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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인종(人種)과 제자도(弟子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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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奉ju 작성일08-02-27 21:04 조회4,1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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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인종(人種)과 제자도(弟子道)

<프리즘>
⊙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을 맞이해서 많은 성도님들이 고향(故鄕)을 찾거나 아니면 자기(自己)의 집에서 친척(親戚)과 친지(親知)를 만나는 이번 한 주간(週間)이 될 줄 믿습니다.
일부(一部)의 성도(聖徒)님들을 제외(除外)하고는 많은 성도(聖徒)님들이 “사마리아 인”과 같거나 “이방인(異邦人)”과 같거나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거나 “에티오피아 내시(內侍)”와 같은 처지에서 한때 생애(生涯)하시다가, "하나님"특별하신 섭리(攝理)로 변화(變化) 받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써 자부심(自負心)과 축복의 긍지로 오늘 "하나님"님 앞에 감사(感謝)와 찬송(讚頌)을 드리는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생각이듭니다.
그러한 저와 여러분들은 행여 모처럼만에 금년의 “설” 명절을 맞이해서 오랜만에 친척과 친지를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보다는 세속적인 생활로의 회귀(回歸)하여 옛날의 애굽에서의 고기 가마의 생활의 향수(鄕愁)에 더 몰입(沒入)하는 시간이 되지 않도록 "예수님"의 제자도(弟子道)를 망각(妄覺)하지 말고, “사마리아 인”과 “이방인(異邦人)”과 “수로보니게 여인”과 “에티오피아 내시(內侍)”와 같이 "예수님"을 만난 경험(經驗)과 축복(祝福)을 친척(親戚)과 친지(親知)들에게 나누어주고 전달해주는 2008년의 “설”명절을 보내시고 주님의 제자도(弟子道)를 십분 발휘(發揮)하고 귀경(歸京)하여 본연(本然)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기회(期會)가 되셨을 줄 믿습니다.

(日) 2월3일
<사마리아인들 중의 제자(弟子)들>

⊙ 우리말에 유유상종(類類相從)(같은 무리끼리 서로 내왕하며 사귐)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인종(人種)과 피부색(皮膚色)과 종족(種族)이나 국가(國家)와 문화(文化)가 같은 사람들끼리 형성(形成)하여 자기들 외(外)에는 배타(排他)적으로 생각하는 세태(世態)속에서 타(他)문화(文化)나 종족(種族)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굉장한 위인(偉人)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創造)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形像)대로 인간을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을 뿐 인종(人種)을 분류하여 만드셨거나 편애(偏愛)하거나 주목하시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성경에서 우리는 주목(注目)하여야 한다.
⊙ "사마리아 인"이라 하면
① 사마리아는 북왕국(北王國) 이스라엘의 수도(首都)였다.
북 왕조의 “오므리”왕이 “세멜”로부터 은(銀)두 달란트에 구입한 사마리아 산(山) 언덕에 건설(建設)된 것이다.(왕상 16:24).
② 사마리아라는 명칭은 앗수르에 의하여 "이스라엘" 왕국이 망(亡)한 후 이전의 "이스라엘" 왕국이 점령(占領)하였던 지역(地域)을 가리키는 말로 생겨났다.(예: 왕하 23:19; 참조: 왕상 13:22)
③ 신약(新約)에서는 사마리아라는 말이 중앙 산지(山地)의 지역(地域)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예. 요 4:4; 행 1:8)

ⅰ."사마리아" 사람의 기원과 본질에 대한 유대인의 견해는 구약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이것은 북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진실(眞實)한 종교에서부터 떠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審判)과 함께 시작(始作)되었다.(이에 대해서는 왕하 17:7-23에 요약되어있다)
북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에 의해서 파괴(破壞)된후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 곳에 이주(移住)하여 그들의 다신론(多神論)에 이스라엘 종교(宗敎)를 접붙인 비이스라엘인으로 여겨지고 있다.(왕하 2:41)

ⅱ. "사마리아 인"들은 유대인들에 의해서 완전한 이방인도, 완전한 유대인도 아닌 사람들로 여겨지게 되었다. 따라서 "사마리아 인"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경멸(輕蔑)을 나타내는 용어가 되었다.(요8:48).

