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과 민족들을 제자로 양성함(교사강해)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10과 민족들을 제자로 양성함(교사강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4-02-28 21:12 조회4,175회 댓글0건

본문

제10과 민족들을 제자로 양성함
3월 8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32분

기억절 :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 56:7).

도입)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한 포로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독일군에게 잡혀 포로가 된 미군 병사들은 철창 안에 갇혀 있었다. 철창 안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눈은 굶주려서 움푹 패이고, 얼굴을 빛을 보지 못해 누렇게 떴으며, 몸은 씻지 못해서 악취가 나고 더러웠다. 하루가 다르게 포로의 생명은 바싹 바싹 말라갔고, 실제로 날마다 몇 사람씩 죽어 나갔다. 희망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캄캄한 어둠의 세계가 바로 그 철창 안 포로 수용소였던 것이다. 그때 누군가 포로수용소 철창 안으로 단파 무선기 한 대를 들여왔다. 그동안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되었던 포로들은 이 단파 무선기를 통해 바깥세상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전쟁이 진행되는 상황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철장 안에 있던 포로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였다. 입가에 미소를 짓거나 환하게 웃고 있다. 한 번도 웃지 않던 그들이 웃고 있는 것이었다. 또 밥그릇을 공중에 던지며 ‘hurray!’라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한다. 언제나 침묵이 흐르던 철창 안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 것이다. 또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생존하는 것이 전부였던 그곳에서 남에게 관심을 갖는 법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를 격려하며 안아주고 있다. 모든 것이 이상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포로수용소의 환경이 나아진 것이 아니었다. 철창 안의 상황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었다. 미군들은 여전히 포로로 잡혀 있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음식과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그리고 많은 포로들이 날마다 병들어 죽어나가고 있었다. 모든 상황은 변한 것이 없는데 포로들이 변했다. 포로들이 달라졌다. 그 이유는 한 가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단파 무선기를 통해 그들은 아주 특별한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은 고전 중이던 미군이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이곳 포로수용소 근처까지 점령을 했고, 곧 포로수용소도 점령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철창 안에도 자유가 임박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제 곧 철장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의 소식이었다. 도무치 희망을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철창 안에 한 토막의 뉴스가 전해지자 웃음과 미소가 나타났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희망에 들뜬 이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등을 토닥거렸다. 단 하나의 뉴스가 어두운 감옥 안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은 이 어둠에 빠진 인류에게 바로 이와 같은 소식이다. 전쟁 통에 철창 안에 들려온 기쁨의 소식처럼, 어둠 속에 있던 인류에게 한 줄기 빛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 소식은 모든 인류가 기뻐할 소식이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소식이었다. 오늘날 열방의 모든 민족들에게 인류의 생명과 희망의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에 대한 소식은 온 인류의 희망이 되었으며 그분의 제자가 되도록 모든 민족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은 우리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의 사명이다.

연구범위: 사 56:6~8, 마 11:20~24, 요 12:20~32, 롬 15:12, 행 1:7~8.
*토의식으로 교과를 진행하려면 반드시 활동반을 통해 친교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이 열려야 입이 열리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의 기별은 태생적으로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을 목표로 삼았다.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특성 때문에 복음은 초기에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물론 이런 복음의 개념은 제자들의 사고에 도전의식을 고취시켰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회심시키셨을 때, 그들의 첫 번째 반응은 이러한 도전을 예증한다. 그들은 예수께서 단지 유대인의 예언과 희망을 성취하기 위한 메시아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오해했고, 특히 만민을 아우르는 기별을 전했던 이사야의 예언을 간과했다. 만국의 소망이신 예수님은 한 민족에게 제한되실 수 없었다. 구원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국경, 국가 간의 분쟁, 언어의 차이 그리고 기타 난관들을 초월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교차 문화 전도법을 창안하셨기 때문이다.
특히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계 14:6에서 이런 부르심을 발견한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안교활동반과교과토의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하나님의 나라에서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유럽인, 아메리카인과 같은 구분은 필요없게 된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➋ 느끼기 : 사람을 나이와 민족, 경제수준과 종교로 분류하라는 요구를 거부한다.
➌ 행하기 :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다른 배경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교제한다.

