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과 복음과 교회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 13 과 복음과 교회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1-12-16 12:36 조회4,327회 댓글8건

첨부파일

본문

제 13 과 복음과 교회


기억절: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10)



첫째 날(일) 넘어진 자들을 일으킴


교회 생활 중 고의성이 없는 실수나 실패로 인해 넘어진 교우들에게 처벌이나 정죄 혹은 절교 보다는 회복의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우리의 모습은 현재의 모습으로 고정된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 새로운 사람으로(고후5:17) 거듭나고 성장해 가는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이므로 현재의 모습에 대해서 서로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하나님 안에서 변화될 사람으로 믿고 바라며 기다리는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넘어진 자들이 있다면 격려해주고 일으켜 주어서 함께 가야 합니다.

“그의 동료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가난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와 상처 입은 자와 죽어 가는 자들에게 자비를 보여 주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소홀히 한 일을 착수하여 인간에게 창조주의 도덕적 형상을 회복시켜 주기 위하여 노력하라고 호소하신다.(구호봉사, 49)



둘째 날(월) 유혹을 조심하라


남의 문제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남에게는 관대한 이해의 마음으로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객관적인 마음으로 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로 인해 나의 교만이 더 우쭐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도 넘어질 사람으로 생각하여 더욱 조심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위해 기꺼이 무릎 꿇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9:12)

또한 바울은 히브리서 3장을 통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언급하면서 그들의 실패의 원인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퍅함과 하나님을 능히 믿지 아니함”(히3:8,19)을 지적하면서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례한 자가 되리라”(히3:12-14)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람과의 비교는 교만과 열등의식에 빠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볼 때에 신뢰가 생기고 확신이 생기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자 결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이 되실 때 자존감이 회복되고 충만한 생명력의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셋째 날( 화) 짐을 서로 지라


교우들 간에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해 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나의 창조주 하나님이 매일 필요한 존재들임을 서로 간에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연약하여 넘어지는 부분에 대하여 비난으로 더욱 낙담 속에 빠지게 하지 말고 누구나 넘어질 수 있는 사람들임을 인정하고 함께 그 넘어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협력할 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빌2:4)야 합니다.
같은 시대, 같은 나라, 같은 교회에서 신앙한다는 것은 창조주의 섭리 속에 있는 매우 소중한 관계입니다.

특별한 관계 속에 두신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을 알고 서로에게 힘이 되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될 때 주님의 피로 사신 신앙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게 될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마5:16)



넷째 날(수) 그리스도의 법


그리스도의 법은 법을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품성의 사본일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말할 때는 반드시 말하는 사람의 품성에 따라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이라는 말씀 속에서도 하나님의 품성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고유한 기념비적인 이름은 여호와 입니다.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의미의 여호와는 온 우주의 존재들과 하나님을 구별하는 유일하고 명쾌한 이름입니다.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음을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통해 만들어진 루스벨이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이 되었고 그 사단의 거짓말을 받아들여 하나님을 떠나게 된 아담과 아담 안에서 태어날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창조주로서 피조 된 자의 선택의 결과에 책임지시는 당연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자가 되기로 이미 창조 전에 작정하셨고(슥6:13) 하나님을 떠나는 사건이 있자마자 그 계획을 발표하셨습니다.(창3:15)

그 계획의 실행방법이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창3:21)

그리고 구원자로서 기름받기 위해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법이라는 말씀 속에 이미 창조주 하나님의 책임지시는 품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법에 의하면 하나님의 품성인 사랑으로 각각의 짐을 교우들과 함께 협력하여 나눌 수 있는 짐이 있는 반면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하면서 내가 감당해야 할 짐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도움 속에서 감당해야 할 짐들은 나만 알고 있는 죄책감, 정신적 육체적 고통, 죽음에 대한 공포 등입니다.