ⅲ. “유대 인”과 "사마리아 인"의 관계에 대해 "사마리아 인"에 의해서 기록된 역사에 의하면 유대인이 진리에서 떠난 것은 엘리제사장이 그리심 산이 아닌 실로에 "하나님"의 전(殿)을 세울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참조, 삼상 1-3장) 이에 의하면 에스라도 역시 모세오경(五經)을 거역(拒逆)하여 예루살렘에 성전(聖殿)을 재건(再建)함으로써 죄악(罪惡)을 범(犯)하였다. "사마리아 인"은 비록 앗수르의 수호(守護)아래 비이스라엘인들이 사마리아 지역에 들어온 것을 인정하였지만 그들 스스로를 포로(捕虜)로 잡아간 이스라엘인의 후손(後孫)으로써 다시 본토(本土)로 돌아온 자(者)로 여겼다.

ⅳ. "사마리아 인"들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의 압력에 의해서 그들의 성전(聖殿)을 이교화(異敎化)시켰다는 유대의 기록(마카비 2서6:2)은 과장(過狀)된 것으로 여긴다. 비록 성전(聖殿)은 존재(存在)하지는 않았지만 "사마리아 인"의 예배는 오늘날에도 그리심 산 위에서 계속되고 있으며, 유월절양(踰越節羊)이 매년(每年) 드려지고 있고 모세오경(五經)의 절기(節期)에 따라서 순례(巡禮)가 행(行)해지고 있다.

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여인과 만났을 때(요 4:1-42) 합당(合當)한 예배처소에 대한문제가 제기되었다.(요 4:20). (사 66:1-2)은 이에 대한"예수님"의 대답을 예언(豫言)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 장소(場所)나 저 장소(場所)가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지 장소(場所)를 가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요 4:21-24)

⊙ "예수님"모든 인류를 한 혈통(血統)으로 만드셨고 또한 모든 인류(人類)를 구속(救贖)하기 위하여 대속제물(代贖祭物)로 죽으셨음을 성경은 분명(分明)히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이방인(異邦人)처럼 취급하던 "사마리아 인"들에 대해 편견(偏見)을 나타내지 않으시고(요 4:5-42) 그들에게도 복음(福音)을 증거(證據)하셨다.

⊙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인류를 창조하셨고 모든 인류를 위해 대속제물(代贖祭物)로 죽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인종적(人種的)편견을 갖지 않으셨으며 그 누구도 아무도 차별대우(差別待遇)를 하지 않으셨다.

(月) 2월4일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자(者)들>

⊙ 흔히 사람들의 생각에는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救主)로 믿는 사람들은 평범(平凡)한 사람들이거나 소외(疏外)되고 가난(家難)하고 불치(不治)의 질병(疾病)에 걸린 사람들이나 별 볼일 없는 사람들만의 신앙(信仰)으로 생각하고 여겨왔던 것이 특히 기독교(基督敎)사회에서는 더한 것 같은 현실이 사실이다.(회교국가나, 불교국가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 지금도 공직(公職)의 직위(職位)가 족보(族譜)에 오를 만큼 높은 벼슬자리로 생각하는 직분(職分)을 가진 사람이 교회(敎會)에 나오는 것은 대내외적(對內外的)으로 크게 자랑을 하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신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시대의 흐름인 까닭에 벼슬아치정도의 사람이 교회에 출석(出席)을 하면 대단한 뉴스거리와 자랑꺼리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더더욱 자랑삼아 ㅇㅇㅇ가 출석하는 교회에 내가나간다는 자랑비슷한 말과 ㅇㅇㅇ가 우리교단에 출석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하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신분을 과히 짐작하리만큼 ? 깊이 생각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부장>
로마군대의 가장 작은 단위인 쎈츄리(Century)의 지휘관(指揮官)을 말하며 신약시대에 이루어졌던 편제를 살펴보면 10개의 센츄리가 모여서 “코호르트”(Cohort)가 구성되며 6개의 코호르트가 모여서 “레기온”(legion)을 구성하였다. 따라서 레기온은 약6,000여명의 병사로 편제되어있다. 이 백부장들은 그 당시 로마군대의 중추적인 요원으로 인정되었다. 그들은 부대의 훈련(訓練)과 검열(檢閱) 또한 그것의 주둔과 전투에 대한 명령과 외인(外人)부대에 대한 명령 등의 책임을 지고 있었다.
누가는 두 사람의 백부장에 대해서 그 이름을 밝히고 있다.

