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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과 제자도의 대가(교사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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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4-03-21 18:21 조회4,1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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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과 제자도의 대가
3월 29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52분

기억절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고후 1:7).

도입)
값싼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 곧 쉽게 예수를 믿으려는 사람이 많을수록 교회는 그 의미를 상실한다. 그리고 제자가 되어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많을수록 교회는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린다. 값싼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쉽게 용서하고 쉽게 천당에 보내주는 할인 매장의 주인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려거든 네 소유를 포기하라"라는 비싼 대가를 요구하셨다. 신자는 열매가 빈약하고, 제자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신자는 자기 혼자의 영혼을 겨우 건지나, 제자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한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불리기는 쑥스러우나, 제자는 큰소리로 "그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불릴 수 있다. 신자는 싼 값을 지불하며 살고, 제자는 비싼 값을 치르며 산다. 신자는 빈 어깨로 천국에 가려하고, 제자는 남의 십자가까지 지고 천국으로 향한다. 신자는 혼자 기뻐하고 혼자 만족한다. 그러나 제자는 눈물과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존경하라' '나를 예배하라' '나에게 영광을 돌리라'라는 말 대신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다.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행동을 따라 실천하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나도 희생하고 예수님처럼 나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으니 나도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믿음이요, 예수 사랑이다. 최효섭(명상록중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수고와 댓가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무려 세 번씩이나 “이러 이러한 사람은…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단언하셨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14:27)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33)

연구범위: 눅 12:49~53, 신 21:15, 고전 9:24~27, 마 18:8~9, 요 14:1~3, 히 11:32~12:4.
*교사는 13째 안식일학교 헌금을 강조해 주십시오.
*나의 영적 성장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십시오.

역사적으로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그들은 투옥되거나 고문을 받고 처형당했다. 수많은 사람이 직업을 포기하고, 조롱을 받으며, 가족으로부터 배척당하는 아픔을 참았으며, 그리스도를 포기하기보다 종교적 박해를 참아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분의 신실한 종들이 견뎌낸 고난의 정도를 아신다.
물론 바울은 미리 경고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베드로도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1)라고 하였다.
고급 승용차, 경제적 소득 등 소위 ‘번영’을 강조하는 설교자들의 약속은 신자들에게 자동적으로 따라붙는 수식어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제자도의 대가가 아무리 크더라도 최후의 상급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너무 싸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안교활동반과교과토의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제자란 스승의 모본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삶을 바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분을 위해 생명을 드림으로 섬김의 삶을 갈망한다.
➌ 행하기 : 현재와 내세에 상급을 가져다주는 제자의 삶을 산다.

Part 1. 인사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 리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해 줍니다.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헌금을 걷습니다.
결석자와 구도자에 대한 보고를 듣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Part 2. 나눔
안교 교사 또는 소그룹 리더(A나 B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A. ❶ 더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 기꺼이 먼 길을 찾아간 적이 있다면 이야기해 봅시다.
❷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감수해야 할 힘든 조건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❸ 어떤 보상이 있다면 그대는 기꺼이 힘든 제자의 길을 걷겠습니까?
❹ 마지막 시대의 제자로서 각자의 결심은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B. ❶ 그대가 어려서 놀고 싶은 생각을 참고 열심히 공부했다면 지금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요?
❷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가족들까지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❸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성령의 지도에 얼마나 철저하게 순종해야 합니까?
❹ 우리가 제자가 될 뿐 아니라 제자를 양육하는 사람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다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해 봅시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지금 이 땅에서부터 사랑, 기쁨, 평화, 긍휼, 공의, 순결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원칙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원칙들을 따라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Part 3. 실천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예비) 리더
❶ ‘나의 영적 성장 보고서’를 함께 작성하고 제출합니다.
❷ 2014년 2기 교과책을 나눠 주고 열심히 공부하기로 함께 다짐합니다.
❸ 안교반과 소그룹의 질적, 양적 성장을 위해 함께 기도합니다.

