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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과 속제 : 정결제(강해식 과정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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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3-10-28 04:45 조회4,1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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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속제 : 정결제

11월 2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33분

기억절 :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연구 범위 : 대하 33:12~13, 삼하 14:1~11, 레 4:27~31, 렘 17:1, 레 10:16~18, 미 7:18~20.

도입)
하나님 앞에 죄사함이란 아담에게서 온 우리의 원죄와 과거에 지은 우리 개인의 자범죄에 대해 하나님께 완전히 용서받는 것을 말한다. 원죄라 함은 율법에서 말한 죄를 짓지 아니한 자도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이르게 된 죽음의 결과를 받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는 육신의 법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댓가 없이 죄의 용서가 안 되어 성막에서 자신의 죄를 '흠 없는'(무죄한) 염소나 양에게 안수해 전한 다음, 제사장이 암염소나 어린 양을 잡아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단 밑에 쏟은 다음 나머지를 번제단에 불사르는 속죄제를 통해 죄를 용서 받았다.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 17:11)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은 반드시 죽일지니라."(레위기 24:17) 구약시대의 육체의 법은 죄를 지으면 용서가 없고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하는데 생명을 상징하는 피를 흘림으로 '죄를 용서'(속죄)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속죄제는 율법 중 금령(불결한 짐승이나 시체를 만졌거나 입술로 악을 행하는 등)에 해당하는 것을 범했을 때 가능하지 살인을 하거나 상해를 끼치거나 도적질을 하는 등 중죄는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하였다.

제사 제도는 성소 봉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부분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희생을 직접적으로 가리키기 때문이다. 죄인을 위해 죽은 동물의 피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하나님은 ‘속죄제’를 제정하셔서 유일한 참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떻게 자신과 우리가 화해할 수 있는지 이해시키셨다. 그래서 이번 주 우리는 ‘속죄제’의 몇 가지 개념을 살펴보려고 한다. 간혹 이번 교과는 출산과 같이 ‘속죄제’를 필요로 하는 행위가 마치 도덕적인 과오라는 인상을 피하기 위해 그 말 대신 ‘정결제(purification offering)’라는 말을 사용하려고 한다(레 12:5~8). 여성의 의식적 부정을 위한 제사는 죄로 인한 제사가 아니기 때문에 정결제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안교 활동반과 교과 토의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속죄제(또는 정결제)의 표상학을 이해한다.
➋ 느끼기 : 속죄제에서 예표된 예수님의 사역을 인식한다.
➌ 행하기 : 속죄제가 예표했던 용서를 체험한다.

Part 1. 인사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 리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해 줍니다.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헌금을 걷습니다.
결석자와 구도자에 대한 보고를 듣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Part 2. 나눔 안교 교사 또는 소그룹 리더(A나 B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A. ❶ 그대는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습니까?
❷ 성경에서 속죄제(정결제)는 죄를 옮기는 과정을 어떠한 행위들로 표현했습니까?
❸ 우리의 죄가 하늘 성소를 오염시킨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깨닫게 됩니까?
❹ 그대는 용서받은 자녀로서 어떤 마음으로 살겠다고 결심하겠습니까?

B. ❶ 여러분은 ‘부모 망신은 자식이 시킨다.’는 말에 얼마나 동감하십니까?
❷ 왜 하나님은 성소가 죄로 오염되는 것을 허용하셨을까요?
❸ 우리의 죄를 속죄하고 용서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떤 품성을 보게 됩니까?
❹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속죄제(정결제)의 교훈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결론 :  속죄제는 제물과 그리스도의 제사장 봉사를 통하여 회개한 죄인이 용서받는 과정을 예시합니다. 그것은 또한 하늘 성소가 용서된 죄의 기록으로 오염되는 과정을 미리 보여줍니다.

Part 3. 실천 안교 반장 또는 소그룹(예비) 리더
❶ 분반한 상태에서 서로의 느낌을 나눕니다.
❷ 봉사한 교사(리더)와 반장(예비 리더)을 격려합니다.
❸ 우리 소그룹 또는 안교반의 번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첫째 날(일) 죄와 자비
10월 27일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레 4:13~14).

