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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관계를 보존함(질문, 대답, 부가설명)07/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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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2-07-06 13:15 조회5,78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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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54분

기억절 :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연구 범위: 행 17:5~9,
행 17:10~15, 행 17:16~34, 고전 1:18~2:2, 살전 2:17~3:10.

중심 사상 : 진정한 전도는 시간의 시험을 견디고 영원을 위해 인내하는 관계로 인도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의 전도 집회를 열었다. 집회는 매우 뜨거웠지만 지역 종교 지도자들과 폭도들의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다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시의회는 바울을 추방하였다.
이번 과는 데살로니가를 복음화하려던 바울의 시도가 남긴 여파를 다룬다. 그 같은 경험 후라면 반대와 난관에 신경이 곤두서기 쉽다. 그러나 바울의 심령은 주로 데살로니가의 새로운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맺은 관계에 집중되었다.
바울은 신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짧은 시간만으로는 그들이 실망과 부정적 영향에 상처 받기 쉬우리라는 사실을 바울은 알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대신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 서신들이 신약성경의 데살로니가전서와 데살로니가후서가 되었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진정한 전도란 우리가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그들을 돌보는 것까지 포함됨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우리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에게 시간뿐 아니라 우리의 삶까지 투자할 필요성에 공감한다.

➌ 행하기 : 사역 자체보다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로 결심한다.

A.
❷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특별하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살전 2:17~3:10)
※ 그들에게 복음을 충분히 증거하여 가르치지 못한 상태에서 핍박을 당하여 떠났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복음을 확실하게 하고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❸ 데살로니가 교회를 그리워하는 바울의 마음에서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 복음을 확실하게 하려는 마음과 그들과 인정과 사랑으로 연결되어서 서로 그리워하는 정서감을 배워야 할 것이다.

❹ 영적으로 친밀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정서적으로 친밀한 감정으로 연결되는 것과 또한 확실한 복음에 굳게 서게 하는 것이다.

B.

❷ 데살로니가를 떠난 다음 바울은 각 도시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했습니까?
※ 그 도시의 문화와 풍습과 생활상태를 살펴서 복음을 전하였다.

❸ 여러 방법으로 복음을 전한 바울에게서 배워야 할 원칙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어떤 방법으로 전하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되심을 전하고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이다.
❹ 우리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야 합니까?
※ 그 지역에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역민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증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전도의 결과이다.

첫째날(일)
7월 8일
데살로니가에서의 반대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행 17:6).

행 17:5~9을 읽어 보라. 바울의 기별에 반대하는 자들의 주된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도시 당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반대자들은 어떤 주장을 펼쳤는가?

1. 행 17:5~9을 읽어 보라. 바울의 기별에 반대하는 자들의 주된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도시 당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반대자들은 어떤 주장을 펼쳤는가?
[행17:5~9]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

답: 주된 동기는 시기였다. 그들은 바울이 가이사 외의 다른 임금을 전한다고 고소하였다.

<부가설명>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할 때에도 가이사를 들먹였다. 정치적으로 정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곳에서도 동일한 수단을 사용하였다. 종교와 신앙을 핍박 하는 데는 민중들이 그렇게 할 권리가 없다. 당연히 정치권력을 동원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핍박의 현장에는 정치적 논리가 등장하게 된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중세에는 종교가 정치권력까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종교의 비위에 거슬리면 가차 없는 핍박이 가해졌다.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성경 예언에는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계시하고 있다. 재림성도들은 이런 것을 감안하여 확고한 믿음으로 진리에 서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고소의 이면에는 이기심과 시기심과 금전적 사실들이 도사리고 있다.

교훈: 복음은 유대 사회뿐 아니라 로마 제국 내 도시들, 특히 데살로니가에서도 반대와 핍박에 직면해야 했다.


