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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하나님의 본성 : 속죄의 기초 (修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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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8-09-29 23:58 조회5,7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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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10월4일(안) 일몰(日沒) 오후6시11분

제1과 하나님의 본성(本性) : 속죄(贖罪)의 기초(基礎)

☞ 교과책 10p에는 (시 10:25-27)로 되어있으나 → (시 102:25-27)로 바로 잡습니다.

<확대경(擴大鏡)>
◎ 하나님/ GOD,
요 17:3영생은 곧 유일(唯一)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존재(存在)
⑴ 천연계(天然界)가 하나님을 증거(證據)함 (롬 1:19-20) (사 40:26) (시 19:1)
천연계(天然界)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우리에게 증거(證據)해 주고 있다.
⑵ 성경이 하나님을 증거(證據)함 (창 1:1, 요 1:1-3)
⑶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을 증거(證據)함 (행 17:24-27. 전 3:11)
⑷ 영적(靈的) 경험(經驗)이 하나님을 증거 함 (시 34:8)
[2] 하나님의 본질(本質)
⑴ 영적(靈的) 실체(實體) 이신 분 (요 4:24)
(롬 3:23) 범죄(犯罪)한 인간은 실체(實體)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다.
⑵ 영원성(永遠性)을 지니신 분 (시 90:2. 102:26-27)
(계 1:8.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前)에도 있었고 장차(將次)올 자요 전능(全能)한 자라 하시더라.
⑶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신 분 (시 139:7-10). 렘 23:24)
⑷ 전지(全知) 하신 분. (시 139:2-4. 요일 3:20)
⑸ 전능(全能) 하신 분 (렘 32:17. 계 19:6)
⑹ 불변(不變) 하신분 (삼상 15:29. 약 1:17)
[3] 하나님의 속성(屬性)
⑴ 거룩하신 분 (시 99:9)
⑵ 공의(公義)로우 신 분 (스 9:15) 에스라(724)
⑶ 자비(慈悲)로 우신 분 (사 55:7) (출 34:6)
⑷ 은혜(恩惠)로 우신 분 (딛 2:11) 고후 6:1 하나님의 은혜(恩惠)를 헛되이 받지 말라.
⑸ 진실(眞實) 하신 분 (요일 5:20. 렘 10:10).
⑹ 정결(淨潔) 하신 분 (합 1:13) 시 51:10
⑺ 사랑의 속성을 가지신 분 (요일 4:8) 대하 19:7 신 32:4 욥 8:3 34:10 창 18:25 롬 9:14
하나님의 속성(屬性) 욥 34:10-12
전 12:13 = “일의 결국을 다 알았으니 ........................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 시편(詩篇)은 하나님을 냉랭한 신학(神學)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사람의 경험(經驗)을 통하여 확신(確信)된 살아계신 하나님이 시편(詩篇)의 신학(神學)이 되신다. 그리하여
① 시간(時間)에 관한 한 영원하시고 (Eternity)
② 공간(空間)에 관한 한 광대(廣大)하시고 (Immensity)
③ 지식(知識)에 관한 한 전지(全知)하시고 (Omniscience)
④ 능력(能力)에 관한 한 전능(全能)하시고 (Omnipotence)
⑤ 존재(存在)에 관한 한 편재(遍在)하시고 (Omnipresence)
⑥ 관계(關係)에 있어서 신실(信實)하시고 (Faithfulness)
⑦ 성품(性稟)에 있어서 자비(慈悲)로우시며 (Love & Mercy)
⑧ 도덕(道德)에 있어서 선(善)하시고 (Goodness)
⑨ 행(行)하심에 있어서 공의(公義)로우시고 (Righteousness)
⑩ 신분(身分)에 있어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Holiness)
⑪ 참으로 온전(穩全)히 완전(完全)하시고 (Perfection)
⑫ 한계(限界)를 초월(超越)하여 무한(無限)하신 (Infinity)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屬性)이 시편(詩篇)에서처럼 아름답고 완벽(完璧)하게 수(繡) 놓여진 곳이 또 어디 있으랴.

