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선지자 이사야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13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선지자 이사야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목사 작성일08-09-26 13:32 조회6,230회 댓글0건

본문

제13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선지자 이사야(9/27/08)

9월 27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21분)


기억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연구범위: 레 16:30, 17:11, 사 6:1-10, 49:6, 렘 3:22, 마 28:18-20, 히 1:2.


중심 사상: 이사야는 죄와 타락을 지적했고, 공의와 의로움을 옹호했으며, 오실 메시야에 관하여 예언했던 주전 8세기의 강력한 선지자였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이사야처럼 일할 수 있는가?


안식일 오후

이사야의 중심적인 사명은 남방 유다를 개혁하는 것이었다. 그는 죄와 타락과 하나님에 대한 민족적 반역을 거리낌 없이 말하였다.

그러나 이사야의 사명은 단지 유대 내부의 개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유다가 온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명을 수행할 날이 올 것을 내다보았다. 유다는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홀로 간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하는 사명을 갖게 될 것이었다.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라(사 42:6).

온 세상을 향한 이 거대한 선교적 사명은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잊혀지고 말았다. 예수님의 사역과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들의 활동이 있기까지는 세상을 향한 이 복음전파의 이상(異像)이 실행되지 못했는데, 우리도 또한 이 시대에 그 동일한 이상에 동참하라고 부르심을 받았다.

핵심본문: 사 6:8

<학습 목표>

깨닫기: 이사야 당시의 기별과 우리 시대의 기별 사이에 공통점을 발견한다.

느끼기: 이사야가 느꼈던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우리도 느끼며, 죄로부터 정결케 되기를 갈망하는 마음을 갖는다.

행하기: 죄로부터 정결케 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기로 결심한다.

< 교과 개요 >

I. 하나님을 뵘(사 6:1-10)

A. 성경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는데, 이사야의 부르심에는 어떤 독특한 면이 있었는가?

B. 하나님을 뵌 이사야의 경험은 그의 모든 감각기관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II. 죄사함과 부르심(사 6:8)

A. 화요일 교과에서, 이사야는 임무를 위탁받기 ‘전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는데, 이 사실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III. 힘든 과제(사 6:8)

A. 이사야는 이미 선지자요 종교 지도자였는데, 왜 이사야서 6장에 열거된 경험을 겪어야만 했는가?

B. 이사야와 같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는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C. ‘이방의 빛’(사 49:6)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요점: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인기 없는 사명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역을 통해 삶이 변화되었고, 그의 말의 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역사하고 있다.



일요일(9월 21일) “화로다. 나여!”(사 6:1-6)

1. 이사야 6:1-6을 읽으십시오. 이사야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까?

사6:1-6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답: 이사야는 이상(異像) 중에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뵈었다.

이사야는 이상(異像)을 통해, “높이 들린” 보좌(사 6:1)에 하나님이 친히 좌정해 계신 하늘 알현실(謁見室)을 볼 수 있도록 그곳으로 옮겨졌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알현실을 보는 이상 중에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끌리는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고, 스랍이라 불리는 여섯 날개 달린 존재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사야는 스랍들이 서로 창화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힘이 있어 문설주가 흔들리고, 성전은 연기로 가득하였다.


2. 이사야의 이상과 하나님을 뵌 다른 이들의 경험을 비교해 보십시오(출 20:18-19, 삿 13:22, 욥 42:5-6, 계 1:17). 그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창조주께 어떻게 반응해야 하며 그분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어떤 중요한 교훈을 끌어 낼 수 있습니까?

