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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기 9과 미혹하는 말을 믿지 말라": 선지자와 예배(교과토의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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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대언 작성일11-08-20 01:20 조회4,1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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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제3기 9과 교사모임 >

1. 안교교과: 30%이상 말하지 말라, 경청, 격려 중요!
  
1) 제목: 미혹하는 말을 믿지 말라": 선지자와 예배

2) 기억절:  “내가 옛날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고하며 진술할 자가 누구뇨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고할지어다”(사 44:7).


2. 도입질문: 마음을 열기 위한 질문

1)토의질문:
당신이 드린 예배 중에 예배 때에 이런 모습은
좀 사라졌으면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잡담, 전화벨, 단상에서 조는 것, 마이크 잡음 - 준비를 잘 못해서 등...)

2)교사정리:
감사합니다. 더 좋은 예배가 되도록 서로가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교과는 선지자들이 바라본 예배에 관해 알아봅니다.


3. 교과요약 질문

1)질문:
각 교과의 요일별 내용을 통해 미가, 이사야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라본 예배에 대해 알아봅시다.

2)교사정리:

①일요일(천천의 숫양):  
하나님께서는 참 예배자에게 찾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6:8)

*부가설명:
본문을 자칫 잘못 이해하면 두가지 면에서 오해할 수 있다.

첫째는 구원에 대한 오해이다.
본문을 마치 사랑과 공의를 행하여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미6:4-5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기록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과 공의의 삶은 이미 구원받은 자에게 요구하시는 삶임을 알 수 있다.

선행은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가시나무는 절대 포도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죄인은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어떠한 노력으로도 가시나무가 포도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죄인에게 사랑이라는 열매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가시나무가 포도나무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가시나무는 포도를 맺을 수 없다.
즉 죄인이 의인으로 다시 거듭날 때 비로서 하나님은 의인에게 의로운 삶을 맺게 하실 수 있으시다.
사랑과 공의라는 열매를 주시는 이유는 그것이 행복한 삶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오해는 하나님의 품성이다.
즉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받으시길 원하시는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 하나님은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분으로 말씀하고 있다(행17:24,25).
그런데 본문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상반된 내용이 종종 기록 되어있다.
예를 들어 섬김을 받으로 온 것이 아닌 섬기로 오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섬기라고 요구하신다(마20:28; 요12:26).

아들의 생명까지 주시는 분이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요구하신다(마22:37).

아무것도 받지 않으신다는 분이
우리에게 받는다고 요구하시는 것이다(막12:2).

이렇게 표현된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품성은 자아희생적 사랑, 주시는 사랑이다.

이런 사랑만이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자신의 몸숨보다 남을 더 사랑하는 삶이 참된 행복이니
너희도 네 몸숨보다 남을 더 사랑하면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단다.

이것이 하나님의 행복이고 하늘의 행복의 원리란다.
즉 참된 행복은 자아희생적 사랑을 통해 얻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
이것이 진정한 행복의 원리이기 때문이기에....

하나님은 받기 위해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닌
참된 행복의 원리가 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는 사랑하라 말씀하시는 것이다.


②월요일(이사야를 부르심):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사야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답: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6:5)
*자신의 부정을 회개하는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사해주셨을 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답: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6:8)

*부가설명:
이사야 1-5장의 기록에 의하면 이미 이사야는 선지자로서 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6장에 특별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품성을 말한다(출33:18,19).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이전에 알고 있었던 하나님의 품성보다 더 깊은 사랑의 품성을 보았다.

그때 그는 자신의 죗된 본성(자아 중심적 욕망)을 더 깊이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아희생적 사랑에 비해 자신의 자아중심적 욕망을 실체를 더 깊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욕망을 가진 존재인지 깨달았기에
부정한 자라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더 깊은 사랑의 빛은 그가 보지 못한 자아 중심적 욕망을 보게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더 많은 자아 중심적인 죄됫 본성을 보게 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사야에게 십자가의 희생을 상징하는 불을 통해 정결케 하셨다.
이러한 회개는 이사야가 자신을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하므로 자아가 섞이지 않는 순수한 사랑의 열매와
그 사랑으로 사역을 감당케 할 것이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으로 충만한 이사야에게
하나님을 오해하고 곁길로 가는 유다백성을 깨우칠 사역을 부탁하셨다.  