교사강해 1)
“죄를 짓는 자마다 또한 율법도 범하는 것이니, 죄는 곧 율법(law)을 범하는 것이라.”(요일 3:4) 인간 사회에서 죄는 국가에서 정한 법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는 그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법(law)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피조물인 인간이 보기에 좋은 것 같아도 창조주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라면 죄인 것이다. 죄의 기준은 법을 정한 하나님에게 있지, 법의 대상인 인간에게 있지 않다. 예를 들어 강아지가 아무데나 실례를 하면 강아지를 돌보는 주인은 강아지를 때려서라도 버릇을 고치려 할 것이다. 강아지는 처음에는 영문도 모르고 맞다가 나중에서야 자신이 잘못한 것을 깨닫는다. 인간과 강아지 사이에 죄의 기준은 인간에게 있었듯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다. 간음이나 동성연애가 인간이 보기에 죄가 아닌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죄가 되는 것이다. 죄에는 원죄와 자범죄가 있다. 원죄는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로 유전돼 현재까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며, 자범죄는 스스로 지은 죄이다. 아담의 원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끊어져 내 영이 살았으나 죽은 듯한 처지가 되었고, 육신이 영 대신 왕노릇 하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 죄의 원인이 되는 악한 마음이 육신과 사탄으로부터 들어오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로마서 5:12). “보소서, 내가 죄악 중에서 조성되었고 죄 중에서 내 어머니가 나를 임신하였나이다”(시편 51:5). 아담 한 사람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죄를 지었고, 그의 모든 육적인 후손들이 죄를 물려받아 사망에 이르렀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육신이 죄악 중에서 조성되었고, 그의 모친이 죄 중에서 자신을 임신하였다고 했다. 사망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인데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단절되는 영의 죽음이고, 둘째는 육신의 죽음이며, 셋째는 마지막 심판 때 영과 혼과 몸이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되는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것이다.

주를 아는 사람이라면 죄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킨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로 인한 관계의 단절을 치유하고 우리를 그분께로 돌이키기 위한 제도를 두셨다. 물론 이런 제도의 중심에 바로 성소가 있다.
구약 성경에서 설명하는 죄는 기본적으로 세 종류이다. 죄는 범죄하는 순간 죄인이 그 사실을 얼마나 인지하느냐에 따라 각각 부주의하고 무의식적인 죄, 고의적이고 의식적인 죄 그리고 반역적인 죄로 나눠진다. 레 4:1~5:13에서 설명하는 ‘정결제(속죄제)’는 무의식적인 죄와 몇 가지 고의적인 죄에 적용되었다(레 5:1). 앞의 두 범주에는 제사가 가능했지만, 가장 극악한 죄의 종류였던 반역적인 죄를 위해서는 어떤 제사도 언급되지 않았다. 반역적인 죄는 교만하게 하나님의 면전에서 범한 죄이기 때문에 반역자들은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형벌을 받아 마땅하였다(민 15:19~31). 그러나 므낫세 왕의 경우는 하나님이 용서를 베푸셨던 것으로 보인다(대하 33:12~13).
신 25:1~2과 삼하 14:1~11을 읽어 보라. 삼하 14:9은 자비와 공의와 죄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드러내는가?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는 것이 정당한가? 어쨌든 불의한 죄인은 정죄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신 25:1 참고)
드고아 여인의 이야기가 이런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다. 요압의 지시를 받고 과부처럼 가장한 여인은 다윗을 찾아가 재판을 요청한다. 요압은 그녀가 다윗에게 가서 형제를 죽인 아들에 대하여 말하도록 획책했다. 이스라엘 법은 살인자에게 죽음을 요구한다(민 35:31). 그가 가족의 유일한 남성일지라도 마찬가지이다.

부가적용)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7-28)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우리가 있는 그대로 다가오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죄와 허물로 치러야 할 죄값을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지심으로 우리의 죄가 소멸되도록 자비를 베푸셨다. 이 우주에서 먹고 살기 위하여 진 돈의 빚은 소멸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값은 사라지지 아니한다. 그러하기에 이를 풀어 사라지게 하는 길은 우리가 둘째 사망 곧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 형벌을 치르든지 아니면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속죄함을 입는 것이다. 이 진실의 법을 벗어난 우주의 법은 없다.