첫째날(일) 3월23일
최우선 순위: 비용을 계산함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교사강해 1)
원칙은 항상 가혹하다. 하나님의 사업에 전심을 다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기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분의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 전적으로 바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으며 예수의 동역자가 되기는 더더욱 어렵다.(시대의 소망 1권 273p) 사람들이 위대한 구원을 인식할 때에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나타난 자아 희생은 그들의 생애에서도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어느 길로 인도하시든지 즐겨 따라 갈 것이다.(시대의 소망 1권 273p) 일본 군인들은 천왕을 위하여 저들의 몸을 다 산화하기까지 충성 하였다. 과연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신 하나님께 진정한 헌신을 하고 있는가? 말로만 헌신하고, 생각만으로 헌신하며 진정한 헌신은 자꾸만 뒤로 미루어 놓는 어리석음이 우리에게는 없는가? 이제 우리는 무지하고 게으른 우리의 영적인 교만에서 돌아서야 한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귀한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어떠한 대가라도 치를 수 있는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눅 12:49~53, 14:25~26, 마 10:37을 연구해 보라. 이 심각한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여기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시려는 말씀은 무엇인가?

오늘날 TV 뉴스 진행자라면 그날의 사건을 이렇게 꾸미려고 할 것이다. “인기종교 지도자 나사렛 예수가 오늘 오후 가족 내 증오를 옹호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분석가들은 오늘의 발표를 이웃과 원수에 대한 사랑을 장려했던 이전 진술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최근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팔아 예수 운동에 바치라는 취지의 미확인 언급도 나왔습니다. 더 자세한 소식 전해드립니다. 채널 고정해 주십시오.”
‘미워하다’라는 단어가 사용된 방식에 대한 면밀한 성경적 연구는 예수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 신 21:15은 일부다처에 대한 모세의 법률이다. 고전적인 번역 성경은 중립적인 의미에서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라고 번역했다. 모세가 말하려는 핵심은 남편이 다른 아내들보다 한 아내를 더 좋아할지라도 그는 덜 사랑받는 아내들을 거절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현대적인 번역 성경들을 사랑을 ‘총애’로 미움을 ‘마음에 안 드는’이라고 번역했다. 이 성경절이 분명하게 의도하는 의미는 애정의 정도이다. 이 문맥에서 ‘미움’은 덜 사랑하는 것을 가리킨다. 유사한 성경절인 마 10:37도 이러한 의미에 신빙성을 더한다. 예수님의 관점은 단순하지만 심오한 의미로 충만하다. 만약 가족이 우선이고 그리스도가 둘째라면 예수님은 주인의 권위를 포기해야 한다. 여러 주인을 섬기기란 불가능하다.

교훈
가족에 대한 증오를 언급한 예수님의 발언은 가족의 파괴가 아닌 하나님에 대한 우선순위를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도는 최상의 대가를 요구한다.

부가적용)
에베소서 6:1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말한다. ‘주 안에서’라는 말씀은 효도의 근거와 한계를 보여준다. 효도의 근거는 하나님이시다. 세상의 도덕 질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효도는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이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한 행위이다. 그러나 효도는 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효도의 한계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크신 부모님이시다. 그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또 우리의 육신의 부모보다 높으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범위 안에서 해야 한다. 즉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부모의 명령까지도 순종하라는 뜻은 아닌 것이다. 하나님과 부모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택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께서는 너희 집안 식구가 너희 원수라고 말씀하셨고 또 우리가 우리의 가족들을 미워하지 않으면 주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마 10:34-37; 눅 14:26). 우리의 육적인 가족은 이 땅에서만 유효한 가족의 관계이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 관계가 영원함에 있다. 가족보다 더 상위에 두어야 할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없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그대는 실질적으로 하나님과 가족 가운데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예수님은 분명 가족의 연대를 강력하게 지지하셨다. 그런데 그런 연대는 흔들리지 않는 기초에서 힘을 얻는다. 그 기초란 하나님을 전적으로, 무엇보다, 가장 먼저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장애나 방해, 혼란을 허락지 않으신다. 제자도는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충성이라는 최상의 대가를 요구한다.

|적용|
그대가 앞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최우선 순위에 둔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선택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까?

영감의 교훈
그리스도를 택하라-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는 나와 세상 중 무엇을 택하겠느냐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무조건 마음과 애정을 굴복하길 요구하신다. 만일 그대가 친구나 형제자매나 부모나 가옥이나 땅을 나보다도 더 사랑한다면, 그대는 내게 무가치하다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교회증언 3권, 45).