☞ 위대(偉大)한 주석 설교자 스펄젼의 표현처럼,
사파이어 보석처럼 광채(光彩)가 찬란한 시편 139편에서 비쳐나오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모르시는 것이 전혀 없는 무소부지(無所不知)하시며 전지(全知)하신 하나님,
계시지 않는 곳이 없는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고 편재(遍在)하신 하나님,
하실 수 없는 일이 없는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시며 전능(全能)하신 하나님,
외롭지 않으심이 결코 없는 무소불의(無所不義)하시며 공의(公義)로 우신 하나님이시다.”

일(日) 9월28일
<영원(永遠)하신 하나님 (시102:25-27)>
◎ 영원(永遠)이란?
영원이란 말이 쉬운 것 같지만 설명하기는 쉽지가 않군요?
1. 바닷물을 T스푼으로 퍼 담아 옮기는 기간?
2. 63빌딩 크기의 쇠기둥을 손으로 문질러서 바늘처럼 가늘게 만드는 기간?
영원이란 끝이 없는 것을 영영히 라고 하지요.
즉 존재(存在)를 말하는데 존재란 의존(依存)상태가 있어야 존재를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존(自存)하신분이며, 시여 자(施與者)이시므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영원무궁(永遠無窮)하신 분이시므로 존재의 주인이십니다.

◎ 하나님은 영원한 과거(過去)에서부터 영원한 미래(未來)에까지 계신다.
(참조 시93:2) 잠 8:23, 미 5:2, 합 1:12).
하나님은 옛적부터 항상(恒常)(단 7:9)계신다.
하나님의 영원성에 관하여 이보다 더 숭고(崇高)한 말이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영원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생명을 그 영원하신 분과 관련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고귀(高貴)하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강력(强力)한 동기를 가진다. (본교성경주석 제6권 424)

◎ 하나님의 능력(能力)의 신비(神秘)
“가장 위대한 지성을 가진 사람들도 천연계(天然界)에 나타난 여호와의 신비를 이해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영감(靈感)은 가장 심오(深奧)한 학자들이 대답할 수 없는 많은 질문들을 한다. 이 질문들은 우리의 대답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오묘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우리의 지혜가 한정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우리의 일상생활의 주변에 유한한 마음이 깨달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하나님의 판단과 목적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이다. 그분의 지혜는 헤아릴 수가 없다. 회의론자들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사람들에게 계시하시는 무한한 능력을 그들의 유한한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일을 거절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제한된 이해력에 펼쳐진 것에 의해서보다는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신 것에 의해서 더 많이 인지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계시를 통하여, 또한 천연계(天然界)를 통하여 믿을 수밖에 없는 오묘들을 사람들에게 주셨다. 이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계속해서 탐구하고, 계속해서 질문하고, 계속해서 배울지라도 여전히 무한한 저편은 남아 있다.” (8증언, 261)
◎ 그리스도 안에 계시(啓示)된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인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그분의 아들 안에서 계시(啓示)하셨다.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이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히 1:3)신 예수께서는 사람의 모양을 입으시고 땅 위에 계셨다. 그분께서는 인격을 가진 구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인격을 가진 구주로 승천하셨다. 그분께서는 인격을 가진 구주로 하늘 법정에서 중보 하신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인자 같은 이”(계 1:13)가 우리를 위하여 봉사하고 계신다.