둘째날(월)
7월 9일
베뢰아에서의 일화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1. 그런데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느끼지 못한 것을 베뢰아에서 경험하였다. 그것은 얼마나 다른 경험이었는가?(행 17:10~15) 이 차이점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게 되는가?
[행17:10~15]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답: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고, 그것을 성경으로 확인하여 믿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났다. 우리도 말씀을 간절하게 받을뿐만 아니라 그것이 성경적으로 옳은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부가설명> 성경을 배우는 것은 성경에 있는 내용을 지식으로 배우는 것만이 아니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을 배우는 것은 생명을 얻기 위한 것이다. 사람은 아담 안에서 이미 사망이 되었다.(고전15:22) 그런 사망의 존재가 성경말씀을 배울 때에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을 믿어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요20:31) 성경을 바르게 배우고 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생명을 얻는 길이 오히려 영원한 사망을 더욱 확실하게 하는 것이 된다.(벧후3:15,16) 그러므로 베뢰아 사람들의 모본은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영구하고 아름다운 모본이 된다. 지금도 예수를 믿고 영생의 생명을 얻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여 배운 것을 성경으로 확증해야 한다. 그래서 올바르게 성경의 진리를 따라 믿음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교훈
진실하고 열린 정신으로 새로운 사상을 경청하고 그것을 성경과 대조한 뒤에 받아들였던 베뢰아 사람들은 우리가 따라야 할 모본을 가르쳐 주었다.


셋째날(화)
7월 10일
짧은 아테네 방문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행 17:23).

1. 행 17:2~3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설교할 때에 구약의 메시아를 주제로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아테네의 이방 철학자들에게 설교할 때는 무엇을 주제로 시작하였는가?(행 17:16~34) 이런 접근법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행17:2,3]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행17:16~34]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19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 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답: 그들의 문화와 풍습을 주제로 강론을 시작하였고, 그들의 문학을 인용하여 설명하였으며, 그들의 관심이 있는 사실을 가지고 증거하였다.

<부가설명> 전도할 때 상대방과 공동관심사를 조성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대상이 흥미를 두고 있는 것에서 말을 시작하면 집중력이 생긴다. 대상의 관심사를 알아서 그것에서 예수를 증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대상의 전문성이 무엇인지, 가문이 어떤지, 지식 정도가 어떤지, 가정환경과 일반적으로 나타내는 성격이 어떤지를 알고 접근하고 증거를 시작하는 것은 잘 하는 일이다. 바울은 전도할 지역의 문화와 정서와 사람들의 상식정도와 종교 상황을 즉시 파악하고 합당한 대처를 한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목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을 강조하였다. 그분에게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교훈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들의 문화와 세계관을 먼저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다.


넷째날(수)
7월 11일
고린도에 도착함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고전 1:22~23).

1. 고전 1:18~2:2을 읽어 보라. 바울의 요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아테네와 고린도에서 펼친 바울의 선교 전략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는가?
[고전1:18~2:2]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답: 바울의 말의 요점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이며, 예수님만이 생명이요, 의와 지혜와 거룩함과 구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아테네에서 그들의 문화와 그들의 상식을 가지고 창조주를 증거하였으나 고린도에서는 오직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외에는 다른 것을 증거하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부가설명> 성경의 종교와 신앙은 예수님이 전부이다. 인간의 지식도 인간의 선도 인간의 재물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도구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지만, 구원과 생명을 위하여서는 오히려 방해가 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전에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다 해로운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겼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만이 가장 고상하였고 예수님만이 그의 전부라고 고백하였다. 그는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0,21)고 말하였다. 그는 아테네와 고린도에서 예수를 증거하면서 이 사실을 깊이 인식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것은 동일한 사실이다. 오직 예수, 예수님만이 모든 것이다. 그분만이 나의 전부가 되게 하자. 아멘.

교훈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은 전략을 달리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을 그들의 처지에서 만나라.’는 그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섯째날(목)
7월 12일
바울이 그의 마음을 드러내다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살전 3:7).