교훈 : 하나님은 무의식적이거나 고의적인 죄에 대하여 정결 과정을 허락하셨다. 그런데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기 위해서는 책임을 지셔야 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하나님은 그대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대신 어떤 책임을 지십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그러나 여인은 재판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다윗에게 죄가 있는 아들을 면죄시켜주도록 간청하였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죄는 나와 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릴 것이니 왕과 왕위는 허물이 없으리이다”(삼하 14:9)라고 선언하였다. 다윗과 여인 모두 그 살인자를 면죄하면 왕이 살인자의 책임을 져야 하고 그의 통치와 명성이 위협을 받게 될 것을 알았다. 재판장은 판결의 도덕적 책임을 져야 했다. 그래서 여인은 그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라고 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들의 책임을 짊어지신다. 우리를 용서하려면, 하나님은 친히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당하셔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 했던 법적인 이유이다.

| 적용 |
죄를 용서하고 책임지시는 예수님에게서 그대가 본받기를 원하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그분이 형벌을 당하신 이유 - “그분은 범해진 율법의 모든 형벌을 온 세상을 위해 당하셨다. 이것을 그분은 행하셨는데, 인간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범죄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충성 가운데로 돌아와 자기 눈동자처럼 하나님의 계명과 그분의 율법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134).

기도
아버지는 그냥 용서한다고 선언만 하신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책임까지 지심으로 진정한 용서와 진실한 사랑까지 제게 주셨습니다. 이런 은혜를 누리는 죄인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옵소서. 순종하며 따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둘째 날(월) 손을 얹음
10월 28일

“만일 평민의 한 사람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는데 그가 범한 죄를 누가 그에게 깨우쳐 주면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제물을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제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화목 제물의 기름을 떼어낸 것같이 떼어내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레 4:27~31).

교사강해 2)
성경에 보면 안수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기록되어 있다. 첫째는 복을 나누어 주거나 빌기 위해(창 48:13, 14, 17-19; 히 6:1-2)서 였다. 둘째는, 자기의 죄를 희생 제물에게 전가하기 위해-구약의 제사(출 29:15, 19; 레위기의 제사 참조)에 나타난다. 희생 제물로 바쳐질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오실 죄를 지려오실 메시아를 상징하여 제물을 설정하고 사람과 제물을 동일시하여, 그 제물에게 사람의 죄를 전가시킨다는 의미를 지닌다(레1:4;4:4;8:15;민 8:10,12) 대속의 죽음 사상은 구약 출애굽기에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이집트에서 나오기 전날 밤 유월절을 지키도록 명하신다. 하나님은 어린 양의 피를 유대인이 거주하는 집의 문설주에 바르는 의식(儀式)을 지키도록 하셨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 이 어린 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린 이스라엘의 집에는 장자(長子)를 죽이는 죽음의 사자(使者)가 들어가지 않고 지나갔다. 그러나 문설주에 피가 뿌려지지 않은 이집트의 장자들은 바로 왕의 장자로부터 모든 평민들의 장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이 문설주에 뿌려진 죽음을 피하는 어린양의 피는 다가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상징한다. 레위기에서 모세는 짐승의 피를 뿌려서 죄를 속함받는 속죄의 이치(理致)를 알려주고 있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 24:8).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피는 육체의 생명을 구성하는 것이므로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은 죄를 범한 자의 생명을 대신하여 제물이 되는 것을 상징한다. 이 제단에 제물로 드려진 희생제물로 인하여 제사자의 죄가 속함을 받는다. 이 피를 뿌리는 구약의 희생제사는 앞으로 다가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는 대속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레 4:27~31을 읽어 보라. 제사와 더불어 어떤 의식적인 절차가 행하여졌는가?
제사의 목적은 죄인으로부터 죄와 책임을 제거하고, 그것을 성소로 옮겨서, 죄인으로 하여금 용서받고 정결해진 상태로 가게 하는 것이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는 죄인이 정결제를 위해 일정량의 고운 밀가루를 가지고 올 수 있다. 이런 제사의 경우에 피가 없다. 그러나 누구든지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히 9:22)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제사는 안수, 제물의 죽음, 피 흘림, 기름을 태움, 제물의 고기를 먹는 일을 포함한다. 제물을 가져온 죄인일지라도 오직 피의 제사 후에 용서를 받았다.
안수는 제사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과정이다(레 1:4, 4:4, 16:21).
제물이 죽으면, 흘린 피는 제단에서 속죄를 위해 사용한다(레 4:25, 17:11). 안수를 통해 죄가 제물에게로 옮겨졌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의 죽음이 대속적인 희생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죄인을 대신하여 동물이 죽은 것이다. 이는 왜 제사장이 아니라 죄인 또는 과실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 직접 제물을 죽여야 했는지 이유를 밝혀 준다.

