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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재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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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금하 작성일12-03-25 14:54 조회4,6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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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재림의 약속
MT:“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문1) 당신은 “재림”에 대한 단어를 생각할 때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가?

인류의 역사는 6000년이 지났다.
엘렌 화잇은 죄악의 역사 6000년에 대하여 많이 언급했다.
성경의 기자들도 재림 주에 대하여 매 페이지마다 수없이 기록했고,
예수님도 다시 오실 것에 대하여 분명히 약속 하시고 승천하신지 200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우리에게 최고의 관심의 초점은 과연 재림의 날 즉, 세상 끝이 언제일까?가 빅 이슈다.
그러나 성경은 신자들이 날짜에 연연하는 재림신앙을 지양하고,
그 날에 상관없이 재림 준비에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한다.

예수님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그렇지만,
“나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상을 주고 갚아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서,
신앙인들의 재림에 대한 태도와 자세 변화를 강조하셨다.

성경의 기독교 재림신학은 시간보다 확실성에 대하여 초점을 두었다.
이번 주는 재림의 약속과 보증에 대하여 살펴 볼 것이다.

<일요일> 시작과 끝(계1:8)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미가 중에 166장 재림에 관한 “우리의 소망 불타 오르네”가 있다. 이 찬미는 재림교회 전설적인 작곡가이고 킹스헤랄드 사중창 멤버 중에 바리톤으로 활약했던 ‘웨인 후퍼’ 목사님이 1985년 대총회 주제가로 작곡했는데 30여 년 동안 재림 교인들이 이 찬양을 통해 재림에 대한 확신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2007년 86세의 일기로 주 안에서 잠들었다. 우리에게 부활과 재림의 소망이 없다면 얼마나 처참하고 비참한 인생인가?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한 세상 끝이 있기 때문에 시련 중에도 그 복스러운 소망으로 위안을 갖고 살아간다.

문1)성경은 세상의 역사적 종말에 대하여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1) 말세(벧전1:5). (2) 정한 때의 끝(단8:17). (3) 마지막 때(단11:35, 유1:18). (4) 말일(호3:5). (5) 심판과 멸망의 날(벧후3:7). (6) 모든 날의 마지막(히1:2). (7) 구원의 날(고후6:2). (8) 세상 끝(마24:3). (9) 끝(마24:6). (10) 종말(단9:27)

문2)예수님께서 왜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로 계시 하셨는가?
예수님께서는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계 22,13).라고 당신을 계시하셨다. '알파와 오메가' (Α - Ω)는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끝 글자로서 해답은 계1;8절 하단에 있는데,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창세기라고 부르는 알파와 계시록이라고 부르는 오메가가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진리의 중심이 되시며 인류의 모든 역사와 구속의 경륜의 처음과 나중이 되신다는 말씀이다. 특히 예수님은 스스로 자존하시는 분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모든 것을 영원성 안에 포함하고 계시는 전능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고 주인공이시며 주관자이시기 때문에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하실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 재림과 상급에 관하여 언급하실 때,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을 주목해야 한다.

적용)“주님은 곧 오신다...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나타나심을 위하여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교증8권, 253).
교훈)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로서 구속의 역사의 처음과 나중이시기 때문에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신다.

<월요일> 약속과 기대(벧후3;13)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갇혀 있었는데, 그곳 벽에는 그들이 쓴 글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들이 남긴 글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우리는 메시야가 오실 것을 믿고 있다. 단지 그의 도착이 좀 늦어지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기대와 소망은 자주 무너진다. 우리는 미래의 사건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기대와 예측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 기자들은 우리가 절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확신을 불러 일으킨다. 세상은 주님의 통제 아래 있다. 우리에게는 재림의 약속이 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약속뿐 아니라 그분이 오실 때 이루어질 완전히 다른 세상을 약속한다.