기 도
하나님, 우리가 말로는 먼저“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고 했지만, 사실 가족을 우선시할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 가족이 하나님께 대한 철저하고 정직한 믿음과 순종 위에 견고히 설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둘째날(월) 3월24일
우리의 십자가를 짊어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7).

교사강해 2)
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7).고 하신 이 말씀에 대해 마 16:24-25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하신 이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아니하면 영원히 살 수 없다.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어야 하는가?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6:34)고 하셨다. 우리의 생명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 안에서 내가 죽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대가 예수님이 당하셨던 동일한 고난을 겪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기별을 제시하는 방법에 정직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그리스도의 용서,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 비할 데 없는 하늘의 경이로움 그리고 분에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같은 영광스런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신자들이 하나님의 완전한 기별을 전파하려 한다면, 그들은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아쉽게도 어떤 신자들은 사람의 행동을 요구하는 기별을 율법주의라고 오해한다. 그들은 자랑스럽게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것을 이루었으니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인간이 할 일은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으신다.
마 16:21~25, 눅 21:12~19, 요 15:17~20, 16:1~2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 성경절들로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대가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알게 되는가?

침례를 받기 전, 모든 후보자는 예수님이 각자에게 십자가를 지우셨고, 그것 없이는 절대로 그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이 사실이 회심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는가?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약속이 그런 기쁨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는가? 회심이 해방시키는 짐은 죄의 짐이지 제자로서의 책임이 아니다.

교훈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을 따라 고난의 길을 걸으며 자기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져야 한다.

부가적용)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고 사도바울은 말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다.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이 썩어질 세상이 아니다. 저 영원한 하늘을 소망하는 자들에게 있어 이 땅은 쉽지 않은 고난이 따를 것이다. 제자가 되는 너무 높은 이 같은 비용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를 따르는 것으로부터 돌아서는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많은 군중들을 이끌려고 시도하지 않으셨다. 그는 단지 제자들을 원하셨다!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은 헛수고가 아니다. 그의 봉사 사업에 자기의 생애를 바치는 자들을 위하여 귀중한 보상이 있다. - 4T, 107.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업에 바쳐진 모든 희생은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따라 보상될 것이다. - 시대의 소망, 249(영문).

나의 삶 속으로
|묵상|
그대는 그리스도의 제자도가 요구하는 대가를 기꺼이 지불할 마음이 있습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얻음으로 그리고 침례를 통해 자신의 선택을 대중에게 공표함으로 모든 신자는 제자가 되는 길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대가를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보상을 베푸신다. 반면 세상은 그것을 따른 대가로 무엇을 주는가?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적용|
그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자신이 짊어질 십자가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영감의 교훈
그분을 따르라-“그분께서는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버리셨다. 비천한 구유에서부터 십자가까지 그분을 따르라 그분은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그분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멸시받은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라고 하신다. 그 잔을 마실 수 있는가? 그 침례를 받을 수 있는가?”(교회증언 2권, 177).

기 도
예수님, 제게 주신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 이 짐을 벗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고난은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을 믿고 힘을 냅니다. 이 길의 끝에 이를 때까지 넘어지지 않도록 저를 붙들어 주옵소서.