이런 짐들은 내가 이 땅에 태어났음으로 인한 것들이고 그런 것들은 엄밀히 생각해 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영역 속에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으므로 생긴 것들이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당면한 문제에 대한 모든 책임을 하나님 자신이 지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시는 사랑의 법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의 품성이 절대적 사랑임을 확신할 때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짐들을 대신 지어주시는 분임을 확신하게 되어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길 수 있게 됩니다.(시68:19; 마11:28-30)



다섯째 날(목) 심고 거둠


저자는 “바울의 요점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그의 명령을 어길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앞설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최후의 심판자이시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는 결국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교과, 186쪽)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설명에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 오해는 하나님께서 심판자라고 하는 표현이 심판을 행하는 분처럼 생각될 수 있습니다.

둘째 오해는 사람의 행위에 대해 결국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표현이 사람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 행위의 결과대로 대가 즉 상이든, 벌이든 주는 분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자라는 말의 의미는 집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그대로를 드러내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요12:47)

하나님은 심판자로서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대로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을 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것이 사망임을 아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생명 속에 있게 하기 위해 생명이신 하나님의 품성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길 원하시고 호소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강제하시지 못하시는 사랑의 속성에 따라 호소하시고 성령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선택이 어떤 것인지를 드러내는 때가 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의미에서의 심판자의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자유의지를 주셨다면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것을 사람의 자유에 맡기신 것입니다.

자유의지를 주시기는 했지만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는 사람이 책임져야만 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에 빠집니다.

선택의 자유로 하나님의 생명을 거절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 할 수도 있는 선택의 자유였지만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서만 사랑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생명이므로 하나님은 위험부담을 안고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신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거절하는 선택을 한다 할지라고 그 선택의 결과를 사람에게 묻지 아니하시고 선택의 자유를 주신 창조주께서 대신 지실 것을 창조 전부터 결심하셨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창세전에 이미 죽임을 당한 어린 양”(계13:8)이 되셔야 했고 창조주가 되기 전에 구원자가 되셔야만 했습니다.(사43:1)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심으로 우리의 행위를 보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롬5:8)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행위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벌을 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호소를 거절하고 다시는 돌이키지 않음에 대한 결과로 창조전의 상태인 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의 대가가 되어야 합니다.(시34:21)

하나님이 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대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선택의 결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부작용들도 자신의 선택의 결과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요12:32)

하나님과의 연결이 나의 죄 된 본성보다 더 강력한 성령님의 은혜로 인해 다른 믿음의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가 할 수없는 것을 우리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십니다.(요14:10)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확신하고 하나님의 품성을 알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알게 될 때 점점 “전체가 사랑스러우신” 하나님께 끌려지게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나가십니다.

지금 하나님을 힘써 아는 일에 투자해야 합니다.(호6:3)

그러면 결과는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만드십니다.

http://blog.naver.com/01hyung

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이은규님이 남긴 글입니다.

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늘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늘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박용범님의 댓글

박용범 댓글의 댓글 작성일

이은규님...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격려에 힘을 얻었습니다. 앞으로도 말씀 속에서 좋은 교제 기대합니다.

정구성님의 댓글

정구성 작성일

하나님의 품성으로 성경을 해석해주시는 목사님덕에 성경에서 율법이 아닌 하나님을 보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알게해 주시는 목사님께 늘 감사합니다.

박용범님의 댓글

박용범 댓글의 댓글 작성일

정집사님..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격려에 감사드리고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joy letter님의 댓글

joy letter 작성일

목사님의 교과해석을 보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해석을 토대로 교과반 전체가 활기차게 토의하고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들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늘 감사드리며 건필하세요.

박용범님의 댓글

박용범 댓글의 댓글 작성일

Joy letter 님 좋은 소식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안교해설이 교과반원들에게 유익이 된다니 기쁩니다.
격려에 힘입어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작나무님의 댓글

자작나무 작성일

^^*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맞아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잘못까지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
그런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분들을 세워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집니다.

박용범님의 댓글

박용범 댓글의 댓글 작성일

자작나무님...하나님의 품성에 대해서 공유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마지막 자비의 기별인 하나님의 품성이 온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게 하기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감사합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