부가적용)
구약 시대에는 죄를 속하는 제사를 드렸다. 이 속죄의 제사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비교하고 있는 중요한 신학을 히브리서는 다루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론의 계열이 아닌 아브라함 당시에 멜기세덱이라는 왕이며 제사장이었던 인물과 비교될 정도로 우월하신 분임을 말씀하고 있다. 멜기세덱은 아론의 후손도 아니고 아론 계열도 아닌 독특한 제사장이다. 멜기세덱은 살렘(평화)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7:1). 그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생명의 끝도 없어서 하나님의 아들과 닮은 제사장이었다(7:3). 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그분의 제사는 자신의 피를 가지고 드리는 제사였다. 지상의 지성소가 아닌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 영원한 속제의 제사를 드렸다. 그것도 단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효력을 가지는 것이다. 즉 구약의 제사들의 완성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사였던 것이다. 이는 어떤 제사장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며 죄가 없는 유일하신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제사인 것이다. 히 7:27절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 외에 인간의 속죄에 유효한 방법은 없다.

교훈 : 죄인은 제물에 손을 얹고 죄를 고백하여 죄를 제물에게로 옮긴 뒤에 제물을 직접 죽여서 피를 흘리고 그 피로 속죄를 받아야 했다.

| 묵상 |
그대는 속죄를 위하여 누구의 머리에 안수하였습니까?
다음에 죄의 유혹이 찾아오거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마음에 그리고 그분의 머리에 그대의 손을 얹고 죄를 고백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어떤 대가가 치러졌는지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거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적용 |
구약 시대에는 죄인이 제물을 죽임으로 죄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그 심각성을 잊지 말아야 할까요?

영감의 교훈
우리의 유일한 희망 -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파괴한 죄인들이다. 구원에 대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 그분 앞에 모든 죄를 내어놓고 죄의 형벌을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의 몸에 모두 전가시키는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셨다”(하늘, 64).

기도
구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 저였습니다. 제가 그분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분을 찔렀습니다. 죄를 작게 여기고 쉽게 허용했던 잘못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셋째 날(화) 10월 29일
죄의 이동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거늘”(렘 17:1).

교사강해 3)
단번 속죄란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 한 번의 죽음으로 나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 값이 이미 100% 지불되었음을 믿는 교리이다. 누구든지 이 진리를 깨달으면 죄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체험하는 구원을 받게 된다. 100% 죄 씻음을 체험하려면 십자가의 모형인 율법의 제사를 먼저 알아야 한다. 율법은 죄를 먼저 짓고 후에 대속제물을 준비하였으나, 복음은 대속제물을 먼저 준비하고 후에 우리가 죄를 지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셨음이니라”(요일4:10) 죄에 대한 대속제물이 예수님 밖에 없음이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공로, 선행, 교회에 대한 헌신 등을 인정받아 천국에 들어가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곧 대속제물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죄는 이미 2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해결되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자는 오늘 나의 공로를 의지한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제물을 죽인 후에는 피를 처리하는 과정이 남는다. 제사장은 희생의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른다. 피가 포함되어 있는 이 행위는 속죄와 관련되어 있다(레 17:11). 죄인이 평민이나 지도자였다면 피는 번제단으로 옮겨졌다(레 4:25, 30). 죄인이 대제사장이거나 회중 전체였다면 피는 성소 내부의 분향단으로 옮겨졌다(레 4:7, 18).
피를 제단 뿔에 바르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뿔은 제단의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구원의 수직적 차원을 나타냈을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피는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옮겨졌다.
피를 바른 뿔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려면 렘 17:1을 잘 봐야 한다. 여기서 유다의 죄는 “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다. 비록 본문은 우상 숭배와 관련된 제단을 언급하고 있지만 원칙은 동일하다. 제단은 백성들의 도덕적 상태를 반영한다. 피는 죄의 책임을 옮긴다. 제단의 뿔에 바른 피는 죄를 죄인으로부터 성소로 옮긴다. 이 중요한 진리는 우리가 구원의 계획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상 성소에 계시되었으며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한다.
피가 죄를 옮기기 때문에 성소는 더럽혀진다. 예를 들어 정결제(속죄제)의 피가 우연히 옷에 묻었을 때에 그 옷을 빨되 아무데서가 아닌 오직 “거룩한 곳”(레 6:27)에서만 빨아야 한다. 그리고 제단에서 기름을 태우는 과정은 정결제(속죄제)와 관련된 모든 것이 여호와께 속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레 3:16). 이런 제사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했다. 우리의 죄는 우리에게서 떠나 그분에게 그리고 하늘 성소로 옮겨졌다. 이것이 구원의 계획의 핵심 개념이다.

