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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사도의 모본 [살전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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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금하 작성일12-07-25 22:09 조회4,844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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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사도의 모본 [살전 2:1~12]
MT: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2:4).

문) 당신이 존경하는 참 목자상을 가진 목사님이 계십니까? 어떤 특별한 점이 있습니까?

“어느 날이든 한 편의 설교를 듣기보다는 차라리 보고 싶네, 단지 가는 길을 말해 주는 설교보다는 나와 함께 동행 하는 설교를. 눈은 귀보다도 훨씬 더 훌륭하고 자발적인 학생, 훌륭한 권면은 혼란케 하나, 모본은 항상 명쾌하네. 가장 좋은 설교자는 그들의 신조대로 사는 사람들, 누구나 필요로 하는 것은 선(善)이 실천되는 것을 보는 것이네” (에드가 A. 궤스트, 에드가 A. 궤스트 모음 시집, 599, 600).

데살로니가 신자들의 신실함에 크게 고무되었던 바울 목사는 문안 인사를 마치고 지난날을 회상하게 됩니다. 박해 중에서도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증거한 이유와 데살로니가 신자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관심을 표현합니다.
이번 주는 바울의 목회관을 통해 복음 전도자의 자세와 사명의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연구 핵심 키워드]
(일)사도들이 고난 속에서도 담대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힘입어 증거 할 때 헛되지 않음)
(월)바울의 설교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던 비결은? (말과 행동에서 진실성을 확인됨)
(화)어떤 동기가 사도들의 증인의 사역을 가능케 하였습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기쁘시게 함)
(수)사도들의 신자들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모성애 같은 관심과 순교적 희생으로)
(목)명예로운 직분에 대한 거룩한 인식을 위하여 취한 솔선수범은? (자급자족을 위해 불철주야 일을 함)

<일요일> 고난 속에서 담대함 [살전 2:1~2]

[옵션]데살로니가 신자들은 좋은 소문의 진원지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 소문에는 부정적, 긍정적인 면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2장 이후 바울은 이 소문들의 진상을 소개하며 근본부터 다시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저들에 대해 아무 할 말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을 도와주고 싶어 합니다. 2:1-3:13의 바울의 변증과 고난을 이기는 믿음은, 변증과 믿음이 교대로 기록되면서 마지막에 기도로 마무리 합니다. 이번 주 연구범위의 2:1-12의 변증의 형식은 (A)너희가 안다 (B)바울 사역의 본 (C)사역의 목적과 이유의 형식이 4번 반복됩니다. (1)2:2-4=(A)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B)빌립보 고난 -복음, (C)하나님 기쁘시게 하려, (2)2:5-8=(A)너희도 알거니와, (B)아첨, 탐심 않음, (C)우리의 사랑하는 자됨, (3)2:9-10=(A)너희가 기억하리니, (B)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 (C)없음, 폐 끼치지 않으려, (4)2:11-12=(A)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B)아버지-권면 위로 경계, (C)부르심, 하나님께 합당히. 이런 삼중적 접근은 비난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중하고 특별한 형태의 조심하는 표현이며. 유모가 자녀를 돌보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사모하는 관심의 표현이며, 바울의 모범적 사역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토의1) 사도들이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까닭은?
   답: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2절)

혹자는 바울이 무서워 다시 데살로니가에서 도망갔으며, 다시 들어 오지 못한다고 음해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서 모진 박해를 이긴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떤 환난도 맞설 용의가 있음을 분명히 하면서 자신은 비겁자가 아님을 밝히며 너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 않느냐고 동의를 구합니다. 사실 바울의 담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근원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고후10:4)한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빌4;13). 사도들은 실패도 낙담도 하지 않으셨던,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인내하는 믿음을 보여야 하였습니다. 비록 그들의 길이 일견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들에 의하여 방해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분의 힘과 은혜를 의지하고, 결코 낙심하지 말고 모든 일에 소망을 가지고 전진해야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사명을 피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까닭이었다. 반대와 시기와 편견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사업을 계속하였고,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게 하셨다”-사도행적, 177.

요점) 빌립보에서 당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에서 다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던 사도들의 믿음과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월요일> 사도들의 품성 [살전2:3]

