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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우리가 잊지 않도록!(말라기)[교사들을위한강해식과정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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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3-06-23 12:21 조회4,0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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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우리가 잊지 않도록!(말라기)

6월 29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57분

    기억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말 1:11).

    연구범위: 말 1장, 레 1:1~3, 말 2장, 엡 5:21~33, 말 3장, 출 32:32, 말 4장.

    중심 사상: 말라기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얼마나 헌신하시는지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백성들에게 있는 엄숙한 책임을 지적한다.

도입)
“여호와께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1절)로 시작한다. 경고한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으며, 아직은 기회가 있다는 의미이다. 운동선수도 심판으로부터 경고를 받으면 반칙행위를 삼가야 하며, 환자가 의사로부터 건강의 경고를 받았다면 건강을 해치는 행동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경고를 받은 이스라엘은 그 경고를 수용하여 회개하고, 순종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경고한 대로 진노와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여러 가지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불타버린 성전을 새로 건축하였다.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였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회복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저들의 신앙심이 식어갔고, 감사와 열정도 사라졌다. 형식적인 예배, 온전하지 못한 십일조를 드렸고, 제사장들도 안식일을 잘 지키지도 않고 이방여자와 결혼하기도 했다. 저들은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가?”의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고 첫 화두(話頭)는 뜻밖에“내가 너를 사랑하였노라”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족하고, 자주 넘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아버지의 영광에 이를 수 없게 되었지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원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

  ‘말라기’는 ‘나의 사자’라는 뜻이다. 구약의 소선지서에 포함된 그의 짧은 책을 제외하면 우리는 그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다. 더군다나 그의 책은 구약의 마지막 책이 되었다.
  말라기는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시는 반면 그 사랑으로 인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핵심 기별로 드러낸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 지도자들이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기대하셨다. 비록 공공연한 우상숭배가 깨끗하게 사라졌을지라도 백성들의 삶은 언약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율법을 준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신앙은 진심이 없는 메마른 형식주의였다. 오늘날의 교회도 이런 신앙을 조심해야 한다.

  결론 하나님은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며, 우리의 안위를 염려하시는지 알도록 우리와 대화하십니다. 그분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신실해지도록 우리에게 호소하십니다. 그분은 신실한 결혼 관계, 부모 역할, 지도력 그리고 십일조를 강조하십니다.

첫째날(일)
6월 23일
위대하신 여호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말 1:8).
  
교사강해 1)
말라기 선지자는 눈먼 것과 흠 있는 것으로 제사를 드린 유대 백성들과 제사장들에게 저주가 있으리라고 선언하였다(1:14). 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을 흠없고 온전한 것만을 드려야 했는가?(레 22:17-25) 그것은 구약시대의 희생 제물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만약 흠이 있고 온전치 못한 제물을 드리는 자가 있었다면 그는 하나님의 구원 계시를 무시하는 한편, 장차 이루어질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부인한 것이기 때문에 그처럼 저주가 선언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를 구속하게 하기 위하여 친히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히 9:14)의 십자가 구속을 온전히 믿으며,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오늘 신약시대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참된 예배와 흠 없는 제물인 것이다(롬 12:1; 히 13:15).

말라기 1장을 읽어 보라. 선지자는 어떤 문제를 제기했는가? 오늘날 우리도 어떻게 이런 견책을 받을 만한 동일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가?
  말라기는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멸시한 제사장들의 태도를 대조한다. 성전에서 의무를 수행할 때 이 아론의 후손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로서 다리를 못 쓰거나 눈멀거나 병든 가축을 받았다. 그래서 백성들은 제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비뚤어진 사고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광야에서 아론과 그의 후손들에게 희생 제물은 흠이 없이 완전해야 한다고 지시하셨다(레 1:1~3, 22:19 참고).
  그다음 선지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존중받아야 할 세 가지 중요한 이유를 열거하였다. 첫째,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시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듯이 백성들도 하늘 아버지를 공경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은 그들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종들이 주인에게 순종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대해야 한다. 셋째, 여호와는 위대한 왕이시다. 지상의 왕도 그의 신하에게 흠이 있고 병든 가축을 선물로 받지 않는다. 그래서 선지자는 어찌 백성들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중의 왕께 그 같은 가축을 드리려고 하는지 묻는다.
  물론 하나님의 시선에 그들의 행동이 더욱 악하게 보였던 이유는 그 희생 제물들이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해야 했기 때문이다(요 1:29, 벧전 1:18~19). 예수께서 우리를 위한 완전한 희생이 되려면 흠이 없어야 했기 때문에 제물이 될 가축들도 흠이 없어야 했다.