Part 1. 인사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 리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해 줍니다.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헌금을 걷습니다.
결석자와 구도자에 대한 보고를 듣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Part 2. 나눔
안교 교사 또는 소그룹 리더(A나 B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A. ❶ 그대가 선교사가 된다면 어느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까?
❷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많은 특권과 복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❸ 우리 교회가 특별히 세계 선교에 관심을 기울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❹ 우리 교회가 이주민 선교 또는 해외 선교에 기여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B.  ❶ 우리가 외국인들과 함께 예배해야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습니까?
❷ 구원이 처음부터 유대인들만이 아닌 전 인류를 위한 것임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❸ 십자가 사건 전에 찾아온 그리스인(헬라인)의 방문은 예수님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❹ 비유 속의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우리는 어떻게 민족의 경계를 넘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결론
  만약 예수님이 자신들만 돌보시고 오직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재림하신다고 믿는다면 그들은 전 세계적인 기별을 가진 백성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계 14:6)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기를 바라십니다.

Part 3. 실천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예비) 리더
❶ 지난 안식일 첫 오후 활동에 대한 소감을 들어 봅니다.
❷ 다음 주에 있을 친교 모임에 대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확정합니다.
❸ 지속적인 안식일 오후 활동을 위해 기도합니다.

첫째날(일) 3월2일
선지자들의 예언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미 4:2).

교사강해 1)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바벨탑 사건으로 온 땅에 흩어진 인류를 구원하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일컬어 열국을 하나님께 인도할 제사장 나라라고 부르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시고, 또 그들을 통해서 모든 민족들을 축복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사명을 망각했다. 그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다른 민족들을 멸시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부패해졌을 때에 온몸을 던져서 사회와 나라를 바로 잡는 일을 했다. 중세 때에 기독교회는 부패와 타락의 길을 걸어갈 때에 루터나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서 부패한 교회를 바로잡아 보려고 최선을 다했다. 웨슬레의 개혁 운동은 부정과 타락으로 물든 미국 사회를 정화하는 역할을 했다. 지금도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는 천국 백성들은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될 수 있다. 천국 백성들을 교회가 부패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며, 또 사회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성령 충만한 천국 백성은 부정과 음란과 죄악에서 세상을 건져낼 수 있는 대안 세력이다. 천국 백성들은 성령님의 힘으로 세상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도 이 시대의 부패를 막는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다.

옛날 선지자들은 다른 민족들이 성경에 기초한 믿음으로 회심하리라는 사실을 예언하였다. 그들의 예언에 따르면 이방신, 이교예배, 파괴적 생활방식은 여호와에 대한 타협 없는 순종과 믿음에 의해 무너지고, 이스라엘의 원수들은 영적 지식에 목말라하며 예루살렘으로 몰려와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할 것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임무는 주변 민족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전 세계적인 초청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스라엘의 선교 열정은 세속적 관심사로 인해 경로를 이탈했다. 거대한 이상은 현실안주에 파묻혔다. 그리스도의 초림이 그러한 이상을 되살렸지만 그것을 이해한 사람은 소수였다.
사 56:6~8, 미 4:1~2, 욘 3:7~10, 4: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보편적인 선교에 대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반면 이런 개념에 대한 이스라엘의 이해는 얼마나 제한적이었는가?
이스라엘은 열방의 빛이 되어야 했다. 만약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누리는 놀라운 특권을 보면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에 대하여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참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켰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너무 내부에만 초점을 맞춤으로 하나님이 그토록 자주 강조했던 더 큰 목적에 대한 관점을 상실하였다.
오늘날의 신자들도 비슷한 문제에 봉착한다.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자하는가? 아니면 더 큰 목적을 잊은 채 내적인 문제에만 집중하려 하는가? 생각보다 우리는 이러한 함정에 빠지기 쉽다.