셋째날(화) 3월25일
훈련된 반응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교사강해 3)
매 2년마다 고린도에서는 포세이돈 신을 기리기 위한 유명한 경기가 열렸었다. 이 경기는 고대사회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경기 중에 하나였다. 모든 경기 참가자들은 집중적으로 이 경기를 위해 미리 준비했었다. 그런데 우승자에게 주어진 상이 무엇인가? 머리 위에 씌워 주는 면류관이다. 어떤 사람은 이 면류관이 월계수 잎사귀로 만든 것, 혹은 가문비나무 가지로, 어떤 사람을 셀러리 잎과 줄기로 만든 것이라고들 주장한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목적을 위해 사는가? 우리는 단지 즐기고자만 하는가? 아니면 중요하게 생각되는 과제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가?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단지 썩어 없어질 목표들일 뿐이다. 썩지 아니할 목표는 전적으로 다른 그 무엇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더불어 새 생명을 얻는 일과 전적으로 영원토록 예수님 가까이 거하는 삶이 그것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단호하게 힘쓰며 강하게 싸워야만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철저하게 당신의 막강한 능력으로써 바로 오늘에 이미 채워 주고자 하신다. 이것을 체험하기 위해서, 그리 중요치 않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며 전적으로 믿음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김연아나 이상화와 같은 운동선수들이 아주 강하고 힘든 훈련을 하듯이, 우리도 더 강한 믿음의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의 말씀을 분석해 보라. 눅 14:31~33, 고전 9:24~27, 히 12:1~4, 벧후 1:5~11. 이 말씀들은 제자의 삶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알려주는가?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실상을 그대는 어떻게 경험해 보았는가?
제자도의 대가는 훈련을 포함한다. 모든 충동, 생각, 야망, 욕망은 그리스도께 굴복되어야 한다. 모든 소유, 육체적이거나 비가시적인 모든 재능과 능력, 가치 있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명령 아래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분께 굴복시키지 않는 것은 불가피하게 우상이 되거나, 우리를 배도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  
그리스도는 진실로 우리에게 성격적 결함을 극복할 능력을 베푸신다. 모든 식욕, 감정, 지적 경향은 성령의 지도 아래에 있어야 한다.
바울이 몇 곳에서 사용했던 운동선수의 예를 주목하라. 늦게 달리고, 낮게 뛰고, 짧게 던지기를 열망하는 선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신자도 뒤를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특히 지상의 주자들이 자신의 모든 노력과 훈련의 결과로 얻게 될 상과는 달리 우리의 영적인 경주에 걸린 운명이 영원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경주자들은 체력을 약화시킬 모든 방종을 버리고 엄격하고도 계속적인 훈련으로 근육을 강인하게 훈련시킴으로, 경기 당일에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영원한 이익이 걸려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식욕과 정욕을 이성과 하나님의 지배 아래 두는 것은 얼마나 더 중요한 일인가! 그리스도인은 결코 오락과 사치와 안일로 인하여 그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그의 모든 습관과 정욕은 가장 엄격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 의하여 계발되고 그분의 성령의 지도를 받는 이성이 마음의 고삐를 잡아야 한다”(사도행적, 311).

교훈
영원한 상을 얻고자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의 모든 재능과 소유 심지어 생각과 욕망까지 다 그분의 지배 아래 두는 엄격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부가적용)
만일 성공하는 운동선수가 되려고 한다면, 자신이 가진 삶에서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더 많은 연습을 하고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음악가도 마찬가지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다. 제자란 당신이 한번 되겠다고 선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주의 제자가 되겠다는 결심은 한번으로 족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듯, 힘든 시작과 더딘 성장을 수반하는 긴 과정이다. 축구 선수, 마라톤 선수, 야구선수나 음악가가 되는 것도 그렇듯이, 어떤 날은 연습이 잘 안되고, 어떤 날은 경기에 지기도 할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우리는 우리의 소유욕과 출세, 편견, 미움과 질투 등우리의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 인격이 예수의 도를 따르는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그대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엄격한 훈련과 절제를 수용할 마음이 있습니까?
기량을 발전시키기 원하는 선수라면 자신을 철저하게 단련시키는 코치를 환영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철저한 영성 훈련과 생활 개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삶의 기둥으로 삼고 모든 일상과 생각을 성령의 감화 아래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전에 사소하게 여겼던 문제도 나의 생각이나 취향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판단하게 됩니다. 단지 우리가 정말 그렇게 훈련받고 단련되기를 바라고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적용|
영성 훈련과 생활 개혁을 위해 그대는 어떤 계획을 세우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영생을 위한 노력- “영생을 얻기 위하여는 노력이 필요하다. 승리자가 되는 것은 오직 오랫동안 인내하는 노력, 고된훈련, 엄격한 투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광야의 유혹을 승리하신 “승리자”의 이름으로 그분이 승리하신 것처럼 인내하며 단호하게 승리한다면, 영생의 상급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의 노력과 자아부정, 그리고 인내는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물의 무한한 가치에 상응하는 것이어야만 한다”(증언보감 1권, 115).

기 도
예수님, 우리가 그 동안 우리의 모든 재능과 소유와 관심을 주님의 지배 아래 두지 못했던 것은 간절함이 부족했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죄의 세상과 싸우기 전에 먼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 주시옵소서.