부가적용)
당시 이스라엘의 가축 중에 가장 귀하고 값비싼 것이 소나 양이었다. 그리고 흠 없는 수컷은 더 흔하지가 않았다. 당시에 소중에서 흠 없는 수컷은 지금으로 말하면 최고의 명품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는 최고의 경제적인 가치를 가진 제물이었다. 번제가 올림제물인데, 하나님께 가장 최고의 것을 바치도록 제한을 두셨다.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제물만을 받으시고, 좋지 않은 것은 받지 않으셨다. 왜 그런가하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낮은 몸, 썩어질 몸이 아닌 예수의 생명(고후 4:10,11), 영원한 생명을 예표하는 매우 중요한 몸이었기 때문에 저급, 하급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일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각인시키시려는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소치로서 영생의 진리를 무시하는 행위와 같았기 때문이다.

  교훈: 말라기는 하나님께 흠 없는 제물을 드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흠 없는 대속물이신 예수님을 가리켜야 했기 때문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최상의 질을 추구합니까?
우리 하나님은 사치를 즐기지 않으시며, 소박한 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이 우주의 왕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의 교회를 짓기 위해 값비싼 수입 자재를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그분의 품성과 영광의 아름다움을 반사할 만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와 찬양도 하늘 왕께 드리기 위한 정성스런 준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위하여 최선의 도구를 사용해야 하고, 심지어 애찬도 왕께서 허락하신 좋은 재료로 만들어야 합니다.
| 적용 |
그대가 흠 없는 제물을 바치는 심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적어 보십시오.

    영감의 교훈
  흠 없는 제물이 필요한 이유- “구원의 보증과 대속물이신 사랑받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에 자신을 위탁하시고 무덤의 감옥으로 내려가셨다. 새 무덤은 그분을 밀폐된 석실 안에 가두었다. 만약 단 하나의 죄라도 그분의 품성을 더럽혔다면 그 석실을 닫았던 돌은 절대 굴려지지 않았을 것이고, 세상은 죄의 짐을 진 채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원고 vol. 10, 385).

    기도
  하늘 아버지, 그동안 제가 쉽게 생각했던 소홀함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우리의 왕 되심을 인정하고, 예수께서 우리의 흠 없는 구주라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을 구별하여 드리기로 결심합니다.

둘째날(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라
6월 24일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말 2:15).

교사강해 2)
한 아내를 사랑하도록 가르치시고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하도록 하신 것은 결혼제도의 근본적인 정신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한 아내만을 사랑하도록 하셨는가? 이는 세상에 나 한 사람인 것처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그의 십자가를 지심은 세상의 수많은 사람이 있을지라도 오직 나 한사람만을 위해서 일지라도 십자가를 지셨을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한 사랑을 의미하고 있다.

  말라기를 지배하는 하나님의 음성은 자녀를 달래는 사랑 많은 아버지의 음성과 같다. 백성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불평을 쏟으면 그분은 그들과 대화하고자 하신다. 하나님이 백성들과 토론한 대부분의 문제는 기본 자세와 관련이 있다.
  말라기 2장을 읽어 보라. 여러 문제를 다루지만 여호와께서 특히 어떤 행습에 대하여 그들을 꾸짖고 계시는가?(말 2:13~16)
  물론 모든 유대인이 예배를 드릴 때는 하나님을 아버지와 창조주로 인정하지만, 그들 모두가 하나님을 그들의 삶의 주인으로 여기며 살지는 않았다. 말라기는 결혼을 예로 들어 백성들의 불충과 헌신의 부족을 설명한다. 성경에 따르면 결혼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거룩한 제도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신앙을 벗어난 결혼을 해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여호와께 대한 그들의 헌신을 양보하고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었다(수 23:12~13 참고).
  하나님은 결혼이 삶을 바치는 헌신이 되도록 의도하셨다. 그러나 말라기 시대에 많은 남성이 선지자의 말처럼 “어려서 맞이한 아내”와 헤어졌다. 그들은 아내가 늙자 그들과 이혼하고 더 젊고 매력적인 여자와 결혼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이혼을 싫어한다고 말씀하셨다(말 2:16). 사람들은 혼인 서약을 종종 가볍게 취급하지만 이런 강경한 진술은 하나님이 혼인 서약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시는지 보여 준다. 이혼에 대한 성경의 엄격한 원칙을 안다면 결혼이 얼마나 거룩한 것인지 보게 된다.

