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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바울 시대의 데살로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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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금하 작성일12-07-13 14:29 조회5,15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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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바울 시대의 데살로니가
MT: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

문) 재림교회의 선교 사업에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1)예언(다니엘, 계시록)전도 (2)건강(뉴스타트)전도 (3)구호 봉사 (4)복음전도 (5)기타

1592년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침공한 왜군 15만 중 1할 가량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때 웅천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장수 고니시 유끼나가는 독실한 천주교인이었으며
그의 군단의 병사들의 대부분이 천주교인이었습니다.

출병 2년 동안 기후와 풍토, 전장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질병이 급증하고
전세가 기울고 장병들의 사기가 떨어지자 일본 예수회에 신부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여
포르투갈 신부 그레고리오 세스페데스와 일본인 후깐(不干)을 조선에 파견되었는데
1594년 12월 28일 세스페데스가 우리나라 웅천(熊川)에 상륙하여 역사상 최초로
조선 땅을 밟은 외국인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번 과에서 우리는 주로 데살로니가의 역사, 문화 그리고 고고학적 사실을 다룰 것입니다.
이유는 데살로니가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 바울의 활동상을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연구 핵심 키워드]
(일)로마 식민 지배하의 데살로니가 민중들의 심리적 욕구는? (억압과 횡포에서 자유와 정의를 구함)
(월)로마와 이교 신앙은 평민들에게 어떤 상처만 남겼는가? (희망에 대한 박탈감과 좌절, 영적 공허함)
(화)바울의 메시아적 접근법이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 민생, 종교적 여건과 상황이 영향을 줌)
(수)바울이 노방 전도에 힘쓴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대중 속에 들어가 언행으로 진리를 나타냄)
(목)바울이 가정교회를 세우고 천막 직업을 계속한 이유는? (천민들에게 다가가 위로와 소망을 주기 위함)

<일요일> 로마인들이 데살로니가에 주둔함 (요 11:48).

데살로니가는 B.C.316년 알렉산더 장군 카산더가 창건하였는데, 옛 ‘더메’시에 주변 소수 원주민과 다수의 헬라 이주민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후 B.C.168년 그리스(B.C.168년 로마에 패망) 도시들 간 내전 때, 데살로니가 시민들의 보호 요청으로 로마가 점령하게 되었고 우군인 로마의 자치권 허용으로 유일한 자유도시가 되어 스스로 내분을 해결하게 되는데 이런 결과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B.C.146년에는 로마의 마게도니아 정치적 수도로 자리 잡고 이어 켈트족, 이탈리아인, 기타 소수 민족이 로마의 군대를 따라가 정착하면서 약 20만명(유대인 약15%)의 인구를 가진 여러 기능을 갖춘 친황제 친로마 신도시로 변신합니다. 이러므로 철의 제국 로마의 패권주의 정책은 1세기 예수님 시대에까지 미치게 되었으며(A.D.70년 예루살렘 점령), A.D.476년 망하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토의1) 로마의 식민지 데살로니가는 전반적으로 어떤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까?
   답: (1)로마인들의 주둔은 경제적 혼란을 부채질했는데 특히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하류계층의 삶은 어려움이 가중되었습니다. (2)자치권에도 불구하고 행정력은 로마인들이 차지할 정도로 정치적 탄압은 계속되었습니다. (3)식민 지배에 따른 착취로 일정량의 세금을 징수 당했으며, 모든 생산품들도 일정 비율로 로마에 바쳐졌습니다. 결국 로마의 주둔으로 인한 횡포와 억압으로 민중들은 삶이 더욱 피폐해지자 자유와 정의, 변화를 바라는 욕구와 열망이 들끓게 되었는데 이는 복음의 문이 서서히 오픈되고 있는 청신호였습니다.

적용) 예수님은 이런 정치적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셨을까요?
   답: “그분께서는 정치적인 세계에는 간악한 처사와 심한 횡포가 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다만 성경의 진리를 선포하심으로 이런 일을 폭로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발자취를 따른 수많은 군중에게 순결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들을 제시하셨고, 그 원칙들을 순종할 때 얻는 축복을 말씀하셨다. 하늘에서 온 권위를 가지고 그분께서는 공의와 자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교회증언9권, 218.