사람들이 소실당하지 않고 그들의 창조주와 친숙해지게 하시고자 세상의 빛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신성의 빛나는 광채를 가리시고 한 인간으로서 사람들 사이에서 생애 하시려 오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되신 것 외에는 어떤 사람도 어느 때에든지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선언하셨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요 10:30; 마 11:27).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알기를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 위하여 오셨다. 우리는 하늘에서, 땅에서, 넓은 대양의 물에서 하나님의 솜씨를 본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을 증거한다. 그러나 우리는 별들이나 대양이나 큰 폭포에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그대로의 하나님의 인격을 배울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품성과 인격을 묘사하기 위해서 천연계보다 더욱 분명한 계시가 필요함을 보셨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시력이 감당할 수 있은 한도까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들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만일 하나님께서 천연계의 사물들, 곧 꽃과 나무와 풀잎 속에 개인적으로 거하시는 것으로 나타내어지기를 바라셨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계셨을 때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 사실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으셨겠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언급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인격적인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진리를 분명히 가르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많은 인간이 멸망을 당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나님께 대한 모든 것을 계시하셨다. 그분은 거룩한 교사이시며 계몽자이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주신 것들 외에 다른 계시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면, 그것을 주셨을 것이다.” (8증언, 264-267)

◎ 무(無)에서 유(有)라는 존재(存在)를 만드신 것을 창조(創造)라고 하며. 그 분을 창조주(創造主)라고 한다. 태초(太初)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면 하나님은 그 '태초'보다 먼저 존재하셨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영원성(永遠性)이 암시(暗示)되어 있다.

◎ 창조주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存在)하신다.
예수님께 적용된 말씀으로 그분이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고 계시(啓示)한다.

◎ 시여 자(施與者)되시는 분을 일컬어 자존자(自存者)이시다, 라고 말할 수 있으며, 생명의 시여 자(施與者)이신 하나님만이 회개(悔改)한 죄인(罪人)에게 새 생명을 주실 수 있으시다.
그러한 능력을 가지신 그분만이 우리의 구속자(救贖者)가 되실 수 있다.

월(月) 9월29일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시118:1-4)>
◎ 하나님은 사랑 이시다는 무슨 뜻일까?
사랑의 하나님은 무엇을 뜻할까요?
먼저 성경이 묘사(描寫)하는 사랑에 대해보고, 그 사랑을 하나님에게 적용한 구절들을 봅시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4-8a).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크게 표현(表現)한 말씀은 요한복음 3:16과 로마서 5:8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滅亡)치 않고 영생(永生)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아직 죄인(罪人)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그 분의 영원(永遠)한 집, 천국(天國)에서 그 분과 함께하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소망(所望)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불(支拂)하심으로 당신의 소망(所望)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로 자신의 의지(依支)로 선택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矜恤)이 불붙듯 하도다.” (호세아 11:8b).
또 사랑은 용서(容恕)를 베풉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自白)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義)로우사 우리 죄를 사(赦)하시며 모든 불의(不義)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사랑 (하나님)은 자신을 누구에게도 강요(强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나아오는 자도 그 분의 이런 사랑에 응(應)하여 행(行)합니다.
사랑 (하나님)은 모든 자에게 온유(溫柔)합니다.
사랑 (예수님)은 차별(差別)하지 않고, 모든 자에게 선(善)한 일을 하셨습니다.
사랑 (예수님)은 남이 가진 것을 탐(貪)하지 않고, 불만 없이 낮은 삶을 사셨습니다.
사랑 (예수)은 자신이 육체(肉體)가운데 거(居)하면서 실제로 어떤 분임을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이 만났던 어떤 사람보다 높은 위치(位置)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사랑 (하나님)은 복종(僕從)을 강요(强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에게 복종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예수는 기꺼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순종(順從)했습니다.
“오직 아버지가 명(命)하신 대로 행(行)함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라”(요한복음 14:31).
사랑 (예수)은 항상(恒常)다른 이들의 유익(有益)을 찾으셨으며,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의 본성(本性)은 이기적(利己的)인 데 반하여, 사랑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 희생적(犧牲的)인 삶임을 알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를 구세주(救世主)로 영접(迎接)한 자에게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같이 사랑할 능력(能力)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12; 요한일서 3:1; 23, 24). 이 얼마나 큰 특권(特權)이며 도전(挑戰)이 되는지요!

