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과 핍박받는 자들에게 주는 약속 [살후 1:1~12](질문, 대답, 부가설명)09/15/12 > 교과토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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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핍박받는 자들에게 주는 약속 [살후 1:1~12](질문, 대답, 부가설명)09/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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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2-09-08 00:42 조회5,71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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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5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40분

기억절: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살후 1:11).

연구 범위
살후 1:1~12, 요 1:18,
롬 2:5,
롬 12:19, 계 16:4~7, 계 20:1~6, 요 14:1~3.

중심 사상 :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소망의 정점이다.

서신 왕래가 더디기 때문에 바울과 소통하기를 원했던 교회는 그의 행적을 추적해서 소식을 전해야 했다. 그래서 접촉이 이루어지면 사도는 바로 답장을 써서 다시 교회에 보냈을 것이다. 이 과정이 한 달 정도 소요되었으니 그 사이에 거짓 교리가 일어나 퍼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우려가 데살로니가에서 현실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회에 새로운 문제들이 일어났다. 심지어 이 문제들은 바울의 첫째 편지를 잘못 적용하여 더 악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데살로니가후서는 이런 상황을 교정하기 위한 바울의 노력이었다.
이번 과의 핵심은 재림의 날에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극적인 개입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이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데 있다. 이번과의 연구 범위는 재림의 본질에 대해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세상의 시험과 환난에도 불구하고 재림과 공의의 심판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신자들로 하여금 인내심과 꿋꿋함을 가지도록 독려하는지 설명한다.
➋ 느끼기 : 재림의 날에 하나님이 모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시리라 확신한다.

➌ 행하기 : 하나님이 우리가 당한 모든 억울한 일들을 보상해 주시는 우리의 수호자 되심을 믿는다.


A.
❷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감사하게 여기며 자랑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살후 1:4)
※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❸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고난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살후 1:5~7)
※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신원하시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생의 영광을 주실 것을 믿음으로 인내해야 한다.

❹ 주변에 고난을 당하는 신자가 있다면 그들의 믿음을 어떻게 격려하겠습니까?
※ 그리스도인은 현세적 존재가 아니라 내세적 존재임을 깨닫도록 도우고 격려할 것이다.

B.

❷ 하나님은 왜 신자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신다고 생각합니까?
※ 세상에 대한 애착을 떠나게 하고 자신의 신앙의 실상을 알아보도록 하며, 확실한 소망을 굳게 붙들게 하는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❸ 우리가 하나님의 품성을 고려할 때 심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 심판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신원이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평안이 아니겠는가.
❹ 우리가 재림의 날에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지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으로 영광을 돌리게 된다.

결론: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가해진 불의를 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들의 신실함을 옹호하시고, 그들의 원수들은 벌하실 것입니다.

첫째날(일) 9월 9일
신선한 인사 [살후 1:1~2]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살후 1:1~2).

1. 이 같은 짧은 인사말에서 어떤 소망과 약속을 찾을 수 있는가? 이 안에 얼마나 풍성한 신학이 내포되어 있는가? 우리는 그러한 소망과 약속을 어떻게 우리의 것으로 삼을 수 있을까?
[살후1:1,2]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답: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구래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을 드러내며 그분들로부터 은혜와 평강을 누린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예수 안에서 이런 것들이 모두 성도들의 것이라는 약속을 믿음으로 우리 것이 된다.

2. 살전 1:1과 살후 1:1~2을 비교해 보라. 단어 배열에 작은 차이점이 있다. 그런데 그 차이점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는가?
[살전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후1:1,2]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답: 거의 같은 말인데, 후서에서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하였고,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것을 다시 한 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라고 기록하였다. 이런 표현은 성도와 하나님 사이를 아주 친밀하게 한다.

<부가설명>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는 우리들의 아버지라고 계시하였다. 구약성경에도 분명히 아버지라고 계시되어 있다.(신32:6)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버지보다는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생각하였던 것 같고, 왕도 공의를 집행하는 두려운 왕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세상에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에 대항 오해가 아주 넓게 확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창조주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일도 하신 것이다.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오 우리들이 자비로운 아버지이시다. 예수께서 세상에서 서민들을 대하신 바로 그 모습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드러내신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칠 때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셨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는 아바 아버지라고 불러서,(막14:36) 훗날 바울은 바로 이 호칭을 친근하게 기록하였다.(롬8:15, 갈4:6) 우리 아버지 하나님,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는가!

교훈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늘 아버지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고 그분께 시선을 고정할 때 은혜와 평화를 경험할 수 있다.