“고넬료”는 최초의 이방인 개종자(改宗者)(행 10:1, 22, 30, 44-47)이고,
“율리오”는 바울을 로마로 압송하는 책임을 맡은 자(27:1, 3, 43)이다.
그러나 다른 백부장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매우 친근하게 언급되고 있다. "예수님"께 믿음을 칭찬받았던 백부장은 가버나움에 주둔하고 있었다.(마 8:5-13; 눅 7:1-10) 또 한 사람의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것을 지키고 있었던 사람으로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 그 된 일을 보고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고백하였다.(마 27:54; 눅 23:47; 막15:39, 44-55)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는 이탈리아 대(隊)를 통솔했던 로마의 백부 장이였다.
가이사랴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로마 통치의 중심지였다.
누가는 그(고넬료)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기술(記述)하고 있다. (행 10:1-2)
비록 고넬료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많은 구제(救濟)를 하였으며 "하나님"께 항상(恒常) 기도 하였다. (행 10:2)
그(고넬료)는 환상(幻像)을 통하여 자신의 행위들이 "하나님"께 상달(上達)된 것을 알았다.
그(고넬료)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욥바에 머물고 있던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었다. (행 10:3-7) 이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새로운 계시(啓示)로 깨우쳐서 이 이방인들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계셨다. 이들과 만난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으로 왔다. (행 10:9-24).
그곳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共同體)를 확장시키려는 "하나님"의 의도(意圖)를 깨닫게 된다. 베드로는 자신의 새로운 깨달음의 결과(結果)들을 전할 때에 성령께서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임(臨)하심으로 그들이 방언(方言)을 하며 "하나님"께 찬양(讚揚)을 돌렸다. 이에 베드로가 고넬료와 그 가문(家門)의 사람들에게 침례(浸禮)를 베풀었다(행 10:44-48).
누가는 한 이방인(異邦人)의 첫 회심(悔心)의 사건을 매우 의미심장(意味深長)하게 취급하고 있다. 그는 이 사건을 사도바울의 회개(悔改)사건 뒤에 붙여서 언급하고 있다.
누가는 앞서 구스 내시(內侍)(개종자(改宗者)의 회심(悔心)사건(事件)과 교회 내에 유대인들과 개종자(改宗者)들이 함께 들어온 것을 기록하였다.
이제 누가는 초점(焦點)을 옮겨서 이방인들이 교회에 가담하는 것을 기술(記述)하고 있다.
그는 사도 바울의 이방전도여행이 시작되기(13-20장)전에 이 사건을 기록함으로써 사도바울의 회심(悔心)과 병행(竝行)하여 다음에 올 기록들의 바탕을 놓고 있다.
누가는 이 기록에 계속하여서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교제를 나눔으로 인하여 반대(反對)에 직면하게 된 것을 기록한다. 베드로는 그 사건의 의미를 성공적으로 설명함으로서 그의 비판자들을 잠잠케 하였다. (행 11:18)
⊙ "예수님"께서는 (눅 7:9)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고 칭찬(稱讚)하신 것처럼 이 백부장은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 베드로가 이방인(異邦人)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복음의 말씀을 전파한 사실에 대하여 유대인인 사도들과 형제들은 베드로를 힐난(詰難)하였다.
우리도 문화적(文化的) 사회적(社會的) 편견(偏見) 때문에 사람들을 차별(差別)할 위험(危險)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는 당시의 로마의 관리로써 경건(敬虔)하고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백부장으로 성경에 기록하고 있다.
그는 가난한 자들을 많이 구제(救濟)하고 "하나님"께 간절(懇切)히 기도(祈禱)하는 사람이었다.