◎ 용서(容恕)받은 진정(眞情)한 사랑 - '아가페(agape)'
서로 인자(仁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容恕)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容恕)하심과 같이 하라. (엡4:32) 그리스어에는 '사랑'을 뜻하는 말이 세 가지 있는데, 그중 그 의미(意味)가 가장 행복한 단어가 '아가페(agape)'이다. 아가페란 사랑받을 자격(資格)이 없는 자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랑이 바로 나와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 인 것이다. 그런데 흥미(興味)로운 것은, 아가페를 '용서(容恕)하는 것(to forgive'으로도 해석(解釋)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도 바울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우리가 아직 죄인(罪人)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確證)하셨느니라(롬5:8).' 바울의 이 기록은 우리가 사랑을 받을만한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아가페이다.
그리고 은혜(恩惠)이다. 또한 용서(容恕)이다. 이것은 불쌍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자연(自然)은 용서(容恕)하지 않는다.
교육자(敎育者)들도 용서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공부하지 않는다면 낙제(落第)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社會)도 용서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중죄(重罪)를 범한다면 나는 반드시 그 죄의 대가를 받게 된다.
어디를 가든 전과자(前科者)라는 낙인(烙印)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용서(容恕)는 오직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기적(奇蹟)이다. 그는 위대(偉大)한 사랑, 진정(眞情)한 사랑인 아가페이시므로 용서(容恕)하시는 것이다.

◎ 하나님은 인자(仁慈)하심이 영원(永遠)하시며, 죄인(罪人)을 위하여 독생자(獨生子) 예수님을 내어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가페사랑인 것입니다.

◎ 사랑이란 친구에 대한 사랑도 있고, 육체에 대한 사랑도 있다.
그리고 무아(無我)적인 사랑도 있다. 그 무아적(無我的)인 사랑을 아가페사랑이라고 한다.
“아가페”사랑이신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인류의 불행(不幸)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인류를 구원(救援)하기 위한 구원(救援)의 계획을 시행(施行)하셨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의 구주(救主)이시다.

화(火) 9월30일
<창조주(創造主)이신 하나님 (시 100:3)>
◎ 창조주(創造主)이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자신의 생각과 말씀을 통해 창조하셨는데,
이것을 '무(無)로부터의 창조(創造)'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자신의 선(善)과 사랑을 피조물(被造物)에게 나주어 주기위해서 이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被造物)은 그 나름대로 하나님의 선(善)과 사랑을 지니고 지음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이 만드신 것을 보고 흡족(洽足)해하시며 '보시니 좋았다'라고 하셨다. 모든 선(善)과 사랑의 근원(根源)이신 하나님께서 보시고 좋았을 정도로 모든 피조물(被造物)은 각각의 아름다움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주만물(宇宙萬物)을 만드신 창조주(創造主)이시다.
밤하늘에 반짝이며 수놓는 수많은 별들과 달 그리고 찬란한 빛과 열량을 주는 태양, 그뿐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동물들, 길짐승, 날짐승, 들짐승, 바다의 물고기들, 식물과 광물 그리고 인간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창조되었다고 그리스도인은 믿고 있다. 오늘날 우주 과학의 발달로 베일에 싸여있던 우주의 신비(神秘)가 밝혀지면서 우주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巨大)하며, 그 거대한 우주가 끊임없이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거대한 우주를 생각할 때 태양계의 한 별인 이 지구상에 발붙여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은 차라리 외소(矮小)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이 우주를 지배(支配)하고 관리하도록 인간에게 사명을 주셨다는 것은 인간의 특별한 위치를 생각하게 해준다.
성경의 첫째 책인 창세기의 맨 처음 성경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로 시작되고 있다.
맨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셨다」 (창세 1,1).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로 인해 이 세상에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의 시작(始作)이 있게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과 땅이란 우주만물(宇宙萬物)의 모든 것을 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만물(萬物)을 엿새 동안에 걸쳐 순서대로 만드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그대로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물(事物)을 생각하시고 만들려고 하면 그대로 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의지(依支)와 뜻대로 세상사물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하찮은 것이라도 아무 뜻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으며 하나님의 의지(依支)와 섭리(攝理)가 표현되고 내재(內在)된 존재(存在)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시기 좋았더라는 질병(疾病)과 고통(苦痛)과 단명(短命)으로 낙원(樂園)이 실낙원(失樂園)으로 변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 말씀이 육신(肉身)이 되신 사랑의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寶座)를 버리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셨으나 죄로 눈이 어두워진 인간들을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십자가(十字架)로 처형(處刑)하였지만, 부활 승천하시여 다시 이 땅에 재림(再臨)하실 것을 약속(約束)하셨다. 주님의 이 약속은 머지않은 장래에 곧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능력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성육신 하신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를 재창조(再創造)하실 것이다.