교훈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에게 여호와 신앙을 소개하는 열방의 빛이 되기를 바라셨지만 그들은 내부에 집중하느라 더 중요한 목적을 상실하였다.

부가적용)
인간은 실존적인 존재이다. 그러기에 날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동물과 사람이 다른 점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인식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신앙을 소개하는 열방의 빛이 되기를 바라셨던 것처럼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나라를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왕국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할 제사장적 사명을 가진 자들이 바로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다. 온 세상의 창조주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리고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심의 재림을 알려야 할 열방의 빛이 되어야 한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합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외방 사업의 결과를 인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 감사와 찬양을 드리자. 결코 실수가 없으신 우리 대장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전진하라 새 지역을 개척하라. 모든 땅에서 깃발을 높이 들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있도다.’ 우리의 구호는 ‘전진’, ‘계속 전진’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우리 앞에서 길을 준비한다. ‘지경 너머의 지역’에 대한 우리의 부담은 온 세상이 여호와의 영광으로 환하여질 때까지 결코 가벼워질 수 없다”(교회증언 6권, 28~29).

|적용|
우리가 ‘내 신앙’, ‘내 교회’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세계 선교에 관심을 기울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영감의 교훈
모든 곳에 전파해야 함- “엄숙하고 신성한 경고의 기별은 가장 어려운 지방과, 가장 죄 많은 도성과, 이 큰 삼중 복음 기별의 빛이 아직도 비치지 아니한 모든 곳에 전파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의 마지막 초청을 들어야 한다. 각 동리와 도시와 나라에 현대 진리의 기별을 전파하되 외식으로 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할 것이다”(복음교역자, 27).

기 도
하나님, 우리를 만민을 위한 축복의 통로로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자신만의 구원에 골몰하지 않고 믿음을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둘째날(월) 3월3일
화가 있으리라!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눅 4:27).

교사강해 2)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 모세를 바로에게 보낸 표적으로 주셨던 세 가지 중요한 기적이 있다. 첫째는 지팡이가 뱀이 되고 뱀의 꼬리를 잡으면 지팡이가 되는 것이고 둘째는 가슴에 손을 품었다 내면 문둥병이 되고 다시 손을 품속에 집어넣으면 문둥병이 낳는 표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마저도 저들이 믿지 않으면 나일강물을 떠서 땅에 부으면 피가 되는 이적이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세 가지 이적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향하여 펼치실 구속의 사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축약된 표징이었다. 첫째는 세상의 사망의 권세를 가진 뱀(사단)을 쳐서 죽기를 무서워하는 이 백성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이고 둘째는 문둥병 곧 인간이 썩어져 없어질 죄의 문둥병과 같은 사망의 병에 걸린 인간을 회복시키는 일이었다. 그토록 많은 문둥병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이 죄로 인해 죽게 된 사망을 표상한다. 우리 모두 결국 우리의 피부가 썩어져 없어질 죄의 문둥병자들이다. 그리고 바로 이 구속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업의 표상을 나타내는 세 가지 표징이었다. 예수께서는 눅 4:27절의 나아만 만이 문둥병으로부터 나음을 받은 이 사실을 들어 자신이 바로 은혜의 해를 선포하고 자신이 바로 이 죄의 문둥병에서 사망을 폐하실 구주임을 선포하셨으나 믿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해 경고를 하셨다. 이로 인해 큰 화가 있을 일이다. 복음을 거절한 모든 자들에게 결국 둘째 사망의 화가 있을 것이란 말이다.

마 11:20~24, 눅 4:25~30, 17:11~19, 요 10:16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는 어떤 중요한 기별이 있는가? 우리는 여기에 기록된 말씀을 어떻게 오늘날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가 매우 유의해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수많은 특권을 가진 자신의 친 백성이 깨어나 그들을 한 민족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과 진정한 부르심을 깨닫기 바라셨다. 그분은 그들이 비록 선택받은 백성들일지라도 구원이 선천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바라셨다. 구원은 유전과 혈통에 의해 상속되지 않았다. 구원은 의식적인 선택이 있어야 받을 수 있었으며, 그러한 선택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사람도 할 수 있었다.