(火) 2월5일
<가나안 여인(女人)>

⊙ 우리 주위에는 자녀들을 위한 것이라면 물, 불을 가리지 않고 부모님들이 행동에 옮기는 것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자녀들의 학업을 위해서, 또한 질병(疾病)에 걸렸을 때에는 부모님들은 새벽부터 밤늦도록 육체적인 고달픔을 넘어서 치료비와, 학비에 보탬을 다하고자 갖은 궂은일로부터 자존심 깎이는 별의별일과 모욕적인 환대를 감수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가 장성(長成)하여 철이 들면 그 사실을 읽을 수가 있고 그때에서야 그 와 같은 사실을 피부로 느낌으로 부모님에 대해서 쬐끔식 이해하는 것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의” 경우도 자신의 “내 딸이 흉악히 귀신이 들렸나이다. 라고 소문만 듣던 다윗의 자손"예수님"에 대한 소문의 말씀을 듣고 자존심 모두를 내던지고 개 취급을 당하는 것까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관계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통하여 아가페적인 사랑을 충분히 경험할 수가 있게 하심을 감사 드려야 할 것이다.
오늘의 교과 본문을 통해서 가나안 여인의 믿음과 "하나님"의 깊은 뜻을 우리가 나의 것으로 완전히 받아드림으로 일생의 주님의 제자도(弟子道)가 온전히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 (마 15:22)에 나오는 “가나안 여자 하나”는 베니게 사람들은 구(舊)가나안 족속에 속(屬)했다. 실제로 그 들은 자신들을 가나안 족속으로 불렀다(창 10:6, 18)
그들을 베니게 사람이라고 부른 사람들은 헬라인들이었으며 이 이름은 에게해 지역에서 베니게인들이 무역을 하던 초기동안 헬라인들이 베니게인들에게 구입하던 자주색염료(헬라어:포이닉스(phoinix)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가나안 족속은 함의 후예들이지만 팔레스타인 땅에 거주하던 초기시대동안에 셈족언어를 채용했으며 많은 셈족 문화를 흡수했기 때문에 셈족에 기원을 둔 것으로 한동안 여겨져 왔다.
유대인들은 셈족이었으며 따라서 언어와 전반적인 문화의 특징 면에서 히브리인과 가나안족속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한 점이 있다.
⊙ 이 사건은 4복음서의 기록 가운데 "예수님"께서 비유대인들에게 봉사(奉仕)한 네 번째의 경우이다.
① 첫 번째 : (요 4:5-42) 사마리아의 수가성에서
② 두 번째 : (눅 7:1-10) 가버나움에서
③ 세 번째 : (막 5:1-20) 거라사 지방에서
④ 네 번째 : (마 15:21-28; 막 7:25-30) 오늘의 “수로보니게 여인”의 봉사(奉仕)의 경우이다.
물론 사마리아인들도 부분적으로는 유대인이며 그들을 위한 "예수님"의 봉사가 호의적으로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철저하게 이방인(異邦人)에 속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때 이르러 올수있는 비난이 그에게 가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거라사의 귀신들린 병자를 치유한 것을 "그리스도"께서 의도적으로 이방인과 접촉하기 위해서 행한 것으로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것을 "그리스도"에게 닥친 비상사태 곧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이 자기방어를 위해 귀신을 쫓아낸 경우로 여겼을 것이다. "예수님"은 더욱이 귀신에게 놓임 받은 자가 제자들처럼 그분과 교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기에 나타난 베니게 여인의 경우에도 "예수님"은 이 지역 사람들을 위해서 드러내놓고 일하지 않았다.(막 7:24) 그러나 이 여인이 그에게 와서 강청(强請)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팔레스타인에 사는 비(非)유대인들을 상대하는 일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막 15:24)을 위한 그의 봉사에는 부수적이었다.
만약 선택된 백성들을 위한 그의 노력이 어느 정도라도 성공을 거두기 원했다면 많은 면에서 잘못된 것이지만 이방인들에 대해 세워놓은 장벽들을 그가 무너뜨리고 있다고 유대지도자들이 고소하는 경우가 없도록 하기위해서는 겉으로라도 그들의 관습을 따라야 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가 봉사하러온 바로 그 백성들에게서 영향력을 상실했을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역자들은 "하나님"앞에서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여겨야하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外貌)를 취하지 아니하는” (행 10:34)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 (마 15:26)의 “떡”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나눠주라고 "하나님"의 자녀 곧 유대인에게 맡긴 구원(救援)의 “떡”(요6:32참조)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떡을 이기적으로 자신들만을 위해 쌓아두었다.(실물교훈 291-293참조)
⊙ (마 15:26)의 “개들” “작은 개” 여기서는 이방인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유대인의 견해에 의하면 이 축복의 진가를 이해하고 그것들에서 유익을 얻을 능력이 부족한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축복들이 주어진 반면 그것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이 여인을 모멸(侮蔑)하는 듯한 "그리스도"의 이러한 행동은 아마 그녀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틀림없이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이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참조: 고전 10:13)
여자는 "그리스도"께서 원하기만 하면 마음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음을 확신한 것처럼 보였다. 교만과 편견은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며 따라서 그녀는 이런 것들이 자신의 믿음을 방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러한 믿음과 끈기는 참으로 칭찬할 만하다.
⊙ (마 15:27)의 “주여 옳소이다마는”
“그렇습니다. 주님” 여자는 자신의 간절한 호소문에 무관심한 척하는 "예수님"의 모습 뒤에 그의 위대한 사랑의 가슴에서 다함이 없이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동정심을 알아차린 것으로 보인다. 다른 랍비들처럼 그녀를 모질게 외면하는 대신에 그는 그녀와 문제들을 토론하고자 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 그가 그녀의 요청에 응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도록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음이 분명하다. 그의 음성에는 조급함이 전혀 없었고 그의 모습은 항상 그의 얼굴을 특징지은 평온한 위엄과 무한한 자비를 드러냈다.
⊙ (마 15:27)의 “부스러기”= “작은 조각”
작은 개들도 주인이 던져준 “부스러기”를 먹을 권리가 있다.
이 훌륭한 여인은 만약 "예수님"이 자신의 간청에 응답하기만 한다면 그가 그녀를 어떤 인간으로 취급하든지 따지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심각한 장애물에 직면했던 문둥병자의 끈기와 비교해보라 (막 1:40-45)
⊙ (마 15:28)의 “네 믿음이 크도다.
시험에 직면 했으나 그녀의 믿음은 견고하게 섰다.
그녀 자신의 딸에게 건강의 선물을 주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백부장에 대한 그리스도의 칭찬과 비교해 보라. (눅 7:9참조)
⊙ (마 15:27) “그 시로부터”
왕의 신하의 아들(요 4:43)과 백부장의 하인(눅 7:1-10)처럼 이 가나안 여인의 딸은 "예수님"이 임석하지 않은 채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고침을 받았다.
다른 두 경우처럼 그 치유는 신속하고 완전했다.