수(水) 10월1일
<거룩하신 하나님 (사 40:25)>
◎ 거룩, 거룩함 (Holy, Holiness)
'거룩'을 의미하는 카도쉬와 '거룩함'을 의미하는 카데쉬가 구약에 약830회 이상 나온다.
어원학(語源學)적으로는 확실치는 않지만 종교적 의미에서 본 히브리어의 근본 개념은 탈퇴(WITHDRAWAL), 그리고 헌신 (CONSECRATION)의 의미로, 말하면 일반 세속적(世俗的)인 것이나 부정(不淨)한 것으로부터의 탈퇴(脫退)와, 신성하고 성(聖)스럽고, 순수(順守)한 것에 대한 헌신(獻身)을 뜻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그의 창조물(創造物)로부터 구별되시며 초월(超越)하심을 의미하며 출애굽기 3:4-5에서처럼, 요컨대 그의 권능(權能)과 주권(主權)과 위엄(威嚴)있는 거룩함을 뜻한다.
그리고 레위기11:44과 이를 반복한 베드로전서 1:16에서처럼 하나님의 특성은 윤리적으로도 흠(欠)이 없으심을 나타낸다.

사람들의 '거룩함'은 출애굽기 29:1에서와 같이 적절한 헌신(獻身)행위로부터 비롯된 의식(儀式)상의 신성함을 나타낼 때에 가장 빈번히 사용되며, 그리고 간혹 보다 깊은 중요도를 표시할 때는 출애굽기 19:2, 시편 15:1이하, 이사야 57:15에서처럼 사람들의 윤리적(倫理的)인 공의를 의미(意味)한다.
구약(舊約)에 나타난 영적(靈的) 윤리적(倫理的) 측면에서의 신선함을 계속적으로 전달해 주며 그 뜻을 완성(完成)시킨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사람들의 신분(身分)을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완전한 공의가 그들에게 '양도(讓渡)(전가(轉嫁))된' 상태이다. (고전 1:30).
그렇지만 그 자신이 죄를 극복하고 파괴한 대표가 되는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으로 인해 양도되는 거룩함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이러한 공의의 전달은 무가치(無價値)한 것이 된다.(요일 2:1-6)