요점) 바울의 시대에 데살로니가는 로마로부터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받는 도시였지만 서서히 정치적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월요일> 로마에 대한 이교도의 반응 (요일 2:15)

토의1) 바울 당시의 데살로니가 종교는 어떤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까?
   답: 데살로니가에는 (1)민간신앙 (2)카비루스 종파 (3)유대분파 등 3대 종파가 있습니다. 역대 왕들을 숭배하는 소수 귀족들의 종교 ‘민간신앙’은 친일파들처럼 사회적 지위와 부를 지키고 전통과 맥을 잇기 위해 로마황제 가이사를 신으로 숭배하고 로마의 친위대 역할을 자행했습니다. 신비 종교인 ‘카비루스’ 종파는 바울이 오기 전 200년 전부터 숭배한 데살로니가 주류 종교이자 평민종교입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말하였을 때 이들은 낯익은 소리처럼 귀가 솔깃했는데 이유는, 카비루스는 하류계층의 대변자로서 수호신으로 예배하던 순교당한 영웅이었고 압제받는 자들의 구원자로 추앙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민들은 그가 다시 나타나 가난과 로마의 억압과 지배 계층의 속박에서 해방시키고 정의를 구현하여 그 도시의 이전 영광과 독립을 회복할 것이라며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시대에 로마와 결탁한 민간 신앙의 귀족들이 카비루스를 가이사와 연루시켜 추종하는 동시에 "데살로니가 시신(市神)"으로 지위를 격상시켜 귀족종교로 만들었습니다. 이에 수호신과 영웅을 찬탈당한 노동자와 평민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카비루스에 대한 신앙심과 종교성이 사라지면서 공허감은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토의2) 영적으로 공허하고 상실된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답: (1)창조주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경배의 대상이시며 (2)예수 그리스도만이 카비루스에 두었던 종교적 소망과 꿈의 궁극적인 실현자임을 제시하고 일깨워줘야 합니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음성과 말로 진리를 제시하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높임을 받게 하라. 진리의 긍정적인 면을 제시하라...진리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류 가운데 있는 자들의 모순을 지적해 주도록 하자”-복음전도,576

요점) 바울 당시의 데살로니가인들은 영적으로 공허했으며 그들의 심령을 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었습니다.

<화요일> 접촉점으로써의 복음 (고전 9:23)

하나님은 절묘한 타이밍의 대가이십니다. 이른비와 늦은비도 적당한 때에 내려 주시듯이 카비루스 종교적 사건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영적 갈망을 일으키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이르렀을 때, 이미 도시의 노동 계층은 마음이 열려 다수가 복음에 반응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대중의 필요와 소망과 꿈을 자극할 때 그 영향력은 막대해집니다. 특히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사상에 문을 열게 하는 변화 가운데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인과 불행 등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변화와 전환의 경험을 폭넓게 공유하고 있었으므로 복음이 뿌리내리기에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토의1) 고전9:19~27에 보면 바울은 어떤 선교적 패턴을 구사합니까? 부정적인 요소는 없을까요? 이런 전략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1)바울은 유대인(율법 있는 자)에게는 유대인 같이 되었고 (2)율법이 없는 자(이방인)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원칙 없는 상황윤리를 말하는 것일까요?

복음을 증거 함에는 넓은 도량과 기지(機智)와 지혜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1)‘유대인을 접근법’은 반감을 없애기 위해 먼저 예수를 제시하지 않고 메시아의 사명과 사업에 대한 예언을 소개하다가 율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어 의문에 율법에 경의를 표하면서 제사 제도를 세우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설명하고 구주의 초림과 생애와 죽으심을 통한 제사의 목적이 성취됨을 가르쳤습니다. (2)‘이방인 접근법’은 그리스도를 먼저 말하고 율법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이 때와 경우에 따라 일하는 방법과 기별 전하는 법을 달리한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을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었습니다.(고전9:23)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꾼들은 가장 좋은 방법을 연구하여 반감이나 논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친절한말, 단순한 표현, 약간의 관심을 보여 준 단순한 태도는 영혼을 둘러싸고 있는 유혹과 의심의 구름을 걷히게 한다.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것과 같은 동정심을 진실한 마음으로 단순하게 나타내 보일 때에 그리스도의 영의 단순하고 다정한 보살핌을 요구하는 영혼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하는 힘을 준다”-복음전도, 483

요점) 데살로니가는 복음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같이 선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면 결실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수요일> ‘노방 전도자’ 바울 (행 17:17).

토의1) 바울과 철학자들이 왜 노방에서 사람들과 접촉했습니까?
   답: 광장이나 시장의 거리에서 공중을 대상으로 하는 노방설교는 예나 지금이나 문화였습니다. 공중 설교자들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문화생들의 삶에 변화를 위한 수단으로 개인적인 대화, 대중연설, 공개토론을 자주 가졌는데, 대상에 따라 가르침을 다양화했고 자신이 주창한대로 모든 면에서 일치된 언행으로 솔선수범의 필요성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사람들에게 삶에 변화시킬 내적 수행능력이 있다고 가르치면서 자아를 신뢰하게 하였으며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현재의 사상과 행위에 끊임없는 의구심을 갖게 하고 도덕적 성장을 위해 새로운 사고 전환과 개방의 불가피성을 설파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들은 도덕적 자유를 핑계로 부도덕한 위선적인 삶을 살았으며 가르치는 직업을 생계수단과 성적 착취를 위해 이용했을 뿐입니다.

