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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과 여호와의 날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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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3-05-21 13:07 조회3,80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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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과 여호와의 날(스바냐)



기억절:“여호와가 그들에게 두렵게 되어서 세상의 모든 신을 쇠약하게 하리니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습2:11)



*스바냐는 남방유다 백성들에게 기별을 전하기 위해 선택된 선지자이며, 선지서들을 연대순으로 배열하면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 사이에 위치합니다.




첫째 날(일) 암흑의 날


*도입질문: 스바냐가 전하는 여호와의 날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스바냐 선지자가 전하는 기별의 핵심은 “여호와의 날”입니다. 여호와의 날이란 하나님이 구원이나 심판(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확정되는 시간)을 목적으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특정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 날은 하나님께서 주신 의지의 자유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 지는 날이며, 더 이상의 시간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더 이상 바뀔 것이 없어서 살아온 그대로를 확정짓는 날입니다. 이 날 요한 계시록 22:11의 말씀대로 선언될 것입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확정함으로 더 이상의 바뀜이 없게 되는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의지의 자유로 어떤 선택을 하였는지를 보여 주는 날이 됨으로, 그 날이 오기 전에 은혜의 기간에 창조주의 사랑을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원하는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의 초청이 바로 세 천사의 기별의 핵심입니다.(계14:6-12) 은혜의 시기로 주어진 이때에 각자에게 주신 의지의 자유로 내 생명의 창조주요 구원자를 선택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둘째 날(월) 세상의 겸손한 자들


*도입질문: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 왔는지를 최종적으로 드러내는 심판의 때가 오기 전에 꼭 해야 할 것으로 스바냐 선지자가 조언한 것을 무엇입니까?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은혜의 시기에 내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스바냐가 제시하는 것은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고 있는 가 입니다. 여호와를 찾는 것이 의이며 겸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때는 인간의 한계를 알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될 때입니다.(사40:6-9)
의와 반대는 죄이고 겸손과 반대는 교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오해하여 마음으로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모든 형태가 죄이며, 그것이 혹 하나님에 관한 여러 가지 지식을 가지고 종교적인 행위 속에 열심을 다하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라면 죄이며 교만일 뿐입니다.(고전8:1, 계3:17)

지식이 아닌 사랑이 담긴 지혜이신 하나님의 품성을 알게 될 때, 여호와 하나님을 찾게 되고 그것이 사람들이 의이며(렘23:6), 겸손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됨으로 하나님을 선택할 때 생명이 연결되며 그것이 나의 선택을 결정짓는 심판의 날에 하나님 편에 있음을 결정하게 됩니다.




셋째 날(화) 타락한 도시


*도입질문: 스바냐는 예루살렘의 타락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지적하였습니까?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스바냐 선지자는 예루살렘 백성들이 타락했던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함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백성들의 타락에는 지도자들의 책임도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지도자와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알지 못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가 없었으므로 자기 하나님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마음으로 사랑의 교제를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행위와 성경의 지식으로만 만족할 뿐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 계시지 못한 채 거부당하셨습니다.(계3:20, 마23:37)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로 인해 이 세상에는 어두움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군지 알지 못하면 하나님과 마음으로 사랑의 교제를 하지 못하고 행위적인 것으로 관계를 대신하고자 하지만 그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넷째 날(수) 하나님의 최고의 기쁨


*도입질문: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을 주고 싶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아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기뻐하시는 것처럼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천륜적 관계로서만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이며, 순종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는 상대적 사랑이 아닌 절대적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행위에 따라 사랑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들에 대한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천륜적 사랑에 대한 모습이 눅15장에 나오는 아버지와 작은 아들의 모습입니다. 눅15장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그저 아버지와 아들이므로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이유는 사람들의 행위대로 갚아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을 만나시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생명으로 창조하시고, 자신의 생명으로 구원하신 사랑하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오시는 날이 재림의 날입니다.




다섯째 날(목) 부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


*도입질문: 나1:3을 하나님의 품성으로 읽으면 어떻게 읽게 될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를 글자대로 읽으면 노하기를 더디하시기는 하지만 결국은 노한다는 것으로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표현은 고전13:4과 유사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이 말씀도 오래 참지만 결국은 노한다고 받아들이게 하는 구절입니다. 글자로는 그렇게 밖에 이해할 수 없지만 이것의 진정한 뜻은 결국은 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내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참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은 성내지 아니합니다.(고전13:5) 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고전13:7)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합니다.(고전13:8) 끝까지 사랑하십니다.(요1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라고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사람들의 선택의 결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책임지시는 표현법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절함으로 인한 창조 전의 상태인 무로 돌아가버리는 것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하나님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있음을 결국은 하나님이 노함으로 그들을 죽이시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도 같은 의미의 표현입니다.
벌 받을 일을 선택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으로 인해 벌을 주시지는 않습니다.(요12:47) 사람들에게 의지의 자유를 허락하셨으므로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신 의지의 자유로 어떤 선택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벌을 주신다면 그것은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호소를 지속적으로 거부함으로 하나님과 분리된 채, 더 이상의 시간이 주어진다 할지라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확률이 확실히 없어질 때 하나님은 더 이상 자기의 유익대로 하실 수가 없어지게 되고 그때 그 사람의 선택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 선택을 인정하게 되면 무로 돌아가 버리게 되는데 그때라 할지라도 그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벌 받을 사람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고 자신이 벌을 주심으로 멸망시키는 것처럼 표현하십니다. 그 사람의 선택의 결과에 대한 최종 책임을 그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이 지시는 사랑이므로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는 것처럼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품성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책임지시는 사랑의 품성을 아는 선지지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거절하는 선택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막게 하고 마음을 닫아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함으로 예수님을 거절한 것처럼 표현하였습니다.(요12:39-41) 이사야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품성)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선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으로 인한 잘 못들도 마치 하나님께서 하신 것처럼 표현하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지 않고 바르게 알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의 마음을 강권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에 끌리게 합니다. 사랑의 끌림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회복함으로 하나님의 생명과 이어지게 하십니다.

댓글목록

박인수님의 댓글

박인수 작성일

*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강권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 사랑의 이끌림에 따라 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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