⊙ 가나안 여인은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멸시받은 민족으로부터 나와 "예수님"께로 왔으나 "예수님"으로부터 무시당하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께만 희망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호소하는 가나안 여인의 경우를 지켜보면서 또다시 참된 제자의 길에 대하여 배웠다.

(水) 2월6일
<빌립과 에티오피아 내시(內侍)>

⊙ 교회에서 침례식(浸禮式)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면 어느 사람은 자기의 배우자(配偶者)가 우리교인으로써 수년(數年)을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했을 것이고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救主)로 모시지 않고 지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反面)에 전혀 생각지도 않는 신분(身分)에 있던 사람이나 직업에 있던 사람이 쉽게 침례를 받는 것들을 보면서 오늘의 교과에 나오는 “에티오피아 내시”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감동(感動)과 용기(勇氣)를 받는다.

⊙ 명망(名望)과 권세(權勢)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우리의 눈으로 볼 때에는 도저히 구도자(求道者)가 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들일지라도 종교(宗敎)가 기독교(基督敎)와 정반대(正反對)의 종교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성령(聖靈)의 역사를 통한 접촉(接觸)이라면 남녀노소(男女老少)빈부귀천(貧富貴賤) 종교(宗敎)불문(不問)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에 "하나님"의 섭리(攝理)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립니다.

