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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과 두 언약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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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1-11-25 17:48 조회4,2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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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과 두 언약


기억절: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4:26)


첫째 날(일) 언약의 기초

범죄 이전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은 최초의 언약의 기초는 하나님의 품성에 기초되어 있습니다.

언약이 하나님의 품성이 기초되어진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아담과 언약을 맺으시는 분이라면 하나님의 행위는 하나님의 품성이 기초되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하신 하나님은 창조된 사람의 생명과 행복에 관련된 언약을 말씀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창조 때에 주신 자유의지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생명과 행복을 선택하도록 부탁하시고 호소하셨습니다.(창2:16-17)

이것은 창조주로서의 언약이었습니다.

그런데 글이 “명하여”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명령처럼 생각되어 지지만 자유의지를 주신 분이고, 강제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품성 상 명령하실 리가 없습니다.

인간의 본질이 무의 상태였지만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어졌고 하나님의 주시고자 하는 생기를 받아야만 사는 존재임을 아시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생명을 주시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선택하여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길 원하셨습니다.

주시고자 하시는 생명을 강제하지 않으시고 선택의 영역에 두셔서 사랑의 자유로운 선택만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생명 속에 있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서는 하나님을 거절하여 창조전의 상태인 사망에 빠질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하여 생명 속에 있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순종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볼 때 믿을 만한 분이라고 확신할 때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생기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단의 거짓말(하나님이 창조주가 아니라는 말과, 하나님의 품성은 믿을만한 것이 아니라는 말)에 의해서 아담과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아들을 잃어버렸으므로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아들에게 주신 자유의지의 결과를 창조주 이신 하나님께서 대신 처리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 전에 계획하신 대로 구속의 경륜을 발표하셨습니다.(창3:15)

그것은 구속주로서의 언약이었습니다.



둘째 날(월) 아브라함의 언약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아들이 태어날 것을 말씀하셨고 후대에 인류의 소망이신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것을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하나님께서 주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행하실 일을 언약 속에 말씀하셨고 그 언약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임을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일을 통해 확증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담보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 날(화) 아브라함과 사라와 하갈


하나님의 언약의 핵심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한 아들의 탄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창조전의 상황과 같은 상황 즉 죽은 몸 같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크지 않았던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신들의 몸이 아들을 낳을 상황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종이었던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고자 시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인간이 도와드리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었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못 믿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님의 품성을 믿지 못함으로 스스로 알아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행위대로 이스마엘을 낳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하갈의 생각이 서로 맞아서 이루어진 일이었고 사람들이 갖고 있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 없음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넷째 날(수) 하갈과 시내산


시내산에서의 경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아닌 자기 확신으로 반응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언약)은 하나님의 품성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그 약속을 말씀하신 분께서 이루시는 약속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였으므로 스스로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속에 종처럼 스스로의 행위로 이루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하갈이 갖고 있었던 생각과 시내산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이 동일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님의 품성에 대해 오해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명령으로 생각하고 명령이라면 순종하면 상을 받지만 순종하지 못하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내 행위를 언약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여 행위로 약속(언약)을 이루고자 시도하며 이런 시도를 하나님을 도와드리는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섯째 날(목) 오늘날의 이스마엘과 이삭


이스마엘은 행위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고자 시도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표이고
이삭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언약을 이루심을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한 예표입니다.

이스마엘은 사람들의 작품이고 이삭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품성의 결과인 반면 이스마엘은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스스로 약속을 이루고자하는 사람의 품성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차이점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생명을 지속적으로 받아야만 사는 존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일 때만 창조주로서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할 수도 없고 우리가 뭔가를 행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도 오직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혹은 여호와 하나님의 품성을 믿는냐, 믿지 못하느냐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일 때 창조주로서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함으로 스스로의 행위로 약속을 이루고자 합니다.

나는 어느 편에 속한 사람인가 자문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교과해설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01h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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