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전도와 증거의 생활(질문, 대답, 부가설명)04/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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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2-04-19 19:25 조회8,500회 댓글2건본문
4월 28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19분
기억절: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 9:36).
연구 범위: 고후 3:2~3, 마 9:36~38, 고전 9:20~22, 막 5:1~19, 요 17:11~19.
중심 사상: 우리의 의도와 관계없이 모든 신자는 자신의 삶의 모본을 통하여 일종의 기별을 전하고 있다.
우리는 자주 기독교가 신조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삶의 길이며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사실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내리는 결정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종류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삶이 그들의 신앙과 일치하는지 주시한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를 바라보는 자들은 우리를 본받게 된다. 따라서 문제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가?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전하고 있는가?”에 있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있는가?”에 있다.
우리는 무심결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할 뿐 아니라 의도적인 계획을 가지고 사람들이 삶과 신앙을 결부시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서 이번 주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어떻게 매일의 삶 속에서 신앙적인 연관성을 드러낼 수 있는지 연구하려고 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변화된 삶의 방식이 친구, 가족, 이웃, 동료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지 묘사한다.
➋ 느끼기 : 삶의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선하심을 증명하고자 갈망한다.
➌ 행하기 :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애정을 나타낸다.
A.
❷ 진리를 말로 전하는 것과 생활로 증거하는 것은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 말로만 증거하는 것은 지식을 전하는 것이고, 생활로 증거하는 것은 생명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❸ 교리를 증거하는 것과 사랑을 증거하는 것은 어떤 관계라고 생각합니까?
※ 교리도 증거해야 한다. 그러나 사랑은 생활로 드러나는 것이다. 사랑을 베풀지만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면 그 사랑은 도덕일 뿐이지 생명이 아니다.
❹ 우리 주변의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 자기가 공언하는 신앙대로 생활하고 봉사해야 한다.
B.
❷ 친절 전도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자기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친절하게 생활함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❸ 비교인 친구나 이웃의 입장에 서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까?
※ 그들과 동류로 나타나야하지만 근본적인 신앙원칙을 손상시키지 않아야 한다.
❹ 원칙을 양보하지 않고 비신자들과 우정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을 실천하여 보이는 것이다.
결론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고 하는 사실은 다른 이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동정 어린 섬김의 삶을 통해 전해집니다.
첫째날(일) 4월 22일
말 없는 설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1. 요 13:35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제자들을 식별하는 특별한 방법은 무엇인가? 이는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답: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2. 고후 3:2~3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다른 이들의 삶에 감화를 끼치기를 바라시는가?
[고후3:2,3]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답: 그리스도인은 그 자체가 예수님의 편지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예수님의 기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서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은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기 위하여 자신이 대신 죽기까지 한 사랑이다. 단순한 도덕적 사랑을 훨씬 뛰어넘는 자아희생의 사랑이다. 아무리 자아 희생적 사랑을 한다고 해도 그 목적과 의도가 상대로 하여금 영생의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면 그 사랑은 아무 유익이 없다.(고전13:3) 성도 서로 간에 이런 사랑을 나타내는 것을 세상이 보면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랑의 연장선에서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읽을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확실히 알게 될 것이며 그들에게 예수님은 매력적인 생명의 능력이 될 것이다.
교훈: 복음의 위력은 우리가 말로 전할 때보다 우리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삶으로 전할 때 훨씬 강력하다.
둘째날(월) 4월 23일
긍휼의 마음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마 9:38).
1. 마 9:36~38을 읽어 보라. 특정 상황에서 언급된 말씀이지만 예수께서 설명하신 정서는 단지 이 문맥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어떤 말씀을 주셨으며, 그분의 말씀은 그대가 봉사하는 영역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마9:36~38]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답: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청하여 일꾼들을 보내주기를 청하라고 하셨다.
<부가설명> 세상 인구는 엄청나게 불어난다. 그러나 복음의 전파는 인구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신속히 전파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일꾼을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일꾼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는 말씀이다. 오늘날 세상은 네트워크 시대이다. 여러 사람이 감당해야만 하던 일을 기계를 통하여 널리 짧은 시간에 전할 수 있는 시대이다. 네트워크를 복음전파를 위하여 효과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네트워크가 추수할 일꾼 노릇을 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13장의 일곱 가지 비유를 가르치실 때 마지막 비유가 그물을 바다에 치고 고기를 잡는 비유이다. 바다는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을 표상한다. 그물은 네트이다. 네트워크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일이 마지막 때에 있을 것을 비유로 예언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 시대에 합당한 일꾼들을 양성하고 편리해졌지만 외로운 시대에 사랑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이다.