◎ 하나님의 독특한 속성은 그분의 탁월한 지혜(智慧)나 능력이 아니라 완전한 거룩하심이다.
이것이 그분의 지혜와 능력의 비결이다. 공의가 그분의 보좌(寶座)의 기초이다.
이와는 현저히 대조적으로 바알이나 몰렉이나 아스다롯 같은 신(神)들은 인간의 사악(邪惡)함과 욕정(欲情)을 신격화(神格化)시킨 비열(卑劣/鄙劣)한 존재(存在)다. (본교 성경주석7권 312p)
◎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 또는 '거룩하다 이름 하는 자'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다.
◎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님을 죄인을 대신하여 죄가 되게 하심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신다는 약속이다.
◎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묵인하는 대신 죄인들과의 교제를 회복하시기 위해 유일한 구속자(救贖者)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목(木) 10월2일
<전지(全知)하신 하나님 (시139:1-4)>
◎ 참으로 신묘막측(神妙莫測)하여라.
어머니의 존재에 대하여 어떤 글을 써보려 한다면 모두 비슷한 고충(苦衷)을 겪을 것이다.
간단히 쓰기에는 사연이 너무 많고, 구체적으로 쓰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고, 대략으로 쓰자니 너무 추상적이 되어 어머니의 자상한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게 되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해 쓰려 할 때에의 고충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높고 거룩하심과 영원하심과 무한하심만을 강조 하다 보면, 그분의 초월성(超越性)이 두드러지게 되어 정말 하늘처럼 너무 높고 아득한, 동떨어진 하나님이 되고 만다.
정도가 지나치면 그럴싸한 이신론(理神論). Deism)의 빗나간 주장처럼,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것을 영구불변(永久不變)의 자연법칙에 고정시켜 놓은 채 인간의 역사나 자연계의 현상에 일체 관여하지 않으시는 유야무야(有耶無耶)한 궐석(闕席)의 하나님이 되고 만다.
반면에 인간의 경험과 역사에 포함되시고 만드신 천연계(天然界)속에서 생동하시는 하나님의 내재성(內在性)에 치우치다보면 하나님과 피조물(被造物)을 동일시(同一視)하는 대단한 착각인 범신론(汎神論). Pantheism)에 빠지고 만다.
이러한 하나님의 두 속성 곧 만드신 피조물(被造物)과 구별 되셔야 하는 초월성(超越性)과 그러면서도 그것들과 함께 계셔야 하는 내재성을 어떻게 동시에 이해하고 경험할 수가 있을까?
시편은 이만만치 않은 신학의 딜레마에 대한 완벽한 대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시편 139편이다.
시편(詩篇)은 하나님을 냉랭한 신학(神學)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사람의 경험을 통하여 확신된 살아계신 하나님이 시편의 신학이 되신다.
그리하여
시간(時間)에 관한 한 영원하시고 (Eternity)
공간(空間)에 관한 한 광대(廣大)하시고 (Immensity)
지식(知識)에 관한 한 전지(全知)하시고 (Omniscience)
능력(能力)에 관한 한 전능(全能)하시고 (Omnipotence)
존재(存在)에 관한 한 편재(遍在)하시고 (Omnipresence)
관계(關係)에 있어서 신실(信實)하시고 (Faithfulness)
성품(性稟)에 있어서 자비(慈悲)로우시며 (Love & Mercy)
도덕(道德)에 있어서 선(善)하시고 (Goodness)
행(行)하심에 있어서 공의(公義)로우시고 (Righteousness)
신분(身分)에 있어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Holiness)
참으로 온전(穩全)히 완전(完全)하시고 (Perfection)
한계(限界)를 초월(超越)하여 무한(無限)하신 (Infinity)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屬性)이 시편(詩篇)에서처럼 아름답고 완벽(完璧)하게 수(繡) 놓여진 곳이 또 어디 있으랴.

위대(偉大)한 주석 설교자 스펄젼의 표현처럼, 사파이어 보석처럼 광채(光彩)가 찬란한 시편 139편에서 비쳐나오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모르시는 것이 전혀 없는 무소부지(無所不知)하시며 전지(全知)하신 하나님,
계시지 않는 곳이 없는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고 편재(遍在)하신 하나님,
하실 수 없는 일이 없는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시며 전능(全能)하신 하나님,
외롭지 않으심이 결코 없는 무소불의(無所不義)하시며 공의(公義)로 우신 하나님이시다.”

