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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죄로 인해 타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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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8-10-14 18:16 조회4,5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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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10월18일(안) 일몰 오후5시51분

제3과 죄(罪)로 인해 타락(墮落)함

<확대경(擴大鏡)>
◎ 죄의 설명은 술 취함으로 인한 설명의 결과와 똑 같다.
기분 좋을 것 같지만 결국 술이 사람을 끌고 다니기 때문이다.

일(日) 10월12일
<에덴에서의 반역(叛逆) (창 2:16-17)>

◎ 창세기 2장16-17절의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와, 창세기 3장3절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實果).”를
더 쉽게 설명을 하여 본다면 우리들의 결혼생활의 비유(譬喩)로써 부부(夫婦)만의 순결(純潔)만은 절대(絶對)로 범(犯)하지 말라는 것과 같이 이해(理解)를 해본다면 이해가 잘 가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즉 결혼한 부부지간(夫婦之間)에 있어
타인(他人)들과 이야기도 하고, 식사도하고, 여행도 가고 ……. 모든 것은 할 수 있으나, 순결(純潔 / 정조(貞操))만은 절대로 범(犯)해선 안 된다. 이것이 부부(夫婦)지간에 표징(表徵)이며 부부지간의 약속(約束)이라고 생각해보자.
바로 하나님께서도 인간과의 약속의 표(表)로, 순종의 표로 동산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로, 이 중앙(中央) 이라는 말을(인간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생각해보자) 강제적(强制的)으로 하지 않고 다만 행복을 위한 순종의 표(表)로 한 약속이 (창 2:16-17과 창 3:3)의 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과 교제(交際)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形象)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사람은 죄(罪)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어 버렸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제를 다시 가지도록 구세주(救世主)로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
즉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罪)를” 담당하셨던 것이다. (벧전 2:24)
죄가 어떻게 우리를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끊어버렸는지 요한일서 1장9절에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自白)하면, 하나님은 신실(信實)하시고 의(義)로 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容恕)하시고, 모든 불의(不義)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요일 1:9)

◎ 아담과 하와는 순결(純潔)한 무죄(無罪)의 상태(狀態)에서 선택의 능력(能力)을 가진 인간으로 창조(創造)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에게 나타나셨고 그들과 교제(交際)하셨다. (창3:8)
죄의 주인공인 사탄은 뱀으로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疑心)하도록 그들을 유혹(誘惑)하였다.
그들은 유혹을 받고 그 시험(試驗)에 빠졌다.
이리하여 죄는 세상에 들어 왔으며 사탄은 지금까지도 하나님께 불순종(不順從)하도록 사람들에게 그의 악(惡)의 힘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그 들의 죄의 결과가 창세기3장에 열거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게 되어있으며 땅은 저주(詛呪)를 받았고 그들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래서 자비(慈悲)로 우신 하나님께서는 죄로부터 사람을 구속(救贖)할 분을 약속(約束)하였다. (창 3:15)
여인(女人)의 후손(後孫)(동정녀(童貞女)로 부터 탄생(誕生)할 예수)으로 마귀(魔鬼)의 일을 멸(滅)하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요일 3:8)

◎ 시험 후에 비워진 하늘 천사들의 자리를 충원시키려 하셨음(창 1:26; 사 43:6, 7)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으니 시험과 시련을 거치고 난 다음에 인간 가족은 하늘 가족과 하나가 되게 할 계획이셨다. 만약 인간들이 그분의 모든 말씀에 기꺼이 순종한다면 그들로 하늘을 다시 채울 것이었다. 따라서 아담은 충성스러운 천사들과 같이 순종하는지 아니면 배역하는지를 보이도록 시험을 받아야 하였다. 만약 그가 그 시험을 이겼더라면, 후손들을 가르침에 있어서도 충성을 강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마음과 생각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같이 되었을 것이요, 그의 품성은 하나님의 품성과 같게 꼴 지워졌을 것이다(편지 91, 1900).

