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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전도와 증거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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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금하 작성일12-04-20 10:07 조회4,885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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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전도와 증거의 생활
MT: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9:36)

문1)당신은 불쌍한 사람을 보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어디에 해당되는지 체크해 보자.
1,나는 가난하지만 불쌍한 이웃들에게 힘껏 도움을 베푼다.
2,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불쌍한 이웃들을 힘껏 돕지 않는다  
3,나는 가난하지는 않기 때문에 불쌍한 이웃들에게 힘껏 도움을 베푼다.
4,나는 가난하지 않으면서도 불쌍한 이웃들을 힘껏 돕지는 않는다.

신앙의 연조는 깊어도 이기심은 사라지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은 믿어도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예수님을 증거 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원수는 사단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거듭나지 않은 이기심이라는 우상이다.

<일요일> 말 없는 설교 (요13;35)

유니세프 봉사 활동 등 영화처럼 살다간 영국의 세계적인 미모의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남긴 유언(샘 레벤슨의 시)이다.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아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자신이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해서 걸어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치유되어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기억하라! 만약 내가 도움을 주는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토의1)복음을 말로 전하는 것과 생활로 증거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차이점은?
토의2)요13:35절에서 예수님은 참 제자의 특성은 어떤 것이라고 하셨는가?

“피차간에 이타적인 사랑의 정신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들이 결코 반박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그리스도를 위한 증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교증5권,167

“인간의 궁핍과 고난과 권리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종교는 거짓 종교이다. 가난한 자들과 고난당하는 자들과 죄 많은 자들의 요구를 무시할 때, 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자들임을 입증하게 된다. 그리스도교가 세상에서 이처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실제의 생활에서는 그분의 품성을 부인하기 때문이다”(산보,137).

교훈)복음의 위력은 우리가 말로 전할 때보다 우리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삶으로 전할 때 훨씬 강력하다.

<월요일> 긍휼의 마음 (마9:38)

‘토머스 에덤스’는 “다른 이에게 긍휼을 요구하면서 자신은 긍휼을 드러내지 않는 이는, 스스로 자신이 건널 다리를 부수는 사람이다.” 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라고 말씀 하셨다. 자비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사랑과 생명이신 분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어 버리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를 거절하는 마음이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잘못을 범하는 자들, 시험을 당하는 자들, 궁핍과 죄의 희생물이 된 가련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을 때, 그들을 도와 줄 가치가 있을까 하고 묻지 않고, 내가 어떻게 하여야 그들을 도와 줄 수 있을까 하고 묻는 마음이다. 가장 가련하고 가장 비천한 사람들 속에서 주님께서 죽으시기까지 구원하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시켜 화목의 봉사를 하도록 하신 영혼들을 보는 마음이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불쌍한 자들, 고난 중에 있는 자들, 압박당하는 자들에게 동정을 보이는 그런 사랑스런 마음이다.

토의1)왜 주님께서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 기도하라 하셨는가?(마9:38)

몇 년 전에 우리 태릉교회에 한 두 명의 노숙자가 찾아왔다. 나는 스스로 그들과 함께하면서 따뜻하게 대접해 주고 필요를 채워주고자 힘썼더니 더 많은 노숙인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아예 그들의 재활을 위해 공동으로 생활할 숙소와 터전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는데, 주님께서 삼육대학 건너편 갈매리에 집을 한 채 마련해 주셨다. 그리고 이러한 긍휼의 마음을 신자들(일꾼)이 알고 노숙인들이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이며 재정들을 십시일반으로 남몰래 도와주어 봉사하는 일이 교회 도움  없이 수월하게 이루어졌던 경험이 있었다.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는 주님의 요청은 하나님께서 더 많은 일꾼의 필요성을 아시고 공급해 주시리라는 약속이었다.

“하늘과 땅을 살펴보라. 우리의 동정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비의 행동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보다 더욱 능력 있게 나타나는 진리는 없다. 이것이 곧 예수님의 진리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황금률의 원칙을 실천할 때, 복음 사업에는 사도 시대에 나타난 것과 동일한 능력이 따를 것이다”(산상보훈, 137).

교훈)우리의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더 많은 일꾼들을 약속하셨으며 이는 우리에게 있는 긍휼의 마음이 전달될 때 실현될 것이다.

<화요일> 그들의 입장에 섬 (고전9:22)

지붕은 천막, 벽은 구멍이 숭숭 뚫여 찬바람이 들어온다. 1평도 안되는 쪽방 같은 곳에서 전기 장판하나로 겨울을 난다. 치아는 다 빠져 밥알 씹는 것조차 어렵다. 얼굴은 병색이 돌고 절망의 그늘로 덮여 있다. “채 아무개님 이렇게 살 바에 저하고 교회 같이 다닙시다. 그럼 하나님이 지금보단 나은 삶을 주실 것입니다” 서울 중랑구 묵동에 이런 곳이 있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그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홀아비 신세로 리어커에 고물을 수집하여 간신히 생활하는 그의 입장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도하기 시작하며 방법을 찾아보았다. 일단 틀니라도 해야 밥을 먹을 수 있기에 우리교회 치과를 하시는 정 집사님께 원가만 지불하고 해주려고 데려 갔더니, 그 영혼의 입장을 알고 백만원이 넘는 틀니를 무료로 해 주셨다. 지난 2월에는 하나님께서 아늑하고 따뜻한 방을 마련해 주셔서 지독한 고생스런 삶을 면하게 되었으며 그는 침례를 받고 태릉교회 믿음의 한 가족이 되었다. 도르가에서 매월 밑반찬도 만들어 도와 주고 있다. 전도는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필요를 채워주며 희노애락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토의1)고전 9:20~22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어떤 전도 접근방식을 보여 주고 있는가?
토의2)하나님은 영혼 구원을 위해서는 원칙을 희생하는 것도 용인 하시는가?(히4:15)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은 곧 죽는 것이다. 탐욕, 곧 자신만을 이롭게 하려는 욕망은 영혼을 생명에서 끊어 버린다. 자기가 가지려 하고 자기 앞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정신은 사단의 정신이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나눠 주려 하고 자기를 희생하려고 하는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이다.”-실교,259

