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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계시와 계시 속의 하나님(질문. 대답, 부가설명)1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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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2-10-07 15:15 조회5,71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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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 안식일
일몰 : 오후 5시 58분

기억절 :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1~2).

연구 범위 : 벧후 1:19~21, 딤후 3:16~17, 신 6:4, 마 28:19, 히 11:6, 출 3:1~14

중심 사상 : 성경적인 영감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영감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그러나 하늘과 궁창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죄의 선택으로 빚어진 결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분이 능동적으로 일하고 계심을 선포하지는 않는다.
요컨대 우리가 다른 자료로부터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다 할지라도 주된 자료는 성경이어야 한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계시되지 않았더라면 도무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세상에서 펼쳐지는 그분의 사역에 관한 위대한 진리들이 담겨 있다. 사람들이 선과 악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짐작할 수 있을지라도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대쟁투에 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번 주에 우리는 두 가지에 집중하려고 한다. 첫째, 우리는 성경이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증거하고 있으며, 성경이 어떻게 영감을 받았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다음, 성경이 자신에게 영감을 주신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보려고 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하나님을 아는 통로로써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의 중대한 역할에 대하여 토론한다.
➋ 느끼기 : 개인적이고 친밀한 차원에서 성령의 이끄심에 반응한다.
➌ 행하기 :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그분과의 개인적 관계를 발전시킨다.

A.
❷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 성경 자체에 그 증거가 있다. 특히 예언은 이 말씀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도 제공되었다.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거든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믿으라고 하셨다.(요13:19, 14:29, 신18:22)
❸ 성경에서 이해하기 어렵고 모순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 기도하는 중에 성경 자체에서 어떤 해답이 있는지 찾아야 한다. 그래도 해답을 찾지 못하면 의심하는 대신에 깨닫게 되는 때를 기다려야 하며 이미 깨달은 진리를 따라 생활하면 합당한 때에 성령의 지도로 깨닫게 될 것이다.
❹ 성경 말씀에 따라 판단하고 생활하기 위해 그대는 어떤 결심을 하겠습니까?
※ 오직 성경말씀에 전적으로 굴복하라.

B.
❷ 그대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거나 올바르지 않으면 망하게 된다.
❸ 하나님이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신다는 사실은 대쟁투와 우리 개인의 삶에 있어서 어
떤 의미입니까?
※ 세상의 형편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친히 돌보시고 구원으로 이끄신다는 의미이다.
❹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더 잘 알기 위해 그대는 어떤 결심을 하겠습니까?
※ 더 많이 성경을 읽고 상고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결론 : 성령이 사람의 생각과 언어에 영감을 주어 기록한 성경은 하나님의 본성과 사람을 돌보시는 그분의 관심을 계시하며, 우리를 그분과의 관계로 이끕니다.


첫째 날(일) 10월 7일 성경론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1. 벧후 1:19~21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에 따르면 신약의 저자들이 성경을 어떻게 간주하였는가?
[벧후1:19~21]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답: 성경을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으로 믿었고, 어두운데 비치는 등불로 믿었다.

2. 딤후 3:16~17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에 따르면 성경은 어떤 책이며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가?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답: 모든 성경은 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며 사람을 온전케 하는데 사용해야 한다.

3. 마 4:4, 7, 10, 22:41~46, 요 10:34~35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에서 우리는 성경과 그 권위에 대하여 어떤 중요한 진리를 얻을 수 있는가?
[마4:4,7,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22:41~46]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요10:34,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답: 예수께서도 전적으로 성경의 권위에 의하여 당신 자신을 증거하셨다. 성경은 결코 폐할 수 없다.

<부가설명> 기독교의 모든 것은 성경이다. 성경에 의하여 교회가 성립되었다. 교회는 성경의 지도를 받을 때에만 성경이 계시한 교회이고 안전하다. 교회가 성경 위에 앉아서 성경을 전단하면 그것은 이미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아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 재림교회가 교회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해도 목회자 개인이 성경대로 말씀을 강론하고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바벨론이 된다. 바벨론은 교회의 행정적 비리나 목회자의 개인적 도덕성에 대한 말이 아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리와 신조가 성경이 계시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을 때 바벨론이라고 한다. 그것은 불의로 진리를 막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성경을 기록하도록 선지자들을 택하시고 계시를 주신 분인 예수님도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을 때 오직 성경의 권위에 의하여 당신의 신분을 증명하셨다. 그렇거든 우리가 어떻게 성경의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일이다.

교훈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재림교회의 모든 가르침은 절대적으로 성경을 토대로 삼고 있다.


둘째 날(월) 10월 8일 영감의 본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1).

1. “성경의 말씀 자체가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감동을 받은 것은 사람들이었다. 영감은 인간의 언어나 표현 방법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 자신에게 작용하는 것이며 그는 성령의 감화로 말미암아 그의 사상이 그 감화에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개인적인 정신의 감명을 받게 된다. 거룩한 정신으로 물들여진다. 거룩한 정신과 의지가 인간의 정신과 의지에 혼합하게 되어 인간의 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1, 21). 이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성경적 영감이 어떻게 작용한다고 이해해야 합니까?