출20:18,19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삿13:22 그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욥42:5,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계1: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답: 하나님을 뵌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부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그 위엄으로 인해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이사야는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이상 중에 뵌 후에 다음과 같이 반응하였다. 그는 외치기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망하다’로 번역된 다마(damah)라는 히브리어는 ‘절단되다,’ 혹은 ‘끝나다’의 의미이다. 제임스왕역(KJV)에도 이 단어는 ‘멸망하다’(perish; 시 49:12, 20) 또는 ‘망하다’(destroyed; 호 4:6)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이사야의 그러한 대면이 그에게는 완전히 깨어지는 경험이었음을 시사한다. 하나님을 뵈옵는 경험을 통하여, 이사야는 창조주 하나님과 비교해 볼 때 자신이 진정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의 영광을 보았을 때 놀랐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깊이 느끼고 부르짖기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부정한 백성들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고 하였다. 이사야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질책해 왔지만 이제 그가 자신을 보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선고를 내린 것과 꼭 같은 정죄 하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이사야가 자신을 본 이러한 견해를 바울의 말로 바꾸어 표현한다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4권, 1138).

<부가설명> 자비하신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실 때 언제나 은혜로 자신을 가리고 나타나셨다. 그것이 사람의 눈에는 연기같이 또는 구름같이 보였다. 하나님께서 자기 영광을 그대로 나타내시면 사람은 죽게 된다(출33:20). 아마 위에 기록한 경우도 하나님의 영광을 그대로 다 나타내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나타내셨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손자가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기는 식으로 하나님 앞에 무례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 우리는 경건함과 경외함으로 말씀을 따르는 겸손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예배의 기본 자세이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의 수치를 무릅쓰셨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그의 백성이 좀 잘못해도 그래그래 그만한 정도는 괜찮다고 하시는 분으로 생각하여 만홀히 여기지 않아야 한다(갈6:6). “만홀히 여기다”라는 말은 “뮈크트리조”인데, 업신여긴다는 말이다. 무시한다는 말과 같다. 인간의 이기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자기 편의대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경우를 가리킨다. 하나님을 뵌 이사야의 마음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이사야는 이상 중에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뵌 후에 자신의 부정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았으며, 자랑할 것이 전혀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월요일(9월 22일)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사 6:6-7)

이사야가 하나님을 대면한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는 그 경험이 자신의 모든 감각기관에 영향을 미쳤다고 묘사하였다. 그는 여섯 날개를 가진 스랍들과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뵈었고, 우렛소리 같은 스랍의 음성을 들었으며, 성전에 가득한 연기를 냄새 맡았고, 스랍들이 그의 입에 댄 핀 숯을 느꼈고 맛보았던 것이다(사 6:1-6).

어제 교과에서 보았듯이, 이사야는 하나님을 뵌 그 경험 후에 자신의 무가치함에 압도되고 말았다. 참으로 이사야 6:5에 나오는 그의 말은 자신과 자기 백성의 죄에 대한 자백이었다.

1. 왜 ‘부정한 입술’이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을 상징했습니까? 이사야와 그의 백성의 죄는 그들의 말에만 국한되어 있었습니까?(참조 잠 13:3, 마 12:37, 눅 6:45)

잠13:3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잠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마12: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눅6: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답: 입의 말이 그의 사람됨을 드러낸다. 말의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약3:2). 그러므로 입술이 부정하다는 말은 살 수 없는 죄인이라는 말이다.


이사야가 자백하자마자, 스랍 하나가 하늘의 제단에서 취한 핀 숯을 가지고 날아와서 그것을 그의 입술에 대었다.

2. 이사야 6:6-7을 읽으십시오. 스랍이 핀 숯을 이사야의 입술에 댄 행위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여기서 우리 자신을 위한 어떤 교훈을 취할 수 있습니까?

사6:6,7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답: 사망의 죄를 처리해주셨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대표할 수 있기 위하여 정결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입술이 정결해야 하는데 그것은 곧 사죄함을 받아 의롭게 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사야 자신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하나님께 드릴 것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당신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이사야의 죄를 사하셨다. 여기서 ‘사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카파르(qaphar)에서 파생되었는데, 구약에서는 대체로 ‘속죄하다,’ 혹은 ‘속죄’라는 말로 번역되었다(참조 출 29:36, 30:10, 레 16:30, 17:11). 이사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죄가 사해지거나 덮어지지(카파르는 또한 ‘덮다’의 의미로 이해되었다. 창 6:14 참조) 않았다면 여호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먼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은 후에야 그분께 쓰임을 받을 수 있었다.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의로운 상태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만군의 여호와의 영광이 그에게 나타났을 때, 그리고 그가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엄을 보았을 때, 자신에 대한 화를 선언했고 자신은 입술이 부정한 사람임을 절감하여 부르짖게 되었다. 이런 경험이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입술에 제단의 핀 숯불을 대기 원한다. 우리는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는 말씀을 듣기를 원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4권, 1139).