스포츠 코치들은 종종 경쟁 학교나 팀과 자기 선수들을 비교함으로 분발을 촉구한다. “그들처럼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연습하다면, 너희도 성공할 수 있다.” 코치의 동기는 선수들의 의지를 꺾으려는 것이 아니라 북돋고 열망을 불어넣으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일부 이방인들이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 백성들도 풍성한 구원을 나누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이미 널리 알려진 교훈이었고 유대인들도 이해하는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취지의 설교는 유대인들의 귀에 거슬렸고, 어떤 이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한 수많은 영적 특권을 누린다. 이런 특권을 가진 자들은 그들에게 부여된 특권이 전부 하나님의 선물이며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교훈
유대인들은 믿음을 선택한 이방인들도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닫고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빛을 전하는 일에 사용했어야 했다.

부가적용)
하나님께서 이방인인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치신 이 사건은 구원에 이방인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상한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가장 먼저 구원의 대상이 되었던 자는 라합과 그의 가정이었다. 저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 홍해를 가르시고 시혼과 옥을 죽이신 상천하지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한 기생 라합의 가정이었다. 성경에 나타난 구원의 소식 속에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앞으로 이 복음이 세계적 확산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방나라에 복음이 전하여지게 될 것을 나타내심으로 하나님의 계획은 성경 속에 널리 이방인의 구원의 계획이 나타나 있다. 예수께서도 종종 이방인들을 당신의 구원 속에 참여시킴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복음을 거절하면 바로 이방인들에게 이 복음이 전하여지게 될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방인들을 향하여 문을 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전하는 당신의 도구로 쓰여 졌다면 이 땅은 얼마나 효과적인 복음이 세상에 전하여 졌을까?

나의 삶 속으로
|묵상|
우리는 어떤 특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특권에 대한 책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 교회에 소중한 기별들을 이해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성소기별, 안식일 기별, 전인적인 인간론과 건강 기별뿐 아니라 대쟁투적 관점으로 보는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깨닫게 해 줄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진정한 구원의 기쁨과 행복, 건강을 누리게 해 줍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중심으로 하는 예언적 이해는 우리에게 참된 소망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특권이 우리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적용|
그대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특권을 어떻게 사용하기로 결심합니까?

영감의 교훈
이스라엘의 책임보다 더 큰 우리의 책임-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손에 복음의 보화를 두셨고 그들에게 구원의 기쁜 기별을 세상에 전할 책임을 지우셨다. 실로 우리의 책임은 고대 이스라엘의 책임보다 훨씬 크다”(사도행적, 337).

기 도
아버지, 우리를 특별한 백성으로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보배로운 기별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목마른 자들에게 전하기를 원하오니 우리를 진리의 등불로 삼아주시옵소서.

셋째날(화) 3월4일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요 12:20~21).

교사강해 3)
헬라인 몇이 빌립을 찾아와서 예수님을 뵈옵고자 요청한 것은 빌립이 헬라어를 구사할 수 있었거나, 이들이 빌립의 고향인 벳새다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빌립은 같은 헬라 이름을 가지고 있고 같은 벳새다 출신인 안드레에게 말하고 두 사람이 함께 예수님께 가서 헬라 사람들의 요청을 말씀드렸다. 어째서 빌립이 즉시 헬라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안내하지 않고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두 사람이 예수님께 가서 말씀드렸을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을 어떻게 대하실는지 몰라서 이들을 예수님께 데려가기를 망설였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 전도 여행을 위하여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6). 이방인인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 7:27).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 4:22)라고 말씀하셨다.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요청대로 그 딸을 낫게 해주셨다. 또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복음을 전하셨으며(요 4:3-25),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이틀을 유하셨다. 그 결과,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 4:39-42).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해야 할 자신의 의무를 아셨다.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성취되어야 할 것을 아셨다. 또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메시야를 배척한 뒤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서 많은 이방인들이 생명의 빛이신 그에게로 나아오게 될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영광의 지위에 오르셔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아셨다. 빌립과 안드레가 헬라인들이 주님을 뵙고자 한다는 말씀을 예수님께 드렸을 때에,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예수님의 대답은 “헬라인들을 만나지 않겠다”든지, “그들을 지금 만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33절) 라고 하신 것이다. 헬라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간절히 뵙기를 소원한 일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상황에서 되어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자신의 때가 이르렀으며, 머지않아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게 될 것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적 사건으로 이해하셨다