부가적용)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을 위반하여 죄를 범하면 계약대로 죽어야 하나 그 책임을 지는 죽음에서 살아나는 방법을 제시하신 것이 짐승을 잡아서 희생의 제물을 바치는 방법이었다. 백성이 계약을 위반하여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알려준 방법대로 제물을 바치므로 그 죄를 사함 받았다. 그 계약의 죄를 안 지은 것처럼 인정해 주시므로 그들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구약에서 이들의 죄는 참 죄가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고 알지 못하는 시대에 율법의 행위에 의한 죄였다. 이들의 행위의 죄는 참 죄, 본래부터 죽을 수 없는 인간이 죽어야하는 원인의 죄가 있음을 알려주시고 그 죄에서 사함 받아 죽음에서 해방되어 원래의 자리를 회복하는 길을 나타내기 위한 상징이며 그림자이다. 예수가 사해주는 죄는 본래부터 있는 죄, 영원히 살아야 하는 존재가 영원히 살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죄이다. 이 죄에서 사함을 받는다고 하면 영원히 사는 자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 죄를 사함받는다고 하면 이제 안 죽어도 된다는 말이다. 본래부터 있는 죄사함은 영원한 생명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예수는 영원히 살지 못하는 인류에게 영원히 사는 생명을 주시러 왔지 영원한 생명과 상관없는 이 땅의 일상의 삶의 축복을 주시러 온 것이 아니다. 그대가 받아야 할 죄사함은 자신이 영생하지 못하는 죽음의 존재인 것을 알고 영생을 구하면 성령을 주셔서 죄로 인한 죽음의 두려움 의식을 제하시고 부활 영생이 믿어지는 믿음의 새 영, 새 마음, 새 의식을 주시며 그 의식, 믿음 안에는 영생을 바라는 소망이 있으며 이 소망이 그대로 이 세상을 이기게 하며 주의 재림의 영광에 참여하게 할 것이다.

교훈 : 제물의 피를 제단의 뿔이나 분향단에 바르는 행위는 우리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와 하늘 성소로 옮기는 과정을 상징하였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죄로부터 해방되었습니까?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제물을 죽여 바친 사람은 용서를 받고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죄의 문제는 그를 떠나 제물의 피를 받은 성소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성소를 위한 정결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용서를 받고 죄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가 하늘 성소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하늘 성소를 위한 정결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 적용 |
하늘 성소의 정결은 그대의 구원에 어떤 확신을 더합니까?

영감의 교훈
죄가 성소로 옮겨지는 방편 - “일 년 동안 드려지는 속죄제를 통해 죄인을 대신하여 대치물이 가납되어졌지만 그 희생 제물의 피가 죄를 완전히 속죄하지 못했다. 그것은 다만 죄가 성소로 옮겨지는 방편을 제공한 것뿐이었다. 피를 드리는 제사로 죄인은 율법의 권위를 인정하고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는 동시에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로 되어 있던 그분께 대한 믿음을 표명하였다”(부조와 선지자, 355~356).