부가적용)
하나님과 각 영혼과의 관계는 마치 이 세상에 그 한사람 외에는 하나님께서 돌보실 다른 사람이 하나도 없으며,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주실 다른 아무 대상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확실하고 완전하다. 이것은 결혼 관계를 통해 한 여자를 사랑하도록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는 그분의 교훈 속에 나타나 있다.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시94:9 ; 사43:1 )고 말씀하신다. 오직 나를 지으시고 만드신 그분의 손 안에 우리가 있다.

  교훈: 말라기 시대에 이혼은 일반적인 현상이었지만 선지자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결혼의 목적을 상기시키며 그 언약을 지키도록 강조하였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에게 결혼 또는 결혼 생활은 얼마나 중요한 문제입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이혼이 합법적이었기 때문에(신 24:1~4), 어떤 남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결혼 서약을 파기하였다. 구약 시대가 저물던 시기에 이혼은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처럼 일반적인 현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일관성 있게 결혼을 하나님 앞에서 맺은 거룩한 언약으로 제시한다(창 2:24, 엡5:21~33).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말 2:14).
| 적용 |
부부 사이의 언약 관계를 신성하게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영감의 교훈
  여전히 유효한 결혼의 법칙- “그분께서는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마 19:8)고 말씀하셨다. …결혼과 안식일은 그때에 시작되었고, 이 두 제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창조주께서는 거룩한 부부의 손을 혼인으로 연합시키실 때,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는 말씀을 주심으로써, 아담의 모든 자손을 위한 결혼의 법칙이 마지막 때까지 유효함을 선언하셨다”(산상보훈 63~64).

    기도
  주님, 우리 부부가 젊어서 만나 고락을 나누고 이렇게 함께 늙어갈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한편이 먼저 생을 마감하기까지 주 안에서 맺은 언약 변치않고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셋째날(화)
6월 25일
창고에 있는 십일조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8, 10).

교사강해 3)
십일조가 갖는 영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요 5:39). 민18:24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다고 말씀하셨다. 왜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주었을까? 민 3:11-13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3:12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민3:13 처음 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히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장자 그 초태생들은 모두 다 죽이셨지만 이스라엘의 초태생 그 장자는 살리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 초태생을 살리시는 대신에 레위인을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12부족 중에 모든 장자를 세게 하셨는데 이스라엘의 장자보다 레위인이 273명이 부족하자 레위 인의 부족한 수 273인에 대하여는 한 사람당 오세겔씩 계산하여 속전을 취하여 드리게 하셨다(민 3:40~51). 십일조는 레위인이 먹고사는 자신들의 대속의 값인 셈이다. 십일조를 도둑질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대신해 준 레위인의 속전의 값을 도적질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이는 우리의 속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값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결국 십일조를 도둑질하는 것은 자신을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을 거부하는 것과 같고 자신을 대속하여 속전이 레위인들의 생명의 값을 도둑질 한 것이다. 왜 레위인이 이스라엘의 장자의 대속이 되고 속전이 되었는가?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신한 양들을 잡아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 대속의 일을 행하였다. 이는 실로 놀라운 역사의 사건으로 바로 제사장들인 레위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며, 레위지파의 제사장인 사가랴의 아들 침례 요한에 의해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음으로 죄를 사하는 침례를 예수께 준 것이다. “침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막1:4]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시므온 지파의 가룟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겼고 레위지파와 제사장들이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므로 레위와 시므온 지파가 예수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는 모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는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하여 이로 인해 화를 낸 레위와 시므온이 디나를 연모하는 세겜에서 할례를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자기 동생을 줄 수 없다하여 할례를 받게 하였다. 그리고 레위와 시므온은 고통 받는 히위 족속을 모두 죽였다. 야곱은 이 사건을 인해 작은 부족에 불과한 자기에게 미친 화를 생각하여 이 아들에게 역정을 내었다. 그리고 훗날 이 두 아들의 삶을 저주하였다. 창49:5-7절에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고 말하고 있는 결국 레위지파의 제사장들과 시므온의 지파인 가룟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는 사건을 모의하여 예수님을 죽게 만든 저주를 받은 것이다. 인간의 분노와 저주는 결국 예수님을 죽게 만든 죄의 원흉인 것이다.