요 12:20~3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복음의 보편성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예루살렘은 소문이 무성한 곳이었다. 예수님의 승리의 입성이 있은 후였다. ‘호산나!’ 했던 외침은 어느새 의심으로 대체되었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 예수가 정말 왕관을 쓸까?’

유월절에 모인 군중 가운데는 그리스인 예배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빌립에게 한 말을 주목하라.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원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그분에 대해 알기 원했다. 이것은 예수님과 그분의 기별이 세계적이며 보편적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훌륭한 증거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정작 이와 같은 고백을 해야 했던 자들은 그분을 제거하기를 원했다.
그리스인들은 빌립의 그리스식 이름 때문에 그에게 접근했던 것으로 보인다. 빌립은 수산물 유통의 중심지요 다문화 사회였던 벳세다 출신으로서 그리스어를 구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이 즉시 그들을 접견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그분은 아마도 유대인을 위한 장소에서 예배하셨을 것이다.
그런 다음 바깥뜰에서 제자들과 그리스인 방문자들을 만나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남자나 여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만약 누구든지 그분을 따르기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 대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요 12:25을 보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교훈
유월절에 예수님을 찾아온 그리스인들의 방문은 주님의 복음이 세계적이며 그분의 죽음이 온 인류를 위한 희생이 될 것임을 암시하였다.

부가적용)
여기 예수님을 면담하러 온 이 헬라인들에게서 배우게 되는 매우 귀중한 교훈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명절예식 자체보다도 그 예식이 예표하는- 그 유월절 예식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께 그들이 관심을 기울였던 일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을 찾아와 말하기를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라고 했다. 이 몇 사람의 헬라인은 그 당시 예루살렘에 예배하려고 운집한 사람들의 수에 비해서 극소수 사람들에 불과했다. 이 헬라인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예루살렘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틀에 박힌, 생명 없는 종교의식을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이 헬라인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던 때에 예수님을 뵙고자 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더욱 진귀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들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긴 했지만 이방인이었다. 이것은 의식적이고 율법적인 유대교가 배척한 그리스도를 이방인들이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즉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배척한 그리스도를 세리와 창기들이 영접하는 모습이다(마21:31).

나의 삶 속으로
|묵상|
그대는 로마 제국 변방의 작은 식민지 유다에서 시작된 한 작은 무리의 신앙이 어떻게 오늘날 ‘나의 것’이 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이 외국인들은 아직 자리에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심판과 승리에 관한 긍정적인 기별이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예수님은 그 소리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과 그리스인의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자신의 죽음은 온 세상을 위한 것이라고 단언하셨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적용|
이 믿음과 기별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그대는 이 신앙을 누구에게 소개하기를 원합니까?

영감의 교훈
온 인류를 이끄는 십자가- “박사들이 그분의 생애의 초기에 동방에서 왔던 것처럼 이 사람들은 그 분의 생애의 말기에 구주를 찾아 서방에서 왔다. … 헬라인들은 온 세상 나라와 족속과 백성들을 대표하여 예수를 만나려고 왔다. 그와 같이 구주의 십자가는 모든 나라, 모든 시대의 사람들을 이끌 것이다”(시대의 소망, 621).