<부가설명> 이사야의 경험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 이사야는 제단의 숯불로 정결함을 받았다. 제단은 제물을 불태우는 곳이다.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타낸다. 예수께서 속죄의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속죄함을 받는다. 속죄의 경험은 자아가 죽는 경험이다. 자기가 불태워지는 경험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경험이다. 모든 세상의 인간적인 사고방식과 사상이 불태워져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고방식과 사상으로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적 사고방식과 사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유혹에서 속히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용서받아야 할 것은 아담 안에서 죽은 생명을 처리하고 예수의 생명을 새로 얻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 우리의 사상과 사고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아지고 전혀 사죄의 경험에 이른 것이 아니다.

교훈: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뵌 후에 자신의 죄를 자백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의 죄를 사함 받은 후에야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



화요일(9월 23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셨을 때 이사야는 얼른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대답하였다. 이사야가 그 부르심에 응답했을 때, 그는 자신이 맡게 될 사역에 대해 세세하게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보라(참조 히 11:8).

이사야는 자신에게 필요한 은사나 달란트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거나, 자신이 성공적으로 그 사역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르심에 응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가 그 임무에 대해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반응한 것도 아니었다(사실 그는 어떤 임무를 맡게 될지 알지도 못했다). 이사야가 응답한 까닭은, 비록 자신은 무가치하지만 하나님은 존귀하시며, 자신은 무능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사명이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해주신 것임을 확신했던 것이다.

1.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명령인 지상명령(마 28:18-20)을 읽으십시오. 특히 지상명령의 첫 부분을 주의 깊게 읽으십시오. 이것은 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입니까?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답: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다. 그분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은 그분이 자신의 일을 하는 것과 같다. 그분이 언제나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되신다.

“그러므로”라는 말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가서 모든 민족을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의 능력으로 가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힘만을 의지한다면 결코 갈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기술만을 신뢰한다면 결코 갈 수 없다. 우리의 사명은 우주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참조 행 17:28, 골 1:16, 히 1:2)에 의해 고무된 것이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도록 필요한 능력을 주신다. 그분은 이사야의 입술을 정결케 하셨고(사 6:7),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임하시어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눅 1:35)으로 덮으신 분이시다. 그분은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고(눅 22:32), 사울을 성령으로 안수하신 분이시다(행 9:17-18). 그분은 또한 예레미야의 입에 말씀을 두신 분이시다(렘 1:9). 지구 역사의 결정적 순간에 있는 우리가 그보다 적게 기대해서야 되겠는가?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명

“하늘 보좌에 올라가시기 직전에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맡기셨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 … 을 가르치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이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 말씀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를 막론하고 땅에 거하는 모든 거민에게 하늘의 빛이 밝고 힘 있게 비춰야만 하였다. 제자들은 세상을 구원하는 사업에 있어서 저희 구주와 동역자가 되어야만 하였다”(시대의 소망, 818).

<부가설명>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성도 각자는 다 이 몸의 지체들이다. 어떤 이는 눈이고, 어떤 이는 손발이며 어떤 이는 심장이고 어떤 이는 폐부이다. 아무튼 신체의 지체들이다 자기가 어떤 지체인지 스스로 모를 수도 있지만 지체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그 지체로서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은사와도 관계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로 지체의 직분을 성실히 감당함으로 지상명령의 작은 부분이라도 수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대답했다. 역사의 중대한 시점에 있는 우리도 그렇게 반응하자.