  말 3:1~10을 읽어 보라.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이 말씀 가운데 어떤 특별한 요소들이 있는가? 그것들이 서로 결합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즉 어떻게 그것들이 서로 연관을 맺고 있는가?
  이 성경절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소선지서의 바탕 기별을 설명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며 변치 않는다. 7절에서 다시 한번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들린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자 선지자가 묻는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이 질문은 하나님께 제물을 가져오는 문제에 관하여 미 6:6이 제기한 질문과 비슷하다. 그러나 말라기의 질문은 훨씬 구체적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질문은 백성들의 십일조 또는 그것의 부족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사실 선지자는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를 도둑질하였다고 고발한다. 이유는 그들이 십일조와 예물을 신실하게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십일조 또는 수입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관습을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우리의 모든 소유가 그분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증표로 설명한다. 이스라엘에서 십일조는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을 부양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래서 말라기에 따르면 십일조를 소홀히 여기는 죄는 하나님을 강탈하는 죄와 같다.

부가적용)
십일조의 경우도 영생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십일조는 결코 끝물을 내는 법이 없었다. 출23:19에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했다. 모든 첫 것은 예수님을 나타낸 것이다. 그 증거로 고전15:20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다. 또 성령이 강림하신 오순절이 구약의 맥추절인데 출23:16에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하셨다. 민수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이스라엘의 장자와 초태생을 대신하게 하셨다. 초태생, 첫 것을 드리는 의미는 이 땅에 태어난 아담의 자식들은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담의 자녀를 대신해 대속한 자들, 이스라엘 백성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십일조는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속해 주신 대속의 값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대속의 값인 십일조를 도둑질 하는 것은 우리의 대속의 값을 스스로 취함으로 우리는 대속을 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대속해 주시고 다시 새로운 부활의 생명을 주신 분에게 대한 나의 신앙의 표시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백성들이 십일조를 도둑질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대속해 죽은 초태생, 온 인류의 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혜를 멸시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가지고 시험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보라고 말씀하시고, 메뚜기 재앙과 포도나무의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너희 땅이 아름다워 지겠다는 말씀은 궁극적을 우리의 영생에 대한 보증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통해 보증하신 것은 당신의 대속적 죽음을 믿고 우리의 생명의 값인 십일조를 구별해 드리는 것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고 이 땅에서 죽을 우리의 생명이 영원히 죽지 아니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대속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될 것이라는 보증과 허락의 값이요 구원의 값인 것이다. 이 구원의 값인 십일조를 도둑질하여 영생을 잃어야 할 것인가?

  교훈: 말라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음으로 하나님께 죄를 짖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십일조를 통해 얻는 복을 강조하였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십일조를 드림으로 어떤 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말 3:10은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자신을 시험하라고 제안하는 드문 성경절 가운데 하나이다. 광야의 므리바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인내심을 계속 시험하였고 그것이 그분을 진노케 하였다(시 95:8~11).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을 시험하라고 이스라엘에게 제안한다. 그분은 백성들이 이 문제에 관하여 그분을 믿어도 좋다는 사실을 알기 원하신다. 말 3:10에 따르면 십일조는 영적으로 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 적용 |
그대가 정직하게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사람에게 축복이 되는 십일조- “십일조 제도는 유대인들에게 축복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그 제도를 그들에게 주지 아니하셨을 것이다. 이 제도는 또한 세상 끝 날까지 그것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 자신을 부요하게 하시고자 체계적인 자선 계획을 창시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큰 축복이 되도록 고안하셨다. 그분은 이 체계적인 자선이 바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임을 보셨다”(교회증언 3권, 405).

    기도
  아버지, 제가 십일조와 헌금을 드릴 때 아까워하는 마음 대신에 당연한 마음을 주시고 당연한 마음 대신에 감사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믿고 바칩니다. 우리 교회와 가정에 복을 부어 주시옵소서.