1. 살전 2:17~3:10을 읽어 보라. 바울은 이 신자들에게 얼마나 정서적으로 밀착되어 있었는가? 이 말씀의 교훈에 따르면 우리가 돌보는 사람들과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살전2:17~3:10]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3:1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3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답: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얼굴을 대하여 보기를 원하였다. 바울의 정서가 그들과 아주 밀착된 교감을 이루고 있었다. 전도자는 전도받은 자들과 이런 정서적 교감이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의 지식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부가설명> 전도자는 그가 전도하여 구주를 영접한 사람과의 관계가 부자의 관계, 또는 모자의 관계를 형성하는 정서감을 가지게 된다. 바울은 그렇게 말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 그러니까 혈육의 정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신령한 생명의 관계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님께 연결하는 역할일 뿐이지, 전도자가 생명을 낳아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 신자가 된 사람들에게 바울이 나타낸 것과 같은 애정을 가지고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된 혈연의 사랑으로 돌보는 것은 당연한 것임을 바울의 마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교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자들을 매우 그리워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소식은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여섯째날(금)
7월 1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낮추고 친절하고 예모 있고 부드럽고 동정적일 것 같으면 오늘날 단 한 사람 밖에 없는 곳에 일백 명의 사람이 진리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록 회개했노라고 공언하면서도 우리는 너무 귀중하기 때문에 도저히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단의 자아를 우리와 함께 가지고 다닌다. 이 무거운 짐을 예수님의 발아래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품성과 모습을 그 대신에 취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구주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교회증언 9권, 189~190).
“그의 지상 봉사 기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죄의 속박에서 세상을 구하는 이 사업에 나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제시하셨다. 그분은 그 모든 사업을 통하여 각자 봉사하도록 그들을 훈련시키셨으므로 그들의 수효가 증가함에 따라 사업은 점점 확장되어 마침내 세상 끝까지 미치게 될 것이었다. 그분이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교훈은 그들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도록 위탁받았다는 것이었다”(사도행적, 3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기독교가 명백하게 잘못된 방식으로 행동했던 예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그와 같은 과오를 피해야 합니까? 경우에 따라 지금도 우리가 그런 과오를 범하고 있습니까?
※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강압과 권세로 사람들을 교회로 들어오게 한 일이다. 사랑과 가족애로 사람들을 사랑의 하나님께 연결하도록 증거해야 한다.

➋ 교회증언 9권 189쪽에서 엘렌 화잇은 ‘자아’가 잃은 자들에 대한 효과적인 전도와 회심에 장애물이 된다고 했습니다. 자아는 우리의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 표출됩니까? 어떻게 하면 자아를 죽일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 화잇이 자아라고 한 것은 예수님을 제쳐놓고 인간이 나타나는 것을 뜻하였을 것이다. 바울처럼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할 때 자아가 표출되지 않을 것이다.

➌‘대사명’의 핵심은 ‘제자 양성’에 있습니다(마 28:19~20). 제자가 되거나 제자를 만들었던 그대의 경험을 나눠 보십시오. 그대가 다니는 교회의 제자훈련의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어떻게 하면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제자훈련이 될 수 있을까요?
※ 각자가 대답할 질문이다.

➍ 그대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그대는 바울이 왜 그런 용어를 사용했다고 생각합니까? 가장 소중한 진리가 사람들에게 어리석게 여겨지는 것을 볼 때, 실재에 대한 우리의 이해력이 얼마나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사람들이 자기의 상태를 생명의 상태라고 여기고 있을 때에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살아가는 것이 곧 죽어가는 것인 존재임을 진정으로 시인하면 십자가는 생명의 복음이다. 가장 소중한 진리가 사람들에게 어리석게 여겨지는 것은 인간의 처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요약: 삼 주간의 짧은 시간 동안 바울의 마음은 데살로니가의 새 신자들에게 매우 밀착되었다. 그들에게 다시 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우선 디모데를 파견하였다. 성령의 지도를 받아 바울은 그의 마음을 두 편의 편지에 실어 보내었다. 진정한 전도는 단지 기독교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인 삶은 모두 그리스도의 신앙과 관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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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복님의 댓글

김종복 작성일

목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의 부가설명 중에 성경을 배우는 것은 성경에 있는 내용을 지식으로 배우는 것만이 아니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을 배우는 것은 생명을 얻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상고하며 배운 것을 성경으로 확증해야 한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그리스도의 기쁨이었다,이제 이것을 그대의 일,그대의 기쁨으로 삼아라,모든 의무를 수행하며 기리스도를 위하여 어떠한 희생도 아끼지 말라,그러면 예수게서는 영구적인 조력자가 되실 것이다,의무를 행하라고 부르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하여 똑바로 전진하며 어떠한 난관도 그대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라,하나님게서 그대에게 지워 주신 책임을 지고,그대가 때때로 무거운 짐을 졌을 때에"어찌하여 나의 형제는 아무 멍에도 지지 않고 가만히 놀고 있습니까?"하고 묻지 말라,그대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의무를 행하되 철저하게 잘 하며 칭찬 듣는 것을 탐하지 말고 그대가 주님께 속하였으므로 주님을 위하여 일하라,우리는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과 수단을 연구하여야 한다 목사님 몸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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