수요일(9월 24일) 이사야의 호소(사 6:9-10)

1. 이사야에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읽으십시오(사 6:9-10). 우리는 이사야에게 하신 그분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6:9,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답: 이 말씀은 그들이 돌아와 고침을 받기를 열망하시는 하나님께서 반어법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도 자식들이 너무 말을 듣지 않을 때 이런 반어법을 쓴다. 그것은 극도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와 고침을 받으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제임스왕역(KJV)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번역 성경들은 이 구절을 마치 하나님께서 고의로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신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을 주의 깊이 읽어보면 약간의 풍자(諷刺)와 반어법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의 백성을 향해, 듣고 깨달으며 마음을 열고 당신께로 돌이키면 고쳐주겠다고 끊임없이 호소하신 하나님께서 여기서 다른 의미의 말씀을 하셨겠는가?

2. 다음 구절들을 읽으십시오. 방금 살펴본 본문의 의미에 비추어 볼 때, 다음 구절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신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마음의 할례를 받으면 마음과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잠2:4,5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여호와를 간절히 찾으면 그분을 경외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렘3:22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배역한 자식들’이 돌아와 고침받기를 바라신다.

렘4: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가증한 것을 버리고 돌아오길 바라신다.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듣고 순종하여 돌이키면 고쳐주겠다고 호소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많은 사람들이 듣지 않았다. 따라서 본문이 말하는 바는, 백성이 어떻게 이사야에게 반응할지를 하나님께서 단순히 서술하신 것이며, 그분께서 백성이 그렇게 반응하기를 바라시거나 혹은 그렇게 하도록 만드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백성이 계속해서 이사야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자 그들의 마음은 자연히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사야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이 말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명하신 일들을 행하라고 백성에게 호소하셨으나, 우리가 아는 대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성령을 통하여 영적인 눈이 열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사람이 예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성령을 통하여 심령에 믿음의 불이 켜지기까지는 이 영광은 감추어져 있다”(시대의 소망, 391).

<부가설명> 이사야 6장의 이 말씀은 반어적 성격을 지닌 말씀이지만, 또한 이사야를 통하여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거절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결과적 상태를 말씀한 것도 된다.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말씀에 굴복하지 않으면 그때마다 마음이 굳어진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되는 것이다. 우리도 들려주시는 사랑의 음성을 계속 받아들여 순복하지 않으면 그런 결과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아직 빛이 있는 동안 빛에 다녀 어두움에 잡히지 않아야 할 것이다. 사단의 세력은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심상히 듣게 한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문화적 의식으로 말씀을 그 뜻대로 받지 못하도록 한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복종하게 해야 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당신의 백성에게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돌이켜 고침을 받으라고 호소하셨으나 그 백성은 듣기를 거절하였다.



목요일(9월 25일) 이방의 빛(사 42:6-7)

이사야의 사명은 유다를 개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원대한 것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참되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는 언덕 위의 빛으로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사 2:2).

1. 우리 재림교인들은 세상에서 수행해야 할 우리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참조 계 14:6).

계14: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답: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증거할 복음을 가진 무리들이 재림성도들이다. 이 빛을 꼭 전해야 한다.

2. 이사야 42:6-7을 읽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유다 민족에게 어떤 일을 행하도록 부르셨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이와 같은 역할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사42:6,7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답: 유다민족이 이방의 빛이 되어 사람들을 진리의 빛으로 이끌어내고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 되도록 해야 했다. 이 역사의 종말에 그 여자의 남은 자손으로서 재림성도들도 영원한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

3. 이사야 49:6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은 우리 재림교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줍니까?

사49: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답: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방의 빛으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관한 지식을 다른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게 하셨으나 그들은 이 일에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세상을 향한 마지막 호소의 기별을 전하는 데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1860년대까지만 해도 외방선교에 대한 사명을 인식하지 못했었다. 초기 재림교인들은 복음의 사명이 북 아메리카 내에 있는 다양한 인종 그룹에게만 한정된 것으로 생각했다. 미국은 다문화 사회였으므로 초기 재림교인들은 본국에 있는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만 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서 스폴딩은 초기 재림교회가 그들의 사명을 북 아메리카로 한정한 것은 ‘편의적 합리화’라고 지적했다(아서 휫필드 스폴딩,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발생과 역사,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 2권, 193).

