럼 이해하였다는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괄적인 하나님의 계명을 현실적인 삶 속에서 더 구체적으로 조건들을 만들어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더욱 행위가 필요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사본인 하나님의 계명을 조건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사람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이해하고자 함으로 인해 빚어진 것 들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사55:8)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품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품성의 사본인 계명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계명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지킨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의미 없는 행위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이해하게 될 때,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하나님의 계명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에 대한 감동은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함으로 그 속에 있게 합니다.(요14:15)
순종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이 기쁨으로 순종하게 이끕니다.





셋째 날(화) 장로들의 전통


*도입질문: 장로들의 전통이 예수님과 충돌을 일으켰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 당시에 편만했던 전통들이 예수님과 충돌을 일으켰던 이유는 전통들도 사람의 품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품성인 상대적, 조건적 사랑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조건이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시는 하나님과 조건적인 행위를 맞추어야 생각하는 사람과는 반드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적인 것에 집중하셨던 예수님과 장로들의 전통을 중시하여 행위적인 조건에 집중하였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의 충돌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넷째 날(수) 사람의 교훈


*도입질문: 우리의 뜻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우리의 뜻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생명과는 상관없는 것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사55:8-9)

우리의 입장에서 바르다는 것에 함정이 있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바른 것이 반드시 생명적이지는 않습니다.
도덕적이고 양심적이고 사람들이 볼 때에 선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라면 모두 사망의 모습일 뿐입니다.(롬14:23)

다른 하나님(고후11:4)을 믿고 열심을 낸다 할지라도 그것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들의 행위와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다른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라면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성경은 다른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품성을 오해하여 사람들의 뜻에 맞는 예수님으로 알고 믿고 열심을 낼 때, 열심과 그들의 마음은 간절하지만 다른 예수님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저 생명 없이 행위로 충만한 열심의 종교인일 뿐입니다.(사1:11-15)

하나님을 사람의 생각대로 생각하면 반드시 사람의 품성대로 하나님의 품성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상대적이고 조건적인 사랑을 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뜻이 아닌 성령의 뜻에 의해 알게 된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할 때 성경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 하나님과의 만남이 바로 생명과 연결됩니다.





다섯째 날(목) 더 나은 의(마5:20)


*도입질문: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 보다 더 나은 의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의 의는 자신들의 뜻과 생각과 전통에서 나온 행위적인 의였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뜻과 생각과 전통이라 할지라도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모든 것들은 죄이고 사망입니다.(롬14:23)
그러므로 더 나은 의가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사람에게서 출발한 것이 아닌 생명이신 하나님에게서 출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사람의 선택에 대하여 모든 것을 책임지심으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의입니다.
생명이 아닌 것은 더 나은 의가 아닌 사람들의 사망으로 끝나는 행위적인 의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으로의 반응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합니다.
서로 사랑으로 연결될 때 그곳에 생명에너지가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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