세계적인 동화(童話)작가 안델센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
배가 고픈 김에 큰 아이들을 따라 남의 밭에 들어갔다가 주인의 눈에 뜨이게 되었다.
아이들은 모두 도망쳤으나 그는 헌 신발짝이 벗겨지는 바람에 붙잡히고 말았다.
화가 치밀어 오른 주인에게 한차례 모진 매라도 맞게 된 판국에, 안델센은 애원하며 소리쳤다.
“아저씨, 하나님이 보고 계세요.” 그러자 주인은 갑자기 누그러지고 노(怒)가 풀리며 오히려 안델센을 불쌍히 여겨 후의(厚意)까지 베풀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나를 낱낱이 살피고(감찰(監察)) 빈틈없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일 거수(一擧手) 일 투족(一投足)의 행동거지(行動擧止)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심사동기(深思動機)까지도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마음은 좌절과 슬픔으로 채워진 채 얼굴만 웃는 억지웃음을 분별하시고 둔(鈍)한 혀로 표현된 불완전한 말뿐 아니라, 너무 괴롭고 답답하여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歎息)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 (로마서 8:26-27절)는 그런 하나님이시다. 그렇다. 하나님이 인간의 언행심사(言行心思)는 물론 동기까지 낱낱이 모르신다면 어떻게 인간을 온전히 돕고 완전히 구원하실 수가 있겠으며, 더구나 공의로운 심판을 베푸실 수가 있겠는가?
이러한 하나님께 보청기(補聽器)가 필요하실까?
악을 쓰듯 고함을 지르며 장황한 기도를 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그런 오해(誤解)를 하게 된다.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 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 6:7-8)

◎ 어디에나 계시는 편재(遍在)의 하나님
무신론자(無神論者)인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신앙(信仰)을 꺾어보려고 집안 거실(居室)의 벽에 “하나님은 아무데도 없다” (God is no where!)고 큼직한 글자를 써 붙였다.
잠시 바라보던 아들은 말했다.
“아버지 그것이 우리교회 목사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세요.
하나님이 지금(now) 여기(here) 계신다구요. (God is now here!) 그렇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 (nowhere)을 주장하려면 먼저 계신 것(God is)을 전제로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분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 곳이 위로 가장 높은 하늘이거나 아래로 가장 낮은 음부(히브리어 she' ol)곧 무덤이나 땅속, 가장 넓은 바다의 가장자리여도ㅓ 거기 계신다.
새벽에 솟아나 어두움을 사르며 날개 치듯 신속히 발산하는 아침 햇살의 속도로 도망친다 해도 빛의 속도를 능가할 수 없듯 인간은 시간 밖에 계신 하나님을 피하여 갈 수가 없다.
하나님을 피하여 바다 끝으로 도망하려했던 요나는 바다 속 큰 물고기의 배속에서 하나님과 마주치지 않았던가?
시편은 작가(作家)와 작품(作品)을 혼동하는 어리석은 범신론(汎神論)을 단호히 배격(排擊)한다.
“주의 신” “주의 앞” “주의 손” “거기 계시나이다.” 등의 구체적인 표현을 써서 그런 혼동을 원천적으로 예방하고 있다.
◎ 모든 일을 하시는 전능(全能)의 하나님
하나님의 무소부지(無所不知)하심과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심을 흉금을 터놓고 찬양한 시인은, 이제 그것을 최고의 걸작(傑作品)인 인간의 찬조에 드러난 하나님의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심과 연관 지어 찬양을 고조시키며 영감의 붓을 숨 가쁘게 놀리고 있다.
인간의 생식(生殖)이나 생명에 관한 지식이 전혀 밝혀지지 않은 거의 3천 년 전에 쓰여진 이 시편에 드러나 생명 과학은 참으로 놀랍고 놀라울 뿐이다.
건축가가 아무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구상한 건축 설계를 도면(청사진)에 옮긴 후 공사 현장에서 건축물로 표현 하듯, 인간을 깊은 의중(意中)에서 구상하신 하나님은 그것을 숨겨진 모태(母胎)에서 조립(組立), 생성(生成)하신 후 마침내 세상에 공개 출품하시는 것이다.
1838년, “모든 생물은 세포로 이루어 졌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슐라이든 (M. j. Schleiden)에 의해 밝혀지고, 1848년에는 세포핵 속에 들어있는 염색체가 호프마이스터 (W. Hofmeister)에 의해 기록된 후, 1926년에 이르러 염색체 속의 유전자(遺傳子)의 존재가 모르간 (T. Morgan)에 의하여 보고되었다.
생명과 유전(遺傳)의 신비(神秘)를 간직한 염색체가 핵산(核酸)과 몇 성분의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음도 밝혀졌다.
스위스 생물학자 미셰르 (F. Miescher)가 찾아낸 이 신비한 물질 핵산은 유전자의 본체인 디옥시리보 핵산 (DNA - Deoxyribonucleic Acid)과 단백질 합성에 관련된 리보 핵산 (RNA - Ribonucleic Acid)으로 나뉘어 있음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유전(遺傳)과 생명체의 본질인 단백질 합성의 열쇠를 지닌 신비한 물질 핵산은 세포분열시, 생명체의 청사진(靑寫眞)의 원본인 DNA는 RNA라는 등본을 떼어주는데, 이 유전자의 암호문이 단백질 합성계인 리보솜(Ribosomes)에 전달되어(mRNA) 번역을 거친 후 단백질의 구성 물질인 아미노산 (Amino Acid)의 서열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단백질이 합성됨으로써 고유한 특성을 지닌 생명의 개체가 생성되는 것이다.
각 생명체의 구성과 특성에 관 한모든 정보를 지닌 이 DNA는 각 개체에 따라 서로 다른데, 대장균의 DNA속에는 500쪽 분량의 책 한권에 해당되는 정보가 단백질의 암호로 표시되어 1,000만 쌍의 뉴클레오티드에 기록 보존되어 있고 사람의 DNA에는 500쪽으로 된 책 1000권에 해당하는 정보가 60억 쌍의 뉴클레오티드에 기록 보존되어 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움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움을 받을 때에 나의 형체(形體)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다는 다윗의 진술은 얼마나 놀라운가?
‘내 형질(形質)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이루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다고 진술하게 하신 시인(詩人)의 하나님이 곧 핵산을 만드시고 DNA의 암호 책에 생명과 유전의 정보를 미리 기록하신 그 하나님이 아닌가? 죽은 사람을 부활시킬 때, 생명과 유전의 정보를 지닌 “알갱이” 곧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되 ,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고린도전서 15장35-39절) 신다는 설명은 생명과학이 입증한 놀라운 진실이 아닌가? 아, 참으로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고”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셀 수 없는 “신묘막측(神妙莫測)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아니신가!