교훈: 우리의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더 많은 일꾼을 약속하셨으며 이는 우리에게 있는 긍휼의 마음이 전달될 때 실현될 것이다.
셋째날(화) 4월 24일
그들의 입장에 섬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고전 9:22).
1. 고전 9:20~22을 읽어 보라. 다른 이에게 다가서는 바울의 접근 방법은 무엇이며, 그는 그들의 필요와 염려를 얼마나 알기 원했는가? 주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우리는 이 말씀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히 4:15도 참고하라.
[고전9:20~22]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답: 가능한 한 그들과 같은 처지에서 접근한 바울의 태도를 나타낸다. 예수님도 우리의 연약한 것을 인간적으로 동정하고 같은 처지에서 접근하여 구원을 이루셨다.
<부기설명> 우리가 바울의 태도나 예수님의 태도에 대하여 생각할 때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바울은 전도 대상과 가능한 한 같은 처지에서 대하기를 원하였고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할 생활원칙을 범하면서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수님도 물론 당연히 그러셨다. 바울이 그리스도인 생활원칙을 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기록하였다. 위에 인용한 고전 9:20,21 말씀을 자세히 보라.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되었지만, 그는 율법 아래 있지 않은 삶을 살았고, 율법 없는 자 같이 보였지만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하나님께 율법 없는 자가 아니었다고 말하였다. 이런 표현은 전도 대상과 같은 입장에 서지만 결코 그리스도인 생활원칙을 범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가까이 가고자 할 때 이질감을 강하게 풍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류로 여김을 받을 그런 자세로 접근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교훈: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염려와 필요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넷째날(수) 4월 25일
친절한 삶의 방식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막 5:19).
1. 막 5:1~19에 귀신 들린 자들의 이야기를 읽어 보라. 예수께서는 친구 사이에서 복음이 훨씬 더 수용적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예증하셨는가?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개인적인 전도와 증거활동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막5:1~19]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어떻게 된 것을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 이에 귀신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고하매 17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답: 예수님은 군대 귀신에서 해방된 사람에게 주께서 그에게 행한 큰일을 친속들에게 전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하도록 권하셨다. 우리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큰일을 우리의 아는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에게 먼저 전해야 한다는 기별을 주신 것이다.
<부가설명> 예수께서는 군대 귀신에게서 해방시킨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보시는지를 증거하게 하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증거하셨다. 사람들은 물질을 인명보다 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바로 다니엘을 통하여 가르쳐주신 이 세상 나라들의 성질이다. 즉 금 머리의 사고방식이다. 세상은 황금주의가 주장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돼지 떼의 죽음을 귀신들린 사람의 회복보다 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사상을 폭로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나은 사람을 친속들에게 돌아가게 하여 주께서 그에게 행하신 큰일, 곧 생명과 사람의 가치를 물질보다 훨씬 높이 두시는 사상의 진실을 증명하게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사람의 가치를 올바른 자리에 두도록 한 것이 큰일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같은 사람끼리도 사람의 가치를 바르게 평가하지 않는다. 도덕과 윤리를 주장해도 차별과 무시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돼지의 물질적 가치보다 사람의 생명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사조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셨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친절한 삶의 방식으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그런 관계 속에서 복음이 더욱 수용적으로 전달되기를 바라신다.
다섯째날(목) 4월 26일
우정의 범위를 넓힘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 17:18).
1. 요 17:11~19을 자세히 살펴보라. 이 말씀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위치에 대해 뭐라고 설명하고 있는가? 골 4:2~6도 참고하라.
[요17:11~19]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골4:2~6]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5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답: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다.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불려나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세상이 그들을 미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언어생활을 올바르게 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부가설명> 이 세상은 죄의 사상이 만든 빈틈없는 논리에 매여 있다. 죄는 생명을 중하게 여길 만큼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 경중을 매기고 그렇게 매긴 가치대로 취급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데, 생명은 논리이기보다는 생활의 능력으로 죄의 논리를 압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이다. 논리는 항상 논리적 모순이 없어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생활은 언제나 논리에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생명의 성질이다. 시기와 우연에 따라 대처하는 생태가 달라진다.(전9:11) 논리는 그 틀을 벗어나면 주장이 깨어지지만 생명이 가진 가능성은 논리에 매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생명의 능력으로 세상을 압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세상에서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생활모습으로 그들을 생명이신 그리스도께로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고 설파한 것이다.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이나 요한 17장의 기도 내용이나 골로새서의 기록들이 다 이 능력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훈: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고립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의 빛을 밝히도록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다.
