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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기 6과 언약의 선재성(교과 한장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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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병주 작성일11-11-04 17:14 조회3,11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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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바울 사도는 율법에 우선한 약속이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율법 후에 언약이 아니라 언약이 먼저 430년 전에 있었고 그 후에 율법이 주어진바 그 율법이 언약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은 인간 사회에서는 약속에 대한 신뢰심이 낮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 변함이 없이 이루어짐을 강조한다.  

(일) 율법과 믿음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상호 계약이 아니었다. 바울이 사용하는 단어는 유언의 의미를 가진 “디아데케”로 일방적인 선언이나 약속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은 인간의 어떠함에 따라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은혜로 변치 않는 약속이다.
▸사실 새 언약은 더 오래된 언약이며 이것은 은혜의 언약이다. 그 뒤에서 생긴 옛 언약이 새 언약, 은혜의 언약을 대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언약은 그분의 은혜에 근거한다. 인간을 향한 사랑의 마음에서 출발한 그분의 언약은 인간의 조건에 따라 변하지 않으며 다른 어떤 조건이 파기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은 은혜의 언약이라고 부른다.  

(월) 믿음과 율법

▸율법이 언약을 파기하지 못하듯이 믿음이 율법을 파기하지도 않는다. 구원의 조건으로 율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해서도 안되지만 믿음의 열매로 율법은 정당하며 오히려 믿음이 율법을 세운다고 선언한다.
▸율법의 행위를 동기로 판단한다면 구원의 조건으로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행위의 주체가 인간이며 목적성이 있는 의도된 행위이지만 믿음의 결과로 나타난 율법의 행위는 사랑의 동기에서 출발한 순수한 행위이기에 동일한 일을 하여도 그 가치는 전혀 다른 것이다. ]
▸언약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율법도 하나님의 뜻이다.

(화) 율법의 목적

▸도덕적 율법(계명)은 우리가 죄인임을 보여주고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며 의식의 율법은 죄인인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더해진 것이다. 그 희망은 그리스도이며 율법은 바로 이러한 이류로 주어졌다. 율법을 통하여 죄인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발견한다. 법은 사형을 선고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십자가의 주님을 제시한다.
▸거울이 없다면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얼굴이 더럽다는 것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거울이 없다고 얼굴이 더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은 그런 측면에서 죄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율법이 죄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죄 되게 나타냄으로 병자로 의원이신 그리스도를 찾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병든 자에게라야 의원이 쓸데 있고”라고 하셨다.  

(수) 율법의 지속성

▸약속의 자손이 오시기까지... 는 그리스도 이후에 율법의 불필요성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율법의 목적성을 말하는 것이다. 율법은 죄인을 그리스도에게까지 인도하는 목적을 가진 몽학선생이다. 율법이 우리는 깨끗하게 할 수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러나 그 후에라도 율법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 목적을 수행한다. 율법은 거룩하며 진실하고, 선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항구적으로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은 율법이다. 약속의 자손이 오시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이 거기 까지 라는 것이다. 율법은 여전히 존재하며 지금도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고 있다.
▸율법은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케 되는 것이며 이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율법의 사명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 목적이 성취된다. 그분이 율법의 마침 곧, 목표이기 때문이다.

(목) 율법의 우월성

▸어느 날 언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편에서 일방적으로 이르러 온 것이다. 그 은혜는 아브라함이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를 가치있게 하기 위하여 부르신 그분의 일방적인 약속이었다. 아브라함은 원함은 있었지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은 아들을 약속했다. 그 아들은 하나님의 독자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 은혜의 언약을 이해하고 필요성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430년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모세와 천사들을 통하여 율법을 주셨다. 율법은 은혜의 언약을 위한 부수적인 필요에 따라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율법은 은혜를 더욱 은혜가 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결론

은혜가 먼저이며 율법이 나중이다. 은혜는 율법을 폐하지 않으며 율법은 은혜를 더욱 굳게한다. 이 둘은 상호 충돌되지 않으며 오히려 율법은 은혜를 더욱 은혜가 되도록 한다.

토의할 것

1. 율법이 이젠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율법의 지속성을 어떻게 설명 할 수 있나요?
2. 당신이 잊어버린 경험이 있는 소중한 약속 같은 것이 있나요?

댓글목록

산마루님의 댓글

산마루 작성일

목요일~언약의 우월성 아닌가요? 공부 잘 하였습니다^^

이병주님의 댓글

이병주 작성일

ㅎㅎ 그렇네요 ^^ 이래서 은혜가 필요하다는것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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