기도
주님, 저의 모든 죄의 짐을 가져가시고 저를 구원하시며 자유롭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의롭게 여기실 뿐 아니라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도 의롭게 여김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넷째 날(수) 죄를 담당함
10월 30일

“이 속죄 제물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냐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레 10:17).

교사강해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에서는 속죄 제물을 바친 제사장이 그 제물의 일부를 만남의 천막 뜰에서 먹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 제물을 바친 사람들의 죄에 대해 대답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희생으로 바쳐진 제물의 피 얼마를 신성한 곳의 첫 번째 칸인 성소로 가져갈 경우에는 그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되고 태워야 했다.—레위 6:24-26, 30. 제사의 제물들은 안수하고 드려진 제물들이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제물들을 먹는 것은 사실은 제물 드린 자의 주검(시체)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 된다. 제사장 자신들이 드린 것은 자기들의 주검을, 백성들이 드린 것이면 백성들의 주검을 먹는 셈이다. 안수란 드리는 자와 제물이 같다(일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비록 백성들이 드리는 제물이라고 할지라도 그 제물은 제사장들과 무관하지 않다. 이스라엘이란 제사장 나라이기 때문에 온 백성들이 다 제사장이고 이들 중에서 대표로 봉사하도록 위임을 받은 사람들이 제사장들이기 때문에 하여튼 제사장들이 먹는 음식은 제사장들의 시체 곧 자기들의 시체(주검)를 먹는 셈이 된다. 그러니 제사장 가족이란 자기들의 주검 곧 이스라엘의 주검을 음식으로 먹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죽은 제물을 먹는 것은 우리가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닫기 위함이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이 죽은 제물을 먹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 제사장들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임을 알아야 한다. 십자가에 그리스도를 못박아 죽인 자들이 바로 이 제사장들이었다. 저들은 자신들이 죽인 그 죽음의 결과물인 주검을 먹고 살아야 했다.

레 6:25~26과 10:16~18을 읽어 보라. 여기에 어떤 중요한 진리가 있는가?
거룩한 곳에서 제물을 먹음으로써 집전 제사장은 범죄자의 죄를 담당한다. 제물의 고기는 제사장 봉사의 대가라기보다는 속죄의 핵심적인 과정이었다. (그것이 대가라면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여 모세가 아론의 아들들에게 그토록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물을 먹는 행위가 어떻게 속죄의 과정에 기여하는가? 제물의 고기는 오직 피가 성소에 들어가지 않은 경우에만 먹도록 요구되었다. 즉 지도자와 평민의 정결제인 경우이다. 성경은 제사장들이 희생의 고기를 먹음으로써 죄를 담당하고 죄인을 위해 속죄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죄인의 죄를 담당한다는 말은 죄인이 이제 자유롭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히브리어로 보면 출 34:7에서 하나님은 “악을 가져가신다.” 이 두 마디는 죄를 옮기는 제사장의 행위가 죄인에게 용서를 가져오는 것으로 묘사된 레 10:17에도 똑같이 사용되었다. 만약 죄의 이동이 없다면 죄인은 자신의 죄를 담당하고(레 5:1) 결국 죽어야 한다(롬 6:23).
다른 사람의 죄를 담당하는 제사장의 사역은 정확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상 성소에서 이루어진 제사장의 사역이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을 표상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죄책을 짊어지시기 때문이다.

부가적용)
이스라엘이란 죽은 자들이다. 언제 죽었는가? 애굽을 나올 때 홍해에서 이미 죽은 자들이다. 양을 잡고 염소를 잡고 짐승을 잡는 것은 자신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죄로 죽은 자들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죽을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더 이상 인간이 죽어야 할 그 책임과 죄값은 드리지 않아도 될 것은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8)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고 말씀하시는데 이 거룩함이란 죽지 않을 생명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죽은 것은 거룩하다 할 수 없다. 물론 하나님 앞에 드린 성물들은 거룩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죽은 것은 거룩한 것이 아니다. 거룩함을 얻었다는 것은 썩지 않고 죽지 아니할 몸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된 것이다. 이는 나를 대신해 죽은 제물이 하나님과의 약속의 위반을 대신한 속죄물이 되었듯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제물이 되셔서 우리로 죄없는 자가 되게 하셨고, 우리로 새생명을 얻게 하셔서 거룩하게 만드셔서 거룩함을 얻게 하신 것이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1:10)