여섯째날(금) 4월 2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교회의 선교 계획 속에 그대의 사역이 자리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찾으라. 대부분의 교회 부서들은 잘 조직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바쁘게 돌아가지만, 다른 데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알 기회가 별로 없다. 설상가상으로 각 부서들이 인지하고 기여할 수 없는 전체 선교 계획이 없을 수도 있다. 그대가 격려와 지원과 효율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그대의 전도와 증거 사역이 교회의 전반적인 전략의 일부분일 필요가 있다. 다음은 이 일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제안이다.
1. 목회자나 장로 또는 선교회장을 만나 교회의 선교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알아본다. 기억하라. 그대는 자신이 선택한 사역이 교회의 선교계획에 들어맞는지,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지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2. 어쩌면 선교 활동은 많은데 문서화된 목표와 전략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목회자나 장로나 선교회장을 만나 그들의 개인적인 선교 목표가 무엇인지 물어보라. 그럼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방법과 목적이 담겨 있는 지도자들의 선교적 비전을 그려볼 수 있다.
3. 이 단계에서 그대는 이미 수립된 선교 사역에 참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대가 선택한 사역이 새로운 영역이라면 그대의 비전을 나눌 수 있는 소그룹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대의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문서화하라.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너무도 흔히 강단에서 전해진 설교의 감화가 진리의 옹호자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생활에서 전해진 설교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교회증언 9권, 21). 그대의 생활은 그대의 말과 고백과 반대되는 어떤 종류의 증거를 드러내고 있습니까?
※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생명이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앙고백과 생활이 반대되지 않아야 한다. 실수할 수는 있지만 일상의 생활태도나 사고방식이 결코 신앙고백과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생명으로 증거하는 전도이다.
➋ 그대의 교회는 지역 사회에 어떻게 융화되어 있습니까? 내일 그대의 교회가 사라진다면, 지역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혹시 전혀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닐까요?
※ 어쩌면 전혀 영향이 없을 경우가 대부분이 아닐까 생각되어지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정말 지역사회에 재림교회가 필요불가결한 존재로 부각되는 모습을 나타내도록 교회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천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
일몰:오후 7시 19분
기억절: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 9:36).
연구 범위: 고후 3:2~3, 마 9:36~38, 고전 9:20~22, 막 5:1~19, 요 17:11~19.
중심 사상: 우리의 의도와 관계없이 모든 신자는 자신의 삶의 모본을 통하여 일종의 기별을 전하고 있다.
우리는 자주 기독교가 신조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삶의 길이며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사실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내리는 결정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종류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삶이 그들의 신앙과 일치하는지 주시한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를 바라보는 자들은 우리를 본받게 된다. 따라서 문제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가?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전하고 있는가?”에 있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있는가?”에 있다.
우리는 무심결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할 뿐 아니라 의도적인 계획을 가지고 사람들이 삶과 신앙을 결부시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서 이번 주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어떻게 매일의 삶 속에서 신앙적인 연관성을 드러낼 수 있는지 연구하려고 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변화된 삶의 방식이 친구, 가족, 이웃, 동료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지 묘사한다.
➋ 느끼기 : 삶의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선하심을 증명하고자 갈망한다.
➌ 행하기 :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애정을 나타낸다.
A.
❷ 진리를 말로 전하는 것과 생활로 증거하는 것은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 말로만 증거하는 것은 지식을 전하는 것이고, 생활로 증거하는 것은 생명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❸ 교리를 증거하는 것과 사랑을 증거하는 것은 어떤 관계라고 생각합니까?
※ 교리도 증거해야 한다. 그러나 사랑은 생활로 드러나는 것이다. 사랑을 베풀지만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면 그 사랑은 도덕일 뿐이지 생명이 아니다.
❹ 우리 주변의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 자기가 공언하는 신앙대로 생활하고 봉사해야 한다.
B.
❷ 친절 전도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자기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친절하게 생활함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❸ 비교인 친구나 이웃의 입장에 서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까?
※ 그들과 동류로 나타나야하지만 근본적인 신앙원칙을 손상시키지 않아야 한다.
❹ 원칙을 양보하지 않고 비신자들과 우정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을 실천하여 보이는 것이다.
결론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고 하는 사실은 다른 이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동정 어린 섬김의 삶을 통해 전해집니다.
첫째날(일) 4월 22일
말 없는 설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1. 요 13:35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제자들을 식별하는 특별한 방법은 무엇인가? 이는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답: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2. 고후 3:2~3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다른 이들의 삶에 감화를 끼치기를 바라시는가?