◎ 사단의 사업, 곧 죽음의 씨앗(요 8:44; 창 3: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몸의 조직 속에 죽음의 씨앗을 결코 심지 않으셨다. 사단이 아담을 유혹해서 선악과를 먹게 하고 하나님을 배역하게 했을 때 바로 이 죽음의 씨앗이 심겨진 것이다(원고 65, 1899).
즉각 집행되지 않은 사형(계 13:8)―아담이 유혹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가 암시하는 대로 따랐을 때, 그는 죄에 빠졌다. 그런데 왜 아담의 사형 집행이 즉각 시행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대속의 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사람의 죄를 몸소 지시고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죗값을 지불하기를 자원하셨다. 하나님께서 만일 아담의 죄를, 속전을 받지 않고 용서하셨다면 죄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채 영원히 계속되었을 것이다(리뷰 1901. 4. 23).”

◎ 가장 좋은 조건의 생명 보험(계 11:1 참조)
“여기에 그대의 보험 증서들이 있다.
이것은 그대가 죽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받게 되는 그런 가치를 지닌 보험 증권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에게 하나님의 생명과 맞먹는 생명 곧 영생을 보증하는 증권이다. 오! 참으로 놀라운 보증, 놀라운 소망이로다! 세상 앞에 우리는 더 좋은 나라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어 보여주자. 하늘나라는 우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요, 우리는 그 속의 일부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다른 사물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를 분리시키도록 그냥 놔둘 여유가 없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형제자매들이여, 그대들은 오직 하나의 생명만 가지고 산다. 오, 그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인 생명 곧 선한 생명이 되게 하라!(리뷰 1904. 5. 26).

◎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안전하게 확보해 둘 사항(요일 3:1 참조)
하나님의 택하신 자로서 영생의 보험 증권을 받은 사람들에게 내리시는 은혜들을 그대가 안전하게 확보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그대의 행동 노선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원고 81, 1900).

◎ 하와와 아담은 하나님께서 사랑의 표로 즉 영생하도록 창조(創造)하셨으나, 영생을 위한 지침(指針)으로(열쇠로)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實果)(창 3:6)를 통하여 따먹지 말라는 명백한 명령을 거역(拒逆)하고 배반(背叛)하였다. 이는 사망으로부터의 위험한 울타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울타리를 훼손(毁損)함으로 사망이 찾아옴으로 영생(永生)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로 생명으로부터의 단절(斷切)과 에덴동산에서의 추방(追放)과 동시에 그룹들을 통하여 화염검(火焰劍)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창 3:23-24)
이와 같이 하와와 아담은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을 버리고 사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사단의 말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반역(叛逆)하였으며 그로인해 하나님과의 연합(聯合)은 깨어지고 말았다.

월(月) 10월13일
<죄(罪)의 종이 됨 (벧후 2:19)>

◎ 아침에는 신사복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갖은 아름다움을 뽐내며 아내와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보무도 당당하게 직장에 출근을 하고 직장의 도료들과 뭇사람들로부터 위용(偉容)?을 과시(誇示)하며 일과를 멋지게 끝내고 퇴근을 하게 된다. 이후 퇴근(退勤)길에 술집에 들러서 부터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주당(酒黨)들의 언변(言辯)을 들어보면 술을 먹는 이유에 대하여 기분 좋아서 한잔하고, 또는 기분 나빠서 한잔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작(始作)을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고, 어느 정도 술을 더 먹게 되면 술이 술을 먹게 되며, 조금 더 술자리가 지나가면 이제는 술이 사람을 먹게 된다.
이 때 부터는 먼저 마음이 즉 정신(精神)이 자신의 본연(本然)의 정신이 아니요 술에게 자신을 맡긴 상태라서 하는 말 모두가 이성(異性)을 잃은 헛소리와 쓸데없는 잔소리와 목에 힘줄이 뛰어나오도록 목청을 높여서 고성(高聲)으로 말을 하고 아침에 정장한 옷매무새는 어디로 간데없고 눈동자의 동궁도 넓혀져서 히멀게 되어 초점도 풀리고, 모든 언행(言行)이 참으로 가관(可觀)이 된다. 한 말을 반복(反復)해서 하며 예의염치(禮儀廉恥)는 온데간데없이 같이 있는 이웃과 친구와 가족들에게 참으로 많은 피해(被害)를 안겨 주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도 술에 대한 말씀이 술을 보지도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