교훈 : 제사장들이 희생의 고기를 먹어야 했던 이유는 죄인의 죄를 담당하고 우리를 용서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표상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의 죄도 정말 옮겨질 수 있는 것입니까?
세상 법에는 한 사람의 죄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진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죄나 의는 전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제사장일지라도 같은 인간은 동료 인간의 죄를 담당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사람보다 못한 가축에게로 죄를 옮긴다는 개념은 더욱더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가축과 제사장이 상징하는 대상이 인간보다 훌륭한 존재일 뿐 아니라 우주의 창조주라면 이야기는 아주 달라집니다.

| 적용 |
그대의 죄를 담당하신 분께 그대는 어떻게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영감의 교훈
주께서 담당하신다는 믿음 - “축복은 용서로 말미암아 오는 것, 용서는 자복하고 회개한 죄는 주께서 담당하신다는 믿음에서 오는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의 모든 축복은 그리스도에게서 온다. 그는 크신 중재인으로서 그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는 참으로 우리의 믿음의 주요, 창조자시요, 동시에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다”(화잇 주석, 시 32:1~2).

기도
주께서 저를 구원하기 위해 생명을 주셨으니, 이제 제가 생명을 바칠 차례입니다. 비록 창조주께서 희생한 생명과 비교할 수 없지만, 받으시고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한 작은 도구로 삼아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다섯째 날(목) 용서
10월 31일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미 7:18~20).

교사강해 5)
지구상에 가장 깊은 바다는 인도네시아 근처 마리아나 해구로 11304미터나 된다. 히말라야를 두 개 쌓아야 하는 깊이이다. 울릉도 앞 바다에 러시아 보물선 돈스꼬이호가 해저 500미터에 있는데 많은 보물이 있지만 너무 깊어 건질수가 없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시는 건질 수 없는 깊은 바다에 던지신다고 말씀하셨다. 신약에서 그 이유를 로마서 4:25에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라고 하였다.

미 7:18~20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가?
미가서의 마지막 세 절은 하나님과 남은 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왜 비할 데 없는 분인지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용서하시는 그분의 사랑과 은혜 때문이다. 미가서에서 드러난 것처럼 용서의 자발성은 하나님의 현저한 속성이다. 미가는 하나님의 속성(18절)과 업적들(19~20절)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이 점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속성과 업적들은 출 34:6~7에 이스라엘의 신조로서 설명되어 있다. 이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가장 사랑받는 성경적 묘사이다.
흥미롭게도 미 7:18~20에 사용된 몇 주요 단어들은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종의 노래에서도 사용되었다. 이는 용서의 수단이 백성을 위해 고통당하시는 분에게서 유래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불행히도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값싼 것도 자동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충성과 관계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은 미가서의 핵심 성경절인 미 6:8에서 본 것과 같은 인자함에 반응한다. 하나님이 “인애를 기뻐하시”(미 7:18)는 것처럼 그분은 남은 자들에게도 “인자를 사랑하”(미 6:8)도록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품성을 모방하며, 그들의 삶은 그분의 사랑과 자비와 친절을 반사할 것이다.

