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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바울 시대의 데살로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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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2-07-13 10:23 조회4,8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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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바울 시대의 데살로니가


기억절:“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9:19)



첫째 날(일) 로마인들이 데살로니가에 주둔함


로마인들이 데살로니가에 주둔하게 된 계기는 데살로니가 인들의 요청에 의해서였습니다.
기원전 168년경 그리스 도시 국가들 사이에 내전이 일어났을 때, 데살로니가인들은 로마를 방문하여 자기 도시를 점령하고 주변 적국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의 자발적인 요청에 고무된 로마는 데살로니가에 상당한 자치권을 허용합니다.
이로 인해 바울 당시의 데살로니가는 친 로마, 친 황제의 정책을 견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에 대한 로마의 지배는 3가지 부정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첫째, 로마인들의 주둔은 경제적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특히 서민층에게 큰 타격이 있었습니다.
둘째, 상당한 자치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무력감이 있었습니다.
셋째, 식민 지배에 대한 착취의 불가피성입니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바울 당시의 데살로니가는 로마의 주둔으로 인한 불가피한 중압감으로 인해 새로운 변화를 열망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날(월) 로마에 대한 이교도의 반응


데살로니가인들이 느끼고 있던 무력감이 카비루스파라 불리는 종교적인 운동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카비루스가 권리 박탈자들을 대변하다가 암살당한 사건으로 인해 그는 영웅적인 순교자로 추앙되었습니다.

서민들은 카비루스가 언젠가는 다시 살아나서 자신들을 돕고 정의를 가져올 것이며 데살로니가가 이전 영광과 독립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카비루스파는 억압받는 자들에게 성경의 소망에 견줄 수 있는 소망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반대의 다른 세력이 출현하게 되는데 그것은 아우구스투스 치하에서 황제 숭배파였습니다.
로마인들은 황제 숭배파가 일어나자 카비루스가 이미 가이사가 되어 나타났다고 선포했습니다.
지배 권력이 억압받는 백성의 소망을 흡수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데살로니가의 영적 생활은 노동 계층에게 더 이상의 위안이 되지 못했습니다.
카비루스에 대한 로마의 대응으로 인해 백성들의 마음에는 영적 공허함을 남겼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마음의 공허함이 깊어지고 있을 때에 바울이 소개하는 그리스도는 데살로니가 인들이 카비루스에게 두었던 소망과 꿈의 진정한 성취였으며 복음은 현재의 내적인 평화뿐 아니라 재림 때에 완성될 경제적 정치적 현실의 일대 반전을 제공하였습니다.


셋째 날(화) 접촉점으로써의 복음


현실에 대한 깊은 실망감과 권력 및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의 상태는 복음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만든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의 노동 계층은 이미 마음이 열려 있었습니다.

복음이 대중의 필요와 소망과 꿈을 자극하게 되었고 그 영향력은 심히 컷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복음은 사람들이 마음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청중이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할지라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거나(롬10:14, 17) 성령의 감화가 없다면(고전12:3) 청중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넷째 날(수) ‘노방 전도자’ 바울


데살로니가에는 공개 토론회 형태로 개인과 단체에 영향을 미치려는 유명 철학자들이 급증하였습니다.
철학자들은 문하생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대중연설과 개인적인 대화 방식을 사용하였기에 청중들은 새로운 시고와 변화에 개방적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바울이 공공장소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에 대해 낯설어 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접근법과 유명 철학자들 사이에는 현격한 두 가지의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바울은 공공장소에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지속적인 공동체 형성을 추구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와의 유대감 형성 및 깊은 헌신과 함께 세상으로부터의 분리가 필요했습니다.

둘째는 회심은 지혜로운 설교에 감동하여 내적으로 일어나는 결심이 아니라 인간 밖에서 오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역의 결과라고 가르쳤습니다.(갈4:19, 요3:3-8, 빌1:6)

바울의 가르침은 단순한 철학 이상이었고 진리의 선포였으며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사역의 계시였습니다.



다섯째 날(목) 가정 교회들


로마 사회에는 두 종류의 거주 형태가 있었습니다.
부자들은 둘레에 마당이 있는 큰 단독 주택 형태의 도무스에서 살았습니다.
보통 30-100명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집은 바닥층은 가게나 작업장이 있고 그 위에 집들이 있는 인술라라는 가옥이었습니다.
도무스 그리고 여러 개의 인술라는 2-3세대 대가족, 가업 고용인, 방문객, 심지어 노예들을 위한 거처가 되었으며 가장이 회심하면 그곳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습니다.

도시 가정교회의 이상적인 위치는 도시 회관 근처였습니다.
가옥과 연결된 가게와 작업장에서는 기술자, 무역업자, 고객, 직장을 구하는 단순 노동자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바울의 사역은 대부분 이런 환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도시의 상점과 작업장으로 갔으며 하류 계층의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은 모든 계층입니다.
특정한 계층을 소외시키거나 편중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자와 배우지 못한 자들은 돌보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을 아무도 가져서는 안 된다. 올바른 전도 방법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도 이런 자들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복음이 가나나한 자에게 전파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메시아가 되신 증거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 이 시대를 위한 특별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하여 연구해야 한다.”(리뷰 앤 헤럴드, 1890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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