문1)우리에게 약속된 어떤 권리증서가 있는가?(요14:1~3,재림에 대한 약속)
“우리에겐 그분의 약속이 있다. 우리는 영광의 왕국에 있는 부동산에 대한 권리 증서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늘의 대저택들을 부여하는 권리증서보다 법에 따라 더 철저하게 작성되고 더 합법적으로 서명된 것들은 결코 없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하늘55

적용)우리는 재림을 얼마나 고대하며 준비하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성경 히11:1절에서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실상’이란 말은 원어로 법적인 권리를 의미한다. 땅이나 주택을 갖고 있지는 않아도 등기권리증만 가지고 있으면 실제 그 땅이나 주택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실상이란 말은 그런 의미다. 우리에게 재림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이미 우리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기대한 바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교훈)재림에 대한 약속은 우리의 구원과 소망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요소이다.

<화요일> 우리의 큰 확신(히9:28)

전 세계적으로 4만여 종파 약 22억 명이 성경을 믿고 재림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 재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종파 중에 재림을 가장 강조하고 확신하는 교회는 간판이 말해주듯이 재림교회다. 재림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재림을 준비시키기 위해 태동한 교회이다. 그럼 과연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얼마나 확신하고 있는가? 재림은 우리 신앙의 근간이며 핵심이 되어야 한다.

문1)예수님께서 재림 하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십자가의 죽으심, 구속의 사업들, 왕권의 회복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마치고 완성된다. 재림 없이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신 모든 일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또 부활을 소망하며 잠자는 성도들의 죽음도 헛된 것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최종적 구원을 완성하시고 잃어버린 만물을 회복하시며 성도들을 데려 가시기 위해 다시 오신다. 성경에 계시된 가장 엄숙하고 영광스러운 진리 가운데 하나는 구원의 위대한 사업을 완성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진리이며, 재림의 교리는 성경의 근본적 주제이다.

[예화]1983년 전두환 정권 당시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TV 생방송이 있었다. TV에 나와 전쟁 때 헤어진 가족들을 찾는 프로그램이었는데 13일 만에 10만 952건이 접수되고 980여 명의 이산가족이 눈물의 재회를 가졌다. 이를 계기로 1985년 9월 20일 첫 남북한 이산가족상봉이 서울과 평양에서 이루어졌었는데 수십 년 동안 헤어졌던 그리운 혈육들을 부둥켜 않고 기쁨의 회한의 통곡을 하는 모습은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모든 국민들의 가슴을 적시었었다. 그러나 만남의 기쁨도 잠시뿐, 3박4일의 상봉을 끝내고 헤어지는 그들에게는 기약 없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의 아픔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고대하는 예수님의 재림의 날은 이별의 아픔과 눈물이 없는 영원한 기쁨의 이산가족 재회의 날이 될 것이다.

적용)구원의 확신과 재림 신앙에 문제가 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보라.
교훈)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일은 재림을 통하여 이루실 구원의 완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보증이다.

<수요일>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베드로전서는 밖에서 오는 박해를 다루고 베드로후서는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환란, 즉 배교와 가짓된 가르침인데, 특히 예수님의 재림 직전의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성경에 재림 예언 회수는 신구약에 1518회(신약에만 300회)다. 이는 456회 예언된 예수님의 초림(初臨)이 성취되었듯, 1518회나 예언된 재림은 더욱 확실히 성취될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사단이 시대마다 재림 신앙을 좌절시키기 위해 역사했던 것처럼 말세에 재림을 부정하는 거짓 교사들을 출연시켜 교회에 심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문1)우리는 지체되는 재림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아담 이후부터 시대마다 신앙인들은 당대에 재림이 성취될 것으로 확신하면서 기다렸다. 그러나 지체되고 현실로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히11장)
“아담과 하와는…그들의 맏아들이 구주이기를 바라면서 그 아들을 기쁨으로 환영하였다. 그러나 이 약속의 성취는 지체되었다. 이 약속을 처음으로 받은 사람들은 그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 에녹의 시대로부터 다시 이 약속은 족장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반복되어, 그의 강림에 대한 소망이 소멸되지 않게 했지만 그는 오시지 않았다”(시대의 소망, 31).