둘째날(월) 9월 10일
바울의 감사 [살후 1:3~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살후 1:4).

1. 살후 1:3~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믿음에 관한 어떤 중요한 원칙을 깨닫게 되는가? 믿음이 성장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살후1:3,4]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4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답: 믿음이 자라는 원칙을 말하였다. 믿음이 자라면 서로 사랑함이 풍성하게 되며 환난 중에서도 인내와 믿음을 유지한다.

<부가설명> 믿음은 생물이기 때문에 자란다. 생물이라는 말은 생명이 있는 사물이라는 말이다. 믿음 자체가 생물이 아니라 그 믿음을 가진 성도가 생물이다. 그래서 믿음은 성도 안에서 자란다. 이 믿음이 자라날수록 사랑이 풍성해지고 환난과 핍박 중에도 인내하고 성도 간에 더욱 큰 사랑을 나타낸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은 그랬다. 바울은 이것을 여러 교회에서 자랑하였다. 우리 한국인 교회의 믿음도 이처럼 자라서 세계 어디서든지 자랑할 수 있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믿음이 자라는 것은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예수님을 더 가까이 더 깊이 알게 된다는 뜻이다. 믿음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더 깊이 알수록 예수님으로부터 더 풍성한 믿음이 온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에서 믿음에 이른다고 하였다.(롬1:17)

교훈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난 중에도 인내하며 사랑과 믿음을 키워 갔기 때문에 바울은 이를 감사하게 여기고 여러 교회에 자랑하였다.


셋째날(화) 9월 11일
종말의 징조인 고난 [살후 1:5~6]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살후 1:5).

1. 살후 1:5~6을 읽어 보라. 바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여기에 어떤 약속이 담겨 있는가?
[살후1:5,6]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6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답: 하나님은 공의로운 심판장이심을 나타내며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신원하실 것을 약속하였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그것은 성도들을 신원하시는 심판이다. 성도들은 결코 정죄의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다.(요3:18, 5:24) 그들은 심판에서 승리한 죄 없이 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였다는 판결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주는 생명을 끝까지 거절하였다고 말씀하시고 그들은 생명이 없으니 불가불 생명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거할 수 없으니 화장(火葬)할 수밖에 없다고 선고하실 것이다. 그래서 둘째 사망 불 못에 던져지고 화장하게 되는 것이다. 성도들이 참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이 되었다면 심판을 기뻐해야 한다. 심판으로 그들의 영생이 온 우주 앞에서 영원히 확정되기 때문이다. 이 심판은 이의를 달 것이 없다. 생명 있는 사람에게 생명이 있다고 선고하고 생명이 없는 자에게 생명이 없다고 선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예수 생명을 확실히 얻어야 한다.(요일5:12~13)

교훈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은 하나님이 그들을 이미 인정하고 계신다는 표이다. 심판의 때에 이 모든 것이 증명될 것이다.


넷째날(수) 9월 12일
불과 멸망 [살후 1:7~9]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살후 1:7~8).

1. 살후 1:7~9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악인들이 멸망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과 은혜와 용서가 많으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이런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살후1:7~9]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답: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서 영원한 멸망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의지로 형벌을 주는 쪽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거절한 사람들이 하나님 영광 앞에 설 때에 그 영광을 감당할 수 없어서 떠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결론은 하나님의 사랑과 결코 충돌하지 않는다. 그들을 정중히 장례하여 영원히 존재를 거두는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명과 존재를 끝까지 거절했기 때문이다.

2. 계 16:4~7과 단 7:21~22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과 살후 1:7~9의 유사점들은 무엇인가?
[계16:4~7] 셋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6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단7:21,22]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살후1:7~9]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답: 성도들이 신원된다는 것이 동일하다. 신원은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을 뜻하는데, 성도들의 심판은 바로 죄의 세상에서 겪은 고난과 핍박에 대하여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시90:15)라는 기도의 응답이 된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분명히 예수를 믿고 영생의 생명을 얻은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고 하셨다.(요5:24) 심판은 정죄냐 무죄냐를 판결하는 것인데 성도들은 이미 예수 안에서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으며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것을 그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판결하실 때 너는 사죄함을 받았기 때문에 죄가 없고 생명이 있다고 하실 것이다. 그래서 산 자의 하나님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생명의 세계에서 영원히 함께 살 것이라고 선고하신다. 그러나 예수를 거절한 사람들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죽은 자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막12:27)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없다. 죽은 자는 산 자의 나라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례할 수밖에 없다. 그 장례가 영원한 형벌이다. 그 장례는 화장이다.