⊙ "하나님"께서 빌립을 지명하시고 그에게 할 일을 주셨을 때 그 제자는 “주께서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닐 거야”라고 말하지 않고 “그 는 일어나 갔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다 자기의 뜻을 맞추는 교육을 배웠다. 그는 "하나님"보시기에는 모든 영혼이 다 귀중하다는 것을 실감하였고 빛을 구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도록 주선 하기위해서 천사들이 보냄을 받는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천사들은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해 주려고 기다리고 있다.
빌립과 구스 내시의 경험에는 주께서 그의 백성들을 부르시는 방법이 나타나 있다.(리뷰1911.3.2)

⊙ 에티오피아 내시는 이사야53장의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를 읽고 있었다.
우리가 전도할 때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에 두는 것이 참으로 중요함을 교훈 하자.

⊙ 에티오피아 내시는 예루살렘에서 예배하기 위해 먼 길을 온 사람이요 길을 가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사람이었다.
▶ 내시는 이사야서에 기록된 고난(苦難) 받는 메시야에 관한 글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제자(弟子)가 되었다. 말씀에 대한 이해는 그로 하여금 확고(確固)한 신앙(信仰)을 갖게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 빌립은 이사야의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이 바로 그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가르쳤다.
빌립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의 의미를 명확히 깨닫고 있었으며 그것을 남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령께서 인도하실 때 기꺼이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시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 빌립은 "하나님"의 사자가 지시하는 말에 즉각적으로 순종(順從)하였다.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고자하는 자들은 즉각 순종(順從)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木) 2월7일
<안디옥 교회(敎會)>

⊙ 우리 생각에 내가 지금 출석(出席)하는 교회에 유명한 연예인(演藝人)이나 정부(政府)의 높은 분이 출석(出席)한다면 교회가 차고 넘칠 것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사도 바울은 사람이 붐비는 도시 안디옥에서 가장 좋은 일터를 발견하고 그동안 바울이 배운 학식(學識)과 지혜(知慧)와 열심을 그 문화도시를 출입하는 주민들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치므로 구원(救援)자 "예수님"의 지식을 전달하였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다양한 지역에서 몰려오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가상공간인 인터넷에서 안디옥교회와 같은 문화의 경험을 할 수가 있는 곳이 지금도 있다.
그 곳이 한국연합회에서 후원하고 있는 인터넷 선교교실을 마련해서 2007년에도 매월 마지막 일요일에 컴퓨터의 실기를 무료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교육의 기회를 주셨고, 금년2008년도에도 2월부터 다시 무료 컴퓨터 교육을 실시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많은 사람에게 시간과 장소와 경비를 절감하면서 사도바울처럼 빌립처럼 제자도를 발휘하고자 하시는 분들이라면 지금 망설이지마시고 한국연합회 변영기목사님에게(010-5536-7945) 신청하시어서 받은바 달란트를 마음껏 발휘해보시거나 아니면 컴퓨터 기초부터 고급기능까지 무료로 배우시기를 소개합니다.

⊙ 아가보의 예언대로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큰 흉년이 들자 안디옥 교회의 제자들은 각각 힘닿는 대로 구호(救護)금을 마련하여 유대에 사는 형제들을 도왔다.
▶ 바나바와 바울이 함께 1년 동안 안디옥 사람들을 가르침으로 그들은 확고한 믿음을 가진 제자들로 자라났다. 제자 삼는 일에 있었어. 가르침은 매우 중요하다,

⊙ 유대인뿐 아니라 여러 인종들로 구성된 초기 교회 지도자들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여 일함으로써 큰 성과를 거두었다.

<焦點>

1. 인종(人種)과 지역(地域)과 문화(文化)와 편견(偏見)과 세월(歲月)의 장벽(障壁)을 무너뜨릴 수 있는 비결(秘訣)이 있다면 그 비결이 곧 주님의 제자도(弟子道)이다.

2. 복음(福音)은 모든 사람을 포용(包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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