답: 하나님의 성령께서 사람을 감동하시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와 말씀을 받아서 자기의 실력 안에서 기록하였다. 학식이 많은 사람은 훌륭한 문장으로 그것을 표현할 것이고 학문이 짧은 사람은 그 문장이 서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데는 불편이 없다. 성령께서 그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연구하는 사람들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2. 행 1:18과 마 27:5을 비교하라. 유다의 죽음에 대한 두 기사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행1: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마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답: 기록된 대로 차이가 있다.

<부가설명> 이 두 기사는 가룟유다의 죽음을 서로 보완하여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가룟유다가 목을 매었는데 그는 아마도 몸부림치다가 목맨 줄이 끊어져 떨어질 때 밑에 있는 나뭇가지나 돌부리에 떨어지면서 배가 터지고 창자가 흘러나오게 되었을 것이다. 이 두 기록을 대조하면 이런 추리가 아주 자연스럽다. 그런데 교과 저자는 근래에 확인된 언어적 진실을 더하여 설명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행 1:18에서 “곤두박질”했다는 표현은 “부어오르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유다가 목을 맨 후에 시신이 부어올라 창자가 터져 나올 때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두 성경절은 처음에 모순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음이 입증되었다.] 곤두박질했다는 말이 목맨 줄이 끊어져 땅으로 떨어져서 배가 터진 것이 아니라 유다가 목매 죽었는데, 시신이 부파하면서 배가 부풀어 올라 터져서 창자가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어떻든 이런 설명은 유다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보완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성경의 많은 경우가 그렇게 보완하고 있다. 마태 마가 누가의 십자가의 죄 패에 대한 것도 각각 기록하는 관점에 따라 요점을 적은 것일 뿐이다. 마가와 누가는 마태가 기록한 내용보다 단어가 적다. 그러나 죄 패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예수님의 정죄된 내용이 동일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데는 아무런 모순도 없다. 요한은 이것을 더 정확하게 기록하였다.(요19:19) 내용상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다.

교훈 : 성경의 영감은 동일 사건을 바라보는 두 기자의 표현 방법의 차이를 허용한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의 신뢰성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셋째 날(화) 10월 9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1. 신 6:4과 막 12:29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에 어떤 중요한 진리가 있는가?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막12: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답: 성경의 하나님은 유일하신 여호와라는 진리가 있다.

2. 창 1:26, 3:22, 11:7, 요 1:1~3, 18, 20:28, 고후 13:13, 마 28:19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은 하나님의 내적 실재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창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요1:1~3,18]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20: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답: 이 말씀들은 성경의 하나님이 복수(複數)로 계시는 분이심을 계시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동일한 이름을 가지셨다. 마28:19의 “이름”은 단수이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 한 이름을 가지셨다는 것을 계시한다. 그 이름은 여호와이시다.

<부가설명> 삼위일체교리는 설명이 쉽지 않은 진리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많은 신학자들이 이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모든 신자가 다 확실히 알 수 있는 만족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 것 같다. 설명하는 말이 철학적인 것 같아서 술어 자체가 어렵기도 하다. 그것은 성경이 계시한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간의 학문적 언어들로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없다. 이 말은 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하여 처음 사용되었다. 그것은 trinitas라는 라틴어이다. 이것을 영어로는 trinity라고 번역하였다. 이것은 셋이 하나라는 의미인 것 같다. 우리말 삼위일체가 이해하기에는 좋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신학적 교리적 술어이다. 성경은 마태28:19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이름인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삼위일명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성경이 계시한 것이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 한 이름을 가졌는데, 구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 이름은 여호와이다. 출3:1~15절을 자세히 읽으면 2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는데, 4절에 그가 하나님이고 14,15절에 그분이 바로 스스로 있는 자라고 대답하시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선포하신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사자 그분이 여호와이시고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고 하신 것이다. 나타난 여호와는 요1:18에 의하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아버지, 아들, 성령이 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셨는데, 그 뜻은 스스로 있는 자이다. 그러니까 성부, 성자, 성령이 그 존재에 있어서 다 자존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마28:19이 계시하는 삼위일명이다. 삼위 하나님은 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셨고, 그것은 그분들이 존재성이 다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계시한다. 이것을 믿으면 어려울 것이 없다. 그렇지 않은가?

교훈 : 유일하신 하나님의 내적 본질에는 삼위일체가 암시되어 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펼치시는 구속 사역을 다각적으로 깨닫게 된다.


넷째 날(수) 10월 10일 창조주의 속성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1. 히 11:6과 롬 10:17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그분의 존재를 인식하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말씀의 역할에 대하여 뭐라고 말하는가?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답: 말씀을 듣고 읽으므로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이 믿음은 우리로 성경의 하나님을 만나게 한다.