기 도
주께서 한 알의 밀이 되어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으신 것처럼 저도 그런 십자가의 정신과 헌신으로 많은 사람에게 주의 사랑과 천국 복음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넷째날(수) 3월5일
장벽을 허묾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요 7:35).

교사강해 4)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권위를 애초부터 인정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께서 때가 되면 저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먼 곳으로 떠나가실 것이라는 말씀에 비아냥대며 그분의 언급을 코웃음 쳤다. 예수님께서 구속의 지상과업을 마치시고 하나님께로 올라가시면 그들이 다시는 그분을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그들은 혹시 그분이 자기들의 손길을 피해 먼 외국 땅으로 가시려는가 추측하며, 당대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그리스라도 가셔서 그곳 사람들을 가르칠 것인가 라며 코웃음 쳤다. 예수님의 지상 사명 속에는 그리스를 포함한 전 세계가 포함되어 있었기에 그들은 생각 없이 부지중에 전세계를 망라하는 주님의 사명을 언급했던 것이다. 그런데 서글픈 현실은 예수님께 끌려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확신했던 많은 사람들이 제사장과 랍비들의 꾐에 빠져 곁길로 인도된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예루살렘에서 왕위에 오르시고, 당신의 권위와 영광을 사해에 떨치실 것이라는 영적인, 상징적 미래 사건을 현세에 적용해 우매한 민중을 혼란 속으로 빠뜨렸다. 그들은 저 보잘것없는 갈릴리 촌뜨기, 애송이 랍비는 절대 유대인의 왕으로, 메시아로 그들을 구원할 인물이 못 된다고 힘주어 말하며, 이사야 선지자가 언급한 고난 받는 메시아상은 쏙 빼고 민중을 기만했다.

요 7:35, 8:48, 눅 10:27~37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역와 인종과 기타 다른 장벽이 자리할 여지가 없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예수님에 대한 지도자들의 경멸의 정도는 끝이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앞장서서 그분과 그분의 기별을 받아들여야 할 자들이 그분을 가장 극렬하게 반대하는 자들이었다.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는 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일 때,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멸시하였다. 자신이 영적인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얼마나 강력하고 엄중한 교훈인가!
그리스도를 비난할 때에 그들은 그분에게 귀신 들린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그분을 조롱하면서 그리스 사람에게 자신의 민족과 종교 출신이 아닌 자들을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이 그리스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민족적 기원보다 품성을 강조하심으로써 이런 편견을 반박하셨다.
흥미롭게도 그분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효과적인 영적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 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실화를 드셨다. 말할 것도 없이 종교 지도자들은 부정과 정결에 대한 레위인 법의 왜곡된 이해에 막혀서 부상당한 사람을 지나쳤다. 무시당하는 외국인이었던 한 사마리안 사람은 민족적 편견을 억누르고 낯선 사람의 생명을 구하였다. 단지 우리 민족, 사회, 문화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내쫓고 멸시하는 모든 자에게 얼마나 따끔한 질책인가!

교훈
예수님은 유대인이 만든 민족적 장벽을 허물고 하나님의 복음이 유대인뿐 아니라 사마리아인과 헬라인 그리고 모든 인류에게 미쳐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부가적용)
바벨론포로이후 팔레스틴을 벗어나서 로마 이집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생겼다. 주전 586년 페르시야 왕 고레스의 귀국 령이 내린 후에도 계속하여서 바벨론에 머물러 사는 사람도 생겼고 알렉산드리아 지방의 헬라인들 속에 사는 유대인들의 수는 특별히 더 많았다.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흩어져있는 유대인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라는 뜻으로 위의 말씀을 이해를 하였던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그대는 인종적, 종교적 그리고 지역적 차별로부터 자유롭습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었다면 이 세상은 훨씬 끔찍한 인종 차별, 문화적 편견, 지역주의로 시달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곳에서 피부색과 언어, 문화, 종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민족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지역에 대한 불신이 깊습니다. 교회는 이런 오해와 편견을 제거하는 화해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 3:11).