[고후3:2,3]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답: 그리스도인은 그 자체가 예수님의 편지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예수님의 기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서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은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기 위하여 자신이 대신 죽기까지 한 사랑이다. 단순한 도덕적 사랑을 훨씬 뛰어넘는 자아희생의 사랑이다. 아무리 자아 희생적 사랑을 한다고 해도 그 목적과 의도가 상대로 하여금 영생의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면 그 사랑은 아무 유익이 없다.(고전13:3) 성도 서로 간에 이런 사랑을 나타내는 것을 세상이 보면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랑의 연장선에서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읽을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확실히 알게 될 것이며 그들에게 예수님은 매력적인 생명의 능력이 될 것이다.
교훈: 복음의 위력은 우리가 말로 전할 때보다 우리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삶으로 전할 때 훨씬 강력하다.
둘째날(월) 4월 23일
긍휼의 마음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마 9:38).
1. 마 9:36~38을 읽어 보라. 특정 상황에서 언급된 말씀이지만 예수께서 설명하신 정서는 단지 이 문맥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어떤 말씀을 주셨으며, 그분의 말씀은 그대가 봉사하는 영역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마9:36~38]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답: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청하여 일꾼들을 보내주기를 청하라고 하셨다.
<부가설명> 세상 인구는 엄청나게 불어난다. 그러나 복음의 전파는 인구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신속히 전파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일꾼을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일꾼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는 말씀이다. 오늘날 세상은 네트워크 시대이다. 여러 사람이 감당해야만 하던 일을 기계를 통하여 널리 짧은 시간에 전할 수 있는 시대이다. 네트워크를 복음전파를 위하여 효과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네트워크가 추수할 일꾼 노릇을 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13장의 일곱 가지 비유를 가르치실 때 마지막 비유가 그물을 바다에 치고 고기를 잡는 비유이다. 바다는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을 표상한다. 그물은 네트이다. 네트워크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일이 마지막 때에 있을 것을 비유로 예언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 시대에 합당한 일꾼들을 양성하고 편리해졌지만 외로운 시대에 사랑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이다.
교훈: 우리의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더 많은 일꾼을 약속하셨으며 이는 우리에게 있는 긍휼의 마음이 전달될 때 실현될 것이다.
셋째날(화) 4월 24일
그들의 입장에 섬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고전 9:22).
1. 고전 9:20~22을 읽어 보라. 다른 이에게 다가서는 바울의 접근 방법은 무엇이며, 그는 그들의 필요와 염려를 얼마나 알기 원했는가? 주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우리는 이 말씀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히 4:15도 참고하라.
[고전9:20~22]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답: 가능한 한 그들과 같은 처지에서 접근한 바울의 태도를 나타낸다. 예수님도 우리의 연약한 것을 인간적으로 동정하고 같은 처지에서 접근하여 구원을 이루셨다.
<부기설명> 우리가 바울의 태도나 예수님의 태도에 대하여 생각할 때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바울은 전도 대상과 가능한 한 같은 처지에서 대하기를 원하였고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할 생활원칙을 범하면서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수님도 물론 당연히 그러셨다. 바울이 그리스도인 생활원칙을 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기록하였다. 위에 인용한 고전 9:20,21 말씀을 자세히 보라.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되었지만, 그는 율법 아래 있지 않은 삶을 살았고, 율법 없는 자 같이 보였지만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하나님께 율법 없는 자가 아니었다고 말하였다. 이런 표현은 전도 대상과 같은 입장에 서지만 결코 그리스도인 생활원칙을 범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가까이 가고자 할 때 이질감을 강하게 풍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류로 여김을 받을 그런 자세로 접근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교훈: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염려와 필요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넷째날(수) 4월 25일
친절한 삶의 방식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막 5:19).
1. 막 5:1~19에 귀신 들린 자들의 이야기를 읽어 보라. 예수께서는 친구 사이에서 복음이 훨씬 더 수용적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예증하셨는가?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개인적인 전도와 증거활동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막5:1~19]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어떻게 된 것을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 이에 귀신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고하매 17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답: 예수님은 군대 귀신에서 해방된 사람에게 주께서 그에게 행한 큰일을 친속들에게 전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하도록 권하셨다. 우리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큰일을 우리의 아는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에게 먼저 전해야 한다는 기별을 주신 것이다.