2. 말 3:6과 약 1:17, 요일 4:8, 16 그리고 대하 6:18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하여 뭐라고 말하는가?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그분의 다른 속성들은 무엇인가?
[말3: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약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요일4:8,16]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대하6:18]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답: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계시한다. 또한 하나님은 우주보다 크신 분이여 계시지 않는 곳이 없다고 말한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이 생명의 성질이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생명을 주는 본성이다. 하나님을 떠나면 생명이 없어진다. 생명을 잃어버린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생명이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인간의 죽음을 대신 하시고 부활하여 생명을 드러내시고 누구든지 이것을 믿으면 생명을 얻도록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모습이다. 그분은 우주와 그 가운데 만유를 창조하신 분으로서 우주보다 크신 분이시다. 그래서 그분은 천지에 충만하시다.(렘23:24) 그분은 당신이 생명이며 존재의 유일한 근원이라는 것을 끝까지 부인하는 존재들에게 그 존재를 반납 받으신다. 그것이 심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과 상관없이도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존재를 반납하고도 존재하면 그들의 주장이 증명된다. 그러나 존재를 반납하면 영원히 존재를 상실한다. 이것은 사랑을 거절하는 존재가 스스로 취한 것일 뿐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이시고 언제나 생명이시며 언제나 존재 자체이시다. 여호와라는 이름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시8:1,9)

교훈 : 성경에서 창조주 하나님은 증명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믿음의 전제요, 토대가 되는 진리이다.


다섯째 날(목) 10월 11일 하나님의 행동

1. 어제 본 바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을 우리의 창조주로 묘사하고 있으며 그분의 창조 행위는 그분이 진실로 이 세상과 얼마나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여준다. 다음의 성경절들을 통해서 우리는 대쟁투의 배경으로 그분의 다른 활동들에 대하여 무엇을 알게 되는가?

[창 11: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 19: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 악이 관영할 때에 심판으로 간섭하신다.

[출 3:1~14]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일하신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주셨다.

[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재림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데려가신다.

<부가설명> 이상의 성경구절들은 이 세상에 직접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욥11:11) 죄악이 관영하여 그대로 두는 것이 인간 상호간 엄청난 재난이 될 때에는 개입하셔서 심판하시고 새로 시작하게 하신다. 이런 개입은 궁극적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활동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다 보신다. 욥기의 기록대로 사람들은 하나님이 상관치 않으시는 것처럼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다 보시고 최종적으로 바른 결과에 이르게 하신다. 그래서 재림과 부활은 구원사업에 필수적인 사건이다. 오늘날 시대상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기 딱 좋은 그런 상태가 아닌가. 우리는 어느 부활에 참여할 것인가? 지금 진리 앞에 굴복해야 할 것이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들과 아주 가까이 친밀한 관계로 지내신다.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고 느껴야 할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세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시고 친밀하게 활동하신다.


여섯째 날(금) 10월 1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 치료 봉사, 427~438 “이론적 지식의 위험성”, 교회 증언 5권, 746~749 “말씀이 육신이 됨”, 각 시대의 대쟁투 “서문”과 “서론”

“하나님은 인간 대리자들을 통하여 진리를 세상에 전달하기를 기뻐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친히 당신의 성령으로 사람들에게 자격을 주어 그 사업을 할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분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사람의 마음을 지도하셨다. 보물이 비록 질그릇(인간)에 위탁되었을지라도 그것은 하늘로부터 온 보물임에 틀림없다. 그 증언(證言)은 불완전한 인간의 말로 표현되었지만 하나님의 증언이다. 그러므로 온순하고 믿음 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그 증언 가운데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하나님의 능력의 영광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인간에게 위탁하셨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권위 있고 확실한 계시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은 품성의 표준이요, 교리의 계시자요, 체험의 시금석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각 시대의 대쟁투, 6~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성경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상관없이 내린 하나님에 대한 결론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확신할 수 있을까요? 다른 자료로부터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까? 있다면 그 자료는 무엇이며 그 자료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바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 성경 외의 자료는 가장 중요한 것은 천연계이다. 그 외의 것들은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천연계를 통하여 결론을 내렸다 해도 그것을 성경에 의항 검증하고 확인해야 한다.

➋ 초자연적 존재들을 부인하는 세계관이 왜 하나님의 말씀과 심각하게 상반됩니까?
※ 하나님의 말씀에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계시가 분명히 주어져 있기 때문이며, 그런 ㄱ서을 부인하는 것은 결곡 하나님을 부인하는 길을 만들 것이다.

➌ 과학과 기술은 여러 방면으로 인류에게 큰 유익을 주었습니다. 또한 과학은 어떤 면에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생명의 복잡성에 대하여 과학이 밝혀낸 것들을 보십시오. 그럼에도 과학이 하나님에 관하여 알려줄 수 있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는 어떤 것들입니까? 또한 언제 과학이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저해합니까?
※ 과학은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이미 있는 것들을 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과학으로 모든 것을 재단할 수 없다. 과학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그 근원이 유에 있기 때문에 창조주와 그분의 행사를 모두 과학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➍ 아무리 이해하기 어렵다 할지라도 삼위일체 교리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만약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 이외의 존재라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십시오.
※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행사의 터전이다.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

댓글목록

김종복님의 댓글

김종복 작성일

목사님 안녕하세요 언제나 좋은 말씀을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3과 공부에서도 큰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몸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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