넷째날(수) 기념책
6월 26일

  “여호와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교사강해 4)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다를 바 없는 불평을 할 때가 있다. 이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보다 더 잘살고 더 악한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볼 때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행하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말 3:13-14)고 원망하고 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불평이다. 바로 이런 불평이 쏟아져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 말3:16-18절에서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3: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말3: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말 3:13~18에서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나라의 죄를 염려하시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죄악과 부정의를 행하는 자들은 교묘하게 잘 빠져나간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죄악이 심판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왜 자기들만 여호와를 섬기며 의롭게 살아야 하는지 의아해한다.
  말 3:14~15을 읽어 보라. 그런 불평이 쉽게 와닿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답하셨는가?(말 3:16~18)

  세상에 불공평이 만연하니 과연 정의가 살아 있는지 의심스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사실을 아시며 그분께 신실한 자들에게 보상해 주실 것이라는 기별을 주셨다.
  “기념책”이라는 표현은 성경 가운데 오직 이곳에서만 사용되었다. 다음의 성경절들은 사람들의 이름과 행위가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책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주는가?(출 32:32, 시 139:16, 사 4:3, 65:6, 계 20:11~15)
  요컨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그분은 누가 그분의 백성이며 누가 그분의 백성이 아닌지 아신다(딤후 2:19). 죄인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궁극적인 소망이 그분의 은혜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직 그분의 의와 용서의 약속과 능력을 구한 다음, 그분의 공로에 의지하여, 자아에 대해서는 죽고, 주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소망을 우리 자신에게 둔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지 필히 실망하게 될 것이다.

부가적용)
우리는 이 땅에서 얻은 결과로 살아갈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 영생을 가진 자들이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일희일비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구속을 믿는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하나님을 믿고 믿지 않는 백성들을 가리실 때가 있다. 그 날까지 우리는 잠시 기다려야 한다. 기념 책에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우리의 이름의 기록을 믿고 이 땅에 악인들의 번성에 마음이 흔들려 그런 것에 연연하여 신앙적 손해를 볼 필요가 없다.

  교훈: 하늘 기념책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기록되어 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정한 때에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여 공의롭게 심판하실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하늘은 그대에 대하여 어떤 것들을 기록하였을까요?
“심판 때에 기록한 책들을 펼치면 예수님을 믿은 모든 사람의 생애가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 우리의 대언자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처음 생존한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사건을 제시하신다. 각 사람의 이름이 불리워지고, 모든 사건이 세밀히 검토된다. 어떤 이름들은 가납되고, 어떤 이름들은 거절된다.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고 용서받지 못한 채 기록책에 죄를 남겨 두고 있으면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그들의 선행의 기록도 하나님의 기념책에서 지워질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483).
| 적용 |
그대는 하나님이 그대의 어떤 선한 행실을 기억하시리라 믿습니까?

    영감의 교훈
  하나님 앞에 있는 기념책- “하나님 앞에는 ‘기념책’이 있으며, 거기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말 3:16) 들의 선한 행실이 기록되어 있다. 믿음에서 나온 그들의 말, 사랑의 행위가 다 하늘에 기록된다. …하나님의 기념책에는 의로운 행위가 빠짐이 없이 영원히 기록된다. 거기에는 유혹을 물리친 것, 악을 이긴 것, 부드러운 자비로 표현한 말이 모두 자세히 기록된다. 그리고 모든 희생적 행위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고난과 슬픔이 모두 기록된다“(각 시대의 대쟁투, 481).

    기도
  아버지, 제 마음 속에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제가 좋은 일을 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제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해 행했던 일들을 기억하시고 제게 구원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다섯째날(목) 공의로운 해
6월 27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1~2).

교사강해 5)
인간은 모두가 죽은 자와 같으며 죽은 자이다(엡 2:1). 모두가 다 지푸라기 같이 다 불 살라질 사람들이다. 고전3:11-15절에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말씀한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이 심판의 유예의 기간에 우리의 삶의 공력이 드러나게 될 터인데 교만한 자, 악을 행하는 자,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사는 자들은 그 뿌리와 가지가 남지 아니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 속에 속한 자들은 죽을 운명에 처한 인생들에게 치료하는 광선이 되어 영원한 생명, 우리로 영생을 얻게 하실 것이다.