넷째날(수) 3월26일
대가를 비교함

교사강해 4)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의 주변에서 크고 작은 중단된 건축물들을 보게 된다. 예산을 잘못 세워 다 짓지 못한 그런 흉물스러운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한마디씩 하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도 망대를 짓다가 다 짓지 못하고 흉물스럽게 버려진 경우가 더러 있었던 모양이다. 이 모습을 보시고 마음에 간직하고 계셨는데 마침 기회가 닿아서 무슨 일을 계획하고 그것을 완성하려고 하면  그만한 충분한 비용을 계산하고 댓가를 치러야 함을 교훈하시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겠다고 따르던 사람들을 살펴보시고는 제자 되는 것과 망대를 짓는 것이 같은 원리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망대를 짓고자 하는 자가 그러면 먼저 해야 할이 "그 비용을 계산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마땅히 그 비용을 예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은 공짜로 받는다. 그러나 제자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 중에서 다수가 끝까지 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갖지 못한 것을 아셨다. 그들 중에 더러는 마치 망대를 크고 멋지게 짓고자 기초를 팠으나 다 완공하지 못한 건축주처럼 제자 되는 일을 시작했으나 돌이키는 고로 경주를 마치지 못할 것을 아셨다.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교인이다. 교회를 다니고는 있지만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여 구원도 은혜도 받지 못한 사람이다. 예수님 당시의 무리들과 같다. 둘째는 성도가 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다. 그런데 구원은 확실히 받았지만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에 머물러 있으므로 인해서 하늘나라 상급이 보장된 상태는 아니다. 그리고 셋째는 제자가 있다. 주님영접, 성령 충만에 주를 위해서 헌신된 사람이다. 주님은 우리가 무리가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주님은 우리가 성도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신다. 주님은 우리가 제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누구나 교회를 다니는 것은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함일 것이다. 그런데 왜 제자가 못되고 교인이나 성도로 머물고 마는 것인가? 그리스도를 붙들려는 의도로 충만한 채 시작하여 성숙한 제자로 성장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다가 그만 흘러 떠내려가 버리는 것이 신자의 가장 비극적인 상황 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먼저 비용을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초를 세우고는 준공하지 못한 사람이다.

기업들은 비용 편익 분석을 통해 제안된 기획들의 성공 가능성을 탐색한다. 구체적인 기획안들은 투자에 대한 보상을 가져올 만한 요소들을 담고 있는가? 수익이 지출에 비해 큰가? 자주 적용되는 또 다른 기준은 지속성이다. 그 기획은 지속적인 보상을 제공하는가?  
제자도의 보상 역시 대가와 비교하여 평가되어야 한다. 대가에는 정서적 고통, 사회적 거부, 신체적 고문, 경제적 박탈, 수감 그리고 죽음이 포함될 것이다. 누구든지 제자의 길에 들어서는 이는 필수적인 투자를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제자의 길에 따르는 대가에 대하여 다음 성경절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마 18:8~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눅 6:35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빌 2:3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다음 성경절은 이익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는가?
눅 18:28~30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요 14:1~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계 22:1~5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당연히 예수님을 따르는 대가는 클 수 있으며 아마도 사람이 치를 수 있는 가장 큰 대가일 수도 있다. 만약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큰 대가 또는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렇다. 우리가 이생에서 무엇을 얻든, 무엇을 성취하든, 무엇을 만들든 다 일시적이어서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허무하게 사라질 것이다. 반면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님을 통해 얻을 영생은 이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그 무엇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교훈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우리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받을 보상과 비교하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부가적용)
우리는 계산하는 것을 마치 믿음이 없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계산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강력한 도구이다. 계산하도록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생각이나 계산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 생각이나 계산이 자기 욕심이나 자기 합리화의 수단으로 자주 이용되기 때문에 그렇다. 여러 가능성들이 있는데 그 중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택해 이기적인 판단을 한다. 또 어느 때는 불리한 것만 들어 자기 비겁함에 대해서 변명한다. 그래서 계산이 믿음 없는 것으로 치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바른 계산은 정당한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잘 사용하는 것이다. 종종 어떤 건물이나 망대를 짓는데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예로 들어 헌신과 노력을 예상하지 않고 제자가 되려고 할 때 제자가 되는데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망대를 세우는 일은 댓가를 지불해야 된다. 충분한 댓가를 치르지 않으면 망대를 세우는 일에 실패할 것이다. 망대가 그냥 세워지는 법은 없다. 망대 하나가 세워지려면 그만한 투자가 따르기 마련이다. 투자를 아끼면 결국 망대를 세우는 일에 실패하게 된다. 댓가가 지불될 때만 망대가 세워지는 것이다. 주님과 그 분의 나라를 위해서 시간과 물질과 삶을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해서는 안된다. 남들이 따라가니까 따라가고 혹은 호기심에서 구경삼아 따라가고 좋지 않은 마음으로 따라가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유가 어떻든 망대 건설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끝까지 가지 못하고 도중에 멈추었기 때문이다.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 뭐 하나를 해도 끝까지 하지를 못한다. 도중하차 한다. 가만히 지켜보시기를 바란다. 그것이 그들의 특징이다. 신앙도 그렇다. 제자로서 성공하지 못한 자들도 대부분 끝까지 가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하고 그만둔다. 그것이 문제이다. 처음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을 붙잡고 끝까지 놓지 않아야 한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면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그대는 어떻게 미래의 보상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 때,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보상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보통 마음의 평화와 긍정적이고 건강한 생활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사탄은 지속적으로 우리를 시험하며 신앙을 위협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미 경험한 보상을 기초로 장래의 보상을 소망하며 예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 사이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에 속한 무엇을 포기하든지 우리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보상을 약속 받았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 누리고 있는 축복을 통해 그 약속을 충분히 믿을 수 있습니다.