③화요일(헛된제물):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무수한 제물을 하
나님께서는 헛되게 바라보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 제물의 의미를 상실함, 뇌물처럼 드려 하나님의 마음을 사고자 하는 제물로 변질 등)

*부가설명: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뇌물이 아니다.
이방신들이 뇌물을 원하지 하나님은 뇌물을 원치 않으신다(신10:17).

뇌물은 상대방의 마음을 변개케하기 위해서 준비하나
성경에 하나님의 제물은 하나님편이 아닌 우리의 마음을 변하게 하기 위해 준비된 것이다.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과
구원하시는 용서를 받아드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제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물은 사랑과 구원을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을 알지 못하고 마치 뇌물처럼
하나님께 복 달라고 바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즉 헛된 제물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이 가져오는 제물의 참된 의미를 이해했다면
그들은 회개하였고 죄인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변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제물의 의미를 상실했다.


④수(우상숭배의 허망함):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이 왜 허망할까요?
(구원할 능력이 없기 때문, 가짜이기 때문 등)

*부가설명:
위조지폐를 진짜 지폐인줄 알고 사용하다가
가짜임을 알게 된다면...

암에 걸렸는데 암을 치료할 진짜 약이라고
소개 받은 약이 감기약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당신은 허무하지 않겠는가?
우상은 가짜이고 능력이 없다.

그것에 의지하는 것은 허망한 것이다.
하나님 만이 참이다. 거기에만 구원의 능력과 참된 사랑이 있다.


⑤목(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이스라엘 백성은 이곳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여호와의 성전이라 말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 성전이 더 이상 성전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장소가 되었다)

*부가설명:
여호와의 성전은 예배의 장소이며
예배는 사랑의 하나님을 만남으로 죄를 정결케하고
하나님의 품성으로 변화되는 능력을 얻는 곳이다.

그러나 더 이상 여호와의 성전은 이러한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능력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전은 겉모양만 있을뿐 그들을 회개시키고 구원하며
사랑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의 장소로서는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유다백성에게 여호와의 성전이라 부르지 말라고 하셨다.
기능을 상실하고 망가진 자동차가 더 이상 자동차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 유다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가슴 아픈 사랑의 호소를 들어야 할 것이다.

4. 교과토의 질문

1)토의질문(일요일):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 일어날 자비와 공의 삶을 원하십니다.
만약 한 주라는 시간이 당신에게 주어진다면 실천하고 싶은 사랑의 삶은 무엇입니까?
(답: 해외봉사, 해외선교, 불우이웃 봉사 등)

*교사정리: 감사합니다. 참된 예배를 우리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예배가 곧 삶임을 기억합시다.


2)토의질문(월요일):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봄으로 자신의 죗됨을 고백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죗됨을 어떤 경우에 많이 느끼게 됩니까?(
답: 말씀볼 때, 기도할 때, 설교, 신앙적 이야기, 성경공부 등)  
최근 자신의 죗됨을 다시금 깨달은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교사정리: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품성의 더 밝은 빛을 통해 더 밝은 빛된 삶이 일어나는 우리 안교반이 됩시다.  


3)토의질문(수):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이 빼앗겨서
우리의 힘과 시간을 바치고 있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습니다.

당신의 이번 한주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과 만남을 가지는 일에
또한 말씀과 기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바빠서 종종 정신없이 지나가는 경우는 없습니까?
이번 한주의 삶을 돌아보고 말씀과 기도 또는 예배가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지 나누어봅시다.

*교사정리: 감사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말씀과 기도) 규칙적으로 그리고 은혜롭게 가지는 우리 안교반이 됩시다.


5.결심: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보게 되면
이사야처럼 자신의 더러움을 깨닫고 영혼이 깨끗해지기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자들을 공의와 자비의 정신으로 섬기며,
겸손히 자신과 함께 거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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