☞ (잠 23:29-35) “재앙(災殃)이 뉘게 있느뇨. 근심(謹審)이 뉘게 있느뇨. 분쟁(忿爭)이 뉘게 있느뇨. 원망(怨望)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創傷)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混合)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葡萄酒)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順)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것이요 독사(毒蛇) 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怪異)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妄靈)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傷)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感覺)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 전자(前字)에 기록한 술이 죄(罪)와 같은 비유(譬喩)로 생각이 들어서 서술(敍述)해 보았다.
술을 먹고 술에 취하면 술에게 종노릇하게 되는데 술이 취하면 술이 깨기 전에는 스스로 마음과 몸까지 가눌 수 없이 술의 노예가 되는 것과 같이, 죄(罪)또한 죄인을 죄의 종이 되어서 노예(奴隸)생활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 바울은 무서운 죄(罪)의 세력(勢力)을 묘사(描寫)하기 위해 그것을 폭군에 비유(譬喩)하였다.
죄(罪)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왔고(롬 5:12),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하며 (롬 5:21, 6:12),
사람들을 속이고 (롬 7:11),
사람들 속에 거하며 (롬 7:17절),
그들을 종으로 삼고 (롬 6:20),
마침내 죽게 만들었다 (롬 7:13).
아담과 하와의 죄는 모든 것을 무서운 죄의 세력 아래로 떨어지게 하였다.
사단은 이 세상 임금이 되었다(요 12:31, 14:30)
자치권(自治權)을 찾아 나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주(主)로 섬기는 대신 속박하는 사단을 주인으로 섬기게 되었다.
죄는 온 세상을 뒤덮는 강력한 세력이 되었고,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거기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롬 5:12) (교과 40p)

◎ 종(노예(奴隸))이 자유인(自由人)이 되는 데는 조건(條件)이 있다.
그 조건이란 1).스스로는 종의 신분을 벗을 수가 없다는 점과, 2).대가(代價)를 지불(支拂)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과 모든 피조물(被造物)은 죄로 말미암아 죄의 세력(勢力)아래 놓이게 되었는데 이는 죄의 종이 되었다는 말이다.(벧후 2:19; 롬 6:16; 롬 3:10-12), 그러므로 죄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구원자(救援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贖罪)의 길밖에 없다.(마 1:21; 행 4:12)