|적용|
그대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버리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불평하지 말고 최후의 상급에 눈을 고정하라-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간청하노니 어려움과 자아 희생을 불평하지 말라. 왈덴스인들을 쳐다보라. 복음의 빛을 몽매한 사람들의 마음에 비춰 주기 위하여 그들이 어떤 계획들을 고안해냈는지 보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상급을 받기 위한기대로 일하지 말고 세상 끝에 있을 상급에 굳게 고정된 눈으로 일해야 한다”(교회증언 5권, 406).

기 도
예수님, 저는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삶을 살면서 이미 큰 보상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영광을 얻기 위해 제 발목을 잡고 있는 것들을 기꺼이 버리며 주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다섯째날(목) 3월27일
더 좋은 부활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히 11:35).

교사강해 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란 말이 있다. 이것은 구약성경의 사르밧 과부(왕상17:17-24)와 수넴 여인(왕하4:18-37)의 경우를 가리킨다. 전자는 엘리야가 그녀의 죽은 아들을 살려 주었다. 후자도 엘리사가 그녀의 죽은 아들을 살려 주었다. 신약성경에서는 나인성 과부(눅7:11-14), 나사로의 누이인 마르다와 마리아(요11장), 도르가(행9:36, 41)를 가리킨다. 이뿐만 아니라 예수의 부활의 아침에 많은 무덤들이 열리고 부활한 사건도 있다. 그런데 이 부활들은 부활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주님께 말씀하시는 참 부활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때 많은 자들이 부활을 경험하기는 했으나 지금까지 살아남은 자는 한 사람도 없다. 다시 저들은 다 죽음의 길을 가야만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은 "더 좋은 부활"을 말하고 있다. 그럼 "더 좋은 부활"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쉽게 말해서 좀 전에 설명했던 부활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부활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 타시고 재림하시는 그 날 천사들의 나팔 소리가 날 그 때 있을 그 부활을 성경은 "더 좋은 부활"이라고 말한다.

히 11:32~12: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제자도의 대가와 보상에 대하여 그대에게 개인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정말 놀라운 개념이 위의 성경절에 계시되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제자가 되는 것과 제자를 양성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더 좋은 부활”이라는 한 가지로 압축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는 죄와 고통과 죽음이 없는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구속함을 얻으리라는 약속과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과 대제사장 봉사를 통해 명확해진 이 소망과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동일한 소망과 약속을 제시하기를 원한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 때에 생존해 있지 않는 한, 대쟁투가 끝나기 전에 첫째 부활이든 악인의 둘째 부활이든지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이 더 좋은 부활인지 알고 있다. 우리가 그 부활에 참여할 뿐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모
든 노력을 기울여 다른 이들도 그 부활에 참여하도록 인도하는 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겠는가?
추수 때가 무르익었다. 수많은 사람이 제자의 길로 부름을 입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의 기별인 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의 기별, 곧 ‘현대 진리’로 알려진 복음으로 인해 복을 받았다.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이러한 진리를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시 말해 추수할 일꾼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 곁에 서서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제자가 될 뿐 아니라 제자를 양성하는 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겠는가?