교훈
하나님은 죄악을 포기하지 않는 자들을 멸하시되 결코 필요 이상의 고통을 가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어야 한다.


다섯째날(목) 9월 13일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림 [살후 1:10~12]

“그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살후 1:10).

1. 살후 1:10~12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 성도들에게 영광을 받게 되리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살후1:10~12]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답: 예수께서 이루신 구속사업의 결과를 보실 것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성도들은 주님께 영광이 된다. 사도들의 증거를 믿었다는 것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다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2. 바울은 신자들에게 재림을 어떻게 준비하라고 가르치는가?(살후 1:11 참고)

답: 성도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생활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넘치도록 수고를 했는데 결과가 없다면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생명을 버리시는 일을 하시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하셨는데, 그 결과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우리가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예수님의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거기 더하여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으로 날마다 살아간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이 우리들 중에서 영광을 얻고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엄청난 기쁨이다. 자기 생명을 희생하면서 이룬 사업이 아닌가. 그 결과로 아담의 많은 후손들이 생명을 얻어 주님 앞에 설 때에 우리 주님이 영혼의 수고한 것을 만족히 여기실 것이다.(사53:11) 그것이 주님의 영광이 되고 온 우주가 찬양할 것이다.  

교훈
재림의 날에 악인들은 멸망하지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공적인 사역의 결과로서 그분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여섯째날(금) 9월 1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성경은 감동을 입은 사람들로 말미암아 기록된 것이며 성경 자체가 하나님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표현 양식이 아닌 것이다. 성경은 사상과 표현에 있어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필자로서 대표되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어떤 표현은 하나님답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논리와 수사(修辭) 가운데 당신 자신을 두어 성경상 시련의 대상이 되게 하지 않으셨다.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필자들이었으며 하나님의 필촉이 아니었다....
성경의 말씀 자체가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감동을 받은 것은 사람들이었다. 영감은 인간의 언어나 표현 방법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 자신에게 작용하는 것이며 그는 성령의 감화로 말미암아 그의 사상이 그 감화에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개인적인 정신의 감명을 받게 된다. 거룩한 정신으로 물들여진다. 거룩한 정신과 의지가 인간의 정신과 의지에 혼합하게 되어 인간의 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성경의 진리는 한 단어씩 살펴보는 광범위한 언어 연구에서 드러나는 것입니까? 아니면 폭넓은 성경 통독과 주제 연구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까? 아니면 때와 장소에 따라 연구 방법을 달리해야 하는 것입니까?
※ 폭넓은 통독과 주제 연구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가장 타당한 것이며 또한 언어 연구도 곁들이면 더욱 좋다. 그러나 언어에 매이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➋영감에 대한 엘렌 화잇의 설명을 읽으십시오. 이를 통해 우리는 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인간적인 요소를 어떻게 이해하게 됩니까?
※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기의 능력 안에서 사람의 언어로 기록하기 때문에 그런 요소가 있다. 그러나 그런 것까지라도 성령께서 인도하셨다고 생각한다. 물론 축자영감은 아니라도 그런 언어와 사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성경에 두신 것이다.

➌재림은 그대를 공포에 떨게 합니까? 아니면 소망을 품게 합니까? 그대의 대답은 그대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또는 복음에 대한 그대의 이해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 재림은 공포가 아니고 기쁘고 복된 소망이다. 예수 안에서 이루신 구원의 결과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야말로 복된 소망일 수밖에 없다.

➍시험이 우리의 믿음과 품성을 강화시킨다는 개념이 진리일지라도 시험 때문에 절망과 후회와 분노를 느낄 뿐 아니라, 믿음까지 잃는 자들에게 우리는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바라보도록 권고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지나가는 것이며 당한 시험이 영원한 것을 버리게 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결코 지혜는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 세상이 아니고 영원한 세상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지나가는 것들로 인하여 낙심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세상은 아직도 세상 임금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극도로 활동하여 택한 자라도 미혹하고 낙심하게 할 수만 있으면 그렇게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요약 : 데살로니가후서 1장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신자들이 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믿음에 머물고 있음을 기뻐하였다.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 재림의 날에 상황이 역전될 것임을 지적하며 용기를 주었다. 지금 무슨 일을 겪더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공의를 행하시리라는 약속이 있다.

댓글목록

김종복님의 댓글

김종복 작성일

목사님 안녕하세요 교과 공부에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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