“우리는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정중하고 조심하며 겸손하고 신중하게 접근해 가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라도 원칙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교증3권,482

교훈)복음 증거의 우선순위는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염려와 필요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수요일> 친절한 삶의 방식 (막5:19)

“룻다에서 가까운 욥바에 도르가라 하는 여인이 살았는데 그는 선행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도르가는 유덕한 예수님의 한 제자이었고, 그 생애는 친절한 선행으로 충만한 생애이었다. 그는 누가 편안한 의복이 요구되고 누가 동정이 필요한지를 알고 가난한 사람들과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봉사하였다. 그 여인의 숙련된 손가락은 그의 혀보다도 더 활동적이었다.”(구봉,66) 영혼 구원에 관하여 이런 말이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그들에게 관심이 있는지 알 때까지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르치고 설교할 수 있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오해받고, 사랑받지 못하며, 용납받지 못한다고 느껴진다면, 아무리 유창한 말로 설교하고, 아무리 논리적으로 가르친들 우리의 증거는 가로막힐 것이다. 입으로만 친절 외치고 혀로만 사랑 사랑 떠드는 신앙은 위선이며 생명이 없는 죽은 종교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말씀하시고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으셨다면 인류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사랑이 실천되어지는 라이프스타일이 진정한 크리스천의 생활 방식이다.

토의1)예수님(막5:1~19)이 귀신 들렸던 사람에게 왜 친족에게 가서 증거 하라 하셨는가?

마을 사람들에게 가라고 하지 않으시고 친구들에게 가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은 이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에 훨씬 더 수용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 친구들은 또 다른 친구들에게 흥미로운 소식을 전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복음의 기별은 널리 전파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실례에서 우리의 인척과 친구와 이웃에게 직접적인 호소를 하는 개인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배워야 한다. 일생 동안 그리스도를 안다고 고백하면서도 단 한 사람의 영혼도 구주께로 이끌기 위하여 개인적인 노력을 해 보지 않은 자들이 있다.”-DA,141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의 매일의 생애에 예시된 그리스도의 종교는 가장 훌륭한 웅변으로 된 설교보다 십배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교회증언 4권, 547).

교훈)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친절한 삶의 방식으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그런 관계 속에서 복음이 더욱 수용적으로 전달되기를 바라신다.

<목요일> 우정의 범위를 넓힘 (요17:18)

재림교인들의 사회성은 너무 폐쇄적이다. 늘 교인들끼리만 친교하며 지내는 것이 일반화 되어있다. 이런 모습이 복음 증거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있다. 세상과 짝하지는 않아야 하지만 담을 쌓고 사는 것은 기독교 복음의 정신을 저버리는 것이다. 세상에 들어가 소금처럼 섞여서 복음의 선한 감화와 빛을 드러내야 한다. 우리는 교회 속에만 고립된 채, 하나님의 긍휼 어린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서 우리 자신을 단절시켜 버리진 않는가?

토의1)예수님의 기도(요17:11~19)에 나타난 그리스도인들의 세상 처세(전도)법을 살펴보라.
1,세상 가운데 있사옵고(11) 2,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14) 3,세상에...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5) 4,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18)

“소금은 그 섞은 물건과 섞여서 그것을 보존할 만큼 저려야 한다. 이와 같이 사람도 복음의 구원의 능력에 도달하려면 개인과의 접촉과 교제가 있어야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개인의 감화는 일종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익을 끼치고자 하는 사람들과는 밀접히 교제해야 하는 것이다.”-산보,56

토의2)친교와 사교를 통해 친구나 이웃을 인도한 경험이 있으면 나누어 보라.

“그대의 이웃을 하나씩 찾아가라.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그대의 무아적 관심과 사랑으로 뜨거워질 때까지 그들에게 가까이 접근해 가라. 그들을 동정하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에게 유익을 끼쳐 줄 기회를 살펴보라”(구봉, 64).

교훈)우리는 빛을 등경 위에 두지 않고 말 아래 숨겨 두는 자폐증 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각하고 결심하기]“그의 형제에 대하여 이기심이 없는 사랑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사랑을 가진다. 참 그리스도인은 위험과 곤궁 가운데 있는 영혼을 경고하거나 돌보지 않은 채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AA,550

“친절한 마음은 밭이요, 친절한 생각은 뿌리요, 친절한 말은 꽃이요, 친절한 행위는 열매다”-작자 미상


댓글목록

임영철님의 댓글

임영철 작성일

감사합니다. 정말로....

교사사랑님의 댓글

교사사랑 작성일

감화 감동 많이 받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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