교훈
우리는 더 좋은 부활에 대한 확실한 약속과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뿐 아니라 제자를 양육하는 자가 되라는 초청을 받아들인다.

부가적용)
믿음의 선진들은 무수한 고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믿음을 지켰다. 사자의 입을 막고 불의 세력을 멸하며 예리한 칼날을 피했다. 조롱과 채찍질, 결박, 투옥, 돌로 침, 톱으로 켬,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함, 궁핍, 환난, 학대도 겪었다. 하지만 절망하거나 포기하는 대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을 기다리고 바랐다. 구약의 성도는 증거는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다. 이에 반해 신약의 성도는 성령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에 얼마든지 온전함에 이를 수 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이미 세상을 이긴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더 좋은 부활은 그대에게 얼마나 확고한 소망을 불러일으킵니까?
이생의 풍요와 내세의 복락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둘 다가지고 싶다고 대답합니다. 둘 다 경험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이생의 풍요가 얼마나 일시적이며 허무한지 알지 못한다면 내세의 복락을 갈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역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행복이 간절한 사람은 이 땅에 더 이상의 미련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큰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과 세상의 멸망 그리고 성도들의 구원을 약속하는 영원한 복음을 전하며 이 소망에 동참하는 더 많은 제자를 양육해야 합니다.

|적용|
우리는 마지막 시대의 제자로 초청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그대의 반응과 결심은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잠에서 깨어야 할 시간- “지금은 우리가 잠에서 깨어야하며,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해야 할 중요한 시간이다. 그리고 나는 그분이 우리를 찾으실 것을 안다. 나는 온 하늘이 우리의 명령에 있는 것을 안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게 되자마자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실 것이다. 우리는 늦은 비 때에 어떻게 설것인가? 누가 첫째 부활에 참여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설교와 강연 1권, 60).

기 도
예수님, 우리를 마지막 시대의 제자로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숙한 심판 앞에 놓인 이 세상에 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고, 더 좋은 부활의 소망을 보고 달려오는 이들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마치고 주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여섯째날(금) 3월2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도행적>, 219~220 “지경을 넘어서”, 241~242 “베뢰아와 아덴”을 읽어 보라.

“불이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다. 땅이 깨어진다. 땅의 깊은 곳에 감추었던 무기들이 터져 나온다. 땅의 깨어진 모든 틈에서 맹렬한 화염이 터져 나온다. 모든 바위가 불이 된다. 풀무불처럼 불타는 날이 마침내 왔다.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것들이 타버린다(말 4:1, 벧후 3:10 참조). 땅의 표면은 마치 용해된 하나의 덩어리, 곧 하나의 거대한 끓는 큰 불못처럼 된다. 이때는 경건치 않은 자들의 형벌과 멸망의 때이다. ‘이것은 여호와의 보복하시는 날이요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시는 해’(사 34:8)이다.
악인들은 땅에서 그들의 보응을 받는다(잠 11:31 참조).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말4:1) 사를 것이다. 어떤 자들은 한순간에 멸망당하지만 어떤 자들은 여러 날 동안 고통을 받는다. 모든 사람은 ‘그들의 행위대로’ 형벌을 받는다”(각 시대의 대쟁투, 672~67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기독교 신념을 고수하다 사망한 디트리히 본회퍼는 <제자도의 대가>라는 유명한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아래에 그 책에서 발췌한 몇 구절을 옮겨 놓았습니다.  이 글들은 이번 주에 우리가 공부한 내용과 얼마나 비슷합니까?
“옛 생애는 뒤에 버려지고 완전히 굴복된다. 제자는 비교적 안전한 삶에서 완전히 불안전한 삶(사실은 예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절대 안전과 안정)으로 끌려간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면 우리는 분명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부르심을 따르는 첫 번째 단계는 제자의 삶을 이전 삶에서 잘라내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가 지워져 있다.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할 첫 번째 그리스도의 고난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포기하라는 부르심이다.… 그리스도께서 한 사람을 부르실 때, 그분은 와서 죽으라고 그에게 분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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