그러나 이 어린 교회는 오래지 않아서 복음의 명령에 대한 이해가 너무 제한적이었음을 인식하고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태평양 지역 등 전 세계에 진리를 전파하고 교회를 개척하기로 결정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여러 방법을 통해 개인적으로 이 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

주님의 사업을 수행하는 능력의 근원

“예수께서 성령의 특별한 기름 부음을 받으심으로 봉사 사업을 행할 능력을 얻으신 것처럼(행 10:38) 제자들도 성령의 침례를 받음으로 증거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행 1:5). 그 결과는 엄청났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기본교리, 2007년, 294).

<부가설명>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셨다.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도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오늘 재림성도들은 일어나 빛을 비추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의 어둠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사조가 스며들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이런 사조를 분별하여 오직 진리의 빛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스스로 빛이 아니면 어둠을 어떻게 밝히겠는가. 우리가 아무리 세상의 방법을 도입해도 세상적인 것으로 세상을 앞설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로 세상을 압도해야 한다. 진리의 문화를 창달해야 한다. 그것은 사람을 참으로 변화시키는 문화이다. 그것은 천국 문화이며 바로 산상보훈에서 가르쳐주신 문화이다. 그러면 말일에 여호와의 성전의 산이 모든 산 위에 우뚝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훈: 이사야는 유다가 이방의 빛의 사명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우리는 온 세상에 전해져야 할 하나님의 최후 호소를 전할 사명을 위임받았다.


금요일(9월 26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선지자와 왕, 제25장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음’(303-310)

“하나님의 목적의 최종적인 성취에 관한 이 약속은 이사야의 마음에 용기를 주었다. 지상의 어떤 세력이 유다를 대항할 수 있겠는가? 이사야는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보았으며,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 하며 창화(唱和)하는 스랍들의 노래를 들었다. 그는 배역한 유다에게 주신 여호와의 기별 뒤에는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따를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엘렌 G. 화잇, 이사야의 소명, 애드벤트 리뷰 앤드 쎄베스 헤럴드, 1915년 3월 11일자).

“유다 사람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은혜로운 제의를 받아들이라는 선지자의 권고는 헛되지 아니하였다. 그 권고에 깊이 유의하고 저희 우상들을 버리고 돌이켜 여호와를 경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저희 창조주의 사랑과 자비와 부드러운 동정심을 배워 알았다. 유다 역사상 암흑 시대였던 때 곧 남은 자만이 그 땅에 있을 수 있었던 시대에 선지자의 말은 결정적인 개혁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었다. 이사야는 ‘그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겠으며 그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바라보겠고’(사 17:7-8)라고 선언하였다”(선지자와 왕, 32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선지자는 왜 인기가 없습니까? 만약 이사야가 살아서 돌아와 재림교회에서 활동한다면, 그는 어떤 말을 할까요?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선지자들을 대했듯이 화잇 여사를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한다. 사람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에 심한 부담을 느낀다. 그런 기별이 없었으면 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기가 없다. 이사야는 오늘날 외쳐도 같은 사상을 전할 것이다. 지금 우리교회가 엘렌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마디로 그의 기별이 사람들의 구미에 맡지 않기 때문이다.

2. 이번 한 기 동안 공부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십시오. 배운 내용 중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무엇이며, 내 삶에 일어난 한 가지 분명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 위대한 소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여러 선교사들의 사명과 그 수행은 오직 성령이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그것은 역사의 종말에 우리에게 위임된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이 일을 우리어야 할 것이다.

요약: 선지자 이사야는 인기 없고 인정받지 못할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또한 그의 사명은 백성이 그의 몸을 톱으로 켜서 갈라놓았을 때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 사역을 통해 삶이 변화되었고, 그의 말의 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역사하고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