◎ 불의(不義)할 수 없으신 공의(公義)의 하나님
인간의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신묘막측(神妙莫測)한 지혜와 그리고 그렇게 지으신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빈틈없는 보살피심과 전지하심을 깨달은 시인(詩人)은 소스라친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 감히 불의를 행하다니, 이처럼 샅샅이 아시고 낱낱이 아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놓고 공개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진실을 숨기고 돌아서서 죄를 짓다니 참으로 말도 안 되는 말이다.
“내 마음을 아시며” “내 뜻을 아”시는 하나님, 꿈에라도 하나님께 숨기고 죄지을 마음이 없사오니, 제 본심과 진심을 받으시고 부디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 하소서.” 시인의 우주에는 오직 하나님과 자기 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참으로 행복하려거든 : 신 계훈 저(著))

◎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숨은 생각까지도 간파하신다.
그분은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까지도 아신다. 그분의 눈앞에 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예수님께서는 속죄하실 일에 대하여 창세전부터 모두 다 알고 계셨다고 말한다.

◎ 전지전능(全知全能) 하시며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의 발생을 미리 아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할 대비책을 세우셨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속죄의 계획이었다.

<초점(焦點)>
1. 하나님의 품성과 속성은 사랑이시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창조로 표현되셨다.

2. 죄는 하나님의 사랑을 손상(損傷)시켰다.
하나님은 죄로 손상된 이 세상을 새롭게 재창조(再創造)하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도 거룩하게 하실 수 있으시다.
그 분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자.




0 늦게 올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꾸-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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