토의2) 바울이 노방전도에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설파했습니까?
   답: (1)복음을 가르쳤습니다. (2)교회라는 공동체 형성에 힘썼습니다. (3)이교 철학이라는 바벨론에서 나와 그리스도의 몸인 생명과 진리의 공동체에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4)바울은 냇물을 깨끗하게 하려면 샘물을 고쳐야 하는 것처럼 인간의 악한 본성을 고치고 변화시키려면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만이 가능하다고 역설했습니다. (5)바울은 철학자들과 달리 영리적 수단이 아닌, 오로지 순수한 복음 증거를 위하여 스스로 자급자족(텐트 장사)을 실천하므로 놀고먹는 선생들과 차별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바울의 가르침은 단순한 철학 이상의 진리의 선포였고,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사역의 계시였습니다.

“인간 교사들 중 가장 위대한 사람 중 하나인 바울은 가장 천한 의무도 가장 높은 의무들과 마찬가지로 기쁨으로 수행하였다. 주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가운데 환경이 이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 때, 그는 기꺼이 손으로 하는 일에 종사하였다. 그의 열심과 근면은 게으름과 안일을 갈망하는 태도에 대한 견책이다”-사도행적, 354

요점)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 가르쳤던 바울은 접근 방식에 있어서는 당시 철학자들과 비슷했지만 내용면에서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목요일> 가정 교회들 (롬 16:5)

오늘날 목회든지 개인적 신앙이든지 초대교회 정신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목회도 도시 변두리나 농촌 등 생활 여건이 불편한 작은 교회보다 되도록 모든 것(아름다운 건물, 넓고 좋은 사택, 전용차량, 인적자원풍부, 삼육교육학군)이 다 갖추어진 지역의 큰 교회 등 목회하기 좋은 풍토와 여건이 편한 곳을 너도나도 선호하고 동경하고 있습니다. 시골교회로 발령 나면 좌천으로 여기고 큰 교회나 도시교회나 기관으로 발령 나면 출세한 것으로 여깁니다. 신자들도 작은 교회, 개척교회, 시골교회, 가난한 교회, 교통이 불편한 교회는 싫어하고 다니기 편하고 헌신하지 않아도 티 나지 않는 그런 교회를 선호합니다. 또 교회는 못살고 못 배운 사람보다 잘살고 많이 배우고 배경이 좋은 사람들을 우대하고 위합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계층들은 사회에서도 소외당하고 교회라는 곳에서도 홀대받는 시대입니다. 전도 사업도 사회적 신분과 배경이 좋은 영혼들에게 타깃을 두고 하지만 낮은 계층 사람들은 꺼려하고 교회 오는 것조차 별로 반기지 않습니다. 교회도 작은 교회들을 한군데로 합쳐 통합시키자고 반 복음적인 주장들을 서슴치 않습니다.

토의1) 바울이 노동자 계층을 구원하기위해 어떤 희생을 무릅썼습니까?
   답: 바울은 회당과 길거리, 상점과 노동 현장에 가서 닥치는 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는지, 듣던지 아니 듣던지 항상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특히 그의 편지에서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롬 16:5).고 부탁하는 장면을 봅니다. 바울은 수많은 교회와 신자들을 돌보면서도 도시에 거주하는 노동 계층으로 이루어진 조그만 가정교회인 ‘홈 처어치“에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쏟았습니다. 바울은 엘리트요 상류층이었지만 회심을 한 후에 복음 전도자로 직접 ’텐트메이커‘를 자부하면서 그런 노동의 방식을 통해서 자신을 노동자 계급과 일치시키고 그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고전9:19~23 참고).

“가난한 자와 배우지 못한 자들은 돌보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을 아무도 가져서는 안 된다. 올바른 전도 방법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도 이런 자들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복음이 가난한 자에게 전파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메시아가 되신 증거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 이 시대를 위한 특별한 진리를 깨달을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하여 연구해야 한다”-리뷰 앤드 헤럴드, 1890년 11월 25일.

적용) 소그룹 활동이나 구역반은 지역사회 구석구석 여러 계층들과 친숙해지고 그들의 필요와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자 ‘홈 처어치’이며 교회의 기본 단위입니다.

요점) 바울은 도시의 상점과 작업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가정 교회를 이루고 하류 계층에 다가서기 위해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결론] 복음은 우리가 주님께 인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특정 필요를 위해 채워 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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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하 작성일

※교과 토의 주제를 중심으로 해답을 찾아가도록 적절한 질문을 하십시오.
※전체 내용(산)을 등산하면서 교과가 의도하는 핵심(나무)을 탐험하게 하십시오.
※교사는 설교형 주입식 교수, 본문과 무관한 예화, 사담, 잡담을 지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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