문2) 확고부동한 재림신앙의 토대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1:19) 결국 말씀과 믿음이다.
“이 세상 만물의 종말이 다가올 때, 시대의 징조를 분별할 줄 아는 충실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신자라고 공언하는 많은 무리가 그들의 행위로 그들의 신앙을 부인할 것이지만 끝까지 견디는 남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AA535

적용)베드로는 지체되는 상황에서도 어떠한 사람이 되라고 권면 하는가?(벧후3:11~14)
교훈)누구든지 죽기 전에 재림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약속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약속을 이어 간 백성들의 이야기이다.

<목요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계22:7)

계시록에서 예언한 사건들이 머지않은 장래에 속히 성취된다는 사상은 7번 언급되었다. 여기에 대한 요한의 반응은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이다. 재림의 긴박성은 계시록의 명시적이며 암시적 사상이다.

문1)긴 시간적(계시록 후 2000년이 흐름)으로 볼 때 “속히 오신다”라는 기별은 기만적으로 보인다. 설명하라.
아담 때부터 시대마다 재림의 긴박성을 예언하고 외쳤지만 6000년의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뭐가 잘못된 것인가? 성경의 재림의 긴박성에 대한 기별은 대쟁투의 배경에서 찾아야 한다. 첫째, 사단이 반역했을 때 제거하실 수도 있었으나 죄의 본질과 사단의 정체가 온 우주 세계에 알려지고 하나님의 품성에 모호함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할 시간이 필요 하였다. 둘째, 재림에 대한 약속은 조건적인 것이다. 과거 역사를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지체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불신과 불충성에서 비롯되었다. 재림은 복음 사명과 사업의 완성에 대한 교회의 반응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여러 세기 전에 “재림이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한 기별은 결코 지금도 쇠해지지 않았다. 예언의 신에는 재림과 관련하여 만일 이란 용어가 수없이 반복되었다. 우리는 “만일”이란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은 계속 지연되지는 않는다." 때(예언)가 차"(갈4:4)고, 성도들의 수(계7:1~4)가 채워지면 오신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은혜의 기별을 전하므로 당신의 목적이 성취되었을 것 같으면 그리스도께서는 벌써 이 세상에 오셨을 것이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도성으로 영접되었을 것이다.”― 교회증언 6권 450 (1900)

적용)예수님의 재림의 날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무엇인가?
죽음은 부활과 재림을 의미한다. 우리가 죽고 나서 2년이든, 2백년이든, 2천년이든 얼마나 오랫동안 무덤 속
에 있든 상관없이 우리는 잠들 것이며, 잠에서 깨나자마자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 순간이 생에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 얼마나 엄숙한가?

교훈)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자신의 일생 이상으로 기다릴 수는 없다. 주관적인 시간 속에서 예수님의 재림은 머지않아 일어날 사건이다.

결론)“주님께서는 오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죄를 벌하시기 위하여 점점 가까이 오실 때 그분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그 큰 날을 위하여 사람들을 예비시키는 일에 우리가 맡은 책임을 다하므로 주님을 위하여 길을 예비해야 한다.”(전도 218, 219)

[예화]속담에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이 있다. 이조 태종은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서, 전비 한씨의 소생이었는데, 이성계가 이씨 조선을 세우는 때, 가장 크게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성계는 나라를 얻은 후에, 계비 강씨가 낳은 아들 방석을 세자로 세우고, 간신 정도전 등이 방석에게 붙어서 자기를 모해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태종은 군사를 동원하여 정도전 등의 무리를 죽이거나 몰아냈다. 태조 이성계는 대노하여 왕위를 장남 정종에게 물려준 후, 야반에 함흥 옛집으로 달려가 그곳에 머물렀다. 정종의 양위로 임금 자리에 오른 태종은, 아버지의 귀환을 바라 문안사를 보내게 되었는데, 태조는 이들을 모두 죽임으로서, 문안사로 간 치사는 한 사람도 돌아오는 자가 없었다. 여기서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즉 가고 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모두 이 말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도 이 말을 가져다 쓰는 이들이 있다. 재림을 말할 때, "그도 함흥차사이지, 오긴 무얼 와! 2천년이 넘는데도 안 오지 않아?"하고 비꼬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계1:7-)" 그리고 "속히 오리라(계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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