부가적용)
미가는 인간들의 죄로 말미암은 이 땅에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 미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은 죄악들을 자신이 지은 죄악으로 간주하며 기쁜 소식을 전한다. 그 소식은 비록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의 죄에 대하여 징계하시지만 그 징계를 통하여 주의 백성들이 바라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의”라는 것이다. 이 징계가 없으면 “하나님의 빛”으로 인도함 받을 수 없었을 것이지만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회초리로 인하여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으며 나아가 복음의 “그리스도 예수의 의”를 보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그때가 되면 복음 안에서 회복되는 우리들로 인하여 주님을 비웃던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18절의 “죄악의 사유하심”이다.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우리 주님 외에는 없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18절) 주님은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을 용납하시고 허물을 묻지 않으시고 그들을 향하여 노를 품지 않으신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19절).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께서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심이요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기 위함이다. 야곱은 믿는 자를 대표함이며 아브라함도 믿음의 자녀들을 대표한다. 또한 야곱과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맹세는 아브라함의 씨를 통한 죄사함과 영생, 그리고 천국의 기업을 주시기 위함이다. 결론적으로 오늘도 미가 선지자는 주께서 세우실 영원한 지도자 메시야를 통한 하나님의 죄사함과 긍휼과 자비를 외치면서 모든 환경에 상관없이 복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힘을 얻고 있다. 아무리 심하게 무너진 상태라 할지라도, 원수들에게 한없는 조롱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다시 주께서 맹세하신 복음의 능력 때문에, 죄사함의 확신 때문에, 주 안에서의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긍휼의 보장 때문에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이 주를 바라보며 감사함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구든 상관없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가운데 빛 되신 예수님께로 나아가 그 빛을 자신의 마음에 주가 되게 하시면 그는 빛 되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밝게 비칠 수 있는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회개한 죄인을 기꺼이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며 우리도 그분의 품성을 본받기 바라신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하나님이 그대의 죄를 사하시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성경에서 용서를 강조하는 미 7:18~20 다음에는 즉시 심판을 강조하는 나 1:2~3이 나온다. 이는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두 가지 차원을 드러낸다. 그분은 회개한 자들은 용서하시고 악인들은 벌하신다. 두 가지 모두 하나님의 속성이다. 그분은 구원자이고 심판자이시다. 하나님의 품성을 설명하는 이 두 측면은 보완적이지 상충적이지 않다. 자비하신 하나님이 공의로운 하나님이 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을 알아야 그분의 사랑과 용서 그리고 그분의 궁극적인 공의를 확신할 수 있다.

| 적용 |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로서 그대는 어떻게 살기로 결심하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하나님의 품성 - “우리가 십자가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의 품성을 연구할 때 우리는 공평과 공의가 섞인 자비와 친절과 용서를 발견한다. 우리는 보좌 가운데서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시키고자 손과 발과 옆구리에 고통의 흔적들을 가지신 분을 본다. 우리는 가까이 하지 못할 빛 가운데 거하시나 당신의 아들의 공로를 통하여 우리를 받으시는 무한하신 아버지를 본다”(사도행적, 333).

기도
주여, 이 죄인을 이렇게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시니 진정으로 감사합니다. 저의 모든 죄와 잘못을 주께 맡깁니다.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시 86:5).

여섯째 날(금)
11월 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조와 선지자, 343~358 “성막과 그 봉사”를 읽으라.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회개한 신자를 위해 자기의 피로 탄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는 것처럼 제사장도 매일의 봉사에서 죄인들을 위하여 희생 제물의 피를 성소에 뿌렸다.
그리스도의 피가 회개한 죄인을 율법의 정죄에서 풀어 줄 것이었지만 죄를 완전히 없이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 죄는 최종적 속죄 때까지 성소의 기록에 남아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모형에 있어서도 속죄 제물의 피는 회개한 사람에게서 죄를 제거하였으나 그것은 속죄일까지 성소에 남아 있었다”(부조와 선지자, 35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어떤 이들은 대속의 개념이 불공평하다고 주장합니다. 왜 무죄한 사람이 죄인을 대신하여 죽어야 합니까?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진리일 뿐 아니라 성경의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비난에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그런 ‘불공평함’은 우리에게 용서를 주시기 위해 나타난 은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다시 말해, 이런 ‘불공평함’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고 자비롭고 정말 사랑이 많으신지 보여줍니까?

➋ 교과반에서 미 6:8을 읽어 보십시오. 여기서 우리는 어떤 말씀을 듣습니까? 우리는 이 분명한 명령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는 명령은 어떻게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하라는 명령으로 바꿀 수 있습니까?

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열렸다는 사상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놀라운 진리는 죄의 심각성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그리고 왜 우리가 우리의 행위로 자신을 구원하려는 노력이 마치 정결한 고기를 만들 수 있다는 소망으로 돼지를 씻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용없는 일입니까?

➍ 심판의 날 하나님의 앞에 선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대는 그대의 선한 행위로 자신의 의로움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대가 의지할 유일한 희망은 무엇일까요? 그대의 대답을 가지고 복음의 관점에서 토론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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