화(火) 10월14일
<영적(靈的)인 죽음 (롬 8:6-7)>

◎ 사람을 컴퓨터로 생각해보자.
육신(肉身)을 “하드웨어”로 생각하고, 마음과 정신을 “소프트웨어”로 생각해보자.
아무리 신체(身體)가 건장(健壯)한다 해도(외모(外貌)) 그 육체를 움직이고 이끌고 다니는 것은 생각(마음)이다.
그러나 노숙(露宿)하시는 분들을 보면 태반이 신체는 건강하지만 대낮부터 술에 취해 인사불성(人事不省)인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이들은 필시(必是)지난 과거에 열심히 살다가 특별한 사정(事情)이 있어 그처럼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것으로 이해를 한다. 그러나 건장한 신체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술로 또는 자포자기(自暴自棄)로 건강한 육신을 망가뜨리는 경우로 생각하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안타까움과 동정(同情)이 간다.
반면(反面)에 지체장애(肢體障碍)를 갖이고는 있지만 그 얼굴에는 환한 미소(媚笑)와 기쁨과 감사함으로 사는 분들을 보게 된다. 즉 하드웨어는 망가졌지만 그의 삶은 참으로 아름답고 건강하고 멋진 삶인 것이다.
영적(靈的)으로 죽으면 만물의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은 참으로 비참하고 참담한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 육신(肉身)의 생각이란? (본교 성경주석11권 679p 인용)
“육신의 마음” 을 뜻하는 것인데, 이 경우 “생각”은 “사상”으로 “목적(目的)”이나 “의도(意圖)”나 “경향(傾向)”을 뜻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이 “사망(死亡)”에 이른 다는 말이다.
“육신(肉身)의 마음”은 → 다른 것은 전혀 생각지 않고 오로지 육신적인 욕망들을 충족시키는 일만을 생각하면 그것은 죽음이다. 라는 것이다. 이런 이기적(利己的)인 목적을 위하여 사는 자는 살아있으나 죽은 자이며(딤전 5:6, 엡 2:1, 5 참조). 영적(靈的)인 죽음의 현 상태는 결국 영원한 사망으로 인도할 뿐이다라는 설명을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영(靈)의 생각”이란? → 문자적으로 “성령의 마음”을 뜻한다.
<생명과 평안>→ 영적인 사물에 마음을 두고 하나님의 성령이 생각과 욕망을 온전히 지배하도록 할 때 영혼의 모든 기능이 건실(健實)하고 생명을 주는 조화(調和)를 일으켜 내세(來世)를 미리 맛보게 하고 그에 대한 확실한 보증(保證)을 갖게 한다. (갈 5:22). “성령 안에서 의(義)와 평강(平康)과 희락(喜樂)” (롬 14:17)을 주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서 시작되게 한다.
“영의 생각”을 가진 자(者)들과 “그 영을 좇아 행하는”(롬 8:4) 자들은 용서(容恕)와 화목(和睦)의 평화를 누린다. (롬 5:1).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에 “부은바” 되어 (롬 5:5) 생애 가운데서 율법의 의(義)로운 요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기쁨과 용기(勇氣)를 갖는다. (롬 8:4). 그들은 궁극적인 구원과 영생을 바라본다.
반대(反對)로
육신(肉身)의 생각을 가진 자들과 “육신을 좇아 행하는” (롬8:4, 6)자들은 속박(束縛)과 정죄의 파멸적(破滅的)인 경험을 할뿐이며 (롬 8:1, 15, 21), 오직 심판과 사망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롬 1:32; 2:5-6, 6:21-22)

◎ “육신(肉身)의 생각”
헬라어 “프로네 마 테스 사르코스”의 뜻은
☞ “육신(肉身)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怨讐)가 된다.
육신의 사물들에게 마음을 두고 자기주장과 자아(自我)방종(放縱)의 삶을 사는 것은 확실히 하나님을 적대시(敵對視)하고 그분의 뜻과 조화(調和)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참조 야 4:4).
그런 과정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생명의 근원에서 분리(分離)되게(사망(死亡)을 의미함)한다.
하나님께 대한 이런 적대감은 성령(聖靈)안에 사는 자들에게 이르러 오는 평안(平安)과 반대되는 것이다.(롬 8:6)

◎ <사도바울은 왜 육신의 생각이 사망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굴복(屈伏)치 아니할.(롬 8:7)> →
곧 “자신을 복종(僕從)시키지 않다”라는 말로 동사는 군대(軍隊)용어로 명령에 복종함을 의미한다. 현재 시제는 끊임없이 굴복하는 것을 암시한다.
육신(肉身)에 고정된 마음은 그분의 율법에 지속적(持續的)으로 불순종(不順從)함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敵對感)을 드러낸다.

2.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율법에 전혀 굴복(屈伏)할 수도 없다. 오직 성령의 변화시키는 능력으로써 만이 순종이 다시금 가능(可能)해진다. 사람이 처음으로 창조되었을 때에는 그 마음과 삶이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조화 되었다.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이 그의 마음에 쓰여 있었다. 그러나 죄는 사람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했고, 사람의 마음은 적개심(敵愾心)과 반항심(反抗心)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 결과 사람이 죄의 권세아래 타락(墮落)한 이후 인간은 육신의 성향을 따르게 되어,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하는 일이 불가피(不可避)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순종하고자 하는 율법주의(律法主義)적인 시도(試圖)로 의(義)와 구원(救援)에 이를 수가 없는 것이다. 자아(自我)와 죄에 대하여 죽지 않고 성령(聖靈)안에서 새 생명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롬 6장) 그는 하나님의 뜻에 굴복(屈伏)할 수 없다. (부조 64)

◎ 인간은 죄로 인하여 영적(靈的)인ㄱ음에 이르렀으며 그 늪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출(구원(救援))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출하기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분을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여 성령(聖靈)안에서 새 생명의 삶을 삽시다.

