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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과 하나님의 품성을 둘러 싼 우주적 투쟁(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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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3-12-13 11:16 조회3,9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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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과 하나님의 품성을 둘러싼 우주적 투쟁



기억절: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계16:7)




첫째 날(일) 하늘 성소에서의 반란


*도입질문: 사단이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와 하나님의 품성인 절대적 사랑이 이해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루스벨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사였고, 하나님의 보좌 곁에 있었던 덮는 그룹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하였던 “아침의 아들”이었었는데 그에게 이해되지 못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그가 알게 된 지식으로 판단한 하나님의 품성은 루스벨에게 이해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은 절대적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으로서 죄가 많은 곳에 은혜를 더 주고 싶어 하시는 품성이었습니다. 죄인에 대하여 벌을 주시거나 정죄하지 않고 오히려 죄인의 선택의 결과를 하나님 자신의 생명으로 해결하시고 용서하신다는 것에 대하여 루스벨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루스벨이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벧후2:4에서는 천사들이 범죄하였음을 기록하고 있고, 유6에서는 범죄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사들의 범죄의 내용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것이었습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했다는 것은 천사들의 지위는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로 인해 만들어진 위치였지만 루스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사실을 그는 자신도 잘 모르지만 스스로 존재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없었던 존재를 창조하심으로 존재가 시작된 것이므로, 존재하기 시작할 때는 없었던 때의 일을 전혀 알지 못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셔도 그 말에 대하여 그 자신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하나님을 믿지 못함으로 받아들이지 않든지의 선택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루스벨은 불행하게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도 잘 모르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스스로 존재하였었다고 막연히 생각하였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지 않았는데도 존재하고 있다면 스스로의 생명으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생명에 관한 한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도,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의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기 처소를 떠”(유6)나는 선택을 할 수 있었고, 여자에게도 하나님을 떠나는 선택인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를 선택한다 할지라도 절대로 죽을 수 없다(창3:4)고 말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 창조주의 품성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창조주의 품성은 창조한 존재들에게 조건이 없는 사랑과 생명을 주셔야만 창조된 존재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의 품성은 무조건적인 절대적 사랑의 품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피조된 존재들은 창조주의 사랑과 생명을 받아야만 존재하기 때문에 사랑과 생명을 받는 조건이 성립되어야만 살기에 조건적인 사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조된 존재의 입장에서 조건적인 사랑이 합리적인 사랑입니다. 조건에 맞는 사랑을 할 때만 그 사랑이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죄가 많은 곳에 은혜를 더 주시고, 더 사랑을 주시는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이며 위험한 사랑일 뿐입니다.
“루스벨은 하나님의 능력을 원했지만 품성은 원하지 않았다.”(시대의 소망, 435)




둘째 날(월) 고소


*도입질문: 사단이 하늘에서 내려온 후에도 지속되는 공격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루스벨에서 사단이 된 이유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 온 이후에도 이 문제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사단의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는 피조된 입장에서 합리적인 조건적 사랑으로 창조주의 품성인 무조건적인 사랑을 판단함으로 인한 오해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들은 생각이 완전히 다릅니다. (사55:8)
생각이 다른 이유는 품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하신 존재들에게 사랑과 생명을 주셔야만 그들이 존재함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시는 분이시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받아야만 살 수 있으므로 조건적인 사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건적인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사단의 입장에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인이 자신의 선택한 결과를 책임져야만 공의인데, 죄인은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전혀 갚지도 않았고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 자신의 생명으로 대속하시고 용서 하시고 구원하시는 것(롬5:8)이 하나님의 공의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합니다.




셋째 날(화)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옹호


*도입질문: 십자가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생명적 교훈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십자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모순입니다.
피조된 모든 존재들의 생각에는 십자가에 달린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피조된 존재들의 품성인 상대적, 조건적인 사랑에는 맞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는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달리지 않고, 생명이신 아버지(사9:6)께서 아들을 대신하여 달리셨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의지의 자유를 주신 아버지께서 아들의 선택에 대한 모든 결과를 대신 자신의 생명으로 십자가에서 처리하시는 것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시는 하나님의 품성 속에서는 합당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무한하신 절대적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창조주의 절대적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모습입니다.
대속하시는 사랑, 책임지시는 사랑, 의지의 자유를 인정하시는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이런 사랑을 하시는 분은 나의 창조주, 나의 아버지일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절대적 사랑의 모습입니다.




넷째 날(수) 심판에서 이루어질 옹호


*도입질문: 심판에서 하나님의 품성이 어떻게 드러나게 될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의 품성인 절대적 사랑이 무엇인지가 고전13장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의 기초는 사람에게 주시는 의지의 자유에 있습니다.
의지의 자유로 마음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 그것이 바로 생명에너지가 됨으로 하나님은 모든 피조된 자들에게 의지의 자유를 주십니다.
의지의 자유를 주시기 때문에 어떠한 선택을 한다 할지라도 성내지 아니고, 온유하며,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의지의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만인구원론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선택이 생명적인 것이 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시지만 최종적인 선택은 사람의 영역에 두시고, 그 선택이 혹 하나님을 떠나는 선택이어서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로 인해 하나님이 평생 고통 속에 힘들어 하신다 할지라도 그 선택을 인정하시기에 만인구원론은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지를 발견하여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대속하시는 예수님의 절대적 사랑의 모습으로 인해 모든 피조된 존재들이 감동하여 예수님의 이름(품성)에 찬양함으로 반응하게 됩니다.(빌2:9-11)




다섯째 날(목) 우주적인 구경거리


*도입질문: 우주에 지구인과 같은 지적존재들이 있을까요? 그들에게 지구인들의 삶이 왜 구경거리일 만큼 중요할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욥1:6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모인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에는 천사는 포함되지 않고(히1:5), 지구의 아담처럼 지구와 같은 곳의 첫 번째 사람을 가리키고 그 모임을 장자들의 총회(12:23)라고 합니다.

우주의 여러 곳에 지구와 같은 곳에 거하는 우주거민들에게 지구인의 삶이 주목거리가 되는 이유는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품성은 흥미로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지만, 없었던 존재들을 있게 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고 하나님의 절대적 품성도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대 담론의 주제인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의 거민들에게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은 사단의 거짓말에 귀기우리는 존재는 없게 되었습니다.(요12:32)
이제는 지구인이 선과 악의 거대한 담론(대논쟁)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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