토의1) 2:3에서 전도와 봉사의 동기에 관하여 바울이 언급한 내용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답: 고대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위를 전환시키는 3가지 비법을 가지고 가르치는 자의 주장을 평가합니다. (1)화자의 품성(에토스 : ethos), (2)논리의 질(로고스 : logos) (3)설득력(파토스 : pathos)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급속한 변화를 가져오게 된 원인으로 복음의 핵심 요소인 사도들의 품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토의2) 사도 바울은 자신들과 거짓 교사들과 ‘다른점’에 대하여 어떻게 변증합니까?(3절)
   답: 바울은 적어도 그의 설교와 행동에서 거짓 목자들처럼 ‘간사(오류)’하거나 ‘부정(불순한 동기)’하거나 ‘궤계(속임수)’한 행위는 없었다는 것을 너희들도 아는 사실이 아니냐고 동의를 구합니다. 바울은 어떤 불순한 동기에서 남을 속이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복음만을 위해 힘썼다고 변증합니다. 데살로니가 신자들도 바울의 진실성에 대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복음 증거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정하신 영혼을 구원하는 수단인 반면에, 그리스도인다운 생활만큼 능력 있게 증거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치된 언행의 진실성에 달려 있습니다. 그 진실성도 상대방으로부터 인정받을 때에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늘의 분위기를 간직하였다. 그와 교제한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연합함에서 나오는 그의 감화를 느꼈다. 그가 자신의 생애로 그가 선포한 진리를 확증 하였다는 사실은 그의 수긍시키는 능력을 부여하였다. 여기에 진리의 능력이 있다. 거룩한 생애의 꾸밈없는 무의식적인 감화는 그리스도교에 호감을 갖게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설교이다. 반박할 수 없을 때에라도 논쟁은 반대를 일으킬 수 있으나, 경건한 모본은 전혀 물리치기가 불가능한 능력을 가졌다”-사도행적,501~502.

요점) 바울의 복음이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논리나 감성적인 호소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진실성이 묻어나는 그의 품성 때문이었습니다.

<화요일> 하나님을 기쁘게 함 [살전2:4~6]

바울과 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옳게 여기심을 입어(헬: 도카마조)“ 라는 말은 롬2;18; 빌1:10절에서 합당한 판단을 받거나 승인받는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처럼 현재 완료형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테스트를 받아 지금은 옳게 인정받고 있는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 용어는 4절 하단에서 ”감찰하시는“ 말로도 번역되었습니다. 사도들의 복음 전도는 자의적인 결과가 아니라 소명에 의한 하나님의 부탁과 보내심을 받아 감당한 사역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딤후1;9),”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롬10:15).

토의1) 사도들이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하게 된 동기와 자세에 대해 무엇이라 변증합니까?(4~6절)
   답: (1)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함 (2)아무 때에도 환심을 위해 비위를 맞추는 말이나 치부(탐심)하는 일에 직분을 이용(탈)하지 않았음 (3)사도로서 마땅히 받을 영광을 사람에게는 구하지 아니하였음.

[옵션]오늘날 메스컴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는 단어들입니다 “세습, 간음, 횡령, 사기, 독재, 거짓신비, 위선, 공갈, 명예욕, 망상, 과시, 자랑, 호화생활, 등등” 소위 교회 지도자들이 직분을 이용하여 저지르고 있는 악행들입니다. 재림교회의 사역자들은 어떻습니까? 우리 가운데도 거룩한 신분을 망각한 채, 자신의 영예와 욕망만 위하는 삯꾼으로 전락한 양의 탈을 쓴 노략질하는 이리와 같은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기만이나 간사스런 꾀를 통하여 개심자들을 얻고자 노력하지 아니하였으며, 개인의 인기와 명예와 사리사욕을 철저히 배제하고 순수하게 오로지 주님만을 높이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사도직을 감당하였습니다. 특히 ‘나’ 라는 말로 자신을 내세우는 대신에 일인칭 복수 대명사인 ‘우리’를 자주 언급함으로서 그의 성공적인 복음사역의 배경에는 젊은 사도 디모데와 실라의 조력이 절대적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경건하면 자랑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칭찬과 아첨의 말을 듣기 원하고 그것들을 달콤한 음식으로 먹는 자들은 이름만의 그리스도인이다”-산상 보훈, 80.

요점) 바울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에서 그가 복음을 전하는 최고의 동기를 찾았고 아첨과 탐심과 사람의 영광을 거절하였습니다.

<수요일> 극진히 돌봄 [살전2:7~8]

토의1) 바울 목사는 데살로니가 신자들을 어떻게 섬겼다고 변증합니까?(7~8절)
   답: (1)부드럽고 친절하며 사랑스런 유모의 심정으로 온갖 정성을 들여 보살핌. (2)영적 부모로서 너무 사모하고 사랑한 나머지 복음으로만 아니라 생명까지도 주기를 원함.

데살로니가가 속해 있던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은 사도들의 자상함과 희생적인 사랑의 모본에 환란과 시련으로 인한 극한 가난 중에서도 힘에 지나친 헌신과 자아 희생적 섬김과 봉사로 반응하였습니다(고후 8:1~5). 이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품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헌신은 헌신을 낳고 섬김은 또 다른 섬김의 정신을 양산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따라야 할 이유로서 사도들의 품성을 강조하면서 7~8절에 사도들과 데살로니가인들 사이에 커져가는 정서적 유대감을 언급하며 정서적으로 호소하였습니다. 복음은 마음을 움직일 때 가장 효과가 있습니다. 목사들은 지배자의 자세로 권위와 위엄을 가지고 성도들 위에 군림하려 하고 대접받으려는 정신은 없는지 항상 성찰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참 목사란? “참 목자의 정신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정신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업을 행하기 위하여 자아를 잊는다. 그는 말씀을 전하고 백성들의 가정에서 개인적인 봉사를 통하여 그들의 필요와 그들의 슬픔과 그들의 시련을 알게 된다. 그는 위대한 짐 진 자 그리스도와 협력함으로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들의 괴로움을 위로하고 그들의 영혼의 굶주림을 채우고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인도한다”-AA, 527

※봉사의 참동기 “목적의 진실 곧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친절은 하늘이 귀하게 여기는 동기이다. 하나님은 진실로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영혼을 오빌의 순금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신다”(산상보훈, 81).

