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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과 우리가 잊지 않도록!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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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3-06-17 10:53 조회3,4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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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과 우리가 잊지 않도록!(말라기)



기억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말1:11)



첫째 날(일) 위대하신 여호와


*도입질문: 말라기 선지자가 눈 먼 희생을 바치고,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을 악한 일이라고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말1:8을 글자대로 이해하면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습니다. 말1:8을 글자대로 이해하면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이 사람 간에 하는 상대적 개념의 사랑을 하시는 것처럼, 가장 좋은 것을 드릴 때에 그것을 선하다 하시고 좋은 것을 드린 사람을 기뻐하시며 받아주시는 분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말라기 선지자가 하나님께 좋은 것으로 드리지 않은 것에 대하여 견책하여 기별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정말 그런 분일까요? 사람의 행위에 따라 다른 반응을 하시는 분이시고, 사람들의 섬김과 제물을 받길 원하시는 분일까요?
성경의 전체적인 사상은 여호와 하나님은 상대적 사랑을 하시지 않고 절대적 사랑을 하시고,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섬기시는 분이시고, 제물에 따라 차등적인 사랑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마20:28, 행17:25, 사1:11-14, 롬5:8 등)
상대적 사랑과 섬김을 받고자 하는 것과 차등적인 조건적인 사랑을 하는 것은 창조주가 아닌 사람이 만든 신들이 하는 사랑입니다. 창조하시는 신은 창조하신 존재들을 섬기셔야만 그 존재들이 생명을 유지함으로 섬기시고, 창조주의 품성은 절대적 사랑으로 줄 때 행복하시고, 의지의 자유를 주시는 창조주는 의지의 자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창조주께서 지셔야만 함으로 조건적인 사랑을 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말라기 선지자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말라기가 언급한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을 악이라고 정의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희생제물과 제사의 의미는 사람의 선택에 대해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책임을 지실 것인가에 대해 보여주는 데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떠나는 선택을 하였을 때, 아담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창조 전의 평화의 의논에서 결의한 대로 창조주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구속의 행위를 선언하시고 모형을 보여주시는 일이었습니다.(창3:15, 21)

가죽 옷을 입혀주시기 위해 창조주 하나님을 예표하게 될 어린 양을 하나님께서 손수 잡으셔서 가죽을 만드시고 옷을 만드셔서 잃어버린 빛(반사하던 빛(생명))을 대신하게 하셨습니다.
제사제도의 핵심은 죄 없으신 생명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담(사람)의 선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대신 지심으로 양처럼 피 흘려 돌아가시는 절대적 사랑의 하나님을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양을 잡아 바치는 사람의 정성을 받으시는 것이 제사가 아니라 나의 선택에 대하여 나에게 책임을 묻지 아니하시고, 나의 선택의 결과인 영원한 죽음을 해결하기 위해 양처럼 돌아가실 나의 창조주의 절대적 사랑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제사의 핵심입니다.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주시는 사랑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악이란 사람의 악한 행위를 가리키지 않고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선택을 하는 것을 악이라고 정의합니다.(마25:24-26, 렘2:13)
흠 없는 제물이어야 하는 이유는 제물이 상징하는 예수님이 흠 없는 분이고, 죄(사망)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흠 없는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흠 있고 병든 것을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생명이신 하나님 자신이 대속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대속의 사랑을 알지 못한 채 스스로 제물을 드려 구원 얻고자 하는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스스로 파는 것이며 그것을 악이라고 정의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사람들에게 의지의 자유를 주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선택에 대하여 모든 책임을 하나님 자신이 지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의 품성에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인 오늘날의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예배를 통해 보게 됨으로 하나님과 연결될 때 그것이 바로 선한 일입니다.




둘째 날(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라


*도입질문: 결혼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결혼제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길 원하셔서 만든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줄 때 행복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하나님처럼 상대방을 사랑할 때 주는 자와 받는 자 모두가 행복해지게 하기 위해 결혼제도를 주셨습니다.
사랑을 줄 때 더 행복해지는 하나님 사랑을 경험하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배우자에 대하여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되어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을 때, 그 사랑을 내놓을 수가 있습니다.(요일4:7-8)




셋째 날(화) 창고에 있는 십일조


*도입질문: 십일조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삶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아버지임을 기억하게 합니다. 상, 하 관계 혹은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에서 아버지가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시는 절대적 사랑을 하시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순종이냐 불순종의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절대적 관계 속에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절대적 사랑의 관계에서만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선택을 하게 되고 그것이 순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십일조는 관계의 문제입니다.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사람들의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할 때 도적질하는 것이 됩니다.
십일조는 나의 존재가 하나님으로 인해 시작되었고, 그 존재를 유지하는 것 역시 하나님으로 인한 것임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입니다.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께서 가지신 주실 때의 기쁨을 우리도 맛 볼 수 있게 됩니다.




넷째 날(수) 기념책


*도입질문: 하늘에 있는 기념책에는 어떤 내용들이 기록될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기념책에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긴 자의 내용들이 기록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실패하지 않는 사랑에서 희망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시33:18, NIV)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품성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기념책에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품성에 반응하여 그 사랑에 확신하였던 모든 것에 대한 기록이 담긴 책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단의 청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이루신 구원과 함께 그것을 받아들였음으로 증명할 합법적인 자료를 준비하십니다.




다섯째 날(목) 공의로운 해


*도입질문: 하나님이 공의로운 하나님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이 공의로운 하나님이신 이유는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품성대로 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은 죄가 많은 곳에 더 많은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선택하게 하여 생명을 주고 싶어 하시는 품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에는 강제하지는 않으므로 끝끝내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돌이킬 확률이 없어질 때는 그 선택에 대하여 눈물을 머금고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에 반응하여 받아들이게 되면 치료하는 광선처럼 생명력 충만함으로 생명이 되지만,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거절하게 되면 결국은 생명을 거절하는 것이 됨으로 그 선택대로 생명과의 분리 즉 영원한 무(無)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불로 살라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명이신 하나님을 거절함으로 스스로 사망이 되어 버립니다.(시34:21)

사람이 하나님을 거절함으로 인해 사망이 된 것까지도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책임지시는 사랑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불로 살라버리시는 것처럼 표현하십니다.(대상10:4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대상10:13-14도 기록되길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하나님의 품성인 절대적 사랑으로만 행하시는 분이심으로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담의 선택대로 아담을 십자가에 달리시는 분이 아니라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 달리시는 분이셨고, 그것이 하나님의 품성대로의 모습이므로 십자가에 공의로운 행위가 나타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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