|적용|
그대가 혹시 어떤 인종이나 지역에 대한 편견이 있다면 그런 편견을 어떻게 고치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편견의 벽을 허무시는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는 민족을 갈라놓는 편견과 분리의 장벽을 헐어 버리시고 모든 인간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신다. 그분은 사람들을 그들의 이기심이 정해 놓은 편협한 사회로부터 끌어 올리시고 모든 지역적 경계선을 철폐하시며 사회의 인위적인 차별을 폐지하신다. 그분은 이웃과 낯선 사람을 구별하지 않으시며 친구와 원수를 차별하지 않으신다”(시대의 소망, 823).

기 도
예수님, 자신의 부족을 모른채 다른 민족과 지역에 대한 편견을 가졌던 잘못된 제 사고방식을 주 앞에 내려 놓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종류의 편견을 제 생각과 말에 담지 않고 오직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사랑만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다섯째날(목) 3월6일
대사명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롬 15:12).

교사강해 5)
열방이란 무엇인가? 열방이란 모든 나라를 말한다. 주의 백성들이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말한다. 왜 열방들이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해야 하는가? 하나님 편에서 본다면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 외에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이방인이라고 할 수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만 만드셨다면 모를까 모든 나라의 백성이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들이니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편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백성이 없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는 백성과 그렇지 않은 백성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이요 엄밀한 의미에서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종교사에 보면 그 지역에 국한된 백성들이 많다. 한 나라와 한 종족에게만 신이요 다른 종족에게는 신이 아닌 사람들이 많다. 이것들은 강림한 신들이 아니라 만들어진 우상일 뿐이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전 우주를 통괄하시는 하나님이시오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하나님이 아니라 열방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같은 믿음에 근거하여 열방들이 주의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고 모든 백성들아 주를 찬양하라고 한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백성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사야 43 장 21 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함이라”고 하였다. 이 백성이란 이 땅에 있는 모든 백성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열방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 지으셨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지으셨다. 12 절에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그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새의 뿌리에서 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다시 오실 것이다. 다시 오셔서 열방 모든 나라를 다스리실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열방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두게 될 것이다. 반드시 예수님은 오신다. 오신다고 약속하셨으니 신실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이다. 천하만국과 열방은 즐거워하게 될 것이며 찬송하게 될 것이다.

롬 15:12, 행 1:7~8, 요 11:52~53, 마 28:19~20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의 핵심기별은 무엇인가? 그 기별은 계 14장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에 얼마나 잘 들어맞는가?

하나님의 마지막 사업은 영원한 복음 즉,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이 모든 민족과 나라와 지리적 경계를 넘어 전파될 때까지 완성되지 않는다. 정확한 때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성경은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이를 것이라고 분명하게 천명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기고 승리를 선포하실 것이다.
예언에 따르면 만민이 이 기별을 받아드릴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을 위해 누가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로 바칠 것인가? 누가 복음의 확장을 가로막는 인종적, 민족적, 언어적 장애를 무너뜨리는 데 그리스도와 협력할 것인가? 누가 자신의 소유와 재산을 바칠 것인가? 누가 하늘의 일을 이루기 위해 지상의 안락과 가족의 안위를 희생할 것인가? 이는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그들이 누구든 어디에 있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료 신자들이 전 세계로 흩어져서 그들의 삶을 바쳐 복음을 전파하고자 할 때에 활발한 활동을 단념시키는 인종적 고정관념과 문화적 편견 그리고 사탄이 만든 사회적 장벽들을 허용하는 신자들이 있다.
“우리의 선교 사업의 성공은 우리의 자아 부인과 자기 희생의 노력에 완전히 비례한다. 복음의 기별이 밝고 바르게 전파되어 사업이 성취된 정도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다”(교회증언 6권, 28).