요점)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봉사한 동기 중에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려는 마음 외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모와 같이 돌보려는 따뜻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목요일>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살전2:9~12]

토의1) 바울과 사도들은 데살로니가 신자들을 하나님과 천국에 합당한 자녀가 되도록 하기 위해 어떤 모습으로 목양에 힘썼습니까?(9~12절)
   답: (1)신자들에게 폐가 될까봐 자급자족 하였습니다. (2)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동하였습니다. (3)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였습니다.  

오늘날 혼신의 힘을 다해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녹을 받고, 교회가 어떻게 되든 직책을 빙자하여 온갖 혜택을 누리고 개인적 부를 축적하는 직업적 삯꾼들에 비해 바울은 사도로서 당연한 권리가 있었으나 비난할 구실을 주지 않으려고 밤 낮 자급자족을 하면서 무급으로 자아희생적인 사역을 감내하였으며,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영적인 사물을 가르치며, 동시에 근면하고 철저한 모본을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또 그는 복음의 문이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해 매사에 신중하면서 조심스럽게 행동하여 거룩하고 흠 없는 진실한 모본으로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에게 모성애적인 부드러운 면도 보였지만 때로는 부성애적인 준엄한 태도와 날카로움으로 하나님 자녀다운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권고하며 경계하기도 하였습니다.

토의2) 특별히 바울 목사는 신자들에게 무엇을 호소하고 있습니까? 이유는? (살전2:10)
   답: 사도들이 행한 것에 목격자요 증인이 됨.

사도들의 대적들은 (1)바울과 동료들이 기만적인 광신자라는 것. (2)이기적인 불순한 사상으로 행동한다는 것. (3)친절과 외견상의 열심은 얄팍한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 으로 중상모략하며 복음 사업을 방해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진실을 잘 알고 있는 데살로니가 신자들이야말로 자신들을 대변할 증인들임을 변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의 번영은 복음의 일터에서 활동하는 목사들에게 많이 좌우된다. 진리를 가르치는 자들은, 그들의 사업을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하도록 부르신 것을 알기 때문에 두루 다니며 선을 행하는 헌신적이고 자아 희생적이며 경건한 사람들, 영혼들의 가치를 느끼고 무거운 짐과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교회증언1권, 442

요점)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열심히 일하였고, 한결같이 바르게 생활했으며, 복음의 눈높이를 조절하여 위로하고 경계하였습니다.

[결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자 하는 진정한 소망은 그리스도를 효과적으로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동기입니다.

“우리의 길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영의 증거를 갖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가 이 증거를 지니고 있지 않으면, 만족해서는 안된다.”-설교와 강연2p,20



댓글목록

박금하님의 댓글

박금하 작성일

가족 휴가 일정(충남 보령 원산도)으로 제5과를 서둘러 올렸습니다.
성도님들 모두 폭염의 기승에 건강 조심하십시오.
잘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수용님의 댓글

정수용 작성일

바쁘신 와중에도 주인이신 주님의 말씀을 잘 이해할수있도록 도와주신 주님의 종에게
감사드립니다.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고 또 좋은 말씀 더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박금하님의 댓글

박금하 댓글의 댓글 작성일

덕분에 휴가 잘 다녀 왔습니다.
혹 휴가 다녀 오셨는지요.

원산도 교회에 다니고 계시는 장로님들과도 함께 지내고 왔습니다.
교회를 지키고 헌신하시는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말씀 안에서 영원한 동반자가 되셔서 기쁩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관현님의 댓글

민관현 작성일

오늘도 목사님의글을 톻해 많은것을배웠습니다.감사합니다.매주 목사님의글을읽고 나의부족함을 채워갑니다.다시한번 감사인사올립니다,감사하고,고맙습니다.

박금하님의 댓글

박금하 댓글의 댓글 작성일

주 안에서 하늘가는 길에 영원한 동반자요 친구인 민관현 형제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아는 일에 말씀의 은혜를 함께 나누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의 부족한 교과 연구를 경청해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한 가지 저의 신분에 대하여 오해하고 계시는 부분이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저는 목회자가 아닙니다.
태릉교회에 다니는 일반 평신도입니다.
하나남이 주신 은헤의 직분이 하나 있다면 그저 장로의 직함입니다.

그러나 장로 라는 직분도 과분하여 내려 놓고 싶은 충동이 늘 일어납니다.
왜냐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직분이나 신분은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이 가신 길만 따라가면 되거든요.

주님의 날에 주님을 꼭 만나시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한 안식일 되십시요. 저도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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