수(水) 10월15일
<육체(肉體)의 영원(永遠)한 죽음>

◎, 인간은 오래전부터 불로장생(不老長生)하는 것을 원(願)했고, 그 문제로 권력(權力)을 잡는 사람들 마다 불로장생에 대하여 미련(未練)을 갖고 또한 인간적인 방법들을 추구(追求)하고들 있지만 아직까지 그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은 없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고 영생을 보장해 주셨으나, 불순종으로 인한 죄로 말미암아 인간들은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束手無策)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창 3:4 , 롬 6:23, 창 3:19)

◎ 죽음과 고통이 없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죽음과 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죽음은 죄인을 영적(靈的)으로 죽게 할 뿐만 아니라 육체적(肉體的)으로도 영원히 죽게 한다.
죽음은 단순한 생물학적(生物學的)현상(現象)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根源)으로부터 영원히 단절 되는 것, 즉 두려운 영멸(永滅)을 의미한다.

◎ 인간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형편에 처해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대신하여 죄의 값을 대속(代贖)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살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한 비유(譬喩)로
감자를 비롯한 모든 종자(種子)들은 씨눈이 있어야 이듬해에 싹이 나서 많은 식물을 추수(秋收)할 수 있듯이, 씨눈의 기능(機能)이 바로 생명이 되시는 분의 기능이라고 적용해봅시다.

목(木) 10월16일
<인간(人間)의 죄(罪)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反應) (창 3:8-13)>

◎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어린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잘못(죄)을 범하면 숨는 것을 경험하였을 것이고, 자녀들을 보면서 경험(經驗)하고 있을 것이다.
죄를 지으면 숨는 것은 (창 3:8-10) 에덴동산에서 부터의 유래(由來)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숨은 아담과 하와를 어디에 있는지 다 아시지만 본인의 대답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누가복음15장11-32절의 탕자(蕩子)의 비유(譬喩)에서도 둘째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자기 몫으로 당당하게 달라고 하여 창기(娼妓)와 허랑 방탕(虛浪放蕩)허비(虛費)하도록 그 둘째아들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를 허락하시고 그가 회개(悔改)하고 돌아올 때 까지 기다리시는 좋으신 아버지의 역할로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
하나님은 기다리시고 기다리시며 죄인이 돌이키기만 하기를 상거(相距)가 먼데 돌아오는 아들을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시다.
☞ <우리가 은혜(恩惠)를 찾은 것이 아니고 은혜(恩惠)가 우리를 찾아온 것임>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가 아직 죄인(罪人)되었을 때에”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할 죄(罪)값을 따라 우리를 취급하지 않으신다. 비록 우리의 죄는 정죄받기에 합당하지마는, 그분께서는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연약함과 무지, 우리의 냉담과 고집을 여러 해 동안 참으셨다. 우리가 방황하고, 심령이 완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있을지라도 그분의 팔은 여전히 우리를 향하여 뻗쳐 있다.
은혜는 은혜받기에 합당치 못한 인간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태도이다. 우리가 은혜를 찾는 것이 아니고 은혜가 우리를 찾아 왔다. 우리가 은혜를 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에서가 아니고 전혀 가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하는 유일의 이유는 우리에게 그 자비가 크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치료봉사 161-163) (화잇주석, 눅 15:8-10)

◎ 하나님은 죄를 미우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신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震怒)로 描寫(묘사)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성냄과는 전혀 다르다. 아울러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분노는 순간이며,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진실하고 영원하시다.

<초점(焦點)>
1. 오늘날의 세상 형편은 죄와 타락(墮落)의 결과로 이르러 왔다.
타락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행위로서 하나님과 인간(人間)사이에 죄가 장벽(障壁)을 만들어 놓았다.

2. 하나님과 인간과의 장벽을 제거(除去)하는 것과 영생(永生)의 길은, 오직 구속자(救贖者)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공로와 은혜 때문이다.
이를 영접(迎接)하는 자 만이 영생과 평안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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