  앞서 백성들은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말 2:17)고 물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4장 서두에서 언젠가 세상을 심판할 날이 올 것이라고 엄숙하게 약속하셨다. 지푸라기가 불에 소멸되는 것처럼 결국 교만한 자들은 악인들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 지푸라기는 알곡이 빠진 쓸모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불구덩이에 넣으면 순식간에 소화된다. 노아의 날에 물이 그랬던 것처럼 여호와의 날에 불은 파멸의 도구가 될 것이다.
  말라기 4장을 읽어 보라. 구원받는 자들과 멸망당하는 자들 사이에는 어떤 큰 차이점이 있는가?(신 30:19, 요 3:16 참고)
  말 4:1이 악인들의 운명을 묘사하는 반면, 2절은 의인들이 받을 미래의 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는 질문에 다시 답변이 주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는 날이 오리라는 보증이 있었다. 떠오르는 “공의로운 해”는 구속의 역사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새 아침을 상징한다. 이때 악은 최종적으로 영원히 사라지고, 구원받은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이루신 최종 결과를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주는 영원토록 안전하게 될 것이다.
  말라기는 성경적인 믿음을 특징으로 하는 두 개의 권면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첫째는 성경의 첫 다섯 책을 쓰고 구약의 기초를 놓은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를 기억하라는 호소이다.

부가적용)
고려대 총장을 역임했던 고 김준엽(金俊燁)씨가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아라.” “역사의 신을 믿으라. 정의와 선과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말했다. 김준엽씨가 그리스도인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오래 동안 이 세상이 돌아가는 역사를 관조하며 그 인생의 바른 초점이 생겼는데 정의와 선과 진리가 반드시 승리하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살펴보는 눈이 있었다. 이 세상을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시33:5)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진리와 정의를 사랑하신 것과 그 성의 멸망을 한 사람이도 있다면 멸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셨다. 니느웨와 바벨론과 메대 파사, 헬라와 로마 등도 모두 하나님의 역사의 손길 속에서 진리와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에 의하여 저들은 흥망성쇠를 경험한 것이다.

  교훈: 이 땅에 정의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할 것이며, 우리는 엘리야의 심령으로 그날을 준비하며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마지막 시대에 엘리야의 사명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습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두 번째 권면은 선지자 엘리야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그는 성령에 충만하여 백성들에게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했던 선지자였다. 예수께서 침례 요한을 이 예언의 성취로 보셨지만(마 11:13~14), 우리는 하나님의 남은 백성이 온 세상에 복음을 담대하게 전파하는 마지막 때에 이 예언이 다시 성취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 적용 |
마지막 시대의 엘리야로서 그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래에 적어 봅시다.

    영감의 교훈
  마지막 때를 위한 엘리야-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길을 예비하고자 하는 자들은 요한이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해 길을 예비하고자 엘리야의 심령으로 왔던 것처럼 충성스러운 엘리야로 대표되어 있다”(교회증언 3권, 62).

    기도
  이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제게 늦은 비 성령과 엘리야의 심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악의 세력이 더 이상 숨지 못하고 누구도 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부인할 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이 속히 이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섯째날(금)
6월 2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들의 손으로 하는 사업에 복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몫을 당신께 돌릴 수 있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햇빛과 비를 주시고 식물(植物)이 무성하게 하시고 건강과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모든 축복이 당신의 관후하신 손에서 나오고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헌물들 곧 감사 제물과 자원하는 예물과 속죄 제물로 당신께 한몫을 돌림으로 남녀들이 그들의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그들은 그분을 섬기는 데 그들의 재물을 바쳐서 그분의 포도원이 황무지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들은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위치에 계신다면 어떻게 하실까를 연구해야 한다. …그들은 이 세상 어디서나 그분의 사업을 이룩하는 데 이기심 없는 관심을 나타내야 한다”(선지자와 왕, 707~70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성경과 결혼에 대하여 좀 더 숙고해 보십시오. 결혼은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거룩한 제도이기 때문에 성경은 결혼의 취소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성스럽고 중요한 결혼이 얼마나 허무하게 끝나고 있습니까? 가장 사소한 이유 때문에 결혼을 파기해야 한다면 결혼이야말로 사소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혼의 파기를 억제하는 규율들은 그것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얼마나 강력하게 증명하고 있습니까?
  2. 말 2:17을 주의 깊게 읽어 보십시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서 우리는 재림 전 심판에 대하여 이곳에서 표현하고 있는 동일한 정서를 표현하는 자들에게 어떻게 말해야겠습니까?
  3. 말라기 4장은 죄인들의 최종 멸망에 대하여 말합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이 교훈은 영원토록 타오르는 지옥불 사상과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이런 차이점은 어떤 면에서 거짓 교리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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