교훈
우리에게 위탁된 세 천사의 기별은 영원한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모든 편견을 버리고 이 일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부가적용)
예수님의 자신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의혹이 증폭되었고 오해 위에 오해를 더하였다. 예수님이 당신이 가시는 곳에 오지도 못할 터이요 만나지도 못할 것이라고 하셨을 때에 이 말씀이 진리의 말씀임을 깨닫지를 못하였다. 땅의 언어로만 이해하였기에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하면서 의혹만 더 키웠던 것이다. 예수님은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 가서 헬라인을 가르치려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시다. 물론 이후로는 제자들을 통하여 헬라인에게도 구원을 베푸시지만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오신 분이시다. 예수님이 무엇을 위하여 오셨으며 어떻게 행하시다가 어디로 가시는지조차 유대인들이 깨닫지 못하였기에 기껏 생각한 것이 헬라인 운운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민족들에게서부터 먼저 무시를 당하셨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던 민족에게서 멸시를 당하셨다. 예수님이 만일 같은 민족에게서 무시와 멸시를 당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셨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행하실 수도 있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잘 알고 계셨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는 것도 잘 알고 계셨다.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어려운 진리의 말씀만 전할 것이 아니라 표적의 현상에만 집중케 하면 얼마든지 유대인들을 예수님 당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헬라인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이나 새로운 지식만 구하기에 해 아래 새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보이는 듯한 지식만 나열하여도 얼마든지 예수님 당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한 번도 그렇게 행하지 아니하셨던 분이시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그대는 세계 선교를 위해 어떻게 헌신하고 있습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새 지역을 개척하였고, 과감한 사업이 시작되었다. 진리의 씨앗은 뿌려졌고, 빛은 많은 이의 마음속에 전해졌으며, 하나님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어떻게 품성이 형성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더 바른 이해가 생기게 되었다. 수천 명이 예수 안에 있는 진리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 그들은 사랑으로 역사하며 영혼을 순결케 하는 믿음을 부여받았다”(교회증언 6권, 28).

|적용|
안식일학교 헌금을 포함하여 세계 선교에 기여하기 위한 그대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십시오.

영감의 교훈
그리스도 왕국의 대선교 헌장- “복음 전도 사명은 그리스도의 왕국의 대선교 헌장이다. 제자들은 영혼들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만민에게 은혜의 초청을 전해야 하였다. 그들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기별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나아가야 하였다”(사도행적, 28).

기 도
아버지, 우리를 제자로 삼으시고 영원한 복음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회개의 영이 임하여 잃어버린 자녀들의 마음이 아버지께 향하게 되며, 음부의 권세가 깨지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의 소식이 울려퍼지게 하옵소서.

여섯째날(금) 3월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도행적>, 25~34, “대사명”, 35~46 “오순절”, <시대의 소망>, 621~626 “바깥뜰에서”, 497~505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읽어 보라.
“어떤 사마리아인이 여행 도중에 고통당하는 자가 있는 그 곳에 이르렀다. 그를 보자 그는 동정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이 낯선 사람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문제시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누가 내 이웃이니이까”라는 질문은 영원한 답을 얻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이웃이 단순히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나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보이셨다. 그것은 인종이나 피부색이나 계급의 구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우리의 이웃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다. 대적에게 상처받아 죽게 된 영혼은 누구나 우리의 이웃이다. 하나님의 소유인 모든 사람은 다 우리의 이웃이다”(시대의 소망, 50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우리가 세계 선교를 위해 드리는 재정적 지원은 복음 전파 사명에 대한 우리의 헌신이 어느 정도임을 가리키고 있습니까? 우리가 단지 재정적인 지원에 그쳐서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현재 교회를 관리하기 위해 분배되는 자금을 다른 문화권의 선교 활동에 흘려보낼 수 있을까요?
➋ “우리는 복음 사업이 주로 목사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각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분의 왕국과 관련된 일을 하도록 주셨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각 사람은 진지하고 사심 없는 일꾼이 되어 의의 원칙을 수호하고자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각 영혼은 하나님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활발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리는 데 있어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는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교회증언 6권, 427). 교과반에서 이 권면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우리에게 맡겨진 사업을 마치기 위해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