<부가설명> 예수께서는 군대 귀신에게서 해방시킨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보시는지를 증거하게 하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증거하셨다. 사람들은 물질을 인명보다 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바로 다니엘을 통하여 가르쳐주신 이 세상 나라들의 성질이다. 즉 금 머리의 사고방식이다. 세상은 황금주의가 주장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돼지 떼의 죽음을 귀신들린 사람의 회복보다 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사상을 폭로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나은 사람을 친속들에게 돌아가게 하여 주께서 그에게 행하신 큰일, 곧 생명과 사람의 가치를 물질보다 훨씬 높이 두시는 사상의 진실을 증명하게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사람의 가치를 올바른 자리에 두도록 한 것이 큰일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같은 사람끼리도 사람의 가치를 바르게 평가하지 않는다. 도덕과 윤리를 주장해도 차별과 무시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돼지의 물질적 가치보다 사람의 생명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사조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셨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친절한 삶의 방식으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그런 관계 속에서 복음이 더욱 수용적으로 전달되기를 바라신다.
다섯째날(목) 4월 26일
우정의 범위를 넓힘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 17:18).
1. 요 17:11~19을 자세히 살펴보라. 이 말씀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위치에 대해 뭐라고 설명하고 있는가? 골 4:2~6도 참고하라.
[요17:11~19]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골4:2~6]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5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답: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다.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불려나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세상이 그들을 미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언어생활을 올바르게 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부가설명> 이 세상은 죄의 사상이 만든 빈틈없는 논리에 매여 있다. 죄는 생명을 중하게 여길 만큼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 경중을 매기고 그렇게 매긴 가치대로 취급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데, 생명은 논리이기보다는 생활의 능력으로 죄의 논리를 압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이다. 논리는 항상 논리적 모순이 없어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생활은 언제나 논리에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생명의 성질이다. 시기와 우연에 따라 대처하는 생태가 달라진다.(전9:11) 논리는 그 틀을 벗어나면 주장이 깨어지지만 생명이 가진 가능성은 논리에 매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생명의 능력으로 세상을 압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세상에서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생활모습으로 그들을 생명이신 그리스도께로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고 설파한 것이다.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이나 요한 17장의 기도 내용이나 골로새서의 기록들이 다 이 능력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훈: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고립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의 빛을 밝히도록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다.
여섯째날(금) 4월 2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교회의 선교 계획 속에 그대의 사역이 자리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찾으라. 대부분의 교회 부서들은 잘 조직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바쁘게 돌아가지만, 다른 데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알 기회가 별로 없다. 설상가상으로 각 부서들이 인지하고 기여할 수 없는 전체 선교 계획이 없을 수도 있다. 그대가 격려와 지원과 효율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그대의 전도와 증거 사역이 교회의 전반적인 전략의 일부분일 필요가 있다. 다음은 이 일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제안이다.
1. 목회자나 장로 또는 선교회장을 만나 교회의 선교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알아본다. 기억하라. 그대는 자신이 선택한 사역이 교회의 선교계획에 들어맞는지,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지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2. 어쩌면 선교 활동은 많은데 문서화된 목표와 전략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목회자나 장로나 선교회장을 만나 그들의 개인적인 선교 목표가 무엇인지 물어보라. 그럼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방법과 목적이 담겨 있는 지도자들의 선교적 비전을 그려볼 수 있다.
3. 이 단계에서 그대는 이미 수립된 선교 사역에 참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대가 선택한 사역이 새로운 영역이라면 그대의 비전을 나눌 수 있는 소그룹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대의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문서화하라.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너무도 흔히 강단에서 전해진 설교의 감화가 진리의 옹호자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생활에서 전해진 설교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교회증언 9권, 21). 그대의 생활은 그대의 말과 고백과 반대되는 어떤 종류의 증거를 드러내고 있습니까?
※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생명이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앙고백과 생활이 반대되지 않아야 한다. 실수할 수는 있지만 일상의 생활태도나 사고방식이 결코 신앙고백과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생명으로 증거하는 전도이다.
➋ 그대의 교회는 지역 사회에 어떻게 융화되어 있습니까? 내일 그대의 교회가 사라진다면, 지역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혹시 전혀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닐까요?
※ 어쩌면 전혀 영향이 없을 경우가 대부분이 아닐까 생각되어지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정말 지역사회에 재림교회가 필요불가결한 존재로 부각되는 모습을 나타내도록 교회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천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
댓글목록
김종복님의 댓글
김종복 작성일목사님의 안녕하세요 목사님의 설교가 저 자신의 마음에 편안하게 느끼짐니다 저에게 용기와 힘이되어 주식기를 발라니다 몸건강 하세요
강윤순님의 댓글
강윤순 작성일언제나 말씀의 힘이 되어 주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